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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5

갑질사회, 캅질사회

일행이 통으로 전세 내어 쓰는 기차에서 앞자리에 발 올린 게 그렇게까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일인가? 시트가 좀 더러워졌다 한들 적당히 털고 가면 될 일 아닌가?

또 마찬가지로, 어떤 술집을 전세 내듯이 해서 온 단체 손님들이, 술 마시다가 담배를 피운 게 그렇게까지 욕 먹을 일인가? 그것도 불판에 고기 굽는 집이라면 어차피 계속 환기해야 하는데 담배연기가 그렇게 대수인가?

물론 현행법상 실내 흡연은 과태로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그게 검사를 사칭하고, 음주운전하고, 자신의 친족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고, 시장 권한으로 특정 업체에 아파트 개발 이익을 몰아준 것과 같은 급은 아니지 않은가?

윤석열이 기차에 발 올린 사진을 보자마자 '빨리 사과하고 털고 지나가자'고 하는 것은 타당한 판단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냐 권위의식 쩐다'는 식으로까지 나가는 것은 좀 이상해보인다. 좁은 기찻간에서, 주변인들이 익스큐즈 한다면, 그 정도 발 뻗는 것도 안 되는 일인가.

나는 만성 비염 환자다. 가급적이면 마스크를 안 쓰는 게 내 건강에 유익하다. 그래서 나는 실외에서 근처에 사람이 없으면, 특히 밤이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밤 산책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 상당수 혹은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서. 이건 코로나 예방이라는 목적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세하게나마 본인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다.

사람들이 왜들 이러는 걸까? 윤석열의 기찻간 발 올리기 논란, 그에 맞불이라고 제시된 이재명 담배 짤방 등을 놓고 보니, 이해가 간다.

한국에 만연한 것은 '갑(甲)질'만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서로를 향해 눈을 홉뜨고 감시하는 '캅(cop)질'도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범죄, 특히 권력 가진 자의 권력형 범죄는 '우리편'이라고 잘도 봐주면서, 막상 기껏해야 경범죄에 지나지 않을 무언가는 아주 죽어라고 잡아 족치는 이상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기찻간에 발 올린 적 없다. 고속버스에서도 그런 짓 하지 않는다. 의자도 뒤로 젖히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서 가는 성격이다. 담배는 애초에 피우지도 않는다. 그런 짓을 옹호하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또한 이 글을 이재명 쉴드 치는 것으로 읽고 뭐라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오독하고 화내는 리플을 솔직히 보고 싶지 않고, 지겹다. 지우던가 가리던가 해버릴 예정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우리가 진정 '자유주의'에 입각한 사회를 원한다면, 중범죄와 경범죄를 구분해야 한다. 중범죄는 확실히 잡고, 경범죄는 시민들끼리 서로 가볍게 훈계 계도하거나 그냥 봐주기도 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갑질'과 '캅질'이 횡횡해서야 '사람 사는 세상'은 커녕 '법치국가'도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2020-09-23

다시,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일전에 신동아에 썼던 '뷰파인더' 칼럼에서 지적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무료로 독감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해놓고, 예산을 최대한 덜 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액수로 백신 단가를 후려쳤다. 당연히 기존의 정상적인 업체들은 손을 놓아버렸고 처음 백신 시장에 들어온 의약품 유통업체 신성약품이 낙찰받았다.

신성약품은 비용 절감을 위해 냉장 상태를 유지한 채 배송해야 할 백신을 종이상자에 담아 보내는 말도 안 되는 실수 혹은 과실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권은 여기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또 뻔뻔스럽게 신성약품을 상대로 '네 이노옴!' 하고 소리지르고 손가락질하며 무마하려 들 것인가?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정부는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공적인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 재원이 부족하다면, 역시 정당한 절차와 논의를 거쳐 세금을 걷어야 한다.

국가가 날강도처럼 구니까 국민들도 서로 뜯어먹을 궁리나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지 말기 바란다. 

보건당국이 독감백신 사업에서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것이 관리 소홀 문제로 이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약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백신 단가를 8,0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 가격은 시중 병원 납품가(1만 4,000~1만5,0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주요 업체들은 아예 응찰을 하지 않았다. 입찰이 대여섯 차례나 유찰을 거친 후에야 이번에 신성약품으로 공급사가 정해진 것이다. 의약품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은 1,100억원 규모의 4가 독감백신 국가 조달 입찰에 성공하면서, 이번에 처음 백신 시장에 진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537880

2020-07-18

페스 내추럴 비강분무액



비염 환우 여러분. '페스 내추럴 비강분무액'을 사십시오. 3% 소금물 외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나잘 스프레이입니다. 건조한 코에 수분을 공급해주며 알레르기 오염원을 제거해주고, 삼투압 효과로 콧구멍도 어느 정도 뚫어줍니다. 성분이 단순해서 부작용의 우려도 매우 적습니다.

라벨을 보니 호주 제약회사 제품이고 생산국은 스웨덴입니다. 국내 비염 환자들이 많이 사야 국내 제약회사가 더 염가로 카피 제품을 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약국에 있길래 두 개 샀습니다.

가격은 싸지 않습니다. 제가 구입한 곳에서는 개당 1만2천원. 비염 환자라면 속는 셈치고 (비염 환자를 상대로 한 온갖 민간요법과 사기 의약품 및 의료행위가 좀 많습니까?) 한번 시도해보시길.

2009-05-06

[노정태의 우물 밖 개구리] 돼지가 독감에 걸린 날

돼지들만 억울하게 됐다. 돼지독감(swine flu)라고 초기에 명명된 것과는 달리, WHO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돼지에서 비롯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공식 명칭을 변경했다. 늦은 일이다. 많은 이들은 이미 이 질병을 '돼지독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18~1919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스페인 독감의 경우도 그랬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 붙여졌고, 지금껏 그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WH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2009년 발병한 신종 인플루엔자는 꾸준히 ‘돼지독감’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을 때,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는 기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40대 버스 운전기사 모씨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을 때, 대형 일간지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1면에 보도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안타깝게도(?) 그 환자는 단순한 독감 환자에 지나지 않았다.

우선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정리해보자. 현재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는,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독감과 다를 바 없다. 인플루엔자는 그 바이러스의 종류를 통해 크게 A형, B형, C형으로 분류된다. 이것들 중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A형이다. B형은 우리가 매년 예방접종을 맞는 평범한 독감 바이러스이며, C형은 그냥 ‘감기’의 원인이 될 뿐이다. B형과 C형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왔고, 인간에게는 그 각각에 대응할 수 있는 항체가 있다.

문제는 A형 독감이다. 이것들은 주로 조류를 숙주로 삼으며, 간혹 돼지에게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인플루엔자 A는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도 야생 상태에 있으며, 지금도 끝없이 진화중이다. 통상적으로는 A형 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없다. 단백질의 구조가 인간의 기관지로 침입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그 침투가 가능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것이 바로 인플루엔자 대유행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 <조류독감>에 따르면, “인플루엔자(독감) 대유행은 흔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혀 면역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HA 아형의 출현 또는 재부상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플루엔자 유행이 ‘돌연변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면역성을 지니지 않은 독감에 걸린 채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길어도 한 달 내에 그 사람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그 기간 동안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자기증식하고, 그 과정에서 계속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최대한 빨리 감염자의 신원을 확인하여 격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몸은 바이러스를 배양, 증식할 수 있는 최고의 배양기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멕시코 정부가 감염자 숫자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큰 비난에 직면한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인플루엔자와의 싸움은 결국 환자 관리에 달려 있다. 감염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을 격리하여 치료해야만 파국을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과연 온 국민에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의료적 혜택이 주어질 수 있느냐이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 개혁’이 단행되지 않은 지금 신종 인플루엔자 문제가 불거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은 전국에 보건소가 깔려 있고, 사람들은 누구라도 5000원 미만의 돈을 내고 병원에서 잘 훈련된 의사의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온 국민의 의료 접근권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인구 1억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멕시코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사회적 안전망이 파괴된 나라 중 하나이다. 현재 발생한 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

거대 언론의 선정적 보도로 인해 애꿎은 ‘타미플루’만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고 한다. 마치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라면을 사재기하는 일이 벌어졌듯이,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내가’ 그 독감에 걸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많은 사람들이 독감에 걸렸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국의 의료 체계 하에서는, 본인이 스스로의 증세를 일찍 자각한다면,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도 큰 무리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문제는 그놈의 ‘개혁’이다.

   
<드라마틱>에서 수습기자 및 취재기자로 일했고,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를 규정짓게 될 키워드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아웃라이어>가 있다. 고려대 법학과 졸업, 현재 서강대 철학과 재학중.

 

노정태/ForeignPolicy한국어판편집장  mediaus@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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