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7

노무현과 진보 언론의 갈등

진보 언론에 대한 문재인 지지자들의 원성이 높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는 노무현을 무조건 매도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후에야 꼬리를 내린 비겁자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진보 언론이 노무현과 대립했던 것은, 노무현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 언론은 진보 언론이기에 노무현을 비판해야 했다. 그가 재임 중, 그리고 퇴임 후에 연루되었던 가족 친지들의 뇌물 수뢰 혐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이라는 이유로 뇌물을 받았는데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보' 이전에 그냥 '언론'이 아니다.

위 표는 2006년 7월 7일 경향신문에 실린 "조·중·동의 왜곡 ‘신문발전기금’ 악의적 보도"(링크)가 출처다. 행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진보의 이상을 배신한 것은 노무현임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은 '조중동'을 비판하는 쪽에 더욱 가깝지 노무현에게 직접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는 않다.

불과 10여년 전의 사실들을 두고 '설명'이 필요하게 될 줄이야.

2017-05-14

[별별시선] 문재인 대통령, 국민을 실망시켜야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 동시에 그가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를 기원한다. 위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니다. 향후 5년의 성패는 그가 얼마나 국민, 특히 자신의 지지층을 효과적으로 실망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국민들의 절망을 딛고 큰 기대를 받으며 출범했다. 그러나 그들은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진실을 전하고 이해를 구하는 대신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바로 그 지점부터 문제적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공약을 전부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주변인들 역시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의 심기를 거슬러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4월28일, 문재인 캠프 선대위 윤호중 공동정책본부장은 “어떤 국민도 자신이 세금을 더 내게 될 것이라고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공약 실현을 위한 세율 인상의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문재인과 그의 대선 캠프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국민들의 ‘기분’을 고려하여 복지 공약에 수반하는 증세 논의를 회피해왔다.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외교안보적 비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으로는 경기침체, 밖으로는 북핵 위기와 싸워야 하는 지금, ‘불편한 진실’을 입에 담지 않으려던 대통령 후보와 캠프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대통령은 권력자 맞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며,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도 없고,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들이 사방에 포진하고 연합해서 또 괴롭힐” 것이므로 ‘진보 어용지식인’이 되겠다는 유시민 작가는 그 우려를 배가한다. 얀 베르너 뮐러의 책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펼쳐보자. 유시민의 발언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집권 기간의 실패를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기존 엘리트가 뒤에서 훼방을 놓은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결국 “일종의 종말론적 대립 상태를 꾸며내 국민을 계속 분열하고 동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재인이 포퓰리스트라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이 내세운 온갖 ‘사이다’ 공약들은 현실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지적하고자 할 따름이다. 수많은 이해당사자의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어우러지는 민주주의의 본성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대통령이 그와 같은 현실적 한계를 수긍하고 국민들에게 설명하여 합의점을 찾는 대신, ‘수구 기득권’ 같은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모든 비난을 떠넘긴다면, 비로소 그때 문재인은 포퓰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지닌 집단과 개인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 공존하는 과정이다. 어떤 정책이 구현된다면 누군가는 절대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반대자의 입을 억지로 다물게 하는 대신, 그들의 불만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만 한다.

만약 문재인이 합리적 목표 설정과 달성을 위해 국민을 실망시키고 그로 인해 비판받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용 지식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럴듯한 이상만을 내세운 채 소위 ‘기득권’의 피해자 행세를 한다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그 권력 행사의 방법과 목적을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성공하기 위해 국민을 실망시켜야 한다. 자신들의 세상이 펼쳐진 양 의기양양한 지지자들을 진정시키고,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국민을 설득해나가야 한다. 그와 같이 성숙한 민주적 정치 행보를 보일 때, 더불어민주당 정권은 참여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7.05.14 20:54:02 수정 : 2017.05.14 20:57:27

2017-05-10

중식이밴드 정중식 씨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한 비판

일러두기) 이것은 2016년 12월, 중식이밴드의 정중식 씨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에 대한 반박문이다. 나는 2016년 12월 10일 트위터에 트윗 타래를 올렸고, 그 내용을 지금 갈무리하여 블로그에 적어둔다.



정중식 씨가 자신의 페북 포스트를 비공개로 돌린 모양이다. 꼭 지적해야 할 내용이 있었는데. 기억에 더듬어 말해보자. 그는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남자도 편해지도록 만들어준다'고, 어디서 잘못 읽고 체한 상태다. 전혀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은 남자를 '편해지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가부장주의적 성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이다. 어떤 남자들, 아니 실은 많은 남자들이 가부장제의 성역할을 사실은 좋아하고 즐긴다. 다른 남자들에게 지배당하지만, 여자를 하대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가부장제가 수천년간 이어저온 이유다. 가부장제가 실은 남자들 전반에게 해로우면 그게 수천년이나 이어져 왔겠는가? 여자들 전부를 노예화함으로써 피지배층인 남자들에게 제공하는 가부장제가 양심 없는 남자들에게 '불편할'리가 없다.

페미니즘은 '여자도 돈벌어오고 집 사오고 남자인 나는 편해지고 ㅋㅋ'가 아니다. 여자는 원래부터 돈을 벌어온다. 다만 차별당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버는 돈은 60%다. 여자들은 같은 일을 하고 돈 더 받아야 하고, 남자는 집안일해야 한다.

정중식 씨의 사례를 보면, '페미니즘은 남자들에게도 이익이다' 같은 식의 설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 남자들은 별로 손해도 안 봤으면서 자신에게 뭔가 단물(사근사근하게 설득해주는 예쁜 페미녀?)이 돌아오지 않으면 즉각 반발한다.

그럼 대체 왜 남자가 페미니즘을 옹호해야 하나? '남자'인 내게 손해인데도? 맞다.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 안주해온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은 분명 손해다. 하지만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별받는 동료 인류에 대한 인간적 의무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면 잠재적 연애 대상이 많아지니까', '진정한 페미니스트 여성은 월 200도 못버는 인디밴드 나님에게 공짜 섹스를 배풀어줄테니까' 이런 거 아니다. 그냥 옳은 일이니까 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여성차별에 대한 반대니까.

월 200도 못 버는 남자의 성매매를 옹호하는 정중식 같은 남자들은, 그 남자들을 위해 빚으로 옭아매인 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도외시함으로써, 가부장제의 일부로 기꺼이 복무한다.

그래놓고 휴머니즘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여자'를 '사람'의 범주에서 뺀다는 뜻이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정중식 씨 당신은 방금 그렇게 말해놓고, 욕 좀 먹으니까 페이스북 게시물을 비공개로 돌렸다. 당신은 성차별주의자 이전에 인간차별주의자다.

페미니즘 책 읽지 마라. 거기서 어설프게 한 두 문장 주워섬기면서 '야 여자도 같은 권리가 있으니까 같은 의무를 짊어져라' 같은 개소리 내뱉는 남자들 정말 보기 흉하다. 여자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지도 않는 자들이 왜 '페미니즘'을 공부해?

'여자는 남자보다 힘이 약하고 남자들처럼 야근을 못하고 그래서 유리천장이 생겼고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이런 헛소리 늘어놓을 거면 페미니즘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해롭다. 그럼 힘 약한 남자한테는 임금차별 해도 정당한가?

정중식은 결국 여자를 동등한 '사람'의 범주에서 배제하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을 어설프게 흡수한 후, 자신들의 가부장적 세계관에 맞도록 억지로 끼워넣는다. 여성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페미니즘 공부', 걍 하지 마라.

남자가 그대로인 채로 페미니즘 세상이 오면 '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해진다. 당연한 거 아닌가? 페미니즘은 새로운 남성성의 개발을 요구하며, 아직 그 길은 개척되지 않았다. 남자들 '편해지자'는 게 아니라, 남자를 '바꾸자'고 하는 것이다.

성차별이 해소, 혹은 최대한 완화된 세상이 오면, '양심적인 남자들'의 '양심'은 편해진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의 육체는 지금보다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농담'도 못하고, '터치'도 못하고, '그랩'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벌어와야 한다.

페미니즘은 '그러니까', '편해지니까' 동의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여자들도 오픈리 페미니스트가 되면 삶이 피곤해진다. 어떻게 남자가 '편해짐' 하나? 염치가 없나? 남자는 여자보다 몇 배로 더 불편해질 것이며,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옳으니까.

옳으니까 옳은 일을 한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배웠건 못 배웠건. 나는 가난하고 못 배웠으니까 천박해도 된다고 말하는 정중식 씨는 '남자 망신' 그만 시키고, 페미니즘 공부도 그만두고,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당연한 진리부터 인정하기 바란다. -끝-

2017-05-09

[북리뷰] 음모론자의 거짓말이 역사를 뒤튼다

프라하의 묘지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열린책들·각권 1만3800원

책날개에 적혀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 따르면, 『프라하의 묘지』의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다. 1905년 출간된 후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폭발시킨 괴문서,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용한 사상 최악의 위조문서인 '시온 의정서'를 써낸 장본인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이 책에서 '시온 의정서'의 제목은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으로 번역되었다).

실제로 '시온 의정서'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저자를 가상의 인물로 그려내는 이 소설이 성립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음모론, 거짓 문서, 가짜 지식을 수집하며 즐기는 '음모론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만년의 지식과 에너지를 총집결하여 만들어낸 소설이 바로 『프라하의 묘지』인 것이다.

에코가 작품 속에서 지적하는 바, 음모론자는 음모론의 대상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음모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모론에 스스로 현혹되어 증오심을 키워나간다. 작품 속 주인공 시모니니가 겪은 일이 바로 그와 같다. 그는 유대인을 목표로 한 음모론을 써내려가면서 유대인을 혐오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유대인들의 음모를 아주 그럴싸하게 엮어 낸 그 경험은 내 인생의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소년기와 청년기에 내가 유대인에 대해서 품었던 그 혐오감은 (뭐랄까?) 한낱 관념과 같은 것이었고 할아버지가 주입하신 교리문답의 판에 박은 말들처럼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마녀 집회를 닮은 그 심야 회동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나자 비로소 내 관념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았으며, 유대인의 신의 없음에 대한 나의 원한, 나의 앙심은 추상적인 관념에서 억누르길 없는 격렬한 감정으로 변했다."(372쪽)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텍스트를 써낸 인물을 제시하면서 그의 내면을 서술하는 것은, 반유대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혐오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쏟아내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점을 고려한 것인지, 에코는 달라 피콜라 신부라는 또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다. 시모네 시모니니와 달라 피콜라는 일종의 교환 일기를 쓰며 어떤 한 사건의 실체로 다가간다. 소설은 그 두 사람이 남긴 텍스트를 읽고 해석해주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렇게 모든 등장인물에게 거리를 두고 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히 설계된 플롯 속에서, 주세페 가리발디부터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까지 유럽 근현대사의 중요 인물과 사건들이 얽히고 설켜드는 것이다.

'시온 의정서'는 1921년에 위조문서임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반유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혹은 재미삼아 음모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런 거짓들이 때로는 진실을 '창조'해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다. 음모론은 역겨운 조작이고 조롱당해야 한다. 에코가 "작가 후기 또는 학술적 사족"으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시모네 시모니니는 콜라주 기법의 산물이고, 따라서 소설 속에서 그가 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일들은 실제로 여러 사람에 의해서 행해진 것들이다. 하지만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시모네 시모니니조차 어떤 점에서는 실제로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내친김에 마저 말하자면, 그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760쪽)

2017.05.09ㅣ주간경향 1225호

2017-05-02

신해철, 김영란, 안철수

2017년 5월 9일 치러질 제19대 대선에서 기호 3번 안철수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 세상 만사에 의견 밝히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지 10년도 넘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누구를 찍겠다고 선언해본 적이 없다. 시인 김수영이 "엔카운터識"에서 했던 표현을 빌자면, "야한 선언은 안해도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의 구절처럼, "어제하고는 틀려졌"고, "틀려졌다는 것을 알았"으며, "틀려져야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당신한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는 '야한 선언'을 한다. 안철수를 찍겠다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그 이유는 세 사람의 이름과 이어진다. 신해철, 김영란, 안철수.


1. 신해철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뜰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그 신해철이 그렇게 열심히 지지했던 민주당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약칭 의료분쟁조정법), 일명 '신해철법'의 통과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법안이 표류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발의되었다. 전자는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 후자는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세부적인 차이가 있지만 골자는 같다. 사망이나 중장애 등 중대한 피해 발생시,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인의 동의 없이도 조정 절차가 개시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수술의 경우 마취된 상태로 본인의 몸을 맡겨야 하고,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없으며, 상대방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의료사고 발생시에도 재판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던 의료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조정을 통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주는 법이다. 반대로 의사들은 그러한 조정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15일 내에 이의를 제기하면 된다. 법으로 강제되는 것은 조정절차의 '개시'일 뿐 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고, 더불어민주당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법안 발의를 해놓고는 상임위 법안소위에 안건을 상정하지도 않았다. 결국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는데 그때 고인의 유족 및 친지들이 안철수 의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상황에서, 안철수는 이름만 걸고 엉덩이를 빼는 대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틀만에 신해철법이 법사위에서 통과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안철수는 전국의사총연합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바로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새누리당도 더불어민주당도 신해철법을 발의만 하고 내버려뒀던 것이다.

2016년 2월 12일, 4월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다. 의사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철수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기로 하고 옳은 일을 했다. 그러자 스포트라이트가 안철수에게만 쏠리는 것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었던 거대 여당과 야당의 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의석을 지켰고 국민의당은 모든 정치평론가들의 예상과 여론조사를 뒤엎고 40석에 가까운 제3당이 되었다. 그리고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여 신해철법이 통과된 것이다. 2016년 5월 19일의 일이었다.

이 사례는 대단히 중요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문화적 프로파간다가 필요할 때마다 신해철의 음악과 발언 등을 많이도 이용해왔다. 하지만 정작 그의 유족들을 위해 결정적인 노력을 한 사람은 안철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어떤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은 왜 신해철의 유족이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에게 "그대에게"와 "민물장어의 꿈"을 사용하도록 허락했는지 의아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꼭 필요할 때, 예상되는 불이익을 무릅쓰고, 어려운 이들을 도왔기 때문이다.

신해철법의 통과 과정이 증명하고 있다. 안철수는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필요하다면 손해를 봐야 한다. 그 손해를 뛰어넘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좋지만, 얻지 못하더라도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지만, 큰 책임을 지고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도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나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정치적 손해를 무릅쓸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말로만, 선량한 이미지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정치적 이력서를 가진 사람 말이다.


2. 김영란

일단 그 법의 이름을 '김영란법'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 점부터 확실히 해두고 싶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약칭은 "청탁금지법"이지 '김영란법'이 아니다. 청탁금지법의 역사는 안철수의 정치 이력과도 거의 포개진다. 이 대목은 이미 잘 정리된 기사를 인용해보자.

안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8월 김영란법과 관련한 정부안이 제출됐을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회정의'를 강조하며 "원안 통과"를 주장했다.

당시 안 전 대표는 같은해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뒤 독자세력 구축에 나서고 있던 터라 혁신 경쟁을 벌였던 김한길 대표 체제의 옛 민주당이 2014년 김영란법을 정치혁신 과제로 선정‧발표하는 데 자극을 줬다.

안 전 대표의 김영란법 소신은 옛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연합으로 거듭난 이후 의원총회 등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3월31일 새정치연합 창당 후 처음으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영란법을 이번 4월 국회에서 통과해야 한다"며 "원래 취지대로, 많은 국민이 바라는 대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해 4월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도 김영란법 처리를 요구하며 "이 법안의 통과야말로 정치권의 자기정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드리는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7·30 재보궐 선거 참패로 대표직에서 물러나 5개월여간 자숙기간을 가진 뒤 내놓은 첫 일성도 '김영란법 처리'였다.

당시 김영란법이 소관 국회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안 전 대표는 성명을 내고 "'김영란법'은 가히 '부패공화국'이라고 할 대한민국의 공직자 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강력한 반부패 법안으로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링크)

그런데 부정청탁법은 '신해철법', 즉 의료분쟁조정법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의사들의 반발만 이겨내면 그만이었던 의료분쟁조정법과 달리, 교수, 기자, 공무원, 정치인 등 너무도 많은 이들이 부정청탁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법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대단히 많고 힘도 세다.

안철수가 한 일은 여당과 야당의 책임자들을 만나 그들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2015년 2월 26일, 안철수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차례로 만나, 부정청탁법을 다음 본회의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설득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한 것이다. 당시는 국민의당을 창당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대립 구도를 넘어, 양자를 오가며 합의점을 찾아내고 옳은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부정청탁법을 좌초시키면서 생색내는 건 너무도 쉽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이 서로를 탓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그러면 국민들은 속이 터지겠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저놈들 때문에 그랬다'면서 남탓만 하면 우리쪽 지지층은 고스란히 유지될 수 있을텐데. 그것이 바로 적대적 공존의 매커니즘이다.

애초에 여당과 야당이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미 '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래도 대화를 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정치인은 군인이 아니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합의점을 도출해내야 한다. 안철수는 날치기 통과도 필리버스터도 아닌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가장 많은 고양이, 아니 호랑이들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했던, 부정청탁법을 두고서 말이다.

안철수를 찍고 싶지만 문재인이나 심상정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진보적인, 혁신적인, 개혁적인 의제 가운데 많은 것들은 어쩌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될 때 더욱 잘 실현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부정청탁법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안철수의 정치 스타일은 '말이 되고 좋은 법이면 누가 발의했건 통과시킨다'이기 때문이다. 좋은 법이지만 새누리당에서 발의했으니까 안 되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더민주가 빛을 볼까봐 일부러 망쳐버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정책에 대해 제대로 토의하고 협상하여 빠르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정치권을 원한다면 현재로서는 안철수를 찍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이기건 여소야대 대통령이 된다. 우리에게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정치를 할 줄 아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던져놓고 원외투쟁을 일삼거나, 국회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날치기 통과를 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할까. 안철수는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법의 통과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입증한 바 있는, 당선 가능한 대통령 후보다.


3. 안철수

안철수가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의 출현을 반기지 않았다. '국회의원 의석수 200석으로 줄이겠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국회를 불신하지만, 그 국회에게 탄핵당한 박근혜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행정부보다는 입법부에게 더 많은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에 부합한다. 안철수는 정치 혐오에 기대어 급성장한 포퓰리스트라고 나는 판단했고, 절대 그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런 면에서, 2012년에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큰 혼란을 겪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고 그 중에서 최선을, 차선을, 차차선을, 차악을 택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때로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끌어내야 하지만 때로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안철수는 의사로 교육받은 후 프로그래머로, 또 사업가로 살아왔다. 의학은 과학이다. 생명 그 자체의 신비로움과는 별도로,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절대 명제가 있고, 명백한 오답이 존재한다. 프로그래밍은 그보다 훨씬 더 확실한 논리의 세계다. 사업은 1인1표가 아니라 1주1표의 원리로 돌아가는, 민주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일이다. 정치에 뛰어들자마자 대통령이 되었으면 안철수가 대한민국에 큰 혼란을 초래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는 금방 배웠다. 앞서 살펴본 두 사례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20대부터, 30대부터 국회의원이 되어 지금껏 기세등등한 구386들보다 안철수가 훨씬 '정치'를 '정치답게' 잘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용기, 정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 상대방과 마주앉아 대화하고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지혜를, 이미 실천적으로 입증했다. 대통령직에 요구되는 새로운 도전 과제에도 역시 잘 적응하고 대처해낼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현재 당선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후보자는 총 세 명이다. 그런데 그 중 대통령이 된 후에도 뭔가를 배워나갈 것이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안철수 뿐이다.

대한민국은 외교, 안보, 정치, 경제, 기타등등 전방위적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지자들에게 종교적인 숭배를 받고 있지만 국회 활동 실적부터가 바닥에 놓여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스스로를 '스트롱맨'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발언과 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젊은 시절 약물을 이용한 강간을 시도했다는 사실까지 자서전에 써놓은 사람을 두고 대통령의 자격을 논해야 하는 걸까. 소거법으로 생각해봐도 당선권 내에서 '찍을만한 사람'은 안철수 뿐이다. 이렇게 다시 한 번 검산을 해본 후, 나는 안철수를 찍기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이번 대선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붕괴했기 때문에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보궐선거다. 그런데 그 빈 자리에 무능한 운동권 세력이 들어선다면, 그들과 적대적 공존 관계인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홍준표가 지지율을 높이면서 벌어지고 있는, 5월 2일 현재 상황이 바로 그렇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무능한 운동권 세력의 적대적 공존, 그것은 '절대적 공존'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그 구도가 깨진다. 국민이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정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수십년에 한 번 돌아올까 말까 한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결과를 보고 싶다.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내 힘을 보태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안철수를 찍을 것이다. 내 결정을 알리고, 이 생각의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설득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양자택일 속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이 했다고 하는 말을 인용해보자.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에게는 좀 더 대담하고, 과감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지만 잘 살펴보면 안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 나는 10년 전의 여당도 두 달 전의 여당도 아닌, 미래의 여당에 한 표를 던진다.




보론

이른바 '진보 논객'이면서 왜 심상정을 찍지 않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들어올 것이다. 맞다. 나는 '진보 논객'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도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하지만 한국 진보 진영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논의 중 많은 것들에 나는 동의할 수 없고, 애석하게도 그 논의들은 심상정의 공약에 반영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싸드다. 나는 싸드를 한반도에 배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꿔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확고한 싸드 배치 찬성론자다. 당연히 싸드 비용은 미국이 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미군이 소유하고 운용하는 미군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땅에 미국의 무기가 들어오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진보 진영의 기본적인 세계관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안전과 번영의 토대다.

이것은 진보 진영의 세계관 전체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2008년 이후, 진보는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온갖 종류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제시하며 반대하는 관성에 젖어 있다. 그래서 싸드에서는 중국 영토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전자파가 나오고 그것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그 전자파는 '죽음의 전자파'여서 레이더보다 해발 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 참외밭의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드 배치를 반대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을 향해 무력 충돌을 운운하는 것은 이쪽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지만, 미 대통령 트럼프가 말도 안 되는 10억 달러를 운운하는 것만큼은 절대 참을 수 없는 주권 침해가 된다.

요컨대 반미주의, 반과학주의, 음모론주의가 오늘날의 진보 진영을 지배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하면 세계에 대해, 국제 정세에 대해, 대단히 부정확한 정보 하에 분기탱천할 뿐인 오늘날의 대한민국 진보의 모습이 나온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래도 사회적 당위의 실현을 위해 진보 정당을 지지해왔으나, 모든 대선 공약이 '복지 확대'로 수렴되고 있는 지금, 나는 진보 진영과 나의 세계관 차이를 더는 없는 척 할 수가 없다.

앞서 부정청탁법을 논의할 때 기술했다시피, 안철수가 지금까지 해온 정치적 스타일을 놓고 볼 때,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심상정의 공약 중 좋은 것들은 현실화될 수 있다. 심상정이 대통령이 된다면 안철수의 공약들을 가져다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심상정 본인과 그의 정당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이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심상정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진보 진영의 세계관과 나의 그것이 갖는 차이에 대해, 그리고 내가 왜 동의할 수 없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머지않아 (어쩌면 여러 편의) 글로 정리할 예정이다. 그렇게 내 입장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여,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의견의 차이가 조금씩 좁혀질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