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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2

인수위에 여성가족부 포함시켜야

2017년 대선 당시의 일. 홍준표 후보의 자서전에서 '돼지발정제' 운운했던 대목의 논란이 커지자, 다른 후보들이 일제히 비난했다.

그 중 가장 수위가 셌던 사람은 안철수. '나는 홍준표 후보와 대화하지 않겠소'라고 TV 토론에서 선언했다.

수세에 몰려 있던 홍준표는 안철수의 그런 대응에서 활로를 찾았다. '안 후보님? 정말 나랑 이야기 안 할 거에요? 응?' 이러면서 어린아이 놀리듯 가지고 놀았고, 오히려 안철수가 외통수에 몰렸다.

여성가족부를 대하는 인수위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그 무렵 생각이 든다.

여성가족부는 신뢰를 잃었다. '피해호소인'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등을 돌린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던 사업 중에는 여성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많다. '여성부'가 아닌 '가족부'로서 집행하던 예산도 상당하다.

그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재구성, 재편성해야 한다. 또 어제 오늘 거론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홈페이지 예산 등 석연찮은 대목을 확인하고 교정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인수위 테이블에는 여성가족부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가족부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도 여성가족부를 불러야 하지 않나?

'여성가족부 해체'라고 썼으니 인수위 단계에서 아예 포함도 안 시킨다! 이런 태도가, '나는 홍준표 너님과는 토론 안해!' 해버리던 2017년 안철수의 미숙한 태도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난번에도 말했듯 이런 태도를 취하면 대외적으로 '안티페미 행정부'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게 될까? '석유 대신 반도체가 나오는 사우디' 정도로 취급당할 것이다. 나라망신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 그 외 관계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22-03-21

'광화문 시대'와 작별을 고하고 싶다

"결국 미 대사관은 이 논란이 본격화되기 전에 마련해 뒸던 정동 옛 경기여고 자리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미국은 90년 을지로에 있던 미 문화원과 1만5117㎡에 이르는 경기여고 땅을 맞바꾸기로 서울시와 합의한 상태였다. 이 부지는 미 대사관저와 바로 맞닿아 있어 대사관과 함께 직원 숙소까지 지을 수 있는 안성맞춤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유명한 마이클 그레이브스에게 의뢰해 지하 2층, 지상 15층짜리 대사관 설계까지 마친다.

하지만 만사 쉬운 일은 없는 법.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순조로워 보였던 대사관 이전 계획은 돌연 암초를 만났다. 대사관을 지으려던 경기여고 자리가 역사적 유적지로 밝혀진 까닭이다. 조사 결과 문제의 땅에는 1933년까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을 모셨던 선원전(璿源殿)과 왕과 왕비의 혼백을 모신 흥덕전(興德殿) 등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조선시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 위에 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결국 미 대사관은 “한국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경기여고 이전 계획을 포기한다”고 2003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741863

경기여고는 순종이 어명으로 만든 학교임. 조선 왕실에서 '야 너네 이 땅 써라'해서 그 땅 위에 지었음. (사진 속 빨간 동그라미)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경기여고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또 유의미한 '조선시대의 유산'이었는데, 경기여고는 그 땅 버리고 강남으로 훌훌 갔음.

그런데 그 자리에 미국이 대사관 좀 지으려고 하니까 뭔 일이 벌어지냐? 위에 인용된 칼럼에서 잘 이야기하고 있죠.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바 아니었던 유물 나왔다고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남.

결국 미국 대사관은 대사관저와 딱 붙여서 멋들어지게 지어보려던 건물 계획 다 포기하고, 용산 미군기지 옆으로 가려고 했는데, 미군기지 이전에 차질이 생기면서 광화문 한복판에 뒈지게 낡은 건물에서 영원히 살고 있음.

그래서 그 경기여고 땅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그냥 허허벌판임(2030년대까지 '선원전터 복원'을 한다는데 그게 문화재로서 유의미함? 그렇게 믿을 사람은 유홍준 말고 아무도 없음).

이게 뭐야? 뭐하는 짓이야? 아무도 모름. 문화재를 지키자! 하면서 그 땅 기꺼이 쓸 유일한 소비자를 쫓아내놓고, 그냥 비워두고 있음. 이런 비합리적인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이 싫어서. 혹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청와대에서 벗어나 용산으로 간다는 결정의 문화사적 의의를 짚어보기 위함.

대통령이 청와대를 버린다? 이건 청와대만의 문제가 아님. '광화문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의미도 됨.

'광화문 시대'란 무엇인가? 김영삼이 중앙청을 박살내면서 시작된 시대. 민족주의적 감성이 모든 합리와 이성과 계획의 상위 개념으로 날뛰고, 그 누구도 그것을 감히 말리지 못했던 시대. 문화재청 같은 일개 '청'이 민족의 제사장 행세를 하며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시대.

일본과 전쟁을 해서 독립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목 하에 역사 왜곡을 하는 게 옳은 일처럼 여겨졌던 시대.

'민족정기'를 세우고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억지 부리고 악다구니 쓰는 게 뭐 좋은 일처럼 여겨졌던 시대.

이제 좀 새로운 세상에 살아보고 싶다는 소리. 그 뭐 광화문의 함성이니 종로의 정취니 피맛골의 그리운 풍경이니, 다 그냥 '즐기는 문화'의 범위로 넘기고, 우리는 갑시다 미래로.

2022-03-13

'20대 남자 성비 문제'의 진짜 희생자

2020년 현재 연령별 성비

20대 남자들은 여자보다 1.2배 많고, 그래서 짝을 구하기 어렵고, 일자리도 예전처럼 쉽게 구할 수 없고, 그래서 피해자다.

이런 소리를 이제 남초 커뮤니티가 아니라 나름 양식과 식견이 있는 기성세대 중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옳은 말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성비 박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희생자 집단을 가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여성주의적 맥락에서 낙태권은 곧 여성의 선택권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 낙태에 반대하는 서구 기독교 계열이 스스로를 '프로 라이프'라 할 때, 여성주의는 '프로 초이스'라 하여 여성의 선택권으로서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1세계 문제다. 한국, 인도, 기타등등 남아선호 및 여아살해가 흔한 제3세계에서는 사정이 다르게 전개됐다. '시댁과 사회의 강요로 인한 여아 낙태'를 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낙태시술이 성행한 것이 여성 인권의 억압과 맞닿은 현상이었던 것이다.

<사이언스>의 기자였던 마라 비슨달은 <남성 과잉 사회>에서 그 문제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와 서구를 비교해보면 아시아에서의 낙태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와 서유럽에서 낙태 합법화는 보통 낙태 건수의 감소로 이어진다. 이것은 보기만큼 역설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회에서 낙태법을 완화할 때는 피임도 함께 촉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와 아울러 애당초 임신하지 않을 권리가 대두된다. 하지만 가족계획 정책이 여성의 요구에 대한 배려 없이 수립되고 낙태가 피임을 보완하는 방법이라기보다 속성 인구 조절 방법으로 도입된 아시아와 동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합법적 낙태는 더 많은 낙태를 의미했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연구원 변화순은 "가족계획정책에는 성 인지적 관점(남성과 여성에게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개념과 정책을 검토하는 관점--옮긴이)이 빠져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성의 몸은 도구죠. 그래서 우리는 약 대신 낙태를 이용합니다"라고 말한다.[208쪽]

마라 비슨달, 박우정 옮김, 『남성 과잉 사회』(서울: 현암사, 2013)

'너무 많이 태어나서 짝 없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그렇게 남자들을 '과잉생산' 하기까지, 낙태를 강요당했던, 이대남들의 어머니 세대는 안 불쌍한가?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래서, 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택도 없이 이대남에게'만' 감정이입하며 엉엉흑흑 불쌍불쌍 둥기둥기 해주는지 이해를 전혀 못하겠다.

(아니, 실은 잘 알겠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2022-03-08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답: 불가능하다. 돈도 결국 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나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해외 금융자산 동결. 아무리 많은 '외환보유고'를 쌓아도, 그게 자기 땅 자기 곳간에 물리적으로 들어 있지 않은 한, 이토록 쉽게 빼앗기고 마는 현실을 전 세계인이 깨닫고 있다.

링크한 WSJ 기사도 그런 것. 아예 첫 줄부터 이렇게 묻는다. "What is money?" If Russian Currency Reserves Aren’t Really Money, the World Is in for a Shock"

실로 그렇다. 러시아 뿐 아니라 중국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그토록 열심히 축적해온 '외환보유고'라는 게, 이런 식이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미국과 전쟁하려고 하면 싹 동결될 싸이버 머니 아닌가?

그런데, 원래 돈이 그런 것이다. 돈을 돈으로 만드는 건 화폐 구성 물질의 재화로서의 가치나 유용성이 아니다. 신용을 보증해줄 권력, 힘, 폭력, 그런 것들이 돈을, 특히 기축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어준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노정태라는 훌륭한 필자가, 신동아라는 역사와 전통의 근본 시사 정론지에 쓴, 이 칼럼을 참고해볼 수 있다. "원화가 기축통화? 이재명은 뭘 희생할 텐가 [노정태의 뷰파인더] 美 달러 패권은 ‘공짜’가 아니다")

여기서 생각을 한 단계 더 이어가 보자. 민주당의 통일정책이란 결국 '평화를 돈으로 사자'로 요약된다. 북한에 유화책을 펴서 돈을 주고, 돈을 더 줄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면, 우리 말을 잘 들을 거라는 논리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평화란 힘이 충분히 강해 상대방이 나를 넘보지 못할 때 구현되는 어떤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돈을 적에게 주는 식으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악당에게 돈을 줘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돈이란 힘의 다른 표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악당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악당에게 힘을 주는 것이며, 악당에게 힘을 주는 것은 평화의 정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는 짓이다.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그것은 미국이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에서 전쟁을 이겨 세계를 정복했던 시절의 산물이다. 워낙 막대한 힘으로 평화가 강요되었기에 돈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뜻이다.

이제 드디어 '장기 20세기'가 완전히 끝났다. 지정학과 네셔널리즘의 시대가 돌아왔다. 우리 국민들도 정신 차려야 한다.

2022-01-08

YTN '나이트포커스' 1월 7일 출연했습니다.


제가 한 말 중 몇몇 중요 대목을 적어둡니다.

 

1. 윤석열의 음주운전 공약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딱 붙어 있잖아요. 그리고 말도 똑같은 말을, 거의 비슷한 말을 쓰고 그런데.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사망자 발생률이 벨기에가 네덜란드의 2배예요, 교통사고 사망률이. 

그런데 공교롭게도 국제투명성기구의 반부패지수 CPI를 보면 네덜란드는 2006년 현재 세계 9위 청렴한 나라인데 벨기에는 세계 20위란 말이죠. 이게 뭐냐. 교통사고에 너그러운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교통질서를 안 지키고 교통사고에 너그럽고. 음주운전 해도 되지, 이런 나라일수록 부패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과관계라고 얘기하기에는 좀 어려워요. 하지만 명백한 통계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음주운전,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거죠.  


2. 이재명의 모(毛)퓰리즘

저는 약간 동의하기 어려운 게 모퓰리즘. 포퓰리즘과 머리 모 자를 합쳐서 모퓰리즘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이 있습니다. 난치병이 있는데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바로 확인을 해서 스크리닝을 해서 우리가 모더나, 화이자 백신같이 mRNA, 치료제를 맞으면 낫습니다. 한 번 맞으면 되는데 그 한 번의 약값이 25억 원이에요. 

그런데 척수성근위축증은 통계적으로 1만 명에 1명씩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생아가 현재 20만 명 정도 태어나니까 우리나라에서 매년 20명 정도의 환자가 생기는 거고 그 환자들한테 그 약을 투여한다고 하면 500억 정도를 잡을 수 있겠죠. 

이재명 후보가 1000억이면 되는데 뭘 그러냐, 우리 재정, 돈 많다 이러는데 일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있다고 펑펑 쓰는 건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 그러니까 소확행. 아이들,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의 가장 작지만 가장 큰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이의 건강이라는 건. 그걸 해결해 주는 게 국가의 소확행이지. 

물론 탈모인들의 고통과 이런 건 다 이해를 합니다마는 우리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소확행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대선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얘기를 하겠으며 사회적 의제를 언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까? 

 

3.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하여

헌법 32조에 보면 32조 4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써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그러니까 87년에 제정됐을 때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해야겠다, 보호한다라는 취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런 헌법입니다. 

그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성정책 관련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지금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마치 윤석열 후보가 여성부를 다 폐지하고 모든 여성정책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려고 지금 일곱 글자만 올린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이번 대선이 전반적으로 다 일단은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이재명 후보 같은 경우는 평등가족부 내지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타 부서에 통합하겠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성평등부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어쨌건 중요한 건 여성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사회가 좋아져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빠져서 그러는 건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우리의 헌법정신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이렇게 강조를 드리겠고요.

 

전체 스크립트는 여기(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대선 정국. 누구 편을 드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제대로 전달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2021-06-13

이준석의 페미니즘 공격이 별 일 아니라는 이들을 위한 사고실험

성별 외 다른 변수를 제외하기 위해, '나경투'라는 정치인이 있다고 해보자.

나경투는 1986년생 여성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지 않은 서울의 모 지역구에서 세 번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세 번 낙선했다. 하지만 말솜씨가 좋고 방송 감각이 있어서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하버드 대학교도 나왔다고 하고, 뭐 기타등등 다 이준석과 동급이다.

나경투는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나경투는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층인 교회 다니는 중장년 표심을 자극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경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심지어 당대표가 어찌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님에도, 경선 과정에서 열변을 토했다.

  •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퀴퍼 금지
  • 군형법상 계간죄(남자 동성애 처벌) 폐지 결사 반대
  • 기타등등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성소수자 혐오

나경투의 선거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진중곤 같은 논객들이 달려들어 페이스북에서 논전을 벌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되고 말았다. 나경투는 자신의 성소수자 혐오를 공정이라던가, '안물안궁의 권리'라던가, 아무튼 뭔가 대충 그럴싸한 담론과 버무려 포장했다.

그리하여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나경투의 혐오 선동은 사실상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원래부터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한국의 여론 지형상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수치를 받고, 그 여세를 몰아 당심을 자기 것으로 끌어들여, 당대표가 되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여러분은 나경투가 단지 '30대'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지받아 마땅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은 나경투가 공공연하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하고 혐오 선동을 하여 자신의 지지층을 형성한 것을 두고, "이건 어쩌면 나경투라는 인물에게 어떤 문제가 있느냐는 두번째 고민거리일지도 모른다는 증거처럼 보인다"는 식으로 말하는 칼럼을 떠올릴 수 있는가?

심지어 그 칼럼이 한국의 자칭 진보 진영의 기관지와도 같은 한겨레에 실릴 수 있다고, 그런 가능성을, 상상조차 할 수 있는가?

이준석은 남자 나경투다. 나경투는 여자 이준석이다. 당신이 나경투에게 반대한다면 이준석에게도 반대해야 한다. 게다가 가상의 사례인 나경투와 달리 이준석은 리얼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들 이렇게 평온하게, 심지어 즐겁게, 박수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실은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너무도, 너무도 역겹다.

2021-06-11

'음서제 대 과거제'라는 가짜 논쟁

이준석 당선과 그에 뒤따르는 논의에 끼어들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실력 안 되는데 빽/연줄/기타등등으로 끼어드는 놈들'에 대한 분노가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감정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논의가 '음서제 대 과거제' 수준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결국에는 '윗분'과 '아랫것'들을 구분하는 걸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동적이면서도 약자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원합니다. 그것은 음서냐 과거냐를 넘어서, 일단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서제로 '양반'되냐 과거제로 '양반'되냐, 이 갈등은 '양반과 노비의 구분'이라는, 전근대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근대적인 세계를 원합니다. 매 순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지는 않는, 그런 세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2021년. 우리 모두 근대인이 됩시다.

2021-06-09

엑셀과 능력주의 (feat. 이준석)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면 엑셀쯤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해보자. 이 말 자체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소리다. 엑셀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능력주의'를 들먹인다면 문제는 퍽 달라진다. 엑셀 사용 능력을 '시험'봐서 평가하겠다는 것은 정치와 상관 없다.

한국에서, 특히 보수 쪽 지지 성향이 있는 분들은 '능력주의'라는 말을 원래 의미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능력을 파악하여 그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능력주의라고 뇌피셜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사실 좀 더 한국어 맥락에 부합하게 옮기자면, '시험주의'에 가깝다. 어떤 시험을 통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을 평가한 후, 그에 따라 사회적 계층을 할당하자는 소리다. 

 

마이클 영의 책 Meritocracy가 바로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린 SF 소설이고,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은 마이클 영이 저 책을 쓰면서 만든 말이다. 마이클 영은 2002년에 죽었는데, 그 전에 <가디언>에 본인의 뜻을 밝힌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너무도 최신 용어라는 소리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한국에서 능력주의의 본래 의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이준석이다. 선거로 뽑혀야 마땅한 정치인을, 시험 봐서 뽑자고 하면 너무 과격하니까, 출마 자격을 평가할 때 시험을 보자. 시험홀릭, 입시제도가 낳은 괴물, 뭐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발상이다.

물론 그런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떠올려보자. 

오세훈은 파일명 뒤에 붙는 v(version의 v)가 무슨 뜻인지도 몰라서 VIP의 V라고 했다가 전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었다. 하지만 경선에서 승리했고, 심지어 선거 본선에서도 이겼다.

정치인이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한다고? 컴퓨터 잘 못 쓰는 사람들은 출마도 못 하게, 시험 봐서 떨어뜨리자고? 이준석은 지금 오세훈을 '멕이는' 건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딱 세 가지다. 내가 봐도 참 아름답고 기가 막힌 정리인데, 아무튼 이렇다.

  1.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매력
  2. 내게 모인 사람들의 능력, 인성, 충성심을 파악하는 안목
  3. 아니다 싶은 사람을 내치고, 대립각을 세울 줄 아는 투쟁력

이 모든 것은 컴퓨터 사용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글을 몰라도 된다.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겠지만,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한데, 샤를마뉴 대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프랑크 왕국을 확장하는데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징기스칸도 아마 문맹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현대의 정치인이라고 뭐가 다를까. 믿음직한 참모가 글 읽고 표 볼 줄 알면, 정치인 본인은 문맹이어도 정치를 할 수 있다.

이준석에게는 3의 능력이 있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1이 없다. 매우 심각하다.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세 번 출마해서 세 번 떨어진 것 아닌가. 안타까운 일이다. 당대표가 된다면, 그래서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좀 나아지려나.

나는 컴퓨터라는 도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필요한 분야는 일부러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방향에서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정치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해왔던 그런 영역에서는, 엑셀이 아니라 매력이 본질이다.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운운하면서 자꾸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능력주의'를 거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능력주의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학적, 철학적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자면, '시험주의'에 더 가깝다. 이준석은 능력주의자인데, 좀 더 잘 번역해보자면, 시험주의자라는 소리다. 

나는 진정한 능력주의(라는 게 있다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시험주의는, 글쎄. 잘 모르겠다. 시험 보는 재주라면 나도 딱히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2021년의 대한민국이 시험주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방해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21-06-07

이준석의 '공정'은 가난한 노인이 더 가난해지는 것

신동아 칼럼에 넣으려다가 분량이 부족해서 뺀 대목이 있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 알았다면 편집부와 논의해서 분량을 늘리고 같이 넣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준석은 기초연금(65세 이상 노인들이 받는 연금)의 수급자가 소득 하위 70%라는 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왜 소득 상위 30%는 기초연금을 못 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의 '공정'을 꺼내든다. 

기초연금이 무엇인가. 노인 빈곤율 OECD 1위 국가에서, 산업화 세대 빈곤 노인들이 말 그대로 굶어죽지 말라고 만든 연금이다. 그나마도 없으면 노인 자살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준석은 주장한다.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심지어 가난한 노인들이 매달 받는 기초연금액이 줄어드는 한이 있어도, 소득 상위 30%까지 다 받아야 공정한 거라고.


아직도 이준석이 말하는 '공정' 타령을 옹호하는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의아하다. 여러분은 이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기나 하고 지지하는 것인가?

> 청년수당이나 노령연금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의견입니다. 그런 수당과 연금은 특정 계층에만 혜택을 줍니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노령연금의 경우 소득 상위 30퍼센트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저는 그들의 불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령연금의 경우 지급하는 금액을 낮추더라도 노인 인구 전체에 지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원래 연금의 취지에도 맞습니다. 저는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에는 찬성합니다. 기본소득은 국민 전체가 그 대상이니까요. 그런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당은 기본소득 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저는 국민 전체에 지급하는 기본수당일 경우에는 아예 공정성 시비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그 금액을 현재 얼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국민경제에 직접적인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깊은 토론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공정한 경쟁》 中)

이준석이 말하는대로 '공정'하게 기초연금을 뜯어고치면, 안그래도 심각한 노인 자살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건 정상적인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지 않은가?


 

코로나 터진 후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들은 소득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개박살이 났다. 하지만 대기업 공기업 다니거나 공무원인 대깨문들은 '누가 무슨 피해를 입었는지 어떻게 증명하냐,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라며, 재난지원금을 1인당 10만원씩 쪼개서 뿌리는 게 '공정'하다고 주장했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켰다.

기초연금에 대해 이준석이 하는 말과 똑같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야 할 돈을, '공정'을 앞세워, 이미 충분히 가진 자들이 빼앗아 먹겠다는 소리.

2021-06-05

요리할 돈이 없어서 배달음식을 먹는 사람들

상파울루, 브라질. 2011년 2월 뉴스. 피자 배달점이 늘어나고 있다. 왜일까? 

도시 빈민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에게 부엌이 없기 때문.

 '가난한 사람이 핸드폰은 있다고? 그런데 가스비를 낼 돈이 없다고?' 같은 소리들. 얼마나 근시안적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시각인가. '요리를 할 돈이 없어서 배달음식을 먹는다' 같은 '비논리적' 현상이야말로 현실에 더 가깝다.

Food is also one of the few pleasures available to the poorest. In the favelas (slums) of São Paulo, the largest city in South America, takeaway pizza parlours are proliferating because many families, who often do not have proper kitchens, now order a pizza at home to celebrate special occasions.
"The 9 billion-people question", The Economist, Feb 24th 2011, Special Report.

2021-05-25

문재인의 '우리 여기자' 발언, 무엇이 문제인가?

이 핀트를 못 잡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니, 제대로 뭐가 문제인지 짚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맥락을 떠올려보자. 바이든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기자의 성별이 여성이었다. 통상적인 질문을 했고, 통상적인 답변이 나왔다. 통상적인 기자회견의 모습이었다.

문재인은 그 직후에 '우리도 여기자 없어요?'라고 했다. 

그 순간, 처음 질문한 미국 기자는 여성차별을 당한 것이다. '성별이 여성인 기자'에서, 특별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여기자'로 취급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여성들에게 우대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의 컨퍼런스 룸은 이미 그런 맥락이 다 지나간 곳이다.

이걸 페미니즘의 용어로 말해보자면 이렇다. 문재인은 그 기자회견장에서 '가부장적 페미니즘'을 구현한 것이다. 여성이 기자도 못 되고, 기자가 되더라도 질문 한 마디 자기 입으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자'에게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짓을 미국 백악관에서 했다는 말이다.

한국의 언론계가 그 정도 수준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언론계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가부장적 여성 보호 배려의 페미니즘 단계를 넘어섰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백악관의 내부 업무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문재인의 '여기자 질문해보셈'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백악관의 수준을 순식간에 문재인의 청와대와 같은 것으로 끌어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여기자에게 무조건 첫 질문을 줘야지, 그게 페미니즘이지'라고 생각해서 질문 기회를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떠벌이지 않는다. 그 정도 '위선'은 지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우리도 여기자 한 명 질문해보세요'라니. 이런 식이면 질문 기회를 받은 기자는 '내가 실력과 무관하게 여자라서 '배려'받았나?' 싶어질 것이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큰 실례다.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여자'로 취급할 때나 가능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건 문재인의 그런 발언을 두둔한 권인숙이다. 그런 가부장적 페미니즘 행태가 "작지만 소중한 발언"이라고? 제정신인가?

나는 권인숙이 한국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부정하지 않는다. 세상에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앞으로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젊은 안티페미들이 득세를 하면서 반여성주의 진영은 세대교체를 하는 모양새다. 여성주의 진영 또한 세대교체가 절실하다.

2020-12-06

검찰 문제 단상

나는 대깨문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보, 심지어 윤석열에게 원한 품은 몇몇 보수 분들까지도 '검찰주의자'라는 말을 욕처럼 쓰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검사가 검찰주의자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떤 법조인을 검사로 만드는 건 그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있다면 당연히 검찰로서의 직업 윤리, 가치, 금기, 도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늘 새기고 지키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

아,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수사하고 잡아넣어서? 그래서 '검찰주의자'가 나쁜 건가? 검찰총장이 우리편은 봐주고 저쪽편은 조져야 하는데 안 그래서 속상하다 이건가?

한국에서 원리원칙적인 자유주의자 해먹기 정말 힘들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쓰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쪽수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수가 의사결정권의 많은 부분을 갖되 그럼에도 소수를 존중해야 민주주의다.

게다가 법이란 근본적으로 '다수의 지배'가 성립하지 않고, 성립해서도 안 되는 분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해서 결백한 사람이 범인이 되지는 않는다. 증거와 법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사법 기관이다. 국가를 대신하여 범죄자를 소추하고 기소하여 감옥에 넣는 것이 검사의 일이다. 따라서 검사 역시 '다수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직종이다. 온 국민이 사랑하고 죄 없다고 박박 우겨도, 증거가 있고 해당하는 형법 규정이 있다면, 검사는 최대의 형량을 구형해야 한다.

이 난장판의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교양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아예 그런 대중 교양 함양에 관심이 없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약간의 재주가 있는 법조인들은 그럴싸한 포우즈 취하고 깨시민 상대로 인기 끌 궁리 뿐이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무식해서 망할 것이다. 기층 민중이 아니라, 상위 중산층 레벨에 속하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악다구니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말이나 갖다붙이면서 더 무식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망할 것이다.

세월호가 국정원에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이유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인용한다. 밑줄 강조는 내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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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12월 4일 오전 10:33 

적당히들 하시면 좋겠습니다.



 왼쪽은 어제 사참위가 배포한 보도자료 가운데 일부입니다. "세월호가... 유일하게 해양사고 발생시 국정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라고 되어 있네요.

 

오른쪽은 세월호와 쌍둥이 배라고 불리던 청해진해운 소속의 오하마나호 내부에 붙어 있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입니다. 1기 특조위가 2015년 3월 26일 현장조사를 나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국정원 인천지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사가 동행 취재를 했고 이걸 촬영하지 않은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뉴스타파도 촬영했고요.

일단 사참위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세월호만이 유일하게 국정원에 보고하는 체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정원과 세월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증폭시키려고 한 것이죠.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의혹 제기도 팩트에 기초해야 합니다. 일개 언론인이 이런 원칙을 갖고 있을진대 국가조사기구라면 말할 것도 없죠.

그렇다면, 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라는 단 2척에 대해서만 국정원이 보고 계통에 들어 있느냐, 적어도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실 수는 있겠습니다. 근데 이 내용은 참사 초기에 저도 취재했고 1기 특조위도 조사했던 내용입니다. 결론도 같았습니다.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는 제주와 인천을 논스톱으로 운항하는 '유이한' 여객선이었습니다. 국정원은, 2010년대 들어 탈북자들의 국내 유입 경로가 이른바 '동남아 루트'(북한 --> 중국 --> 인도차이나 반도 등 동남아 --(밀항)--> 제주도)로 바뀜에 따라 이 두 척의 선박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제주도로 밀항해 들어온 탈북자(물론 국정원의 목적은 '탈북 위장 간첩 검거'였죠)들이 수도권으로 한방에 올라올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에는 탈북자 관련 사전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승선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 타고 가면 식당 아주머니들이 밤참이며 술안주를 만들어 바치기도 했죠.

앞서 말씀드렸듯 이런 내용은 1기 특조위의 조사에서도 수집된 정보입니다. 1기 특조위 자료를 모두 이관받은 사참위도 모르고 있을 리 없는 내용이고요. 

사참위 여러분, 제발 팩트에 충실한 발표만 하시고, 본인들 시나리오에 불리한 정보라고 모른 척 넘어가는 식으로 일하지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학자금 대출 탕감은 공정한 정책인가

 미국 진보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 학자금 대출 때문에 젊은이들이 빚더미 위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국가가 나서서 탕감해줘야 한다!'

별 고민 없이 미국 진보의 레파토리를 수입하곤 하는 국내 진보 계열에서도 많이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정의로운 소리냐, 이런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대체로 상류층과 어퍼 미들이죠. 그걸 국가가 세금으로 갚아준다? 좀 그렇죠?

앞장서서 '브라만 좌파'라는 용어를 만든 피케티가 그런 소리 하는 것도 웃기다는 지적. 학자금 대출 탕감은 '브라만 구제금융'(brahman bailout)이라는 신랄한 표현을 적어둘만 합니다.

 Zaid Jilani, Canceling Student Debt Would Be a ‘Brahmin Bailout’, Wall Street Journal, 2020년 11월 29일.

2020-09-23

다시,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일전에 신동아에 썼던 '뷰파인더'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무료로 독감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해놓고, 예산을 최대한 덜 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액수로 백신 단가를 후려쳤다. 당연히 기존의 정상적인 업체들은 손을 놓아버렸고 처음 백신 시장에 들어온 의약품 유통업체 신성약품이 낙찰받았다.

신성약품은 비용 절감을 위해 냉장 상태를 유지한 채 배송해야 할 백신을 종이상자에 담아 보내는 말도 안 되는 실수 혹은 과실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권은 여기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또 뻔뻔스럽게 신성약품을 상대로 '네 이노옴!' 하고 소리지르고 손가락질하며 무마하려 들 것인가?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정부는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공적인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 재원이 부족하다면, 역시 정당한 절차와 논의를 거쳐 세금을 걷어야 한다.

국가가 날강도처럼 구니까 국민들도 서로 뜯어먹을 궁리나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지 말기 바란다. 

보건당국이 독감백신 사업에서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것이 관리 소홀 문제로 이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약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백신 단가를 8,0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 가격은 시중 병원 납품가(1만 4,000~1만5,0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주요 업체들은 아예 응찰을 하지 않았다. 입찰이 대여섯 차례나 유찰을 거친 후에야 이번에 신성약품으로 공급사가 정해진 것이다. 의약품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은 1,100억원 규모의 4가 독감백신 국가 조달 입찰에 성공하면서, 이번에 처음 백신 시장에 진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537880

2020-08-04

행정수도,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유

미국의 수도는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 아니냐, 한 나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가 수도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시는 분들께.

미국의 수도가 왜 워싱턴 DC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아메리카 식민지가 독립하여 13개 주가 연방을 결성할 때, 가장 힘이 셌던 두 도시가 있습니다. 뉴욕 주의 뉴욕 시,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 시.

지금 구글 지도를 펴서 미국의 동부 지도를 보십시오. 워싱턴 DC가 어디 있습니까? 네, 그렇죠. 뉴욕과 리치몬드의 중간에 있습니다. 가장 힘이 센, 남부와 북부를 대변하는 두 도시의 중간 지점에 연방의 수도를 새로 만든 겁니다.

이건 호주의 수도가 시드니가 아닌 캔버라인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호주에서 가장 힘이 센 도시 두 곳은 어디? NSW의 시드니, 그리고 빅토리아주의 멜버른. 그럼 연방국가 호주의 수도는? 그렇죠. 시드니와 멜버른의 중간 지대에 만든 인공 도시 캔버라가 되는 겁니다.

캐나다의 수도가 오타와인 이유도 똑같습니다. 서부가 개척되기 전, 가장 센 도시 두 곳, 몬트리올과 토론토. 둘 중 어디도 자체적으로 수도가 될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기에 중간 지점인 오타와가 연방의 수도로 낙점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세종이 무난하게 행정수도로 기능하려면, 부산이 서울에 맞먹을만큼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1차 세계대전 수준의 무장을 해서 전쟁을 했을 때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만큼) 힘이 강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중간 지점인 대전이나 그 인근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게 말이 되죠. 아니, 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서울과 수도권을 합치면 인구의 절반이 들어가고 산업생산 역시 절반을 넘깁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권역은 중화학공업 생산기지와 항구를 가지고 있지만 수도권과 별도로 헤게모니 싸움을 할 역량은 없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서울은 장기적으로 황폐화되고, 잘못 만들어진 세종시가 제2의 서울 강남 기타등등이 되어서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골때리는 수도권 과밀 현상을 겪게 될 겁니다.

한국의 식자층 여러분, 꿈을 꾸는 건 좋지만, 우리의 현실에 입각한 소리들을 좀 하고 삽시다. 한국은 앵글로색슨이 주류가 되어 만들어낸 연방국가가 전혀 아닙니다.

이 나라의 풍토에서는 '행정수도' 같은 기능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정부의 핵심 기능을 세종으로 옮긴다는 건, 그냥 서울을 다 옮긴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세종으로 옮기면, 지금 서울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몇 배 더 심각하고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재현될 겁니다.

덧) 한국의 행정수도 논란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2020년 현재, 갑자기 프랑스가 '국토 균형 발전'을 꾀한다며 파리와 마르세유의 중간 지점인 (심지어 제3의 도시 리옹도 재껴둔 채) 군소 도시 클레르몽페랑을 수도로 삼네 마네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권력이 수도 일극에 집중된 다른 나라를 예로 들어보니 감이 확 오지 않습니까?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운운이 얼마나 허황된 소리이며, 그것을 실현하는 게 얼마나 큰 혼란과 재앙을 초래할지?

덧2) 일본은 관서의 오사카, 관동의 도쿄가 전쟁을 해서 도쿄가 이겼죠. 도쿄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고히하고자 천황을 '모셔와서'(납치해와서) 도쿄에 데려다 놓고 있고요. 그래서 일본의 수도는 지금껏 도쿄인 겁니다.

아, 국토의 균형 발전, 그거 참 좋은데, 일본도 도쿄와 오사카의 중간 어디쯤에 행정수도를 만들면 좋겠네요.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입장에서 절호의 기회가 될텐데.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을 추격하는 경쟁국들에게 아주 큰 기회를 공짜로 헌납하고 있는 셈입니다.)

2020-07-30

정진웅 부장검사의 폭행: 사안의 본질은 가학수사

정진웅 부장검사가 한동훈 검사장의 스마트폰 USIM을 뺏는다는 명분 하에 달려든 사건에 대해, 사건 자체를 없는 것으로 할 수는 없으니, 본질을 호도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사안의 본질은 가학수사다. 국가가 범죄 수사를 명분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그 피해자가 검사장이건 시정잡배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때린 게 핵심이다. 박종철을 '탁'하고 쳐서 '억'하고 죽었다고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수사기관이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도주하는 용의자를 체포할 때 뿐이다. 그 외의 경우에 수사기관이 폭력을 쓰는 게 용납된다면, 해당 국가는 순식간에 독재로 돌아가고, 경찰은 그 독재의 도구로 악용되게 된다.

검사들끼리 '개싸움'한 거라고? 프로레슬링 같은 거 했다고? 그런 '농담'으로 얼버무리는 당신들은 다가오는 독재의 위험을 애써 무시하려 드는, 신독재세력의 부역자들이다. 사안의 본질은 인권이다. 그것도, 마그나 카르타 이후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보호되어왔던, 피의자의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함께 진지하게 분노해야만 할 시점이다.

2020-05-31

고작 회계 문제? 돈이 곧 윤리다

정의연 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계 문제다. 회계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가령 뭐 운동의 대의가 어쩌고 활동가의 선의가 저쩌고 따위는 모두 부차적이다. 장부에 돈 거래를 제대로 써놓고 투명하게 거래하는 것은 운동권 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시민들은 돈을 벌고 있다. 혹은 내일의 돈벌이를 위해 쉬고 있다. 돈을 번다는 건 그렇게 지엄한 일이다. 돈을 벌어서 그 기록을 투명하게 남기고, 내야 할 세금을 내고, 사장이라면 직원 월급 밀리지 않고, 회삿돈을 잘 관리하는 것 등은 모두 우리 삶의 기본이면서 가장 숭고한 영역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를 왜 하는가? 민주화운동을 왜 했는가?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안온하게 잘 살기 위해서이다. 남을 속이지 않고 권력에게 휘둘리지도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당연히 모든 회계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반대로, 그 어떤 아름다운 대의를 갖다 댄들, 회계를 속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그 사회는 투명할 수도 건강할 수도 민주적일 수도 없다.

'그깟 회계 문제'를 운운하는 자들아, 입 닥쳐라. 너희들은 지금 '그깟 회계'로 계산되는 '그깟 푼돈' 벌겠다고 새벽에 눈꼽 떼고 일어나 직장으로 일터로 택배 상하차 물류센터로 향하는 그 모든 평범한 생활인들을 모욕하고 있다. 너희들의 운동이 대체 뭐가 그렇게 고상하고 굉장하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돈 문제를 이토록 얕잡아 본단 말이냐. 그토록 돈 문제를 우습게 보면서 어쩌면 네놈들 뒷주머니만은 알뜰하게 채워넣고 있단 말이냐.

돈 문제다. 이건 돈 문제고, 바로 그렇기에 가장 투명하고 엄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반미주의니 반일주의니 거대한 헛소리 다 집어치워라. 돈이 깨끗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할 수 있단 말이냐. 이 숭고한 회계 문제 앞에서, 피해자와 활동가의 윤리가 어쩌고 저쩌고 지껄이는 배부른 운동권 족속들, 그 역겨운 아가리들을 다 닥치란 말이다.

2020-05-05

Planet of the Humans (1)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Planet of the Humans’를 방금 다 보았다. 아무렇게나 순서 없이 일단 적어놓는 감상.

미국 민주당 계열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빌 매키번, ‘지구가 아프다 다큐’로 뭔가 큰 상도 받았던 미국 전직 부통령 앨 고어, 민주당 대선 주자로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돈만 쓰고 그만둔 마이클 블룸버그 등, 쟁쟁한 인물들.

그들이 어떻게

  1. Green energy라는 구호를 내걸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
  2. 자신들이 내세우는 구호와 biofuel(나무 썰어서 폐 타이어 등과 태우는 것)의 괴리를 얼버무리는지 
  3. 그 결과 지구가 어떻게 더 망가져가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충격적인 작품.

나도 한때 열심히 follow up했던 350.org 같은 조직이,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엑손 모빌이나 도요타 같은 기존 화석연료 업계의 후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큐를 다 보고 나면 놀랍지도 않은 수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제프 깁스(Jeff Gibbs)는 어린 시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이 다큐를 만들기 전까지 시에라 클럽의 맴버로서 열심히 활동해온 열혈 환경운동가.

그가 환경운동 행사장에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당신들 바이오매스에 찬성하냐’고 물을 때, 다들 해맑게 ‘절대 안되지 우리는 친환경인걸!’ 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아프다.

가장 황당하고 꼴같잖은 장면. 우리는 흔히 가운데 탑이 있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기가 100% 태양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아침 시동을 걸기 위해 가스발전기를 같이 설치한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환경 과학자는 그것을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면 커피를 마셔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과 같다’고 농담하기도.)

풍력발전기도 마찬가지. 태양광/풍력 시설을 늘리면 늘릴수록 가스발전기가 늘어나는 모습이 다큐에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환경운동가’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음.

아쉬운 점은 원자력에 대한 언급이, 한번 스쳐가듯 나오지만, 없다는 것. 탄소 배출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공격적으로 탄소 포집을 하려면 결국 답은 원자력 뿐이다.

아직 한국어 자막이 없는데, 영어 자막을 켜놓고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꼭 봐야 할 2020년 최고의 문제작.


2020-04-19

주류 교체? 꼰대 교체!

이번 총선을 ‘주류 교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꼰대 교체’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 꼰대냐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시죠. 1992년 총선,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역감정을 유발시켜서 총선에서 이겨먹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자유당이 이겼죠. 왜냐? ‘우리편’이니까 옳건 그르건 찍어준다는 꼰대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운하, 김남국, 최강욱,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울산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이라던가, 팟캐스트 여성 모욕 발언이라던가, 이런 게 국민들에게 다 알려진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올드 꼰대들이 주춤한 사이, 뉴 꼰대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서 아니겠습니까?

왕년의 꼰대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빨갱이들은 안 돼, 김대중이는 안 돼, 뭐 그런 것 말이죠. 그들은 그런 소리를 찍찍 내뱉고는 다짜고짜 1번을 찍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죠. 새누리당은 안 돼, 쟤들은 수꼴이니까 안 돼, 안철수도 안 돼고 심상정도 안 돼고 다 안 돼, 아 몰라 나는 청와대가 선거개입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해도 문재인한테 힘을 실어줄 테야…

한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째 나라 수준이 1992년과 다를 바 없을까요. 황운하가 국회의원 당선되는 2020년이, 정형근이 국회의원 당선되던 1996년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줄 알았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최근 뼈저리게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웃으며, 힘내서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