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신뢰하는 이 사람이 신뢰하는 저 사람이 신뢰하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그러니까 경제 정책이나 탁현민이나 뭐나 뭐나 마음에 안 들어도, 통상적인 20대 여성이 윤서인이랑 같은 후보를 찍을 수는 없다. 신뢰의 사슬이 뚝 끊긴다.노정태. "왜 20대 여성은 현 정권을 지지하는가." 노정태의 블로그. 2018-12-23. https://basil83.blogspot.com/2018/12/20.html
오랜만에 블로그를 펼쳐서 뒤적거리다 발견한 옛 게시물의 한 대목이 눈에 띄어서 코멘트.
'신뢰의 사슬', 내가 만들었지만 매우 그럴싸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며 판단하는 건 더더욱 귀찮아함.
사람들은 그냥 '내가 아는 저 사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내 친구의 친구가 그렇다는데 뭐 맞겠지', 정도로, 본인과 직접 상관 없는 거의 모든 문제를 퉁 치고 지나감.
그래서 정치인은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해야 함. 어떤 소명의식? '신뢰의 사슬'로 온 몸을 칭칭 감고 살아야 하는, 솔직히 말도 안 되게 피곤한 그 노역을, 기꺼이 감당하겠노라는 소명의식.
비단 정치인 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였고, 발화하는, 그런 사람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
이쪽에서 한번 신뢰의 사슬을 거하게 깨뜨리면, '저 ㅅㄲ가 하는 말은 내용이 옳아도 재수없어서 동의 못하겠다' 이런 아이콘이 되어버리면, 공적인 활동의 영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음.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겠죠.)
조국 사태가 낳은 최악의 결과도 결국 그것 아닌가? 조국을 쉴드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그 수많은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회적 발화자'들이, 단지 진영 논리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마리오네뜨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의 신뢰의 사슬이 반토막 아니 1/4토막 이하로 줄어들어버리고 말았던 것.
우리 사회가 좀 더 섬세하고 촘촘한 신뢰의 사슬을 맺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니 사회적 이슈니 딱히 신경 안 쓰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할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