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할로윈 '오징어 게임' 분장 전 꼭 알아야 할 비화

 

[노정태의 뷰파인더-56] '근본 없는(?)' 축제에 대처하는 자세

● ‘오징어 게임’이 바꾼 할로윈 관점
●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축제
● 가톨릭계 이민자와 함께 美에 정착
● ‘어른들의 할로윈’ 어쩌다 탄생했나?
● 1996년作 호러 영화 ‘스크림’ 후폭풍
●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 포용해야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할로윈 데이를 나흘 앞둔 10월 27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 노점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가면이 할로윈 소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뉴스1]
10월 31일 오늘은 할로윈 데이다. 매년 이맘때면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의 패턴이 있다. '할로윈이라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명절을 즐기겠다고 이태원과 홍대 등으로 쏟아지는 젊은이들', '기괴하고 잔인한 분장을 하거나 마블, DC의 슈퍼히어로 흉내를 내며 젊은이들이 즐기는 모습', '바닥에 나뒹구는 구토 자국과 빈 병이 보여주는 실종된 시민의식'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국적 불명의, 혹은 미국식 가짜 명절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흔히 눈에 보인다. '미국인들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오징어 게임' 추리닝을 입고 있다', '유럽인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달고나를 먹으며 할로윈을 즐긴다.'

지난해까지는 외래문화가 맥락 없이 들어오는 창문이었던 할로윈이, 어느새 한국 문화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수출 경로가 되고 만 셈이다. 그렇다보니 올해는 특이하게도 연례행사와도 같았던 할로윈 비판이 많지 않고 그 수위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 30대인 필자 입에서조차 '오래 살고 볼 일' 같은 말이 절로 나오는 희한한 2021년이다.

할로윈이라는 '명절 아닌 명절'이 국내에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후 처음으로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이 기회에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할로윈이라는 특이한 명절의 유래는 무엇일까? 왜 오늘날 할로윈은 죽은 이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를 따라하는 날이 돼버린 것일까?

중세 유럽 켈트족에서 멕시코까지

중세 유럽의 켈트족은 한 해를 여름과 겨울 두 개의 계절로 나누었다. 생명이 약동하고 번창하는 여름이 끝나면 죽음이 돌아오는 겨울이 시작된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것, 그 축제를 서우인(Samhain)이라 불렀다. 10월 31일 밤부터 11월 1일까지 이어지는 그 축제는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며, 동시에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연히 성대한 축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민족과 마찬가지로 켈트족 역시 로마에 의해 정복당했다. 기원후 43년 대부분의 켈트족이 로마에 무릎을 꿇었다. 그 결과 서우인에도 로마의 색체가 가미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대부분 비슷했던 모양인지, 로마인들은 매년 10월이 끝나갈 무렵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페랄리아(Feralia)라는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날짜와 주제가 비슷한 탓에 두 축제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갔다. 로마의 유산과 제도 등이 무너진 가운데 그나마 문명의 잔해를 유지하고 있던 곳이 바로 교회였다. 모든 문화와 풍습에 기독교의 영향이 가미됐고, 서우인 역시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중세 유럽에 남아있던 축제는 서우인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전통 축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중세를 지배하던 가톨릭교회는 그런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즐기는 축제지만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고대 종교의 세계관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교도'의 전통에 따라 먹고 놀고 마시다보면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에서 벗어나 야만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 8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는 기존에 5월 13일로 정해져 있던 '모든 성일 대축일'의 날짜를 11월 1일로 옮겼다. 서우인 또는 서우인과 비슷한 다양한 토착 축제를 갑자기 없애버리면 민심이 동요하고 거부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 노는 날짜는 그대로 두되 그 위에 기독교적인 맥락을 추가하여 '덮어씌우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통했다. 11월 1일 모든 성일 대축일은 지금도 가톨릭교회의 중요 행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가톨릭의 교세가 강한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라틴 문화권에서 11월 1일은 상당히 비중 있는 명절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0월 31일에는 세상을 떠난 모든 가족과 친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11월 1일은 아침부터 성당에서 모든 성인을 위한 미사를 드리며 어젯밤을 뒤덮었던 죽음에 대한 상념과 묵상으로부터 벗어난다. 11월 2일은 그 행사의 마지막 날인 위령의 날이다.

특히 멕시코는 10월 31일을 '망자의 날'로 특별히 취급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아즈텍 문명의 명절과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공교롭게도 할로윈과 같은 날에, 같은 주제로 축제를 벌여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축제는 우리가 아는,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할로윈과 사뭇 다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2018)에서 묘사하고 있다시피 진지하게 죽음을 고찰하고 망자를 그리워하면서도 떠나보내는 그런 날이다.

‘어른의 축제'가 된 비밀을 풀다

10월 25일 ‘오징어 게임’ 복장을 하고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의 모습. [뉴스1]
미국은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국가다. 미국으로 처음 건너온 이민자들의 삶은 망자의 날에서 모든 성인 대축일로 이어지는 가톨릭 전례 달력과 무관하거나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할로윈은 미국 어린이들의 축제가 되었다가, 심지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어른들이 특수 분장을 하고 노는 날이 된 것일까?

영어권에서 만들어진 문헌 중 대중적으로 입수 가능한 것들을 뒤져봐도, 어째서 가톨릭 계열의 축제가 개신교 국가에 뿌리 내릴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정교하게 설명한 것은 찾기 어렵다. 아무튼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톨릭 계열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와 정착하면서 할로윈, 혹은 망자의 날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이 아니라 그냥 유치원에서도 '트릭 오어 트리트(trick-or-treat)'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스켈레톤이나 마녀 같은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탕을 받는 그 행사 말이다. 그것이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반에 유입된 할로윈의 풍습이 20세기 초, 1920년대부터 미국적인 방식으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사탕을 받는 귀여운 행사가 된 할로윈은 '로컬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현대 미국인들의 감성과 딱 맞아 떨어졌다. 그 기원과 유래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 두루 즐기는 새로운 유형의 명절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되어버린, 말하자면 '어린이용 할로윈'이 탄생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할로윈'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걸까? 필자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해봤다. 한국어 문헌 뿐 아니라 영어 문헌도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대목부터는 약간의 '뇌피셜'을 가미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할로윈이 '어른들의 축제'가 된 것은 두 번의 변곡점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카펜터 감독의 1978년 영화 '할로윈'의 성공이 그 첫 번째다. 여섯 살에 친누나를 살해한 정신이상자가 고향에 돌아와 살인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호러 무비다. 이후 '할로윈' 시리즈 뿐 아니라 비슷한 콘셉트의 할로윈 시즌 호러 무비를 낳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할로윈을 어린이들의 동심 축제에서 어른용 호러 축제로 바꾼 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스크림'의 등장은 특히 주목받는 사건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스크림'을 안 본 분이 더러 계실 텐데, 그렇더라도 '스크림 마스크'는 보셨을 것이다. 흰 바탕에 검은 색으로 눈코입이 뚫려 있고, 대단히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는 그 마스크 말이다. 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변조한 목소리로 음산하게 '헬로, 시드니'라고 희생자를 부르고 무참히 난자해서 죽이는 호러 영화. 대중은 그 이야기에, 마스크에 열광했다.

그 '근본 없음(?)'이 우리의 힘!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오징어 게임’ 팝업 체험존 ‘오겜월드’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정리해보자. '할로윈'과 그 뒤를 이은 호러 영화들은 할로윈을 어린이의 축제에서 호러 영화를 즐기는 어른들의 축제로 서서히 바꿔나갔다. 그러다가 '스크림'이 기념비적 성공을 거두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호러 영화를 몰래 보며 성장한 세대는 할로윈을 '어른들의 파티'로 즐기기 시작했다. 할로윈은 호러 영화에 등장한 온갖 할로윈 괴물이나 살인마를 따라 분장을 하고 노는 날이 됐다. 점점 '코스프레'의 대상은 호러 영화를 넘어 영화나 드라마 등 히트한 대중문화의 여러 요소들로 확장되었다.

앞서도 말했듯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필자의 지식과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100% 확인된 사실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하지만 대체 왜 매년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근처에는 10월 마지막 주말만 되면 흡혈귀도 아니고 살인마도 아닌 마블 캐릭터 의상을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즐기는 할로윈은 '근본 없는(?)' 축제다. 그 뿌리는 고대 켈트족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미국에 기원을 둔 대중문화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일까? 망자를 그리는 엄숙한 종교적 행사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날이 되었다가, 어른들도 딱딱한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고 대중문화 흥행작을 흉내 내며 즐기는 날이 된 그 변화 과정을 굳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그런 '근본 없음'이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2021년 할로윈은 분명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할로윈 파티 테마로 떠오른 즐거운 현상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할로윈의 '근본 없음' 때문이니 말이다.

이 글을 '국뽕'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화두를 더 던져보고 싶다. 매년 언론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도, 순국도 아닌 '사형선고일'을 들먹이며 밸런타인데이를 구박한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는 걸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가래떡 데이'부터 온갖 길쭉한 음식을 갖다 붙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할로윈의 '근본 없음'이 결국 우리의 힘으로 돌아왔다면, 다른 '국적 불명 기념일'에 대해서도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단일민족과 순수혈통의 환상을 벗어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와 섞여 들어갈 때, 우리는 더 강하면서 풍요롭고 즐거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할로윈데이 #오징어게임 #스크림 #코스프레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0-30

언론 비평 매체 '미디어스'에 보냈던 원고들

2008년 11월부터 2010년 7월까지 <미디어스>에 보냈던 원고들을 갈무리하여 블로그에 업데이트합니다.

이렇게 직접 정리해두지 않으면 URL이 바뀌거나 언론사가 사라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제 원고를 찾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지금, 많은 생각이 달라졌고 어떤 것은 그대로입니다. 저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

2008-11-06
‘오바마’를 지금 팔아라? - 미국 대선 결과를 보는 외국 언론들의 몇 가지 시선
https://basil83.blogspot.com/2008/11/blog-post_6.html

2009-03-13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문제적 개념 - 의회 불신의 난감한 산물…외부 여론이 방향타돼야
https://basil83.blogspot.com/2009/03/blog-post_13.html

2009-05-06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돼지가 독감에 걸린 날
https://basil83.blogspot.com/2009/05/blog-post_6.html

2009-05-21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알타이연합론인가 대동아공영권인가?
https://basil83.blogspot.com/2009/05/blog-post_21.html

2009-05-27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 부엉이바위의 음모론을 경계하자
https://basil83.blogspot.com/2009/05/blog-post_77.html

2009-06-04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민주화 - 태국의 노란 셔츠 시위대를 보며
https://basil83.blogspot.com/2009/06/blog-post_4.html

2009-06-17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 이란 대선 시위, 남의 일이 아니다 - 절차적 민주주의는 절대적인가
https://basil83.blogspot.com/2009/06/blog-post_17.html

2009-07-02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이명박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다면 - 온두라스 쿠데타를 보며
https://basil83.blogspot.com/2009/07/blog-post_2.html

2009-07-13
[시론] 신장 유혈 사태, 타인의 비극과 우리의 미래 사이
https://basil83.blogspot.com/2009/07/blog-post_13.html

2009-07-23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 커다란 이슈에 맞서는 작은 민주주의
https://basil83.blogspot.com/2009/07/blog-post_23.html

2009-08-12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버마에서 벌어지는 법의 횡포와 민주주의 - 아웅산 수치와 쌍용자동차
https://basil83.blogspot.com/2009/08/blog-post_12.html

2009-08-27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오바마의 곤경으로부터 배운다 - 중도주의의 덫
https://basil83.blogspot.com/2009/08/blog-post_27.html

2009-09-10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강만수 특보의 이중국적 발언 – 마붑 알엄 씨의 경우
https://basil83.blogspot.com/2009/09/blog-post_10.html

2009-09-18
김어준 총수, 파티는 끝났다
https://basil83.blogspot.com/2009/09/blog-post_18.html

2009-10-09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조두순, 장자연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 - 엄격한 잣대가 과연 평등했는가?
https://basil83.blogspot.com/2009/10/blog-post_9.html

2009-10-27
[미디어스] 지상 최대의 키보드 배틀
https://basil83.blogspot.com/2009/10/blog-post_27.html

2009-11-20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한미FTA, 자동차 재협상 보다 '전략적 중요성'
https://basil83.blogspot.com/2009/11/fta.html

2009-12-04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https://basil83.blogspot.com/2009/12/blog-post_4.html

2009-12-27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오바마는 ‘미국의 노무현’이 아니었다
https://basil83.blogspot.com/2009/12/blog-post_27.html

2010-03-16
[미디어스] 피의자 김길태와 페이스북 살인사건
https://basil83.blogspot.com/2010/03/blog-post_16.html

2010-07-29
[기고] 저 민주당과 무슨 연합을 할 것인가? - 이재오, 엄기영, 심상정
https://basil83.blogspot.com/2010/07/blog-post_29.html

거침없는 거짓말, 반성은 없다.. 이순간만 중요한 당신의 병명은?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맷 데이먼 주연 영화 '리플리'와 이재명의 '소시오패스' 논란

일러스트=유현호

낮에는 호텔 보이로 일하고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 노릇을 하는 톰 리플리. 어느 날 팔 다친 피아니스트를 대신해 뉴욕의 상류층 파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런데 리플리의 인생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가 빌려 입은 재킷에는 프린스턴 대학 로고가 박혀 있었고, 그걸 알아본 선박 부호 허버트 그린리프가 이렇게 말을 붙인 것이다. “프린스턴에 다녔으니 우리 아들 딕을 알겠군. 디키 그린리프.”

순간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은 리플리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디키는 어떻게 지내죠?” 디키는 가업을 이어받기 싫다며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허랑방탕하게 지내고 있다. 허버트는 리플리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1000달러와 여객선 표를 내주며 디키를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는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한 1960년 작 <태양은 가득히>와 달리, 맷 데이먼이 리플리 역을 맡은 1999년 작 <리플리>는 원작의 설정과 이야기에 충실한 편이다. 하이스미스의 소설과 영화 <리플리>는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의 행동 방식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작품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정신이상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이코패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모든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하여 성욕을 채우고, 인육을 먹고, 기괴한 기념품을 만들고, 희생자를 살려두면서 고문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연쇄 살인범은 사이코패스, 지능형 범죄자는 소시오패스 같은 이분법이 타당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 그렇다.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사이코패스 검사표’(PCL-R)를 만든 사이코패스 연구의 개척자이자 권위자 로버트 D. 헤어 박사의 책 <진단명: 사이코패스>에 따르면, “영화와 소설을 제외하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는 극히 드물다.” 끔찍한 연쇄 살인범은 북미 지역을 통틀어 100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북미에만 200만에서 300만 명가량 존재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인구 중 1% 내외가 사이코패스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란 어떤 존재인가? 다시 <리플리>로 돌아가 보자. 나폴리 남쪽 몬지벨로라는 시골 마을에 도착한 리플리는 디키와 그의 약혼녀 마지를 만난다. 능숙한 거짓말로 동창생 행세를 하며, 평소 듣지도 않던 재즈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디키의 환심을 산다. ‘네가 잘하는 게 뭐야?’ 디키가 묻자 리플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서명 위조, 거짓말, 남 흉내 내기’.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걸 대놓고 자백하고 있지만, 너무도 당당한 태도로 이야기해버리기 때문에 디키는 리플리를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헤어 박사의 기준에서 볼 때 리플리는 영락없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라 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사회학, 정신의학, 의학, 심리학, 철학, 시, 문학, 예술, 법 등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둘러대기, 허풍, 과시 등이 거짓으로 드러나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중요한 특징이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의 거짓말은 그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때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럴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장기적인 고찰이나 반성 따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에게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중요하다. 그러니 남을 속이고, 때리고, 훔치고, 죽여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거리낌이 없다. 죗값을 치를 수도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사이코패스는 오직 본인을 향한 모욕이나 경멸에만 진지하게 반응한다. 부잣집 아들 디키가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과 행동을 자신에 대한 멸시로 여기며 차곡차곡 쌓아두는 리플리는 전형적 사이코패스일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사회는 때 아닌 ‘소시오패스 논란’에 빠져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해 국민의힘 대선 주자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아내인 신경정신과 전문의 강윤형씨가 내놓은 촌평 때문이다. 여당 측은 의료인의 권위를 빌려 정치적 비방을 했다며 의료 윤리 위반이라고 반발하는 반면, 강윤형과 원희룡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다.

이재명의 행보를 되짚어보자. 정계 입문 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검사 사칭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성남시장으로서 본인이 설계한 업적이라고 자랑하더니, 문제가 되자 대장동 개발을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당당하게 몰아붙였다. 성남시의 조직폭력배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경기도 국정감사 자리에서 곤란한 질문을 받았지만 “으흐흐” 하고 웃어넘겼다. 심지어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내가 끊어버릴 거야. 예의가 없어”라며 언론과 하던 생방송 인터뷰를 중단하는 등, 남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할 때는 격렬하게 반발하는 모습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나는 이재명을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 논란이 그런 식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테스트를 신청하지 않는 한 그에 대한 의학적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형 고(故) 이재선씨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 형수를 향한 욕설 파문 등 이재명을 둘러싼 믿기 힘든 소문은 예전부터 파다했다. 하지만 그는 상당수 지지자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두둔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과격하고 거칠수록 환호를 받았다. ‘대선 후보 이재명’은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정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주도권 싸움에 집착하고 권력투쟁에 능하다. 심지어 전문가인 로버트 헤어 박사 역시 사이코패스 사기꾼에게 속은 경험이 있다. 애초에 사이코패스가 접근하여 영향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헤어 박사는 강조한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리플리> 같은 창작물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2021-10-24

스승의날 카네이션도 불법이라더니..이재명이 하면 합법?

 [노정태의 뷰파인더-55] '김영란법' 무력화한 전현희의 억지

●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청탁금지법
● 지인이나 친구에겐 무료 변론 가능?
● 판사에게 밥 사는 것도 특권
● ‘끼리끼리’와 ‘카르텔’의 본질
● 일선 경찰은 ‘박카스’ 하나도 안 받는데…
● 공직사회 ‘스폰서’ 차단이 본 목적
● 공직자에게 ‘공짜 점심은 없다’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 응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3월 3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찬성 226명에 반대 4명이라는 압도적 표 차이였다. 청탁금지법의 제정을 원하는 국민 여론에 여야를 막론하고 호응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6년 7개월 후, 청탁금지법은 우스꽝스러운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탓이다. 지난 10월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전현희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변호사 수임료 '무료 변론' 논란에 대해 이런 답변을 내놨다.

"지인이나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는 무료로 변론할 수도 있다."

나는 청탁금지법 제정 취지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대한민국은 특권층의 카르텔형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나라다. 다소 '인간미'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엉겨 붙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처음부터 청탁금지법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었다. 학부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일상의 너무 많은 영역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경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형법의 적용 범위는 좁을수록 좋다. 그것이 자유주의자의 세계관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가운데)이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2021년도 종합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변호사가 판사에게 밥 사는 게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2015년 무렵 생각을 조금 바꿨다. 형벌권의 지나친 확장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확대할 수도 있다는 유보적 입장을 갖게 됐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인터뷰한 책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읽고 나서의 이야기다. 책에 나오는 김영란의 말이다.

"제가 왜 소위 '김영란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냐면요, 사법연수생으로 법원에 실무실습을 나갔을 때부터 판사님들이 저희를 데리고 가서 저녁을 사셨어요. 그런데 사실 판사 월급이 얼마 안 되던 시절이니까 제대로 저녁을 사기엔 주머니가 얇고, 그래서 결국 잘나가는 변호사들을 불러서 밥을 사게 하더라고요. 배석판사가 된 다음에 보니 부장판사랑 친한 변호사들이 저녁도 사고, 저녁을 못 사는 경우 변호사가 밥값을 따로 주기도 했어요. 아무 변호사나 그러는 건 아니고 동기 등 친한 변호사들이 그랬고, 액수가 그 당시 한 3만~5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김영란이 사법연수생이던 1979년~1980년의 3만 원은 오늘날의 3만 원과 다르다.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뇌물'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액수기도 하다. 법조인의 눈높이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식사를 하고 술을 곁들이기에 딱 적합한 정도의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딘 김영란이 보기에는 너무 이상하고 의아했다. 변호사가 판사에게 밥을 사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김영란의 의문에 답을 준 사람이 김두식이었다. 김두식이 2009년 펴낸 책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은 발간 즉시 진보진영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자기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고, 친하고, 음으로 양으로 '서로 돕고' 사는 법조계의 내막과 치부를 꼼꼼히 파헤쳤기 때문이다. 김두식이 볼 때 한국의 법조 엘리트들은, 그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지만, 일종의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

그 점을 분명히 짚고 명확하게 드러내준 김두식에게 김영란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2012년 10월 말,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영란은 김두식에게 부패방지에 대한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했다. 덕분에 청탁금지법에 대해 속속들이 1:1 과외를 해주는 책이 탄생했다.

국민 눈에는 결국 한통속이고 카르텔!

3만 원. 그 사소한 금액. 어쩌면 '인간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그저 밥 한 번 같이 먹고 밥값 대신 계산해주는 데 지나지 않는 자잘한 호의. 김영란은 바로 이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판사에게 밥을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끼리 '인간적'으로, '끈끈한' 정을 느끼며 서로 감싸고 챙겨주는 동안 그들의 도덕성은 점점 사회 보편의 기준에서 벗어나 둔감해진다.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볼 때 그렇게 챙겨주고 보듬어주는 문화 자체가 공권력과 국가 기관과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를 크게 망가뜨린다. 김영란은 이렇게 말한다.

"왜 대가관계 없는 금품수수를 그렇게 엄하게 다루냐는 비난이 있었어요. 하지만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부패구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그런 법이 반드시 필요해요."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부패구조'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보자. 이것이 바로 '끼리끼리', '카르텔'의 본질이다. 사법시험이 됐건 로스쿨이 됐건 행정고시가 됐건, 어떤 '자격'을 부여받은 이들에게만 허용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 후, 그 속에 들어가면 어지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다음에야 결코 내치지 않고, 아무리 무능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는, 그런 '온정'과 '시혜'의 구조. 김영란과 김두식은 그것을 문제 삼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의 관점은 너무 심한 게 아닐까?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사람이 새로운 업계에 속해 일을 하면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모든 업계에는 내부에서 통용되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특히 법조계처럼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쌓고 경험을 다져야 하는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업계 내부자끼리는 물리적, 사회적, 심정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걸 억지로 끊어놓기 위한 법을 만드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설령 가능하다 한들, 그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인가.

김영란의 답은 분명하다. 2015년 이전까지 우리 법체계가 지니고 있던 큰 맹점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엄연히 뇌물죄가 존재하지만 '대가성'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한계 말이다. 대가관계가 없는 금품수수도 금지하지 않으면 '정'이 쌓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 정이 쌓이고 끈끈해지면 그들끼리 서로 봐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내부자 사이에서는 훈훈한 풍경이겠지만 외부의, 국민적 시선에서 보면 결국에는 한통속이고 카르텔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금 법으로 대가성 있는 뇌물은 처벌하지만, 대가성 없는 돈은 처벌을 못하잖아요. 평소 돈을 받아오던 관계에서 청탁하는 것은 대가성이 없다고 해서 처벌이 쉽지 않고, 그게 바로 '스폰서'지요. 권력형 부패에서는 스폰서라 생각하고 돈을 주고받지, 뇌물이라 생각하고 돈을 주고받지는 않아요. 그래서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두 가지를 모두 끊어야 하는 거죠. 그 고리를 끊는 행동강령을 만들면서 처벌규정이 없으면 실효성이 떨어지니까, 기존의 행동강령처럼 윤리만 논하는 단계를 넘어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코뱅 같나요?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나요?"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를 차단하는 것. 법조계와 공직 사회를 기웃거리는 '스폰서'를 차단하는 것. 그것이 청탁금지법의 본래 목적이다. 이는 청탁금지법 제1조에 잘 설명돼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공직자 '등'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청탁금지법은 처음에 오직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한 법이었다. 국회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립학교의 직원과 언론사 직원 등이 포함됐지만, 최초의 목적은 공직자, 그 중에서도 '높으신 분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가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대가성 없는 후원 관계', 즉 '스폰서'를 처벌하고자 했던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학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세상사 모든 분야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공직자와 '스폰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는 뇌물 수수와 관련해 여러 정치적 스캔들을 겪은 나라다. 고위공직자나 선출직 공무원 뿐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이 '대가성 없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좋은 나라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청탁금지법은 완벽하지 않다. 여러 비판이 존재하며 일정 부분 수긍할만한 여지가 있다. 법의 취지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나부터가 여전히 국민 생활의 큰 부분을 형사처벌을 동원해 재단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완전히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 비현실적인 도덕주의, 엄숙주의, 결벽주의가 아니냐는 비판 내지 비아냥 또한 할 수 있을 테다. 그에 대해 김영란은 이렇게 답하고 있다.

"저더러 과격하다고 하는데 뭐랄까, 자코뱅(Jacobins) 같나요?(웃음)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나요?"

청탁금지법은 한 마디로 '친해지지 말라'는 법이다. 공직자가 돼 권력을 가진 사람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빌려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힘을 갖고 있는 동안은 아무하고나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친해지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게 '친하니까 괜찮다'는 범위를 줄여나가야 우리가 공정사회에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청탁금지법의 근간에 깔려 있다.

교사의 카네이션과 이재명의 무료 변론

‘아주 친한 사이면 무죄.' 전현희의 발언을 보며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아주 친한 사이면 변호사비를 안 받아도 청탁금지법 위반이 아닐 수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청탁금지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주는 카네이션도 안 받아온 선생님들, 동네 어르신이 쥐어주는 박카스 하나도 받지 않은 일선 경찰들, 혼자 밥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일하는 공무원과 법조인들의 조용한 헌신을 짓밟는 셈이다. 말단 공무원이 하면 불법이지만 여당 대선후보가 하면 합법이면 그런 걸 법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책장에서 뽑아온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다시 펼쳐봤다. 여전히 옳은 이야기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다. 더불어민주당 집권 후 권익위원장이 대놓고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발언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 허다한 '양심적 법조인'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버린 건 아닐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청탁금지법은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주민센터 9급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그 잣대로 이재명 지사를 평가하라.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법치주의다.

#김영란법 #전현희 #이재명 #무료변론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0-17

1위에만 유리한 룰 해석, 민주당은 '노무현 당' 아니다!

 

[노정태의 뷰파인더-54] 이재명 '본선 직행'이 주는 교훈

● 아무리 극렬해도 선거는 전쟁 아니다
● 이낙연 패배 인정, 환영할 일이지만…
● 민주주의 원칙 어긋난 與 당규해석
● ‘투표’와 ‘득표’는 엄연히 다르다!
● 소급 무효? 他 후보 매수 나설지도
● 여당서 사라진 盧·최동원의 ‘우공이산’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후보자 수락 연설을 앞두고 두 손을 올려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선거는 전쟁이다.'

다들 많이 하는 소리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종종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하다. 얼핏 생각해보면 맞는 말 같다. 선거와 전쟁 모두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권력을 두고 벌이는 다툼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패자에게는 형식적인 격려와 칭찬의 박수 외에 남는 게 없다. 그러니, 선거는 전쟁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선거와 전쟁의 유사성은 은유 차원에서 머문다.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전쟁은 상대가 다시는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굴복시킬 때 끝난다. 반면 선거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과가 나오면 막을 내린다.

전쟁을 끝낼 때 '다음 전쟁은 몇 년 후에 하자'고 기약을 하는 전쟁 당사자는 없다. 모든 전쟁은, 적어도 시작할 때만큼은,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라고 공표하게 마련이다. 반면 선거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치러진다. 이번 선거가 끝나면 다음 선거가 기다린다. '이번 선거는 마지막 선거'라는 식으로 치러지는 선거는 정상적인 선거일 수가 없다.

문제의 특별당규가 논란인 까닭

서로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벌이는 극한의 투쟁이라 해도, 선거는 전쟁이 아니다. 선거는 전쟁과 달리 '규칙성'과 '반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대표를 선출하거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이미 정해진 방식에 따라 참여자의 동의하에 수행된다.

반면 전쟁은 '무규칙'이다. 선거가 링 위에서 벌어지는 스포츠라면, 전쟁은 길거리 싸움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길거리의 깡패가 상대방에게 칼을 맞으면, 물론 재기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복귀가 어려울 것이다. 반면 운동선수는 몇 번이고 쓰러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이 또한 전쟁과 선거의 차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소 길게 일반론을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두고 벌어진 논란과 후폭풍에 대해 짚어보기 위해서다.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참여하는 이른바 '정치 고관여층', 특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 고관여층 사이에서는 정치와 전쟁을 동일시하는 시각이 흔히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한다', '승리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이러한 관점이 여당의 열혈 지지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소리다.

10월 13일 당무위원회 결정에 따라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경선 패배를 인정하면서 민주당의 내분은 일단 진정되는 모양새다. 이번 대선에서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와 무관하게, 환영할만한 일이다. 18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지닌 초대형 여당에서 극렬한 내분이 발생하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이 불거지게 만든 민주당의 당규와 그 해석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대선후보 경선의 특별당규가 모호하게 짜여 있었다는 것부터 문제적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당규를 해석함에 있어서 당원들의 투표를 무효로 만드는 방향으로 당 선관위가 해석을 내렸다는 데 있다. 단언컨대, 그러한 해석론은 민주주의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문제의 특별당규 '제20대대통령선거후보선출규정'의 제59조 1항은 후보자의 사퇴에 대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

이를 두고 이재명 지사와 그를 지지하는 측은 '무효라고 써 있으니 무효가 되는 것'이라는 문언적 해석을 앞세우고 있다. 문언적 해석이란 말 그대로 쓰인 말을 그대로 읽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사안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무효는 무효다'라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제59조 1항이 과연 그렇게 '명백'한 규정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후보자에 대한 '투표'와 그 후보자가 얻은 '득표'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제20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지사 등 당 지도부가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지도부-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상견례’에 참석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다른 후보 매수할 유인동기 생겨

제59조 2항과 함께 읽어보면 1항의 의미는 다른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제59조 2항은 "후보자가 투표 시작 전에 사퇴하는 때에는 투표시스템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도록 조치하되, 시간적‧기술적 문제 등으로 사퇴한 후보자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치 방법을 정한다"고 규정한다. 1항에서 말하는 '투표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59조 2항은 이런 뜻이다. 후보자가 투표 시작을 한참 앞두고 사퇴할 때에는 투표용지를 다시 인쇄하는 등, 아예 무효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투표 시작을 눈앞에 두고 사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며, 무효표가 최소한으로 나오도록 선관위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제59조 1항은 사퇴 이후에 발생하는 투표를 무효로 한다는 것이지, 사퇴 이전의 표까지 소급해서 무효라는 뜻이 되기 어렵다.

뒤이어 제60조로 넘어와도 마찬가지다. 1항. "선거관리위원회는 경선 투표에서 공표된 개표결과를 단순합산하여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민주당은 여러 차례 순회 경선을 하고 투표하며 매번 투표가 끝날 때마다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므로 어떤 표가 무효인지 유효인지는 매번 투표 후 '개표'하고 '공표'할 때 결정된다. 그리하여 나온 유효투표수를 단순 합산해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재명 측의 주장대로 정세균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사퇴 전에 얻은 2만3731표와 4411표가 무효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제60조 1항을 지킬 수가 없게 된다. '소급 무효'는 "경선 투표에서 공표된 개표결과를 단순합산"하는 행위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행해진 투표를 개표하고 공표하여 확정된 유효표는 설령 그 후보가 이후 사퇴했다 해도 유효로 봐야 한다. 그래야 제60조 2항에 정해진 결선투표의 취지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전체 조문의 논리적 구성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미 민주당 당무위원회는 결정을 내렸다. 이낙연 후보 스스로 수용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적 시각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언적 해석을 표방한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사퇴한 후보자의 표를 소급해서 무효 처리한다면, 특정 후보는 다른 후보를 매수하거나 설득해 전체 유효투표의 모수(母數)를 조작할 유인동기를 갖게 된다. 육상, 빙상 경기 등에서 1위를 할 수 없는 선수가 같은 편을 돕기 위해 유력한 경쟁자 앞에 넘어지거나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 것과 유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그런 이상한 경선 룰이 되고 만다. 민주당 당무위의 결정에는 선거를 경쟁이 아니라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고 보는 건 과도한 해석일까.

노무현과 최동원의 정치

9월 2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회의실 벽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누구 편이 가장 많은지 그 숫자를 헤아려 우두머리를 뽑는 것. 선거를 그 정도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은 틀린 건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더 많은 패거리를 거느린 알파 메일을 가려내는 일은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나 늑대 등, 사회생활을 하는 포유류라면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사회란 유인원 집단과 다른 그 무언가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선거를 전쟁으로 보는 단순 과격한 시각은 잠시 접어두자. 전쟁과 달리 선거는 상호 합의된 합리적 규칙에 따라 반복적으로 치러지는 평화적 행사다. 선거는 전쟁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아무리 치열하게 싸웠다 해도, 선거가 끝난 후에는 웃으며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를,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정상 작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거는 전쟁이 아니라 무엇이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민주국가의 선거란 '경연대회'에 가까운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선 가능성을 보고 뛰어들어 실제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도 있다. 매번 선거마다 판세를 유심하게 관찰한 후 '이기는 편 우리 편'의 마음으로 대세에만 표를 던지는 식의 유권자도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당장의 당선 가능성과 무관하게 선거에 출마한다. 선거가 치러지는 공동체에 대해 후보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지, 그런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적 행사가 바로 선거이기 때문이다. 마치 돌을 하나씩 날라 산을 옮기고자 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비록 지금은 다수가 아니지만 세상이 알아줄 때까지 올바른 이야기를 하겠노라고 마음먹는 정치, 세상에는 그런 정치도 있다.

노무현은 호남 차별에 맞서기 위해 부산에 출마했다가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실패하고 또 실패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노무현에게도 선거는 당선을 위한 전쟁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누군가는 3당 합당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그의 정치 행보를 지배했다. 노무현뿐만이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투수 최동원 역시 부산의 영웅이었고 김영삼(YS)과 각별한 사이였지만 3당 합당에 찬성하지 않았기에 민자당이 아닌 '꼬마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섰고, 패배했다.

대역전극 펼쳐지려던 찰나 뚝 끊겼다

쉽게 이기고자 하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굳이 지는 길로 걸어 들어갔던 이런 사례들에서, 우리는 선거가 전쟁이 아닌 더 숭고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다. 비록 지금 내 생각은 소수의견에 지나지 않지만, 선거라는 무대를 통해 꾸준히 대중을 만나 설득하다보면 언젠가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바보 같은 믿음으로 인해 때로는 정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오늘날의 민주당을 '노무현의 정당'이라 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보면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대장동 의혹에 경선 판 전체가 휩쓸려 들어가면서 진흙탕 싸움이 돼버렸다. 막판 대역전극이 펼쳐지려던 찰나, 1위 후보에게만 유리한 식으로 룰을 해석하면서 경선 자체가 중간에 뚝 끊겨버리고 말았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 뿐 아니라 국민 전반에도 큰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다. 이낙연 후보가 패배를 인정한 마당에 정해진 경선 결과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 경선을 자기 성찰 및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낙연 #이재명 #결선투표 #노무현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0-16

대장동에 폭력과 뇌물로 점철된 '도둑정치'가 어른거린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
도둑정치인 파멸시킨 국민

파블로 에스코바르.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총명한 두뇌로 대학에 갔다. 그런데 대학을 중퇴하고 밀수업자가 되었다. 담배부터 온갖 것을 밀수하며 돈을 벌어 고향인 메데인의 경찰 중 절반을 매수했다. 그러던 중 마약 업계에 뛰어들었다. 메데인 지역의 조직을 규합해 이른바 ‘메데인 카르텔’을 결성하고 미국으로 코카인을 수출하면서 상상도 못 할 돈을 벌었다. 범죄자의 재산이니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 세계 10대 부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1980년대, 콜롬비아는 오랜 내전과 지독한 부패에 시달리고 있었다. 깊은 정글 속에는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진을 치고 ‘혁명’을 하겠다고 돌아다니며 ‘군자금’ 마련을 위해 납치와 강도 등 온갖 범죄를 일삼았다. 코카인이라는 새로운 마약에 홀딱 반해버린 미국인들은 밤이면 밤마다 파티를 벌이며 흰 가루를 흡입했고, 그 돈은 고스란히 메데인 카르텔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피카소와 달리의 작품을 구입하고 동물원을 만들어 코끼리와 하마를 키워도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일러스트=유현호

에스코바르는 그 막대한 재산 중 일부를 자신의 고향인 메데인 지역에 뿌려댔다.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해결해주고 지역 축구단을 후원해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얻은 인기에 힘입어 1982년 콜롬비아 하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마약을 팔아서 번 돈으로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오징어 게임>보다 몇 년 앞서 전 세계인을 열광시켰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나르코스>의 주인공,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다.

<오징어 게임>의 데스 게임만큼이나 황당한 소리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과 달리 <나르코스>는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다. 밀수 트럭을 붙잡아 세운 경찰을 향해 에스코바르는 당당히 선포한다. “언젠가 나는 콜롬비아의 대통령이 될 몸이다. 난 거래를 업으로 삼고 있지. 침착하게 내 거래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대가를 치르든지 해. 은(銀)이냐 아니면 납(鉛)이냐. 너희가 선택해.” 뇌물을 받거나 총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소리다.

은이냐 납이냐. 폭력과 뇌물로 점철된 도둑정치(kleptocracy)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다. 도둑정치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훔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klepto와 정치를 뜻하는 접미사 cracy를 결합한 것으로, 말 그대로 ‘도둑놈들이 하는 정치’라는 뜻이다.

도둑정치는 금권정치(plutocracy)와는 다른 개념이다. 대부분 범죄자는 자기 돈을 감추려 하고, 정치판에 나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금권정치의 유혹에 빠지는 건 대체로 스스로 부를 일궜거나 상속받은 사람들이다. 재산을 지키고 더 늘리려 정치의 힘을 동원하거나, 재산을 이용해 권력을 손에 넣고자 하는 경우가 금권정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도둑정치는 범죄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권력을 쥔 자가 그 힘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법 질서를 왜곡하여 자기 주머니를 채울 때, 그것은 금권정치가 아니라 도둑정치다. 때로는 ‘나르코스’처럼 범죄자가 범죄 수익을 밑천 삼아 정치판에 뛰어들어 휘젓고 다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또한 단순한 금권정치가 아닌 도둑정치로 분류될 수 있다. 범죄자에 의한, 범죄자를 위한, 범죄자의 정치. 그것이 바로 도둑정치인 것이다.

도둑정치는 이른바 ‘후진국 현상’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국가에서 곧잘 발생한다. 중국에 석탄을 팔아 스위스 시계를 구입해 당 간부들에게 나눠주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도둑정치라고 할 수 있다.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넣은 자들은 국가를 사유화하여 제 이익을 챙기고, 그 돈으로 다시 권력을 움켜쥔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도둑정치의 늪이다.

‘대장동 특혜 분양 의혹 사건’은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경기지사를 꼭짓점으로 하여, 이 지사의 측근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심지어 권순일 전 대법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초대형 스캔들이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황당함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다. 도둑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대장동 개발은 이 지사가 ‘설계’한 것이다. 공영 개발의 명분으로 토지를 값싸게 수용해 민영 개발하여 비싸게 팔았다. 수사 중인 사안이긴 하나, 범죄 혐의가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이건 명백한 도둑정치다. 권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돈을 벌었으니 말이다.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듯 화천대유의 천문학적 이익 중 일부가 이 지사의 변호사비 대납을 위해 쓰였거나, 혹은 그의 정치 생명을 구한 대법원 판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줬다면, 이는 한층 더 심각한 도둑정치의 사례가 된다.

너무도 어이없는 현실 앞에 요지부동이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민심마저 크게 흔들렸다. 대선 후보 경선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득표율 62.3%로 28.3%를 얻은 이 지사에게 압승을 거두는 이변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 지사는 여전히 당당하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권력형 개발 비리에 연루된 장본인이 대선 후보 당선 연설에서 ‘부동산 대개혁’을 외치며 “개발 이익 완전 국민환원제” 등을 공약하고 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광경 앞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나르코스>에 따르면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정치에 입문하며 스스로를 ‘빈민의 로빈 후드’로 이미지 메이킹했다. 대중에게 푼돈을 나눠주며 대놓고 매표 행각을 벌였다. 어디선가 비슷한 모습을 본 것 같은데, 그냥 내 기분 탓일까. 아닌 게 아니라 <나르코스>의 매 에피소드가 시작될 때마다 뜨는 자막이 있다. “이 드라마는 실화에 기초했지만 일부 등장인물 이름, 기업체, 사건과 지역은 모두 허구입니다. 실제 이름, 인물 및 역사와의 유사성은 우연이며 의도하지 않은 바입니다.”

에스코바르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국회에서 탄핵당한 후 법무장관과 대통령 후보 등을 상대로 복수하겠다며 온 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협박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대통령이 선출된 후에야 그 범죄 행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도둑정치가 빼앗아간 것을 되찾으려면 국민 스스로 눈을 떠야만 하는 것이다.

2021-10-14

송영길 대표님, 내 표가 무시당한 순간 쿠데타 일어납니다


송영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후폭풍 속에서 매일 정신없고 힘드실 테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제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너무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혹시 '오징어 게임' 보셨습니까? 안 보셨더라도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시겠죠. 빚에 쫓기며 사는 한 남자가 어떤 '게임'에 참여합니다. 무인도에서 치러지는 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달고나), 줄다리기 같은 어린 시절 하던 놀이를 다 큰 어른들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단, 몇 번이건 실패해도 괜찮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한 번 탈락하면 두 번의 기회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주최 측이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니까요.

이런 잔혹 동화 내지 동심파괴 스토리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참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는 건 문화평론가들의 몫이니 전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보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느낍니다. 왜일까요? 돈이 많이 걸려서? 아닙니다. 탈락하는 사람을 죽여버리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바꿀 수도 없고, 나와 생각이 100%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와 평화롭게 공존해나갈 수도 없습니다. 탈락은 죽음이다, 이런 게임은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꺼내는지 짐작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퇴 후보에 대한 투표의 무효 처리 여부 때문입니다. 민주당 선관위가 만들고 송영길 대표님이 추인하신 현재의 해석은 제가 보기 옳지 않습니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말이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당규를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문제의 특별당규, 그러니까 '제20대 대통령선거후보선출규정'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제59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은 많지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곳은 찾기 어렵더군요. 해당 특별당규 PDF 파일 속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59조(후보자의 사퇴)  ①경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

②후보자가 투표 시작 전에 사퇴하는 때에는 투표시스템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도록 조치하되, 시간적‧기술적 문제 등으로 사퇴한 후보자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치 방법을 정한다.
민주당 선관위는 제59조 1항을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소급하여 무효가 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후보자가 경선 도중 사퇴했다면, 그 후 그 후보자를 찍은 표는 무효'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합니다.

민주당 선관위의 해석론을 '소급무효론', 저를 비롯해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을 '추후무효론'으로 이름을 붙이고 논의를 계속해 나가봅시다. 소급무효론의 가장 큰 문제는 결선투표제의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선투표란 무엇입니까? 유력 후보가 아닌 군소 후보 지지자의 표심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입니다. 결선투표 이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이겨낸 후보뿐 아니라, 여력이 부족해 중간에 사퇴한 후보자를 지지한 표심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표심입니다. 그걸 하루아침에 무효표로 처리해버리는 건 투표라는 제도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술래에게 걸렸다고 해서, 술래에게 총 맞아 죽는 것과 같은 부조리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59조 2항과 함께 놓고 보면 1항의 취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2항은 투표의 무효 처리 방법을 정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막아 무효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투표를 불가능하게 처리하고, 그게 안 된다면 선관위가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찍은 표를 무효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죠.

무효표 소급 불가 명확한데 

특별당규 제60조를 보면, 제59조에서 말하는 '무효'가 소급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제60조(당선인의 결정)  ①선거관리위원회는 경선 투표에서 공표된 개표결과를 단순합산하여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②제1항의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제60조 1항의 의미를 곱씹어봅시다. 어떤 투표가 유효투표인지 아닌지는 투표가 치러진 후, 개표하여, 그 결과를 공표할 때 정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세균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사퇴 전 득표했고, 개표하여, 공표된 2만3731표와 4411표는 유효합니다. 단 사퇴 후에 어떤 식으로건 그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무효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취지에 따라 상식적으로 바라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저는 평소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대표님께 이런 고언을 드리는 이유는 민주당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정의당이건 이 나라 정당들 모두 우리 민주주의의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입니다.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단독으로 지니고 있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가장 힘이 센 슈퍼 여당입니다. 이런 거대한 정치적 결사체에서 지지하는 후보자가 사퇴했다는 이유로 내 표가 탈락하는 경험을 국민에게 안겨줘서는 안 됩니다. 경선 규칙이 다소 애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과오를 인정하고 더 많은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룰을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민주'의 모습, 아닐까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불행히도 이 글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는 이재명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민주적 원칙이나 다양한 의견의 조화로운 공존을 택하지 않았죠. 대신 '민주주의란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개념의 편에 섰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오징어 게임 아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는, '오징어 게임'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순간 선거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내 표가 무시당했다는 좌절과 모멸감, 내 투표는 의미가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송영길 대표님이 이야기하신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예를 들어볼까요? 1956년 5월 5일, 제3대 대선 직전 야당 후보였던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은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뇌일혈(혹은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너무도 황망한 죽음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그가 병사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암살당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국민은 이미 죽은 신익희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습니다. 무려 185만 표가 나왔죠.

신익희가 얻은 185만 표. 그것은 무효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민심은 무효가 아니었죠. 이승만 정권의 지속을 더는 원치 않는다는 대중적 열망이 한껏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고, 4·19 혁명으로 축출되었습니다. 그 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부가 권력을 잡습니다.

무효표 무시하지 마십시오. 내 표를 무효로 만들지 말라는 유권자의 함성을 함부로 짓밟지도 마십시오. 정치권에서 그런 오만한 태도를 보일 때 국민 마음은 차갑게 식어갑니다. 결국 군사 쿠데타,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일이 벌어지는 토양이 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더불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정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언을 드립니다.

2021-10-08

내부고발로 얻은 의원 뱃지...이탄희는 이미 죽었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부고발자다. 천관율 전 '시사IN'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아마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성공한 내부고발자"다. 얼핏 보면 틀린 말 같지 않다. 판사 이탄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을 고발한 후 변호사로 아주 잠시 일하다가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캠프가 출범한 미래정치기획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선 결과에 따라 그의 관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탄희의 성공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 입성한 법조인 출신 젊은 의원 중, 역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주민 의원과 더불어 가장 전도유망한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탄희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개인적 영달에 그친다.

내부고발로 얻은 국회의원 뱃지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내부고발자는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에서 순식간에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로 전락한다. 우리 편에서 배신자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이걸 알면서도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웹툰 '송곳'의 명대사마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아닌 건 아니라고 한마디 하고야 마는, 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있다. 대체 왜일까.
내부고발은 조직에 속한 이가 감행하는 실존적 결단이다. 조직의 논리보다 사회적 상식을, 윗사람의 심기보다 나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부고발의 성공과 실패는 내부고발자가 이후 출세를 했냐 못 했냐 같은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내부고발자라는 험한 길을 택하면서 스스로 제시했던 기준과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누가 보더라도 떳떳한 양심적 주체가 될 때 비로소 내부고발자의 인생은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이탄희를 보자. 그는 이른바 '사법 농단'의 내부고발자였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막 들어설 무렵 판사 이탄희는 과거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표를 냈다. 첫 번째 사표는 반려되었지만 이미 그는 법원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두 번째 사표는 받아들여졌는데, 그때는 새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요청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었다. 판사를 검사가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전개되었다.
이때 밝혀진 사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 상고법원 설치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치열하게 로비를 했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판결, 통상임금 판결, KTX 여승무원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런 사례를 들어 청와대와 코드가 맞다고 강조한 후 청와대의 마음을 얻어 상고법원 설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게 알려진 재판거래의 전부다.

사법농단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정말 법원행정처의 힘을 이용해 판사들을 회유·협박하여 개별적 재판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혹시 정치적 의도는 없었지만, 상고법원 설치 로비를 위해 대법원이 마치 청와대를 위해 그런 판결을 일부러 내린 양 부풀린 건 아일까?
전자라면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헌정 질서 파괴다. 하지만 후자라면 재판거래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오버 액션'일 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권의 믿음직한 칼이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어 처리한 첫 사건이 바로 이 재판거래 사건이었다. 그런 윤석열이 총괄한 수사였지만 대법원이 재판 결과를 조작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대법원은 청와대와의 협상 카드를 위해 일찍부터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맞는 판결을 내렸던 걸까. 검찰 수사라는 극약처방에도 그런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내부고발자로서 목청을 높이던 이탄희의 어조는 2020년 국회의원이 된 후 크게 달라졌다. 자신이 고발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문제였다고 말이다.
지금 대장동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워낙 큰 사건이고 다양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탄희를 떠올렸다.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장동 게이트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던 그 시점이었다. 정치권에 떠도는 이른바 '50억 리스트'에 권순일의 이름이 또 등장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내부고발자 이탄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적 생명을 건져낸 장본인이 권순일 아닌가.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이 사안에 '이재명-권순일 재판거래', 아니 논의의 편의상 '이권 거래'라고 이름 붙여보자. 권순일은 캐스팅보트를 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 표명한 것이란 사정이 없는 한 후보자 (거짓) 토론회 발언을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그 시점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법리를 새로 만들어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 이재명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후, 이재명이 설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 이런 명백한 이권 거래를 보며 이탄희가 말한 재판거래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권순일의 수상한 행보

하지만 이번 이권 거래는 이탄희가 내부고발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박근혜 재판거래처럼,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권순일은 우연히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을 구해내는 판결을 했을 뿐이고, 퇴임 후 변호사 등록도 안 한 채 화천대유에 취직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시간차 뇌물 수수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래를 계약서 써가며 하지는 않을 테니 범죄 사실을 포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재명-권순일의 이권 거래가 실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설령 그런 거래가 있었다 한들 사실을 밝혀내고 법으로 처벌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2017년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칼을 빼 들었지만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이탄희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문제를 내부고발한 게 전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이권 거래도 같은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여부나 법적 처벌 가능성 유무와 무관하게 이 사안은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의 법에 대한 존경심을 짓밟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분노한 사람이라면 권순일 대법관의 이권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당연히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법원의 내부고발자 이탄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혹의 당사자인 이재명 캠프에서 미래정책기획위원장으로 젊은 지지자와 전문가를 규합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지난 정권의 재판거래를 고발하며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현 정권 들어 가장 심각한 재판거래 의혹이 있는 누군가의 밑에서, 재판거래의 수혜자일 수도 있는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판사로서의 경력을 내던졌던 내부고발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대신 같은 육체를 지닌, 유력 정치인에 줄 대는 어떤 흔해빠진 정치 초년생이 있을 뿐이다. 굳이 '나는 저격한다'에서 저격할만한 인물조차 못 된다. 다만 법관의 직업윤리가 정치 논리와 개인적 출세욕 등으로 얼룩지는 것을 참지 못했던 한 젊은 법조인이 출세욕을 좇아 사라졌다는 점은 애석하게 여긴다. 나는 정치인 이탄희를 저격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죽어버린 내부고발자 이탄희를 애도한다.

2021-10-03

'오징어 게임'보다 잔인한 이재명 '두꺼비 게임'

[노정태의 뷰파인더-53] 공영개발 탈 쓴 민영개발의 민낯

● 공영개발, 과도하고 부당한 협상력
● 리스크 낮고 낮은 비용 개발 가능
● 자본주의 윤리 따르는 민영개발
● 갈등에 따른 리스크 감수해야
● 알쏭달쏭 이재명式 ‘환수’의 의미
● 강제수용 ‘치트키’ 쓴 기괴한 民개발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한국 정치가 '화천대유 사건', 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매일 새로운 의혹과 해명이 나온다. 지금 쓴 글이 내일, 아니 반나절 뒤에도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므로 사안의 본질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아무리 새로운 사실관계가 불거져 나온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어떤 정당의 정치인이 연루됐건, 어떤 대선후보에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건, 바뀔 수 없는 사실이 존재한다.

만약 이 사안을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독자 여러분이 모두 알만한 그 노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9월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에서 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가운데 터널을 중심으로 왼편이 A1, A2, A6 구역, 오른편이 A10 구역이다. 위로는 빌딩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가 위치해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며 놀 때, 늘 의아했다. 남들도 다 부르는 노래여서 나도 따라 불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대체 두꺼비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내어주고 두꺼비는 내게 새 집을 줘야 한단 말인가?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헌 집'은 알을 몸속에 품다가 낳고 죽는 옴두꺼비 어미를 뜻하고 '새 집'은 그렇게 태어난 자식을 뜻한다는데, 선뜻 납득하기는 어려운 설명 같다.

아무튼 룰(rule)은 분명하다. 내가 헌 집을 주면 두꺼비는 새 집을 준다. 두꺼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꺼비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런 믿음을 품고 놀이터의 모래밭에서 한쪽 손을 파묻고 다른 손으로 모래를 쌓아 토닥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대한민국 공영개발이 원론적으로 표방하는 바가 바로 저 '두꺼비 놀이'와 같다. 공공개발은 원칙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두꺼비처럼 헌 집을 받아 새 집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원론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예상 가능하다시피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그 어그러진 현실의 구조를 이해해야,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두꺼비는 왜 헌 집을 받고 새 집을 돌려줄까.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두꺼비가 이타적이다. 내가 헌 집에 사는 걸 원치 않고, 대신 새 집을 주고 싶어 헌 집을 가져간다. 이런 경우 두꺼비는 내게 집을 공짜로 주거나, 저렴하게 팔거나, 낮은 가격으로 빌려줄 것이다. 내가 새 집에 살게 하는 것이 헌 집을 가져가는 두꺼비의 목적인 게 분명하다면 말이다.

두 번째 가능성도 있다. 두꺼비가 이기적인 경우. '이기적'이라는 말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두꺼비는 나의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은 다음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 이익을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순순히 내놓지 않을 것이다. 두꺼비가 새 집을 지어서 얼마나 이익을 볼지 따져본 후, 두꺼비가 제대로 된 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나의 헌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타적 두꺼비와 이기적 두꺼비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있는 화천대유 사무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이 비유를 택지개발에 대입해보자. '이타적인 두꺼비'는 공영개발이고, '이기적인 두꺼비'는 민영개발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영개발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투자기관 등의 공공부문에서 직접 개발하여 민간에 분양하는 택지공급방식"이라고 정의한다. 공영개발은 공공부문에서 직접 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국민에게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이타적인 두꺼비' 모델이다.

물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공영개발이 결정되고 추진되면 해당 부지의 땅 주인과 원주민은 맞서기 어렵다. 더 많은 이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는 대의명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영개발 두꺼비는 '새 집 줄게'의 약속을 내밀고 '헌 집 다오'에서 과도하거나 부당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토지소유자와의 매각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공영개발의 주체는 공익사업 용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도록 토지수용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갖추고 있는 제도적 장치다.

‘이타적인 두꺼비'는 착한 두꺼비, '이기적인 두꺼비'는 나쁜 두꺼비, 이렇게 단칼에 나눠서 이야기하기 곤란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어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타적인 두꺼비와 달리 강제수용 같은 수단을 동원할 수 없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자본주의 윤리에 충실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당 토지의 적절한 시장 가격을 파악하고, 개발했을 때 얼마나 이익이 날지 스스로 계산하여, 땅 주인과 제대로 협상을 해서 매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지개발 대상지의 땅 주인 처지에서 보자. 제대로 협상이 진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타적인 두꺼비'보다는 '이기적인 두꺼비'를 만나 땅을 파는 것이 좋다.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Win-Win) 게임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존의 땅 주인 내지는 주택 소유주와 '이기적인 두꺼비'의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이기적인 두꺼비가 너무 이기적인 가격을 불러서일 수도 있고, 땅 주인이 소위 '알박기'를 하며 버틸 수도 있다. 집과 땅 등 부동산은 대략적인 시세만 있지 '정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의, 혹은 단 한 명의 땅 주인이 버티고 들어서 전체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 그 손해가 한도 끝도 없이 커질 수 있다. 개발 사업에서 '리스크'라 할 수 있는 것 중 큰 부분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5500억 원 환수? 이중인격 두꺼비!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수사팀이 9월 29일 경기 성남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을 버스에 싣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정리해보자. 토지개발은 크게 공영개발과 민영개발로 나뉜다. 공영개발은 공공부문에서 직접 개발하기에 강제수용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 있고, 그래서 리스크가 낮으며, 따라서 낮은 비용으로 개발이 가능하다. 대신 공공부문은 그 이익을 자신들이 취할 수 없다. 저렴하게 새로운 주택을 분양하고, 기존에 해당 지역에 살던 원주민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 등도 충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반면 민영개발은 민간이 추진하는 개발 사업이다. 모든 토지 소유주와 협상해야 하며 세입자를 내보낼 때도 갈등이 생길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토지 매입 단계부터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공영개발에 비해 큰 것이다. 따라서 리스크가 크고, 큰 리스크는 곧 높은 사업비로 이어진다. 대신 민영개발의 주체는 공영개발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택을 분양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제 화천대유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여러 정치인의 이름과 다양한 의혹과 논란이 오가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대장동 개발은 공영개발의 탈을 쓴 민영개발이었다. 원주민을 내쫓고 토지 소유주의 땅을 가져갈 때는 공영개발이었는데, 막상 토목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고 분양을 할 때가 되자 민영개발이 되고 말았다. '이타적인 두꺼비'인 척 하면서 내 헌 집을 값싸게 가져가더니, '이기적인 두꺼비'가 돼 나에게 새 집을 비싸게 팔았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토지개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 발생한다. 공영개발의 경우 강제수용이라는 '치트키'를 통해 그 리스크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대신 공영개발은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거나, 이익이 남더라도 법에 규정된 상한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공영개발의 탈을 쓰고 강제수용을 동원해 토지를 매입한 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개발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국가나 지자체 등을 앞세워 '공공선'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땅을 헐값에 매입한 후, 그것을 통상적인 시장가에 판다면, 당연히 턱없이 높은 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재명 지사가 이런 비상식적인 사업 모델을 자신의 치적인 양 포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대장동 개발이 천문학적 이익을 냈으며, 그 중 5500억 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그것을 '환수'라 부르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민영개발의 경우에도 당연히 진행되는 온갖 기부채납 등을 마치 자신이 추진해 이루어진 '환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모든 민영개발에서 막대한 '환수'가 이루어져 왔다고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애초에 '환수'할 만큼 큰 이익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익만 해도 수천억 원이 넘는다. 공영개발의 명목 하에 싸게 매입한 땅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비싸게 팔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민중의 소리'는 그것을 "민간업자들은 성남시에 5500억 원을 환수 당하고도 8000억 원에 가까운 순익 로또를 맞았다"고 정리한다. 현실을 호도하는 해석이다. 5500억 원은 '환수' 당한 것도 아니고, 80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순익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비상식적이고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낳은 '민관 공동개발 모델' 그 자체가 문제다. 이타적인 탈을 쓰고 이기적으로 돈을 번 이중인격 두꺼비, 그것이 바로 대장동 개발의 실체다.

기괴하고도 잔인한 '설계'

이재명 지사 스스로가 인정했다시피 그는 이런 기형적인 개발 모델을 '설계'한 사람이다.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본인이 직접 서명한 문서까지 남아 있다. 화천대유나 개발 시행사 성남의뜰로부터 이 지사에게 직접 흘러간 자금이 없다고 해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사건에는 이 지사 뿐 아니라 최근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곽상도 무소속 의원, 이 지사의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무죄 의견을 냈던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이 연루돼 있다. 9월 29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친 소유 주택과 관련한 논란도 제기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검에 찬성해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해야 옳다.

공영개발은 공영개발의 요건을 준수하며 진행돼야 한다. 민영개발은 개발 대상지 소유주와 원주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해야 한다. 이 지사가 '설계'한 민관 공동개발은 강제수용을 통해 토지를 값싸게 수용하여 민영 사업자를 통해 비싸게 판다. '오징어 게임'보다 기괴하고 잔인한 '두꺼비 게임'이다. 특검을 통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그 내막이 낱낱이 밝혀져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장동 #화천대유 #오징어게임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0-02

자영업자 학살극 주범은 숫자놀음에 정신 팔린 'K방역'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죽음 선택한 22명의 자영업자

1958년, 서독 노이슈탄트. 15세의 소년 미하엘은 사랑에 빠졌다. 36세의 한나와 묘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육체 관계로 시작했지만 한나는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연상의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며 <오디세이아>, <에밀리아 갈로티>, <전쟁과 평화> 등 온갖 문학의 고전을 소리 내어 읽어나가던 뜨거운 여름. 그러던 중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첫사랑은 끝났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뀐 후 미하엘은 대학에 진학하여 법대생이 되었다. 그는 재판 견학을 갔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첫사랑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이다. 한나는 강제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한 나치 전범이었다. 한나는 수감자가 죽을 걸 알면서도 매달 60명씩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이 수용소에는 매달 새로운 수감자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간수들도 그렇게 했다’. 한나의 항변이 법정에 울려퍼졌다. 독일의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쓴 <책 읽어주는 남자>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영화 <더 리더>의 원작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하면서 주인공의 이름이 ‘미하엘’에서 ‘마이클’로 바뀌었지만 주제 의식은 동일하다. 판사가 한나에게 질문한다.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을 곳으로 보냅니까?’ 한나는 수긍하지 않는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던진 바로 그 질문, ‘악의 평범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는 1963년 <뉴요커>의 의뢰를 받았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1963년 2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전반적인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하에 연재되었고, 훗날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렌트는 일단 재판의 광경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에 집중했다. 교수대에 선 아이히만은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하고 그 절반을 마셨다. 성경을 읽어주겠다는 목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검은색 두건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재판받고 처형당하는 입장이면서도 마치 남의 장례식에서 애도 연설을 하는 양 행세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에 도달했다.

아이히만은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정상적이었다. 아렌트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 ‘평범성’, 혹은 ‘진부함’이나 ‘일상성’에 있었다. 아이히만은 명령에 복종하는 교양 있는 고급 장교로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태도로 유대인에 대한 체계적 학살을 진행했다. 자신이 따르는 명령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어떤 사람들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이라서,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수행했을 뿐이었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더 리더>의 한나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단지 수용소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간수 한 사람당 열 명씩 제소자를 골라내어 아우슈비츠로 보냈을 뿐이다. ‘합리적’인 행위다. 미군의 폭격으로 수용소에 불이 났을 때 한나는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간수는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 갇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 모습을 보며 미하엘은 한나의 중요한 비밀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난달 25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브리핑에서 2주가량 사적 모임을 미루거나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2500명 내외의 (확진자) 발생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게 되면 (중증 환자 규모도) 뒤따라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현재 우리는 하루 신규 확진자 3000명 이하에 대해 1~2주가량 대응할 수 있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역 4단계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이미 4단계를 몇 주째 연장하고 있지 않은가? 확진자 수 관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국민에게 모임 자제를 ‘요청’할 게 아니라, 자영업자에게 영업 정지를 ‘명령’하고 그에 따른 손해를 공식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정부는 국민, 특히 자영업자에게 방역의 짐을 떠넘기고 있다. 최저임금 폭등으로 한계에 치달은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이후 생사의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최소 22명의 자영업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 ‘자영업자 학살극’이 과연 방역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악의 평범성’은 아우슈비츠 같은 극악한 반인륜 범죄에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굶건 죽건 확진자 숫자 놀음에 정신이 팔린 무신경하고 잔인한 K방역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영업자 분향소에 조문은커녕 근조 화환조차 보내지 않았다. 경찰은 분향소 설치를 방해하다가 마지못해 허락해놓고도 시민들을 감시했다. 나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더 리더>의 한나가 내놓는 변명이 떠오른다. 현실 속의 아이히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지루하고 상투적인 ‘악의 평범성’에 갇혀 있는 것이다.

10월 말부터 시행할 수 있다는 ‘위드 코로나’는 방역 단계를 낮춘다는 말과 같다. 단기적으로나마 확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은경 청장의 노고를 보면서도 의문을 표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확진자가 5000명, 1만 명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 ‘위드 코로나’ 하면서 동시에 방역 4단계를 연장할 셈인가. 청와대의 방침에 따라 끝없이 희망고문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더 리더>는 배움과 참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하엘은 감옥에 갇힌 한나에게 책을 녹음하여 테이프를 보내준다. 한나는 반성하고 생각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더 리더>와 달리 우리의 이야기가 꼭 비극으로 끝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 정직한 태도로 인격적 예우를 드러내는, 그런 방역과 정치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