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놀랍지 않다. 여론조사가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여론 그 자체가 조작에 가깝도록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뭘 잘못해왔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뭘 더 잘못할 예정인지 모른다. 대신 그들이 아는 것은 언론을 통해 유포된 이상한 프레임이다. 가령, 이런 것들 말이다.
- 한국은 정말 빠른 속도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으며, 그래서 전 세계가 깜짝 놀라 감탄한다.
- 한국은 정말 투명하게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싸우는 전 세계 정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일단 1을 살펴보자. 얼핏 들으면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개쩔게 잘 대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는 것은 그만큼 감염자가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감염된 사람이 없다면 검사를 할 일도 없다. 이건 마치 집이 활활 불타고 있는데 소방수가 불 잘 끈다고 좋아하는 꼴이다.
COVID-19 감염증 검사 프로토콜. 일단 열이 나야 하고, 마른기침을 동반한 가래가 나와야 한다. 그 가래를 채취하여 검사한다. 1차 의료기관에는 지금도 수많은 감기, 폐렴 환자들이 당도한다. 의사들이 그들 중 COVID-19 감염 의심자를 걸러낸다. 그렇게 한 차례 선별된 의심 증상자들의 가래를 채취하여 샘플을 만들고, 샘플을 분석하여 확진자를 선별한다.
즉, COVID-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고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모두가 검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 대상이 된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음성이 나오고 일부는 양성이 나온다. 그렇게 양성이 나온 사람들만 확진자다. 이 관계를 집합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검사를 빨리 한다고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다. 외국인들이 보면 신기하긴 할텐데 그게 외신에 나온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의료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만큼 COVID-19 바이러스가 퍼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세계가 깜짝 놀라는 한국의 검사 속도'를 자랑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청와대의 판단 착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한국의 검사 속도 세계가 깜놀!'같은, 무슨 나영석 PD가 연예인들 데리고 외국 나가서 식당 차리고 외국인들이 맛있다고 따봉 해주는 것 같은 프레임을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물론 외신들은, 좀 보기 드문 일이긴 하니까 보도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그런 장단에 놀아나는 건 좀, 문제 있지 않나? 집에 홍수가 나서 오수가 역류하고 있는데 '캬, 우리 형님 바가지로 물 퍼내는 솜씨 보소~ 엄지척!' 이지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 프레임도 그렇다. 귀찮아서 모든 외신을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어권 언론이라면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백퍼센트 찬성하거나 환영할 까닭이 없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주 이코노미스트를 펼쳐보니,
In South Korea, by contrast, the government is being forthright and formidably transparent, allowing Koreans to trace their possible brushes with the disease. As well as briefing the press thoroughly twice a day, and texting reporters details of every death, the government puts online a detailed record of each new patient’s movements over previous days and weeks, allowing people to choose to shun the places they visited. The risk of illicit activity being thus uncovered—at least one extramarital affair may have been—gives people an extra incentive to avoid exposure to a disease which, in most of the infected, results in only mild symptoms.
한국에서는 대조적으로 정부가 직설적이고 투명해서 한국인들은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스스로 추적해볼 수 있다. . . .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이 드러날 위험도 있다. 적어도 한 건의 불륜 사례가 드러났으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감염 사례에서 가벼운 증상만 보이고 끝날 수 있는 이 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더욱 피하게 만드는 유인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What the world has learned about facing covid-19", The Economist, 2020년 3월 5일
국민의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정보에 기반해 누군가의 소비와 동선을 모두 추적하여 까발리는 것은, 외신들이 나오는 '서구 선진국'이라면, 영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정보를 수집하여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것을 '투명성'이라고 아이고 좋다 멋지다 한국 최고~ 라는 식으로 영어권 언론이 다룰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할 것이다. 지금 위에 인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사처럼, 다들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우려를 전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해당 대사를 좀 더 읽다보면 등장하는 문단은, 한국인 중 상당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투명성'이라는 것이 외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정직하게 알려준다. "한국의 권력은 시민의 사생활에 아주 작은 비중을 둔다. 한국의 대응 중 일부는 다른 민주 국가에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South Korea has powers that put very little weight on its citizens’ privacy; some aspects of its response might be hard to mount in other democracies.)
물론 그 이후로 케나다의 사례를 들어, 국민의 동의 하에 잘 작동하는 민주국가가 국민의 설득과 동의 하에 격리 조치 등을 더 잘 시행할 수 있다는 서술이 따라붙고 있긴 하다. 그래도 한국의 '투명성'이 기존 민주국가의 상식과 어긋나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야 한국의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투명하다고 뉴욕타임즈 같은 외신에서 막 좋아요 쌍따봉 했다는데?' 정도로 알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와대의 편에 선 언론들은 청와대 편을 드느라 그런 식으로 단장취의하고 있으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 또한, 어쨌건 '국뽕 장사'를 하면 조회수에 도움이 되니까, 국뽕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니 청와대는 여론조사를 조작할 필요가 없다. 여론 자체가 조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 대응이 잘못되어 이 사달이 나고 있는데, 확진자 빨리 잡아낸다고 좋아라 하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논리가 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은 '바이러스 검사 맛집'이 아니다. '정부가 투명한 국가'로 전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지도 않다. 바이러스가 퍼질대로 퍼진 감염국이며, 국민의 사생활이고 뭐고 일단 까발리고 보는, 국민의 사생활을 덜 보호하며 민주적 원칙을 쉽게 양보하는 국가다.
여러분이 읽는 수많은 '외신에서 어쩌구' 타령에서, 국내 언론이 감추고 있는 이면의 맥락이 이렇다는 것이다. 다만 그 외신들은 '젠틀'하게, 우리의 면전에 대고 저런 소리를 안 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