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고도 '의혹 제기'였을 뿐?
거대 수구세력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는 엉터리 망상 즐겨
지난 1월22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사과했다. 지난해부터 그는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고, 그래서 의혹을 제기했지만,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검찰의 모든 관계자와 노무현재단 후원자 및 시민 전반을 향한 사과문을 공개했다.
2012년 1월6일 광화문광장에서 당시 통합진보당 유시민 대표(왼쪽)가 정봉주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1인 시위 현장에서 김어준 방송인과 대화하고 있다.ⓒ시사저널 사진자료
유시민은 들키면 사과라도 하는데 김어준은 그것조차 안 해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심지어 유시민과 친문진영에 적대적이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내용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과를 한 게 어디냐'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시 교통방송 TBS에서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비난이 쏠리는 듯도 하다. 유시민은 거짓말을 하다 들키면 사과라도 하는데 김어준은 그마저도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과연
그럴까? 김어준이 쏟아낸 온갖 음모론, 특히 세월호 고의 침몰설 같은 악질적인 음모론의 해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유시민이 사과를 했다는 사실에 가산점을 줄 이유도 없다. 유시민의 '사과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게임인가? 음모론이다. 그 음모론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검찰·언론·야당 등 이른바
'수구 기득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물론 현실은 전혀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더불어민주당과 우호 세력이 180석 넘는 국회 의석을 차지했으며, 심지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다.
현실
속의 대한민국에서 주류는 보수에서 진보로 넘어갔다. 그런데 주류가 된 진보 세력은 보수를 상대로 지금도 되레 엄살을 부린다.
보수 기득권의 뿌리가 너무도 공고하기 때문에 현재 집권하고 있으며 의석이 좀 많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20년 집권론'을 통해 구체화됐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20년
집권론'은 단순한 정치 플랜이 아니다. 특정한 역사철학에 기반한 세계관의 표현이다. 문제는 그 역사철학이라는 것이 음모론이라는 데
있다. 바야흐로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가 심환지를 중심으로 한 노론 세력에 의해 독살당했고,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진보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는 역사 판타지, 이른바 '노론 음모론'이 이해찬의 사고방식의 기저에 깔려 있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해찬이 한 말을 들어보자.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이해찬에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곧 "김대중·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편향을 "복원도 아니고, 복원을 시도해 볼 틈새, 그 틈새 정도만 만들려고 해도 20년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220년 중 210년을 수구보수가 지배했다"는 음모론적 역사 해석
물론 그런 음모론은 현실과 무관하다. 노론의 영수 심환지는 정조의 심복이었다. 지난 2009년 공개된 대한민국 보물 1923조
정조 어찰집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정조 독살설'은 산산이 깨졌다. 일제시대가 끝나고 미군정 시대를 거쳐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도 단일한 보수 기득권층이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박정희는 집권 후 이승만 세력을 축출했고,
전두환의 5공 세력은 3공 세력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노태우 역시 전두환을 백담사에 보내지 않았던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보수의 내분에 힘입은 바 크다. 대한민국을 200년째 손아귀에 쥐고 있는 노론 세력이 대체 어디 있나.
하지만
이해찬을 비롯한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가지고 노는 막강한 보수 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자신들의 온갖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유시민으로 돌아가보자. 유시민은 사과문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4월 정치비평을 그만두었"다는 간단한 사실관계의 오류도 그렇지만, 자신이 검찰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도 그것을 '의혹 제기'로 포장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왜 하필 '의혹 제기'라고 하는 것일까? 그 용어 선택을
곱씹어봐야 한다. 유시민은 '거짓말'을 했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의혹 제기'를 했고, 입증에 실패했는데, 아무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했을 뿐이다. 유시민은 여운을 남긴 것이다. 자신이 꼭 밝혀야 할, 비록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입
밖으로 꺼냈어야만 했던 진실이 어딘가에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의혹 제기'라는 용어를 택한 것이다. 유시민의 사과문에는 여전히
노론 음모론, 혹은 '수구 보수 지배론'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더 큰 음모론에 기대고 있는 건 김어준도
마찬가지다. 그는 늘 '냄새가 난다' '소설 한 편 써보겠다'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책임지지
못할 말, 새빨간 거짓말을 남발하면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한다. 김어준 자신과 그의 방송을 듣는 이들이 '수구 보수 지배론'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온 국민의 뇌에 구멍을 송송 뚫는다는 둥, 천안함 폭침을 조작한 후 '1번
어뢰'를 건져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려 한다는 둥,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외부 원인에 의한 고의 침몰이라는 둥, 상식에 맞지
않는 '의혹'을 떠벌리면서도 김어준과 그 추종자들은 당당하다. 거대한 악의 세력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데, '의혹 제기'를 하다가
좀 틀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노론 음모론으로 대표되는 '수구보수 지배론'. 그것은 모든 음모론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음모론이다. 그리고 유시민은 사과문이라는 것을 내밀면서도 그 음모론적 세계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이 유시민과 김어준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다. 저들의 세계관을 떠받치는 엉터리 역사 판타지가
있다. 그것을 공적 토론의 장으로 끌어올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노정태는 누구
대학에서 법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를 썼다. 《아웃라이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자연과 이해관계》 등을 번역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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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개고생’ 두고 왜들 이래
- 노정태│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1.12 14:14
"<국제시장>을 보면 아예 대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식이거든요. 정말 토가 나온다는 거예요. 정신 승리하는 사회라는 게.”
방송인 허지웅의 말이다. 이것을 TV조선에서 ‘국제시장은 토 나오는 영화’로 축약해 소개한 후 <국제시장>의 정치적 색깔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던 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이 영화의 정치색에 대한 논쟁은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듯하다. 1월6일 윤제균 감독은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에 대해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두 사람의 갈등이 너무 무겁지 않게 또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그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을 했었다”며 “그 장면이 애국심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저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논란을 피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시장>에는 ‘정치’ 이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까지 이어지는 주요 줄거리 속에서 대통령의 얼굴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정전협정을 발표하는 이승만의 목소리만이 흐릿하게 등장할 뿐이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주요 사건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줄거리의 출발점이 되는 한국전쟁 역시 ‘흥남 철수’라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압축된다.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자. 덕수(황정민 역)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라타던 중 등에 업고 있던 동생 막순이를 잃어버린다. ‘아버지’는 “이제부터 네가 가장 노릇을 해야 한다”며 동생과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는 말을 남겨놓고는 그 동생을 찾기 위해 배에서 내려간다.
덕수 본인의 꿈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남동생이 서울대에 합격하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독 파견 광부가 되고 그곳에서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난다. 가게 인수할 돈을 만들기 위해 월남전의 한복판에 파월 기술자가 되어 뛰어든다.
덕수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데는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흥남 철수 과정에서 잃어버린 동생, 그 동생을 찾기 위해 자신의 탈출을 포기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그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1000만 관객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역시, 한강에서 불쑥 튀어나온 괴물에게 잡혀간, 가족을 찾기 위한 사투임을 떠올려보자.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것, 혹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지켜내는 것은, 아주 강력한 서사적 도구다.
‘가족’이라는 모티브만을 놓고 보자면 <국제시장>은 <괴물>과 같은 얼개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괴물>은 개봉 당시 ‘반미 영화’라는 논란에 휩싸인 반면, <국제시장>은 정치적 복고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왜일까. ‘가족의 상실’이라는 거대한 원동력을 제공한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괴물>에서 ‘괴물’을 탄생시킨 원인은 미군의 무단 화학폐기물 방류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국제시장>에서 가족들이 생이별을 하게 된 원인은 누가 제공했는가.
영화 속에서 막순이를 덕수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누군가의 손’이다. 누구의 손인지도 모르고, 왜 하필 막순이를 잡아당겼는지도 모른다. 덕수는 ‘내가 막순이를 잃어버렸다’고 자책할 뿐, ‘누군가 막순이를 끌어당겼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국제시장>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 놓여 있다. 이 영화는 ‘부모 세대의 개고생’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그 ‘개고생’을 유발시킨 원인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는다. 막순이는 ‘어쩌다가’ 헤어졌고, 서독의 석탄 광산은 ‘어쩌다가’ 폭발했고, 베트콩 역시 전쟁 중 ‘어쩌다가’ 주인공의 다리에 총을 쐈을 뿐이다. 주인공이 고생은 하지만 악역 비슷한 역할은 모두 ‘타자’에 의해 수행된다. 광산에 동료를 구하러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외국인, 선량한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하는 베트콩 등.
<국제시장>이 표상하는 ‘부모님의 개고생’에는 ‘가해자’가 없다. 진보 진영에서는 그 자리에 ‘박정희’가, ‘자본’이, 혹은 ‘병영국가 대한민국’이 들어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표시하는 듯하다. 그 비판은 타당하다. 특히 약자에게 폭력적이었던 대한민국 현대사에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개고생’시킨 가해자가 없다
하지만 ‘가해자’의 자리를 공백으로 만들어버린 탓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이 영화를 전유하는 시각 역시 가능해진다. 2007년 한국까르푸-이랜드홈에버 파업을 모티브로 삼은 웹툰 <송곳>의 베스트 댓글 중 하나다.
“(중략) 우리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고 서로 연대하고 부당함에 하나씩 맞서 꾸준히 싸웁시다. 돈의 논리가 강해져가는 이 현실에서 해답은 우리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는 것뿐입니다. 내게 주어진 부당한 처우부터 고쳐나가고, 주변의 억울한 일들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겠죠?ㅎㅎ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처럼, 우리 젊은 세대도 훗날 지금의 노력을 더 나은 세상에서 추억하기 위해 열심히 삽시당….”
젊은 세대가 ‘개고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중장년층을 떠올린다면, “토가 나온다”는 허지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구세대와 맞서려면 결국 청년도 ‘승리하는 정신’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어떤 청년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국제시장>을 보고 와서 ‘힐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시장>에 대한 비난에 힘을 보태기보다는,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를 고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