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출마하려면 엑셀쯤은 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해보자. 이 말 자체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소리다. 엑셀을 참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능력주의'를 들먹인다면 문제는 퍽 달라진다. 엑셀 사용 능력을 '시험'봐서 평가하겠다는 것은 정치와 상관 없다.
한국에서, 특히 보수 쪽 지지 성향이 있는 분들은 '능력주의'라는 말을 원래 의미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능력을 파악하여 그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능력주의라고 뇌피셜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사실 좀 더 한국어 맥락에 부합하게 옮기자면, '시험주의'에 가깝다. 어떤 시험을 통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잠재력)을 평가한 후, 그에 따라 사회적 계층을 할당하자는 소리다.
마이클 영의 책 Meritocracy가 바로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린 SF 소설이고,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말은 마이클 영이 저 책을 쓰면서 만든 말이다. 마이클 영은 2002년에 죽었는데, 그 전에 <가디언>에 본인의 뜻을 밝힌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너무도 최신 용어라는 소리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한국에서 능력주의의 본래 의미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이준석이다. 선거로 뽑혀야 마땅한 정치인을, 시험 봐서 뽑자고 하면 너무 과격하니까, 출마 자격을 평가할 때 시험을 보자. 시험홀릭, 입시제도가 낳은 괴물, 뭐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발상이다.
물론 그런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떠올려보자.
오세훈은 파일명 뒤에 붙는 v(version의 v)가 무슨 뜻인지도 몰라서 VIP의 V라고 했다가 전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었다. 하지만 경선에서 승리했고, 심지어 선거 본선에서도 이겼다.
정치인이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한다고? 컴퓨터 잘 못 쓰는 사람들은 출마도 못 하게, 시험 봐서 떨어뜨리자고? 이준석은 지금 오세훈을 '멕이는' 건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능력은 딱 세 가지다. 내가 봐도 참 아름답고 기가 막힌 정리인데, 아무튼 이렇다.
-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매력
- 내게 모인 사람들의 능력, 인성, 충성심을 파악하는 안목
- 아니다 싶은 사람을 내치고, 대립각을 세울 줄 아는 투쟁력
이 모든 것은 컴퓨터 사용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글을 몰라도 된다.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하겠지만,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한데, 샤를마뉴 대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는 문맹이었다. 하지만 프랑크 왕국을 확장하는데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징기스칸도 아마 문맹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현대의 정치인이라고 뭐가 다를까. 믿음직한 참모가 글 읽고 표 볼 줄 알면, 정치인 본인은 문맹이어도 정치를 할 수 있다.
이준석에게는 3의 능력이 있다. 그건 분명하다. 하지만 1이 없다. 매우 심각하다.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세 번 출마해서 세 번 떨어진 것 아닌가. 안타까운 일이다. 당대표가 된다면, 그래서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좀 나아지려나.
나는 컴퓨터라는 도구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필요한 분야는 일부러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방향에서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물며 정치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해왔던 그런 영역에서는, 엑셀이 아니라 매력이 본질이다.
사람들이 능력주의를 운운하면서 자꾸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능력주의'를 거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능력주의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학적, 철학적 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어로 정확히 옮기자면, '시험주의'에 더 가깝다. 이준석은 능력주의자인데, 좀 더 잘 번역해보자면, 시험주의자라는 소리다.
나는 진정한 능력주의(라는 게 있다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에는 찬성한다. 하지만 시험주의는, 글쎄. 잘 모르겠다. 시험 보는 재주라면 나도 딱히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2021년의 대한민국이 시험주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방해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