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방패 삼아 숨지 못하게... 나라의 주인들이 회초리 들어야
성경 속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대한민국 최악의 대리인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집사를 두고 살림을 맡겼다. 그런데 집사가 부자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부자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집사를 불러 해고하겠노라고 통보했다. 당장 쫓겨나게 생긴 집사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곳에서 집사 노릇을 할 수도 없게 된 처지에, 험한 육체노동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사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주인댁 바깥에서 자신을 반겨줄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기름 백 항아리는 쉰 항아리로, 밀 백 섬은 여든 섬으로 깎아주었다. 낭비를 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생긴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도리어 더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집사를 불렀다.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이야기다. 옛날 말로 집사를 청지기라고 한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비유가 그렇지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특히 혼란스럽다. 논란의 여지도 많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진 빚을 제 맘대로 깎아주고는 도리어 칭찬을 듣는다는 말인가? 성경에는 저 집사 혹은 청지기가 의롭지 못하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런데 왜 예수는 나무라지 않는 걸까?
세속의 학문을 통해 성경의 비유를 이해해 보자. 197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과 로체스터 대학교의 윌리엄 메클링은 본인-대리인 문제, 혹은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제시했다. 일을 맡기는 사람과 맡아서 하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경영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할 수 없다. 계약을 맺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시켜야 한다. 일을 맡긴 사람이 일의 주인이다. 하지만 일을 더 잘 아는 것은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즉 대리인이다. 주인보다 대리인이 정보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주인에게 불리하고 대리인에게 유리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남에게 일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4시간 감시하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주인은 대리인이 자신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100% 확신할 수 없다. 대리인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아닌지, 심지어 대리인이 유능한지 여부마저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업무 파악, 지시, 평가 등에 있어서 대리인은 주인보다 늘 우위를 차지한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고용 관계, 업무상 계약 관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엄마가 심부름을 보내면 아이는 그 돈으로 과자를 사 먹고 싶어진다. 선거철만 되면 굽실거리는 정치인들은 투표 다음 날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다수의 선량한 사람은 양심에 따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리인 문제로 홍역을 앓는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온갖 사건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000억원,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액수의 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영진이 제대로 감시할 수 없거나 감시하지 않는 틈을 타, 대리인이 주인의 재산을 털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에 대리인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분명하다. 윗물이 썩었기 때문에 아랫물이 혼탁해진 것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벌인 일을 되짚어 보자.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 원전 산업을 누구 한 사람의 고집으로 발목 잡고 주저앉히더니, 멀쩡한 숲을 밀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도배했다. 우량 기업이던 한국전력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지방대가 문을 닫는 이 시점에 한전공대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마음껏 낭비하고 그 청구서를 주인에게 넘긴 채 떠나버리는 최악의 대리인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재개발 사업에서 건설 회사는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남기려 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사적 이익의 추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재명의 성남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공공 개발을 막고 영리 개발을 허용하며 그 이익을 소수가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성남 시민과 대장동 입주민들의 대리인이어야 할 이재명은, 화천대유 일당 중 한 사람인 변호사 남욱의 말을 빌리자면, ‘4천억원짜리 도둑질’의 현장에서 시장 직인을 찍어주고 있었다.
대리인 문제를 원천 봉쇄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행동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주인이 고삐를 다잡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서 대리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 주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 벌어졌을 때, 확실히 적발하고 따끔하게 혼을 내야 대리인 문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은 집사가 자기 재산으로 폭리를 취하는 대신 다른 이들에게 베풀기를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집사가 돈놀이를 하고 낭비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사람들이 진 큰 빚을 깎아준 것은 어여삐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의 주인인 예수는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향해, 물질적 손해를 보더라도 영혼의 풍요를 얻으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이재명은 대장동을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어떤 면에서건 심각한 주인-대리인 문제다. 실패한 정치인, 행정가로서 자숙하며 수사에 협조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대선에서 패배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기상천외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든 것은 물론이다. 현실의 대리인 문제는 성경 말씀처럼 선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방패 삼아 숨지 못하도록,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단호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