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4

'흙수저'를 위해 소위 '암호화폐'를 규제하지 말라?

대체 어떤 악마가 '흙수저들의 자수성가를 위해 소위 '암호화폐'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희한한 논리를 개발했는지 모르겠다. 현실은 그와 정 반대다. '흙수저'를 보호하려면 소위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해야 하며, 최대한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하고, 거래에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돈은 액수가 같아도 가진 사람에 따라서 절대 같은 돈이 아니다. 가령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쪼들린 적 없이 자란 청년이 친척들로부터 넉넉하게 받아온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만든 500만원을 생각해보자. 날려먹어도 큰 상관이 없는 돈이다. 잘 사는 부모들은 심지어 자녀들한테 '투자 경험'을 안겨준다며 일부러 과하게 용돈을 주기도 한다더라. 그런 돈은 아무리 유입되어도 큰 문제가 될 건 아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열풍에 귀가 팔랑거린 빈곤계층 청년이 월세방 보증금을 빼온 500만원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 돈이 사라지면 그의 월세방도 사라진다. 주거의 질이 급감하고 삶의 질이 곤두박질친다. 더 나쁜 경우는 없는 돈 끌어모아 '가즈아~'에 동참한 경우.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았다거나, 기타등등. (회사 공금을 끌어다가 비트코인에 넣었는데 값이 안 올라서 큰일이라는 인터넷 게시물 캡쳐를 본 적도 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기록해둘만한 사안이다.)

이게 결국 돈 놓고 돈 먹기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흙수저'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하우스 입장을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 아예 부자들은 돈을 날려도 된다. 하지만 가난하면 애초에 그런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 이 정권은, 청와대는, 그리고 코인판이 계속 이렇게 규제 없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또 잔인하다. 일확천금의 꿈으로 영혼까지 끌어올려 코인판에 갖다 부은 청년들이 대체 어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지 걱정되지도 않나?

처음부터 이건 돈놀이판이었다. 그냥 웃기는 장난으로 취급되던 비트코인이 진지하게 '투자 대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랬다. 페이스북의 창업에 자신들의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여 마크 주커버그로부터 거액을 받아낸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제미니'(라틴어로 쌍둥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거래소를 만들고 거액을 투자하면서부터 엉터리 아나키즘적인 몽상은 어엿한 투기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흙수저도 윙클보스 형제처럼 '존버'할 수는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 '흙수저'들이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탕 크게 먹어서 인생 바꿀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 시달리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과 완전히 반대되는 짓이다.

대체 대한민국의 국격이 어디까지 후퇴하려고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무슨 정당한 논의인 양 언론에 오르내리고 정치인이 왈가왈부하기에 이르렀는가? 자기 돈 갖다 박아서 한탕 하건 쪽박 차건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게 마치 정당한 사회적 신분 상승의 사다리인 양 포장하지 말라는 소리다. 사회가 사회로서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마저 모두 망가져가고 있는 듯하다.

2018-01-06

〈1987〉은 여성을 배제하는 영화인가

나는 〈1987〉이 여성을 배제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586세대가 내뱉는 승리의 함성과도 같은 이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온당히 받았어야 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허구의 서사를 창작하는 일에 대한 인식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적인 현상이다.

장준환 감독과 김경찬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여성 캐릭터에 대해 내린 판단을 보다 정확히 서술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픽션을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직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시점에서만 '현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있어야 할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대신 남은 것은 '그 모든 민중'의 대변자인 연희(김태리 분)라는 '순수한 여대생' 뿐이다.

김경찬 작가와 이우정 제작자가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의 한 대목. "나머지는 실존 인물들로부터 차용했다면 연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한 인물이다." 이우정 제작자도 그러한 인물 배치를 순순히 인정한다. "당시 사건에 말리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표상이 연희였다."

요컨대 연희는 도구적 인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혹은 직·간접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남성들에게는 '시위 현장에서 마주쳤던 것도 같은 아련한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87년 6월 항쟁을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으며, 예정대로 작년 12월이 대선이었다면 '역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계속 훈계를 들었을 젊은이들에게는, 쉽사리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 요컨대 피와 살을 지닌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아닌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희는 좋은 캐릭터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내면으로부터의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폭발할 때, 배우 김태리의 단정한 용모와 선을 넘지 않는 연기 톤이 조화를 이루어 기대 이상의 설득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문제는 연희가 '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대학 새내기인 그는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연희가 할 일은 그저 눈을 뜨고 거리에 나가 버스에 올라 깃발을 휘두르는 것 뿐이다.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세상을 낳기 위해 무염시태(無染始胎)의 존재로 설정된 연희 말고는, 유의미한 여성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씨네21〉 인터뷰를 통해 확인하고 나니, 나도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6월 시위 장면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선창을 하는 목소리는 배우 문소리씨다. 어떤 역할이든 캐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배역이 없어서 고민하다 결국 목소리만 썼다. <1987>은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 조금 더 조화롭게 여성 캐릭터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어서 김정남의 배역을 여성으로 바꿔볼까 생각까지 했었는데 우리는 실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이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

이 대답은 실로 문제적이다. 감독은 "팩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드라마적으로 윤택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면서, "한병용 같은 경우 실제로 편지를 빼내오고 전달한 교도관은 두분이었는데 두 인물을 하나로 합쳤다"라고까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준환 감독과 제작진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실존인물 두 명을 하나로 합치는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 수많은 운동권 여성 캐릭터 한 두 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교회건 절이건 성당이건 운동권이건, 어떠한 신념에 기반한 조직이 작동하려면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이들 중 상당수, 때로는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 뿐이라는 것을.

따라서 '공식 기록에 충실하려 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애초에 그 공식 기록으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을 끌어안지 않겠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과 김경찬 작가, 이우정 제작자는 그러한 효과를 알면서도 선택을 했다. 현실 속에 존재했던 두 사람의 교도관을 하나로 합칠 때에는 '극적 재미'를 앞세우던 그들이, 마찬가지로 현실 속에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내지는 않으면서 그 핑계로 '팩트'를 들이댄 것이다.

역사의 악역은 거의 모두 남자다. 왜냐하면 그들이 권력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 악과 맞서 싸우는 일에는 남녀가 없다. 따라서 역사의 선한 역할에는 남성과 여성이 고루 포진해야 한다. 문제는 그 싸움이 승리로 기록되건 패배로 기록되건, 역시 기록하는 자는 남성적인 시각을 전제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혹은 숫제 의도적으로 지워지기도 한다. 초기 기독교의 정착 과정에서 예수가 부활한 빈 무덤을 처음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 예수를 따르던 그 수많은 여인들의 이름은 왜 남아있지 않은지, 대신 우리가 아는 것은 12명의 남자 제자들 뿐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라. 남자들끼리 뭉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여성들의 힘을, 마치 1단 로켓처럼 소진시켜버린 후 떨궈버리기 일쑤였다.

〈1987〉의 제작진이 확인한 '역사적 사실'에 여성의 이름이 부족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지금 내가 설명하고 있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건 조금만 생각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너무도 뻔한 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해도 어차피 선택하는 과정에서 서사화가 이루어지지만, 특히 픽션을 창작하는 중이었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의미에서건 (왕년의?) '운동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1987〉에는 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야 했다. 선량한 교도관의 수더분한 누이, 시대적 각성을 하는 주인공과 덩달아 운동권 서클에 들어가는 날라리 친구 같은 기능적 인물 말고, 그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유의미한 입체적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를 만들었어야 한다. '팩트'로 기록되지 않은 '진실'을 밝히는 것, 그게 바로 픽션의 임무 아닌가?

역사는 전두환, 노태우, 박처원, 박종철, 이한열, 이부영, 김정남, 함세웅 등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도 매일 밥을 먹었고 세탁된 옷을 입었다. 그러한 돌봄노동은 자연스럽게 운동권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문건을 쓰고 몰래 인쇄하고 뿌리며 연락을 주고받던 것도 여성들이었고, 심지어 남자 운동권들의 자기 서사화와 달리, 여자들이야말로 용맹하게 돌을 던지고 전경들에게 얻어맞아가며 싸웠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런 기록의 부재를 〈1987〉의 제작진은 '팩트'로 받아들여, 영화로 만들었다.

이런 이중적 기준 앞에 나는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 자들을 픽션의 세계에서마저 지워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길게 말을 이어봐야 중언부언일 수밖에 없으니 시 한 편을 인용하면서 끝내도록 하자. 우리는 역사를 이런 식으로 기억해서도 안 되며, 이런 식으로 서사화해서도 안 된다.


어떤 책을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펠리페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이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2017-12-31

독서 목록(2017)

1. 20170103 - 파벨 차졸린, 정건 옮김, 『Enter The Kettelbell!』(경기도 고양: 대성의학사, 2011)
2. 20170109 - 마이크 데이비스, 정병선 옮김,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8)
3. 20170114 - 김태경, 『월급쟁이 경매 전략』(서울: 황금부엉이, 2017)
4. 20170122 - 홍성욱 서문, 윤경희 해설,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 인덱스』(서울: 프로파간다, 2017)
5. 20170129 - 가와바타 야스나리, 장경룡 옮김, 『설국』(서울: 문예출판사, 1999)
6. 20170202 - 새뮤얼 헌팅턴, 형선호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서울: 김영사, 2004)
7. 20170209 - 랜들 먼로,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위험한 과학책』(서울: 시공사, 2015)
8. 20170211 - 다치바나 다카시, 와이다 준이치 사진, 박성관 옮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9. 20170211 - 버튼 홈스, 이진석 옮김, 『1901년 서울을 걷다』(서울: 푸른길, 2012)
10. 20170212 -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지식의 단련법』(서울: 청어람미디어, 2009)
11. 20170215 - 새뮤얼 헌팅턴, 소순창·김찬동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서울: 김영사, 2001)
12. 20170216 - 대니얼 W. 드레즈너, 유지연 옮김, 『국제정치 이론과 좀비』(경기도 파주: 어젠다, 2013)
13. 20170217 - 다치바나 다카시, 박연정 옮김, 『청춘표류』(서울: 예문, 2005)
14. 20170219 - 다가와 히데오 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양선하 옮김, 『생물이 사라진 섬』(서울: 비룡소, 2002)
15. 20170219 - 이로, 『일본 돈가스 만필집』(서울: 문자그대로 프레스(유어마인드), 2017)
16. 20170302 - 김윤식,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서울: 소명출판, 2012)
17. 20170316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8. 20170318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로재나』(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19. 20170324 - 로버트 맥키, 고영범·이승민 옮김, 『STORY』(서울: 민음인, 2011), 구판제목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0. 20170331 - 도리스 컨스 굿윈, 이수연 옮김, 『권력의 조건』(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3), 개정1판.
21. 20170403 - 전봉관, 『황금광시대』(서울: 살림출판사, 2005)
22. 20170405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23. 20170407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6일』(서울: 오픈하우스, 2016)
24. 20170408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마지막 날들』(서울: 오픈하우스, 2017)
25. 20170409 - 미치가미 히사시, 윤현희 옮김,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서울: 중앙books, 2016)
26. 20170414 - 기울리아 엔더스, 질 엔더스 그림, 『매력적인 장腸 여행』(서울: 와이즈베리, 2014)
27.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8.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9. 20170505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30. 20170507 -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서울: 황금가지, 2010), 개정판
31. 20170512 - 얀 베르너 뮐러, 노시내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서울: 마티, 2017)
32. 20170512 - 폴 웨이드, 정미화 옮김, 『죄수 운동법』(서울: 비타북스, 2017)
33. 20170520 - 데릭 커크 킴, 김낙호 옮김, 『다르면서 같은』(서울: 길찾기, 2005)
34. 20170521 - 전정식, 박정연 옮김, 『피부색깔=꿀색』(경기도 과천: 길찾기, 2013), 개정 증보판
35. 20170526 -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서울: 민음사, 2009)
36. 20170530 - W. G. 제발트, 이경진 옮김, 『공중전과 문학』(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37. 20170607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38. 20170614 - 정신대연구회·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서울: 한울, 1995)
39. 20170614 - 한국정신대연구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서울: 한울, 2003)
40. 20170618 - 차무진, 『해인』(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41. 20170619 - 윤소영,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서울: 공감, 2016)
42. 20170619 - 헬무트 콜, 김주일 옮김,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서울: 해냄, 1998)
43. 20170620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44. 20170623 - 이승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서울: 천년의상상, 2014)
45. 20170625 - 홍명희, 『임꺽정 1 봉단편』(경기도 파주: 사계절, 2008)
46. 20170702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47. 20170705 - 안병직 번역·해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서울: 이숲, 2013)
48. 20170705 - 모리카와 마치코, 김정성 옮김,『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서울: 아름다운사람들, 2005), 전자책(교보문고)
49. 20170709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경기도 파주: 살림, 2011)
50. 20170710 - 권오상, 『엔지니어 히어로즈』(서울: 청어람미디어, 2016)
51. 20170720 - 류샤오보, 김지은 옮김,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서울: 지식갤러리, 2011)
52. 20170722 - 김정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서울: 책과함께, 2015)
53. 20170726 -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서울: 민음사, 2014)
54. 20170802 - 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서울: 푸른역사, 2005)
55. 20170802 -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옮김, 『게공선』(서울: 문파랑, 2014), 개정판.
56. 20170807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1』(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7. 20170809 - 조엔 그린블라트, 안진환 옮김,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책』(서울: 시공사, 2006)
58. 20170811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2』(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9. 20170812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경기도 파주: 살림, 2014)
60. 20170813 - 시쿠 다쓰키, 이수미 옮김, 『조작된 시간』(서울: 몽실북스, 2017)
61.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1』(서울: 소명출판, 2004)
62.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2』(서울: 소명출판, 2004)
63.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3』(서울: 소명출판, 2004)
64. 20170814 -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서울: 뿌리와이파리, 2017)
65. 20170815 - 이해조, 박진영 편, 『쌍옥적』(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6), 미스테리아 7호 부록
66. 20170817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4』(서울: 소명출판, 2004)
67. 20170818 - 폴 크루그먼, 이윤 역해,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서울: 창해, 2017)
68. 20170820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상)』(서울: 황금가지, 2004)
69. 20170821 - 김민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서울: 위즈덤하우스, 2017)
70. 20170827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중)』(서울: 황금가지, 2004)
71. 20170828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하)』(서울: 황금가지, 2004)
72. 2017083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명진 옮김, 『평화의 경제적 결과』(서울: 부글, 2016)
73. 20170830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현규 옮김, 『젊은 베르터의 고통』(서울: 을유문화사, 2010)
74. 20170902 - 랜들 먼로, 조은영 옮김,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서울: 시공사, 2017)
75. 20170903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7)
76. 20170903 - 남세희, 『통증홈트 목·어깨』(서울: 중앙북스, 2017)
77. 20170905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1』(서울: 민음사, 2012)
78. 20170907 - 윤재수,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서울: 길벗, 2017), 4차개정판
79. 20170909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 다윈 쿡 그림,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서울: 시공사, 2014)
80. 20170910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2』(서울: 민음사, 2012)
81. 20170914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서울: 민음사, 2010)
82. 20170918 - 알렉산더 클루게, 이호성 옮김, 『이력서들』(서울: 을유문화사, 2012)
83. 20170919 - 프랑크 베데킨트, 김미란 옮김, 『눈뜨는 봄』(서울: 지만지, 2008)
84. 20170919 -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Y의 비극』(서울: 시공사, 2013)
85. 20170922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86.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7.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8. 20170926 -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7), 전자책(리디북스)
89. 20171005 - 마츠오 바쇼오, 유옥희 옮김,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서울: 민음사, 1998)
90. 20171008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1. 20171014 - 데이비드 매콜리 글·그림, 조동섭 옮김, 『미스터리 모텔』(서울: 마루벌, 2009)
92. 20171015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3. 20171015 - J. D. 밴스, 김보람 옮김, 『힐빌리의 노래』(서울: 흐름출판, 2017), 전자책(리디북스)
94. 20171015 - 귄터 그라스, 이수은 옮김, 『라스트 댄스』(서울: 민음사, 2004)
95. 20171017 - 쥘리 다셰 글, 마드무아젤 카롤린 그림, 앙혜진 옮김,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서울: 이숲, 2017)
96. 20171018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7. 20171020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8. 20171022 - 이언 뱅크스, 김상훈 옮김, 『말벌공장』(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5)
99. 20171023 - 윌리엄 마치, 정탄 옮김, 『배드 시드』(서울: 책세상, 2009)
100. 20171023 -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장인선 옮김, 『보이 A』(경기도 파주: 이레, 2009)
101. 20171024 - 허버트 조지 웰스, 한동훈 옮김, 『타임머신』(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전자책(리디북스)
102. 20171026 -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2)
103. 20171026 - 애거서 크리스티, 권도희 옮김, 『비뚤어진 집』(서울: 황금가지, 2013)
104. 20171028 - 남세희, 『통증홈트 허리』(서울: 중앙북스, 2017)
105. 20171103 - 박성식, 『공간의 가치』(경기도 용인시: 유룩출판, 2016), 제2판
106. 20171110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7. 20171111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8. 20171112 - 에바 가브리엘손, 마리프랑수아즈 콜롱바니, 황가한 옮김,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서울: 뿔, 2011)
109. 20171113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오리엔트 특급 살인』(서울: 황금가지, 2013)
110. 20171115 - 마강래, 『지방도시 살생부』(경기도 고양: 개마고원, 2017)
111. 20171116 - 라종일,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경기도 파주: 창비, 2013)
112. 20171118 -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충남 홍성군: 느티나무책방, 2017)
113. 20171129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114. 20171201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서울: 민음사, 2016)
115. 20171201 -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1~2 합본)』, (서울: 민음사, 2013), 전자책(리디북스)
116. 20171206 - 신기욱, 『슈퍼피셜 코리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117. 20171209 - 폴 비티, 이나경 옮김, 『배반』(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18. 20171209 -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경기도 파주: 한울, 1991)
119. 20171215 - 테어도르 카진스키, 조병준 옮김, 『산업사회와 그 미래』(서울: 박영률출판사, 2006), 개정판.
120. 20171217 - 제인 오스틴, 김정아 옮김, 『오만과 편견』(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21. 20171230 - 토머스 모어, 류경희 옮김, 『유토피아』(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전자책(리디북스)

올해의 영상물: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 트레일러


지난 8월 9일 새벽, 웹 스트리밍 서비스 아프리카의 BJ인 김윤태는 유튜브 스트리머 갓건배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며, 갓건배의 집에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컨텐츠'를 유포했다. 실시간으로 약 7000여명 가까운 사람이 영상을 시청하는 가운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에만 총 3차례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졸라 죽이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증언(링크)까지 나온 가운데, 이 사건은 놀랍게도 살해협박이 아니라 '과도한 남성 혐오, 이대로 좋은가', 혹은 '인터넷 스트리머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의 표출은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인가' 따위의 주제로 소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고속인터넷의 보급과 거의 동시에 3cf를 만드는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벌였고 지금껏 꾸준히 인터넷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디 록 음악가, 시인 겸 작사가, 인터넷 유명인"(위키백과) 권용만은, 갓건배를 소위 '저격'한다는 170여개의 유튜브 영상을 전부 시청한 후, 그것을 모으고 편집하여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이다. 이 영상은 올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상물 중 가장 문제적이다.

갓건배는 게임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며 게임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남성 유저들의 여성 유저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 비하 표현 등을 '미러링'해온 유튜브 스트리머(였)다. 그를 두고 남자들이 쏟아내는 온갖 증오와 욕설의 표현들로 1시간 44분 31초를 꽉 채워넣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 몇 가지 나온다. 첫째,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갓건배 저격'에 나선 것은 대부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의 어린 남자들이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아들자식 농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둘째, 마찬가지로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그게 꼭 애들만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높은 연령대의 남자들은 어떤 '남자 역할'을 제시하고 수행하는 중인가? 셋째, 대체 이 수많은 '초딩'들의 교육 환경과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거나, 구성되어 있지 못하거나, 망가지고 있는 중인가?

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발생한 논란은 추가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안겨준다. 이 '초딩'들은 스스로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것을 편집하여 별개의 영상물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미성년자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전제하고 그들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은 모두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등장인물들을 '보호'하려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을 비판하거나 보지 말자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한 '보호'는, 미성년자의 인격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려 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육과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 특정 여성에 대한, 그리고 여성 일반에 대한 인터넷 상의 언어 폭력이 단지 말로만 오가는 차원을 넘어 현실의 폭력으로 돌변하던 바로 그 순간과 이후의 반응으로 인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 폭력을 휘두르겠다던 남자 BJ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라고 치부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갓건배'는 언론의 조명을 받더니 소위 '남성혐오'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도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에게 다종다양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증오의 표현이 넘쳐난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그 수많은 폭력은 어디에 있는가?

한 해의 마지막에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꼭 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왕 본다면 1시간 44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꾹 참으며 보기 바란다. 특히 남자라면 말이다.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면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인터넷 속의 언어 폭력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의 민낯이며,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다.

2017-12-30

올해의 책 다섯 권

2017년에 발행되어 2017년에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다섯 권을 꼽아보았다.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김용언의 『문학소녀』는 전혜린이라는 문제적 작가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문학계의 남근주의, 여성 작가에 대한 멸시, 여성 작가들이 주로 종사한다고 여겨지는 산문(에세이)에 대한 저평가 등을 다룬다. 특히 전혜린은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일본의 프레임을 거치지 않고 독일어 문학을 접하고 향유하며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눈으로 골라낸 책을 공들여 한국어로 옮김으로써,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어떤 감수성, 한 남성 평론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전혜린을 (재)소개하는 대목이 책의 절정을 이룬다. 모질게 저평가당하고 매도당해온 작가/번역가, 그를 대상으로 한 국문학계의 연구 성과, 그리고 페미니즘에 목마른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인 김시덕은 일본 유학 시절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異征伐記の世界)』라는 책을 썼다. 그 작업을 통해 40세 이하 고문헌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학술상인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수상하였는데, 해당 학술상을 외국인이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귀국한 후 『그들이 본 임진왜란』(201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등으로 넓은 독자층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책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는 2016년 말 『일본의 대외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전쟁의 문헌학』은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동국통감』과 『신간동국통감』, 『징비록』과 『(조선) 징비록』 등 고문헌의 이름과 내용과 전래 과정이 오가는 가운데 독자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에스콰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시덕이 "김시덕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타자에 모르면서 모르는 상태로 이기고 싶어한다는 것.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주대환은 선거보다 정책을, 정치보다 세계관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직을 역임하던 시절, 기존 진보 진영의 관성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해왔다(고 한다). 그 민주노동당이 10여년의 세월동안 풍비박산나고 있던 과정에서, 주대환은 한국의 정치의 이면에 깔린 세계관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그 최초의 고민이 담긴 책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2008)였고,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그 문제의식에 구체적인 살을 붙이고 간명한 레토릭까지 추가한 작업이다. 그는 진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는 소위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계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해방된 조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판타지를 유지하려다보니 북한 정권의 폭압적 인권 탄압에 눈을 감고, 현실성 없는 대외 정책만을 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방에'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나이만 먹은 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주대환은 거침없이 폭로하며, 새로운 진보를 위한 대안 서사를 제시한다. 문제는 그 서사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무협지적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 '사이다'에 중독되어 '적폐' 사냥에 맛을 들인 오늘날의 대중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자타공인 '지한파'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마크 리퍼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얼굴에 칼을 맞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정말 알아야 할 지한파 미국인을 딱 한 사람 꼽으라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이름을 답으로 내놓아야 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이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일독을 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고, 또, 예상 가능하다시피 국내 독서계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당하고 매장당한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비단 '주사파'나 'NL 운동권'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의 피해자' 서사와 그에 기반한 반미주의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반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로 잘 알려진 '미군 장의사 한강 포름알데히드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미국 내에서도 포름알데히드를 버릴 때에는 그냥 강물에 희석시킨다, 다시 말해 수돗물 틀어놓고 쏟아붓는다고 말이다. 해당 미국인 군무원은 일부러 한국민의 젖줄을 더럽힌 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포름알데히드를 처리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했고, 시위했고, 영화도 찍고, 이후에는 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뉴스를 주로 접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래야 '자기객관화'라는 것을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개인적으로 2017년은 뜻깊은 해였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기습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는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가 된 심정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고, 그 결과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해당 매체에서 전화 통화를 통해 고지한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연달아 썼으며, 블로그에 글을 쓸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의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와 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적 맥락 속에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었다. 1960년부터 소련을 방문해가며 소련 기술사를 연구해왔던 미국인 학자 로렌 R. 그레이엄이 천착하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표트르 팔친스키였다. 소련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숙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산업당(Industrial Party)' 사건. 그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한 팔친스키는, 숙청 대상자가 대부분 그렇듯, 말소당한 기록 속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그는 끈질긴 자료 추적과 해석을 통해, 제정 러시아가 교육시켰고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뛰어난 엔지니어가, 중후장대한 성과를 요구하는 볼셰비키와의 갈등 속에서 짓밟혀버리고 마는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짧지만 강렬하고 큰 여운을 남기는 저작으로, 북한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를 다룬 책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