2017-10-17

[북리뷰] 독일 통일, '그 후'도 연구해야 한다

독일 통일 25년 후
이기식 저·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1만4000원

9월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의 결과는 예상대로 충격적이었다. 예상대로 메르켈 총리는 4선 연임에 성공했지만,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2.6%를 득표하며 기독민주연합과 사회민주당의 뒤를 이어 3위에 등극한 것이다. 나치의 패망 이후 최초로 극우 정당이 연방의회의석을, 전체 709석중 무려 94석이나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알리는 한국 언론 중 상당수가 거론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독일대안당의 세력권이 구 동독과 포개진다는 것 말이다. 특히 작센 주에서는 독일대안당이 기민련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득표율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독 출신 메르켈의 든든한 텃밭이었던 그곳이 극우 세력의 토양이 되고 만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해체되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필자는 유학생 신분으로서 독일의 통일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대단한 행운이었다."(194쪽) 그 유학생 이기식은 귀국하여 교편을 잡은 후, 자료 연구 및 현지 조사 등을 통해 『독일 통일 15년의 작은 백서』, 『독일 통일 20년』, 『독일 통일 25년 후』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오늘 살펴볼 책은 2016년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세 번째 책이다.

"동서독이 어떻게 해서 통일이 되었는지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분단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관심이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 독일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남녀가 만나 결혼식을 올릴 때까지만 보여 주는 우리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다."(8쪽)

동독과 서독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감정의 골이 패여 있고, 두 지역 출신은 서로 교류하지 않으며, 특히 동독 출신들은 서독에 대해 끝없이 열등감을 느낀다. 생필품 공급, 영양 상태 등 기초적인 삶의 질은 분명히 나아졌다. "하지만 동독인들은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서독인들과 비교한다. 자신의 여건이 좀 나아지면 또다시 서독인과 비교하는 것이다."(64쪽)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에 젖은 동독인들의 불만은 당연하다는 듯이 외국인, 특히 유색인종에게 향한다.

"'디 차이트'와 '타게스 슈피겔'지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1990년 통독부터 2012년까지 적어도 152명이 극우 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136쪽)다. 그런데 "2012년에 발생한 인종주의적 사건은 모두 130건"이며 "이중 47%인 61건이 동독 지역에서 벌어졌"다. 문제는 "동독 인구는 독일에서 겨우 17%에 불과"(109쪽)하다는 것이다. 물론 서독에도 지지자들이 있지만, 페기다(PEGIDA) 운동과 독일대안당 극우 세력은 동독 지역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독일의 언론조차도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 의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에 속한다. 이탈리아는 통일 왕국을 건설하고 민주정을 수립한지 150여년이 지나도록 남북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예멘이나 베트남 역시 내부의 골이 깊다. 최근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 시사하고 있다시피 미국 역시 내전까지 치러가며 통일되었지만 아직도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같은 민족인데 남북의 이데올로기 차이든, 체제 차이든 쉽게 극복할 수 있다"(7쪽)는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공부해야 할 시점이다.

2017.10.17ㅣ주간경향 12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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