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독서 목록(2021)

  1. 20210102 - 존 그리샴, 공경희 옮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서울: 시공사, 2004), 전자책, 알라딘.
  2. 20210112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3. 20210114 - 얀 베르너 뮐러, 노시내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서울: 마티, 2017)
  4. 20210122 - 이언 게이틀리, 박중서 옮김, 『출퇴근의 역사』(서울: 책세상, 2016)
  5. 20210202 - 웬디 우드, 김윤재 옮김, 『해빗』(서울: 다산북스, 2019)
  6. 20210203 - 이철승, 『쌀 재난 국가』(서울: 문학과지성사, 2021)
  7. 20210206 -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서울: 을유문화사,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8. 20210223 - 빌 게이츠, 김민주·이엽 옮김,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경기도 파주: 김영사, 2021)
  9. 20210302 - 바이바 크레건리드, 고현석 옮김, 『의자의 배신』(경기도 파주: arte,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10. 20210305 - 애티카 로크, 박영인 옮김, 『블루버드, 블루버드』(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20)
  11. 20210307 - 히토 슈타이얼, 문혜진·김홍기 옮김,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1)
  12. 20210313 - 제임스 네스터, 송영조 옮김, 『호흡의 기술: 한평생 호흡하는 존재를 위한 숨쉬기의 과학』(서울: 북트리거, 2021)
  13. 20210328 - 김정연, 『이세린 가이드』(서울: 코난북스, 2021)
  14. 20210328 - 로널드 피서, 서민아 옮김, 『마음챙김의 배신』(서울: 필로소픽, 2021)
  15. 20210331 - 조지프 S. 나이, 홍수원 옮김, 『소프트 파워』(서울: 세종연구원, 2004)
  16. 20210403 -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서울: 민음사, 2021)
  17. 20210407 - 우오쓰카 진노스케, 장누리 옮김, 『일본 요리 뒷담화』(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9)
  18. 20210409 - 제이크 냅·존 제라츠키, 박우정 옮김, 『메이크 타임』(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9)
  19. 20210411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1: 열정편』(서울: 청조사, 2007)
  20. 20210422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김남우 옮김, 『비극의 탄생』(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 리디셀렉트.
  21. 20210423 - 윤희숙, 『정책의 배신』(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20)
  22. 20210424 - 해리 G. 프랭크퍼트, 이윤 옮김, 『개소리에 대하여』(서울: 필로소픽, 2016)
  23. 20210425 - 백정흠·이동관,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경기도 파주: 쌤앤파커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24. 20210428 - 숀케 아렌스, 김수진 옮김, 『제텔카스텐』(서울: 인간희극, 2021)
  25. 20210502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2: 규벌편』(서울: 청조사, 2007)
  26. 20210502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3: 갈등편』(서울: 청조사, 2007)
  27. 20210503 - 라이언 홀리데이, 이경식 옮김, 『에고라는 적』(서울: 흐름출판,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28. 20210504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4: 득실편』(서울: 청조사, 2007)
  29. 20210518 - 사브리나 코헨-해턴, 김희정 옮김, 『소방관의 선택』(경기도 파주: 북하우스, 2020)
  30. 20210521 - 유발 하라리, 김승욱·박용진 옮김, 『대담한 작전: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경기도 파주: 프시케의숲,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31. 20210523 - 하야카와 타다노리, 송태욱 옮김, 『신국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결전생활』(서울: 서커스출판상회, 2019)
  32. 20210527 -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33. 20210528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인간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34. 20210601 - 이한우, 『고전의 바다에서 지혜를 낚는 법』(서울: 샘터, 2021)
  35. 20210603 - 이준석, 강희진 엮음, 『공정한 경쟁』(서울: 나무옆의자, 2019), 전자책, 밀리의서재.
  36. 20210605 - 아글라야 페터라니, 배수아 옮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1), 제안들 36.
  37. 20210608 -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인간의 마음』(서울: 문예출판사, 2010), 3판, 초판 1977.
  38. 20210613 - 프란츠 카프카, 배수아 옮김, 『꿈』(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4), 제안들 1.
  39. 20210618 -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글자를 옮기는 사람』(서울: 워크룸프레스, 2021), 제안들 37. 
  40. 20210619 - 유발 하라리, 김희주 옮김, 『극한의 경험』(서울: 옥당북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41. 20210621 - 제레미 벤담, 신건수 옮김, 『파놉티콘』(서울: 책세상, 2015),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64, 전자책, 리디북스.
  42. 20210622 - 캐스 R. 선스타인, 이기동 옮김, 『루머』(서울: 프리뷰, 2009)
  43. 20210624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44. 20210625 - 김홍신, 『인간시장 1』(서울: 해냄, 2015), 전자책, 알라딘 ebook.
  45. 20210627 - 이철용, 『어둠의 자식들』(서울: 새녘출판사, 2012), 개정판.
  46. 20210707 - 마이클 샌델, 함규진 옮김, 『공정하다는 착각』(서울: 와이즈베리, 2020)
  47. 20210717 - 강동국・김시덕・김종학・김호섭・신상목・이원덕, 『일본, 한국을 상상하다』(서울: 도서출판 선인, 2021)
  48. 20210719 - 루이스 캐럴 원작·마틴 가드너 주석·존 테니얼 그림, 최인자 옮김,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서울: 북폴리오, 2005)
  49. 20210801 - 카를로 M. 치폴라, 최파일 옮김, 『대포, 범선, 제국』(서울: 미지북스, 2010)
  50. 20210805 - 세스 프라이스, 이계성 옮김,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서울: 작업실유령, 2021)
  51. 20210810 -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조슈아 코언 편집, 오인영 옮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서울: 삼인, 2003)
  52. 20210814 - 제임스 네스터, 김학영 옮김,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9)
  53. 20210814 - 요쉬카 피셔, 선주성 옮김, 『나는 달린다』(서울: 궁리, 2000)
  54. 20210821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55. 20210829 -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56. 20210829 -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김지원 옮김, 『나의 살인자에게』(경기도 파주: 다산책방, 2019) 
  57. 20210830 - 마이클 길모어, 이빈 옮김, 『내 심장을 향해 쏴라』(경기도 파주: 박하, 2016)
  58. 20210831 - 자크 데리다, 안 뒤프라망텔 서론, 남수인 옮김, 『환대에 대하여』(서울: 동문선, 2004), 동문선 현대신서 177.
  59. 2021090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4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60. 20210909 - 대니얼 해머메시, 송경진 옮김, 『스펜딩 타임』(서울: 해피북스투유, 2021)
  61. 20210909 - 박태웅, 『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서울: 한빛비즈, 2021)
  62. 20210909 - 지오딘 사르다르·제리 라베츠, 보린 반 룬 그림, 양영철 옮김, 최화정 감수, 『수학사 아는 척하기』(경기도 부천: 팬덤북스, 2021)
  63. 20210910 - 안드레아 울프, 릴리안 멜셔 그림, 정영은 옮김, 『자연의 발견: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모험』(서울: 열린과학, 2021)
  64. 2021091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90년대 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65. 20210916 - 아즈마 히로키, 안천 옮김, 『느슨하게 철학하기: 철학자가 나이 드는 법』(서울: 북노마드, 2021)
  66. 20210918 - 로버트 맥키, 고영범·이승민 옮김, 『DIALOGUE: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서울: 민음인, 2018)
  67. 20210925 - 데이비드 엡스타인, 이한음 옮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68. 20210926 - 보니 추이, 문희경 옮김, 『수영의 이유』(경기도 파주: 김영사, 2021)
  69. 2021092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90년대 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70. 2021100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야성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71. 20211011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청춘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72. 20211023 - 시드 마이어·제니퍼 리 누넌, 이미령 옮김, 『시드 마이어: 컴퓨터 게임과 함께한 인생!』(서울: 영진닷컴, 2021)
  73. 20211023 - 메리 W. 셸리, 오숙은 옮김,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74. 20211026 - 로버트 D. 헤어, 조은경·황정하 옮김, 『진단명: 사이코패스』(서울: 바다출판사, 2005)
  75. 20211028 - 플로랑 실로레, 임희근 옮김, 『로버트 카파, 사진가』(서울: 포토넷, 2017)
  76. 20211103 - 존 르 카레, 조영학 옮김, 『에이전트 러너』(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21)
  77. 20211105 - 나카야마 시치리, 민현주 옮김, 『웃어라, 샤일록』(경기도 파주: 블루홀식스, 2021)
  78. 20211113 - 김태원,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탄생』(서울: 파람북, 2019)
  79. 20211114 - 필리퍼 피어스,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서울: 시공사, 1999)
  80. 20211128 - J.F. 비얼레인, 현준만 옮김, 『세계의 유사 신화』(서울: 세종서적, 2000), 2판.
  81. 2021112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2000년대 편: 노무현 시대의 명암·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11), 전자책, 리디북스.
  82. 20211204 - 앨리슨 벡델, 안서진 옮김, 『초인적 힘의 비밀』(경기도 고양: 움직씨, 2021)
  83. 20211212 - 가와사키 사토시, 김동욱 옮김, 『거북의 등딱지는 갈비뼈』(서울: 사이언스북스, 2021)
  84. 20211219 - 가와사키 사토시, 김동욱 옮김, 『상어의 턱은 발사된다』(서울: 사이언스북스, 2021)
  85. 20211225 - 찰스 디킨스, 마이클 패트릭 히언 주석, 윤해준 옮김,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서울: 현대문학, 2011)

다사다난했던 2021년. 독서량이 줄었습니다. 새해에는 더 많이 읽고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2021-12-26

‘설강화’ 보이콧…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民主독재’

[노정태의 뷰파인더-64] 새로운 금기와 뒤집어진 레드 콤플렉스

● 청와대 국민청원 대상 된 드라마
● 로맨스 위한 고전적 설정이거늘…
● 안기부 야쿠자 취급하는데 독재 미화?
● 이른바 ‘역사의식’ 녹이려 애쓴 흔적
● 민주화 운동 신성시한 태도의 결과
●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닌 산업화·민주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2월 18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포스터. 이 드라마는 시놉시스가 유출된 지난 3월부터 이른바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에 휩싸였다. [JTBC 제공]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 3월 시놉시스가 유출돼 이미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에 시달렸던 ‘설강화’는 우여곡절 끝에 12월 18일 첫 방송됐다.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 기세다. 네티즌의 항의를 받은 협찬 기업들은 광고를 거둬들이고 있다. ‘설강화’ 방영을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2월 22일 현재 30만 명 넘는 이들이 서명했다. “민주화운동과 간첩, 안기부를 엮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가해”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 또한 반발하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12월 21일 ‘설강화’ 논란과 관련해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며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방영을 중단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느 편’에 있는지는 혼동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기법
주인공인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JTBC 제공]
원고를 쓰기 위해 막 국내에 진출한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이용해 ‘설강화’ 1~2화를 봤다. 마지막 장면이 끝날 무렵, ‘설강화’ 논란에 대해 나는 또렷한 입장을 세웠다. 작품에 대한 호오(好惡)와는 별개로, 현재 쏟아지고 있는 숱한 ‘역사왜곡’ 논란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간략하게 줄거리와 배경을 살펴보자. 1987년 봄, 군부독재의 끝을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 고위층은 다가올 대선을 준비 중이다. 안기부는 북한과 짜고 대국민 사기극을 치려 한다. 야당 대선 후보의 경제 브레인인 한이섭 교수를 납치해 북한에 보낸 후,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북풍 공작을 기획한 것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는 한이섭을 납치하는데 성공하지만 안기부 대공수사1국 팀장 이강무(장승조)에 쫓겨 호수여대 기숙사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수호는 이전에 기숙사 ‘방팅’에서 만났던 은영로(지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기부의 눈을 피하게 되는데…

이것은 로맨스를 뽑아내기 위한 고전적 설정이다. 연인 사이에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세워놓음으로써 서로 안달하게 하고 애타게 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장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가 원수인 가문의 자식들이다.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더러 눈이 맞았더니 초호화 유람선이 침몰한다. 이미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 2세 패션산업가인 여자 주인공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고를 당하고, 그곳에서 북한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한이라는 금기를 로맨스의 장애물로 활용하는, 솔직히 이제는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설강화’는 이전과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앞서 인용한 심상정의 말을 다시 짚어보자.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모두가 문제고 잘못됐다고 심상정은 언급했다. 글로 써놓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

심상정의 비판을 반박한다!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수호는 한국에서 독일 베를린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라는 위장 신분을 지니고 있다. 단, 영로는 수호가 시위를 하다가 다치고 경찰에게 쫓겨 들어왔다고 오해하고 있으며 수호는 그런 오해를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간첩이 나오고 학생운동이 나오는 것도 맞지만, ‘한국의 학생운동은 모두 간첩들이 조종한 꼭두각시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식의 민주화 운동 폄하나 비하와는 무관하다. 민주화 운동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고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청와대에 방영 중단 국민청원을 할 사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아닌 게 아니라 시놉시스가 유출됐던 지난 3월, 인물 설정 및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인해 ‘군사 독재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면 군사 독재 미화는커녕 극히 비판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와 여당 사무총장 남태일(박성웅)은 ‘동심회’라는 육군사관학교 사조직에 속해 있다. 1화 초반에 동심회 창립 30주년 기념회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야쿠자처럼 손에서 피를 내어 술잔에 섞고 마시는 모습이 연출된다. ‘너는 일본 야쿠자 같은 놈’이라면 한국인끼리 할 수 있는 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일 터. 시작하자마자 ‘동심회’와 안기부 등을 일본 야쿠자 취급하는 드라마를 ‘군사 독재 미화’라고 비난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정의로운 안기부.” 안기부 직원인 이강무가 간첩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열혈 형사’처럼 그려지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1화와 2화를 아무리 뒤져봐도 딱히 정의로운 인물처럼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현장에서 뛰는 안기부 직원들 또한 역사와 권력의 희생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윗선에서 북한과 내통하고 한이섭을 북에 넘기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한이섭을 납치하러 온 수호를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공감과 동정을 표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하나, ‘정의로운 안기부’라고 요약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이건 제작진 입장에서 퍽 억울할 것 같다. 영로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운동권 학생 여정민(김미수)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1화. 기숙사 식당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면서 정민이 들고 온 만화책 ‘공포의 외인구단’의 표지가 벗겨지고, 곧 레오 휴버먼의 책 ‘사회주의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영로는 용기를 내어 자기가 그 책을 수습하고 너스레를 떨어 위기를 모면한다.

“‘넌!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이건 하늘의 뜻이자 엄지의 뜻이다.’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 순정만화라니까.”

시대적 고민이 ‘있는’ 대학생의 모습은 이후로도 꾸준히 묘사된다. 1화, ‘방팅’에 수호를 끌고 온 광태는 행정고시에 1차 합격한 자신이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 거라고 수다를 떠는데, 그 와중에 생경한 이름이 등장한다.

“아이, 물론이지. 밑바닥 인생들이나 사랑 하나 보고 결혼 하는 거지.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경제적 타산 여하에 따라서 결혼이 결정된다고 본 사람이 엥겔스야.”

2화 초반, 기숙사에 숨어들어온 수호를 추적하는 안기부 직원들은 간첩이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같은 방 친구들은 겁을 먹지만 정민은 말한다. “간첩, 짭새들 맨날 하는 소리야. 걸핏하면 우리 빨갱이로 모는 거 몰라?” 그렇게 숨어 있는 수호에게 영로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오빠가 데모하다가 강제징집당해서 휴가를 많이 나오지 못하는 처지라고 말이다.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가 보여준 희극
1987년 민주화항쟁 당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학생들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동아DB]
물론 ‘설강화’는 로맨스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기에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 깔아두고 있는 요소만 놓고 보더라도, 픽션의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이른바 ‘역사의식’ 내지는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화까지의 내용을 놓고 볼 때 그간 쏟아진 비난들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신성한 민주화 운동 앞에 어딜 감히 ‘간첩’이라는 말을 내미느냐,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인 역사관을 전제하지 않은 다음에야, 납득하기 어려운 비난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 있다. 민주화 운동을 신성시하는 태도가 ‘설강화’ 논란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은 ‘간첩 청정 지대’였나? 북한으로부터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만 민주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순수한 열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고 피해를 입은 역사와는 별개로, 그 학생운동권 중 적잖은 이들이 북한에서 송출하는 단파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학습’을 하고 ‘지령’을 받았던 것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감히 신성한 민주화 운동 앞에서 간첩이라는 말을 꺼낸다니’라는 식의 반응이야말로 ‘역사왜곡’이다.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종의 뒤집힌 레드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지목해 고초를 겪게 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이제는 ‘신성한 민주화 운동에는 간첩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또 다른 금기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12월 21일에는 한 네티즌이 ‘설강화’의 작가와 감독이 간첩을 미화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설강화’ 논란이 거울에 비춘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임을 이보다 더 희극적으로 보여줄 수가 없다.

20세기의 반공물은 공산당을 머리에 뿔 난 악마로 그리고 우리 편 국군은 아무런 흠결도 인간적 고뇌도 없는 인물처럼 묘사했다. 그런 시대는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군사독재 세력은 덮어놓고 극악한 집단으로 취급하며 민주화 세력은 날개 없는 천사처럼 그려야만 하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라 ‘민주독재국가’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상정을 비롯해 ‘설강화’를 비난하는 사람들,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레드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손에 그 칼을 쥐고 휘두르고 싶은 것인가.

세계사적 기적의 두 얼굴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출발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세계사적 기적이다. 문제는 그 기적의 두 얼굴 모두 완벽하지도 결백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우리의 산업화는 미군정 시대에 몰수한 이른바 ‘적산재산’과 한일협정을 통해 일괄 처리된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금을 밑천으로 삼았다.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이가 일하다가 죽고 다치고 빨갱이로 몰렸으며 노동운동도 탄압 당했다. 즉 산업화의 이면에서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

산업화의 그늘은 1980년대부터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히 논의돼 왔다. 산업화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니라는 소리다. 같은 원리가 민주화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민주화는 더욱 민주적으로, 공개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논의돼야 하는 우리의 역사다. ‘설강화’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설강화 #민주화 #산업화 #레드콤플렉스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1-12-25

'디지털 고려장'으로 떠밀려 가는 노인들.. "우리는 개가 아니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디지털 격차가 낳은 소외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일궈왔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주로 밤에 일해오던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를 겪고 추락사할 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려 한다.

일러스트=유현호

문제가 생겼다. 영국의 행정 편의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그를 골탕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서 의사 권고에 따라 일을 그만두었는데 걸어다닐 수 있고 모자를 제 손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더 나쁜 건 그 모든 절차를 인터넷을 통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노인에게 냉랭하고 고압적이다. “디지털 시대잖아요. 인터넷에 나와요. 예약 없이 오셨으면 이만 가 주세요.”

그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친절한 사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게 신청 사이트예요. 더블클릭하세요.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한 다음 내용을 입력하세요.” 다니엘은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자신의 손에 쥐여진 낯선 플라스틱 도구를 말 그대로 ‘들어 올려’ 컴퓨터 화면에 가져다 대려 한다. 사서는 웃음을 터뜨린 후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노인의 수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세상.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서류 접수를 직접 도와주던 일자리플러스센터 직원은 ‘잘못된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흔히 ‘정보 격차’로 번역된다. 모든 것이 전자화되는 사회 속에서 세대⋅계층⋅문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정보 및 기술 활용 능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를 일컫는 용어로 소개돼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 그 모든 것을 통칭하는 용어가 바로 디지털 디바이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에 설치했던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무슨 디지털 디바이드냐 하겠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나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한국의 1984만 가구 중 1980만 가구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97.1%가 인터넷 메신저를, 92.7%가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카톡으로 연락하고 유튜브를 본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디바이드는 이 땅에 존재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위치에 있었던 은행이 지점을 폐쇄하자 그곳을 방문하던 노인 50여 명이 항의의 뜻으로 집회를 열었다. 은행 측은 해당 지점을 키오스크를 활용한 화상 상담을 제공하는 디지털 라운지로 바꾸는 것이지 완전한 폐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프라인에서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므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매장 아르바이트 직원을 전자식 단말기인 키오스크로 대체해왔다. 터치스크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키가 작은 어린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등은 음식을 주문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 격차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누군가는 저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반면, 아르바이트로 고용될 수 있었던 청년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또한 일종의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줄 아는 사람,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얻었다. 반면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있는 단순 접객업 외의 기술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돌아와보자. 다니엘의 이웃집에는 중국 공장의 직원과 짜고 운동화를 밀수해 판매하는, ‘차이나’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청년이 산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팔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은 차이나가 손에 쥔 몇 안 되는 기회다. 하지만 바로 그 기회의 창을 다니엘은 넘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진다. 영화 속에서는 다니엘과 친해진 차이나가 다니엘의 서류를 대신 제출해주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고, 관료제와 디지털 디바이드에 갇힌 다니엘의 고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부수적 현상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피해와 간극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6년 25.9%였지만 2020년 현재 40.3%까지 높아졌다.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60%의 노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방역패스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코로나를 만나 ‘디지털 고려장’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다니엘이 남긴 마지막 편지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도파민 중독에 빠진 대선.. '사이다' 수렁에서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日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내 주머니 속 '사이버 슬롯머신'

1996년 일본. 도쿄에 온 지 3년째 되는 청년 이토 카이지는 하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과 시시한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업자 엔도가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같이했던 후루바타에게 30만엔 빚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다. 월 20% 복리. 1년 만에 385만엔으로 늘어난 고액을 갚으려 카이지는 묘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스포와르’, 프랑스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배에서 열리는 비밀 도박판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 중인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설정이다.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맞는다. <오징어 게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오징어 게임>과 달리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진지하게 ‘도박’에 집중하는 만화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흐리멍덩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던 카이지. 주최 측이 농간을 벌이는 사기 도박판에 떨어지자 엄청난 기지와 용기를 발휘한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고 탈출하니 다시 나태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또 비밀 도박판에 뛰어든다. 거기서도 힘겹게 승리를 거둔 카이지는 앞으로 도박을 끊고 손을 씻겠다고 다짐하지만, 막대한 돈으로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제애그룹의 헤이토 회장은 비웃는다.

일러스트=유현호

“쾌감은… 정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쾌감은 정상을 벗어나야만 얻을 수가 있네! 크크크… 카이지군도 그 사실은 이미 알 테지… 안 그런가? 카이지군의 뇌는 이미 그 쾌감으로 불태워졌네! 틀림없이 앞으로의 카이지군의 인생은, 그 쾌감을 계속해서 좇는 여행이 될 걸세! 크크크… 그런 의미에선 설령 여기서 1억을 딴다 해도, 조만간 그 쾌감에 몸을 맡기고 사라질 돈… 도박으로 탕진할 돈이야. 마찬가지지! 그것이 중독자의 습성….”

이건 카이지만 겪는 일이 아니다. 도박꾼은 대부분 도박을 끊지 못한다. 도박뿐 아니라 운동이나 섹스, 혹은 권력처럼 다양한 행위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과 타인을 파멸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탐닉 혹은 행위 중독(addiction)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실험용 쥐 두 마리가 있다고 해보자. 한 마리는 언제나 버튼을 누르면 먹이를 받는다. 다른 쥐는 버튼을 누를 때 먹이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늘 먹이를 받는 쥐는 배가 고플 때만 버튼을 누르고, 먹이를 먹으면 더 누르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불확실한 버튼을 누르는 쥐는 심지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계속 버튼을 누른다.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TA)에서 쏟아지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불확실한 행위를 감행하여 결과를 확인할 때 나온다. 버튼을 누른 쥐와 도박 패를 확인한 카이지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럴 때 뇌의 측좌핵은 쾌락을 느낀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도파민이 분비될 때 벌어진다.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기에 도파민이 계속 과분비될 경우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든다. 도파민 감수성이 낮아지므로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으로는 신경 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도박장을 벗어난 카이지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것은 그래서다. 거액이 오가는 도박판의 스릴과 안도감 때문에 카이지의 보상 체계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이다.

시사 문제와 철학을 다루던 지면에서 신경과학을 논하는 이유가 있다. 도파민 중독은 오늘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박, 마약, 술, 담배 같은 것들에 대해서만 중독을 걱정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의 주머니에 일종의 사이버 슬롯머신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SNS)가 대표적이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도 계속 볼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실시간 반응을 전달해준다. 더 많은 ‘좋아요’를 기대하며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퍼다 나르는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는 실험용 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크고 무거운 주제로 들어가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큰아들의 불법 도박이 최근 큰 화제가 됐다. 이 문제는 후보 본인이나 가족을 향한 인격적 비난으로 소비하고 말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아들의 치료 약속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강력한 의지와 제도적 대안을 함께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보며 도파민을 쥐어짜던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입을 벌리고 있는 불법 도박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불법 도박 시장은 현재 약 84조원에 달한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센 것을 원한다. 도박이 마약, 성매매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마약류 유통 역시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고 활발해졌다. 단지 개인의 도파민 분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불법 도박은 조직 폭력의 수익원이 되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론장은 정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며 공통점을 찾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가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해서 ‘좋아요’를 얻어내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SNS를 자제하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불법 도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다시 펼쳐보자. 헤이토 회장과 대결 후 집에 돌아온 카이지.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도박을 끊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사채업자 엔도를 만나 다시 한번 큰 도박판에 끼워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엔도는 카이지를 제애그룹 회장이 만드는 지하 방공호의 강제 노역장에 처박아버리고, 카이지는 그 와중에도 도박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려 든다.

그래서 카이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지금도 절찬 연재 중이다. 도파민 중독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부터 ‘사이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맑은 정신으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재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2021-12-19

'N번방 방지법' 있었다면 文의 5년 전 '그 사진'은..

 

[노정태의 뷰파인더-62] 정교한 핀셋을 권력의 손에 쥐어주다

● 법 취지 동의하고 대의도 찬성하지만…
● 애플의 극약처방이 반발 직면한 이유
● 정부가 아이폰 내부 들여다볼 권리 획득
● 美, 빅테크 개별 기업들이 자율 규제
● 韓, 기관·단체에 이미지 삭제 권한 줘
● 누가?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령으로!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등에 대한 선고 기일인 2020년 11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한 단체의 회원이 조 씨 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12월 10일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통용되는 몇 개의 법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됐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 8곳,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포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메신저·인터넷 개인방송 사업자 87곳이 불법촬영 성 착취물의 유통을 막기 위한 동영상 필터링을 시작했다.

오픈채팅방 등에서 영상 또는 움짤(움직이는 사진)이 곧장 업로드 되지 않고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입니다"라는 경고문을 내보내는 모습을 보며 인터넷 사용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남성 사용자가 많고 익명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일수록 반발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류호정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려운 까닭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2020년 4월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N번방 방지·처벌법’ 처리를 촉구하는 침묵 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 9개 여성단체는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같은 달 15일 '‘N번방 방지법의 사생활 검열론'은 누구를 위한 목소리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입니다.'라는 문구는 모든 영상의 공유 시 나타나는 문구"일 뿐이며 "불법촬영물에 해당하지 않을 시 약 10초 후 영상이 정상적으로 공유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나친 사생활 검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공동대책위원회 측 주장이다.

하루 전인 12월 14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DC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 올린 "안녕하세요, 정의당 류호정입니다"라는 글 역시 같은 취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미 불법 촬영물이라 확인된 영상의 '코드'를, 개인 채팅창이 아닌 오픈채팅 및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물과 비교하는 것이므로 검열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게임 내 채팅의 욕설 필터링과 비교했다. 그러므로 "고양이 영상이나 사진이 차단된 적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류호정은 결론을 내렸다.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부터 논해보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여성을 겨냥한 성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특히 미성년자를 약취, 유인해 성적인 영상을 찍게 한 후 판매하거나 그것을 이용해 미성년자를 협박하는 등의 수법을 구사하는 성범죄자들도 있다. 그런 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국가라 부를 수도 없다.

필자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N번방 방지법'의 궁극적인 취지에 동의하며 성범죄 예방과 성폭력 피해 확산 방지라는 대의에 찬성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나 류호정 등의 설명은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막 시행된 'N번방 방지법', 그 중에서도 논란의 핵심에 있는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건 그와 같은 방향으로 악용될 여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8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의 일종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뉴스1]

미국에서도 필터링은 작동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시행중인 필터링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에서도 필터링은 작동한다.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 테크' 기업은 이미 자사 서버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필터링하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은 분들도 더러 계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애플은 사용자가 아이폰으로 찍어 기기에 저장한 사진도 필터링하려다가 대내외 반발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애플은 아이폰에 저장되는 사진을 기기 내에서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그것을 국가별로 적용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 뿐 아니라 각국 정부의 아동 성범죄 기준에 맞춰 대응하려던 취지다. 이 계획은 2021년 8월 외부에 알려졌는데,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이나 민주주의와 정보통신센터(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 같은 시민단체 뿐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도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철회됐다.

국내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은 이 사건의 맥락을 살펴본 후,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과거에는 '불법 촬영된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인 여성을 납치, 강간, 혹은 직접 협박해 가해자의 카메라로 찍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카메라를 숨기고 몰래 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다수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모두가 알 듯 스마트폰은 인터넷이 연결된 카메라다.

오늘날 아동 성 착취자들은 미성년자를 푼돈으로 유혹해 스스로 영상을 찍게 한다. 그것을 제3자에게 돈 받고 팔거나, 그 영상을 이용해 피해자를 다시 협박해 더 많은 금품을 뜯어내고 정신적·육체적 착취를 하는 수법이 널리 퍼져 있다. 국내에서도 현금 및 계좌 거래가 어려운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상품권 등을 제시하며 영상과 사진을 찍게 하는 범죄 사례가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 경우, '빅테크'가 성폭력 영상의 제작과 유포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애플을 제외한 다른 회사처럼 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필터링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번 인터넷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절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애플은 극약 처방을 떠올렸다. 특히 미성년자 유저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기도 전에, 기기에 담겨 있을 때부터 필터링을 해서, 만약 문제가 될 것 같은 내용이 발견되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등의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 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도 큰 애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접근법이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를 원천봉쇄할 수는 없겠지만, 빅 테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해법은 미국 시민사회 뿐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조차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동 성범죄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일단 정부에 아이폰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나면, 그 후에는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알 수 없다는 게 핵심적인 반론이었다.

범죄, 특히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한 필터링 기술은 지금도 존재하며 사용되고 있다. 구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에서 우리가 올린 사진과 영상은 아동 성범죄와 관련 있는지 아닌지 검토되고 있다는 소리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말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르셨을 것이다. 알았다고 해서 특별히 더 달라질 것도 없다. 인터넷 시대, 스마트폰 시대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이미지 삭제할 수 있는 힘

그렇다면 국내에서 시행된 'N번방 방지법'에 대해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미국 빅테크들이 수행하는 필터링은 어디까지나 개별 기업들의 자율규제에 가깝다. 프라이버시에 극히 민감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서버를 만들고 텔레그램이나 시그널 등 보안을 더 중시하는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반면 'N번방 방지법'은 법이다. 강제력을 지닌다. 더욱 나쁜 건 그 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1항은 전기통신사업자의 삭제 의무를 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신고를 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의 요청"이 있다면 해당 정보를 지체 없이 삭제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어떤 기관 혹은 단체가 포털이나 오픈채팅방 등에서 영상과 이미지를 삭제하도록 할 힘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기관이 어디인지, 어떤 인원으로 구성되는지 등에 대해, 국민은 미리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면 어떨까? 마땅히 방지해야 할 디지털 성폭력을 구실 삼아 정권에 비판적인 이미지나 영상 등을 필터링의 대상으로 포함시킨다면? 가령 '곰돌이 푸'가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필터링하는 중국의 경우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2016년 9월 26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트위터에 일본 성인물(AV)의 표지 사진이 올라왔던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네티즌은 그 사건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는 그 이미지를 '음란물'로 보고 통제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건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인터넷에서 없애버릴 수 있는 정교한 핀셋을 권력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 셈이다.

2항.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규모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의무사업자는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역시 대통령령이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 법에 따르면 네이버는 필터링을 하게 하면서 카카오는 그런 책임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다. 누가?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이 감시할 수도 국회가 통제할 수도 없는 대통령령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여성, 특히 아동 청소년을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정부와 국내 IT(정보기술)기업, 해외 빅테크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는 그 자체가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이다. 현행 'N번방 방지법'은 분명히 그 대원칙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여성주의 진영에서 'N번방 방지법'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하며,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법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와 한계에 대해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게 너무도 의아하다. 이 법은 텔레그램은 못 잡으면서 카카오톡만 막기 때문에 문제인 법이 아니다.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내용 중 무엇이 음란물인지 아닌지, 대통령 마음대로 뽑은 사람들이 단정적으로 규정지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여성계가 이 문제를 대선용 정쟁으로 끌고 들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외려 법치국가의 상식을 준수하면서 여성 인권을 보호할 방법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N번방방지법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표현의자유 #애플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2-12

화성에서 온 안철수, 금성에서 온 심상정의 기이한 연대

 [노정태의 뷰파인더-63] 필요할 땐 양당에 손 내밀고 밀리면 양당 극복?

● 자기 정체도 모른 채 여의도 온 安
● ‘안철수 현상’의 安은 ‘386 우파’
● ‘양보’ 통해 구해낸 건 ‘386 좌파’
● ‘아름다운 양보’ 파행에 이해 구했나?
● ‘새 정치’라는 텅 빈 기표에 현혹
● 민주당 선거법 덥석 문 심상정의 맹신
● 야성·양심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021년 12월 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회동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동아DB]
2021년 12월 6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두 대선후보가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지지율은 공히 바닥에 깔린 상태로 정체돼 있다. 같은 해 10월 이후 추세를 보면 안철수는 5% 내외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를 넘긴 적이 없는 심상정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두 사람 모두 2012년 이후 '대선 3수(修)'를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의 성적표를 놓고 보면 두 사람 모두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 안철수는 단번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듯한 기세로 정계에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됐다. 그러나 그 불씨는 타오르지 못한 채 여러 차례의 변곡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심상정의 정치 이력은 더 길지만 결정적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군소 후보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회동에서 심상정은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민생정치, 미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정책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안철수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민은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을까.

안철수가 만든 진보 좌파의 대부

흔한 답안지가 있다. 한국인은 정치인이 참신하면서도 원숙하기를 기대한다. '경력 있는 신인'을 원한다. 그런 유권자의 모순된 태도가 거대 양당 구도를 고착화하고 있다. 정계에 뛰어든 누군가가 경험을 쌓고 나면 국민은 '신선하지 않다'며 손가락질하고 찍어주지 않는다.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 그리고 결선투표가 없는 현행 선거제도 역시 군소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유권자의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그놈이 그놈'일 뿐인 두 거대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기에 이 답변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안철수와 심상정, 두 정치인의 이력과 현주소를 통해 제3당 문제, 혹은 양당 체제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던 2011년 무렵,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은 지리멸렬하게 여당에 끌려다녔다. 여당 내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극대화돼 있던 상태였다. 제도권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시민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깔려 있었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행동양식까지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등장해 한국 정치를 바닥부터 들어 엎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사회 전반에 가득했다.

‘안철수 현상'은 그런 대중심리의 산물이었다. 이는 안철수에 비판적이던 진보언론 '프레시안'에서 2012년에 펴낸 책 '안철수를 생각한다'의 서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철수이기에 기존 정치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의 열망과 기대를 품을 수 있었지만,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던 열망이었다는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의 정치적 성공과는 무관한 문제다. 본질은 '안철수 현상'을 만든 유권자들의 열망이다."

이러한 관점은 갓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의 캐릭터와 지향이 그의 정치적 급부상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유권자의 열망이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었다'고 전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관찰자뿐 아니라 안철수 본인 또는 그를 돕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론조사 1위 후보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지지'를 선언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포기한 행보를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치' '신선한 인물' 같은 키워드에 '올인'하기 위해 박원순을 띄우고 자신은 대선으로 직행하는 초강수를 뒀던 것이다.

그런데 박원순과 안철수는 공통점을 지니는 인물인가? 세계관, 가치관, 정치적 지향 등에서 서로 공유하는 요소가 많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박원순은 '마을' '공동체' '도시 농업' '골목 재생' 등의 가치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박원순이 시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공급 절벽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박원순은 2020년 이후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시민운동은 자생력을 잃고 더불어민주당의 외곽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센데,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박원순의 서울시'가 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그렇게 한국 진보·좌파 진영의 새로운 '대부(Godfather)'가 돼가고 있던 셈이다.

2011년 10월 24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오른쪽) 선거캠프를 방문해 박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동아DB]

10년 만에 비호감도 1위 정치인으로

반면 안철수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문격인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무상복지와 선별복지 등을 언급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루는 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그 점은 분명하다. 의대생 시절 자원봉사를 다니던 무렵의 추억이다.

"치료가 안 되는 원인이 약을 제시간에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생각 끝에 진료비를 100원씩 받기로 했어요. 물론 약값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지만 환자들이 자기 돈을 내고 약을 받아 가니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되고 치료율도 쑥 높아지더군요. 그래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공짜가 반드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며, 오히려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아무리 소액이더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와 같은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2012년의 안철수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복지를 확충할 때도 소득 상위층뿐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면서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세상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자의 책임을 중시하고 최적의 효율적 해법을 찾으려드는 중도 우파의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안철수 스스로가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내주는 선택을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신선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중고 신인'이어서가 아니다. 안철수 스스로가 내렸던 잘못된 결정들 때문이다. 그는 '새정치'라는 텅 빈 기표의 주인공이 돼 돌풍을 타고 단번에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그 결과, 말하자면 '386 우파'에 해당할 안철수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었고, 사실상 궤멸 상태였던 민주당의 '386 좌파'들에게 정치적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양당 체제는 허물어지기는커녕 더욱 공고해졌다.

지난 10년간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대신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쥐게 됐다. 그러자 안철수는 또 양당 체제 극복을 내세워 국민의힘과 공동전선을 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과 후보단일화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나간 결과, 안철수는 주요 대선 주자 중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2021년 11월 10일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수행한 대선후보별 호감도와 비호감도 조사를 살펴보자. 같은 해 11월 8일과 9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000후보에게 호감이 가십니까, 호감이 가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70.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비호감도 1위다.

2011년의 안철수는 민주당의 구세주였다. 지금의 안철수는 경선과 단일화를 통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재탈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면 민주당 지지자의 69.4%, 국민의힘 지지자의 67.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응답한다.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술 사주고 뺨 맞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철수와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억울한 상황이다. 한데 문제의 원인은 안철수 본인에게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맞춰 정치적 캐릭터를 쌓아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당 체제를 극복하는 대신 양당 지지자들에게 골고루 미움 받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 원하는 게 아냐

대체 '새정치'란 무엇인가? 왜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과 세력과 정치 구도를 원하는 척하면서, 정작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더 혹독한 평가 기준을 들이대고 까다롭게 검증하다가 결국 두 거대 정당 중 하나를 택하고 마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고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보여주면 그제야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라고 환호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유권자가 원하는 건 정치에 처음 뛰어든 신인이 아니다. 현재 구도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수 있는, 일관된 태도와 메시지를 지닌 인물.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새 정치'의 본질이다.

노무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은 이미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도 더 된 '중고 신인'이었다. 5공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전두환을 몰아세우며 전 국민적 각광을 받은 후,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 출마 후 낙선을 거듭하며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를 쌓았다. 이렇듯 일관된 메시지와 그에 기반한 정치적 캐릭터가 잡혔기에 노무현은 청년들도 열광하는 '새정치'의 아이콘이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입문과 동시에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현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팽배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것을 소화해 줄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몇 가지 논란을 자초했다.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메시지 역시 분명치 않다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만 놓고 보면 그다지 신선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지만 윤석열의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윤석열을 일약 대선주자로 부상하게 한 핵심 메시지인 '정권교체와 심판'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는 본인의 캐릭터와 시대의 요구를 종합한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라는 추상적 문구에 지배당했다. 안철수라는 사람을 지지하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짧고도 분명한 언어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 하나로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와 유사한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새 인물이 등장해 제3당을 앞세워 정국을 뒤바꾸는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새 정치를 원한다면서 막상 새 인물이 나오면 찍지 않는 유권자의 이중적 태도와 모순 때문이 아니다. 새롭게 정치에 도전하는 이들이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시대에 맞는 역할과 언어를 원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이미 알던 얼굴이 보여도 개의치 않는다.

정의당, 밭과 농기계 탓하는 농부 신세

2019년 12월 26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이튿날 국회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뉴스1]
문제는 제3당, 특히 진보정당이다. 지난 2017년 말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여 왔던 심상정과 정의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짚어보자. 정의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지역구에서 약하고 비례대표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비례 의석이 늘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사법개혁' 관련 법안에 협조하는 대신, 군소정당에 이득이라 생각한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통과시키는 '빅딜'이 이뤄졌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린다는 발상을 하지 않는다. 선거법은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법 중 하나다. 당사자 모두의 심사숙고와 합의 끝에 바꿔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우리의 의석수가 부족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진보 정치 특유의 '맹신'에 빠져 민주당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 총선 정국이 열리자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모두 총선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이 '공짜 의석'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고, 정의당은 총 6석의 의석에 만족해야 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비례대표 선출 산식을 두고 "국민들은 세부 내용을 알 필요 없다"고 했던 심상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 의석 몇 개를 더 가져가보겠다고 민주당과 야합했다가 위성정당 꼼수에 막혀 눈물을 흘리던 심상정.

그랬던 그가 정권 심판이 핵심어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5%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조국 전 법무장관의 편을 들기까지 했으니, 국민의 눈에 심상정의 정의당은 야당이 아니라 정권의 위성정당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야성과 양심을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는 오늘날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이건 선거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정치, 양당 체제를 넘어서려는 제3당 스스로의 문제다.

어떤 농부는 밭을 탓한다. 또 다른 농부는 농기계를 탓한다. 유권자의 수준이 낮고 변덕스럽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선거제도가 불공정해 훌륭한 정치인과 정당이 빛을 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일말의 진실이 없지는 않겠지만, 진지한 정치인이나 지지층이라면 함부로 떠올리거나 입 밖으로 꺼낼 내용은 아니다. 시대정신을 포착해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할 줄 아는, 진정한 새 정치의 출현을 국민은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

#안철수 #심상정 #윤석열 #양당체제 #정권교체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2-05

BTS 수상이 소프트 파워? 文의 본말전도 어이할꼬

 

기사 도구 모음

[노정태의 뷰파인더-61] BTS 신화, 가장 나쁜 방식으로 착취

● 케이팝 시대, 어딘가 석연치 않은
●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한다?
● ‘소프트 파워’ 개념 거꾸로 이해한 文
● 强國 조건 다룬 냉철하고 살벌한 이론
● 자유세계 속한 개방적 민주국가에 근간
● 北 향한 비합리적 짝사랑의 소품 취급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9월 14일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임명장 수여식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사절로 임명된 방탄소년단(BTS)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뷔, 제이홉, 진, 문 대통령, RM, 슈가, 지민, 정국. [청와대 사진기자단]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인근은 교통정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고 지루한 코로나 시국에서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콘서트. 전 세계에서 몰려든 팬들로 인해 LA는 공항부터 북적였고 곳곳에서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덧 익숙해진 케이팝 시대의 풍경이다.

필자는 1983년에 태어나 40년이 조금 안 되게 살았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한국과 한국 문화가 이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던 일은 없었다. 1980년대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미술가 백남준, 작곡가 윤이상, 영화감독 임권택 등 몇몇 특출난 이가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거나 주목받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특정 장르를 넘어 한국 문화가 전반적으로 관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으쓱거리며 인용할 내용 아닌데…

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 BTS. 약 3시간 동안 ‘DNA’ ‘피 땀 눈물’ ‘Dynamite’ 등 20여 곡을 불렀다. [빅히트뮤직 제공]
그런데 마냥 기뻐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한국의 문화적 위상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특히 정치권에서 이상한 해석을 하는 듯한 모습 때문이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살펴보자. 그는 BTS가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AMA)'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것을 축하했다.

문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지난 10월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개최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한 컨퍼런스다. 문 대통령은 "‘소프트 파워' 개념의 창시자인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는, 한국이 유례없는 경제적 성공과 활기찬 민주주의가 결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고 극찬했습니다"라고 썼다.

과연 그럴까? 조지프 나이의 발언에 그러한 대목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달랐다. 컨퍼런스 내용은 문 대통령이 BTS 대신 으쓱거리며 인용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엉뚱한 방식으로 나이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는데, BTS를 여러 행사에 동원해온 문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 볼 때 그 우려는 더욱 커진다.

나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의 거장이다. '교과서적 거장' 중 한 사람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소프트 파워 이론 때문만이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세 흐름인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중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로 우뚝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는 국제 사회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이해한다. 반면 자유주의는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국제연합이나 국제법 등 우리가 긍정적으로 여기는 제도나 가치관이 미치는 영향에 방점을 찍는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 사회의 본질은 살벌한 약육강식 전쟁터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설령 전쟁을 하더라도 제네바 협약 등을 준수하며 포로를 학살하는 등의 만행은 자제한다. 이는 자유주의가 발현된 사례로 들 수 있다.

‘소프트 파워’ 개념을 고안한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동아DB]

살벌한 이론으로 케이팝에 박수 치다?

갑자기 국제정치학 개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가 있다.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의 연구 분야는 국제정치학이고, 국제정치학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결국 날것의 폭력과 전쟁을 다루는 학문이다. 국가 간의 힘, '파워' 싸움이 본격적으로 전쟁이 되기 직전까지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국제정치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소리다. 국제정치학은 곧 '국가의 파워'에 대한 학문이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오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개념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물론 '하드'와 구분 짓게 해주는 '소프트'다. 하지만 애초에 논의 자체가 '파워'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프트 파워는 케이팝과 한류 드라마에 박수를 쳐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강국이 되는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파워를 가지고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냉철하고도 살벌한 이론이다. 나이의 책 '소프트 파워'(홍수원 옮김, 세종연구원 刊)를 펼쳐보자.

"파워는 날씨와 같다. 모두가 날씨(파워)에 의존하고 또 화제로 삼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치 '파워'에 대한 고민 없이 '소프트'에만 열광하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인식을 꼬집기라도 하는 듯한 첫 문장이다. 나이에 다르면 파워는 크게 두 가지 면을 지닌다. 첫째,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능력. 둘째,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능력.

국제정치학은 곧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므로, 파워의 첫 번째 면만큼이나 두 번째 면도 중요하게 다뤄야 마땅하다. 나이를 국제정치학 거장으로 만든 통찰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다른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도록 할 때, 그 방법은 전쟁이나 침략, 혹은 무력을 통한 억압만이 아닐 것이다. 다음을 보라.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위협으로 타인을 강제할 수도 있고 보상으로 유인할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을 꾀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들도 바라게끔 만들 수도 있다."

결국 나이의 소프트 파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이도 원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적어놓고 보면 이 당연한 소리가 국제정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줬다는 사실이 외려 놀랍게 느껴질 정도다. 소프트 파워의 성격과 특징에 대한 나이의 설명을 읽어보자.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보는 식

"이처럼 명백한 위협이나 거래행위 없이도 자국의 목표를 받아들이고 따르게끔 타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표현할 수 있어도 눈에 보이지는 않는 매력에 따라 타국의 행위가 결정된다면 그것은 곧 소프트 파워가 제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프트 파워는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색다른 통용수단을 활용한다. 즉 공동의 가치와 정당성, 그리고 그런 가치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소프트 파워는 어떤 나라의 문화 상품이 다른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잘 팔리는 차원의 문화 마케팅이나 세일즈 용어가 전혀 아니다.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목적을 추구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공통의 적과 맞서기도 하는 그런 국제관계의 동역학을 일컫는 개념이다.

문 대통령이 나이의 소프트 파워 개념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나이가 "한국이 유례없는 경제적 성공과 활기찬 민주주의가 결합하여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11월 23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처럼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그것이 국격과 외교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보는 식의 본말전도다. 소프트 파워는 몇몇 음악가나 영상물에서 시작해 국가 단위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파워가 소프트한 '방식'으로 구사되는 상황과 방법을 설명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앞서 나이가 말했던 '공동의 가치', '정당성', '가치 실현에 대한 책임감' 등을 떠올려 보자. 나이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나라들이 같은 이념과 지향을 지니고 협력해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 이론가다. 소프트 파워는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많은 부분을 당연히 포함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국가정체성과 이념적 지향, 자유시장주의,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까지 포괄하는 아주 넓은 차원에서 작동하는 개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우리가 자유세계에 속한 개방적인 민주국가라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는 북한과 달리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여당과 야당의 경쟁을 보장하는 선거 제도를 통해 정치권력을 형성한다. 국민 스스로 노력해 재산을 형성하고, 이중 일부를 상식적이고 합리적 수준에서 책정된 세금으로 납부한다. 물론 나머지는 온전히 자기 몫이다.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제도와 문화가 한국 소프트 파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공동의 가치' 찾아볼 수 없는 외교 제스쳐

2021년 12월 현재, 미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고 있다. 선수 참가는 막지 않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는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뒤를 따라 프랑스를 비롯한 EU(유럽연합) 회원국 역시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했거나 검토하고 있다.

이는 단지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힘 싸움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전부터 중국 인권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그러던 중 공산당 고위직과 관련된 추문을 밝혔다는 이유로 테니스 스타 펑솨이 선수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따르며 국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라면 선수 참여를 막지는 않더라도 대통령이나 총리 등 고위직이 방문해 베이징올림픽을 축하하는 일은 꺼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종전선언의 주체 중 하나인 미국은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하고 있는데, 그 베이징올림픽을 무대 삼아 종전선언을 해야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소프트 파워" 운운한다. 너무도 황당한 소리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동맹국 미국 및 국제 사회와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가치'를 업신여기며, '정당성'을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 '가치 실현에 대한 책임감'을 무시하는 듯한 외교적 제스처로 점철돼 있을 뿐이지 않은가.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는커녕 더 깎아먹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전에 없이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문화생산자들, 특히 BTS의 성공 신화를 돕지는 못할망정 가장 나쁜 방식으로 착취하고 있다. BTS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북한을 향한 비합리적 짝사랑의 소품으로 이용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는 우스꽝스러울뿐 아니라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이 탁현민의 연출에 따라 BTS를 앞세워 자국민을 굶겨 죽이고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최악의 독재자와 폭압 정권을 옹호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퇴임을 석 달 앞둔 상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더 이상 낭비하지 말기 바란다.

#BTS #AMA #소프트파워 #조지프나이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28

'코리아 미스터리'.."한국인 19%, 가족보단 돈이 중요"

 [노정태의 뷰파인더-60] BTS·오징어게임 외에 또 세계 1위 무엇?

● 삶의 의미에서 1순위는 ‘물질적 풍요’
● 전 세계 응답자 38% 가족 꼽았는데…
● 초점 어긋난 SNS ‘재야 고수’의 품평
● 세계를 당황케 만든 ‘돈’ 외치는 나라
● 수험생마냥 설문에 응한 韓日 응답자
●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삶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파트는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재화다. 사진은 11월 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대한민국이 1등을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고 생경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양궁이나 쇼트트랙처럼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게 익숙히 여겨지는 종목의 스포츠 중계가 아닌 다음에야, '한국'과 '1등'이라는 말은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년 새 세상이 달라졌다.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드라마로 이름을 올린다. 익숙한 분야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도 한국이 1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지난 11월 18일 미국 퓨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결과는 우리 국민을 큰 혼란과 충격에 빠뜨렸다. 전 세계 성인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한민국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에서 1등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았다.

‘물질적 풍요', 즉 '돈'을 1순위로 꼽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그 결과에 대해 많은 이가 적잖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마치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돈을 밝히는 사람들'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1등이 좋다고 해도 그런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는 건 즐거운 일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 희한한 결과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물질적 풍요 19%, 건강 17%, 가족 16%

조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조사 대상국은 총 17개국이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이다. 국민들이 '삶의 의미'를 고민할 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삶의 의미를 주는 제1의 가치는 '가족'이다. 전체 응답자 중 38%가 '가족'을 꼽았다. 이어 '직업'(25%), '물질적 풍요'(19%) 순으로 이어진다. 17개국 중 14개국에서 가족은 1위에 올랐는데, '삶의 의미'라는 말을 놓고 보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결과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꼽는 답변이 50%를 넘겼다.

반면 한국인들은 삶의 의미에서 1순위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19%). 그 다음은 건강이었고(17%), 가족은 3위에 지나지 않았다(16%). 비록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이와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흔히 한국을 유교적 가치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로 대표되는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지닌 도덕·윤리 체계다. 정작 한국인들은 가족이 아니라 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니, 상식과 심각히 배치되는 결과 아닌가?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떠들썩하게 달아올랐다. 언론에서 보도하기 전부터 '재야 고수'들이 달려들어 다방면으로 결과를 검토하고 품평했다. 과연 이 조사를 믿어도 되는 것이냐, 조사 문항이 잘못 짜인 것은 아니냐, 국내 여론조사 업체와의 협력 과정에서 번역이 잘못됐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연이어 제기됐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여론조사는 없다. 하지만 '재야 고수'들의 비판은 초점이 어긋나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초당파적 싱크탱크다. 주로 설문조사에 근거해 미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종종 다른 나라 여론조사 기관과 협력해 국제적 비교 조사를 수행하기도 한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쓰인 연구 결과를 인터넷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편이다. 설문조사 문항 및 조사 방법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고서 말미에 부록을 통해 충실히 전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싱크탱크라는 그 명성에 손색이 없는 행보다.

퓨리서치센터는 한국에서 직접 여론조사를 진행할 수 없어 국내 업체와 협업을 했다. 한국갤럽이 2021년 3월 15일~4월 29일 사이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가중치를 뒀고 오차범위는 ±3.5%포인트. 갤럽은 국내 여론조사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업체 중 하나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협업 경험도 풍부하다.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조사 결과를 단순 번역 오류 따위로 치부해버리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 되고 만다.

서울 광화문의 한 회사 건물에 야근 근무자들로 인해 환히 불이 켜져 있다. [동아DB]

한국인을 위한 어떤 변명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할 때 '돈'을 외치는 나라. '코리아 미스터리'. 이 결과를 두고 당황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조사를 발표하기 전 퓨리서치센터 내부에서도 진지한 고민과 해석의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총 14페이지로 이루어진 온라인 발표문 중 첫 번째 페이지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왜 이 보고서는 응답의 비율 뿐 아니라 순위에 집중하였는가(Why this report focuses on topic rankings in addition to percentages)"라는 별도의 항목이 등장한다.

애초에 이 설문조사는 여러 선택지 중 오직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았다. 복수 응답을 하고 피조사자가 순위를 매기도록 했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족도 중요하고, 건강해야 할 것 같고, 경제적 여유도 빼놓을 수 없지요'라고 대답하면, 퓨리서치센터는 그것들을 항목별로 모두 합산한 후 전체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조사했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응답자 중 42%가 물질적 풍요를 인생의 중요 요소로 꼽았지만, 스페인에서 물질적 풍요는 1위가 아닌 2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다. 스페인 사람들 중 1위인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이들은 무려 48%나 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1위인 물질적 풍요가 19%, 2위인 건강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왜 발생한 걸까?

다른 나라 응답자들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응답자들은 복수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한국인과 일본인 중 많은 이들은 질문지를 유심히 살펴본 후 신중하게 고민해 정말 딱 하나의 답만 골랐다. 편안하게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주기를 바라고 만들어진 설문조사 앞에서, 마치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마냥 최선을 다해 '이성적'으로 판단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설문조사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이 주로 근거로 삼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인생에 의미를 주는 요소를 이것저것 두루 택하지 않았다. 빡빡하게 딱 하나만 골랐고, 그러니 근소한 차이로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한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돈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돈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인을 위한 변명인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경향 거스르는 '아웃라이어'…이게 사는 건가?

국가 단위로 가치관을 조사하고 발표하는 연구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에 시작돼 지금까지 5년 주기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가 있다. 다수의 국가를 상대로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기에, 퓨리서치센터가 이번에 수행한 단발성 여론조사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자료로 꼽힌다.

세계가치관 조사는 가치관을 두 개의 차원으로 구분한다. '전통·종교 중시' 대 '세속·이성 중시'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생존 중시' 대 '자기 표현 중시'가 또 다른 축을 이룬다. 대체로 많은 국가들은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전통과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과 이성의 세계로 넘어가며, 동시에 생존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잦아들고, 자기표현과 관용, 자선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상식에 부합하는 보편적 트렌드다.

문제는 또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생존을 중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000달러이던 시절이나 2만 달러이던 시절이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기 표현 대신 생존을 택한다. 전통과 종교가 아닌 세속과 이성을 중시하는 경향 또한 여전하다. 세계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속적이고 잇속을 따지며 생존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세계가치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통계적 경향성을 거스르고 있는, 통계학의 용어를 빌자면 '아웃라이어'(outlier)인 셈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이번 설문조사가 잘못됐다, 혹은 결과가 왜곡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심정적으로 납득하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그것이다. 한국 사회의 배금주의적, 생존주의적, 물질주의적 경향은 다른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듯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대단히 치열하고 스트레스 가득한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를 좀 더 꼼꼼히 훑어보면 한국인의 각박한 삶이 드러난다. 외국인들은 직업, 친구관계, 교육과 배움, 자연을 즐기는 삶 등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런 응답지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주요 종교의 등록 신자를 합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클 정도로 제도권 종교가 성행하는 나라지만, 한국인 중 삶의 의미의 원천으로 종교를 꼽은 사람은 1% 뿐이다. 교회 성당 절을 열심히 다니긴 해도 설문조사 용지를 받아들고 나면, 예수님·부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다는 소리다. 이게 사는 건가?

‘기적은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영국의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기자 다니엘 튜더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이 나라를 다방면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후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은 다름 아닌 필자에 의해 번역됐고, 출판사의 판단에 따라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번에 발표된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적을 이루었지만 기쁨을 잃은 나라에 살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물질주의 #세계가치관조사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
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27

"고개 들어 다스베이더를 보라".. 586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할 때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스타워즈'의 안티히어로
다스 베이더가 남긴 교훈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제다이의 희망이었다. 예언에 따르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출중한 재능을 뽐냈다. 라이트세이버(광선검)를 이용한 싸움, 우주선 조종 등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공화정을 파괴하고 제다이 기사단마저 쑥대밭으로 만든 후 은하 제국 황제의 오른팔이 되고 만다. 다스 베이더가 된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조지 루커스가 만든 오리지널 3부작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 그중에서도 2편인 <클론의 역습>을 살펴보자. 젊고 자신만만한 아나킨은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 제다이 육성 과정은 길고 지루하다. 은하 공화국의 정치는 각자 다른 이해관계와 의견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하다. 아나킨의 연인이 된 파드메 의원은 말한다. “매번 동의가 이루어지진 않아.” 아나킨은 답한다. “그럼 동의하게 만들어야죠. 누군가 현명한 사람이.” 파드메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한다. “그건 독재처럼 들리는데?” 그러나 아나킨은 진지하다. “결과만 좋다면 상관없죠.” 그 모습을 본 파드메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진다.

일러스트=유현호

이 대화는 마치 4컷 만화처럼 ‘밈’으로 편집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자들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무언가 말할 때 헤어밴드를 두른 단발머리 여자가 정색하는 표정을 짓는 바로 그 ‘짤방’ 말이다. 뜨거운 심장을 지닌 젊은이가 결국 악당 다스 베이더가 되고 만다는 점을 놓고 보면 퍽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는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변증법, 그중에서도 ‘안티테제’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dialectics)은 고대 그리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진리 탐구 방식 중 하나다.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을 놓고 맞붙여서 제3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역시 일종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헤겔은 그 개념을 이어받아 자신의 핵심 원리로 삼았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지문에 등장한 변증법은, 이렇듯 정반합(正反合) 원리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했던 헤겔의 철학적 기획이다.

<스타워즈>로 돌아와 보자. 은하공화국은 1000년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제다이 기사단은 개인적 삶과 감정 등을 모두 포기하고 공화국을 지킨다. 이렇듯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헤겔은 ‘테제’(Thesis)라 불렀다. 한자로 표기하면 정(正)이다. 아나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다이 기사는 공화국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한 정치는 효율적인 중앙집권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을 ‘테제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안티테제’(Antithesis), 반(反)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킨은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을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공화정의 무능함, 제다이의 허례허식과 엄격한 규칙만으로는 소중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절감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영웅(Hero)인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정체성을 버리고 악당(Anti-Hero)인 다스 베이더로 거듭났다. 공화정의 안티테제인 은하제국, 제다이 기사단의 안티테제인 시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막강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안티테제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진테제’(Synthesis), 합(合)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다. 빼놓거나 생략하면 변증법적 운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악당이 없으면 주인공의 모험이 빛나지 않듯, 안티테제가 없으면 테제는 진테제로 나아갈 수 없다.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인물’이라는 아나킨에 대한 예언은 그런 의미에서 정확한 것이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인 다스 베이더가 출현했기 때문에 은하계의 역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로 돌아와 보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현재 50대가 되어 있는 586 세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두환 정권의 본고사 폐지, 학력고사 실시 등의 여파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대학에 들어갔다. 과외 금지는 오히려 불법 과외로 짭짤한 용돈 벌이를 할 기회였다.

캠퍼스에 모인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김일성을 항일 투사로 과대 포장한 몇몇 조악한 서적을 읽고 ‘과거’에만 탐닉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티테제인 북한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키워나갔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권력 공백을 노리고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국적인 시민 저항에 직면하자 광주를 특정하여 군사력을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런 모습을 본 당시 대학생들은 대한민국과 한미 동맹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현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할 수 있다면 뭐든지 좋다고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마치 공화국과 제다이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안티히어로가 되어버리고 만 다스 베이더처럼 흑화(黑化)한 것이다.

그러나 안티테제는 어디까지나 안티테제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역사의 조연이지만, 안티테제 그 자체가 다음 세상에 속할 수는 없다. 테제와 안티테제, 과거에 속하는 둘이 서로 모순을 폭로해가며 싸우다 보면, 새로운 세대와 사상이 출현하여 진테제를 이루어내는 것이 변증법이다.

586이라는 안티테제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의의가 없지 않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형식을 갖추는 데 그들이 기여한 바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티테제는 테제와 서로 모순을 드러내며 대립하다가 진테제에 자리를 내주는, 정반합 운동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그 안티테제인 586 세대 역시,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때 아닐까.

다스 베이더는 어둠의 끝에서 선한 마음을 되찾는다. 아들인 루크를 지켜내고, 황제를 스스로 처리한 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안티히어로의 슬프고 아름다운 결말이다. 대한민국의 안티테제 세대, 586의 변증법적 퇴장을 기대한다.

2021-11-21

'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책임 탓한 이재명의 역사 인식

 [노정태의 뷰파인더-59] 진보파가 미국 철석같이 믿어..냉철한 인식 필요한 때

● ‘외세 대 자주’ 구도 만들려는 의도
● 진중권이 애매한 코멘트 남긴 이유
● 엄밀히는 가쓰라-태프트 밀약 없어
● ‘협정’ 아니라 일본의 외교전·언론전
● ‘순수한 피해자’ 전제한 역사해석
● 말로는 自主 외치지만 의식세계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맞지만 양국 관계에 '작은 그늘'이 있다며, 따지고 보면 분단의 책임도 미국에게 있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지지율 정체기에 '외세 대 자주' 구도로 대선을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이는 발언이다.

문제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같은 날 "한미 간 우호협력을 위해 내방한 분에게 과거 역사를 거론하는 것보다 우리 미래를 위한 협력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발언 내용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자 하는 태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외교'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거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의미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이 일본의 조선 병합을 묵인했기 때문에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을까? 그리하여 분단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겪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관점은 진보 진영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진중권이 특유의 촌철살인 대신 애매한 코멘트를 남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밀약'이 애당초 없는 두 가지 이유

엄밀히 말하자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자.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돼갈 무렵, 가쓰라 타로 일본 수상이 필리핀의 초대 총독을 역임한 육군장관 태프트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가쓰라가 태프트에게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용인할 테니, 미국도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태프트는 일본에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양국 간 비밀 협정이 체결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필리핀 총독이었을 뿐 미국의 국방·외교 정책을 좌우할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애초 그러한 '밀약'을 맺을 권한이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가쓰라가 워낙 집요하게 물어본 통에,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붙여 '일본이 한국에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태프트는 1905년 7월 29일자로 미국 외무장관 루트(Eligu Root)에게 전보문서(電文)를 보냈다. 일본에서 이러저러한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업무 메모였다. 1924년 존스홉킨스대 역사학부 교수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그 메모를 발견하고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막후 협상이 존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발칵 뒤집혔다. 설마 싶었던 내용을 확인했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비밀협상'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 오간 대화는 '비밀'이 아니었다. 태프트가 일본을 방문해 가쓰라와 만난 시기는 1905년 7월 27일. 그런데 약 3개월이 지난 10월 4일, 친정부성향의 고쿠민신문(国民新聞)에 대화 내용이 대서특필됐다. 물론 미국 측은 인정하지 않았다. 20여년 후 데넷의 연구에 의해 그러한 대화가 사실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튼, '협정'은 없었고 '비밀'도 아니었으니 '밀약'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견해는 필자가 독자적으로 창작해낸 게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에스더스(Raymond Arthur Esthus)가 1959년 제기한 반론을 요약한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는 '밀약'을 한 적이 없다. 태프트에게는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따라서 어떤 외교적 협상도 약속도 하지 않았다.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아 한 마디 했고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데, 놀랍게도 대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태프트나 미국 측에서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던 셈이다.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다!

1905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있지도 않았던 '밀약'이 언론에 대서특필됐을까? 일본이 언론을 동원한 외교전을 펼쳤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지배적 견해다. 러일전쟁에서 이겼는데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확보가지 못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일본은 여러 단계에 걸쳐 무리수를 뒀다. 굳이 일본에서 태프트와 만나 조선 지배를 양해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끌어낸 후, 그것을 언론에 살짝 흘려 기정사실화하는 수법을 썼다.

이는 마치 마를 캐는 소년이던 서동이 '서동과 선화공주는 밤마다 함께 잔다'는 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부인으로 삼은 것과 유사한 수법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꼽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외국과의 동맹도 전쟁도 피하는 성향을 지닌 '잠자는 거인'에 가까웠다. 조선 지배에 대해 미국의 공식적 지지를 정상적 경로로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을 확보해야 했던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가 다소 뒤엉킬 위험을 감수하고 외교전, 언론전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 역사학자들도 두루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다.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는 '몰래 맺은 협정'이라는 뜻을 지니는 '밀약'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했다. 고종이 덕수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벌어졌다는 것. 영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서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일본을 지원했고 일본은 러일전쟁을 벌여 개항 50여년 만에 숙적 러시아를 꺾는 쾌거를 이루었다는 것.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게 너무도 당연했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 미국은 조선을 지켜줄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순수한 피해자'의 자리에 놓고 역사를 해석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당시는 나약했던 조선마저도 '대한제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던 시대다. 제국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했다. 지금처럼 국제 질서에도 보편적인 도덕과 당위를 전제하고,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 함께 비난하며 저지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영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던 20세기 초의 국제 정세를 완전히 오판한 고종이 영국, 혹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을 버리고 러시아의 편에 섰을 때, 러일전쟁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스스로를 '거대한 체스판'의 전리품으로 올려놓은 채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고 말았다.

반일·반미 무기 삼아 역전 노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재명의 '가쓰라-태프트 발언'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지지율에서 수세에 몰려 있으니 말이다. 반일·반미를 무기 삼아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특히 지식인들의 반응이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경우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할 소리는 아니다' 같은 식의 반응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기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보 성향을 지니는 사람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반대하거나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그렇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너무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지금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강국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형상 독립 국가였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건 말건 찬성할 이유도 반대할 근거도 딱히 없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미국이 한반도에 지나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비판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 왜 100년 전 미국이 식민지도 아닌 조선을 지켜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1882년 조선과 미국이 맺은 조미통상수호조약의 제1조가 근거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던 고종의 논리이기도 하다. 조미통상수호조약 1조에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면 서로 돕겠다는 구절이 들어 있었으니 미국은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켜줬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해당 구절은 1858년 청나라가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와 맺었던 텐진조약 중 미국과의 협상문에 들어갔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1894년 청일전쟁에서 미국이 해당 조약을 이유로 청과 군사 협력을 해 청나라를 지켜줬을까?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라고 국제 협약과 동맹 등이 모두 휴지조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약 당사국인 미국은 텐진조약 1조의 '불경공모' 구절을 그저 미사여구로 취급했다. 청과의 조약에서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입증된 구절을 두고, 미국이 조선에 대해서만은 그 미사여구를 문자 그대로 실천해 주리라 믿는 것은 합리적 태도가 아니다. 조선 처지에서 항의할 수야 있겠지만 상대가 흔쾌히 받아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의 반미주의자·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개입과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말로는 민족 자결, 독립, 자주를 외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뜯어보면 진보 측에서 흔히 비난하는 '친미주의자'들보다 더욱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겼다! 이 주장은 조선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전제하지 않는 한, 혹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오직 미국만은 천사처럼 조선을 지켜주었어야 한다고 단정 짓고 있지 않는 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亡國은 누구의 책임인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묵인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조선 망국의 책임은 결국 조선 스스로에 있었다. 서양과의 접촉 및 근대화가 늦었다. 후발주자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할 지배층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국제 정세에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국내 정치의 필요를 위해 국제 정치를 아무렇게나 갖다 썼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건 필자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냉철한 머리로 우리의 객관적 처지와 현실을 파악하여 담대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그런 정치가 필요하다.

#이재명 #가쓰라태프트 #일제강점기 #반미 #반일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11-14

이재명 '공짜 용돈'으론 '청년 간병살인' 못 막는다

 [노정태의 뷰파인더-58] 月 50만 원, 부자에겐 용돈·빈자에겐 무의미한 돈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1월 10일, 대구고법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4년형을 선고받은 22세 남성 A씨의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소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11월 3일,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표방하는 '셜록'이 취재하고 '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된 기사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바 있다.

2020년 9월 13일 A씨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한 달에 200만 원 가량을 벌던 아버지에게는 본인의 수술 및 치료비를 감당할만한 재산이랄 게 따로 없었다. A씨의 삼촌이 경제적 짐을 떠안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소변줄을 차고, 코로 삽입한 줄을 통해 액체형 영양식을 공급받아 연명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청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도…"

기사에 따르면 A씨는 120kg에 달하는 과체중이다. 취직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몇몇 일자리를 구했지만 자꾸 월급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다가 사장의 눈 밖에 나기 일쑤였다. 해당 기사(‘"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는 아버지의 퇴원 전후로 A씨가 겪은 고초를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읽고 있노라면 A씨가 받은 판결에 대한 반감이 솟구쳐 올라온다. 누가 저 청년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 기사에 힘입어 A씨의 사건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두 대선 후보가 직접 사안을 언급하며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버지가 65세가 아니기 때문에 요양급여도 받지 못했고, 노동 가능한 연령대였으며, 노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도 없었던 탓에 그 외의 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사각지대'로 본 이재명은 11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 입장에선 작은 사각지대지만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며,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2심의 결론은 1심과 동일했다. 존속살해죄 유죄. 징역 4년. 마침 이 주제에 대해 원고를 쓰기 시작한 터라 나 역시 보도되는 내용들을 이전보다 훨씬 면밀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2심과 마찬가지로 존속살해죄 유죄라는 판결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병을 앓는 환자의 요양과 간병에 대한 문제의식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부터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사건 자체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해보자. 대구고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양영희)는 "이번 사건의 여러 정황과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퇴원시킨 다음날부터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므로 살인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이 존속살해가 아니라 유기치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유기치사는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행동할 때, 그리고 그 믿음에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범죄다. 그리 춥지 않은 가을날 술에 적당히 취한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 벤치에서 잠들었는데, 일단 내 버스를 타기 위해 그를 두고 집에 왔더니, 다음날 친구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존속살해 아닌 유기치사라 부를 수 없어

A씨의 아버지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두 시간마다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몸에 욕창이 생기는 중증 환자였다. 꼬박꼬박 먹어야 할 약도 매우 많았고, 콧구멍을 통해 삽입된 줄을 통해 영양식을 공급해야만 했다. A씨의 돌보지 않는 행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A씨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돌보지 않은 A씨의 행위는 살인일 수밖에 없다.

만약 A씨가 이 모든 돌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해보자. 그러다가 어느 날 피로 누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깊게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라는 항변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지도 않았고, 하루에 세 팩 이상 들어가야 할 영양식을 퇴원 후 사망까지 고작 10팩 제공했다. 대소변 처리 및 자세 바꾸기 역시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이와 같은 사실관계는 A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된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의 한 대목이다.

"A씨는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그 방에 5월 3일 밤 들어가 봤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강도영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
"피고인(A씨)는 피해자(아버지)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환자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자, 즉 A씨의 일방적인 진술일 뿐이다. A씨는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문을 닫고 나온 후, 사망할 때까지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위는 유기를 했을 뿐인데 살인이라는 결과가 실수로 나온 게 아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 죽을 것을 기대하고, 유기한 것이다. 존속살해라는 법원의 판결은 너무도 당연하고, 정당하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존속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죽게 만드는 미숙한 부모,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비슷한 존속살해 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동정심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A씨의 존속살해를 유기치사로 판단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영아 살해와 고려장을 사실상 허용하는 폭력적 전근대 사회로 회귀하고 만다.

진짜 필요한 '억강부약(抑强扶弱)'은 무엇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0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현장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앞서 말했듯 이재명은 이 사안을 두고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취지 자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이재명은 이 사건에 대한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따로 해법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이재명의 복지 정책과 방향성에 대해 알고 있다. 전 국민에게 '사각지대' 없이 나누어주는 기본소득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 세상에서는 A씨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계산만 해보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월 50만 원인데, 이 액수를 온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매년 312조 원이 소요된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한해 총 예산이 500조원이다. 1인당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직접세와 소비세 같은 간접세를 지금보다 53%씩 더 내야 한다.

문제는 월 30만 원이나 50만 원 같은 현금 복지가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지니느냐에 있다. 신체 건강하고 사회 활동에도 문제가 없지만 딱히 일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에게 매달 50만 원이 생긴다면 그는 신나게 그 돈을 쓰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낼 것이다. 공짜 용돈이 생긴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별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복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에게 월 30만 원 내지 50만 원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21년 현재 24시간 입주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은 최소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를 오간다. A씨와 아버지 두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는다 해도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현재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퍼부어도 A씨와 아버지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대신 굳이 '복지'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들이 매달 공짜 용돈을 받아 즐거운 소비를 한다. 이를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 이야기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구매'다. 가장 큰 경제 주체인 국가가 세금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소외 계층 및 복지 수요자에게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 서비스 등을 구입하고 제공하는 셈이니 말이다. 물론 통상적인 공동구매와 달리 어떤 사람은 평생 돈을 내면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와 같은 부의 재분배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부자는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더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재명이 좋아하는 구호인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재미, 누군가에겐 무의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현금으로 나눠준다. 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달성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기본소득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반면, A씨와 아버지처럼 한계에 몰려 있는 이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A씨의 비극 앞에서 해야 할 일은 현존하는 직간접적 복지 체계를 점검하고 맹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지, 기본소득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A씨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A씨의 삼촌은 생계 지원과 장애 지원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A씨는 그런 신청을 한 바 없다. 이렇듯 복지 혜택을 거부하며 자신과 주변인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만드는 경우, 어떻게 찾아내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요양병원 시스템은 어떻게 개편 증보돼야 할까? 대선을 넉 달 앞둔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다.

#간병살인 #복지사각지대 #이재명 #기본소득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1-13

中 "요소 수출 안 한다" 통보에도 한 달간 방치.. 짚신 장수보다 못한 정부

 

[아무튼, 주말-노정태의 시사哲]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과
대한민국 요소수 공급대란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우산을 만들었고 둘째는 짚신을 삼았다. 어머니는 근심이 끊일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사는 잘되겠지만 짚신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야 좋지만 우산은 도통 팔리지 않을 테니 역시 걱정이었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런 어머니에게 어떤 현명한 사람이 찾아와 조언해주었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 아들의 장사가 잘되는 것이니 좋은 일이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잘 팔릴 테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쁜 쪽으로 봤을 때는 어떤 쪽에서 봐도 불행했던 어머니는 생각을 바꾸자 해가 뜨나 비가 오나 행복한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이야기다.

좋게 말하면 비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삐딱했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상은 그대로인데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겠느냐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다 보니, 저 흔한 전래 동화에 경제학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발견한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가 바로 그것이다.

가정을 해보자. 형제는 근면하게 하루에 14시간씩 7일 동안 총 100시간을 일한다. 첫째는 둘째보다 손재주가 좋아서 한 시간에 우산 네 자루, 짚신 세 켤레를 만든다. 반면 둘째는 한 시간에 우산 한 자루, 짚신 두 켤레밖에 만들지 못한다. 즉, 첫째는 우산뿐 아니라 짚신도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첫째는 동생이 답답하게 한 시간에 짚신 두 켤레만 만드는 꼴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본인이 직접 우산도 짚신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경우 첫째의 생산량은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100시간 내내 우산만 만든다면 우산 400자루를 만들 수 있다. 반면 50시간씩 나눠서 우산도 만들고 짚신도 만들면 우산 200자루와 짚신 150켤레를 갖게 된다. 우산과 짚신 모두 하나에 한 냥이라고 가정해보자. 첫째는 400냥이 아닌 350냥을 벌게 된다. 손해다. 비록 우산뿐 아니라 짚신 역시 첫째가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해도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우산에 집중할 때 생산량이 높다.

첫째와 둘째 모두의 생산량을 놓고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계산해보셔도 좋겠다. 두 사람이 50시간씩 나눠서 생산하면 우산과 짚신의 전체 가격은 500냥. 반면 형제가 각자 더 잘하는 일에 집중하면 형제는 도합 600냥어치의 우산과 짚신을 생산하여, 첫째는 400냥을 벌고 둘째는 200냥을 벌게 된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짚신 장수가 우산도 만들고, 맑은 날에 우산이 안 팔릴까 봐 우산 장수가 짚신도 만드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상대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비교 우위 원리는 그 당연한 세상의 법칙을 경제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무인도에 갇혀서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런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리카도는 왜 비교 우위 원리를 주장했을까? 1815년부터 영국에서 시행한 곡물법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밀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밀은 일정 금액 이상으로 팔 수 없도록 했다. 리카도가 볼 때 곡물법은 영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값싼 외국산 곡물을 수입하는 대신 영국이 비교 우위를 지니는 모직물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그 후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고 산업화에 집중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거듭났다.

비교 우위 원리가 만능은 아니다. 곡물법에 반대했던 영국인들의 우려가 전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라는 소리다. 어떤 재화는 가격이 낮고 부가가치가 작지만 없으면 곤란해진다. 현재 공급 대란을 겪고 있는 요소수가 대표적 사례다. 요소는 비료의 원료이면서 동시에 화약 재료가 되는 핵심 전략 자원이다.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는데도 요소 공장을 유지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반면 우리는 오직 시장 원리에 따라 요소 공장들이 폐업하도록 방치했다가, 중국에서 벌어진 석탄 공급난의 유탄을 맞아 나라 경제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장경제는 때로 오작동하고 실패한다. 그것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대한민국호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중국 측 해명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요소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한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그 무렵 선제적 대응책을 고심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임기 막바지에 부인을 대동하고 유럽 순방을 하며 로마 교황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뜬금없는 부탁이나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화물차 333대에 나눠 넣으면 소진되는 요소수 2만 리터를 군용기로 공수한다고 홍보한다. 주중 대사 장하성은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중국 정부에 똑 부러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우산 장수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국민을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분통 터진 어머니가 짚신을 신고 뛰어나와 우산으로 등짝을 때려주는 장면을 상상하게 될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세계시장에 일찌감치 참여했다. 우리가 가진 비교 우위를 최대한 활용했다. 근면하고 손놀림이 빠른 여공들이 경공업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렇게 쌓인 자본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산업을 고도화해 나갔다. 그 결과 우리는 반도체와 문화 상품이라는 최첨단 영역에서 비교 우위를 지닌 경제 강국을 이룰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 낳은 세계 경제사의 기적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국민을 걱정하고 다가올 위험에 대비하는 현명한 정부가 필요하다. 내년 3월, 우리 각자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정부를 선택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2021-11-07

현대차가 로봇업체 품는 시대..이재명은 합니다! '로봇 뒤집기'

 

[노정태의 뷰파인더-57] 李의 '실험'이 거북한 철학적 이유

● 로봇 성능 테스트 원래 이렇게 한다?
● ‘군용 목적’ 로봇조차 학대 논란 겪어
●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유튜브 영상 삭제
● 아이보가 준 교훈…‘로봇도 늙어 죽는다’
● 인간×로봇 시대에 ‘윤리란 무엇인가’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월 28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봇 박람회 ‘2021 로보월드’에서 참가 업체의 사족보행 로봇을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0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로봇 박람회 '2021 로보월드'에 참석했다.

"덤블링 한번 보시겠어요?"

어떤 벤처기업 부스에서 자신들이 만든 4족 보행 로봇을 홍보했다. 원격으로 조작하자 로봇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돈 후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그 광경을 본 이재명은 직접 추가 테스트에 나섰다. 먼저 로봇을 가볍게 밀어보았다. 로봇은 네 다리로 균형을 잡았다.

"잘 버티네요."

벤처기업 시연자에게 한 마디 한 그는 로봇의 배 부분에 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올려 뒤집었다. 그를 수행하던 이들과 주변 관람자들 중 일부는 깜짝 놀랐다. 네 다리가 앞뒤로 360도 회전 가능하게 설계된 로봇은 일단 뒤집힌 채로 일어났고, 그 후 스스로 몸을 뒤집어 원위치를 회복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제20대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이 11월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리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로봇 실험' 주장, 팩트체크

이 장면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이재명을 두고 소시오패스(Sociopath) 논란이 벌어졌던 터였으니 말이다. 일부 네티즌은 이재명의 행동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했다. 문재인은 비슷한 상황에서 4족 보행 로봇을 가볍게 들었다가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또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본적으로 감정이입 능력의 문제"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이재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10월 31일 SNS를 통해 "이 로봇은 넘어져도 자세복귀능력이 있다고 해서 추격테스트에 이어 전도테스트로 넘어뜨려 본 것"이라며 "로봇 테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일부 언론이 복원장면은 삭제한 채 넘어뜨리는 일부 장면만 보여주며 과격 운운 하는 것은 가짜뉴스"라고 쓰며 역공을 취했다. SNS 게시물에는 한때 구글이 보유하고 있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에서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 발로 차고 밀던 모습을 함께 편집해 붙여놓았다.

일단 팩트부터 확인해보자. 이재명이 제시한 동영상 말미에 등장한 자막, "※ '로봇 성능 테스트'는 원래 이렇게 합니다…" 라는 말은 사실일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이재명의 '실험'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실험'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기부터 다르다. '로봇 걷어차기' 영상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은 2009년부터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로봇의 4족 보행 기술은 걸음마 단계였다. 바퀴나 변형된 캐터필러가 아닌 '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는 로봇을 구현해내는 것 자체가 오래 되지 않은 기술인 것이다. 반면 지금은 2021년이고, 보스턴 다이내믹스만큼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로봇 다족 보행의 기술적 장벽 자체는 퍽 낮아진 상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그런 이상한 로봇을 만든 이유는 뭘까? 처음 공개된 '빅독'(BigDog)은 당나귀나 노새 정도의 크기로, 네 다리로 움직이고, 걷어차거나 빙판 위에서 밀어도 쓰러지지 않는 로봇이었다. 용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로봇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험악한 지형에서 자동차로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군수 물자를 나르기 위한 용도로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디젤 엔진으로 작동하는 터라 너무 시끄러워서 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후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의 소형화와 소음 줄이기, 그리고 인간 형태 모방 등으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다.

4족 보행 로봇이 군사 목적일리가

이렇게 길게 '로봇의 목적'을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이재명이 1:1로 비교한 영상 속 로봇은 애초에 군용으로 개발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친 환경 속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발로 걷어차고 밀고 굴리는 식으로 험한 테스트를 하며, 그걸 견뎌낼 수 있다고 보여준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도 '로봇 학대' 논란이 불거졌고,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유튜브에 직접 올린 영상들은 삭제됐다.

반면 이재명이 뒤집은 로봇은 어떨까? 중형, 소형 애완견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는 4족 보행 로봇을 군사 목적으로 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상을 유심히 보면 해당 로봇은 강한 외부 충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유튜브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라. 이재명이 뒤집어 쓰러뜨린 후 다시 일어날 때 한쪽 다리의 부품이 빠져서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잘 들어보면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그 사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로봇 성능 테스트'는 원래 이렇게 한다는 이재명 측의 해명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이재명의 비판자들은 이번 일을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재명의 본성을 또 보여주는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이재명 지지자들은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거는 나쁜 프레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닌 로봇을 거칠게 뒤집었다고 해서 '로봇 학대'니 뭐니 운운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공감 과잉이고 어불성설이라는 소리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맞는 말 같다. 가령 우리는 자동차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차량 내에 센서가 부착된 인간 모형(더미)을 싣고 충돌 테스트를 하지만, 그 누구도 '자동차 학대'나 '더미 학대'를 이야기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일부 이재명 지지자들은 골프공 강도 테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물건을 부수고 망가뜨리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공유하며 '로봇 학대'라는 표현을 조롱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물건을 학대할 수 없다. 학대의 대상은 인간 및 우리가 정서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생명체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백하게 동물을 연상시키는 로봇을 향해 폭력적 행위를 하는 걸 전혀 문제 삼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그러니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공감 능력 때문이다. 우리의 공감 능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이성적'이다.

어떤 SF 소설보다 더 SF적인 실화

반대편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1999년, 소니는 세계 최초의 애완용 로봇 '아이보'(アイボ)를 출시했다. 애완견의 행동과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아이보는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애완견이 되어 주인보다 오래 살 터였다. 2006년까지 일본 내에서 15만대가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소비자들의 그런 기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문제는 소니의 경영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데 있다. 2006년 소니는 구조조정을 이유로 아이보의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2013년부터는 AS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보의 구매자들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기계도 낡는다. 아니, 늙는다. 꾸준히 소모품을 갈아주며 유지 보수해주지 않는다면 로봇 역시 사람이나 동물처럼 노화하고, 결국 다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요컨대 로봇 또한 '늙어 죽는다'는 말이다.

결국 2017년부터 일본에서는 '로봇 개 장례식'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펼쳐지게 됐다. 더는 수리할 수 없는 아이보를 떠나보내는 주인들이 모여 수백 마리씩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그렇게 모인 아이보들의 몸에서 다른 아이보의 수명 연장을 위한 부품도 수거되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가슴 찡한 이야기다. 로봇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중적 관심과 애정, 그리고 소니의 경영 악화가 빚어낸, 그 어떤 SF 소설보다 더 SF적인 실화다.

이건 잘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래도록 타고 다니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자동차를 폐차할 때 눈물짓는 차주들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로봇청소기를 구입한 사람들이 로봇청소기에게 애칭을 붙여주고 귀여워하는 것도 흔히 목격되는 현상 중 하나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은 27년이나 아끼며 써오던 바늘의 허리가 부러지자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모씨가 두어 자(字)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라"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그 유명한 '조침문(弔針文)'이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아닌 물건에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쏟고, 그것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이보를 구매한 21세기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는 한국인이므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를 알고 있다. 정(情)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동물에게, 식물에게, 더 나아가 사물이나 장소에도 정이 든다. 정든 만년필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유씨 부인처럼 애석해한다. 열린 현관문을 통해 로봇청소기가 집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그 '아이'가 '가출'했다며 아파트에 공고를 붙인다. 오래도록 타고 다니며 정들었던 자동차를 누군가 들이받아 폐차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마치 아끼는 말이나 소가 늑대에게 습격당한 카우보이처럼 분노할 것이다.

사물에 정을 느끼고 아끼다가 결국 슬퍼하고 다시 극복하는 그 모든 과정은 결코 엉뚱하거나 비합리적인 게 아니다. 정, 그것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근본적인 정서 중 하나다.

‘李 인격 논란' 너머의 윤리 논쟁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이재명을 위한 변명을 하나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실험정신이 투철하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이재명처럼 거칠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한번은 뒤집어봤을 것 같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말이다. 이재명 역시 호기심에 강하게 사로잡힌 나머지 대선후보라는 사회적 역할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

2021년 현재, 우리는 음성인식으로 TV를 틀고 채널을 바꿔주는 스마트 스피커라던가, 아이폰의 '시리'나 갤럭시의 '빅스비'처럼 오직 내 목소리에만 반응하는 스마트폰 속 AI(인공지능) 어시스턴트 등 사람 흉내를 내는 온갖 기계와 소프트웨어 속에서 살아간다. 앞서 '뷰파인더' 지면에서 다루었던 채팅봇 '이루다'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볼 수 있다. 채팅봇도 일종의 로봇이니 말이다.

2021년 6월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인간과 기술 사이의 윤리를 더욱 선구적으로 고민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인간이나 동물만을 놓고는 인간의 윤리적 지평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논란이 '이재명 소시오패스' '이재명은 매정한 사람' 같은 특정인의 인격 문제로 축소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술과 윤리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로봇 #보스턴다이내믹스 #아이보 #신동아

9월 17일 현대자동차그룹이 공개한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Spot)’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AI 프로세싱 서비스 유닛’을 접목시켜 완성됐다. [현대차그룹 제공]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10-31

할로윈 '오징어 게임' 분장 전 꼭 알아야 할 비화

 

[노정태의 뷰파인더-56] '근본 없는(?)' 축제에 대처하는 자세

● ‘오징어 게임’이 바꾼 할로윈 관점
●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축제
● 가톨릭계 이민자와 함께 美에 정착
● ‘어른들의 할로윈’ 어쩌다 탄생했나?
● 1996년作 호러 영화 ‘스크림’ 후폭풍
●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 포용해야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할로윈 데이를 나흘 앞둔 10월 27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 노점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가면이 할로윈 소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뉴스1]
10월 31일 오늘은 할로윈 데이다. 매년 이맘때면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의 패턴이 있다. '할로윈이라는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명절을 즐기겠다고 이태원과 홍대 등으로 쏟아지는 젊은이들', '기괴하고 잔인한 분장을 하거나 마블, DC의 슈퍼히어로 흉내를 내며 젊은이들이 즐기는 모습', '바닥에 나뒹구는 구토 자국과 빈 병이 보여주는 실종된 시민의식'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국적 불명의, 혹은 미국식 가짜 명절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지만, 올해는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흔히 눈에 보인다. '미국인들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오징어 게임' 추리닝을 입고 있다', '유럽인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달고나를 먹으며 할로윈을 즐긴다.'

지난해까지는 외래문화가 맥락 없이 들어오는 창문이었던 할로윈이, 어느새 한국 문화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수출 경로가 되고 만 셈이다. 그렇다보니 올해는 특이하게도 연례행사와도 같았던 할로윈 비판이 많지 않고 그 수위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 30대인 필자 입에서조차 '오래 살고 볼 일' 같은 말이 절로 나오는 희한한 2021년이다.

할로윈이라는 '명절 아닌 명절'이 국내에서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후 처음으로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이 기회에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다. 할로윈이라는 특이한 명절의 유래는 무엇일까? 왜 오늘날 할로윈은 죽은 이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를 따라하는 날이 돼버린 것일까?

중세 유럽 켈트족에서 멕시코까지

중세 유럽의 켈트족은 한 해를 여름과 겨울 두 개의 계절로 나누었다. 생명이 약동하고 번창하는 여름이 끝나면 죽음이 돌아오는 겨울이 시작된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는 것, 그 축제를 서우인(Samhain)이라 불렀다. 10월 31일 밤부터 11월 1일까지 이어지는 그 축제는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며, 동시에 한 해의 시작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연히 성대한 축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민족과 마찬가지로 켈트족 역시 로마에 의해 정복당했다. 기원후 43년 대부분의 켈트족이 로마에 무릎을 꿇었다. 그 결과 서우인에도 로마의 색체가 가미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대부분 비슷했던 모양인지, 로마인들은 매년 10월이 끝나갈 무렵 죽은 조상을 추모하는 페랄리아(Feralia)라는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날짜와 주제가 비슷한 탓에 두 축제는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럽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갔다. 로마의 유산과 제도 등이 무너진 가운데 그나마 문명의 잔해를 유지하고 있던 곳이 바로 교회였다. 모든 문화와 풍습에 기독교의 영향이 가미됐고, 서우인 역시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중세 유럽에 남아있던 축제는 서우인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전통 축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중세를 지배하던 가톨릭교회는 그런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즐기는 축제지만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고대 종교의 세계관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교도'의 전통에 따라 먹고 놀고 마시다보면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에서 벗어나 야만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 8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는 기존에 5월 13일로 정해져 있던 '모든 성일 대축일'의 날짜를 11월 1일로 옮겼다. 서우인 또는 서우인과 비슷한 다양한 토착 축제를 갑자기 없애버리면 민심이 동요하고 거부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 노는 날짜는 그대로 두되 그 위에 기독교적인 맥락을 추가하여 '덮어씌우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전략은 효과적으로 통했다. 11월 1일 모든 성일 대축일은 지금도 가톨릭교회의 중요 행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가톨릭의 교세가 강한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라틴 문화권에서 11월 1일은 상당히 비중 있는 명절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0월 31일에는 세상을 떠난 모든 가족과 친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11월 1일은 아침부터 성당에서 모든 성인을 위한 미사를 드리며 어젯밤을 뒤덮었던 죽음에 대한 상념과 묵상으로부터 벗어난다. 11월 2일은 그 행사의 마지막 날인 위령의 날이다.

특히 멕시코는 10월 31일을 '망자의 날'로 특별히 취급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아즈텍 문명의 명절과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공교롭게도 할로윈과 같은 날에, 같은 주제로 축제를 벌여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축제는 우리가 아는,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할로윈과 사뭇 다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코코'(2018)에서 묘사하고 있다시피 진지하게 죽음을 고찰하고 망자를 그리워하면서도 떠나보내는 그런 날이다.

‘어른의 축제'가 된 비밀을 풀다

10월 25일 ‘오징어 게임’ 복장을 하고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의 모습. [뉴스1]
미국은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아닌 개신교 국가다. 미국으로 처음 건너온 이민자들의 삶은 망자의 날에서 모든 성인 대축일로 이어지는 가톨릭 전례 달력과 무관하거나 상당히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할로윈은 미국 어린이들의 축제가 되었다가, 심지어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어른들이 특수 분장을 하고 노는 날이 된 것일까?

영어권에서 만들어진 문헌 중 대중적으로 입수 가능한 것들을 뒤져봐도, 어째서 가톨릭 계열의 축제가 개신교 국가에 뿌리 내릴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정교하게 설명한 것은 찾기 어렵다. 아무튼 19세기 중반부터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가톨릭 계열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와 정착하면서 할로윈, 혹은 망자의 날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이 아니라 그냥 유치원에서도 '트릭 오어 트리트(trick-or-treat)'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스켈레톤이나 마녀 같은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탕을 받는 그 행사 말이다. 그것이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반에 유입된 할로윈의 풍습이 20세기 초, 1920년대부터 미국적인 방식으로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아이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사탕을 받는 귀여운 행사가 된 할로윈은 '로컬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현대 미국인들의 감성과 딱 맞아 떨어졌다. 그 기원과 유래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 두루 즐기는 새로운 유형의 명절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되어버린, 말하자면 '어린이용 할로윈'이 탄생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할로윈'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걸까? 필자는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조사를 해봤다. 한국어 문헌 뿐 아니라 영어 문헌도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대목부터는 약간의 '뇌피셜'을 가미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할로윈이 '어른들의 축제'가 된 것은 두 번의 변곡점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존 카펜터 감독의 1978년 영화 '할로윈'의 성공이 그 첫 번째다. 여섯 살에 친누나를 살해한 정신이상자가 고향에 돌아와 살인극을 벌인다는 내용의 호러 무비다. 이후 '할로윈' 시리즈 뿐 아니라 비슷한 콘셉트의 할로윈 시즌 호러 무비를 낳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할로윈을 어린이들의 동심 축제에서 어른용 호러 축제로 바꾼 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스크림'의 등장은 특히 주목받는 사건이다. 독자 여러분 중에는 '스크림'을 안 본 분이 더러 계실 텐데, 그렇더라도 '스크림 마스크'는 보셨을 것이다. 흰 바탕에 검은 색으로 눈코입이 뚫려 있고, 대단히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는 그 마스크 말이다. 그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변조한 목소리로 음산하게 '헬로, 시드니'라고 희생자를 부르고 무참히 난자해서 죽이는 호러 영화. 대중은 그 이야기에, 마스크에 열광했다.

그 '근본 없음(?)'이 우리의 힘!

지난 9월 2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오징어 게임’ 팝업 체험존 ‘오겜월드’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정리해보자. '할로윈'과 그 뒤를 이은 호러 영화들은 할로윈을 어린이의 축제에서 호러 영화를 즐기는 어른들의 축제로 서서히 바꿔나갔다. 그러다가 '스크림'이 기념비적 성공을 거두면서, 미성년자 관람불가인 호러 영화를 몰래 보며 성장한 세대는 할로윈을 '어른들의 파티'로 즐기기 시작했다. 할로윈은 호러 영화에 등장한 온갖 할로윈 괴물이나 살인마를 따라 분장을 하고 노는 날이 됐다. 점점 '코스프레'의 대상은 호러 영화를 넘어 영화나 드라마 등 히트한 대중문화의 여러 요소들로 확장되었다.

앞서도 말했듯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필자의 지식과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100% 확인된 사실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하지만 대체 왜 매년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근처에는 10월 마지막 주말만 되면 흡혈귀도 아니고 살인마도 아닌 마블 캐릭터 의상을 입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즐기는 할로윈은 '근본 없는(?)' 축제다. 그 뿌리는 고대 켈트족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미국에 기원을 둔 대중문화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일일까? 망자를 그리는 엄숙한 종교적 행사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날이 되었다가, 어른들도 딱딱한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고 대중문화 흥행작을 흉내 내며 즐기는 날이 된 그 변화 과정을 굳이 비판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그런 '근본 없음'이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2021년 할로윈은 분명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만든 문화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할로윈 파티 테마로 떠오른 즐거운 현상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할로윈의 '근본 없음' 때문이니 말이다.

이 글을 '국뽕'으로 끝낼 수도 있지만 필자는 여기서 한 가지 화두를 더 던져보고 싶다. 매년 언론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도, 순국도 아닌 '사형선고일'을 들먹이며 밸런타인데이를 구박한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는 걸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가래떡 데이'부터 온갖 길쭉한 음식을 갖다 붙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할로윈의 '근본 없음'이 결국 우리의 힘으로 돌아왔다면, 다른 '국적 불명 기념일'에 대해서도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단일민족과 순수혈통의 환상을 벗어던지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문화와 섞여 들어갈 때, 우리는 더 강하면서 풍요롭고 즐거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할로윈데이 #오징어게임 #스크림 #코스프레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