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30

파이어폭스에서 구글 독스 한글 입력 깨지는 문제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파이어폭스에서 구글 드라이브 이용하기'였다. 컴퓨터 환경을 리눅스(주분투 12.04)에서 윈도우10으로 바꿨으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떤 시점부터, 위 문구를 입력하면 다음과 같이 초성 중성 종성이 해체되는 것이었다.

ㅍㅏㅇㅣㅇㅓㅍㅗㄱㅅㅡㅇㅔㅅㅓ ㄱ구ㄱㅡㄹ ㄷ드ㄹㅏㅇㅣㅂㅡ ㅇ이ㅇㅛㅇㅎㅏㄱㅣ

이게 몇 년 동안 해결되지 않아서 혹시 간단한 해법이 있고 나만 모르게 그걸 공유하나 싶었는데 답을 찾았다.

about:config에서 intl.tsf.enable를 찾아서, 기본값인 true를 false로 수정. 이후로는 구글 문서에서 한글 자모가 해체되는 현상이 사라진다.

"intl.tsf.enable"을 검색해보면, 그런 현상이 파폭 41.0부터 생겼지만 43.0부터는 해결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구글 문서는 파이어폭스의 버전이 올라가도 같은 문제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임시방편으로 오래 묵은 문제를, 미봉책이지만 아무튼 해결하였으므로, 기록해둔다.

2016-04-28

[북리뷰] 시신이 사라져도 사람은 남는다

장성택의 길
라종일, 알마, 1만6천원


김정일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였다. 3대 세습이 시작되자 감히 1인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2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은 전격적으로 장성택을 숙청해버렸다. 4신 기관총을 난사하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린 탓에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시신까지 말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장성택이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남겨진 두 토막으로 부러진 볼펜 조각뿐이었다."(267쪽)

이 죽음이 너무도 황망한 탓이었을까. 그날 이후 장성택과 그를 숙청한 김정은은 가십 혹은 농담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김정은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장성택과 연배가 비슷한 중장년층은 종편을 통해, '고모부를 살해한 조카'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곱씹는다. 북한을 무조건 악마화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니, 이제는 덮어놓고 일단 희화화부터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장성택의 길>은 사뭇 다르다. 북한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독재국가에 적용될 수 있을만한 원칙을 놓고 북한을 바라본다.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 다른 나라의 권력 주변인들의 행동 패턴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해본다. 그렇게 라종일은 김정은이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2년 후 장성택이 숙청당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 권력 체제에서나 2인자의 위치는 매우 미묘하게 곤란한 것일 수 있다. 특히 권력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 그리고 권력 승계에 관한 공개적인 규칙이 결여된 체제인 경우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당시 장성택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그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거의 교과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했다.(10쪽)

"경제적인 자원 분배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거나, 혹은 장성택이 김정은과 달리 핵과 경제의 이른바 병진노선에 반대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11쪽), 그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렇게 언론은 점점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인자였기 때문이다. 라종일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쉬운 답, 하지만 정답일 수밖에 없는 답을 제시한 후, 다른 이들이 바라보지 않았던 곳을 들여다본다. 장성택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다가 그러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어째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권력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는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세간에 알려진"(14쪽) 사실들을 모으고, 신분을 밝히기 꺼리는 "자문인"들로부터 귀중한 자료를 덧붙여, 장성택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전기로 엮어냈다. "구하기 어려운, 빈약한 단편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처신 그리고 특히 그의 내면세계를 재구성하고, 이것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15쪽)어낸 것이다.

<장성택의 길>은 장성택이라는 북한의 핵심 인물을 온전히 '사람'으로 그려내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1인 독재체제의 잔인하고 부조리한 측면까지 일말의 악마화나 희화화 없이 바라볼 수 있다.

4월 27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라종일은 "시신을 없앨 수는 있어도 사람을 없앨 수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지워져버린 사람을 기억의 힘으로 되살리면 권력의 잔혹한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이 북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김형욱, 그 외 수많은 의문사 희생자들을 떠올려보자. "과거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272쪽)


2016-04-23

아시아에서의 낙태 강요와 여성 인권

아시아와 서구를 비교해보면 아시아에서의 낙태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와 서유럽에서 낙태 합법화는 보통 낙태 건수의 감소로 이어진다. 이것은 보기만큼 역설적인 현상이 아니다. 사회에서 낙태법을 완화할 때는 피임도 함께 촉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와 아울러 애당초 임신하지 않을 권리가 대두된다. 하지만 가족계획 정책이 여성의 요구에 대한 배려 없이 수립되고 낙태가 피임을 보완하는 방법이라기보다 속성 인구 조절 방법으로 도입된 아시아와 동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합법적 낙태는 더 많은 낙태를 의미했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연구원 변화순은 "가족계획정책에는 성 인지적 관점(남성과 여성에게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개념과 정책을 검토하는 관점--옮긴이)이 빠져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여성의 몸은 도구죠. 그래서 우리는 약 대신 낙태를 이용합니다"라고 말한다.[208쪽] 
마라 비슨달, 박우정 옮김, 『남성 과잉 사회』(서울: 현암사, 2013)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젠더사이드'는, 여성의 인권 신장 지표로 흔히 인용되곤 하는 '그 낙태'와, 의학적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사회학적으로는 굉장히 다른 사건이다. 그 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글쎄,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2016-04-15

한국: 1987년과 2008년의 성공과 실패

20대 총선의 결과로 인해 기존의 정치 구도가 크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3당 합당으로 인해 탄생한 호남 포위 전략에서, 호남이 독자 세력을 구축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총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분석을 보면 이 점을 제대로 언급하는 기사나 칼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소수자 집단이 독자세력화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보기 드문 사건인데 말입니다.

그 이면에는 1987년 대선의 결과에 대한, 어쩌면 강요된,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을 옮기면서 외국의 사례를 검토해본 바에 따르면, 그것이 과연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과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으로 대한민국의 진보 정치는 2008년 이후 스스로를 '셀프 감금'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단 '억울한 사연'들을 모아서 광장에 모인 후, 하염없이 분통을 터뜨리다가 경찰의 저항과 부딪친 후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는, 그런 '광장의 정치' 말입니다. 그것이 공회전하면서 굉장히 많은 정치적 에너지가 제대로 조직되지도 못한 채 우리 사회의 담론을 내부로부터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 의식 하에 저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링크)를 번역한 후, "한국: 1987년과 2008년의 성공과 실패"라는 제목의 다소 긴 역자 후기를 썼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정치적 담론 혹은 선입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실린 책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가 그다지 좋은 판매 성적을 거두지 못한 탓에,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사장되었습니다.

20대 총선이 막 끝났지만 그 의의를 철저하게 곱씹는 반응을 보기 힘든 지금, 출판사의 양해를 구해, 저의 역자 후기 혹은 서평을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출판된 내용과 달리 마지막 단락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습니다.

2016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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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987년과 2008년의 성공과 실패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은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하 …… 그림자가 없다" 中

1.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운을 떼면 꼭 뭔가 가정법을 끌어들이게 마련이다. 지나간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남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를 논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아쉬움의 순간은 1987년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 한다. 시민 사회와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이 힘을 합쳐 군부 독재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대선에서는 민주화 세력이 분열하여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에게 대권을 빼앗겼다는 서사가 그 얼개를 이룬다.

‘민주 세력은 분열해서 망한다’거나, ‘최후의 순간에 단결하지 못해 민주화의 열매를 군부 독재 세력에게 넘기고 말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이 책의 독자들은 적잖이 접해봤을 것이다. 어쩌면 독자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화 세력 단결론’은 그렇게 1987년 대선 패배와 함께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정치를 지배하는 주요 담론 중 하나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까? 이미 이 책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읽은 독자라면, 본 역자가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덧붙이는 이 부록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의 ‘분열’은 분명 즉각적으로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그것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의 내용을 통해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일종의 ‘대안 서사’를 구성해보자.


2.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른바 ‘제3세계’에 속하던 국가들, 과거 식민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대거 독립을 이루었다. 대한민국의 해방은 그보다 조금 빨랐지만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국가 형성에 들어간 시기가 비슷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민족의 아픔’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머릿속에 지구본을 하나 띄워놓고 생각해보기로 하자. 마치 다른 나라의 역사인 양, 그렇게 말이다.

그 경우 해방 직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평범한 제3세계 독립국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가장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된다. 소련의 영향권에서는 소련의, 미국의 영향권에서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 경제가 유지된다. 자체적인 산업의 발전이나 경제 성장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초대 대통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선출된 독재자’로 변신한다.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이끌었던 1960년까지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4.19 혁명과 5.16 쿠데타의 경우도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와, 식민지 시대에 교육을 받고 성장한 구세대의 충돌은 어느 국가에서나 어떤 식으로건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춰놓은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의 핵심 인물인 박정희가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것 역시, 세계 정치사의 보편적 경향성에서 벗어나는 사건이라 보기 어렵다. 1960년대가 아니라 2010년대에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독특한 경로를 밟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이후의 일이다. 87년 민주화 항쟁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구본을 놓고 보면, 아시아에 불어닥친 세 번째 민주화의 물결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서 군사 정권이 무너졌고, 인도네시아도 흔들렸으며, 중국에서는 이후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필리핀과 달리 한국에서는 민주화 세력이 ‘분열’했고, 즉각적으로 정권을 가져가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받는다.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평가해왔다는 말이다.


3.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유명한 격언이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되뇌게 되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립운동가들이 결국 독재자로 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앞서 우리는 확인했다. 그러한 비극적인 변화는 비단 독립운동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가들 역시, 적지 않은 경우, 권력을 잡고 나면 독재자들의 방법론과 무기를 차용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금방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로 그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 넬슨 만델라가 죽고 난 후의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더 많은 사례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자.

‘독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일대일로 맞붙어서 후자가 전자를 완전히 꺾어버린다 해도,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주화 세력과 독재 세력의 대결이 아니다. 민주화 세력‘들’끼리 서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유지해나가는 과정이다. 단 하나의 민주주의가 이전의 세력과 맞붙어서 이겨버리면, 그 ‘하나의 민주주의’가 결국 독재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 이후의 정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을 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로 인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 지체되었다는 식으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분열로 인해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라는 두 민주화 정치 세력이 유지됨으로써, 1997년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가능해진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강조하도록 하자. 민주주의는 독재와의 대결이 아니라, 다양한 민주주의‘들’끼리의 대결을 전제로 성립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어떤 하나의 민주주의가 다른 민주주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겠다는 명분하에 그 외의 모든 것을 흡수해버린다면, 민주주의는 그 존재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다시피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다양한 세력이 사회 속에서 공존하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며, 상호 경쟁을 통해 개선될 때 비로소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의 모든 세력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야 하지만, 그 민주주의의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사실상 달라야 한다. 하나의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민주 세력이 요구된다는 것, 단 하나의 민주 세력만이 남으면 그것은 독재와 다를 바 없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 하나다.


4.

우리는 87년 이후 지금껏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대한 적극적 반성과 재평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더 이상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못한다. 군사 쿠데타의 위험은 사라졌다. 주기적으로 선거가 치러지며,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 교체가 두 차례나 이루어졌다.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보장되어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포함해 다양한 권력 통제 기구들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아시아 전체를 놓고 볼 때 한국이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지표들이 명확히 보여주는 바다.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활력도 점점 떨어지는 중이다.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반면, 이후 2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에서 그 판결이 유지될지 여부와는 별도로, 이미 2심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는 큰 수모를 겪은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로부터, 우리가 영원히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반복해야 할 필요성이 자동으로 도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은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민주주의인가’, ‘어떤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가’를 각 정치 세력이 명확히 밝히고, 이론화하고,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며 상호 견제와 비판을 주고받는 건강한 정치 문화를 확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통상적인 민주주의의 절차를 뛰어넘어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1987년에 대한 재평가 위에, 또 하나의 도발적인 역사적 가정을 해볼까 한다. 만약 2008년의 촛불시위가 더욱 격화되어, 그 시점에서 이명박 정권이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 또한 당시의 촛불시위에 숱하게 참여했다. 경찰에 의해 연행될 위기에 처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대중 집회를 기회로 삼고 있던 공무원 노동조합의 선전전을 도우며, 촛불시위가 잘 진행되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2015년 현재,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내가 내렸던 판단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만약 그때 정부가 전복되는 정치적 변화가 발생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 역시 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벌여 정부를 뒤엎으려 했을 것이다. 마치 지금의 태국처럼 끝없는 대중 시위와 쿠데타로 그 어떤 정부도 민주적 절차만으로는 안정을 얻지 못하며, 결국 군부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나간 사건에 대한 가정일 뿐이다. 또한 사회과학은 실험이 불가능한 학문이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시점에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 금융위기로 경제적 난항에 부딪혔던 태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다소 섬뜩한 반면교사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4.19 혁명을 바라보던 시인 김수영이 옳다. 민주주의의 싸움은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의 방식은, 단지 많은 수의 사람들이 투표를 하거나 거리에 뛰쳐나오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이 ‘민주적이냐’라고 묻는다면, 어떤 확실한 개념 정의를 묻는다면 그것은 본 역자가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국가가 내란이나 외환에 휩쓸려 있지 않는 한, 정당한 선거로 뽑힌 정부를 시위로 쫓아내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매우 어려운 행위라는 것 말이다. 그 최소한의 룰을 누군가가 깨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퇴행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질 뿐이다.


5.

이 부록에서 본 역자는 두 개의 도발적인 역사적 가정을 해보았다. 1987년 대선이 양자 구도로 치러졌다면 어땠을까. 2008년의 촛불시위에서 정부가 전복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을까.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아마도) 가장 먼저 꼼꼼하게 읽은 한국인으로서, 나는 두 질문에 대해 모두 부정적인 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고,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두 발자국씩 물러서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조건을 훌쩍 뛰어넘게 해줄 수 있을 만한 ‘도약’의 순간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1987년의 승리는 다양한 세력들이 연합해 최소한의 목표인 대통령 직선제에 집중했기에 가능했다. 그 세력들이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았을 뿐더러 바람직한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2008년의 실패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부가 없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외의 다른 의제가 집회를 주도하지 못했던 탓이 컸다. 그 실패가 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최악의 후퇴로부터 막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2015년 현재, 세계 정세는 또 한 번 급변하고 있다. 미국은 셰일 가스 개발을 통해 왕성한 원유 수출국으로 거듭났으며, 수니파 테러범들을 지원하는 '불량국가'로 낙인찍혔던 이란과 대대적인 핵 협상을 타결했다. 왕년의 영원한 동맹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을 향해 큰 당혹감을 표하는 중이다. 중국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고, 일본은 한 걸음씩 이른바 '정상국가'의 길로 향한다. '중국 모델'은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미국의 새로운 중동 정책은 전지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 모든 것들에 대해 함부로 넘겨짚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들이 대한민국에, 그리고 북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리는 늘 숙고하고 예측하며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민주적인 국가로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 아니다. 최악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비상시국’을 함부로 가정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더욱 심한 곤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다양한 민주주의자‘들’이 늘어난다면, 대한민국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16-04-14

[북리뷰] 부정선거, 아는 만큼 보인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프로파간다 편집부, 프로파간다, 8천5백원.

2012년 대선의 후폭풍은 심각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 두 후보의 표를 합치면 99%가 넘었다. 다시 말해 '이탈표'가 존재하지 않는 양자구도의 진검승부였다. 투표율은 75%를 넘겼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100만표 차이가 났다. 일부 지지자들은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고,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개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개표 조작 논란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던 제16대 대선 이후에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헛소동에 지나지 않은 '수개표 논란'과 달리,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남겼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야당 후보를 비난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 온갖 혐오발언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음지'의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독립 출판사인 프로파간다가 '편집부'의 이름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사이버 여론전이 초래한 부정선거 시비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금, 민주주의 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부정선거를 척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9쪽) '편집부'는 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 이래 등장한 온갖 부정선거 방식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고, 이승만부터 좌익효수까지 다양한 주요 인물들을 검토하며,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복습의 시간까지 갖게 한다.

이 책은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서 나타난 여러 부정선거 기법과 사건 등을, 그림을 곁들여 알기 쉽게 정리한 도감이다. 대부분은 어느덧 희미해진 오래된 부정선거 사례들이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한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대한 교육 자료, 부정선거 기법의 세부에 대한 해설서로서, 필요한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로 소용되길 기대한다.(10쪽)

그렇게 소개되는 부정선거의 기법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악랄하고, 때로는 노골적이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성의 야당 참관인에게 '누군가'가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였다. 참관인이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표를 바꿔치기(전문 용어로 '환표')했다. 그나마 수면제를 먹은 경우는 점잖은 것이었다. 다른 투표 참관인은 자유당이 동원한 폭력배에게 얻어맞고 쫓겨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닭죽 사건'이다.

'피아노표'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개표원이 몰래 숨겨둔 인주를 손가락에 묻힌다. 자신이 떨어뜨리고자 하는 후보의 표가 나오면,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인주를 발라서 무효표를 만드는 것이다. 어린애 장난처럼 들리지만 불과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기도 하는 총선의 경우 특히 그 효과가 크다. "피아노표는 한국 부정선거 역사상 손꼽히는 '아이디어'이며 '가성비' 측면에서도 탁월한 수법"(39쪽)이라고, 프로파간다 편집부는 경탄을 내뱉는다.

공정한 선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결의를 다지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투표할 것이고, 정당하게 승리할 것이다.


2016.04.26ㅣ주간경향 1173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4-11

[별별시선]이념대로 찍으려니…

나는 진보 정당의 고집불통 지지자였다. 진보 정당 지지자들은 대체로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구에 진보 정당의 후보가 없으면 민주당 계열에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대선은 중요한 무대니까 잠시 내 정치적 의지를 접어두고 ‘비판적 지지’를 하는 것 역시 흔한 패턴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 정당, 후보에게만 표를 주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백지 투표를 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그러한 신념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새삼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 정당들이 보여주는 ‘이념’ 중 그 무엇에도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순서에 따라 기호 4번 정의당부터 짚어보자. 지난 7일, 경찰은 네덜란드와의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소라넷’의 핵심 해외 서버를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소라넷은 몰래카메라, 도촬, 사적인 모습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가 올라오는 성인 사이트다. 속칭 ‘골뱅이’라는, 심신상실 상태에 빠진 여성에 대한 강간 모의와 실행 ‘인증’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나랑 사귈 때에 너는 저런 체위 한 적 없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내 꼬추가 더 크다”고, 정의당과 총선 홍보 영상 및 공식 테마송 협약을 맺은 ‘중식이 밴드’는 노래했다. ‘야동을 보다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노래는, 위에서 우리가 말한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를 보던 남자가 자신의 옛 여자친구를 발견하고 신세 한탄을 하는 내용이다.

논란이 커지자 정의당은 여성위원회를 앞세워 사과의 말을 전했으나 어떤 후속 조치도 없다. 공개된 당원게시판에서 당원들이 목청 높여 반여성주의적, 심지어 성폭력에 가까운 언사를 내뱉는데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의 공식 홍보 밴드는 ‘소라넷 보는 남자’의 입장에서 쓰인 노래를 부른다. 소라넷에 대한, 여성 인권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투표용지를 한참 훑어내려가면 기호 14번 노동당이 나온다. 노동당은 정의당처럼 여성 인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포을 선거구에 출마한 하윤정 후보의 경우 대단히 적극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선거구는 마포을이 아니다. 정당으로서의 노동당을 평가하기 위해 선거 공보물을 펼쳐든다. 한숨이 나온다.

노동당은 “재벌증세 기본소득”을 핵심 구호로 내세우고 있다. 증세는 복지 확대를 위해 필수적이므로 원론적으로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본질적으로 ‘작은 정부 옹호론’이다. 진보 진영에서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절대악으로 상정하던 ‘신자유주의’와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국가 기구를 축소하고 보다 효율적인 시장을 통해 복지를 실현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판을 하면 기존의 복지는 그대로 두고 재벌에만 세금을 거둬서 나눠주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재벌증세 기본소득’이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5000만 국민에게 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연간 180조원이 필요하다. 2015년에 정부가 고용, 보건, 복지에 지급한 총예산이 115조7000억원이다. 나는 노동당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이런 공약을 내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기호 15번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녹색당은 ‘탈핵’과 ‘탈성장’을 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 원론 차원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탈성장’이다.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다. 녹색당은 실업률을 끌어내리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20대 총선의 풍경이다. 진보 정당들이 여성 인권 문제를 회피하고, 구체성 없는 ‘대안’을 주워섬기며, 대중적 분위기만 좇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세계의 문제를 올바로 파악, 구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진보 정치 운동을 희망한다.


입력 : 2016.04.10 20:52:00 수정 : 2016.04.11 10:21:1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02052005&code=990100#csidxebeb33135be7959895cfac39f001e60


덧붙임: 2016년 7월 현재, 여성혐오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은 한층 더 우스꽝스러워지고 있다. 메갈리아4 소송 지원을 위한 후원 티셔츠를 구입했던 김자연 성우가 그 사실을 인증하였고, 넥슨은 다음날 김자연 성우가 녹음한 캐릭터 음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넥슨측에서는 '계약금을 모두 지불했다'며 정당성이 있다는 듯 항변했지만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프리랜서가 생산물을 제공할 때에는, 그 창작물이 계약 기간동안 사용된다는 것 역시 계약의 일부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것은 부당한 계약해지이며, 진보 정당으로서의 정의당은 당연히 김자연 성우의 편을 드는 것이 옳았다.

문제는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그렇게 온당한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한 다음 벌어졌다. 중식이밴드가 뭐가 문제냐고 난리를 치던 바로 그 정의당의 여성혐오적 남자 당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온라인 몰매를 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노회찬 원내대표는 그 성명을 공식적으로 철회시켰고, 오늘 심상정 대표는 "당의 하부단위에서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고, 또 논평으로 야기된 당 안팎의 파장에 대해 중앙당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렸다. 결국 여성혐오적 당내 목소리에 그 당을 대표하는 두 거물이 굴복했거나, 애초부터 적극적으로 여성혐오와 맞설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칼럼에서 표명한 바와 같이 나는 '이념적'으로 현재의 진보 정당들과 함께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본질적으로, '당 내의 옳지 못한 집단적 항의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적어도 정의당과는 함께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내부의 여성혐오에 굴북하는 정당이 무슨 국가적 악과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난 칼럼들을 갈무리하는 도중에 적어둔다. (2016/07/29)

2016-04-09

[북리뷰] 웃음과 냉소의 경계, 혁명의 길을 묻는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스르자 포포비치, 문학동네, 1만5천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의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특별히 서문을 추가했다.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에이전시로부터 한국의 한 저명한 출판사가 이 책을 출간하고 싶어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 때, 맨 처음엔 한국의 북쪽에 있는 이웃--2,500만 명의 인구가 세계 최악의 독재 아래 고통 받고 있는 곳--때문이겠거니 했습니다."

물론 농담인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북간의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같은 소리는 한국인끼리 주고받는 '인사이더 조크'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정권의 무릎을 꿇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으며,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니 말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누굴까 해서 책날개를 보니 옛 기억이 났다. 2000년대 중후반, 미국의 국제 정치 전문지 〈Foreign Policy〉의 한국어판을 만들 때 나는 이미 스르자 포포비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세르비아의 독재자를 '유쾌한' 방식으로 몰아낸 대중운동의 지도자. 나는 그가 쓴 글의 한국어 번역본을 편집했거나, 그것이 단신이었다면 내가 손수 한국어로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잊혀져 있던 스르자 포포비치는 단행본으로 내 책상 위에 돌아왔다. 미국의 리버럴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혁명'과 '저항'을 포장해주는 장사꾼이 아닐까 하던 의혹은 접어둔지 오래였다. 그는 실제로 독재 권력과 맞서 세르비아를 넘어 동유럽 전체의 정치적 변화를 견인해낸 중요 인사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의 표지와, 짐짓 유쾌한 척 하는 그의 말투에 지나치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SNS에 '웃기는 짤방' 몇 개 올린다고 세상이 알아서 바뀔 것처럼 떠드는 그런 종류의 책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이 책은 사회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독재자를 그럼 대체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가?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34쪽) 엘리베이터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일이어도 괜찮다. '작은 성공'을 쌓아나갈 수 있다면, 그래서 독재자의 권위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한 작은 도전이 가장 큰 변화를 낳은 사례로, 저자는 간디의 '소금 행진'을 꼽는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꿈꾸었지만, '인도를 독립시키라'며 영국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았다. "단순하고 논란의 여지없는 대의를 위해 모든 인도인이,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어 싸울 필요가 있었다. 1930년, 간디는 결국 답을 찾았다. 소금이었다."(55쪽) 영국에 세금을 내는 대신 바닷가까지 걸어가 소금을 만들겠다는 간디의 행진은, 처음에는 77명의 추종자로 시작했으나, 결국 수만 명이 동참하는 대규모 시위가 되고 말았다.

웃음을 잃지 말라, 독재자에게 겁을 먹지 말라. 모두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핵심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작은 비폭력 투쟁을 하나씩 승리로 이끌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임계점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풍자에 힘을 쏟는다며 냉소만 퍼뜨리고, 모든 투쟁을 '이번 투표를 위한 것'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변화는 멀어진다.

쫄지 마? 그건 기본이다. 더 중요한 건 웃음을 터뜨리되 냉소하지 않는 것이다. 간디의 소금 행진 이후 인도의 독립까지는 17년이 걸렸다 


2016-04-07

마광수,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한겨레21』, 1997년 3월 6일, 제147호.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마광수/ 연세대 강사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머리 좋기로 이름 난 독일 국민들은, 어째서 히틀러를 자기네 지도자로 떠받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히틀러의 카리스마적 독재에 왜 그토록 열광했던 것일까? 히틀러는 군사쿠데타나 폭력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인물이 아니다. 여론조작을 통했든 감언이설에 의했든, 어쨌든 그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히틀러에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다. 우선 1차대전 뒤 패배감과 무력감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가 민족적 긍지를 심어주고, 또 경제발전을 위한 긍정적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영웅적 카리스마로 백성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는 언제나 난세에 출현하게 마련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때가 바로 그 ‘난세’의 정점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 뒤의 혼란기를 틈타 황제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경우다. 히틀러는 1차대전 뒤의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민주정부의 무력한 통치에 대한 민중들의 반감을 등에 업고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란기라고 해서 무조건 카리스마적 독재자가 출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독재정치를 은근히 그리워하는 국민들의 집단적 정서가 있어야만 비로소 독재자가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히틀러의 집권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그 가운데 가장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정평을 받는 것이 바로 에리히 프롬의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다. 히틀러의 집권이 가능했던 것은 히틀러가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라, 당시의 독일 국민들이 대체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한마디로 말해 사도마조히스틱한 성격을 말한다.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절대 복종함으로써 마조히즘적 피학의 쾌감을 얻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가혹한 잔인성을 발휘함으로써 사디스틱한 가학의 쾌감을 얻는 심리가 사도마조히즘의 심리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인간은 스스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도모해 보지 못하고 언제나 독재적 보호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마치 평생 동안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자식과도 같다. 종교적 가부장제도가 확립돼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나 성적 억압이 심하고 관념 우월주의가 강한 나라의 국민들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기 쉽다. 나치즘 출현 당시의 독일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히틀러가 집권 뒤 에로틱한 내용의 서적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 한 증거다. 관념 우월주의는 또한 극기주의나 금욕주의와 통하는데, 히틀러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는 것도 그 역시 지독한 권위주의적 성격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틀러는 ‘국가와 민족’을 섬기며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맛보았고 국민들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부림으로써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봤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섬기며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맛보았고, 유태인들을 학대하면서 사디스틱한 쾌감을 맛봤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곧바로 관료주의적 성격과 통한다. 윗사람에겐 약하고 아랫사람에 강한 것이 바로 관료주의적 성격인데 이는 개성없고 야심만 많은 출세주의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성격이다. 그들은 주체적 자아가 없기 때문에 지위에 의해서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받으려 한다. 그리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가장 효과빠른 수단이 ‘보스에 대한 아첨과 절대 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력한 아버지’에 의지하는 봉건윤리


우리나라처럼 권위주의가 만연한 나라도 달리 없을 것이다. 수구적 봉건 윤리가 여전히 판치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나 ‘자유화’를 아무리 소리높이 외쳐도 권위주의는 사라질 줄을 모른다. 예전에는 단순히 군사독재가 권위주의적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원흉이라고 생각하여 그 해결책의 제시도 쉬웠다. 그러나 외형상 군사독재 문화가 사라진 지금, 권위주의 문화를 없앨 수 있는 뾰족한 처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저 ‘도덕성 회복’이니 ‘의식 개혁’이니 하는 투의 막연한 처방만 제시되고 있을 뿐 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다시 한번 금욕주의적 봉건윤리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강력한 아버지’의 관념에만 의지하려고 하는 정신편향의 봉건윤리는 자아상실을 가져오고, 성적 억압에 따른 ‘화풀이 문화’를 가져온다. 국민 각자각자가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권위주의 문화에 따른 상명하복과 복지부동의 풍조가 사라져 우리나라는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광수, "사도마조히스틱한 사회", 『한겨레21』, 1997년 3월 6일, 제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