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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1

'스펙 도핑' 적발된 조민…의사면허 박탈 결코 가혹하지 않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스펙 도핑' 적발된 조민…의사면허 박탈 결코 가혹하지 않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지난 1월 전공의 선발 면접을 보기 위해 경상대병원에 모습을 드러낸 조민씨. 배경은 숙명여고 쌍둥이 성적 비리 관련 시위 장면. 그래픽=김은교 기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두 명의 자녀를 본인이 재직 중이던 경북대 의대에 편입시키는 데에 그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의혹 탓이다. 정 후보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억울하다"고 호소했으나 논란은 오히려 계속 번지고 있다.

논의가 격해지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녀 사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다. 한편에서는 "조국 가족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명백한 서류 위조 등 불법이 드러난) 조국 사태와는 다르다"는 항변이 들려온다.
자녀의 의대 입시 부정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과연 조국 사태를, 특히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정입학 사건을 과연 제대로 처리했을까, 아니 올바로 이해하기나 했을까? 이를 답하기 위해선 몇 가지 질문을 우선 던져야 한다.
조민에게 가혹? 그 반대 아닌가?
첫째, 조민씨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입시 부정으로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 입학이 취소됨에 따라 그의 의사면허도 조만간 박탈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의전원을 나와 이미 인턴 수련까지 한 마당에 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가혹하다고 비판한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을 자식이 대신 처벌받는다는 투다.

하지만 조민씨의 의사 자격 상실은 결코 '처벌'이 아니다. '자격 상실'이다. 대학 입시를 비롯해 모든 시험은 수험자에게 특정한 자격과 행동 방침을 요구한다. 가령 수능 시험장에는 지정된 필기구와 아날로그 시계 외에는 그 무엇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만약 누군가 전자시계를 차고 있다가 발견되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설령 그 기기가 시험에 전혀 쓰이지 않아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할지라도 해당 시험은 무효 처리가 된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 상식이 왜 조민씨의 입시에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그 어떤 입시든 허위 서류를 제출하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설령 조 전 장관이 SNS를 통해 밝힌 변호인들 입장처럼, 제출된 부정 서류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해도 부정행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부정행위를 했으면 실격 처리를 당하는 게 상식적인 경쟁의 룰이다. 도핑을 한 운동선수가 그 약물이 실제 경기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무관하게 실격 처리당하는 것과 같다. 쉽게 말해 조민씨와 그의 부모는 '스펙 도핑'을 한 것이고, 그게 적발돼 실격당한 것이다.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에서 두 명의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고 항변한들, 아버지인 숙명여고 교사의 시험지 유출 의혹이 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받은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는 걸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조민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중앙포토]
진짜 희생자는 조민 때문에 낙방한 응시자
둘째, 조민씨는 단순히 부모 욕심이 빚어낸 희생자일 뿐인가? 여기에선 희생자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지금 외견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다른 가정을 한번 해보자. 만약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면 딸은 희생자가 될 일도 없었다. 오히려 의사라는 선망의 직업을 가진 '엄친딸'로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을 거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현재 겪고 있을 내적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고통을 겪는다고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오히려 가해자다. 조 전 장관과 그의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시피 그는 입시 부정의 직접적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본인의 입학 전후 사정을 잘 알고 가담한 정황이 있다.

이 사건의 진정한 희생자는 따로 있다. 조민씨 때문에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하지 못한 미지의 수험생이 바로 그 희생자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는 없으나, 알 수 없는 그 응시자를 향해 때늦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조민은 '아이'가 아니다
셋째, 조민씨에 대한 비판은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인가? 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하지만 여기엔 긴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그가 공적 영역의 인물이 아니라서 그렇다. 게다가 미모의 젊은 여성이라 그를 향한 대중적 손가락질에 부당한 정념이 실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많은 조국 지지자들이 하듯이 이미 30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 조민씨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인격적으로 낮춰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을 어른 취급하지 않는 것만큼 심한 인격 모독은 찾아보기 어렵다.

조민씨가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한 건 2015년도다. 만 24세로,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닌 어엿한 성인이었다. 그를 독립된 인격체로, 성인으로 대해야 한다. 이는 그가 연루된 범죄에 대해 성인으로서 응당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다. 칸트 '법철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다.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을 지닌 존재다. 자신이 행한 일이 있다면,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자신의 어깨에 짊어질 때 온전한 인격체가 된다. 조민이라는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 얼마나 연루되어 있는지 명백히 밝히고 정확한 죄책을 묻는 것이다.
'숙명여고 시험 정답 유출' 사건으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지난해 10월에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특정인을 향한 눈먼 비난으로 여겨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와 관련해 조민씨를 그저 '희생자'로 간주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당시 미성년자였던 '숙명여고 쌍둥이'들도 끝내 혐의를 부인하자 재판 과정에서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신분이 전환되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거짓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조민씨 사례가 다른 식으로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입시는 공정과 상식의 잣대
우리는 부산대 의전원 입시 문제를 철저하게 밝히고 지나가야 한다. 조 전 장관 부부를 비롯해 당사자인 조민의 책임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법적인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호영 후보자뿐 아니라 그와 유사한 입시 의혹, 스펙 품앗이, 기타 등등 우리 사회의 공정을 의심케 하는 여러 사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세울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불거져 나온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부정의 팩트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윤석열 당선인만 모르고 있다뿐이지, 상식적인 국민 대다수는 그런 방향을 원하고 있다.

2022-04-06

시어머니만 둘…교육 정치판 만든 '교육감 직선제' 없애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시어머니만 둘…교육 정치판 만든 '교육감 직선제' 없애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그래픽=김현서

지난달 30일 '서울시 교육감 중도·보수 진영 단일화 기구' 주관 행사가 열렸다. 행사 내용이 곧 단체 이름이었다. 3선에 도전하는 진보 진영 조희연 현 서울시 교육감에 맞설 중도·보수 진영의 단일 후보를 뽑는 경선이 치러졌다. 지난 18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지낸 조전혁 혁신공정교육위원장이 이날 단일 후보가 됐다. 그런데도 보수 지지자들은 불안해한다. 보수 진영 조영달 서울대 사범대 교수가 단일화에 불참한 탓이다. 만약 조 교수가 출마하면 보수표가 나뉘어 조 교육감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오는 6월 1일 치러질 교육감 선거 풍경이다. 늘 해왔으니 그러려니 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들 교육에 이런 진영 대결 선거가 도움이 될까? 교육감 직선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육감 직선제 10년은 '교육의 정치화'라는 폐해만 낳았다. 일각에서 직선제 폐지 주장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직선제 유지론자들은 헌법 제31조 4항을 언급한다.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했으니 교육감은 직접 뽑아야지, 시·도지사가 임명하거나 간선제로 뽑으면 안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지난 교육감 선거를 되짚어보자.
교육의 자주성? 교육감의 등장으로 자주성이 생기기보단 시어머니만 둘(교육부와 교육감)로 늘어났다.
교육의 전문성? 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그리고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전직을 떠올려보자. 초중고 교육 현장과 무관하게 연구하던 대학교수였다. 대학 교육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감 업무와는 괴리가 있다.

교육을 정치판 만든 직선제
2017년 9월 청와대 앞에서 함께 시위중인 곽노현·조희연 전·현직 서울시교육감. 두 사람 모두 진보 성향 교수 출신이다. [연합뉴스]
정치적 중립성은 어떨까? 특히 이 부분에서 헛웃음이 난다. 조희연 교육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참여연대를 만든 장본인이고, 조전혁 후보는 18대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다른 지자체에서 출마하는 교육감 후보들 역시 정치색이 뚜렷하다. 현재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성' 보장 운운하는 건 얄팍한 자기기만이다.
물론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교육감 직선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다. 오히려 직선제 탓에 교육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걸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목격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전체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피해를 봤다.

모든 선거는 기본적으로 고비용 저효율이다. 후보들은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관리를 위해선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투표 행위만도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든다. 모든 자리와 정책을 투표로 결정하는 게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또 민주적이지도 않다.

사실 전국의 교육감을 한날한시에 동시에 선거로 뽑는 나라는 흔치 않다. 미국은 연방 국가답게 교육 정책 관련 권한은 각 주가 지니고 있다. 25개 주(州)는 주 교육위원회가, 11개 주는 주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한다. 직선으로 뽑는 주는 14개에 지나지 않는다.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각 주 교육장(교육감)은 주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다. 영국·프랑스·일본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가 중심의 교육 전통이 강한 프랑스는 총 30개의 학구장(교육감) 모두를 대통령이 임명한다.
근시안적 교육 정책 쏟아내는 폐해
선진국들은 왜 교육감을 직선제로 뽑지 않을까?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단기적으로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차이를 불러온다.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지는 현 체제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이며, 가장 철저하게 지방자치제를 운용하는 미국에서도 교육 정책만큼은 '국가 대계'로 인식해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다.
2007~2010년 미국 워싱턴 D.C. 교육감을 지낸 재미교포 미셸 리(이양희). 교사 출신으로 공교육 개혁에 앞장서 화제가 됐다. 애드리언 펜티(Adrian M. Fenty) 당시 워싱턴 D.C. 시장이 그를 임명했다. [중앙포토]
우리는 정반대다. 교육감의 교육 철학,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정치적 성향에 따라 특정 방향의 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한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다른 교육을 받는다. 이게 '다양성'이 늘어난 걸까? 아니다. 교육감 선거가 만든 불필요한 교육 편차의 폐해를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감당한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세계 교육의 화두는 정보교육(computing)이다. 컴퓨터 사용법이 아니라 그 원리를 가르친다. 우리도 그 추세에 발맞춰 2018년부터 정보 과목을 초중고 정규 교과목으로 지정했다. 수업 일수는 교육감의 판단과 자율에 맡겼다. 그 결과,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차가 벌어졌다. 대구·세종처럼 정보 과목을 충실히 가르치는 도시도 있었지만 그 외 지역은 등한시한다. 교육감 취향에 정보교육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이렇게 손해를 본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교육감이 선출되었다고 선뜻 이사할 수도 없으니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선 교육감 선거로 교육 선택권이 늘어난 건 전혀 없다. 다만 정치적으로 줄 잘 서고, 단일화 잘하고, 선거 잘 치러서 교육감이 된 누군가가 애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실험'을 할 자유만 얻었을 뿐이다.

학생 볼모로 한 교육 실험 옳은가
이는 루터의 종교 개혁 초창기를 연상케 한다. 당시 루터가 말한 '종교의 자유'란 평민들이 알아서 교회를 택할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각 지역의 영주들이 가톨릭에서 벗어나 원하는 교회를 택할 자유를 의미했다. 평민들은 꼼짝없이 자기 영주가 고른 교회에 다녀야 했다. 평민 입장에서 보자면 루터 이전이나 이후나 종교의 자유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독일과 유럽이 30년 전쟁에 빠져든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도 10년째 교육 전쟁에 휩싸여 있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지난 10년간 사교육은 줄지 않았고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20세기 내내 유지해왔던 국가 중심의 일률적 교육 체제가 지니고 있던 폐단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감 직선제만 정답인 것처럼 주장하는 건 옳지 않다. 교육감은 투표로 뽑을 자리가 아니다. 광역지자체장이 선발하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담지할 수 있는 교육위원회가 임명하는 등 더 나은 해답을 찾아야 한다.

2022-03-12

우크라이나 참전한 이근에게 살인죄를 묻겠다고요? [노정태가 고발한다]

우크라이나 참전한 이근에게 살인죄를 묻겠다고요? [노정태가 고발한다]

SNS에 우크라이나 도착 소식을 올린 이근. 배경은 러시아군 포격으로 불타는 하르키우시. 그래픽=전유진  

먼저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나는 '이근 대위'라는 유튜브 셀럽(유명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끈 유튜브 방송 '가짜사나이'에서 그가 반복하던 "너 인성에 문제 있어?" 같은 유행어는 사실 왜 유행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가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로 떠났다. 참전이 목적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외교부는 여권법 위반에 대한 행정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의 규정된 사전허가 없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외교부는 현재 여권법에 따라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여권에 대한 행정제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여권법 위반에 따른 행정 제재는 여권 반납 명령→(불응시) 여권 무효화→새 여권 발급 제한 등 3단계 조치로 이뤄진다.
오웰도 처벌해야 했을까
우크라이나 국제 의용군으로 참전한 캐나다 코미디언 앤서니 워커. [트위터 캡처]
 
하지만 나는 이근의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전을 반대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정부가 이근이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이들의 참전을 막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서 그렇다. 왜 대한민국은 국민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의 나라 전쟁에 나설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걸까.

이쯤에서 조지 오웰을 한번 소환해보자. 193612월, 그는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의용군에 입대했다. 처음엔 저널리스트로 그곳에 갔지만 난생처음 가본 카탈루냐에 발을 딛자마자 의용군에 들어가 버렸다. 당시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은 무정부주의적인 카탈루냐에 매료됐고, 프랑코 정권에 맞서 카탈루냐를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느껴서 기자가 아닌 군인으로서 스페인 내전에 가담했다.

전쟁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다. 전장의 공포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같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 투쟁과 내분이었다. 특히 소련의 지원을 받는 스탈린주의자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공통의 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프랑코 정권의 파시스트들보다 때로는 더 악독했다. 결국 오웰은 몸과 마음의 부상을 끌어안은 채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원고를 쓰려고 그의 『카탈루냐 찬가』를 다시 읽어봤다. 어디에도 영국 정부가 오웰의 스페인 의용군 입대를 처벌했다는 내용이 없다. 누군가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타국에서 목숨을 거는 일은, 권장할만한 일이 아닐 수는 있어도 금지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상식으로 깔려 있어서일 것이다.

영국·캐나다·미국 등은 여전히 그런 상식이 통한다. 심지어 영국과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참전을 원하면 참여해도 좋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 역시 법적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시아와 국가 차원의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만 침략자 러시아와 싸우고 싶은 국민이 있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인부대 되는데 '이근'은 안 된다?
지난 8일 화상으로 영국 하원 연설을 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
 
이런 상식은 한국에서는 상식이 아니다. 비단 강경한 정부의 태도뿐만이 아니라 이근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다룬 기사에 달린 일반 국민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이유로 그의 우크라이나 행을 비난한다. 첫째, 한국인의 우크라이나 참전은 외교 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실제 전쟁에 뛰어들면 총, 칼, 폭약 등을 사용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데, 그건 범죄다. 셋째, 한국인이라면 한국을 지켜야 한다.

이 비판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이근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2만여 명의 외국인 입대 지원자들은 모두 전쟁을 하려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속성으로 시민권을 발급받은 외국인들은 '국제 군단'(International Legion) 등 별도 편제로 묶여 우크라이나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법적·제도적 절차를 갖추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반론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원래 한국인이라도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작전을 수행하면서 러시아군을 사살한다면 그것은 통상적인 교전 행위일 뿐이다.

프랑스에는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외인부대'가 있다. 이들 외인부대는 대개 프랑스 국경 바깥에서 작전을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실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한국인 중에도 이 외인부대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프랑스군의 일원으로서 다른 어떤 나라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고 때로는 사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한국과 제3국의 외교 갈등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전쟁 중 적군을 살상하고 오면 살인죄를 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군인이 작전 중 수행한 행위는 통상적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할 수 없다.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엄혹한 현실이 있는데 이를 내버려 두고 굳이 외국의 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떨까.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에겐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복무를 마친 사람에게까지 그런 논리를 적용하는 건 무리다. 대한민국 남성은 국가의 '병역 자원'이기에 앞서 양심과 의지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다.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참전에 살인죄를 묻겠다니
지난 1일 영국 거주 우크라이나인들이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의 참전을 허용하고 있다. [EPA]
 
문제는 법이다. 우리 법은 안타깝게도 그런 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형법 제 111조 사전죄(私戰罪)다. 이에 따르면 "외국에 대하여 사전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용군으로 외국 군대에 들어가 참전하면 외교상 문제를 일으켜 국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 조항이 만들어진 주된 이유다.

그런데 지금도 한국인들은 프랑스 외인부대, 혹은 한국 국적을 가진 채로 미군에 입대하기도 한다. 지금껏 그 누구도 그런 선택을 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거나, 조롱당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척당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국제 군단을 프랑스 외인부대나 미군과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나 근거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한국인의 우크라이나 참전을 찬성하지 않는다.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국내법을 어기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겠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쟁에 뛰어들어 우크라이나를 돕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의지를 국가가 법으로 틀어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영하의 책 제목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감수하고서라도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머나먼 땅,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서 그 나라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뒹굴다 목숨을 잃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가 자국민의 양심적 병역 거부마저 존중하는 시대에, 양심적 병역 수행 역시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나도 안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유주의자로서 우리 사회에 작은 생각의 균열을 내고 싶다.
이근을 비롯해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2022-02-26

정권 인사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크라 조롱…그 입 다물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정권 인사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크라 조롱…그 입 다물라 [노정태가 고발한다]



왼쪽부터 박범계 법무부 장관, 문재인 대통령,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그래픽=김영옥 기자
 
"러 침공 예측 못 하고 위기 키운 '아마추어 대통령'". 국내 한 언론이 지난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외신을 종합한 짧은 기사에 단 헤드라인이다.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현 법무부 장관인 여당 소속 박범계 의원이 트위터에 이 기사를 포스팅한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공인이, 침략당한 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모양새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 불참을 말하다 뒤늦게 제재 동참으로 선회해 인심만 잃었다.
외교원장이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
러시아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를 조롱한 건 박 장관뿐만이 아니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도 SNS 댓글로 "우크라이나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주요인이고, 그다음 미국과 러시아의 국익을 내세운 위정자들의 정치적 계산의 합작품…. "이라고 평했다. 이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에 속해 있거나 정권 친화적인 인사들이 이와 비슷한 과격한 표현을 쏟아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직 코미디언이었다는 점을 특히 조롱거리로 삼는다. 가령 역사학자라며 노골적인 어용 행보를 일삼는 전우용은 트위터에 "무식하고 무능한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지가 안타깝다"다며 "국민이 무식한 통치자를 선택하면, 무식한 통치자는 대개 '재앙'으로 보답한다"는 극단적인 비하 발언을 내뱉었다.
박범계 SNS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이 단 댓글. [페이스북 캡처]
 
개전 직후 속절없이 무너지는 우크라이나를 보며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잠깐 검색한 후 현 대통령 젤렌스키가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희극 배우였다는 사실을 끄집어내 웃음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 혹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료나 지식인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만 묘사해서는 안 된다.
개도국 멸시하는 '꼰대 의식' 투영
그런데 왜 재야 지식인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다들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걸까. 나는 586 세대, 더 나아가 진보 진영 일각에 팽배한 예능인 혐오와 개발도상국 멸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라고 본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 붕괴로 탄생한 나라다. 건국 30년을 갓 넘긴 신생국이다. 정치·경제 등 사회 전반이 제자리를 잡을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숱한 대내외적 풍파를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의 현황은 비참하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부패가 심각한 나라다. 짐작할 수 있듯이 1등은 러시아다. 하지만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석유 및 천연가스를 가진 나라지만, 우크라이나는 다르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긴 어렵다. 정치적으론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혼란스럽다. 한편 우크라이나 경제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재벌, 즉 올리가리히에 의해 지배된다. 전임 대통령 포로셴코 역시 올리가리히 중 한 사람으로, 동유럽 최대의 초콜릿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된다 하여 그 나라가 반드시 부패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랬다. 친서방파가 집권하든 친러파가 집권하든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으니 국민들은 염증을 냈다.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의 영향력에 휘둘려왔으나, 2013년 유로마이단 시위 후 유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러자 러시아는 2014년 군사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이후 우크라이나 동쪽 돈바스 지역에서는 반정부세력을 조직, 포섭, 지원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전쟁을 벌여왔다. 2022년 2월 현재 전면전이 벌어졌으나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8년째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코미디언 대통령 당선은 부패 반작용
젤린스키의 대통령 당선은 이런 맥락에서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배우 출신으로, 2015년부터 '인민의 일꾼'(Servant of People)에 출연해 큰 인기를 누려왔다. '인민의 일꾼'은 시골학교 선생님이 SNS에 올린 정치 비판 영상을 통해 국민적 인기를 얻어 정치권으로 진출하여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정치 풍자 시트콤이다. 답답하고 암울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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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지하철역 안에 시민들이 대피해 있다. 이날 새벽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선언하면서 침공이 시작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렇다고 코미디언을 대통령으로 뽑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개그와 다큐를 구분하지 못하나? 박범계 장관과 전우용을 비롯한 대다수 586들이 이런 경멸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다. 건국 이후 30년간 얽히고설킨 정경유착을 해결하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

2019년 대선 당시 젤렌스키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2차 결선 투표에서 73.19%의 득표율로 전임 대통령 포로셴코(24.48%)를 압도적 표차로 눌렀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시트콤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바보 멍청이여서가 아니다. 처음 정치에 뛰어든 신인을 지지하여 단번에 정치적 구도를 뒤흔들지 않으면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끊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젤렌스키가 법학 석사 엘리트라는 점을 알고 보면 더욱 그렇다. '코미디'라는 키워드를 빼고 본다면, 우크라이나의 2019년 선거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슷한 일은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투자회사 출신 엘리트 마크롱이 전광석화처럼 나타나 대통령이 되고 본인의 지지 정당을 원내 제1당으로 만들었던 것과 사실상 동일한 현상이다. 기존 정치권에 통째로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열망이 뭉쳐, 기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몹시 열악하다. 2013년, 우크라이나의 이웃 폴란드에는 약 22만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2019년 현재 120만여 명으로 늘었다. 유출 인구 상당수는 고학력, 고소득, 고급 인력이다. 이 추세가 지속할수록 친서방파는 선거에 이기기도, 설령 이긴다 해도 우크라이나를 개혁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도 어렵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새벽 연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물론 젤렌스키 정권은 여러 약점을 드러냈다. 특히 인재풀이 부족한 탓에 젤렌스키와 가까운 방송 관계자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젤렌스키의 무능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젤렌스키를 택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그가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뽑지 않았나. 실제로 젤렌스키는 이전 정권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강력한 올리가리히 규제 법안을 연이어 내놓았다. 유효성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원하던 방향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정치 전체를 뒤집어버릴 '아웃사이더'를 원했는데, 우리가 과연 그 선택을 비합리적이거나 어리석다고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을까?
선거용 견강부회, 혐오 발언
해방 직후 영국의 한 언론인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 발언은 수많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두고두고 응어리로 남았다. 일제 식민지배가 끝나자마자 북한의 침략을 겪고 황무지가 된 국토 위에 두 주먹만 가지고 서 있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비참한 처지의 대한민국을 이런 식으로 조롱했던 말을, 우리는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박범계, 전우용, 그 외 민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내뱉는 폭언 역시 마찬가지다. 근엄한 유교적 사농공상 세계관을 깔고는 무려 한 국가의 대통령을 예능인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광대''천민'으로 취급하는 혐오를 내비친다. 더 나쁜 건 우크라이나의 사정과 역사적 맥락을 알지도 못하면서,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통째로 멸시하는 태도다.

입으로는 온갖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와 멸시를 드러내는 사람들 아닌가. 침략당한 외국을 두고 선거용 견강부회를 위해 그런 혐오 발언을 하는 걸 보면 너무 끔찍해서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2021-10-14

송영길 대표님, 내 표가 무시당한 순간 쿠데타 일어납니다


송영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후폭풍 속에서 매일 정신없고 힘드실 테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제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너무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혹시 '오징어 게임' 보셨습니까? 안 보셨더라도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시겠죠. 빚에 쫓기며 사는 한 남자가 어떤 '게임'에 참여합니다. 무인도에서 치러지는 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달고나), 줄다리기 같은 어린 시절 하던 놀이를 다 큰 어른들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단, 몇 번이건 실패해도 괜찮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한 번 탈락하면 두 번의 기회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주최 측이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니까요.

이런 잔혹 동화 내지 동심파괴 스토리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참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는 건 문화평론가들의 몫이니 전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보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느낍니다. 왜일까요? 돈이 많이 걸려서? 아닙니다. 탈락하는 사람을 죽여버리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바꿀 수도 없고, 나와 생각이 100%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와 평화롭게 공존해나갈 수도 없습니다. 탈락은 죽음이다, 이런 게임은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꺼내는지 짐작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퇴 후보에 대한 투표의 무효 처리 여부 때문입니다. 민주당 선관위가 만들고 송영길 대표님이 추인하신 현재의 해석은 제가 보기 옳지 않습니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말이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당규를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문제의 특별당규, 그러니까 '제20대 대통령선거후보선출규정'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제59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은 많지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곳은 찾기 어렵더군요. 해당 특별당규 PDF 파일 속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59조(후보자의 사퇴)  ①경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

②후보자가 투표 시작 전에 사퇴하는 때에는 투표시스템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도록 조치하되, 시간적‧기술적 문제 등으로 사퇴한 후보자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치 방법을 정한다.
민주당 선관위는 제59조 1항을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소급하여 무효가 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후보자가 경선 도중 사퇴했다면, 그 후 그 후보자를 찍은 표는 무효'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합니다.

민주당 선관위의 해석론을 '소급무효론', 저를 비롯해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을 '추후무효론'으로 이름을 붙이고 논의를 계속해 나가봅시다. 소급무효론의 가장 큰 문제는 결선투표제의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선투표란 무엇입니까? 유력 후보가 아닌 군소 후보 지지자의 표심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입니다. 결선투표 이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이겨낸 후보뿐 아니라, 여력이 부족해 중간에 사퇴한 후보자를 지지한 표심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표심입니다. 그걸 하루아침에 무효표로 처리해버리는 건 투표라는 제도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술래에게 걸렸다고 해서, 술래에게 총 맞아 죽는 것과 같은 부조리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59조 2항과 함께 놓고 보면 1항의 취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2항은 투표의 무효 처리 방법을 정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막아 무효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투표를 불가능하게 처리하고, 그게 안 된다면 선관위가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찍은 표를 무효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죠.

무효표 소급 불가 명확한데 

특별당규 제60조를 보면, 제59조에서 말하는 '무효'가 소급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제60조(당선인의 결정)  ①선거관리위원회는 경선 투표에서 공표된 개표결과를 단순합산하여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②제1항의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제60조 1항의 의미를 곱씹어봅시다. 어떤 투표가 유효투표인지 아닌지는 투표가 치러진 후, 개표하여, 그 결과를 공표할 때 정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세균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사퇴 전 득표했고, 개표하여, 공표된 2만3731표와 4411표는 유효합니다. 단 사퇴 후에 어떤 식으로건 그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무효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취지에 따라 상식적으로 바라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저는 평소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대표님께 이런 고언을 드리는 이유는 민주당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정의당이건 이 나라 정당들 모두 우리 민주주의의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입니다.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단독으로 지니고 있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가장 힘이 센 슈퍼 여당입니다. 이런 거대한 정치적 결사체에서 지지하는 후보자가 사퇴했다는 이유로 내 표가 탈락하는 경험을 국민에게 안겨줘서는 안 됩니다. 경선 규칙이 다소 애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과오를 인정하고 더 많은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룰을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민주'의 모습, 아닐까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불행히도 이 글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는 이재명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민주적 원칙이나 다양한 의견의 조화로운 공존을 택하지 않았죠. 대신 '민주주의란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개념의 편에 섰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오징어 게임 아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는, '오징어 게임'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순간 선거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내 표가 무시당했다는 좌절과 모멸감, 내 투표는 의미가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송영길 대표님이 이야기하신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예를 들어볼까요? 1956년 5월 5일, 제3대 대선 직전 야당 후보였던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은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뇌일혈(혹은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너무도 황망한 죽음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그가 병사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암살당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국민은 이미 죽은 신익희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습니다. 무려 185만 표가 나왔죠.

신익희가 얻은 185만 표. 그것은 무효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민심은 무효가 아니었죠. 이승만 정권의 지속을 더는 원치 않는다는 대중적 열망이 한껏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고, 4·19 혁명으로 축출되었습니다. 그 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부가 권력을 잡습니다.

무효표 무시하지 마십시오. 내 표를 무효로 만들지 말라는 유권자의 함성을 함부로 짓밟지도 마십시오. 정치권에서 그런 오만한 태도를 보일 때 국민 마음은 차갑게 식어갑니다. 결국 군사 쿠데타,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일이 벌어지는 토양이 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더불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정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언을 드립니다.

2021-10-08

내부고발로 얻은 의원 뱃지...이탄희는 이미 죽었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부고발자다. 천관율 전 '시사IN'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아마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성공한 내부고발자"다. 얼핏 보면 틀린 말 같지 않다. 판사 이탄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을 고발한 후 변호사로 아주 잠시 일하다가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캠프가 출범한 미래정치기획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선 결과에 따라 그의 관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탄희의 성공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 입성한 법조인 출신 젊은 의원 중, 역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주민 의원과 더불어 가장 전도유망한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탄희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개인적 영달에 그친다.

내부고발로 얻은 국회의원 뱃지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내부고발자는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에서 순식간에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로 전락한다. 우리 편에서 배신자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이걸 알면서도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웹툰 '송곳'의 명대사마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아닌 건 아니라고 한마디 하고야 마는, 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있다. 대체 왜일까.
내부고발은 조직에 속한 이가 감행하는 실존적 결단이다. 조직의 논리보다 사회적 상식을, 윗사람의 심기보다 나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부고발의 성공과 실패는 내부고발자가 이후 출세를 했냐 못 했냐 같은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내부고발자라는 험한 길을 택하면서 스스로 제시했던 기준과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누가 보더라도 떳떳한 양심적 주체가 될 때 비로소 내부고발자의 인생은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이탄희를 보자. 그는 이른바 '사법 농단'의 내부고발자였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막 들어설 무렵 판사 이탄희는 과거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표를 냈다. 첫 번째 사표는 반려되었지만 이미 그는 법원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두 번째 사표는 받아들여졌는데, 그때는 새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요청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었다. 판사를 검사가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전개되었다.
이때 밝혀진 사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 상고법원 설치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치열하게 로비를 했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판결, 통상임금 판결, KTX 여승무원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런 사례를 들어 청와대와 코드가 맞다고 강조한 후 청와대의 마음을 얻어 상고법원 설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게 알려진 재판거래의 전부다.

사법농단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정말 법원행정처의 힘을 이용해 판사들을 회유·협박하여 개별적 재판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혹시 정치적 의도는 없었지만, 상고법원 설치 로비를 위해 대법원이 마치 청와대를 위해 그런 판결을 일부러 내린 양 부풀린 건 아일까?
전자라면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헌정 질서 파괴다. 하지만 후자라면 재판거래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오버 액션'일 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권의 믿음직한 칼이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어 처리한 첫 사건이 바로 이 재판거래 사건이었다. 그런 윤석열이 총괄한 수사였지만 대법원이 재판 결과를 조작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대법원은 청와대와의 협상 카드를 위해 일찍부터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맞는 판결을 내렸던 걸까. 검찰 수사라는 극약처방에도 그런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내부고발자로서 목청을 높이던 이탄희의 어조는 2020년 국회의원이 된 후 크게 달라졌다. 자신이 고발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문제였다고 말이다.
지금 대장동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워낙 큰 사건이고 다양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탄희를 떠올렸다.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장동 게이트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던 그 시점이었다. 정치권에 떠도는 이른바 '50억 리스트'에 권순일의 이름이 또 등장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내부고발자 이탄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적 생명을 건져낸 장본인이 권순일 아닌가.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이 사안에 '이재명-권순일 재판거래', 아니 논의의 편의상 '이권 거래'라고 이름 붙여보자. 권순일은 캐스팅보트를 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 표명한 것이란 사정이 없는 한 후보자 (거짓) 토론회 발언을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그 시점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법리를 새로 만들어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 이재명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후, 이재명이 설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 이런 명백한 이권 거래를 보며 이탄희가 말한 재판거래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권순일의 수상한 행보

하지만 이번 이권 거래는 이탄희가 내부고발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박근혜 재판거래처럼,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권순일은 우연히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을 구해내는 판결을 했을 뿐이고, 퇴임 후 변호사 등록도 안 한 채 화천대유에 취직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시간차 뇌물 수수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래를 계약서 써가며 하지는 않을 테니 범죄 사실을 포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재명-권순일의 이권 거래가 실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설령 그런 거래가 있었다 한들 사실을 밝혀내고 법으로 처벌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2017년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칼을 빼 들었지만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이탄희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문제를 내부고발한 게 전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이권 거래도 같은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여부나 법적 처벌 가능성 유무와 무관하게 이 사안은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의 법에 대한 존경심을 짓밟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분노한 사람이라면 권순일 대법관의 이권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당연히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법원의 내부고발자 이탄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혹의 당사자인 이재명 캠프에서 미래정책기획위원장으로 젊은 지지자와 전문가를 규합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지난 정권의 재판거래를 고발하며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현 정권 들어 가장 심각한 재판거래 의혹이 있는 누군가의 밑에서, 재판거래의 수혜자일 수도 있는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판사로서의 경력을 내던졌던 내부고발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대신 같은 육체를 지닌, 유력 정치인에 줄 대는 어떤 흔해빠진 정치 초년생이 있을 뿐이다. 굳이 '나는 저격한다'에서 저격할만한 인물조차 못 된다. 다만 법관의 직업윤리가 정치 논리와 개인적 출세욕 등으로 얼룩지는 것을 참지 못했던 한 젊은 법조인이 출세욕을 좇아 사라졌다는 점은 애석하게 여긴다. 나는 정치인 이탄희를 저격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죽어버린 내부고발자 이탄희를 애도한다.

2021-09-28

홍남기 부총리님, 자영업자 죽음 앞에서 자화자찬하다니요

홍남기 경제부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지출이 경제 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합리적 예산 조정 없이 무차별적인 선심성 지출 증가로 이어진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비판적입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며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재정을 더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가분 작가가 그렇습니다. 마침 노정태 작가는 도움이 꼭 필요한 자영업자는 외면하고 전 국민 돈 잔치에 불과한 재난지원금에 장단을 맞춘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저격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 두 칼럼을 27일과 28일 연속으로 내보냅니다. 안혜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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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와중인 지난 19일 전남 순천의 한 야산 중턱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사망자 신원은 석 달가량 실종 상태였던 48세 A씨였다. 산 아래에서 발견된 그의 승용차와 신분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농자재 배달 사업을 하던 A씨는 빚에 쫓기다 파산 신고를 했고, 지난 6월 가족에게 "떠나고 싶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섰다가 석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코로나 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대위)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설치했던 합동분향소가 문을 닫은 다음 날 일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며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영업제한조치 철폐를 촉구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며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영업제한조치 철폐를 촉구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그리고 사흘 후인 지난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의 올해 성장률을 4.0%로 점쳤다. 지난 5월 전망치 3.8%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빠르다는 이유였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읽고 그만 평정을 잃었다. 홍 부총리는 "수출 호조세, 2차 추경 등의 정책효과가 반영되며 우리나라 성장률이 상향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전망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코로나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홍 부총리에게, 자영업과 자영업자란 과연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는 자영업자를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긴 한 걸까?
모두가 아는 사실부터 짚어 보자. 홍 부총리는 문 정부의 핵심 관료 중 한 사람이다. 정권 출범 후 초대 국무조정실장이었고,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부총리로 재직하며 최장수 장관 기록까지 세웠다. 한평생 직업 공무원으로 살아온 이른바 '늘공'(원래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욱 놀랍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동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보다 청와대의 더 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내가 볼 때 그가 신뢰를 받는 이유는 청와대의 지시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정책 방향의 지시가 청와대에서 내려온다고 해보자. 일반적으로 '어공' 출신 장관들은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이려 든다. 반면 '늘공'들은 현실의 제약을 고려해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거나, 절충점을 찾아 설득하고자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늘공'들의 이러한 행동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이 자주 쓰는 '관피아'(관과 마피아를 합친 용어)라는 말엔 국민의 뜻을 받아 당선된 정치인이 내리는 지시를 공무원들이 무시한다는 불만이 담겨 있다.
바로 여기에 홍남기의 롱런 비결이 숨어 있다. 그는 여느 '늘공' 출신들과 다르다. 청와대의 지시와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다. 반발하는 시늉은 한다. 최저임금 인상, 전 국민 재난지원금, 선심성 돈 풀기를 위한 추경 편성 등 청와대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사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 결국 정치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패턴을 반복한다. 오죽하면 '홍백기'(홍이 항복했다)나 '홍두사미'(용두사미를 빗댄 말) 같은 말이 오가겠는가.
'늘공'답지 않은 홍남기의 권력 순응주의는 자영업자들에게 재앙의 서곡과도 같았다.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인상할 때 이미 자영업자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2018년에 16.4%, 2019년에 10.9%씩 껑충 뛰어오르면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거나 본인과 가족의 노동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패스트푸드 매장마다 키오스크가 줄줄이 들어선 것도 그 무렵 일이다.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의 취업률은 4.1~4.6%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 아니라 장삼이사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홍 부총리는 무엇을 했을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그 이론적 배경이 되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대해 반론을 펴기는커녕 오히려 소주성이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 부작용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소주성이 정말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걸맞은 역량이 없는 것 아닐까. 혹은 소주성이 엉터리인 줄 알면서도 '윗선'의 요구라 입 다물고 적극적인 동조를 했다면, 그는 장관이 아니라 말석의 9급 공무원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닐까. 정치가 엉터리 요구를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것이 공무원의 가장 기본적인 직업윤리고, 그러라고 법으로 신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렇게 자영업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삼각 파도처럼, 양쪽에서 동시에 자영업자들을 강타한 것이다. 자영업자 보호는커녕 비합리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 죽이기에 나선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작 돈이 가야 할 곳은 외면하고 '온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푼돈을 뿌리며 매표에 혈안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총리가 할 일은 소득 상위 몇 %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냐는 식의 소모적 논쟁에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소득 배분이 아니라 실제 자영업자가 겪는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청와대는 보다 많이 주자는 입장이 완강했고, 심지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88%라는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온 국민(경기도민)에게 돈을 뿌리겠다고 나섰다. 홍 부총리는 늘 그렇듯 미약한 반발의 목소리를 내다 이내 '홍백기'를 들어 올렸다.

흔히 공무원을 두고 '영혼이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공무원들 스스로도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원래 공직이란 그 자체가 희생이며 헌신이다. 안정된 일자리와 연금 욕심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가 금세 그만두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겠다는 마음 없이는 공직을 오래 수행하기 어렵다.

국가공무원 취임 선서는 이렇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문장 어디에도 정권이나 청와대를 향한 충성 서약은 없다. 공무원이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과 국익이지, 특정 정권과 권력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묻고 싶다. 최장수 '늘공' 장관 홍 부총리의 충성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그가 지키는 건 국가인가, 아니면 정권인가. 그도 아니면 그저 일신의 영달일 뿐인가.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 그 말을 못하는 장관이 오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오늘도 대한민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말 그대로 생사를 건 투쟁을 해나가고 있다. 방조자도 때론 공범과 다를 바 없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이 정부 자영업 대학살극의 책임을 물을 때 홍남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2021-09-17

'타협의 달인' 박지원 긍정평가, 2021년 9월15일로 끝났다


많은 분들은 자칭 타칭 '정치 9단'인 박지원 국정원장의 노회한 모습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단순히 좋으냐 싫으냐로 묻는다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 박지원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를 품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초기까지는 그랬다. 문재인을 앞세워 386세대, 전대협(1987년 결성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로 주사파인 NL이 주축) 세대가 청와대에 깃발을 꽂은 이 정권 아래에서, 그의 '노회함'은 역사적 순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주고받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막무가내 패싸움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선거로 다수와 소수가 가려졌다 한들 소수의 의견을 함부로 묵살해서도 안 되고, 다수의 의견을 100%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품어서도 곤란하다. 대화, 타협, 절충 같은 건 케케묵은 소리가 아닌 민주주의의 근간인 것이다. 이제는 어느 면에서 보건 사회의 주역이 되어 있는 386세대는 스스로를 '민주화 세대'로 포장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애초에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든지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가 뒤집히지 않아야 민주주의다.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어도 지난 국회와 같은 절차와 관례, 프로토콜을 지킬 때 그 나라는 성숙한 민주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선거 하나 끝났다고 나라가 180도 뒤집히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중독재라는 뜻이다.

탄핵정국에서의 돌파력 

노회한 정치인 박지원은 그런 면에서 386 정권의 해악을 막아줄 좋은 중화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 기대에는 근거가 없지 않았다. 잠시 2016년 탄핵 정국으로 기억을 되돌려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을 때, 처음에는 탄핵안 가결을 위한 3분의 2 득표를 장담할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만으로는 3분의 2는 고사하고 과반수도 되지 않는 의석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분해 있던 민주당 강경파는 성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표결 처리를 강행하려 들었다. 그때 박지원의 진가가 발휘됐다.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였던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 양쪽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으면서도, 일단 표결을 한 주 뒤로 미뤘다. 그리고는 새누리당 내에서 불만을 지니고 있는 세력과 물밑으로 접촉하여 이탈표를 끌어냈다. 대체 무슨 식으로 설득하고 뭘 주고받았는지 언론 보도를 통해서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박지원의 '거간'은 통했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나는 지금 탄핵에 대한 찬반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막후'에서 움직여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정치, 타협과 협상을 통해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는 정치, 그런 정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해 우리 편이 이겨서 저들을 싹쓸이해버리자는 운동권식의 정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좀 예스럽고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정치, 그런 걸 박지원은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중 40대 이상인 분들은 언필칭 '청년 논객'인 내가 박지원이라는 늙은, 아니 차라리 낡은 정치인에 대해 긍정적인 서술을 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년 세대가 중년을 뛰어넘어 노년 정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버니 브로'의 지지를 끌어냈던 버니 샌더스. [AFP=연합뉴스]

'버니 브로'의 지지를 끌어냈던 버니 샌더스. [AFP=연합뉴스]

아직 한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드러난 현상이다.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은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양강 구도로 압축되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전임 대통령 빌 클린턴의 부인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적 파트너로, 뉴욕 주 상원 의원을 역임하며 오바마 정권 당시 국무장관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정치자금 후원뿐 아니라 인맥이나 실력 등 그 모든 면에서 버니 샌더스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샌더스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 세대와 맞서려 조부모 세대와 손잡아 

클린턴을 경선 막바지까지 끈덕지게 몰아붙이며 캠프의 자금과 에너지를 소진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흔히 '버니 브로'(Bernie Bro)라 부르는 샌더스의 열혈 지지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니 브로는 대체로 30대 이하의 백인 남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지금은 MZ 세대라 부르지만 당시에는 밀레니얼이라 부르던 80년대생들이 버니 브로의 핵심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 빌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베이비 붐 세대의 대표 주자다. 버니 샌더스는 1941년생으로 베이비 붐 세대에 속하지 않는, 그보다 앞서 태어난 고령층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 붐 세대와 맞서기 위해 그보다 더 나이 많은 후보를 '우리 편'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같은 현상이 영국에서도 나타났다. 1949년생 제레미 코빈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하여 2015년부터 노동당의 당권을 접수해버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과 비슷한 스토리다. 노동당은 고학력 고소득 교양 계층의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런 계층은 연령대로 놓고 보자면 40대에서 60대에 걸친 중년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부자 노인들의 정당인 보수당을 지지할 수도 없던 영국의 좌파 청년들은 아예 세대, 아니 시대를 건너뛰어 자신들의 대표자를 찾아냈다.

영국 총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끈 제레미 코빈(앞줄 가운데) 당수. 연합뉴스

영국 총선거에서 노동당을 이끈 제레미 코빈(앞줄 가운데) 당수. 연합뉴스


물론 버니 샌더스나 제레미 코빈 핵심 지지층의 열기를 본선 무대에서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샌더스는 2016년과 2020년 모두 대통령 경선에서 탈락했고 코빈은 2019년 총선에서 참패하며 노동당 몰락의 주역으로 손가락질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그들은 정치권에서 은퇴할 시점을 놓친 채 그저 버티고 있는 늙은 정치인 정도로 취급받고 있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 베이비 붐 세대가 정치적으로 장기 집권하는 가운데, 출구를 찾지 못한 청년층의 불만이 노년층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대리인을 찾는 이변으로 연출되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이와 같은 현상이 한국에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20대와 30대 남성이 1953년생, 올해로 한국 나이 69세인 홍준표 후보에게 향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생을 수십 년씩 살아온 기성세대들에게는 정치 경력이 수십 년씩 되는 노령의 정치인들이 '식상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본인의 인생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청년들에게는 중년이나 노년이나 사실상 모두 '신선한 인물'이다. 투표권을 지닌 청년들은 자신들과 직접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중년보다는, 나이 차이가 확실히 벌어진 노년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비록 어딘가 음험하고 '올드'한 면이 있다 해도, 대화와 타협과 절충의 달인 박지원에게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가 대선 무대에 나설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386세대의 폭주를 달래고 막으며 균형을 잡는, 어쩌면 더욱 필요하고 절실한 그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청년들이 기득권자인 중년과 싸우기 위해 노년 정치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 노년 정치인이 중년 정치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맞서고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한 것이다. 버니 샌더스나 제레미 코빈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독불장군이었고, 본인이 속한 진영 내에서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크게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반면 박지원은 어떤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능수능란하게 국회를 오가며 의원들을 규합하고 타협을 이끌어냈던 실력은 온데간데없다. 지금은 그저 문재인 정권과 밀착하여 자기 정치 수명 연장이나 꾀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정보원이라는 중요한 조직의 수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국가정보원은 대한민국의 대외, 대내, 대북 정보를 총괄하는 정보기관이다. 그런 정보기관의 수장이 어떻게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예비 대선 후보를 상대로 "호랑이 꼬리를 밟지 말라"느니, '총장 시절 저하고도 술 많이 마시지 않았느냐"느라니,  윤석열 후보의 약점으로 알려진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문제 관련 자료를 다 갖고 있다"느니 하는 노골적인 정치 개입을 할 수 있는가. 국가정보원이 안전기획부였던,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중앙정보부였던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했을 뿐, 이런 식으로 국내 정치에 논평하며 개입하지는 않았다.
박지원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평가는 2021년 9월 15일까지만 유효했다. 그 후의 박지원은 그저 흔한, 은퇴할 날짜를 놓친 늙은 정객일 뿐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사임을 촉구한다.


2021-09-10

BTS가 99칸 한옥 지어 산다면...이낙연 후보님 왜 안됩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고전을 한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15일 "더 큰 가치를 위해서"라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관련한 '무료 변론 의혹' 등 네거티브 전략도 수정할 의향을 내비쳤다. 이 전 총리의 패배가 진작에 배수진을 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네거티브 탓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확실히 문제가 있는 공약은 있다. 그중 하나가 부동산 문제다.
지난 7월 6일, 이낙연 전 총리는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택지소유 상한제를 23년 만에 부활시키자는 '토지독점규제 3법'(토지공개념 3법)을 대표 발의한 것이었다. 제시된 법안은 국토계획법상 도시지역 중 택지에 대해 법인의 소유를 막고, 개인의 경우 1인당 최소 1320㎡(약 400평)에서 최대 3000㎡(약 800평)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이 대한민국에는 이미 있었다. '택지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인데, 1989년 위헌 결정으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위헌 결정이 나오게 된 결정적 요인은 면적이 1인당 200평, 즉 660㎡로 너무 좁았던 데다 일률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낙연 후보 측은 새로운 택지소유상한법이 그런 요소를 모두 고려하고 있으므로 괜찮다는 입장이다.

한번 따져보자. 이 후보가 새로 제안한 토지독점규제 3법은 민간 임대업의 규모를 대폭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연인이 소유할 수 있는 택지의 면적에 제한을 두고 법인 역시 택지를 가질 수 없게 한다면 남에게 팔아버리는 것 외에 '합법적'인 선택지는 더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 측에서도 그러한 정책 방향을 인정한다. 1인당 택지 소유 면적에 제한을 두면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국가는 저렴한 가격에 매수하여 거기에 공공주택을 짓겠다는 큰 그림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7월 6일 국회에서 택지소유상한법과 개발이익환수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소위 토지공개념 3법 대표 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7월 6일 국회에서 택지소유상한법과 개발이익환수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소위 토지공개념 3법 대표 발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연 그게 뜻대로 될까? 한국보다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이 높은 유럽 여러 국가를 보면,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전체 주택 중 19%가 공공임대주택이며 20%의 민간임대주택 역시 임대료 상한제 등 다양한 규제로 묶여 있는 스웨덴의 경우를 살펴보자. 임대업으로 수익을 낼 수 없기에 임대주택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인구 100만 명의 도시 스톡홀름에서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다고 신청하고 대기하는 사람만 50만 명이 넘는다. 세입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박탈되고 있는 꼴이다.

여기까지는 부동산을 비롯한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지적해왔던 부분이다. 나는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새로운 택지소유 상한제는 국민, 특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창의적 도전 욕구를 가로막는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꿀 수 있는 꿈의 상한선이 그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조앤 롤링의 스코틀랜드 저택.

조앤 롤링의 스코틀랜드 저택.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J. K. 롤링. 그는 스코틀랜드에 성(城)을 구입해 살고 있다. 그 면적은 자그마치 65만㎡, 약 20만 평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영국 에든버러에 225만 파운드짜리 저택을 샀다. 두 건물 모두 주거용 건물이니, 의심할 나위 없이 한국에서라면 택지소유상한법을 훌쩍 어기는 셈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은 한때 자신의 저택에 놀이동산을 짓고 동물원을 만들었다. 엘튼 존 역시 영국 우드사이드 등에 큰 저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원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자신만을 위한 녹음실을 차리기도 했다. 최근 이혼당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에 욕실만 24개인 저택을 지니고 있는데,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그런 취향을 비웃으며 실리콘 밸리의 평범한 주택에 산다. 대신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해 이웃집도 몽땅 매입해버렸다.
일부 부자들의 돈 자랑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자. 빌 게이츠가 사는 것 같은 저택을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가 갖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요즘 세계 젊은이들에게는 엘튼 존보다 더 유명한 BTS의 리더 RM이 99칸, 아니 199칸 넘는 한옥을 지어서 자기 집을 미술관처럼 꾸미면 안 되는가.
김범수나 RM이 그 정도 성공의 과실은 누릴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몇몇 분야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주자라면 1인당 800평이 아니라 8000평이 넘는 집도 가질 수 있어야 마땅하다. 이 당연한 상식이 누군가에게는 그리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아무리 큰 재능과 치열한 노력을 통해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온전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성공하기도 전에 꿀 수 있는 꿈의 크기를 제한해버리는 나라. 대한민국은 그런 의미에서 2021년에도 여전히 집단주의 국가다. 이제는 개인에게 개인의 삶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