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31

E. H. 카의 글쓰기 방법론

비전문가들--말하자면 학계에 있지 않은 분들 혹은 다른 학문분야에 있는 분들--은 이따금 나에게 역사가는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작업하느냐고 묻는다. 역사가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가지 단계나 기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준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나서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 쑤셔--반드시 처음부터가 아니더라도, 어디부터이든 상관없이--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취소된다. 읽기는 쓰기에 의해서 인도되고 지시되며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역사가들은 아마도, 마치 어떤 사람이 장기판과 말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장기를 두듯이, 펜이나 종이나 타이프 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준비단계의 글쓰기를 모두 머릿속에서 할 것이다: 이는 내가 부러워하는, 하지만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역사가에게는 경제학자가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라고 부르는 그 두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며, 실제로 그 두 과정은 단일한 과정의 부분들이라고 확신한다. 만일 그것들을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가지 이단론들 중의 어느 하나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은 의미나 중요성을 무시하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게 될 것이며,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부류의 글쓰기를 치장하려고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E. H. 카,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서울: 까치, 2015), 개역판, 44-45쪽.

이 글에서 E. H. 카의 목적은 '사실'의 수집에 집착하는 랑케 식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맥락에 이미 식상해버린 오늘날의 독자, 즉 나는, 순수하게 '작업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다.

자료를 한도 끝도 없이 모으고, 참고문헌 목록을 영원히 갱신하고, 스스로의 논리를 (완성을 위한 텍스트가 아닌 간단한 메모나 그조차도 없는 망상의 형태로) 반박하고 또 반박하는 등의 행동은, 심지어 석사 논문같은 간단한 관문을 통과할 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다,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기려는 게 아니라면,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 E. H. 카의 말처럼 '좀이 쑤시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말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상식적이다.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최초의 구상안에서 빗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자료들을 다 모은 후, 읽고, 일일히 손으로 베낀 후, 그것들을 편집하고 원고로 쓰면서 다시 베껴썼다는 토니 주트의 글쓰기 방법론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 이미 완성된 글을 그저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 E. H. 카는 짐짓 겸손한 태도로 본인이 그러한 경우에 속하지 않음을 밝히며, 그 과정에서 '가위와 풀'(오늘날의 표현대로 하자면 '복붙')로 대변되는 랑케의 역사관에 반대했던 것이다.

2017-05-30

문재인 정권, 싸드 불장난을 멈춰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싸드 발사대가 두 대만 들어와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국방부로부터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네 기가 더 있었기에,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했다고 윤영찬 홍보수석비서관이 발표했다. 5월 30일, 오늘 가장 큰 뉴스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 이것은 언론플레이다. 그것도 아주 수준이 낮고 질이 나쁜 언론플레이다. 외교 안보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로 이런 불장난을 하는 문재인 정권을 나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이렇게 대놓고 집권한지 한 달도 안 돼서 언론플레이부터 하는 청와대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국방부(와 한통속이 된 미국)'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고 여론몰이 하려는 의도는 알겠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 서서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청문회 정국에서 여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과 그의 주변 인사들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 유포 언론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그것만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백번 양보해서 싸드 발사대가 총 6기 들어왔었다는 것을 청와대가 제대로 보고받지 못했다고 쳐보자. 그걸 홍보수석을 통해 언론에 대고 발표하는 것은 과연 '대통령'으로서, '청와대'로서, 합당한 행동인가?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싸드 발사대가 총 6기 들어와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2017년 4월 28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28일 군관계자는 "현재 사드의 발사대 4기는 경북 칠곡 왜관의 캠프 캐럴에 보관중이며 성주골프장의 시설공사를 마치는 하반기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링크) 그보다 이틀 전에 나온 다른 뉴스. "이동식 발사대는 요격미사일을 쏘는 발사대로 지난달 6일 사드 장비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에 도착했고, 보통 사드 1개 포대는 6기의 발사대를 갖춥니다."(링크)

정리하자면 첫째, 싸드 발사대가 한반도에 총 여섯 기 들어와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둘째, 설령 그 보도를 접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싸드라는 것이 어떤 시스템인지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1개 포대가 배치된 이상 6기의 발사대가 뒤따라왔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치 '장전된 리볼버 한 정'에는 실탄 여섯 발이 들어있으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말이다.

문재인의 청와대는 바로 이런 차원에서 트집을 잡고 있는 셈이다. 보고가 누락되었다 한들 '아니 어떻게 발사대 네 기가 몰래 들어와 있을수가?'라고 역정을 낸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조직과 인력들이라면 설령 저런 착오가 있었다 한들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것이다. 혼동한 사람이 쪽팔리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화를 낸다면 이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싸드 발사대 네 기가 한반도에 몰래 들어와 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가짜뉴스'다. 문제는 그 '가짜뉴스'의 출처가 청와대라는 것이다. 싸드는 현재 외교 국방에 있어서 가장 첨예한 사안이다. 그것을 두고 청와대에서 '가짜뉴스'를 유포한다? 그것도 한낱 국내 정치에서 팻감으로 쓰기 위해? 국방부 길들이기 하려고? 국방부를 길들이려면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인사권을 활용할 일이지, 이렇게 동맹국과의 신의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수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문재인과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외교란 무엇이고, 안보란 무엇이며, 국방이란 또 대체 무엇인가?

나는 문재인에게 한 표를 던지지 않은 60%의 국민의 일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서 존중한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과 청와대 역시 국민들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한 외교 안보 이슈를 국내 정치용, 청문회 국면 돌파용, 국방부 길들이기용 카드로 휘두르지 않는 것은 그러한 국민 존중의 첫 걸음이다. 문재인 정권은 안보 불장난을 멈추고 수권세력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17-05-23

[북리뷰] 해방 전후사의 진보적 재인식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주대환·1만7000원·나무나무

진보진영의 이론가 주대환. 상주 주씨인 그는 종친회 모임을 따라가서 집성촌의 묘역에 있는 한 비문을 읽었다. 부부가 함께 묻힌 묘의 비문은 그들의 삶을 "당당하고 정직하고 근면 성실하게 자식을 위해서라면 뼈가 부서지고 살가죽이 갈라져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바"(16쪽)쳤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깨달음을 얻었다.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며 살아온 이들의 평범한 삶을 긍정적으로 재조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이분들은 건국과 동시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으로 자기 땅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 땅을 갖게 된 자영농 부부는 이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를 만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분들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뉴레프트(new left) 대한민국 사관(史觀)입니다."(18쪽)

2008년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출간한 이후 주대환이 붙들고 있는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이다. 좌파의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것. 그 세계관의 핵심인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갱신하는 것. 대한민국의 현재를 뒤덮고 있는 불평등을 이겨내기 위한 지적 무기를, 우리의 역사에 대한 환멸과 분노가 아닌 사랑과 긍정으로부터 뽑아내는 것.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만든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는 1964년생들이 아직 50대 초반밖에 되지 않"(7쪽)은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보적 사유를 개척하는 것.

주대환은 해방 정국부터 출발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일주했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겨울까지 광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했고, 책으로 엮었다. 그렇기에 이 책,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읽고 이해하기 쉬운 말투로 차분하게 흘러간다. '진보적 세계관'에 친숙한 이들이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진보의 세계관 속에서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에 앞장서 민족 분단을 부추긴 악당이다. 하지만 1946년 6월 이승만이 '정읍 발언'으로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전,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 2월에 사실상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세우고 김일성이 그 위원장으로 취임하여 토지개혁을 단행"(333쪽)했다. 분단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북한식 토지개혁은 사실상 온 농민을 국가 소작농으로 전락시킨 반면, 진보 진영이 그토록 비난해온 유상몰수 유상분배야말로 국민의 85%를 자영농으로 만들어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도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 역사학계에서는 상식에 가깝지만 진보 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진보적 세계관에 갇힌 그들, 전대협 세대에게는, 현실 정치를 주무르는 힘이 있다. 주대환의 말을 들어보자. "문재인 씨 같은 사람들이 대표를 하고 있지만, 모두 얼굴마담일 뿐이지요.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당 내 486, 전대협 세대의 힘입니다. 말하자면 택군(擇君)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입니다."(231쪽) 정권 교체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을 되짚어볼 기회를 얻었다. 이 책은 그 비판적 고찰의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2017.05.23ㅣ주간경향 1227호

2017-05-18

문재인의 '10조 추경',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80만 일자리 만들기'를 실현하기 위해 10조 단위의 추경을 추진할 예정이다. 물론 대통령 본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5월 17일 나온 기사에 따르면, 우리는 무턱대고 '좋은 게 좋은 것이며 잘 될 것이다'라는 태도만을 취할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각종 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공직사회가 반색하고 있다. 만성적인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새 정부는 위원회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많으면 부처와 중복되는 ‘옥상옥’ 조직이 돼 관료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병률, "관료들, 새 정부 각종 위원회 신설에 ‘반색’…인사적체 해소 기대", 경향비즈, 2017년 5월 17일

이미 대선 과정에서 수없이 지적되었다. 문재인 캠프는 대체 '10조 추경'을 통해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지 구체적인 내역을 밝힌 바 없다(링크). 서서히 그 전모가 드러나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 그것이 '옥상옥' 조직이 될 우려가 큰 온갖 '위원회' 만들기에 투입된다면? 그러한 예산 편성과 집행이 '중년 공직자 배불리기'의 일환일 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

국가 전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은 늘어나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대선 토론 과정에서 지적되었다시피, 한국의 공무원 숫자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비판은 과장된 허위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만 합한 숫자인데, 다른 국가들은 관공서 비정규직을 비롯해 비영리 공공단체와 사립학교 교원, 군인까지 모두 포함한 경우가 많"(링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 숫자를 많이 늘리겠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현직 공무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많이 늘린다는 문재인의 대선 공약은 지금이라도 철저히 검증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공무원이 현재 '안정된 일자리'로서 최우선 순위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망한 나라인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의 건강한 성장이지 공무원 일자리'만'의 성장이 아니다.

2017-05-17

노무현과 진보 언론의 갈등

진보 언론에 대한 문재인 지지자들의 원성이 높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는 노무현을 무조건 매도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후에야 꼬리를 내린 비겁자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일단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진보 언론이 노무현과 대립했던 것은, 노무현과 대립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 언론은 진보 언론이기에 노무현을 비판해야 했다. 그가 재임 중, 그리고 퇴임 후에 연루되었던 가족 친지들의 뇌물 수뢰 혐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이라는 이유로 뇌물을 받았는데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보' 이전에 그냥 '언론'이 아니다.

위 표는 2006년 7월 7일 경향신문에 실린 "조·중·동의 왜곡 ‘신문발전기금’ 악의적 보도"(링크)가 출처다. 행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진보의 이상을 배신한 것은 노무현임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은 '조중동'을 비판하는 쪽에 더욱 가깝지 노무현에게 직접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는 않다.

불과 10여년 전의 사실들을 두고 '설명'이 필요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