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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신동아] 北 만행에도 文정권은 '저 망나니 착해질 수 있다'며 악행 방조

 

北 만행에도 文정권은 '저 망나니 착해질 수 있다'며 악행 방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09.26. 10:01
[노정태의 뷰파인더③] 北 행패에도 비위 맞추고 굽신 거리는 'enabler(조력자)'

●‘北 이기자, 잘 살아보자’는 퀘스트의 힘이 번영의 동력
●北 몰락하자 남북 힘 합쳐 외세 이기자는 서사 범람
●박정희에 멈춘 보수, 옛 대북관 넘어서는 담론 못 만들어
●그 틈새서 반미주의 세례 586, 낭만적 대북관 들이밀어
●현실의 北, 해수부 공무원 총살 후 시신훼손 만행
●北은 韓의 짐, 이웃에 폐 끼쳐도 뒷감당은 우리 몫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北에 술값 못 찔러줘 안달
●北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게 ‘선진국’ 대한민국의 퀘스트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4일 오후 경기 김포시 ‘캠프원’에서 열린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전략보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해양수산부 실종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뒤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한 뒤 현장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다. [뉴스1]
영화과 학생이 아니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교과서가 한 권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텔레비전 학교의 교수이며 지금도 현역으로 할리우드 주요 제작사의 스토리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로버트 맥키의 책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다. 

책의 서문에서 맥키는 선언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전형이 아니라 원형에 관한 것이라고. 시대·장소·문화·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틀이 있다.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구조는 어렵지 않다. 주인공(hero)이 있고, 주인공이 이루어야 할 목표(quest)가 있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반(反)주인공, 즉 안티히어로(anti-hero)가 등장한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이러한 원형적 구조 위에 성립하고 있다는 게 맥키의 설명이다. 

이야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주인공도 퀘스트도 아니다. 안티히어로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 그 안티히어로의 행동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냐에 따라 관객의 집중도가 오르내린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 여부는 이에 달려 있다. 이야기가 막히면 악역을 다시 검토해볼 것! 맥키의 책뿐 아니라 모든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공히 지적하는 내용이다.

‘북한을 이긴다'와 '잘 살아보세'

대한민국, 특히 한국 보수 정치에 그 '악역'은 북한이었다. 북한을 이기기 위해 한일협정을 맺고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한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 구도가 더욱 분명해졌다. 박정희는 1961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북한 김일성 체제의 황금기인 1960년대와 겹친다. 북한의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은 실로 놀라웠다. 일본에서 공부한 화학자 리승기가 1950년 월북한 후 합성 섬유 비날론(Vinalon) 생산 단지를 건설해낸 것 또한 1961년. 갓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모든 면에서 북한을 이기는 것을 자신들의 과제, 즉 퀘스트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테다. 

‘북한을 이긴다.' 그 퀘스트는 도덕적 당위도 포함하고 있었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37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온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6·25전쟁이 끝난 지 고작 10여 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전쟁의 참상과 공포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되는 '감춰진 진실'이 아니었다. 모든 이가 보고 듣고 겪어서 아는 실질적 위협이었다. 

보수는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대한민국도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 그 원인은, 아주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북한을 이긴다'는 퀘스트가 지닌 힘 때문이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박정희 정권의 모티프는 경제 번영을 향한 열망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온 국민을 일종의 전시체제로 몰아넣었다. 진보 진영에는 바로 그런 이유로 박정희 정권과 그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의 화약고였으니 말이다. 한국 보수 정치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나라에서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맞서기 위해 국민을 산업역군이자 전쟁용사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군인 출신의 정치인들은 근대적 시스템에 익숙했다. 한마디로 유능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북한에 맞서 잘 살고 잘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목적의식과 동기 부여에 국민이 호응했다. 분명한 전략은 분명한 국가적 서사(national narrative)로 이어졌다. 국가적 서사는 국민 각각을 그 서사 속의 주체로 재정립했다.

기아와 영양실조의 땅

이 서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됐다. 한 시대가 끝나간다는 건 분명해 보였지만, 당시만 해도 평범한 한국인이 접할 수 있는 세계 소식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냉전의 종말과 그로 인한 변화를 한국인들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실감했다. 

북한은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고 쌀과 라면 등을 사재기하게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부터였다.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은 내전 상태의 소말리아를 연상케 할 만큼 처참한 기아와 영양실조의 땅이었다. 김일성은 죽었고 김정일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북한을 이기기 위해 경제를 개발해야 한다. 잘 살아보자, 잘 살아남아보자.' 1961년 이후 30년 넘게 지속된 대한민국의 서사에 일대 변곡점이 다가왔다. 주인공은 그대로이고 퀘스트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는데, 안티히어로가 제풀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시간을 한국 사회는 갖지 못했다. 1990년대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탓도 있고, 더욱 결정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 때문이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30년을 달려왔는데 망했다. 순식간에 거지가 됐다. 적어도 그 시점에는 다들 그렇게 느꼈다. 어떻게든 다시 잘 살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게 아니었다. 네가 망하건 말건 나는 잘 살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게다가 북한이 너무도 비참하게 몰락했다. 물론 우리도 외환위기로 힘들었지만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북한의 경제적 비참은 그보다 빨리 시작됐다. '꽃제비'로 불리는 어린이들이 굶주려 구걸하러 다니는 처지가 됐다는 소식까지 알려지자 북한을 향한 한국인의 경각심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그런 나라와 경제적으로 대결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북한을 상대로 경쟁심을 품는 것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채워 넣은 것은 김진명을 필두로 한 수많은 대중소설 작가들이 만들어낸 '민족 합체물'의 서사였다. '신동아' 8월호(‘여권이 조장한 북한 판타지 기원 '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북한의 천연 자원 및 저렴한 노동력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일본쯤은 가볍게 누를 수 있는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환상적 서사가 대북 담론의 주류 자리를 꿰찼다.

낭만적 대북관과 찌질한 대일관

‘민족 합체물'의 판타지는 범여권에 더욱 친화적이다.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공천을 받아 김진명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설정된 범여권의 공식적인 북한관은 그런 모습을 띠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야권, 전통적 보수가 과연 어떤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느냐다. 지금도 북핵은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온갖 군사 도발을 통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직접적으로 위협해온 유일한 집단이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1960년대 이후 30여 년간을 유지해온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북 정책에 '정책'으로서, 혹은 그 배후의 '철학'으로서,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그것과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가. 외려 박근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북한을 일종의 미개척 노다지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민족 합체물'의 서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소리다. 

그것은 박근혜 혼자만의 탓이 아니다. 보수진영 전체가 북한관을 업데이트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우리에게 더 이상 큰 위협이 아니게 된 시점에 핵을 개발하다가 발각됐다. 그렇다면 북한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성장이라는 20세기 대한민국의 내러티브 또한 전면적 수정이 이뤄졌어야 한다. 

정작 보수진영은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김대중의 당선 앞에 원투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박정희가 세팅해놓은 틀 위에서 고민 없이 내달리는 경주마 같은 존재들이었다. 세상의 규칙이 통째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이어 당선돼 10년의 집권기를 가졌지만 국정교과서 논란 같은 퇴행적 이벤트나 벌였을 따름이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최악의 실패 국가인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야 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반미주의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586 세대가 한층 더 낭만적으로 변한 대북관, 그리고 한층 더 지독하면서도 찌질해진 대일관을 들이밀며 우리를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 넉넉해지면 착해질 수 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9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도를 들고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그러니 무슨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9월 22일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 지도 공무원 A씨(47)를 총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는 우리 국민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대관절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한들,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이며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강제수용소를 숱하게 운영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 집단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뀔 리는 없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 역시 이런 기본적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민족 합체물'과 같은 판타지에 몰두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존재다.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다른 이웃에게도 폐를 끼친다. 결국 뒷감당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 북한은 짐이다. 하지만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술 마시고 싸우고 빚지고 행패부리는 나쁜 친척 같은 존재다. 

반인륜적 만행까지 저지르는 나쁜 친척. 북한을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서 잘못된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관계국이 볼 때 한국과 북한은 한 나라였지만 분단된 사이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본다면 한국이 북한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더라도 북한의 잘못에 대해 우리가 먼저 미안해하며, 북한이 바람직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계도하고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 북한이 외국과 우리에게 행패를 부려도 그저 비위를 맞추고 굽신 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쁜 친척이 술 마시고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데, 혼내고 말리기는커녕 뒷주머니로 술값 더 찔러주지 못해 안달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고 나면 저 망나니가 착해질 수도 있다고, 이웃들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해가며 실실 웃고 있는 꼴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악행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사람을 영어로 'enabler'라고 부른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enabler인 셈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 한 외국 석학은 한국 언론에 질문을 던졌다. 통일에 찬성하느냐고 물으면 젊은이들 상당수가 반대한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북한이 무너진다면 중국이 관리해야 할까? 한국이 관리해야 할까? 이렇게 묻는다면 다들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 문답 속에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다. 박근혜 때도 그랬고 문재인 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대박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한때 우리를 위협하여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군사적 강화를 부추겼던, 수족관의 메기 노릇을 해주었던 북한은, 이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삐뚤어진 탑과 같다. 게다가 그들은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태로 행패부리는 나쁜 친척의 손에 흉기까지 들려 있는 셈이다.

해악의 최소화와 '사람 구실'

9월 24일 서울역에 설치된 TV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뉴스 화면이 나오고 있다. [뉴스1]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지면에서 당장 답하기에는 너무도 큰 질문이다. 일단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인공을 규정하는 안티 히어로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겠다.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의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 속에서 그 나름 잘나가는 모범 국가였다. 21세기의 북한은 국제 사회의 문제아일 뿐이다. 그 북한이 우리와 주변에 끼치는 해악을 최소화하고, 비유하자면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주어진 퀘스트라고 할 수 있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노정태의 시사哲] 아동급식카드는 왜 인천 ‘라면 형제’를 구원할 수 없었나

일러두기: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저는 '라면 형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가급적 제목에도 넣지 말아달라고 일부러 한번 더 당부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제목은 편집부의 권한.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노정태의 시사哲] 아동급식카드는 왜 인천 ‘라면 형제’를 구원할 수 없었나

[아무튼, 주말] 레비나스와 윤리학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엄마는 없었다.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다. 맏이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의 생활비가 들어있는 돈 봉투와 크리스마스 전까지 돌아오겠다는 메모 한 장뿐이었다. 실제로는 네 남매가 살고 있었지만 애가 많이 딸려 있으면 세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엄마는 아이들을 감춘 채 떠돌이 생활을 했다. 출생신고를 하지도 않았으므로 학교는 고사하고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 그때그때 다른 남자를 만나 집에서 출산한 자식들이었다. 이제 열두 살 맏이와 세 동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내용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네 남매가 방치되어 있었다. 멀쩡히 잘 살아 있는 엄마는 몇 달에 한 번씩 방문하며 가끔 돈도 보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차남의 시신이 비닐에 싸여 벽장에 감춰져 있었다. 장남이 어울려 놀던 불량한 친구들이 어른 없는 집을 아지트 삼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개입해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다. 1988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다.

이런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14일, 인천의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열 살짜리 형과 여덟 살짜리 동생이 큰 화상을 입었다. 엄마는 없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날부터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웃은 엄마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다며 이미 세 차례나 경찰에 신고한 바 있었지만 강제력 있는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급식 대신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고,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의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가정이었기에 매달 150만원 내외의 지원금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무렵 어머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스가모 사건처럼 사실상 자식을 내다 버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이웃으로부터 아동 학대와 방치로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양육자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아동 보호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듯하다.

약자와 타자를 존중하며 돌보는 것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은 그런 주제에 소홀했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남자, 그것도 지배 계급 남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연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문명의 해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웅변하며 ‘에밀’을 쓴 루소도 그랬다. 정작 자기 자식들은 고아원에 보내버렸던 것이다. 인의예지를 논하면서 수백, 수천명의 노비를 부리던 조선 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철학에서 윤리의 지위란 고작 그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반성도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생각해보자.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주체의 사유를 통해 세계의 존재를 확인한다. 내가 생각해야 존재가 있고, 존재가 있어야 다른 이들도 있을 수 있으니, 내가 아닌 너, 자아가 아닌 타자는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사고는 자기중심적 지배를 끝없이 확장하는 근대적 병폐의 근원이며, 결국 나치의 만행으로 이어졌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했다. 그의 부모와 형제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다.

레비나스는 존재론, 인식론, 윤리론으로 이어지던 서양 철학의 위계를 뒤집었다. 기존 철학은 내가 있고 너를 알게 된 후 네게 선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레비나스는 비참하고 고통받는 타자인 네가 있고, 그런 너를 보살피면서 나는 윤리적 존재가 되고 자신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너는 나보다 먼저고, 윤리는 존재보다 앞선다. 제1 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을 선포한 것이다.

레비나스는 ‘얼굴’ ‘애무’ 같은 용어를 철학적으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남의 속을 모른다. 타자를 모두 알 수는 없다. 근대 철학은 그 무지에서 한계와 공포를 느낀다. 레비나스의 생각은 다르다. ‘전체성과 무한’의 한 문장. “타자가 내 안에 있는 타자의 관념을 넘어서면서 자신을 제시하는 방식을 우리는 얼굴이라고 부른다.” 서로가 얼굴을 가진 타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애무’ 또한 마찬가지다. 연인은 끌어안아도 여전히 서로에게 목마를 수밖에 없는 타자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보면 또 다른 타자, 즉 아이가 태어난다. 연인은 함께 아이를 쓰다듬으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의 몸을 가진 사랑의 철학. 레비나스 이전에는 그 어떤 철학자도 마주보고 어루만지는 것을 이토록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복지라는 미명하에 거론되는 온갖 선심성 현금 살포 정책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인천 형제에게는 기초생활수당과 아동급식카드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과 보살핌은 받지 못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아이들은 고립됐다. 양육자인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해야 할 국가는 돈만 주고 손을 놓았다. 요즘은 그런 돈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게도 주는 게 대단한 복지요 정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일자리 파괴에 대응하고자 미리 고민하는 것까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를 주네, 누구한테 주네 목청을 높이는 현 정치권의 논쟁은 값싼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래 기본소득이라는 제도 자체가 그렇다. 국가가 사람을 고용하고 훈련시켜 직접 복지를 제공하는 대신, 몇 푼의 돈을 주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우파 경제학자도 기본소득에 찬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천 형제 사건 앞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스가모 사건의 충격은 컸지만 2010년 오사카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밤새 토론해도 부족한 시점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끌어안는 따스한 공동체를 향한 철학과 정치가 절실하다.

2020-09-21

[신동아] "한국인 30% 민주주의에 반감" 文정부 비판 英이코노미스트의 숨은 근거

 [노정태의 뷰파인더②]

●英이코노미스트 “文정권, 피포위의식 사로잡혀”
●같은 호에 韓언론에 보도 안 된 ‘세계사회관 조사’ 결과 실려
●2018년 조사 결과, 한국인 중 ‘민주주의 반감’ 응답자 30%
●‘푸틴의 러시아’보다 민주주의 반감 커…이라크와 비슷한 수치
●‘산업화·민주화 동시 이룩한 한국’은 K방역처럼 ‘국뽕’일 뿐
●여권, 민주주의 앞세워 민주주의 제도 망가뜨려
●정권 비리 수사팀 좌천에 언론인 감옥행, 이것은 독재!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1대 국회 개원식이 열린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원 축하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8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문재인 정권이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문 정권이 비판 세력으로서 도덕적 권위를 획득하고 권력을 잡더니, 같은 기준이 자신들에게 적용되자 수긍하기는커녕 발끈하며 고소·고발을 일삼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이 구속된 사실도 언급했다. 독자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 언론의 외신발(發) 보도 행태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숱하게 일어나는 오역 논란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그렇다. 개별 외신이 갖는 속성과 논조, 맥락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에 대해 긍정적 뉘앙스의 발언이 나오면 기뻐하고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면 화를 내는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이번 '이코노미스트' 칼럼에 대한 보도 역시 그랬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던 시기부터 '월스트리트저널'을 정점으로 하는 해외 유력 경제지들이 우려를 표했던 것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코노미스트'가 경제지 가운데 문 정권에 우호적인 편에 속하는 매체였다. 이번 보도를 통해 비로소 입장을 바꾼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같은 호에서 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국내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화제를 모은 피포위의식 칼럼은 우리가 다 알고 있던 내용을 정리해서 보도한 것이다. 반면 주목받지 못한 또 다른 보도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몰랐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의미심장한 차원을 넘어, 섬뜩하다.

러시아·이라크와 비교당해야 하는 정치 후진국

2019년 12월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매주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의 마지막 페이지는 부고 기사가 차지한다. 그 바로 앞에는 중요한 통계 수치를 도표로 만들어 소개하는 그래픽 디테일(graphic detail)이란 코너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 균열 벌어져"(A rift in democratic attitudes is opening up around the world)라는 제목과 함께 웹에 공개된 해당 기사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어 하지 않던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 '산업화·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는 한국인의 자부심이 실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세계사회관조사(World Value Survey)는 1981년부터 시행됐는데, 약 100여개 국가에서 동일한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한 후 그 결과를 비교하는 프로젝트다. 본부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비영리기구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다방면에서 세계인의 가치관 변화를 긴 시간대에 걸쳐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로 인정받고 있다. 

가장 최근 자료는 2017년 중반부터 2020년 초까지의 연구를 집약한 7차 조사(Wave 7)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2018년에 진행됐다. 촛불시위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뒤이어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1년가량의 시간이 흐른 뒤다.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 근간은 위태로워 보인다. "우리나라의 통치 방법으로써 다음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큰 주제 하에, 238번 문항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호오를 묻고 있다. 한국인들의 응답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원자료를 확인해보면 '대단히 좋다' 18.5%, '약간 좋다' 51.6%, '약간 나쁘다' 25.1%, '대단히 나쁘다' 4.9%로 부정적인 응답이 합산 30.0%에 달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수준의 반감은 1995년~1998년 진행된 3차 조사(Wave 3) 당시 러시아에서나 나왔던 수치다. 옛 소련 몰락 이후 극도로 피폐해졌던 옐친 대통령 집권 당시의 러시아 말이다. 같은 7차 조사를 놓고 비교해보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푸틴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꾀하고 있는 러시아에서조차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답변이 채 20%가 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래프를 통해 현재 정당과 의회가 중심이 된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히 큰 나라로 두 국가를 지목한다. 하나는 대한민국, 또 하나는 이라크다. 이라크인들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해 약 40%가 약간 나쁘거나 대단히 나쁘다고 응답했다. 미국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지금까지 혼돈의 늪에 빠져 있는 그 이라크가 '민주주의'라는 지표에서 한국과 비교대상에 올라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국뽕 서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 씨의 ‘군복무 휴가 특혜’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9월 16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앞에 추 장관을 응원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문재인 정권 들어 주로 30대와 40대 사이에 만연한 '국뽕 서사'가 있다.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평화적·수평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세계 유일의 국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다는, 이른바 'K-방역'의 승전보가 언론에 연일 울려 퍼지며 국민의 들뜬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 듯하다. 

얼마 전까지는 나 또한 일정 정도 이에 동의했다. 그것을 자칭 '민주화 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문제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당과 의회를 통한 민주주의에 대해 국민의 30%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나라라면, 언제 어떤 식으로건 민주주의가 쓰러지거나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다 해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은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반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만을 놓고 보면 1990년대 후반 러시아나 오늘날의 이라크 등 민주주의가 망가져 있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와 비교될 수준이다. 

이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기에 나는 세계가치관조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호감 여부를 묻는 질문은 세계가치관조사의 4차 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 다행히도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설문조사 자료도 모두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해당 질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응답 추이는 다음과 같다. 

1995년에는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15.2%로 지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2001년에는 13.5%로 조금 더 낮아졌다. 2005년에는 22.8%, 2010년에는 24.6%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대해 '나쁘다' 혹은 '매우 나쁘다'라고 응답했다. 이렇듯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특정 시점 이후로는 계속 커져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0명 가운데 3명이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과 의회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품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한국은 러시아·이라크와 비교당해야 하는 정치 후진국이 되고 말았다. 현 정권만을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부정적 답변이 30%나 나온 책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분열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민주적 제도와 절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87년 체제' 이후를 기획해야 할 역사적 과업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테니 말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이코노미스트'도 아는데

대통령 직선제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보스 정치인'의 리더십으로 이뤄졌다. 이제는 공정한 룰(rule)과 투명한 제도, 합리적 소통에 터를 잡은 민주주의를 구성해야 할 때다. 그것이 탄핵 정국 이후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취임 직후 발표했다면 개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이코노미스트'도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뿔뿔이 찢어 사방팔방 좌천시켰다. 말끝마다 검찰개혁을 들먹이며 '공수처법'을 통과시켜놓더니, 야당이 협조하지 않자 이제는 야당을 완전히 배제한 채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했다. 

이것은 독재다. 적어도 민주주의는 아니다. 세계가치관조사가 제시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르면 그렇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의회와 정당이 중심에 서야 온전한 민주주의다. 대한민국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여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기어이 독식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전례가 없던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와 공무원, 국회의원을 겁박하기 위해 '친위 조직'인 공수처를 밀어붙였다. 입맛에 맞지 않는 뉴스를 '가짜뉴스'로 낙인찍고 처벌하겠다는 어엿한 독재 법안까지 들먹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 민주주의를 '나쁘다'고 보는 30%는 대체 누구일까? 세계가치관조사가 제공하는 자료를 분석해보면 응답자의 성별, 연령, 정치 성향 등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해석 방법론을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어떤 확정적인 답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첫째,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의회와 정당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반감의 수준은 통상적인 민주주의 선진국과는 차원이 다르게 나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통계와 그래프를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둘째, 청와대와 여당이 민주주의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행보를 밟고 있는데도 정권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는다. 

1987년 개헌 이래 법사위원장은 언제나 야당 몫이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정치와 의회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다. 그런데 당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상에서는 실명을 내걸고 번듯한 직함을 자랑하며 점잖은 말투로 문재인 정권의 '막가파 행태'를 옹호하는 고학력 인사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권에 철통같은 지지를 보낸 거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민주주의라는 제도나 가치가 아니라, 선거에서 이긴 현 정권만을 지지하는 행위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중 일부 혹은 상당수가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에 부정적으로 응답한 30%에 들어가리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국뽕은 인민의 아편이다

젊은층을 향해 호소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한국인의 '종특'(종족 특성)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특산물'도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이 무슨 짓을 하건 '묻지마 지지'를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짓이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경제가 위태로워진다. 정치 불안은 경제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 성취는 언제라도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는 건전한 시민의 상식으로 가꾸고 지켜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는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외국인 유튜버 같은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고 있다. 국뽕은 인민의 아편이다. 깨어나 현실을 바라볼 때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09-13

[신동아] 의사 투사 만든 건 8할이 文의 ‘반쪽 공공성’

일러두기: 신동아에 '뷰파인더'라는 고정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한 편씩 다양한 시사 이슈를 다룹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정통 시사 월간지의 웹 지면 및 종이 지면을 허락해주신 편집부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의사 투사 만든 건 8할이 文의 ‘반쪽 공공성’

[노정태의 뷰파인더①] 툭하면 ‘공공성’ 외치는 與, 본질은 民 쥐어짜기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입력
2020-09-13 10:00:01
 
  • ● 대단지 아파트, 주택가에는 없는 편의 제공
    ● 학교부지 기부채납, 건폐율 제한 등 민간 의지한 덕
    ● 공적 재원 투명하게 걷는 대신 민간에 부담 떠넘겨
    ● 병원 안 짓고 당연지정제로 민간 통제해 공공의료 지탱
    ● 금전 부담 넘기려 1981년 사립 유치원 설립 허용
    ● 원아 1人당 보조금 지급 방식 탈피 어려워
    ● 공공의대 설립·지방 강제근무? 수가 조절·병원 확충부터
    ● 비용 전가할 대상 찾는 與, 조선시대식 사고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GettyImage]

[GettyImage]

매주 화요일, 목요일, 일요일. 우리 동네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몇몇 모퉁이와 전봇대 근처가 온갖 쓰레기로 뒤덮인다. 재활용 쓰레기 놓는 곳과 종량제 봉투 버리는 곳 사이에 암묵적 구분은 있지만 명확한 규칙은 없다. 사람들은 집에서 적당히 분류해 온 캔, 비닐, 종이 등을 이미 쌓인 쓰레기 위에 또 버린다. 

평생을 한국에서,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에서만 살아온 나는 이런 광경을 일종의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였다. 내 생각의 틀이 깨진 건 모든 사람이 일상의 온갖 자투리를 시시콜콜 떠벌이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가 시작되면서였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때 겪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관리사무실이 너무 엄격하다’는 둥, ‘재활용 기준이 혼란스럽다’는 둥, ‘일회용 그릇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다’는 둥,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새로 설치돼 너무 좋다’는 둥. 온갖 낯선 이야기의 바탕에 공히 깔린 전제가 있었다. 주택가와 다른 어떤 ‘시스템’이 있다는 것. 그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모종의 강제력을 행사하고 입주자 역시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살아간다는 것.

복도와 공공성이라는 화두의 출현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총 편집을 맡은 다섯 권짜리 대작 ‘사생활의 역사’를 펼쳐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흔히 사람들은 사생활의 영역과 공적 영역이 대립한다고 여기지만, 발생론적으로 따져보면 두 공간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의 주거 공간에는 복도가 없었다. 방과 방은 쭉 이어져 있었다. 왕이 사는 궁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한옥에도 복도는 없었지만 한반도의 주거용 건축물은 모두 단층이고 문을 열고 나가면 마당 등 실외 공간과 연결됐다. 유럽에는 2층 이상의 건물이 많았는데도 복도가 없었다. 

이에 사생활이 존재할 수 없었다. 내 방이 건물의 안쪽에 있고 현관을 통해 나가려면 중간에 다른 사람의 방을 지나가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남이 옷을 갈아입는 중이건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중이건, 밖으로 나갈 일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 방을 통과해야 한다. 프라이버시(privacy)를 지키는 것도 혹은 지켜주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사뭇 달랐다. 방과 방 사이에, 그 누구의 방도 아닌 오직 사람의 이동과 연결만을 위한 공간인 복도라는 형태가 출현했다. 내가 사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 남이 들이닥칠 위험도, 또 남이 사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부득이하게 침해할 우려도 복도의 출현으로 확연히 줄었다. 

복도는 방과 방 사이, 방과 현관 사이를 연결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을 갖지 못하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자기 방이 아닌 공간을 청소하고 관리해야 한다. 또 복도를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삼거나 방에서 넘쳐나는 물건 따위를 늘어놓는 용도로 써서도 안 된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복도에 짐 쌓아두고 쓰레기 놓는 얌체 입주자 문제로 흔히 생기는 갈등을 연상해 보면 된다. 

공용 공간의 존재는 ‘공공성’이라는 화두를 수면으로 끌어냈다. 공적 자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며 누군가가 이를 사적으로 유용하지 못하게끔 강제하는 규칙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누군가의 희생이나 헌신 따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참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공적 자원’을 형성, 유지, 관리해야 하는 임무가 공적으로 주어진 거다.

‘하하 호호 어울려 사는 동네’는 없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9월 4일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협약식에 참석하려다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항의를 받으며 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 사이로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공공재’에 빗댄 피켓이 보인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9월 4일 서울 중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협약식에 참석하려다 전공의와 전임의들의 항의를 받으며 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그 사이로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공공재’에 빗댄 피켓이 보인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물론 아파트의 관리 방식이 완벽하지는 않다. 층간 소음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있을 테고,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갖춰진다 한들 자기 이익만 챙기고 공적 영역을 무시하는 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단 시스템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경우와, 시스템을 갖출 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전혀 다른 문제다. 사실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의 낡은 주택가에는 공용 공간으로 쓸 수 있는 부지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동네’에서의 가족 같은 삶에 대한 동경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아파트에 사는 강남좌파들이 알지도 못하고 경험할 생각도 없는 주택가의 현실이 이렇다. 허구한 날 싸운다. 쓰레기 때문에 싸우고, 주차 때문에 싸운다. 처음 택지를 구획할 때 쓰레기 모을 장소도 차를 대놓을 장소도 따로 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위치에 사는 사람은 자기 집 앞이 쓰레기를 모으는 장소여서 일주일에 사흘은 창문을 열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사 온 뒤에야 깨닫는다(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내가 이런 일까지 겪었다는 건 아니다). 공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용 부지 자체가 부재했던 탓이다. 

강남좌파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서로 돌보고 아끼고 하하 호호 어울려 사는 동네’는 세상에 없다. 대한민국 대다수 주택가와 같이, 공용 목적으로 있어야 할 부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화목한 동네 생활이 불가능하다. 마치 르네상스 이전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남의 방을 들락거려야 했고, 이에 사생활이라는 게 불가능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로 살면 사이가 더 좋아지기는커녕 싸울 일만 늘어난다. 복도가 생기면서 프라이버시가 확립되고 근대적 자아가 탄생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주택보다 선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단지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표준적 주택가가 제공하지 않는 ‘공공성’을 제공한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다. 대규모로 재개발할 경우 입주자들이 초등학교 부지 등을 기부채납하게 돼 있다. 내부 조경은 잘 가꿔져 공원처럼 산책하고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그 또한 주택가에도 있어야 하지만 실상은 없다. 앞으로도 생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우리 동네를 재개발하자고 하면 다들 찬성한다. 더 나은 삶은 내 집뿐 아니라 수많은 공용 공간에서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적 영역에 떠넘긴 국가의 역할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까지 파업에 가세한 8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대한전임의협의회 소속 의사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전공의에 이어 전임의까지 파업에 가세한 8월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입구에서 대한전임의협의회 소속 의사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개인적 체험까지 덧붙여가며 길게 설명한 이유는 살아보지도 않은 ‘아파트 찬가’를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공공성’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또렷이 드러내기 위해서다. 애초에 공용 공간을 고려하지도 않고 구획된 토지 위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너무 불편하고 싸울 일도 많다. 새로 개발되는 아파트의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내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일 일도,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불편한 일도 없으니 말이다(이 글에서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등은 논외로 한다). 

정작 그 해결 방식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성 구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새로 단지를 개발할 때 초등학교 부지 등의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경우를 예시로 삼아보자. 너무 일반화된 방식이라 이상하게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학교 부지는 공교육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중 일부다.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다. 미국처럼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면 부지 비용은 국가가 내는 게 맞지 않겠는가? 

공원 같은 녹지 및 휴식 공간을 국가가 마련하는 대신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건폐율이나 용적률 등의 제한을 둬 주민들이 나누어 부담하게 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적 사안에서는 그러한 접근법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공공성’ 개념을 엄밀히 따져보면 이상한 일이다. 국가가 공적 존재로서 제 기능을 한다면, 많은 공원 부지를 직접 확보하고 이를 주거 용지 곳곳에 적절히 배치해야 마땅하다. 

우리 사회는 공공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전체 사회를 위한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세금이라는 공적 재원을 투명하게 걷고 활용하는 대신, 사적 영역으로 그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다. 비단 주거 문제뿐 아니라 수많은 영역에서 같은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공공의 비용을 공적인 방식으로 걷는 대신, 다양한 경로를 활용해 사적인 영역에서 부담토록 하는 것이다. 

의사 파업 문제의 본질도 결국은 공공성의 비용이라는 논쟁거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 밑에는 대한민국 의료 제도의 핵심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지정 의료기관으로 정해져 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할 때 발생하는 비용을 환자 본인부담금 제외 후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야 한다. 국가는 시술, 처방 등 모든 의료 행위에 병원이 청구할 수 있는 액수를 미리 정해 놓는다. 요즘 부쩍 많이 거론되는 ‘의료수가’다. 

환자, 즉 국민 처지에서 보면 이 제도는 대체로 좋다. 경제력과 무관하게 모두가 건강보험에 가입한 상태인 만큼, 치료비 부담 없이 병원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자기부담금도 낼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의료급여 대상자로 따로 보호받는 만큼,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나라는 아닌 셈이다. 

반대로 병원 처지에서 이 제도는 좋지 않다. 의료 행위는 넓은 의미의 서비스다. 병원은 서비스의 가격을 스스로 설정할 수 없다. 경제학 원리를 적용해 보면 의료수가가 수요·공급 곡선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가격 설정에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 말도 원론적으로 옳다.

학교·병원·유치원 짓는 대신 택한 방법

8월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관계자들이 각 병원에 보낼 손피켓을 정리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8월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관계자들이 각 병원에 보낼 손피켓을 정리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한국 의료의 공공성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국민은 언제라도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비용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퍽 저렴하다. 국민 대부분은 현재 수준의 의료 공공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의 제도 변화는 원치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따져 물어볼 필요가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단체의료연합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당연지정제를 실시하게 된 이유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7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게 됐는데, 당시에 의료보험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정 의료기관을 확보해야만 했었지요. 그러나 당시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나 개인의원이 거의 없었으므로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민간의료기관을 강제 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낯선 용어가 나오지만 본질을 두고는 기시감이 든다. 국가가 직접 땅을 사서 학교를 만드는 대신, 아파트 단지를 짓도록 허락하면서 주민들에게 학교 부지 비용까지 내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병원은 개인이 짓고 운영하되 모든 민간 의료기관을 예외 없이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삼아, 모든 병원에서 같은 치료를 하면 같은 병원비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국가가 수가를 결정하므로 의료비 상승에 대한 국민적 불만 역시 통제가 가능해졌다. 

위에서 정책을 내리면 밑에서는 대책을 만드는 법.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더 많은 약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 의약분업 전까지 그랬다는 말이다. 의약분업이 이루어지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 즉 비급여진료 항목이 늘었다. 이전까지는 별 인기가 없던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이 각광받은 까닭이다. 그 상태로 20여 년이 흘렀다. 두 번째 의사 파업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주제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즉 큰 골자에서 보면 1977년 이후 지금까지 상황은 같다. 국가가 병원을 직접 운영하는 대신, 민간 병원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공공 의료는 굴러가고 있다. 

사립 유치원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는 돈이 없었다. 필요한 대로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 영역에 금전적 부담을 넘겨왔다. 북한에서 아이들을 탁아소에 보내 보육 부담을 줄여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두환 정권은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7년생)가 갓 유년기에 들어설 무렵이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1981년부터 사립 유치원 설립을 허용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사립 유치원에 힘입어 보육 대란을 피했다.

文 국공립 유치원 40% 공약? 실현 가능성 제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부터)이 8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협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부터)이 8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협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문제는 2012년부터 정부가 무상보육을 정책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무상보육을 실시하려면 정부가 사립 유치원을 전부, 혹은 상당수 매입해 국·공립 유치원으로 만들고 직접 경영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공공의료를 달성하는 가장 단순하고 분명한 방법이 정부가 직접 공공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에도 나라에는 돈이 없었다. 201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형단설유치원을 국·공립으로 지어 전체 유치원의 40% 비중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한민국의 공공성은 그저 사립 유치원에 원아 한 명당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정도의 여력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지원금을 회계 처리하는 방식 등을 놓고 사립 유치원 측과 교육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게 사립 유치원 사태의 핵심이다. 사립 유치원을 마땅찮게 여기는 대중적 시선과는 별도로, 모든 사립 유치원을 비리의 온상인 양 몰아간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이었을까. 

모든 제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단순한 선악 구도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 또한 마찬가지다. 주택가에 없고 나라가 해결해 주지도 않는 공용 공간이 아파트에는 있다. 게다가 한국은 국토의 70%가 산악인 데다, 여름에는 영상 30도를 넘고 겨울에는 영하 20도에 가까운 추위가 찾아오는 기후를 갖고 있다. 사이사이가 뚝뚝 떨어진 단독주택보다 여럿이 모여 있는 집합주택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마찬가지다. 여러모로 기형적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1차 의료기관이 널리 퍼져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어느 동네건 원장이 한가하게 앉아 있는 내과 의원 하나쯤은 있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코로나19 위기를 상대적으로 무사히 넘기고 있다. 정작 공공의료 시스템이 선진적이라 평가받던 국가들은 의료 체계가 유연하지 못해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해 내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여러모로 잘못돼 있다. 국가가 직접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그 비용은 결국 국민적 합의하에 (준)조세 형식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낙후된 지방 의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대를 만들고 졸업생을 지방에서 의무 복무하게 하자는 발상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공공의대에 시민단체 추천으로 누구를 음서로 넣네 마네 하는 음흉한 의도를 빼고 보더라도, 정말이지 납득할 수 없다. 

이건 마치 주택가에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만드는 대신 누구 한 명 찍어서 저 집 앞에는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자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사고다. 공공성을 달성하기 위한 비용을 더 쉽게, 더 만만하게, 더 확실히 전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내자는 소리다. 자칭 민주 진보 정권에서 이런 발상을 떠올렸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공공의료가 더 필요하면 수가를 조절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하는 식으로 대응하며, 늘어나는 비용에 대해서는 정권이 국민적 이해와 합의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는 조선이냐 대한민국이냐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다. 평소에는 세금을 잘도 뜯어가다가 외적이 쳐들어오면 제대로 된 상비군 하나 굴리지 못해 ‘의병’에 의존하던 조선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의 의료보험 체계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전두환 정권의 사립 유치원 허용을 어떻게 바라보건,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고 지금과 같은 방식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도 없다. 하물며 ‘별도의 의대를 만들어서 남들이 원치 않는 지방 근무를 강제하자’니, 현 집권 세력의 인식 수준은 임진왜란 시절에 더욱 가까운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다시 반복하자.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좀 더 차분하고 정직하게,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에 대해 토론해야 할 때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등



신동아 2020년 10월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09-12

[노정태의 시사철] 악당 조커의 ‘갈라치기’는 왜 실패했나

 

[노정태의 시사哲] 악당 조커의 ‘갈라치기’는 왜 실패했나

[아무튼, 주말] 로버트 액설로드와 ‘협력의 진화'

일러스트=안병현
일러스트=안병현

“오늘 밤 여러분과 사회 실험을 해보겠다.” 강 위에 떠 있는 배 두 척에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미치광이 악당 조커의 함정에 빠져든 것이다. 한 척에는 선량한 시민들, 다른 배에는 범죄자들이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두 배에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실려 있다. 그리고 기폭 장치는 상대방의 배에서 가지고 있다. 내 목숨이 상대의 판단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각 11시 40분. 조커는 조건을 제시한다. 상대편 배를 먼저 폭파하는 쪽은 살려준다. 하지만 둘 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자정을 넘긴다면 두 배 모두 폭파한다. 먼저 배신하는 쪽이 이익이다. 아니, 살아남으려면 배신해야만 한다. “누가 먼저 누를까? 하비가 잡아들인 악질 범죄자들? 아니면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 잘 선택해. 빨리 결정하라고. 상대가 먼저 누르면 후회해도 늦으니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대표작 ‘다크나이트‘의 한 장면이다. 2008년작이지만 ‘다크나이트‘는 여전히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탄탄한 줄거리를 통해 배트맨 시리즈를 충실히 계승하면서, 동시에 ‘죄수의 딜레마’와 ‘사회적 신뢰’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론의 고전적 문제 중 하나다. 중범죄를 저지른 두 공범이 취조실에 따로 붙잡혀 있다.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어버리면 중범죄로는 기소할 수 없고 경범죄로 2년형을 살게 된다. 둘 다 자백하면 각각 6년형이 예상된다. 경찰은 그들을 유혹한다. 네가 상대를 배신하면 너는 석방이고 자백하지 않은 상대는 10년형을 살게 된다고. 어떻게 해야 할까?

둘 다 입을 다물고 2년형을 받는 게 최선인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이론을 통해 분석해보면 결과는 다르다.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건 나는 자백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자백했을 때 내가 받을 형량은 석방 혹은 징역 6년이 된다. 반대로 자백하지 않으면 상대의 행동에 따라 징역 2년 혹은 10년이다. 징역 1년을 -1로 본다면 자백할 경우의 기대값은 -6인데, 자백하지 않으면 -12가 되는 것이다.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일단 자백을 해야 한다.

자백하는 것이 내게 합리적인 선택이라면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이 범죄자들은 언제나 자백한다. 둘 다 입을 다물었다면 징역 2년으로 끝났을 것을 징역 6년으로 늘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침묵한다면 상대가 자백하여 징역 6년이 10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그 위험을 뒤집어쓰느니 자백하는 게 낫다. 개인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면 모두에게 차악의 결과를 낳는 상황, 그것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앞서 말한 ‘다크나이트‘의 장면은 엄밀히 말해 죄수의 딜레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가만히 있으면 조커가 두 배를 모두 폭발시킬 테니 말이다. 다시 말해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상호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쪽은 선량한 시민, 다른 쪽은 범죄자가 타고 있다고 하니, 한쪽에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불가능하지 않다. 영화 속 시민들은 투표를 감행하여 396대 140으로 버튼을 누르자는 결정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나이트‘의 시민, 선원, 범죄자들은 기폭 장치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딜레마에 등장하는 두 죄수와 달리 서로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을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조커는 바로 그런 것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을 갈라놓은 후, 너는 착한 사람이고 저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그러니 남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속삭인다.

지난 8월 31일, 우리는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현실에 강림한 모습을 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 게시물 덕분이었다. 코로나 현장에서 고생한 의료진의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며, 간호사들만을 향해 미소를 던지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 의료진을 갈라놓고 간호사를 앞세워 의사들을 공격하려 든 것이다.

팩트부터 확인하자. 6월 25일 현재, 방역 현장에 뛰어든 자원봉사자는 총 3819명. 그 중 의사는 1790명,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1563명, 임상병리사 등 기타 인력은 466명이었다. 숫자부터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가수 아이유가 코로나 1차 파동 당시 의사협회에 방호복을 기부했다는 사실 또한 그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정권은 늘 이랬다. 국민을 반으로 나누고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물었다. 부동산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들 모두 공급을 늘리는 대신 다주택자와 1주택자를 가르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나눈 후, 너희들은 나쁘다고 손가락질 하는 식이었다. 청년 실업 문제도 그렇다.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자연스럽게 전체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항의가 빗발치자 팔자 좋게 취직 준비하는 취준생과 고생하는 비정규직 청년들을 또 나눈다. 우리가 국민이 아닌 죄수인가. 대체 왜 이런 딜레마를 강요하는가.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 믿는 것이다. 문제는 그 신뢰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수학자, 생물학자, 정치학자, 철학자 등이 모두 고민하던 문제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 건 미시건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로버트 액설로드였다. 그는 ‘협력의 진화‘에서 신뢰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게임이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반복된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상대를 믿는다. 상대가 신뢰를 돌려주면 계속 신뢰한다. 하지만 배신하면 다시는 협력하지 않는다. 이것을 ‘팃포탯 전략’이라 하는데, 게임의 실행 횟수가 누적될수록 팃포탯 전략은 기회주의적 배신자의 입지를 좁히고 상호 협력을 낳는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도록 기준을 잡고 관리하는 강력한 국가가 문명 발전의 필수 요소인 이유다.

대한민국은 고담시가 아니다. 우리는 죄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다. 수퍼히어로가 아닌 한 줌의 양심과 상식, 그리고 공감 능력을 지닌 시민의 힘으로 이 세상을 바꿔나가자.

 

원문 링크: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0/09/12/FUR77LEORREGTGR3X6FP5F6K7Q

2020-09-02

[朝鮮칼럼 The Column] ‘나쁜 연애’ 하듯 하는 정치

 

[朝鮮칼럼 The Column] ‘나쁜 연애’ 하듯 하는 정치

내 판단·생각 스스로 믿지 못하게 하는 ‘나쁜 연애' 수작
부동산 정책도 공공의대도 정부가 하는 정신 조종 폭력
일상에서도 정치에서도 가스라이팅은 범죄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유명한 심리학 실험.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고백하면 승산이 높아진다. 안정된 곳에 있을 때와 달리 불안감으로 인해 가슴이 뛰고, 그 가슴 뛰는 것을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혼동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나온 청춘 연애물에는 남자 주인공이 친구들에게 깡패나 치한 흉내를 내게 한 후 자신이 그 악당을 쫓아내는 용사인 척 하다가 들켜 망신당하는 전개도 곧잘 등장했다. 불안하면 ‘내 편’을 찾고 쉽게 호감을 느끼며 의지하게 된다는 계산의 반영인 셈이다.

하지만 그딴 수작은 연애 시장에서 퇴출당한 지 오래다.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몰아가고,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며,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상대를 놀라게 하고 달래주는 것, 병 주고 약 주는 짓은 더 이상 연애의 기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정신 조종 폭력 행위인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미국의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이 연극 ‘가스등‘에서 영감을 받아 정착시킨 표현이다.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그 작품에서, 남편은 아내가 스스로의 판단을 믿지 못하도록 하여 정신적인 궁지로 몰아간다. 아내는 남편에게 의존하면서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용어 자체는 이렇듯 학대당하는 여성에 대한 상담에서 비롯했지만, 가스라이팅의 범위는 남녀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친구 사이의 따돌림, 직장이나 군대 등에서 벌어지는 괴롭힘 등에서도 가스라이팅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할 수도 있다. 스물세 번인지 몇 번인지 수도 없이 갈아엎는 문재인표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 정책 내놓았다가 분위기 안 좋으면 손바닥처럼 뒤집고, 특례에 예외에 유예 조치 따위를 허둥지둥 꺼내 든다. 이제는 공인중개사나 회계사도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한 번에 파악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국민은 처음에 문재인 정권에 호의적이었다. 그저 서툴러서 그렇거니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많은 장관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김현미 장관만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며 사람들은 뒤늦게나마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불안과 혼돈은 문재인 정권의 선의가 낳은 부작용이 아닐 수도 있구나. 국민이 부동산과 관련해 불안과 혼돈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선의’ 그 자체일 수도 있겠구나.

부동산 ‘패닉 바잉‘이 시작되고, 특히 30대 젊은이들이 ‘영끌’하여 집을 사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시장을 믿어서가 아니다. 문재인을 믿지 못해서다. 집값이 안정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신뢰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요동칠지 알 수 없다는 불신이, 국민의 발걸음을 부동산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패닉 바잉에 나선 젊은 실수요자들을 향해 ‘다주택자 매물을 영끌해서 받아준다니 안타깝다’고 비아냥댄 김현미 장관의 발언도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가스라이팅의 교과서적 행동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의 모든 고위 인사를 모범으로 삼는다면 지금이라도 서울, 그것도 강남의 아파트를 사야 한다. 그걸 따라 하는 청년들에게 국토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빈정거리고 비웃는다. 졸지에 수억원의 빚을 진 30대로서는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의 효과다. 내 판단과 생각을 스스로 믿지 못하게 하는 것. 내 인생의 결정권을 남에게 넘긴 채 그저 복종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 가재 붕어 게로 개천에 주저앉아, 저 위에서 선량한 손길로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맥없이 기다리게 길들이는 것.

부동산 정책뿐일까? 정부는 코로나 2차 유행이라는 공포 속에서 공공의대라는 명분을 내걸고 ‘음서의대’를 만들어 시민단체 추천으로 의사 면허를 주겠다고 했다. 의사들은 코로나부터 잡자는데, 정부는 ‘전면 철회’라는 말을 절대 안 한다. 방역을 정치화하고 국민 건강을 해치는 쪽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다. 하지만 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은 정부에 있다. 국민과 의사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겠다고 덤벼들고 있는 중이다.

지금 누군가가 ‘나쁜 연애’ 하듯이 정치를 하고 있다. 소위 ‘문빠’들은 악당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문프’가 멋져보인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도, 정치적 차원에서도, 가스라이팅은 범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국민 가스라이팅을 중단하라.

 

원문 링크: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0/09/02/XQP3MTNQNBG5XDPGNUCGK3HAO4/

2020-08-29

[노정태의 시사철] 의사·기독교… 희생양 만들기는 멈추고 코로나와 싸워라

 

의사·기독교… 희생양 만들기는 멈추고 코로나와 싸워라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철
르네 지라르와 ‘희생양 메커니즘’

[노정태의 시사철] 의사·기독교… 희생양 만들기는 멈추고 코로나와 싸워라
일러스트= 안병현

늦여름 주말을 위한 납량특집 코너. 1976년 미국, 이혼을 앞둔 부부가 자동차로 대륙 횡단 중이다. 남편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에서 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10대 청소년. 차와 충돌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미 목에 칼로 그어진 상처와 출혈로 죽기 직전이었다. 아내는 일단 시신을 싣고 대도시까지 가자고 하지만 남편은 사건을 신고해야 한다며 인근의 개틀린이라는 작은 도시로 향한다. 어색한 분위기에 라디오를 틀자 어떤 소년이 외치는 설교가 울려 퍼진다. "속죄! 오직 새끼 양의 피를 통해서만 우리가 용서를 받으리니!"

아내의 경고를 무시하고 개틀린 시내로 진입한 남편 버트는 섬뜩한 사실을 알게 된다. 1964년의 어느 날, 리처드 디건이라는 열여덟 살 소년이 몇몇 친구들과 함께 19세 이상의 모든 마을 사람을 다 죽였다. 인간이 너무 죄를 많이 지어서 옥수수가 죽어가고 있으므로 속죄의 제물로 인신공양을 해야 한다는 종교적 광신에 빠져든 것이다. 그는 본인도 19세가 된 날 옥수수밭에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다. 개틀린은 옥수수밭의 아이들이 지배하는 광기의 공간이 된 것이다. 버트와 아내 비키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 '옥수수밭의 아이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단연 손꼽히는 걸작이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고작 40여쪽에 지나지 않는 단편이지만 그 악몽과도 같은 여운은 실로 오래 남는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가 낳은 인문학의 거장 르네 지라르가 드러낸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해 알아볼 때다.

사람은 모여 산다. 서로 모방한다. 그러나 인간의 군집 생활과 모방 본능이 좋은 방향으로만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향한 폭력 역시 상호 모방과 경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복수했고, 복수할 테니까, 우리도 복수한다. 이렇듯 서로를 모방하고 있는 한 폭력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는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재앙이나 재난으로 인해 공동체가 충격에 빠져 방향을 잃기도 한다. 자칫하면 서로를 탓하며 자멸하는 길에 들어설 것이다.

여기서 원시적인 해법이 등장한다. '희생양'이다.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자, 배제된 자, 약자가 주로 희생양으로 지목된다. 희생양은 발언권이 없다. 따라서 만장일치로 폭력이 결정된다. 서로를 향하던 돌과 주먹이 오직 희생양 하나로만 쏠리게 하면 '공동체'는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지라르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퍼져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 보편적인 폭력의 근원인 셈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그런 사례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령 유대인 혐오는 나치 독일에서 정점에 이르렀지만 중세 시대부터 유럽에 만연해 있었다. 관동대지진이 벌어지자 공포와 분노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며 희생양으로 삼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늘 누군가를 따돌리고, 괴롭히며,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뭉친다. 학교, 직장, 군대처럼 모든 곳에서 크건 작건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라르의 통찰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희생양을 만든 자들, 희생제의를 벌인 자들은, 희생양을 성스러운 존재로 떠받든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폭력과 성스러움'이라 한 것은 그래서이다. 희생양에게 집단 폭력을 휘두른 자들이 도리어 그 희생양을 숭배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폭력과 광기를 직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혐오와 숭배는 하나다. 그 대상을 '우리'가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 '우리'의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숭배와 혐오가 하나라는 것, 폭력과 성스러움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최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의사들을 대하는 현 정권과 지지층의 태도 때문이다. 의료진 '덕분에'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다며 배지 나눠주고 인증샷 릴레이 챌린지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의사들을 적폐로 몰아가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라. 심지어 아직 코로나 유행이 끝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인 것을 현명한 행동이라 말할 수는 없다. '턱스크'를 쓰고 구급차를 탄 모습을 보며 나도 화가 났다. 심지어 '바이러스 테러 음모론'까지 퍼뜨리고 있으니 더더욱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어리석고, 반성할 줄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비호감이라 해도 정부의 희생양 만들기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임시공휴일을 만들고 온갖 할인 쿠폰을 뿌리며 외출과 소비를 부추긴 원죄는 분명 정부에 있으며, 감염의 위험을 늘린 것은 광화문 집회나 해운대 해수욕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희생제의로 불만을 잠재우는 원시 부족국가가 되었을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향한 청와대와 정부의 끝없는 찬양과 칭송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최재형 감사원장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저들의 숭배는 공짜가 아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에 거스르는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 순식간에 '양념'을 끼얹고 조리돌림 하겠다는 협박이 깔려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청와대에 모여 앉은 옥수수밭의 아이들이 벌이는 끝없는 희생제의의 광기 속에 대한민국은 오늘도 곪아가고 있다.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이 집값 폭등의 원인이건만, 이제는 청년과 평범한 주부들까지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추미애 법무장관의 발언을 보면, 내가 한국에 있는 건지 개틀린의 옥수수밭을 헤매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나도 우리의 공포 가득한 현실은 적어도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테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지라르의 철학에는 기독교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희생양’에서 우리가 예수라는 희생양을 통해 희생양 메커니즘의 폭력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지적인 요소와 도덕적인 요소, 종교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배제하고 추방하며 얻는 가짜 평화가 아니라 포용하고 품어내는 진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멈추고 과학의 힘으로 질병과 맞서야 할 때다. 합리와 이성과 믿음과 신뢰로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원문 링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8/2020082803318.html

2020-08-27

[신동아] 386이 민주화 세대? 현대사 최고의 상징조작

일러두기: 이것은 인터넷과 지면에 실린 판본이 아닌, 편집부의 마지막 교정 이전 단계의 최종 원고입니다. 저는 현재 정치권의 주류를 '반미 세대'라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편집부는 최종적으로 '반미의 영향을 받은 세대'라는 표현을 택했습니다. 신동아와의 협의 하에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는 '원문'을 게시합니다.

지면에 올라온 글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156772/1


386이 민주화 세대? 현대사 최고의 상징조작

主流 1960년대 생의 동북공정 뺨치는 ‘민주공정’


●불현듯 얻은 ‘민주화 운동가’의 명예
●1987년 항쟁, 양김·언론·검찰·재야·시민 합작품
●학생만 시위? 도시 빈민도 경찰에 돌 던지며 싸워
●1995년 與, 필요에 의해 386에 민주화 훈장 달아줘
●70년대 운동권과 80년대 운동권 분기점 반미주의
●美로부터 해방? 87년 전두환 무력진압 막은 게 미국
●실제 기여한 만큼만 누리게 제몫 찾아줘야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은 산업화 세대에서 민주화 세대로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 혹은 ‘주류 교체가 완성됐다.’ 이제는 너무 흔하게 들려오는 이야기다. 그러니 문장 속 단어를 하나씩 짚어가며 따져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산업화 세대’란 195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이제 은퇴 연령대에 이른 1차 베이비부머를 주로 지칭한다. ‘민주화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이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나이가 된 이른바 ‘386 세대’를 뜻한다.
 
대한민국 권력의 무게추가 1950년대 생에서 1960년대 생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은 반박할 여지가 크지 않다. 하지만 산업화 세대에서 민주화 세대로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386 세대는 민주화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민주화 세대로 불리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징조작’이자 ‘프로파간다(Propaganda)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화 세력으로의 포장


사람들은 민주화 세대라는 표현에 대해 딱히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일종의 정치적 관용구가 됐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렇듯 별다른 비판 없이 민주화 세대라는 용어가 사용됐을까. 기원은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대사회학 전문가인 박재홍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6년 ‘교수신문’에 ‘先산업화 後민주화, 정치적 세대구분 옳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박 교수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는 용어가 정착된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50∼60대 산업화 세대와 30∼40대 민주화 세대라는 표현의 기원은, 제15대 총선을 앞둔 1995년 말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영입대상 인사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정계 원로 등의 안정 희구세력을 산업화 세력으로, 재야 운동을 하는 개혁 세력을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1995년 당시 신한국당이 민주화 세력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던 대상은 386 세대뿐만 아니라 재야 운동권 전반을 포괄했다. 물론 어찌됐든 당시 집권 여당이 386 세대에 민주화의 훈장을 달아줬다는 점은 분명하다.

1995년은 구소련이 붕괴하고 몇 년이 지난 뒤다.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던 시절이다. 한국에서는 왕년의 운동권들이 새로운 인생을 찾고 있던 무렵이기도 하다. 정작 이들은 변변히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었다. 일부는 출판·영화·음악 등 문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크고 작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정치가 ‘소프트 파워’(문화·예술 등이 행사하는 영향력)와 거리를 둬왔던 시절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학생 운동권에 대한 불신 섞인 눈빛도 여전히 존재했다. 386 세대가 사교육 시장에 적극 뛰어들어 돈을 벌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학생 운동권의 ‘장기(長技)’는 조직력이다. 김영삼의 신한국당은 386 세대를 ‘젊은 피’로 수혈키로 결정한 뒤 민주화 세력이라는 레토릭(rhetoric)을 활용하며 이미지를 세탁해줬다. 당시 집권당이 직접 나서서 민주화 세력(혹은 세대)이 완전무결하지는 않더라도 나름의 역사적 공헌이 있다고 포장해준 것이다. 바야흐로 일부 386 세대 인사들의 삶에 새로운 활로가 뚫렸다.

설령 신한국당의 간택을 받지 못했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김영삼이 386 세대 출신 운동권을 영입하자 평생 ‘빨갱이’라고 음해 받아왔던 김대중 역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그는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김대중은 32세의 김민석(前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서울 영등포 을에 출마시켰다. 각각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송영길과 우상호 역시 1990년대 후반 김대중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386 세대가 비로소 사회 주류로서 첫 걸음을 뗐다.

중국 동북공정에 견줄 ‘민주공정’


정리하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정치권은 30대 젊은 인물을 영입하려 했다. 당시 30대가 386 세대다. 이들 세대 사이에는 합법·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직 활동을 해본 경험은 있으되 사회 진출에는 어려움을 겪던 고학력자 무리가 떠돌았다. 하지만 당장 정치권에 진출할만한 그럴듯한 경력이 전무했다. 이에 그들이 필요했던 주류 정치권은 앞장서서 386 세대 일부에 민주화 세대라는 훈장을 달아줬다.

실은 산업화 뿐 아니라 민주화에 끼친 1960년대 생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이승만의 독재에 맞서 중학생과 고등학생까지 돌 던지고 싸운 1960년, 혹은 박정희에 맞선 투쟁이 펼쳐진 1970년대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1980년대에 386 세대가 대학생 신분으로 전두환의 신군부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 긴 투쟁의 역사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시기만 그렇다는 게 아니다. 세력의 크기나 당사자들이 겪은 고난의 비중을 보더라도 그렇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정치 거목은 의원직 박탈, 가택연금, 의문의 교통사고와 납치, 사형 선고 등을 겪으면서도 군부독재 종식을 향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양김을 따르는 가신 그룹, 즉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역시 무수한 고초를 치렀지만 보스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고 결국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뤄내는 데 기여했다.

그에 비하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대학생들이 민주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는 그리 크지 않다. 물론 신군부가 볼 때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군부의 권력의 핵심을 위협할 만큼의 힘은 발휘하지 못했다. 학생 운동권은 권력을 갖기에 너무도 어렸다.

1987년 항쟁이 전개된 과정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 점은 분명하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라는 두 거대 기성 언론이 반기를 들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보도했다. 신군부는 덮고 넘어가려 했지만 검찰이 반발해 사건을 수면 위로 꺼내 정치 쟁점으로 승화시켰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까지 계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저항적 기독교 세력, 이른바 ‘재야’의 원로들이 힘을 보탰다. 게다가 김영삼과 김대중 두 명의 지도자가 대안으로 존재했다. 국민 여론이 그 두 명을 통해 언제든지 정권 교체의 물결로 이어질 개연성이 컸다.

당시 대학생들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아니다. 열심히 시위를 했고,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이 희생됐다. 그들의 죽음은 정권을 쓰러뜨릴 더 큰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촉발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기저에 깔린 동력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국민 사이에서 꾸준히 누적돼온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렇기에 서울에서 시위가 격화하자 이른바 ‘넥타이부대’가 정권에 반대하며 목청을 드높였다. 대학은 고사하고 중학교도 못 나왔을 도시의 기층 빈민들이 경찰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싸웠다.

결국 신군부는 항복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했고 헌법은 개정됐다. 신군부가 권력을 몽땅 빼앗긴 건 아니지만 양김과 그 추종 세력인 상도동, 동교동계에 힘이 실렸다. 제6공화국은 개막과 함께 ‘3김 시대’(김영삼·김대중·김종필)로 전환됐다. 그러니 북한에서 흘러들어온 주체사상 문건을 달달 외우며 이 나라를 혁명적으로 들어 엎을 궁리나 하던 젊은이들의 힘으로 신군부가 쓰러졌다고 포장하는 건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마치 중국의 동북공정에 비견할만한 ‘민주공정’이다.

1983년생이 월드컵 겪었다고 월드컵 신화 만들었나?


1987년 항쟁 무렵 대학에 다녔던 이들을 그럼에도 민주화 세대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87년 정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87년의 대격변을 스스로 만들어낸 덕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2001년에 대학에 들어가 2002년에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을 경험한 나를 ‘월드컵 세대’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나는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 속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나를 월드컵 세대라 부르는 건 타당하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나 혹은 내 또래들이 만든 건 아니다. 월드컵에서 뛴 선수 중에는 내 또래가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월드컵 자체는 분명 내 윗세대의 작품이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나는 작은 부품이자 배경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월드컵 세대와 달리 386 세대의 자의식이 매우 비대하다는 데 있다. 386 세대는 처음부터 주류의식에 가득 차 있었다. 이 나라의 의사결정 및 여론을 자신들이 쥐락펴락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을 정치권에서 소환한 방식 자체가 그 세대의 비대한 자의식을 더욱 부추겼다. 학생운동 좀 하다가 야인으로 떠돌았는데 불현듯 ‘민주화 운동가’라는 명예를 얻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386 세대는 어떤 이름으로 호명돼야 마땅할까? 잠시 세대 문제를 연구한 최초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의 지혜를 빌리자. 만하임은 ‘세대 문제’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세대 위치. 이는 1980년대 생, 2000년대 생처럼 출생 시기에 따라 나누는 방식으로 가치 평가와 무관하다. 386 세대에는 80년대 학번이라는 범주가 덧붙지만, 기본적으로는 1960년대 생이라는 세대 위치가 그들을 개념화한 셈이다.

둘째, 실제 세대. 세대 위치가 사회적 요소에 따라 구분되는 것을 뜻한다. 가령 1929년생과 1924년생은 세대 위치상으로는 유사하지만 실제 세대는 확연히 구분된다. 1924년생은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에 입대 연령인 스무 살이 되면서 전쟁터에 끌려갔다. 한 번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후 1950년 한국전쟁에서 또 입대 연령에 포함돼 두 번의 군 생활을 한, 지지리도 운 나쁜 ‘묻지 마라 갑자생’이다. 반면 1929년생은 입대 연령, 즉 성인이 됐을 때 이미 일제가 망했다. 태평양전쟁까지 몸소 겪을 일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일제 부역 논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셋째, 세대 단위. 지역·소득·교육·기타 변수에 따라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을 묶는 개념이다. 386 세대라는 이름에서 80년대 학번에 방점을 찍으면 비슷한 시기 대학을 함께 다닌 경험을 강조하는 것으로, 세대 단위에 주목하는 셈이다. 같은 논리에 따라 민주화 세대라는 명칭은 세대 단위 안에서도 특정 집단을 다시 분류하는 개념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 중, 열심히 학생운동을 했고 훗날 자신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용어일 테니 말이다.

386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反美


만하임의 구분 방식을 고려할 때, 1980년 이후 학생운동을 했고 이를 정치적 자산 삼아 지금은 주류가 돼있는 세대 단위를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용어는 따로 있다. 그들은 민주화 세대가 아닌 ‘반미 세대’로 호명돼야 한다. 반미주의는 1970년대까지의 운동권과 1980년대 이후의 운동권을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이다.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해당 세대 단위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그렇다면 반미 세대는 왜 반미주의에 경도됐을까.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그들의 ‘공식적’인 미국관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다.

‘광주 항쟁이 발생할 무렵 미국은 항공모함을 한국 쪽으로 보내고 있었고, 따라서 군사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압박해 공수부대를 원천 차단하거나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광주의 비극을 방치했는데, 이는 어쩌면 방치를 넘어선 적극적 공모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전시작전권은 유엔사령부에 있고 결국 미군의 허락 없이 한국군은 움직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주의 비극 배후에는 미국이 있고 우리는 1980년 현재까지도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민족은 해방돼야 한다. 미국을 혼내주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독립해 진정한 민족국가를 되찾기 위해, 북한과 적극적으로 손잡거나 민중의 저항을 꾀하는 등 혁명을 모색해야 하며, 미국의 꼭두각시인 일본과는 더욱 철저하게 대립해야 한다.’

1980년 이전에는 진보가 반미주의를 당연시하지 않았다. 민족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친미 우파였던 장준하, 반공 진보 기독교 사상가였던 함석헌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기층 단위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임미리가 <경기동부>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 훗날 성남시로 승격하는 경기도 광주군에서는 1971년 8·10 사건 이후 빈민운동, 야학운동, 선교활동 등이 활발히 벌어졌다. 무리한 강제 이주의 폐해와 개발 및 보상 과정에서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 명맥은 훗날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광주’ 출신의 학생들이 나타나 ‘경기동부’의 모태가 되었다. “대학가에 퍼진 광주 학살 미국 책임론을 감안하면 그 뒤 성남의 청년·학생운동이 NL쪽으로 기운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물론 대학가의 반미 감정이 동일하지는 않았다. 특히 서울과 광주의 인식 차이가 컸다. 박찬수는 <NL 현대사>에서 “익명을 요청한 전남대 출신 인사의 말로는, 당시[1985년] 공동 투쟁을 준비하면서 서울과 광주 사이에 반미 구호의 수준과 미국문화원 타격 수위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대세의 변화는 분명했다. 이듬해인 1986년 9월 8일 전남대 5·18 광장에서는 ‘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 출범식이 열렸다. 이 조직은 훗날 PD로 진화하는 CA(제헌의회) 계열이 주도한 것이다. 하지만 “학생 수백 명은 ‘제헌의회 소집’을 내걸면서도 ‘수입개방 강요하는 미제를 몰아내자’, ‘제헌의회 소집투쟁으로 미제를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쳤”고, 사흘 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반미구국투쟁위원회(반미투)’가 출범했다.

운동 내부에 속한 이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복잡한 노선 투쟁이 있었겠으나, 외부자의 시각에서 볼 때 거대한 흐름의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혹은 순수하게 군부와 시민의 대결만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대학가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주한미국대사관 한국과장을 역임한 전직 외교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에서 반미 세대의 탄생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1979~1980년 사건들 이후 발생한 반미주의 내러티브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1987년에도 한국인들은 미국의 행동을 과거와 똑같은 렌즈를 통해 보고 있었다. 이 반미 내러티브는 계속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특히 소위 386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세대 사이에 남아 있다.”

그들은 민주화 된 대한민국 추구하지 않았다


설령 반미 세대의 반미 내러티브가 사실이라 해도 이후 현대사의 진행을 놓고 보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이 기여한 바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 반미 세대의 관점에서 현대사의 다양한 사건을 논하는 김형민(필명 산하)은 1987년 항쟁의 성공 이면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순순히 인정한다. 진보 성향 인터넷매체 뉴스톱에 실린 ‘6월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칼럼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은 미국이지 싶다. 미국 CIA는 판세를 읽은 후 주한미군에서 탱크 5대를 지원받아 특전사, 수방사 등의 한국군 부대 정문 앞에 가서 고장이라도 난 듯 버티고 세워 놓았다고 한다. 즉 ‘나오지 마라’는 시위를 한 셈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주한 미국 대사 릴리였다. 그는 레이건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력을 동원하지 마십시오. 레이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군대를 동원한다면 80년 광주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될 겁니다.’ 한 나라의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에게 할 소리 수준은 넘어 있었다. 릴리는 이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군바리야. 정말 그러면 너도 죽어.’”

미국에 1980년 광주의 비극을 방관한 책임이 있다고, 즉 반미 세대의 생각에 어느 정도 타당한 구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해도 미국은 1987년 전두환의 무력 진압 시도를 가로막았다. 다시 말해 서울이 제2의 광주가 되지 않도록 기꺼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함으로써 빚을 어느 정도 갚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김형민의 ‘역사 팩트체크’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한 번 새겨진 적개심과 증오는 뇌에 새겨진 문신과 같다. 사실과 논리를 아무리 부어서 박박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반미 세대다. 반미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상과 이념을 버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자신의 젊은 시절, 그 청춘을 함께한 친구와 동료, 그들이 제공하는 편안한 인간관계와 따스한 추억을 모두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미는 한 세대의 레종 데트르(Raison D'etre), 즉 존재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

반미 세대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바는 없는가?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미 세대가 곧 민주화 세대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추구하지 않았다. 과거 학생 운동권이었으나 현재 편의점주로 활동하고 있는 봉달호(필명)는 ‘신동아’ 7월호에서 정직하게 고백한다.

“반미, 종북이 본질이었던 우리 운동을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는 것은 도둑질하려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은행 강도를 잡은 도둑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형국이랄까. 물론 강도를 잡은 것은 맞지만 원래 자신의 의도를 고백하지는 못하더라도 조용히 반성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역사 재평가와 제몫 찾아주기


그 ‘강도’를 반미 세대가 혼자 잡은 것도 아니다. 1987년 항쟁의 성공에는 김영삼·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정치 지도자와 그들을 믿고 따르던 세력, 그리고 묵묵히 투표하고 시위에 참여한 다수의 시민들이 있었다. 또 1980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정 간섭 논란의 여지를 무릅쓰고 신군부를 억누른 미국의 역할 또한 재평가돼야 한다.

다시 말해 자칭 민주화 세대의 역사적 공헌과 위상은 과대평가됐다. 물론 그들의 역할을 전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반미 세대라는 올바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 민주화라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성취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의 것이다. 민주화 세대는 없다. 다만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반미 세대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실제로 기여한 바에 걸맞도록 제 몫을 찾아주어야 마땅하다.

약력
●1983년 출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등

2020-08-23

[신동아] 음모론·막무가내 논법에도 유시민·김어준이 권력인 이유

 

음모론·막무가내 논법에도 유시민·김어준이 권력인 이유

‘말의 권력’ 쟁취한 재야논객 [2020 新주류 대해부④]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입력
2020-08-23 10:00:01
 
 
  • ● 오류에 아랑곳 않는 ‘김어준 추종자’
    ● 막무가내 토론 불사 유시민에 호감 갖는 청년
    ● 진보·논객 캐릭터까지 친근하게 ‘포장’해 제공
    ● 운동권 학습서적 권하는 동아리 선배 캐릭터
    ● 라이프스타일 잡지처럼 인생 전반 해답 제공
    ● 보수 논객은 전문가 아니면 저격수
    ● 인생 선배, 친구로서의 호감 못 줘
    ● 지엽말단적인 ‘팩트’에 매몰, 유튜브 중독
방송인 김어준(52) 씨(왼쪽)와 유시민(61) 전 장관은 명실상부한 ‘말의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뉴스1]

방송인 김어준(52) 씨(왼쪽)와 유시민(61) 전 장관은 명실상부한 ‘말의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뉴스1]

제21대 총선의 여파가 채 가라앉지 않은 5월 11일. 총선 불출마로 국회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된 김무성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진 참았는데 앞으론 싸우려고 그래. 나쁜 놈들이야.” 수십만에서 백만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보수 유튜버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가 엄청나게 큰 사이즈인 줄 알았는데 투표해 보니까 아니라는 증명이 돼버렸다. 보수 유튜버들은 조회수 올려 돈 벌어먹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쏟아낸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그간 김무성과 통합당은 보수 유튜버,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에 모종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뜻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보수 유튜버 사이에서나 떠돌던 세월호 유족에 대한 낭설을 차명진 전 의원은 기어이 입에 담았다. 여의도연구원에 따르면 그 결과 수도권 경합 지역에서 후보 10여 명의 당락이 갈렸다. 보수 유튜버의 세계관은 오프라인, 현실 세계, 진짜 정치의 영역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있는 표도 떨구고 말았다.

김어준은 누구인가

보수 진영에 속하는 이들은 큰 의문을 품을 법하다. 분명 자신들은 ‘김어준 모델’을 모방하고 있는데 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그 이전 웹진 ‘딴지일보’를 통해 방송인 김어준(52) 씨가 한 여론 플레이가 바로 그런 것인데 말이다. 

뉴미디어를 활용해 노골적으로 천박하고 화끈하게 편파적인 내용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음모론을 거리낌 없이 유포하면서 틈틈이 펀딩도 받는 비즈니스 모델. 김어준은 그런 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왜 보수는 안 된단 말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김씨와 유시민(61) 전 장관 더 나아가 넓은 의미에서의 진보 논객들이 오늘날 담론 시장의 주류가 된 이유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찌감치 인터넷과 팟캐스트 등 뉴미디어에 발을 담그고 수요를 창출해 온 게 성공 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김어준 모델’을 극복하려면 김어준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어준은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계획대로라면 서울대 87학번이 됐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1학년 1학기에 1987년 민주항쟁을 경험한 386세대 끝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89학번으로 홍익대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에서도 겉돌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989년 1월 1일부로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 홍대 89학번 김어준의 인생은 평행우주 속 서울대 87학번 김어준의 그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구시대의 막내에서 새 시대의 맏이로. 

1989년 직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어준이 ‘딴지일보’를 만든 1998년에도 해외여행은 희귀한 경험이었다. 모두가 코스모폴리탄의 로망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딴지일보’의 성공은 바로 그런 로망에 터를 잡고 있었다. 비속어를 쓰며 시시껄렁한 풍자를 하는 농담 사이트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포장지에 불과했다. ‘딴지일보’는 비속어 섞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쿨’한 코스모폴리탄이 되고픈 판타지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곳이었다. 

김어준은 ‘딴지일보’ 총수라는 직함을 달고는 이회창, 노무현, 박근혜 등 당시 쟁쟁한 정치인들을 불러놓고 ‘삼각팬티를 입느냐 사각 팬티를 입느냐’ ‘UFO를 믿느냐’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개그 풍자 사이트여서 할 수 있을 법한 질문 같지만, 당시 정치 뉴스 독자층 특히 고학력층이 목말라했던 탈권위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딴지일보’에 실리는 다른 글도 마찬가지였다. 비속어를 섞고 합성 ‘짤방’을 곁들였지만 바탕에는 진지한 교양주의와 서구적 상식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었다. 

김어준이 경력 초기부터 개인주의자, 국제주의자, ‘쿨’한 남자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황우석 사태를 거치고 심형래의 영화 ‘디워’를 옹호하면서 자산을 모두 깎아먹은 듯했지만 경력 초기에 쌓아둔 상징자본이 워낙 확고했다. 그는 이내 ‘한겨레’에 연애 상담 칼럼을 쓰면서 내상을 회복했고, ‘황빠’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세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인 2011년 ‘나는 꼼수다’를 내놓으며 오늘날의 김어준이 됐다.

터무니없는 음모론과 정치적 말싸움

유시민 전 장관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월 1일 경기 고양시 일산 JTBC 스튜디오에서 열린 JTBC 신년특집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JTBC 캡쳐]

유시민 전 장관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월 1일 경기 고양시 일산 JTBC 스튜디오에서 열린 JTBC 신년특집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JTBC 캡쳐]

열혈 추종자들에게 김어준은 단지 재미있는 음모론과 정치썰을 공급해주는 그저 그런 라디오 진행자가 아니다. 나와 달리 인생 시원하고 재미있게 사는 ‘부러운 형님’이다. 보수 유권자나 청취자들에게 보수 유튜버가 갖는 의미가 아무리 각별하다 한들, 김어준의 돈독한 팬덤이 그에게 품고 있는 내적 친밀감을 따라올 수는 없다. 팬에게 김어준이란 ‘쿨한 삶’ ‘쫄지 않는 삶’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표상하는 일종의 우상이다. 

그런 ‘간증’은 지금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렵잖게 접할 수 있다. 적잖은 팬은 그가 종종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쏟아내고 모금 활동을 한 후 돈 관리가 투명하지 않다는 소문이 일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동원해 정치적 말싸움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김어준을 지지한다. ‘쫄지마, 씨바’를 외치며 저항하는 나, 그런 자아상을 투영할 대상인 김어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팟캐스트는 진보의 놀이터가 됐으니 유튜브를 선점해 자극적 콘텐츠를 쏟아내면 보수도 제2의 김어준을 배출할 수 있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보수에는 그런 배경 혹은 스토리를 가진 논객이 현재 전무하니 말이다. 

김어준의 팬들은 김어준 혹은 그가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정치인에게 자아를 투영한다. 사소한 오류가 발생하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더 플랜’을 찍겠다며 20억 원을 모금해 놓고 그 액수에 미치지 못하는 품질의 영화를 내놓아도 너그럽게 넘어간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소비자’가 아닌 ‘추종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가 형성돼 있는 인물은 김어준만이 아니다. 유시민은 10~20대 무렵부터 그의 책을 읽고 자란 이들에게 포승줄에 묶여도 환하게 웃는 ‘항소이유서’의 저자다. 군사정권의 폭압에 무릎 꿇지 않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동시에 유시민은 다방면에 (얕지만)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작가, 즉 자유로운 지식인이기도 하다. 모든 직장인이 한 번쯤 꿈꾸게 마련인 로열티(지적재산권)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공적인 영역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도 롤 모델로서 동경할 만하지 않은가? 

보수 진영에서 정치 담론이 유통되는 방식과 진보 진영의 그것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여기 있다. 내용의 차이보다 어쩌면 더 본질적이다. 적어도 2000년 이후의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 진보는 담론을 제공하는 논객의 캐릭터까지 독자와 청취자에게 친근하게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과 신혜식의 차이

주진우 당시 시사IN 기자(가운데)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김용민 시사평론가(왼쪽), 정봉주 전 의원과 함께 2013년 5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주진우 당시 시사IN 기자(가운데)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김용민 시사평론가(왼쪽), 정봉주 전 의원과 함께 2013년 5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김어준과 유시민 외에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B급 좌파’ 김규항 등 이른바 ‘안티조선’의 유명 논객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안티조선 운동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나꼼수의 시대가 왔을 때에도 방식은 똑같이 유지됐다. ‘악마 기자’ 주진우,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봉도사’ 정봉주 등의 닉네임을 붙이고 캐릭터를 잡았다. 그중 누구도 ‘총수’ 김어준의 캐릭터와 팬덤을 능가하지 못했지만 작동 원리는 동일했다.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앞서 메신저와 친해지게 하는 식이다. 마치 운동권 학습 서적을 권하는 동아리 선배처럼 말이다. 

반면 보수 쪽에서 정치를 논하는 사람은 두 부류, 전문가 아니면 저격수다. 전문가란 말 그대로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저격수란 상대편의 결점을 파악하고 퍼뜨리는 활동 등에 특화돼 있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물론 진보 논객들도 각자 상황에 따라 전문가 혹은 저격수로 역할을 나눈다. 가령 경제 논객 우석훈의 경우 다양한 사안에 경제학적 해석을 달며 전문가로서 발언한다. 김어준과 나꼼수가 ‘MB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문제는 보수 논객들이 전문가 혹은 저격수 외에 다른 캐릭터를 갖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개별 논객마다 나름의 성격이 있고 주로 맡는 분야가 있지만, 진보 논객처럼 하나의 완성된 캐릭터를 형성하지 못한다. 젊은이들에게 진보 논객처럼 ‘똑똑하고 좋은 선배’로 받아들여진 보수 논객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다.

가령, 유시민의 책을 즐겨 읽고 그의 유튜브 방송도 즐겨 보는 팬이 있다고 하자. 그 팬은 유시민이 기회만 준다면 본인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여자나 남자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따위 고민도 서슴없이 털어놓고 상담하려 들 것이다. 유시민을 단지 정치 논객이 아닌 일종의 인생 선배로 바라보고 동경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수 진영에서 그에 준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조갑제TV’를 열심히 보는 애청자가 조갑제 씨와 개인사를 나누고 싶어 할까? ‘신의 한수’의 100만 명 넘는 구독자 중 신혜식 씨에게 자아를 투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로세로연구소’ 강용석 변호사에게 연애 상담을 받고 싶은 팬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야 없겠지만, 쉽사리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가?

진보 논객 특유의 교양주의

즉 보수 논객의 소비자는 보수 논객을 인생의 선배로, 친구로, 모범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진보 논객의 소비자는 바로 그런 시각으로 논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일까? 

앞서 우리는 김어준의 인생을 다소 길게 다루면서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흔히 정치 논객으로 불리는 그들은 사실 정치 논객에만 머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팬들은 여전히 그를 ‘쿨’하게 사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역사, 서평, 여행기 등 세상 모든 일에 대해 다 책을 쓴 ‘걸어 다니는 잡학사전’이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의)’의 투사 홍세화는 그 이름도 우아한 ‘파리의 택시운전사’였고, 진중권은 예나 지금이나 명료한 이성적 개인주의의 화신과도 같다. 

중요한 건 개별 진보 논객에게 부여된 캐릭터가 무어냐가 아니다. 그런 캐릭터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 무어냐 하는 점이다. 그들 사이에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입장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각자의 삶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예시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인생 모델은 범(汎)진보 진영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와 부합한다. 가령 유시민은 자신이 아내와 다소 머쓱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침대에 누워서 독일어로 대화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바로 이런 것이다. 보수 진영과 싸울 때에는 종종 앞뒤가 안 맞는 막무가내 토론도 불사하지만,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인 부인과는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는 남자. 그런데 서로 한국어로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주제는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지식인 커플. 청년층으로서는 즉각적인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보수 논객들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건 쉽지 않다. 보수 논객들에게 말하자면 ‘예능감’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원인은 더 근본적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진보 진영 특유의 교양주의가 보수에 결여돼 있을 뿐 아니라 보수가 전제하는 사회적 규범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서다. 

386세대가 주축인 진보 논객들은 어쨌건 나름대로 시대 변화에 발맞춰 현대적인 연애, 가족, 인생관을 체화했거나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보수 논객들은 그렇지 않다. 고령층은 미시적 규범 변화를 불편해하며 아예 언급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젊은 층은 여성주의 등을 껄끄러워하거나 심지어 적개심을 품고 있다. 청년층, 특히 젊은 여성들로서는 설령 본인의 정치적 지향이 보수에 더 가깝다 해도 보수 논객들에게 호감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

온갖 파편적 ‘팩트’에 매몰된 보수 논객

보수는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를 넘어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넓은 정치에서의 의제 싸움에 실패하고 있다. 진보 논객들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를 찍어야 할지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위선적 가식에 불과할지라도 ‘페미니즘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것’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것’ ‘난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호의를 베풀 것’ 등을 말이다. 

그러나 보수 논객들로부터는 이와 같은 긍정적(positive)인 행동의 규범을 얻기가 어렵다. ‘꼴페미’를 욕하는 보수 논객은 많다. 그렇지만 상당수 여성이 페미니즘적인 각성을 해버린 이 시점에 대체 여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할지 실마리 비슷한 거라도 제공해 주는 보수 논객은 사실상 없다. 조선족이 국민의 일자리를 다 빼앗아가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혐오 선동을 하는 보수 논객은 많다. 정작 이미 국민이 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보수 논객에게서 찾기는 어렵다. 

비유하자면 진보 논객들은 종합 라이프스타일 잡지처럼 인생 전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또는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보수 논객 특히 유튜버들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박근혜’라든지, ‘문재인이 감춰놓은 금괴와 공산화의 음모’라든지 ‘우한의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코로나바이러스가 미·중전쟁의 도화선이 될 거’라는 따위의 정치적 사안에 파편적으로 매몰돼 있을 뿐이다. 논객들이 제공하는 ‘이 정도 지식’을 갖고 대화를 나누면 세상사에 나름대로 일관된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지엽말단적인 요소로 치부되기 딱 좋은 온갖 ‘팩트’를 들이대며 진보 논객들을 비웃는 행위 정도가 보수의 한계다. 

보수는 여전히 더 수준 높은 다수의 전문가를 우군으로 보유하고 있다. 여차하면 팔 걷어붙이고 나설 저격수를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보수가 정치 담론에서 열세를 극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진보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꼭 채식주의를 택할 필요는 없지만 동물 학대에 신경을 쓴다), 남성의 경우 이성과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대단한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못해도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한다), 날로 다양해지는 국내 인종 구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최대한 관용한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일종의 ‘레디 메이드’ 답변을 내놓는다. 패키지 상품을 제공하는 쪽에 소비자의 손이 더 가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그 묶음 할인 속에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을 지지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반대로 보수는 인생 전반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에 대해 그럴듯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내로남불’처럼 상대의 흠집을 잡는 볼멘소리를 하는 데 그치고 만다. 2020년에 걸맞은 총체적인 세계관과 철학을 구성하지 못한 채 매번 떠오르는 사안마다 최대한 자극적인 반응을 내놓으며 ‘사이다’에 탐닉하고 있다. 중심 철학이 없고 그에 입각한 판단과 행위 지침도 없으니 선거를 앞두고 사분오열해 자기들끼리 ‘저격’이나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승리하는 정치세력의 윤리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 속에서 윤리학은 정치학과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 좋은 삶을 탐구하는 것이 윤리학이라면 그 좋은 삶을 국가적인 단위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치학이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중독된 보수는 ‘팩트’를 들이대며 ‘내로남불’을 조롱하면 선거에서 거저 이길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국민의 판단은 냉혹했다. 새로운 윤리적 지평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패륜적 발언과 행위를 저지르는 집단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거다. 

도덕과 명분을 앞세운 정치는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는 함께하는 윤리고 윤리는 좁은 관계 속의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승리하는 정치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눈높이에 맞는 윤리관으로 무장하고 이를 스스로 체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등




신동아 2020년 9월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08-19

[신동아] 그들만의 거악에 맞서 상상으로 독립운동…‘조국 백서’ 독해

 

그들만의 거악에 맞서 상상으로 독립운동…‘조국 백서’ 독해[사바나]

30대 논객이 본 조국&필자들의 ‘애국지사병’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입력
2020-08-19 14:00:02
 
 
  • ●이미 10년 전 김어준이 알아차린 ‘조국스러움’
    ●발문, ‘조국 사태’ 연원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서 찾아
    ●‘평화’니 ‘민족’이니 거창한 이야기 늘어놔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거론
    ●자녀입시 논란 두고 ‘우리 사회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
    ●‘거악에 맞서는 정의로운 나’라는 과잉 자의식
    ●조국 옹호하다 한 편의 글 안에서도 말 달라져
    ●맹목적 보호가 조국의 삶을 ‘트루먼 쇼’로 만들어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8월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조국백서). [뉴스1]

8월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진열돼 있는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조국백서). [뉴스1]

8월 5일 출간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 일명 ‘조국백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조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2019년 8월 9일 당시 조국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후 그를 둘러싼 온갖 의혹과 추문이 불거졌다. ‘조국백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조국과 그 가족의 행태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멀끔한 외모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입바른 소리를 내놓는 ‘고매한 선비’ 조국의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대학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 외려 그 점을 문제 삼는 야당이 또 ‘색깔론’을 들먹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민정수석 시절 사모펀드에 그의 일가가 약 75억 원을 투자약정 했다는 논란, 그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웅동학원의 학교 운영 등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녀 입시 문제가 터졌다. 2019년 8월 23일 조국은 사모펀드 투자금을 기부하며 후보자 가족이 웅동학원 내에서 갖는 직함 및 권한을 포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끝내 임명장을 받았지만 결국 같은 해 10월 14일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은 것은 조국이나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조국 사태 초기부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탄식했다. “마침 어제 조국이 박종철, 노회찬 묘역 참배했다고 한다. (조)국아, 너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니?”



“너는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니?”

2019년 9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2019년 9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그렇다. 사실 우리 모두가 궁금하다. 대체 조국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무슨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본인의 딸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인권침해지만 자신이 예전에 국가정보원 직원의 주소를 SNS에 공개하며 취재를 부추긴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가 트위터에 써댔던 온갖 입바른 소리, 이른바 ‘조만대장경’은 현재 본인의 모든 행태를 반박하고 있다. 그의 열성적 지지층 바깥의 세계에서 조국은 한낱 조롱감이자 ‘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러나 정작 그 스스로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기색 없이 꿋꿋하게 오늘도 SNS를 누비며 ‘정의롭고 멋진 나님’을 뽐내고 있다. 

어쩌면 조국은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분’이었을지 모른다. 그 점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사람이 있다. 이 원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고 필자 또한 깜짝 놀랐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무려 10여년을 앞서 ‘조국이 조국했네’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임을 예견했다. 2011년 10월 출간된 ‘닥치고 정치’에서다. 

2010년 ‘오마이뉴스’ 대표이사 오연호와 조국이 나눈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이 출간되자 김어준은 책을 구해 펼쳐들었다. 서문을 읽자마자 딱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는 ‘닥치고 정치’에서 아주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사실 서문을 읽자마자 ‘이거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조국에게는 “자신이 가진 걸 당연히 여기는 종류의,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 흐른다. ‘잡놈’인 김어준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그걸 바로 알아챘다고 주장한 것이다.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재수 없다가 아니라. 그리고 재미, 없다.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전자는 위험하고 후자는 안타깝다.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가. 에이, 씨바.”

“실로 영험하지 않은가”

물론 저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조국을 열렬히 옹호하는 이들이 아닌 평범한 국민들에게 조국 일가는 “재수 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재수 없다”라고 느껴질 것이다(그게 아니면 법무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재미없을, 수 있겠다”가 아니라 재미는 확실히 있다. 자신이 인터넷에 써놓은 온갖 정의롭고 고상한 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셀프 반박’ 당하면서도 끝내 SNS를 끊지 않는 대학 교수라니. 얼마나 ‘빅잼’, ‘꿀잼’인 존재냔 말이다. 

김어준이 이해하는바, 조국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이로 칭찬받으며 성장했을 것이고, 그 경쟁에서 항상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해 직접 나서기까지 했고 또 하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조국에게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기색이 뚝뚝 흐른다. ‘진보집권플랜’의 서문만 봐도 그런 게 훤히 보인다고 김어준은 말한다. 조국의 예의바른 태도에 깔린 그 캐릭터는 조국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김어준이 덧붙인다. 

“그 예의에는 ‘제가 그런 칭찬을 받을 만은 하죠.’란 태도가 이미 깔려 있는 거라고, 대중은 감각한다고. 느낀다고. 직관적으로 그런 걸 캐치해낸다고. 이런 건 축적되면 고착된 이미지가 되고, 나중에는 어떤 노력으로도 바꿀 수가 없어. 그런데 그 위험성을 스스로는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은. 정치를 한다면 이건 문제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느껴질 수 있는 애티튜드가 지속적으로 유포된다. 서문이 바로 그렇다. 이런 건 재수 없을 수, 있다.(웃음)” 

실로 영험하지 않은가? 대학 시절부터 조국과 친하게 지냈던 진중권도 몰랐던 조국의 진면모를 김어준은 인터뷰집 서문만 읽고 딱 간파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학의 통찰’인가 싶어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다. 

사실이 그렇건 그렇지 않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김어준이 내린 판단이니 조국을 이런 캐릭터라고 파악해보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호감형의 외모를 지닌 고학력 중년 남성. 공기처럼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을 둘러친 강남좌파.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자산 때문에 대중 일반에게 야기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박탈감”을 선사하는, 재수 없(어 보일수도 있)는 사람.

‘평화’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은 그런 각도에서 바라볼 때 실로 요긴한 책이다.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지금의 조국이 어떤 사람인지 ‘기술적(descriptive)’으로 설명했다면,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은 조국이 어째서 지금의 조국이 되고 말았는지 ‘발생적(genetic)’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국의 성장기로 돌아가 그의 인격 형성 과정을 확인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조국을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의 거품 속에 살게끔 한 주변 분위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추론이 가능하다. ‘조국백서추진위원회’가 무려 3억 원을 모금해 발간한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리 중 하나다.

책의 서문에는 “백서는 어디까지나 백서이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자료 제공’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 자료의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 책이 자료집의 기능을 하지 않을까, 세상에 없는 특급 자료가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는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책을 만든 이들이 그 자료 중 무엇을 모으고 어떤 것을 버렸으며 종합적으로 어떻게 해석했느냐다. 그런 내용은 책의 앞부분인 ‘발문’과 1부 총론에 집약돼 있다. 

우선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인 김민웅이 쓴 ‘발문’을 살펴보자. 그는 조국 사태의 연원을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에서 찾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 입지를 만들기 위한 민주세력의 역사관을 무너뜨려보겠다는 자들의 반란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 원고를 쓰기 위해 꼼꼼히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을 검토했지만 조국 사태와 강제징용 판결 사이의 연결고리를 납득할 수 있는 꼭지나 대목은 등장하지 않는다.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서문인데 책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그저 ‘평화’니 ‘민족’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같은 문단에서 김민웅은 역시 그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를 거론한다. “이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촛불시민혁명의 대의에 먹칠을 하고 그들의 세상을 탈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세는 이후 ‘정의기억연대’를 상대로 다시 되풀이된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에게 최대한의 평온과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들이 반일운동 더 나아가 반미운동의 일환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앞세우고 있었을 따름이었다는 의구심이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와 ‘독립운동가’의 자의식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위안부 피해자였던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의 폭로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개입한 바 없다. 그러나 김민웅에 따르면 심지어 마포쉼터 손영미 소장이 자살한 것도 검찰 탓이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활동가 한 분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자살의 이유를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황상 정의기억연대 및 윤미향을 향한 수사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지만, 그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주변인들 역시 구체적인 내역에 대해 경찰이나 언론에 충분한 진술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김민웅이 볼 때 이건 검찰 탓이고 검찰이 손 소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검찰개혁’을 막고자 하는 수작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동요가 훨씬 더 논리적으로 보인다. 백번 천 번 양보해 그의 말이 사실이라 한들 그게 조국 사태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조국이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시절 그의 일가가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그에 앞서 딸을 (표창장 위조 의혹까지 받으면서)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킨 게 무슨 독립운동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 김민웅을 비롯한 조국백서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런 사고방식을 전제로 깔고 있다. 자신들은 여전히 독립운동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중간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숭고한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반발하는 자들은 모두 친일파요 ‘토착왜구’라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착오와 피해의식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하나의 결과를 낳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지 7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제치하를 살고 있는 양 비장한 태도를 취한 채, 자신이 일제에 쫓기는 독립운동가라도 되는 양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노라면 당연히 ‘거악에 맞서는 정의로운 나’라는 자의식이 가득 차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자의식은 조국백서를 만들고 쓴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의롭고 멋진 나’ 라는 자의식이라면 조국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 지난해 10월, 아직 그가 법무장관이었고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법무장관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상황에 처했다. 그러면서도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가는 모습이 담긴 실루엣을 본인의 SNS 프로필 사진으로 썼다. 

이건 ‘연예인병’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연예인들은 여론의 동향에 민감하다. 여차하면 재빨리 ‘잠수’한다. 그보다는 상상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애국지사병’이라고 보는 게 낫겠다. 대중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해석하는 ‘잡놈’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내린 촌평을 다시 빌려본다. 

“하지만 지금 조국의 애티튜드에선 사람들이 (‘나는 너무 대단해’라는 식의) 그런 종류의 자의식을 느껴버린다는 거야. 실제 조국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자의식은 기본적으로 연예인 자의식이거든. 나약한 종류의 자의식이거든. 정치인으로 나서게 되면 그런 자의식은 나 같은 사람에게 금방 탄로 날 뿐 아니라,(웃음) 그런 자의식이 없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애티튜드로는 그런 게 있다고 느껴지게 만든다는 거야. 내 말의 핵심은.”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우리는 같은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어째서 조국의 우주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이 조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일까? 

전우용이 쓴 총론 ‘조국 정국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를 읽다보면 약간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도 하다. 전우용은 조국을 둘러싼 교육 문제가 “기득권층 일반의 관행 혹은 상식의 문제”라며 “자녀 입시와 관련한 이 사건은 조국이 평소 지향해온 ‘가치’와 비교하면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받을 만하지만,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국은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이므로 그가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전우용은 조국 같은 ‘높으신 분’은 그렇게 사셔도 된다, 특히 그분이 개혁이라는 큰 일 하시는 분이라면 미천한 아랫것들이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설마 대놓고 저런 소리를 할까 싶지만 사실이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전우용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조국의 ‘도덕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문제들이 (...) 한국 사회의 상층 엘리트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일반적 관행과 도덕성에 비추어 보면 대개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이었다.” 

조국의 자녀 입시 논란, 사모펀드 논란, 위장전입과 사문서 위조 논란 등이 과연 ‘상식’ 범위 안에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국을 ‘개혁적인 윗분’이라고 숭배하는 건 전우용의 자유지만, 조국이 법 앞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헌법 제1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바 한국은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전우용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법치국가에서 ‘법 지식인’ 또는 ‘법 전문가’들이 사회 최상층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법 적용과 집행이 최상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면 그 사회는 신분제 사회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분명 방금 전우용은 조국이라는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의 위법행위를 지적하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 법 전문가들이 사회 최상층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글인데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다르다.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 그를 ‘높으신 분’으로 치켜세웠지만, ‘높으신 분’이라고 봐주면 민주주의가 망가진다는 분열적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국이 어쩌다가 지금의 조국이 되었는지 그 비밀을 밝혀줄 실마리가 바로 이 글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국의 인생에서 이렇게 앞뒤 안 맞는 소리까지 해가며 그를 옹호해줬던 사람이 과연 전우용 하나뿐이었겠는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게 아니라 온 우주가 조국 본인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경험은, 조국의 삶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 테다. 말하자면 자칭 ‘민주개혁 세력’의 ‘자발적 복종’이 만들어낸 거품 속에 조국이라는 한 개인의 세계관이 갇혀 있는 셈이다. 

때로는 그 환상이 위기에 처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전우용 같은 이들이 나타나 자발적으로 조국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조국의 천동설적인 자의식을 보호해줬을 것이다. 조국은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이고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지만 “법은 최상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면 안 된다”는 전우용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도 개혁은 돈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의 마지막 페이지는 1만 원 이상 후원 등록을 하고 후원자명 표기에 동의한 8188명의 명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국이 마치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일종의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는 건 바로 그런 맹목적 보호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취재는 정당하지만 내 딸 조민에 대한 취재는 인권유린이라는 이중 잣대와 ‘내로남불’의 세계관은 그러므로 단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 수많은 ‘순수한 마음’이 모여 한 사람의 판단력을 저 지경으로 망가뜨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 왕자병이나 공주병이 필요하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숱한 난관을 겪으며 꿋꿋이 살아가려면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다, 덤벼라 운명아!’라고 소리 지르는 기개가 요구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과잉된 자의식의 늪에 빠져 있는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괴롭다. 처음에는 좀 웃기고 말 수도 있지만,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수천여 명이 박수치고 돈 모아주는 광경은 일종의 집단 학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검찰개혁과 촛불혁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문득 조국이 불쌍하게 느껴진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0월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08-15

[노정태의 시사철] 광복절 아침… 박정희·김대중 그리고 일본에 대한 자유를 생각한다

 

광복절 아침… 박정희·김대중 그리고 일본에 대한 자유를 생각한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철] 에리히 프롬과 ‘자유로부터의 도피’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1832년 6월, 파리. 군주제 폐지를 외치며 공화주의자들이 봉기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신분을 감추고 잠입해 있던 자베르 경위는 곧 발각되고 포로로 잡혀 기둥에 묶인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런 그의 앞에 권총과 단도를 든 장발장이 나타났다. 자베르는 자신이 쫓던 전과자에게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연한 죽음을 준비한다.

범죄자는 악이고, 미천한 존재이며, 자유인이 아니기에, 일말의 존중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것이 자베르의 평소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발장은 자베르의 결박을 풀어주고 나중에 찾아와서 자신을 체포하라며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자베르는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로 애원한다. "차라리 나를 죽이시오." 그러나 장발장은 허공에 총을 쏴 자베르를 처형한 것처럼 위장한 후,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둘러업고 하수구를 통해 탈출한다.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이다.

빅토르 위고에게 있어서 장발장은 완전한 도덕과 신의 윤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반면 자베르는 인간이 만든 불완전하고 잔인하며 맹목적인 법의 화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의도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장발장과 자베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다양한 철학자, 특히 이사야 벌린과 에리히 프롬이 중요하게 다룬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대립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 자유란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의미한다. 영어로는 'freedom from'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감옥에 갇히지 않을 자유처럼 외부로부터 부정적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바로 소극적 자유다. 자베르를 죽였다면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자유이기도 하다. 반면 적극적인 자유란 'freedom to'로 표현된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마리우스를 구출하여 수양딸의 약혼자를 지켜내면서 장발장이 쟁취한 자유인 셈이다.

이사야 벌린은 소극적 자유가 자유의 본령이라고 보았다. '자유의 두 개념'에서 그는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는 타인에 의한 사슬로부터, 감금으로부터,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라고 강조한다. 반면 적극적 자유는 '이성에 의한 자기 지배'라는 개념을 깔고 있기에, '이성적인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전체주의 옹호론으로 악용 가능하며 경계해야 한다.

일러스트= 안병현
일러스트= 안병현

에리히 프롬은 그의 대표작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반대 방향의 논의를 펼쳤다. 왜 독일 국민들은 나치를 '자발적'으로 지지했을까? 근대화와 자본주의는 기존의 봉건적 질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소극적 자유를 강제당하는 역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독일인들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하여 나치를 지지하고 스스로 자유를 반납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폐해를 극복하려면 "인간의 동일성을 희생하지 않고 고립감의 공포를 극복하는" 자발적인 활동, 즉 적극적 자유가 필요하다고 프롬은 주장했다.

둘 중 하나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소극적 자유는 다른 이와 손잡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적극적 자유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극적 자유가 없다면 적극적 자유도 성립 불가능하겠지만, 적극적 자유가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하면 마치 1930년대 독일처럼 소극적 자유 또한 금세 허물어지고 만다.

그런데 오직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소극적 자유만을 유일한 선으로 여기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룬다. 작년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과 화해하고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그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는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몇몇 사례만 꼽아보자. 네이버의 자회사인 한국계 기업 라인주식회사의 메신저 라인은 일본에서 카카오톡과 같은 위상을 차지한 국민 메신저다. 옛날에는 대중가요의 상당수가 일본 노래의 표절이거나 번안이었지만 지금은 트와이스의 뒤를 이어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니쥬'가 일본의 국민 아이돌 자리를 넘본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온갖 경제 지표 역시 한일 간의 격차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오늘날 우리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소극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 아니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과 경제의 문호를 개방하고, 1998년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대중문화의 창을 열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와 식민 지배를 겪었던 나라가 대등한 위치에 섰다. 미국과 영국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자유에 머물지 않고, 일본'에 대한' 자유를 국민들이 누리게 한 덕분이다. 적극적 자유의 기적인 것이다.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극적 자유에만 집착하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자베르는 그 함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누군가 법을 어겼는지, 즉 감옥에 갈 사람인지 아닌지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기꺼이 남을 위해 희생하고 용서하는 적극적 자유를 그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범죄자인 장발장에게 용서받고, 감화되어, 결국 장발장을 풀어주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한 가지 일이 그를 경악하게 하였던 바, 그것은 장발장이 그를 용서하였다는 사실이고, 다른 한 가지 일이 그를 아연실색게 하였던 바, 그것은 자기 자베르가 장발장을 용서하였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자베르는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해방된 지 75년째, 우리는 선진국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식민 지배를 했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피식민지배 국가로서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일본에 대한 소극적 자유만을 외친다. 아직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보는 듯하다. 마치 장발장을 끝까지 전과자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던 자베르처럼 말이다. 정작 국민들은 소극적 자유를 넘어 적극적 자유의 세계로 진입한 지 오래다. 내년 광복절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원문 링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4/20200814024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