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5

어떤 분기점

나는 진중권이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부분적으론 아무래도 그가 인터넷 매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진중권은 자신이 이용하는 매체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물론 이는 나를 포함하여 모든 글쟁이들이 써먹는 전술이다. 그런데 진중권의 경우엔 인터넷에서도 익명의 네티즌들과 멱살 잡고 싸우는 희귀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름깨나 있는 논객 가운데 그런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진중권이 유일하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활동에 대해 찬탄을 표한 바 있다.

그런데 비극은 진중권이 자신의 그러한 희귀한 행태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중권의 독특한 텍스트주의는 상황에 둔감하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썩어빠진 정치'라고 욕하는 것이나 정치인들의 면전에서 '썩어빠진 정치인'이라고 욕하는 것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강준만, 『인물과 사상』, 23권, (서울: 개마고원, 2002년 7월), 140쪽.

2013-05-12

단상

초자아를 극복하고 내놓은 결과물과, 초자아의 눈을 피해서 내놓은 결과물은, 같을 수가 없다. 전자의 창작자에 대해, 우리는 그에게 엄연히 초자아가 있으며, 그 초자아와의 관계를 주체적으로 재설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반면, 후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단지 '남들 시선', '엄마가 볼까봐', '우리 아빠가 좀 엄하셔서'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뿐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도피 과정, 스스로를 (말하자면) 하위 주체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2차) 창작의 동력을 얻는 경우라면 사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숨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대상이, 본래의 위엄 혹은 아우라를 유지한 채 드러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2013-05-07

[2030콘서트] ‘동대구역 엽기 자해’ 메시지

5월5일 밤 10시43분.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한 남성이 문구용 커터를 꺼내들고 자신의 생식기 중 일부를 잘랐다. 이 황당무계한 자해사건을 일으킨 김모씨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로 32세다. 사건 당시 만취상태였다는 그는 역무원 및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출혈이 많을 수밖에 없는 부위를 절개했지만,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고,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자식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 본인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육체에 상처를 내면서 쾌감을 얻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자해사건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잊을 만하면 ‘독도는 우리 땅’ 같은 자명한 메시지를 일본대사관에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거나 손가락 끄트머리를 살짝 따서 ‘혈서’를 쓰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인간에게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소중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해쳐가며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타인의 이목을 끌어서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그런 경우에도, 차라리 배를 가르면 갈랐지 자신의 생식기에 손을 대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 필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반응을 통해 짐작하건대, 거의 모든 남성들은 차마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함께 느꼈다. 나이·직업·재산·소득수준 등을 뛰어넘어, 모든 남성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영역을 파고드는 충격적 사건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씨가 그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그는 스스로 유전자의 대를 끊기 위해 그런 엽기적인 행동을 했을 따름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더 이상 이 사건은 한낱 해프닝으로 간주할 수 없다. 2013년 5월5일 어린이날에 벌어진 이 익명의 사건, 32세의 한 남성이 벌인 ‘유전적 자살’은, 사실 지금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어린 시절 겪은 ‘안 좋은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안 좋은 일’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2013년에 태어난 아기가, 부모의 직업·소득·자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워졌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그나마 부분적 농지개혁을 통해 부를 하향 분배했던 대한민국은, 이후 고도성장기를 통과하면서 다시금 부익부빈익빈으로 되돌아왔다. 사실상 신분사회를 재건해낸 것이다.

땅을 가진 아버지, 건물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소년과 소녀들은 계속 그렇게 풍족할 것이다. 그 땅 위에서 농사를 짓고 건물에 세들어 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계속 그렇게 허덕일 것이다. 이 나라를 계급사회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왜 30대 젊은이가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는지 묻지 말고, 왜 생식기를 자르지도 않은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물어보라. 그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내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혹은 지금 겪는 고통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감당이 안되는 이 세상에서 너까지 시달리게 하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엄마와 아빠라서,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게 해주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동대구역에서 자해를 한 김씨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해석은 분명 과잉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대구역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수많은 젊은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사랑을 포기하고 결혼을 미루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야말로 ‘엽기적’이다.


입력 : 2013.05.07 21:49:2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072149295&code=990100&s_code=ao051#csidxb0fd28000a39742a0879c476f895a14

2013-05-01

한 편의 글을 남들 앞에 내놓는 데 가장 필요한 것

한 편의 글을 남들 앞에 내놓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뻔뻔스러움'인 것 같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게 될수록 자기의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깨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를 파악한 연후에야 그것을 발표해야 한다면 그 누구도 저승문이 열릴 때까지 단 한 줄의 글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를 구실삼아 감히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3쪽,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서울: 푸른나무, 1992)

2013-04-09

[2030 콘서트] 당시의 관행, 지탄만 할 건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3월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새 정부가 야심차게 구상한 부처 개편도 이루어졌고, 4월9일 현재 아직 해양수산부 장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긴 하지만 대략 인선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장관 인사가 끝나면 그 아래로 줄줄이 인사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고 비로소 마비 상태였던 국정 업무가 수행될 수 있을 터다.

이중국적 문제로 낙마한 김종훈 후보자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아무튼 독특한 논점을 제시했다. 그와 달리 다른 경우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그만큼 지리멸렬한 소재들로 검증받았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의무 이행 여부, 논문 대필, 법인카드 유용 등이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넣고 필터링을 해보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무려 장·차관급 7명이 통과하지 못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을 놓고 봐도, 그것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깨끗해서가 아니라, 그저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수준이기에 용인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가 공통적으로 내놓는 핑계에 우리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그것은 당시의 관행이었다고. 돈이 생기면 지방에 땅을 사는 것, 그것은 관행이었다고. 실소유자인 본인이 아니라 미성년자인 자녀의 이름으로 땅을 사는 것 역시, 내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 관행이었다고. 그렇게 가갸거겨를 배우기도 전에 땅부자가 되어 있던 아들이 병역 면제를 받도록 슬쩍 힘을 쓰는 것 역시,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관행대로 한 것뿐이라고.

이토록 인간적인 핑계 앞에서 그저 할 말을 잃고 분노하지 말고, 그 내면의 논리를 잘 살펴보자. 아마도 저 해명의 방식은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진실한 답변일 것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다. 다들 그렇게 해왔던 것이니만큼 내가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다양한 사례에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냥 하던 대로 집 앞 차도를 무단횡단하고, 카드로 계산하면 6500원인 백반집에서 현금으로 6000원만 내는 그런 사소한 탈세를 한다. 그 상황에서 국세청 직원에게 붙들리면 아마 나나 당신도 거의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들 이러는데,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전에 없이 수많은 후보자들이 거론되고,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오늘날의 도덕성에는 맞지 않음이 드러났으며, 그 이유를 과거의 관행에서 찾고 있는 이 모습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법과 도덕이 21세기의 현 시점에 부합할 만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들이 당시 관행대로 위장전입을 하고, 탈세를 하며 부동산을 통해 부를 축적해온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는 다 그렇게 했다고 치자. 그런데 오늘날 도덕적 기준이 바뀌었다면, 그것에 대해 응분의 대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지 ‘낙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후보자들뿐 아니라 당시의 관행에 편승한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면죄부를 받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관행대로 했다는 개인들을 불러놓고 면박을 주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봐야, 관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공직에 나서서 검증당하는 과정을 회피할 유인동기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 시절이 최소한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그렇게 만들어진 재산에 대해 조금 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눈에 띄는 사람들만 비난하고 지탄하는 방식으로는 관행을 이겨낼 수 없다. 단호하고 적극적인 부동산 세제 개혁이 해법일지 모른다.


입력 : 2013.04.09 21:18:4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4092118435&code=990100&s_code=ao051#csidxa0b659565e4781aad68f9d76c3b97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