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30

외신 기자들은 무슨 신문을 볼까

주말 내내 집회에 참석해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다. 요즘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심해서 길고 차분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냥 아주 간단하게, 사실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CNN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보도한 기사를 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조중동 못지 않다'는 식의 불만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CNN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미국 매체여서가 아니다(뉴스코프 사장 루퍼트 머독은 호주 출신이다).

외신에서 다루는 한국 소식이 '조중동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 특파원들이 매일같이 중앙일보를 보기 때문이다. 이건 거의 논리적 필연에 가까울 정도로 확실하다. 외신 기자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을 구독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거기에 매일같이 Joongang Daily, 즉 영문판 중앙일보가 딸려온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렇다. 외신기자들의 아침은 중앙일보로 시작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그 내용을 지적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만큼, 같은 내용을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문판 중앙일보의 내용은 한국어판보다 훨씬 더 '쩐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렇게 번역을 하는 건지, 아니면 너무 잘 해서 미묘한 뉘앙스를 이상한 방향으로 살려내고야 마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사실이 그렇다.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들은, 한국어판 중앙일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Joongang Daily의 정기구독자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외신 보도에 대해 십중팔구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에서 영문판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파급력은 아무래도 Joongang Daily에 미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공정 보도'가 외신을 통해 나오는 것은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외신 기자가 맞았다더라', '외국인이 맞았다더라' 같은 유언비어에 휩쓸려, 타자의 시선을 힐끗거리는 일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2008-06-27

고립과 연대

1.

6월 25일, 경복궁역 1번 출구 패밀리마트 앞. 애초에 경복궁역에 모이는 것부터가 잘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경복궁역을 가로지르는 차도가 시위대를 양쪽으로 분산시켰다. 오후 8시경 도착한 나는, 패밀리마트가 있는 1번 출구에서 친구와 만났고 상황을 주시했다. 정말 좋지 않았다. 전경들은 인도까지 올라와있었다. '불법집회를 당장 해산하라'고 말은 하는데, 해산한 다음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청와대 방면에서 전경 중대 하나가 내려왔다. 스크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버텼다. 50여분 정도 그럭저럭 잘 해나간 것 같은데, 뒤쪽에서도 진압이 들어왔다.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사기가 떨어졌고 체력도 많이 소진되었다. 내 왼쪽에서 스크럼이 깨졌고, 전경들이 밀고 들어와 바로 내 옆에 있던 사람까지 연행해갔다. 손을 잡았지만 미끄러졌고, 나는 지하철역으로 돌아와 친구를 다시 만난 후 숨을 골랐다. 광화문으로 옮겨간 후 그날 3시까지 집회에 참여했다.

내가 대책회의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자기들이 '집행부' 노릇하고 싶어서 방송 틀고 노래에 춤에 덩실덩실 노는 것도 다 좋다. 하지만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사람들이 고립되도록 방치하는 것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고립으로 인한 공포심이야말로 시위대를 해산하고자 하는 경찰이 노리는 바로 그것이다.

경복궁에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는 목소리를, 교묘한 방식으로 묵살했다는 제보가 한 둘이 아니다. 현장에서 그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칼라TV 중계를 통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게다가 새벽 무렵, 서대문에서 전경들이 밀려들어오던 순간에도 그렇다. 투썸플레이스 방향으로 차를 몰고 왔으면 계속 거기서 버티거나, 방송을 끄고 조용히 광화문으로 도망갈 것이지, 계속 방송을 하면서 차를 빼니 시위대가 그것을 따라가게 되는 것 아닌가.

분통이 터져서 항의를 하러 동행인이 달려갔다. 그러자 방송차량 주변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던 '일반 시민'들이, 누구에게도 답변을 할 수 없도록 돌려가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더라. 하나같이 말로는 '나는 대책위는 아니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이는데, 대책위의 입장을 너무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방송차량에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살수에 맞으면 안 된다나? 누가 당신들더러 앞장서서 방송 해달랬나? 후퇴를 하더라도 시끄럽게 하지 말라 이거다. 꺼질거면 닥치고 꺼지라고. '님을 위한 행진곡' 틀면서 도망가면 후퇴가 전진으로 바뀌더냐?


2.

현재 가장 두려운 것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고립되고 있다는 불안감에 잠식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된다. 안전한 곳에 앉아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노래 틀면서 지휘부 행세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대책위로부터도, 고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에 빠져들면 진다. 비단 이 시위만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다. 국민들이 무기력에 빠져들어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으면, 선거에서 거의 다 이기고도 정권 탈환을 못 하는 수도 있다. 짐바브웨가 바로 지금 그렇다.

짐바브웨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뉴스위크 인터넷판이 24일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야당 후보가 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는 짐바브웨의 현지 르포를 실었다. 뉴스위크 기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기이한 ‘평온함’이었다.

로드 노드랜드 기자가 지하 조직을 통해 어렵사리 잠입한 곳은 짐바브웨 제2의 도시 블라와요. 실업률이 85%에 이른다는데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이나 거지가 없었다. 교통체증도 없고 거리도 깨끗했다.
"짐바브웨, 빵 한덩어리 사는데 3시간 ‘줄서기’"(경향신문, 2008년 6월 24일)


1차 투표에서 현직 대통령인 무가베를 앞섰지만 50%를 넘기지 못해 결선투표로 가게 된 짐바브웨에서, 무가베는 무자비하게 야당 지지자 및 지도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야당 후보가 네덜란드 대사관을 통해 피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민들은 의외로 대단히 평온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노드랜드가 본 짐바브웨 사람들의 주된 활동은 ‘줄서기’였다. 시내 빵집마다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쥐새끼를 때려잡자'는 사람들이, 아파트 값이 올라가는 것을 기대하며 주택청약 줄서기를 하고 있는 한국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나 거기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자기 손으로 벌어서 삶을 꾸리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오직 '줄서기'에 매달려있는 동안 정부는 제멋대로 정책을 펼쳐나간다. 그래놓고서는 다들 '나는 찍지 않았읍니다'라고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줄서기'를 그만 둬야 한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 스스로가 한 사람의 노동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자각하는 의식적 전환이 필요하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역설적 기반이 되고 있는 셈이다. 노드랜드 기자는 “무가베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보도가 6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무가베는 ‘짐바브웨는 붕괴되지 않는다’고 교만하게 말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무가베 말이 옳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5년째 10% 이하"라는 보도가 5년째 이어졌지만, 아무튼 대운하 공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면, 아프리카 플레이어를 끄고 아고라 띄워놓은 웹브라우저 창을 닫자. 광화문의 시민들은 현재, '일반 시민'들 속에 고립되어 있다.


3.

오늘은 경찰이 매우 이른 시각부터 진압에 나섰다고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지키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이 크다. 숫자가 적지 않아서 당장 집단 연행을 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시위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결국 우리는 다시 '연대'라는 해묵은 가치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금토일 사흘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더 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모두 거리에서 만납시다.

2008-06-24

크루그먼 칼럼 번역, 그 외 여러 가지

Bad Cow Disease


"메리는 작은 양을 길렀고/ 그 양이 아프다는 것을 봤을 때/ 그것을 패킹타운(Packingtown)으로 보냈고/ 그 위에는 닭고기 라벨이 붙었답니다."

이 짧은 동요는 업튼 싱클래어(Upton Sinclair)가 1906년 미국의 육류 포장업계의 실상을 폭로한 "정글(The Jungle)"의 내용을 탁월하게 요약하고 있다. 싱클래어의 고발은 테오도어 루즈벨트가 청정 음식 및 약물법(Pure Food and Drug Act)과 고기 검사법(Meat Inspection Act)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리하여 다음 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미국인들은 그들의 식품의 안전을 검사하는 정부를 믿었다.

최근, 그러나, 언제나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식품 안전 문제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상한 시금치, 독성을 띈 땅콩 버터, 그리고, 근래에는 살인 토마토의 공격까지 있었다. 미국 식품 규제의 신뢰도 감소는 심지어 대외 정책의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친 미국적인 수상(NYT의 실수. 6월 20일 내용을 수정하였음)이 2003년 광우병이 발견된 이후 금지했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겠다고 결정하자 그에 대한 대규모의 반발이 일어났다.

대체 어떻게 해서 미국은 "정글"로 돌아가게 되었을까?

그 문제는 이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의 하드 코어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도금시대(Gilded Age)를 오래도록 이상화하면서, 동시에 그 뒤를 이은 모든 시대를, 뉴딜 뿐 아니라 진보시대(Progress Era-대공황 극복기)마저도 진정한 자본주의의 길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여, 세금 반대론자인 그로버 노퀴스트(Grover Norquist)에게 그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미국이 "테디 루즈벨트, 그 사회주의자가 가져온 소득세, 사망세, 규제, 그 모든 것들"로부터 미국을 되돌려놓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고 밀턴 프리드먼(Milton Freidman)은 식품의약청을 없애자는 요청에 동의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불필요하다. 사기업들은 그들의 명성을 위협하는 공공 안전의 위험 유발을 회피할 것이며, 치명적인 집단 소송을 회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다른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프리드먼은 변호사를 자유 시장 경제의 수호자로 보았다.)

이러한 하드 코어 규제 반대론자들은 정치적 극단주의자들 중 일부일 뿐이었지만, 보수주의의 현대적 부흥 운동과 함께 그들은 권력의 통로로 들어왔다. 그들이 FDA를 없애거나 육류 검사 제도를 제거하는데 충분한 표를 얻은 적은 없지만, 그들은 식품 안전 보장을 무력하게 만드는 로비 집단을 만들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다.

그 로비 단체에는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만한 자원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그 작업 중 일부분이었다. 예컨대 과학의 발전과 세계화로 인해 FDA의 업무는 그 전에 비해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1994년에 비한다면, 그 로비 집단은 실질적으로 적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고 있는 구조일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었던 2003년, 농림부 장관은 앤 M. 비네만(Ann M. Veneman)이었는데, 그는 전직 식품 산업 로비스트였다. 그리고 위협을 체계적으로 축소하고 추가적인 검사 요청을 거부한 농림부의 대응은, 축산업계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놀라운 결정이 나왔다. 켄사스의 한 축산업자가 자신이 기르는 소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일본으로의 수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부시 정권이 이러한 자율 규제 사례를 쌍수 들어 환영했으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허가는 나지 않았다. 같은 요구를 소비자들이 하게 된다면 그 규제를 따라야 할 다른 육류 생산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압력이 높아지던 그 때, 패거리 자본주의 놀음은 자유 시장에 대한 신앙 고백의 가르침을 훈계하듯 설파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농림부는 검사를 확장했고, 그 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금지했던 나라들은 다시 시장을 개방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쇠고기 문제가 덜떨어진 외교관에 의해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국가적 자존심과도 연결되어버린 만큼, 그 불신 중 일부는 비이성적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비난하기란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축산업계에 대한 농림부의 엄호사격은 아군을 쏘는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잠재적인 외국 구매자들이 우리의 안전 기준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쇠고기 생산자들은 가장 중요한 대외 시장에 수 년간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부시 정부가 효율적인 규제를 위해 벌인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에 대한 일체의 규제를 제거해버린 정책이다. 이것은 과잉 대출보다 더 큰 부담을 금융업계에 전가시킴으로써 서브프라임 위기의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렇다. 효율적인 규제에 실패하는 것은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식품의 사례로 돌아와보면,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해외 시장을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테디 루즈벨트, 그 사회주의자 이후에 우리가 걸었던 길을 회복하는 것이다. 미국의 식품이 안전하다는 보증을 업계에 돌려줘야 할 때이다.
(폴 크루그먼, "Bad Cow Disease", The New York Times, 2008년 6월 13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갔다가 돌아온 지금, 우리가 6월 13일에 올라온 이 칼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자율규제'는 이미 한 번 실패한 바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켄사스의 한 축산업자가 자신이 기르는 소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일본으로의 수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허가는 나지 않았다. 같은 요구를 소비자들이 하게 된다면 그 규제를 따라야 할 다른 육류 생산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한국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한국에 수출되는 쇠고기를 위한 QSM은 모든 축산업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 도장을 찍어주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저런 짓을 하면 분명히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특히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음식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미비하므로, 소비자들은 가급적이면 자신이 먹는 식품이 안전하다고 보증되어 있기를 원하지, 그 반대를 바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QSM같은 새로운 '자율 규제'가 도입되면, 한국에 곱창을 수출하고자하는 축산업자들은 그러한 자율 규제를 따르고자 하겠지만, 위 경우처럼 다른 업자들의 반대와 맞닥뜨릴 공산이 크다. 정부의 추가협상안은 결국, 이미 한 번 실패한 사례를 반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문제는 이 칼럼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부분을 인용하여 정부의 추가협상안을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수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은 오직 "한국인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라는 한 구절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영어로 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을 거면 대체 뭐하러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난리를 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러한 '한 줄 인용'이 대단히 불편하다.

크루그먼의 이 칼럼은 기본적으로 '미국은 시장 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크루그먼, "한국인들 비난하기 어려워""라고 기사 제목을 따는 식의 저널리즘을 대체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 쇠고기 그 자체의 안전성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신뢰도'가 문제라는 논점을 제대로 잡아, 이쪽에서 먼저 의견을 펼쳐나갈 수 있는 그런 저널리즘은 눈 씻고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경향신문과 프레시안 정도가 쇠고기 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보도를 펼치고 있지만, '모든 규제는 악이다'라는 주문에 휩싸여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크루그먼과 같은 논지는 진작에 이쪽에서 먼저 나왔어야 한다.

미국 내에서 과도하게 규제를 풀어버림으로써 도리어 수출이 막히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 시장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특히 EU에 수출하고자 하는 미국 업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 마이에미 대학교의 경제학과 조교수인 Bill C의 설명이다. "The EU Is Watching Out for You"(Twenty-Cent Paradigms, 2008년 6월 14일)라는 포스트를 통해 그는 규제와 수출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정부의 효율적인 간섭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잠재적인 위험 수준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구매하는 물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완전하게 알고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EU의 소비자들이 뭐가 들어있는지 알 턱이 없는 미국 물건, 특히 화학 생산물을 구입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그 시장을 노리기 위해 미국인들은 '자율적으로' 품질 보증 등의 제도를 택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규모의 경제'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할 경우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규제에 맞추기 위해 온 산업이 안전 기준을 맞출 때보다 개별 생산자가 감당해야 하는 생산비가 높아진다는 데 있다. 즉, 품질은 똑같고 가격은 더 비싼 물건을 미국은 EU에 수출하게 되는 것이다. 팔릴 턱이 없다.

물론 한국의 쇠고기 가격은, 미국 내에서 생산비가 다소 높아진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하지만 '자율 규제'로 인한 비용은 결국 한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는 그로 인해 '값은 어중간하게 비싸지만 질이 좋은지는 딱히 알 수 없는' 이상한 물건이 되고 만다. 그럼 대체 왜, 한국의 영세 축산농가를 괴멸로 몰아가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정신이 없어서 번역은 엉망이고 글도 횡설수설인데, 그래도 내용을 정리해보자. 첫째,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이미 자율 규제를 시험해봤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실패했다. 둘째, 이런 중요한 정보를 한국 언론들은 거의 다루지도 않고 있다. 그저 "한국인들은 나쁘지 않아요"라는 말에만 주목하고 있을 따름이다. 셋째, 과도한 규제 완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문제이며 미국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대체 왜 한국 정부가 나서서 미국의 짐을 대신 떠맡아주는 것일까? '이면합의가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이쯤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이 문제는 단지 광우병과 식품 안전만에 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시 행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다이 하드 규제 완화가 논점이 되듯, 한국인들은 여기서 고기 타령 외의 논점을 더 끌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수준 문제가 일단 걸린다. 미국 내에서 이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전혀 추적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자율 규제'의 실패 사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법이라고 들고 온 협상단에도 문제가 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찾고, 미국산 쇠고기에서 출발한 이 문제의 끈을 다방면으로 이어갔으면 한다.

2008-06-23

7/30, The Desperate People's Vote

이명박이 '실용주의자'이긴 한가보다. 촛불시위가 50일이 넘어가도 묵묵부답이다.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유전을 파도 반응이 없긴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명박이라 하더라도 재보선 결과에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명박은 우리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에서 '실용주의자'인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닌 한, 그 무엇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물론 그의 '실용주의'는 자본주의의 법칙과 맞아떨어지지 않지만, 그것도 실용주의이긴 실용주의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대규모 파업이 뛰따라야 한다고 줄곧 말해왔다. 기업들에게 타격이 가지 않는 한 이명박은 절대 국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광고 압박 운동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대중운동화된 안티조선'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뿐이지만, 국민들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절망적인 현 상황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현 사태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영어 단어를 차용해야 한다. 'desperate'가 바로 그것이다. 'desperate'가 가지는 첫번째 뜻은 '절망적'이다. 전경들과 수십일 넘도록 대립하고 있는 것이, 극도로 제한된 효과밖에 가져올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 밤, 시민들은 모래주머니를 쌓고 전경 버스 위에 올라가 깃발을 흔들어 보았다. 밧줄 걸린 닭장차가 쑥 하고 딸려나올 때에는, 말 그대로 앓던 이가 빠지는 듯 속이 후련했다. 일요일 밤에는 진보신당측의 변호사 한 명이 전경들의 체포가 불법임을 밝혀내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에게는 씨도 안 먹힌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명박은 뒤틀린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는 한 촛불시위를 통해 표출되는 국민들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소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속해있지 않은 노동자들, 혹은 스스로에게 '일반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7월 총파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영 마땅찮게 느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표로 심판하고 싶지만, 선거가 너무 멀다.' 하지만 서울시민들을 위한, 아주 중요한 선거가 눈 앞에 있다. 7월 30일은 사상 최초로 서울시교육감 직선투표가 열리는 날이다.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의 모든 초등, 중등교육을 책임지는 직책이다. '교육 대통령'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시교육감이 집행하는 예산만 해도 총 6조원에 달하는데, 이것은 부산시 전체의 예산에 육박한다. 5만 5천여명의 교직원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정독도서관, 남산도서관 등 서울 시내 17개 시립도서관까지도 직속기관으로 두고 있다. 또한 교육감은 외국어 고등학교를 추가 설치할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교육감에게 0교시 수업을 철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실질적인 권한은 개별적인 학교장들이 가지고 있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육감은 학교장 인사권을 지니고 있다. 일부 소신있는 학교장이라면 교육감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고 0교시 수업을 밀어붙일 수 있겠지만, 공직사회의 특성을 염두에 둘 때 교육감이 바뀌면 적어도 서울시에서는 0교시 수업이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청소년들에게 아침잠을 돌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 모든 교육감의 법률적 권한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20조 (관장사무) 교육감은 교육·학예에 관한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1. 조례안의 작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
2. 예산안의 편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
3. 결산서의 작성 및 제출에 관한 사항
4. 교육규칙의 제정에 관한 사항
5. 학교, 그 밖의 교육기관의 설치·이전 및 폐지에 관한 사항
6.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
7. 과학·기술교육의 진흥에 관한 사항
8. 평생교육, 그 밖의 교육·학예진흥에 관한 사항
9. 학교체육·보건 및 학교환경정화에 관한 사항
10. 학생통학구역에 관한 사항
11. 교육·학예의 시설·설비 및 교구(敎具)에 관한 사항
12. 재산의 취득·처분에 관한 사항
13. 특별부과금·사용료·수수료·분담금 및 가입금에 관한 사항
14. 기채(起債)·차입금 또는 예산 외의 의무부담에 관한 사항
15. 기금의 설치·운용에 관한 사항
16. 소속 국가공무원 및 지방공무원의 인사관리에 관한 사항
17. 그 밖에 당해 시·도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항과 위임된 사항


이 역사적인 선거가 벌어지는 날이 바로 7월 30일이다. 수요일이고, 임시공휴일이 아니며, 따라서 투표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10%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2월 부산시교육청 교육감 선거 투표율은 15.3%에 불과했다고 한다. 즉 한나라당에서 밀어주는 후보의 조직표가 활약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교육감은 행정직이기 때문에 정당의 추천을 받거나 해서 나오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공정택 현 교육감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촛불 집회의 배후는 전교조"라는 발언을 한 바로 그 사람이다. 서울시의 교육 정책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던 것은 오직 이명박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그런 공정택 현 교육감은 이미 3월부터 "서울지역 전체 초·중·고교 학부모에게 ‘교육감 서한문’을 발송"하는 등, 사전선거운동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공정택이 아닌, 진보진영의 유일후보인 주경복 건국대학교 교수를 서울시교육감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실 나는 주경복 교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믿음직한 사람들이 그를 최초의 민선 서울시교육감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촛불의 방향에 대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도 했지만 사전선거운동의 험의를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에 발언을 자제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도 주경복 교수이다. 물론 전교조도 함께하고 있다(참고기사). 나는 그를 지지한다.

7월 30일 투표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부재자투표 등록을 한 후, 24일에서 25일까지 이틀간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한다(교육감 선거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여기). 부재자투표는 군인 뿐 아니라,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니만큼, 출근하였다가 잠시 투표하러 집에 다녀올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특히 요긴한 제도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미친 행보를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7월 30일에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부재자투표라도 하도록 하자.

'desperate'의 첫번째 뜻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필사적'이라는 의미도 숨어있다. 한국어로 1:1 번역이 되지 않는 이 단어는, 이명박 정부와 맞서고 있는 시민들의 현 국면을 너무도 잘 드러내준다. 우리는 절망적인만큼 필사적이다. 전경버스로 막히면 돌아갔고, 명박산성으로 막히면 그 위에 올라갔으며, 물대포에 맞아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신문지를 모아 불을 붙였다.

또한 이 시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라.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짜증나는 구호에, 그들은 '어른들이 무슨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고 맞받아친다. 그들이 꾸준히 출석하며 촛불시위의 동력이 되고 있다. 만 19세 넘은 성인들은 모두 그 청소년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이다. 그것은 동시에 이명박의 미친 교육정책에 결정적인 태클을 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필사적이다. 7월 30일에 이기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절망적인 상황을 똑바로 인식하고, 그 위에 필사적인 노력을 덧붙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희망을 쟁취해낼 수 있다.

2008-06-21

이것 저것

1. 대책회의의 행동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긴 하다. 하지만 '48시간 국민행동'을 제안해놓고는, 10시 30분에 시청 광장에서 "우리 내일 만나요"라며 해산해버리는 건 대체 무슨 발상인지 지금까지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어떤 아주머니가 커다란 쇼핑백에 싸들고 온 은박 돗자리가 민망해보일 지경이었다.

2. 최장집 교수의 고별강의에 다녀왔다. 한국의 현실정치에 대해 그가 보여주는 인식적 탁월함과, 그것을 담론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실천적 한계가 동시에 잘 드러난 강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필기한 내용을 정리해야겠다.

3. 이문열이 내놓는 정치적 발언들은 결국 책 팔아먹으려고 벌이는 노이즈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택광 선배의 지적은 상당히 적절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문열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효용 있는 일이 되지 못한다. 2008년의 촛불 혁명이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나는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새물결, 2006)를 읽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서평을 쓸지, 그것을 통해 이문열을 어떻게 비판할지에 대해 상당히 큰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헌 논의가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기사를 레디앙에서 발견하였다. "개헌? 초가삼간 태운다!"(윤현식, 레디앙, 2008년 6월 20일)의 논의 중 특히 중후반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문제의식 또한 나는 필자와 공유하고 있다.

5. 잠시 광고 말씀. 7월호 GQ가 나왔다. 최근 나온 GQ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에 대한 특집은 정말이지 눈이 번쩍 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자료 삼아 한 권 사야 한다. 박상륭 인터뷰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나이 많은 문학인을 이토록 멋지게 다루어준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GQ 7월호에 실린 박상륭은 흡사 변희봉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사진과 인터뷰가 실려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점에서.

2008-06-16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며 시위대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고 있던, 문제의 5월 31일 밤. 그런 시위가 있건 말건,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제18대 국회의 첫 번째 법안을 발의했다. 그 내용은 다름아닌 1가구 1주택 보유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면제였다. 시가가 1억이건 100억이건, 1가구 1주택이면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우리가 광화문 사거리를 뚫고 안국동으로 진격하고 있을 때 상정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며 광장에서 빈둥거리는 6월 2일 이후의 '촛불시위'와, 그러한 종류의 '참여'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네티즌들에게 내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6월 10일 100만 명이 모인 이후 한국의 쇠고기 문제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도 비로소 눈치챘고, 그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다양한 논자들이 여러 의견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위의 목적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탈당파들의 복당을 일부 수용하면서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당권을 잡고,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많이 죽었지만, 총리까지 된다면 그 결과는 실로 파멸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난 포스트에서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굳이 더러운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고 있거나 말거나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려 들 것이고, 사학법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며,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헌법 제119조 2항을 슬그머니 빼는 쪽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추상적인 구호만이 가득한 촛불시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 제1조 1항이 상징하고 있는 바는 매우 크다.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내려와보면, 대한민국의 경제 정의를 지켜온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자유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정하고 있는 동조 1항과 함께, 119조 전체를 우선 살펴보자.

제119조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당연한 말이 헌법에 써있느냐 마느냐가 낳는 차이는 매우 크다. 이번 촛불집회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주제를 통해 그 영향의 일부를 살펴보자. 흔히 '신문고시'라 불리는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부는 바로 저 119조 2항을 근거로 신문고시와 그에 따른 무가지 경품 배포가 합법임을 확인하였다(2002. 7. 18. 2001헌마605 전원재판부).

신문고시에 따르면 신문판매업자는 신문구독자가 내는 1년 구독료의 20%를 상회하는 무가지 혹은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신문고시는 그러한 행위를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1-7호) 제3조(무가지 및 경품류 제공의 제한)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제1항 제3호 전단에 규정하는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1. 신문발행업자가 신문판매업자에게 1개월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신문판매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2. 신문판매업자가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 경우는 구독기간이 1년 미만인 때에도 같다.

3. 신문발행업자가 직접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조중동 찌라시'들이 벌이는 패악 중 하나로 지목하는 바로 그 행위를 막는 것으로, 언론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에 신문 독자인 청구인 1과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는 청구인 2가 공동으로 신문고시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신문 독자는 신문고시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 반면 신분 배급자의 경우, 지금 내가 이 글에서 인용하지 않은 다른 청구이유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으므로 청구가 각하되었지만, 신문고시 3조 1항에 대해서는 심리에 들어갔다. 길고 긴 판결문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결국 헌법 제119조 2항의 사회적 자유경제국가 규정이다.

이 사건 조항은 신문판매업자가 거래상대방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무가지와 경품의 범위를 유료신문대금의 2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문판매업자의 사업활동의 자유와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이러한 행위제한은 무가지와 경품등의 과다한 살포를 통하여 경쟁상대 신문의 구독자들을 탈취하고자 하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상황을 완화시키고 신문판매ㆍ구독시장의 경쟁질서를 정상화하여 민주사회에서 신속ㆍ정확한 정보제공과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여야 하는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주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며, 나아가 무가지 살포와 경품 제공은 결국 신문의 구독강요에 흐를 위험이 큰 점을 고려할 때 일반 국민인 신문구독자가 내용상 자신이 선호하는 신문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억지하고자 하는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고시 내용에 의한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규제는 신문업에 있어서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적 규제로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며, 따라서 결국 이는 헌법 제119조 제1항을 포함한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조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이런 '독소 조항'이 헌법의 한켠에 버젓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7, 8, 9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789 노동자 대투쟁'이라 부르는 이 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질서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큰 힘이 실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사회적 자유경제질서하에 움직이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헌법의 규정이 그 자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노동자와 시민들의 경제적 권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이것은 심지어 홍준표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 "헌법 119조 2항은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시장을 전부 일대일의 대결구조로 만들어 버리면 대기업만 살아남는 시장구조가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도 살고 근로자 살고, 힘없는 사람도 사는 구조를 만들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헌법상 원칙이 있다"며 "그 원칙이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헌법 원칙에 의거해서 개입할 것은 개입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가 불법파업에 나서게 된 절박한 배경을 정부가 헤아려서 헌법원칙에 맞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요즘 철근 값이 인상되면서 건설업계, 중소기업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 문제도 결국 헌법 119조 2항에 따라 정부가 앞으로 약자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헌법, '사회적 시장경제' 천명 적극 개입해야"(뉴시스, 2008년 6월 15일)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만으로는 한나라당의 연이은 악법 제정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개헌을 통해 헌법 제119조 2항을 제거하는 일에도 속수무책이다. 구체적인 개정안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들이 모여있을 뿐인 그런 '대중'이 아닌,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 사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집단'들의 연합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무의미하다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 기득권층에게 줄 수 있는 위협의 정도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조중동의 광고를 며칠간 끊어놓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파업중인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그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현재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부산항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위의 공격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파업과 촛불시위는 작동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영향력도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수직선 위에 올려놓고 직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업이 자본가들의 목줄을 졸라 이명박 정권의 궁극적인 지지기반을 흔들리게 한다면,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양자가 서로 보완해나갈 때 우리는 이번 시위의 승리 가능성을 비로소 엿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파업하는 노동조합은 마린이고, 촛불시위하는 시민들은 메딕이다. 6월 10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박스 너머에 메딕만 다섯 부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물병을 던져야 한다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폭력시위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옹호하고 있다. 파업 또한 평화적인 시위의 일부분이다. 나 또한 파이어벳이 나오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굳이 한 번 더 강조한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자. 국회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어찌되었건 법치국가이다. 18대 국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말이지 마음 내키는대로 사회를 뜯어고칠 수 있다. 현재 야당들의 꼬락서니를 볼 때, 그러한 발걸음을 원내정치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므로 나는 2008년에, 1987년의 6월 항쟁만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789 노동자 대투쟁까지도 함께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촛불과 깃발이 함께 서야 거대여당과 재벌의 횡포로부터 중산층과 저소득층, 그리고 중소기업의 권리를 간신히 지켜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업무개시 명령이 떨어진 후에는 강제진압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촛불들에게 묻고 싶다. 5월 31일 밤, 안국동 골목에서 물대포에 맞서 싸우던 깃발 중 금속노조의 것을 기억하냐고. 보건의료노조 사람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말리던 그때를 잊지 않았느냐고. 현재 촛불정국의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아가씨들이 아저씨들을 지켜줘야 할 때인 것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촛불은 더욱 굵어져야 한다.

2008-06-15

'일반 시민'을 넘어서

집회를 축제처럼 즐기고 있다는 발상은 착각이다.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축제를 집회처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지나간 바와 같이, 축제의 탈을 쓴 집회가 아닌, 집회의 탈을 쓴 축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6월 10일 그 많은 인파가 모이고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군중들 속에서 진짜 '집회'를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KBS 앞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고, 그 광경을 목격한 몇몇 우익 단체들은 항의 집회를 연답시고 엉뚱하게 MBC에 찾아가 별 짓을 다 했는데, 그러자 대책회의의 차량과 집회 행렬이 길고 긴 행진을 하게 된 것이 13일의 금요일 밤에 벌어진 일의 전말이다.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선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행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추산으로 1만여명 이상의 대오를 유지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명박이 물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사람들도 탈진하지 않고 있다. 기나긴 고난의 행군은 시위가 지나치게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을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편하게 투덜거리던 사람들은 중간에 집에 간다. 여의도에 도착하고 나니 '구호빨'이 예전에 비해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축제를 즐기고자 모인 사람들은 반면, 끈덕지게 광화문을 사수하며 적은 인원으로 효율성 있게 놀고 있다. 역시 13일의 금요일 밤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남아있는 깃발은 오직 10대 연합에서 가져온 것 뿐이었는데, 내가 학부 다닐 때 '문선'이라 부르던 그것을 하며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이 분열은 매우 긍정적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부산항이 마비될 지경이다. 화물연대가 부산항을 봉쇄하고 있지 않다 뿐이지 사실상 그 기능은 멈췄다고 봐야 한다. '생계형 파업'이라는 말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고 사는 문제'라는 말이 정치적인 긍정성을 띌 수 있게 해준다. 동시에 화물연대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한 정치적인 반대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예전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럭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몇 개 국가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 기억나지는 않고, 사진을 저장해 둔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물류가 멈춰버린 결과 슈퍼마켓의 진열장들이 아래 사진처럼 되어버리고 말있다.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 레몬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과연 한국의 '일반 시민'들도, 이명박이 순순히 말을 들을리는 거의 없으므로 물류대란의 여파가 자신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시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런 파업을 긍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유가 파고 속에서 꽁치가 풍작인 터라 어민들이 울상이라는 기사가 현재 네이버 메인화면에 떠있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유럽의 어부들은 EU를 상대로 가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세부적인 차원으로 내려가면 차이가 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경제 위기는 닥쳐오고 있고, 한국의 정치 세력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명박산성을 재축조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찰이 광화문의 봉쇄를 터줄 가능성은 그야말로 0이다. 이명박이 시민들의 말을 곱게 들어줄 턱이 없다.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아침 곱게 회사에 출근하는 '일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게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자신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사실로부터 큰 충격을 받겠지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집회가 다양한 방면으로 분열되는 것과 동시에, '일반 시민'과는 다른 사람들이 자꾸 끼어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종종 눈에 띈다. 어느 '진보 매체'에서 촛불시위의 초창기에 참여자를 묘사하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청바지에 티셔츠, 굽 높은 구두에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크로스백을 매고 있는 사람들'. '일반 시민'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이는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표준어 규정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규정은 '서울말'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역 토착어를 소외시키킨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양'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계급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가 마찬가지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차마 그런 말까지 하지 못하지만, 익명으로 찌질거리는 일에 익숙한 일련의 '네티즌'들은, 평화로웠던 촛불집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되게 된 원인을 노숙자와 노가다꾼들의 가세에서 찾곤 한다. 농담이 아니다. 이 기사에 달린 썩어나는 리플들을 보라. 물론 나도 술냄새 펄펄 풍기는 아저씨들이 꽥꽥 소리지르는 것이 아주 못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반응은 그런 즉각적인 쾌와 불쾌의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다. '알바'를 성토하는 것들을 일단 빼보자. 그러면 의견의 8할은 '사진을 봐라, 20대가 주범이다'이고, 나머지 2할이 노숙자 욕인데, 후자가 직설적으로 노숙자를 '시민'의 범주에서 몰아내고 있다면 전자는 다소 교묘한 방식으로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후자가 사회 하층민에 대한 정치적 배제에서 멈추는데 반해, 전자는 그들의 존재를 아예 인식론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인식론적 차단이 적용되는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조선일보 등에 광고가 안 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기뻐하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인해 이명박이 화주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그들 또한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팽팽하게 고조되어 있는 반 정부 시위대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경찰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히 칸트의 도덕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칭찬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므로 촛불시위대는 '일반 시민'의 벽을 넘어 노동조합과 적극적인 연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그 벽을 넘어서는 일은, 촛불시위의 물결 속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이 단순히 여러 단체에서 나누어주는 피켓을 수동적으로 받아드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있나 읽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실 연대의 손길을 먼저 내밀고 있는 쪽은 그 잘나신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6월 7일 신촌 로터리에서 연세대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와 내 친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하였다.


(노점상을 밝히고 있는, 소주병에 꽂힌 촛불)



(포장마차의 윗부분에 붙어있던 안내문)


서울서부지역 노점상 연합은 6월 7일부터 10일까지, 밤 8시에서 9시에 걸쳐 전등을 소등하고 대신 촛불을 켜놓는 것으로 촛불시위에 대한 연대의 뜻을 밝혔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일반 시민'들은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다. 이것은 폭력과 비폭력 이전의 문제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염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혹은 대학생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며,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에 이 촛불시위를 그토록 가둬놓아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이 촛불시위에 승리하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계급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과 기꺼이 연대할 수 있는, 시민적 교양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연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나는 아직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조합의 홍보물을 함께 나누어주는 것 정도가 지금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이다. 중요한 것은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며, 따라서 노동자이다. 더 많은 '일반 시민'들이 벽을 넘어 노동자가 되는 날, 승리는 한 걸음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볼이 터져라 오뎅을 먹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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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6월 10일,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 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 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일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를 막아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p.s. 폭력에 맞서는 적극적인 비폭력과 무저항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노찾사의 "그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모진 탄압을 당하고 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복수심에 젖어있지도 않다. 묵묵히 참고 또 참지만 결코 복종하지 않는, 진짜 비폭력이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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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노찾사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시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가 막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8-06-09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함

가디언을 매일 훑어보긴 하지만, 많은 기사를 정독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사설의 한 코너만은 꼼꼼하게 읽는다. 'In praise of ...'라는 형식으로 반복되는, 무언가에 대한 찬미를 담은 코너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매체는, 매일 어떤 대상을 꼽아 그것을 간략하게 살피고 찬미한다. 이런 여유와 너그러운 긍정이 우리의 진보 진영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토마토 기르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잠깐 여유가 생겨서 번역해보았다. 오역이 발견되면 주저 없이 지적해주시길.

토마토 기르기를 찬미하며


유월은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를 낳았다. 그것은 모든 원예가들에게, 특히 토마토가 익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누구든 그것을 집에서 키울 수 있다. 창문 하나만 있어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가장 숙달된 전문가라 하더라도 빛나는 태양을 필요로 한다. 그럴 때, 매우 환상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집에서 기른 토마토는 슈퍼마켓의 차디찬 보관함에 놓여 있는 딱딱하고 향기 없는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것들을 먹으면 때로 시큼한 플라스틱 조각을 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꼭지가 남아있는 채 팔리는, 가장 비싼 것들이라 하더라도, 내용보다 겉보기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정원에서, 혹은 재배 봉투(grow bag: 과일을 익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플라스틱 봉투 "채소를 기를 때 화분 대신 사용이 가능한 흙과 비료를 채운 플라스틱 포대" - 참고 링크)에서 갓 나온 신선한 토마토는 과즙과 향이 꽉 찬 전혀 다른 종류의 작물이다.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렇다. 토마토는 익기 위해 하루 8시간 햇살을 쬐어야 하는 아열대 작물이기 때문에, 성공은 날씨 운이 얼마나 좋으냐에 달려있다. 작년 여름처럼 비가 쏟아지는 것은 재앙의 주문이다. 지금은 묘종을 직접 기를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사람들, 혹은 다른 곳에서 작물을 사온 사람들이 묘종을 바깥에 심어야 할 시기이다. 묘종들은 물, 부드러운 흙, 그것을 지탱해줄 부목을 필요로 한다. 차가운 기후를 제외한다면 가장 큰 적은 토마토 블라이트(tomato blight: 토마토가 걸리는 병)인데, 그것에 대응하는 방법은 원예가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또 다른 딜레마는 어떤 종을 고를까 하는 것이다. 통통하거나, 작거나, 빨갛거나, 노랗거나, 잡종이거나 순종이거나. 한 마디 덧붙이자면, 가디언의 가정 원예 연재에서는 선골드(Sungold)를 추천한 바 있다. 7월 말이면 첫 수확이 준비되어야 한다. 태양이 계속 빛나준다면, 그럴 것이다.
'In praise of ... growing tomato', The Guardian, 2008년 6월 9일

확성기를 끄고, 구호를 외치자

* 프레시안 [촛불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몇 개의 글이 업데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이 올라오고 있지 않네요. 어조와 노선이 프레시안과 맞지 않아 선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가급적 6월 10일 이전에 공표되어야 하므로, 원칙을 잠시 접어두고 먼저 블로그에 올립니다.

* 프레시안에 기사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확성기를 끄자! 구호를 되찾자!"(프레시안, 2008년 6월 9일 오후 12시 04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현재 촛불시위대는 6월 1일까지 가지고 있던 자발적인 역능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이다. 안국동의 좁은 골목에서 목이 터져라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며, 모두가 모두의 동료였던 그런 촛불시위는 현재 광화문에 없다. 경찰은 6월 2일을 기점으로, 서울 시내의 치안을 전부 포기한 채 오직 청와대만 방어하는 것을 골조로 하는 무대응 전략을 꺼내들었다. 동시에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6월 5일 밤부터 8일 저녁까지 이어지는 '72시간 시위'를 기획했다. 전자에 의해 여태까지 마법처럼 먹혀 들어가던 '막히면 돌아가는 전략'은 소용없게 되었다. 한편 후자에 의해,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의사를 표현하는 역량을 잃어버린 채, 한낱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우리는 '폭력시위로 변질된 촛불시위'라는 착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경찰의 전략에 대해 먼저 말해보자. 경찰은 현재 대한민국의 치안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국군 통수권자가 거주하는 특정한 건물 하나를 지키는 것이, 서울 시내에 집결한 150여개 전경 중대의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심지어 교통경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6월 8일, 급기야 경찰은 종로 일대의 교통 통제도 해주지 않음으로써 촛불시위대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을 증대시키는 전략까지 택하고 있다. 이것은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버티고 넘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의 말마따나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속셈인 것이다. 독립문에서 인사동까지, 청와대로 통할 수 있는 모든 길을 전경들이 봉쇄하고 있다. 전경들은 버스 안에 가득 탄 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힘겹게 봉쇄망이 약한 곳을 '뚫어'보면, 그 뒤에는 더 많은 수의 전경들이 새카맣게 진열해 있다. 시민들이 청와대를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경찰을 앞세워 시민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다.

대책회의의 72시간 집회 진행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자발적인 구호가 울려퍼지던 거리에 고출력 확성차를 끌고 나왔다. 예전에 거리시위를 지휘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철수했던 봉고차 수준이 아니다. 대형 트럭에 무지막지한 방송 장비를 때려박아 나왔고, 그 스피커를 통해 '광야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의 민중가요를 틀어댔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인상적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테이프에나 어울릴법한 쿵작쿵작 박자에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얹혀진 그런 노래가 울려퍼졌다. 사회자는 자꾸 사람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려 들고, '... 입니다 그렇지않습니까여러분~!' 같은 말투로 동의를 구하는 데 급급했다. 자유발언이 있긴 했지만 내용은 늘 듣던 그것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미친소 너나먹어',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등 두 주가 넘도록 질리도록 외쳐온 그 말들이 늘어난 테이프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 수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기는 커녕, 확성차의 엄청난 출력에 짓눌려 '무대'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6월 5일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청와대로 가는 길이 철저히 봉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위대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 뿐 아니라, 종로의 복잡한 뒷골목에도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서 돌파하고자 하는 시도가 현충일 밤에 수 차례 있었다. 새문안교회 뒷골목에서 벌어진 충돌이 가장 격렬했다.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도리어 위험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던 것은 경찰 측이었다. 그들은 지하 주차장 옆 좁은 진입로에 백여 명 이상의 전경들을 무리하게 배치함으로써, 새벽 2시경 십여 명의 전경들이 0.5미터 정도 추락하도록 방치하기까지 했다. 시민들은 지휘관에게 안전을 위해 전경들을 일부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경찰측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경들이 대규모 항명을 한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들만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경들의 기본권마저도 내팽개치고 있다.

현충일의 밤, 소수의 사람들이 새문안교회 등의 루트를 통해 청와대로 가는 길을 내고자 고분분투하고 있을 때, 대다수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앉아 야식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집회 문화가 지나치게 투쟁적이었고 엄숙했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한다. 하지만 서울을 통째로 내주고 청와대만 지키면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작정한 이명박이, 광화문 광장에서 '소풍'중인 국민들을 과연 두려워하긴 할까? 청와대에 불을 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명박에게 돌을 던지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앞에서, 가장 잘 들릴 수 있는 곳에서 구호를 외치겠다는 것인데 전경들은 차벽을 쌓고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저 구경꾼으로 변해버린 '일반 시민'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보겠다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 투사'의 판타지에 젖어있는 시민들은 제발 꿈을 깨기 바란다. 5월 31일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 문제적인 시각, 모든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구호를 외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고 누가 누구의 명령을 듣는 것도 없었다. 닭장차 위에 올라가 물대포를 맞던 청년이 전경에게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물병이 하늘을 갈랐다. 연행자가 발생하는 즉시 골목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외쳤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시민들도 분노했다. 5월 31일, 우리가 비폭력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닭장차를 흔들고 밧줄을 걸어 당기고 이쪽 진영으로 떨어진 전경을 향해 험상궂은 표정으로 막말을 내뱉었다. 유리창을 깨고 철창을 뜯어내지 않은 것은, 이 정도만 해도 이명박이 시민들의 분노를 알아줄 것이라는 최소한의 희망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우석훈 박사의 표현처럼 이명박은 "귓구멍에 공구리를 쳤"고, 청와대의 문을 꽁꽁 닫아놓은 채 그 안에서 공기업에 투하할 낙하산 인사의 명단이나 고르고 앉아있다. 이 상황에서 절망을 느끼지 않는 '시민'들을 보며 나는 절망을 느낀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가 이렇게 저조하게 된 데에는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이 큰 역할을 했다. 대책회의는 청계천의 '촛불문화제'에서 진행하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노래를 틀고 구호를 '발사'하며 광화문에 자리잡았다. 문제는 그곳이 바로 전경과 대치하는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동화면세점 앞에 모여 전경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당한 채 표현의 자유를 물리적으로 차단당하던, 하지만 한 사람씩 해산하여 포위망에서 빠져나간 후 가두 행진을 시작한 최초의 '촛불 시위대'는, 자발적인 구호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 결속을 다져나갔다.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의료진!' '의료진!'을 연호했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6월 7일 밤,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전경들이 소화기를 뿌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눈에 분말이 들어가 의료진이 필요한 상황이 닥쳐왔다. 시위대는 늘 하던 방식대로 '의료진'을 연호했다. 하지만 그 구호는 후방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대책회의의 확성차량에서는 쿵짝쿵짝 신나는 박자와 함께 어린이들이 부르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나는 순간 어지러웠고, 구토를 하고 싶었다. 부조리극의 한가운데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확성차량이 있던 장소는 전방에 가까웠는데, 갑자기 해설자가 마이크를 집더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멘트를 날렸다. '현재 분말로 인해 방송 장비에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차량을 후진시켜야 하니 시민 여러분은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잠시 전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후진 기어를 넣고 맹렬하게 후방을 향해 달려갔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님을 위한 행진곡'이 광화문을 더욱 부조리한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확성차량 주변의 사람들은 그 노래를 따라부르며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현장을 관람하고 있었다. 전방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촛불시위의 초기, 진중권 교수는 '카메라들의 전쟁입니다'라는 말로 시민들과 경찰들의 상호 채증 전쟁을 묘사했다. 두어 주가 흐른 지금, 거리에는 시위대가 없고 오직 카메라만이 있다. 삶의 문제를 구호로 외치는 사람들 대신, 누군가가 두들겨 맞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그 자리에 온 것만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맥주에 닭꼬치를 먹다가 달려나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절망과 피로에서 한 발 벗어나기 위해 소화기 분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으로 향하는 세종로 큰길 위에 오마이뉴스에서 대절해온 방송 중계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고작 100미터 앞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을, '일반 시민'들은 마치 월드컵 중계라도 되는 양 길거리에 앉아서, 역시 관람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말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이들에게, '일반 시민'들은 역시 또 하나의 구경꾼들에 불과하다. 저 멀리 기타 반주에 맞춰 '광야에서'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고작 100미터도 전진하지 않는 이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광경을 보며 나는 속이 부대꼈다. 시위대 속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무런 구호도 외치지 않던 이들이, 누군가가 전경을 향해 물병을 던지거나 깃대를 휘두를 때에만 '비폭력'을 연호한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폭력 사태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궁금해졌다. 동행한 친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간신히 시청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더 버틸 힘이 없었다.

닭장차의 유리를 깨고 창틀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블로그를 차리고 있거나, 포털 사이트에서 글을 쓰는 네티즌들은 그 광경 속에서 프락치를 보고 일반 시민이 아닌 '과격 운동권'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6월 7일 안국동 진입 차도 앞에서, 과격한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과 그들을 말리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을 들었다. "이건 그저 광장에 모여서,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집단으로 자위하는 것밖에 더 돼요?" "그래도 경찰 차량을 파손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잖아요." "지금 우리가 정당성 따지게 생겼어요?" 잔뜩 격양되어 있던 그 여성은, 동료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박자가 잘 맞지 않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촛불시위대가 아니다. 우리는 생존권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경찰차를 뜯어내는 이들이 프락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들을, 음지에서 매도하기보다는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나는 짐작한다. 과격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은, 뒤에 앉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더욱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격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책회의는 마이크를 빌려줘야 한다고. 당장 청와대로 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에 과격해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발언을 다른 이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6월 7일 그날 밤, 음악은 쉴새없이 흘러나왔고, 사회자는 전경들을 향해 '5초간 함성'을 '발사'하자고 외쳐댔다. 확성기 차량으로 달려갔다. 지금 구호가 전달이 안 되고 있지 않냐고, 음악을 꺼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구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전경 버스를 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퍼졌다. 폭력 시위가 탄생하던 밤의 풍경이다.

6월 7일 이후 인터넷 여론이 흔들리는 듯하다. 심지어 광장에 나오지도 않는 인터넷 룸펜들이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시시덕거리기에 바쁘고, 네티즌 수사대는 버스 위에서 전경을 때리던 사람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반응은 이명박과 경찰이 바라던 바로 그것이다. 시민들끼리 서로 불화하고, 네가 폭력이네 내가 비폭력이네 옥신각신하며 최초의 목표를 상실하는 것. 만약 여기서 이명박 정권의 '틀어박히기' 전략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순수한 한나라당 의석만 해도 과반에서 딱 한 석이 모자라는 18대 국회와 맞물려, 그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온갖 '국책사업'을 벌이고 다닐 것이다. 대운하? 당연히 시행된다. 0교시 수업? 폐지될 리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값싸게 먹을 수나 있게 될까.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이 시위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대책회의에 세 가지를 요구하고 싶다.

첫째. 노래 틀지 말자. 민중가요는 민중이 함께 부를 때 그 의미가 살아나는 노래이다. 지금처럼 확성기를 통해 찌렁찌렁 울려퍼지는 민중가요는, 참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아닌, 그저 구경하는 '일반 시민'만을 양산할 뿐이다.

둘째. 발언대를 개방하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자유 발언의 기회를 주자. 특히 촛불시위의 초기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다종다양한 청소년 모임과 대학생 단체 등을 무대로 불러서, '미국산 쇠고기 싫어!'를 넘어서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대학생들은 살인적인 등록금을 논하고, 비정규직은 파견근로자로서의 설움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광화문 광장이 진짜 광장이 된다.

셋째. 폭력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연단에 세워보자. 만약 그들이 프락치라면 그들은 그 무대에 서지도 못할 것이다. 반면 그들이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라면, 광장에 모인 이들은 바로 그런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일 것이다.

또한 시민 여러분께 간곡하게 호소한다. 이미 카메라는 충분하다. 함께 구호를 외쳐달라. 숫자는 예전의 두 배가 넘는데, 목소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이대로 가면 이길 수가 없다. 구호를 외치자.

5월 31일, 아니 6월 1일 새벽 4시, 옷을 다 말린 나는 친구와 함께 안국동에서 종로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내려오고 있었고 전경들은 올라가고 있었다. 진압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진압이 진행되는 모습을 나는 집에서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로 지켜봐야만 했다. 함께 구호를 외치며 싸우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기 때문에 계속 광장에 섰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이제는 시민들이 다른 시민을 믿지 않는다. 다른 시민이 외치는 구호를 받아 함께 목소리를 드높이는 대신, 그저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찍고만 있다. 그 절망으로 인해 이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사온 비옷이 안국동 돌담길 옆에서 제비처럼 날아다니던 그 순간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그런 기억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감상주의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많은 시민들도, 아직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정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2008-06-05

2008 촛불시위, 승리의 조건

촛불집회는 진작에 쇠고기에 대한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변화하였고, 이명박 정권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확해지면서, 이 판에서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번져가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절대 지면 안 된다'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다의적인 측면이다. 그 말은 결국 이기거나 비겨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 사회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거둘 수 있는 승리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이명박 정부가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광장에 서지도 않았을 사람들이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후, 여론의 동향을 관찰하다가 미국산 수입육이 냉동되어 있는 창고에 가서 육회 한 접시 비벼먹으면서 기자회견을 했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이 되고 싶었던 남자 이명박은, 정주영의 쇼맨쉽도 못 배웠고 그가 가지고 있던 선천적인 능력과 사람 다루는 기술 또한 전수받지 못했다. 나는 그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는 소원대로 현대가의 일원이 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명박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예측이 적지 않다. 우석훈 박사는 6월 10일에 100만 명이 모이면 한나라당이 돌아설 것이고 이명박은 하야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예측한다. 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이명박의 정치 생명이 거의 끝났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후 발생할 정치 권력이 어떻게 분점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이합집산, 혹은 이권다툼, 좀 더 심하게는 이전투구 등으로 묘사하지만 그것은 정치 행위 자체를 더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속편한 사고방식의 발로일 뿐이다. 정치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정치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우리 앞에 있다.

돌아가는 판세를 보자. 이명박이 하야를 강요당한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자가 바로 복당 박근혜 여사라는 것을 부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것은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더 나쁘다. 복당 박근혜 여사의 당내 장악력은 이명박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고, 친박연대를 포함한 범 한나라당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육박한다. 늑대를 쫓아내고 범에게 물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현재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원내 장악에 실패했다는 것인데, 박근혜는 다르다. 나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앉아있는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개헌 따위 절대 살아서 보고 싶지 않다.

너무 비관적인 예측인 것 같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시민'들의 정서는 아직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밤마다 시위 현장을 지키며 호민관 역할을 자처하는 그들이다. 노회찬과 조승수는 지난주 목요일 밤 광화문 사거리 교보문고 앞에서, 전경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던 십수명의 시민들을 구출해냈다. 구출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들은 연좌 시위를 통해 전경의 포위망을 뚫었고, 갇혀있던 시민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특히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중도' 매체들은 오직 시민들의 역동성과 자발성만을 찬양하기에 바쁘다. 진작에 노회찬 심상정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회사원 강유원 박사는 "이번 일로 손, 심, 노는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피식 비웃음을 날린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런 식이다.

나쁜 소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미 FTA를 무리하게 체결해서 결국 일을 이모양 이꼴로 몰아가는 기본 세팅은 참여정부 당시 이미 다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에 대한 반감을 노무현에 대한 호감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쇠고기 수입 재개는 한미 FTA의 '4대 선결 조건'중 하나이며, 따라서 쇠고기 수입에는 반대하지만 FTA에는 찬성한다는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한미 FTA를 추진한 장본인이 바로 노무현이다. 임종인 전 의원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당내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충분히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민주적 논의 과정이 있었다면 정당인으로서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 헌법재판소에 제소한 국회의원 13명에 대해 우리 당에서 경고라는 징계를 했어요. 당에서 충분한 논의도 안했는데. 이라크 파병·대연정·비정규직법 때도 그랬습니다. 미리 의원들에게 이야기를 했어야죠.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문제 등은 나로선 양보하기 어려운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부분은 양보하기 어려워요.”
“쇠고기정국은 개발독재식 정치 심판 과정”(경향신문, 2008년 6월 5일), 강조는 인용자


그 장본인인 노무현의 영상을 보며 일군의 네티즌, 혹은 '시민'들은 집단 자위를 하고 있고, 견인합성체 유시민과 이해찬은 신당을 만들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는데, 손학규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민주당 당권파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흡수하거나 저지할만한 정치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박근혜가 어찌어찌 보궐대선의 승자가 되고, 왕년의 '개혁세력'들이 돌아와 야당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다시 정치적인 입지를 찾는다고 쳐보자. 이것은 말 그대로 'Again 1987'이다. 87년 혁명의 열기 뿐 아니라, 야당 세력이 분열하면서 기껏 직선제 개헌을 한 후 다시 노태우에게 정권을 내어준 민망한 역사마저도 다시 한 번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가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촛불시위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이번 시위가 촉발된 기본적인 이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실 이번 사건이 터지게 된 동기는, 외신 기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황당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BBC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식용으로 도축되는 소의 18%가 30개월령 이상이며, 따라서 미국인들이 먹지 않는 30개월령 이상의 소와 그 부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미국 축산업계가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한다. 광우병의 위험을 아직까지도 집회의 주된 동기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축산업계가 통계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런 식의 논의는 한국 사회의 담론 수준을 진전시키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 사태의 본질은 외교부가 농림부의 입장마저 도외시한 채 한미 FTA의 타결을 위해 '퍼주기 협상'을 했다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자매 주간지인 뉴스메이커는 "쇠고기 협상 주무부서는 외교부였다"(뉴스메이커, 2008년 6월 5일)고 폭로했다. 기사를 살펴보자.

외교통상부는 1월 4일 인수위 보고자료 10쪽에서 '가. 한·미 FTA 비준/ 쇠고기 문제'라는 항목으로 '향후 조치 계획'을 보고했다. 여기에서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국제 기준에 따라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라고 전제한 뒤 '미측의 한·미 FTA 비준을 촉진하기 위해 쇠고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되, 이를 한·미 FTA 이행 법안의 미 의회 제출과 연계되도록 추진'이라고 보고했다. . .

농림부가 사료 금지 조치와 FTA 비준의 시기를 연관시켜 언급했다면, 외교부는 단지 쇠고기 문제와 FTA 비준의 관계를 보고했다. 농림부의 인수위 보고서에서는 향후 추진계획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개정은 한·미 FTA와 연계시키지 않고 국민의 식품 안전 확보 차원에서 검토'라고 나타나 있다. 여기에 괄호 표시를 한 후 '그동안의 일관된 한국 측 입장'이라 명시해 놓았다. 농림부의 보고서가 쇠고기 협상이 FTA 비준뿐 아니라 국민건강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 달리, 외교부 보고서에서는 국민 건강이라는 선결 조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 .

쇠고기 협상은 결국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 없이 대부분 미국 측의 요구 사항 그대로 이뤄졌다. 어느 부처의 주장이 협상과정에서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FTA 청문회 위원이었던 김종률 의원(통합민주당)은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외교부가 실질적으로 협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서울대 음대생이 전경의 군화발에 짓밟힌 사건의 근원적인 책임은 노무현에게 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단행하신 정부 구조 개편으로 인해 외교부에 지나친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것, 더군다나 청와대 정책비서관이었던 정태인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에 한미 FTA가 추진되고 있었다는 것, 그 모든 일이 외교부 내의 극소수 'FTA 마피아'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는 것 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에서 카트라이더 놀음에 빠져있는 지금도, 그가 저질러놓은 일들의 영향은 살아있고 그에 따라 지금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줄곧 '광우병 무서워'만 외치는데, 논의의 수준이 그 모양이니까 (내가 지난 포스트에서 논한 바와 같이) 외신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건 국제적으로 보면 한 편의 거대한 헛소동이다.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를 밀접하게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그렇다.

한국인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번 시위가 단지 고기 타령으로 멈춰서는 안 된다. 68혁명도 시작은 교육 문제에 대한 지엽적인 시위에 불과했다. 우리는 이명박 탄핵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까지 파고들어야만 한다.

현 정국의 승리조건을 기존 정당정치의 구조 내에서만 찾으려고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들 잊고 있을까봐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범 한나라당계 의석이 전체 국회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고, 현재 가장 유력한 보궐대선 주자는 바로 그 정당의 배후 보스이다. 이명박을 권좌에서 몰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핵심이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 실질적 민주화의 진전을 위하여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어느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7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이 노동 3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시간당 2500원밖에 못 받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제 값의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삼성전자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다면, 이명박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긴 것이다. 87년 투쟁을 통해 제도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었다면, 2008년 투쟁에서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시위를 통해 87년 이후 최초의 '정치 파업'을 기획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결단을 지지한다. 그것은 그들이 조합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동시에 뜻하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에서 보도하는 바와 같이, "이번 총파업의 요구 사항은 쇠고기 저지 외에도 대운하 반대, 물가 인하, 한미 FTA 반대, 공기업 민영화 저지 등의 전사회적 이슈"인 것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를 외치는 어머니들의 그것과 다른 층위를 구성한다. 비록 지금은 한미 쇠고기 협상 무효화를 핵심 요구로 내세우고 있지만, 나는 민주노총이 그것을 슬그머니 뒤로 미루어두고 범 사회적인 이슈에 집중할 것을 기대한다. 동시에 이랜드 노동조합, 그 외 다양한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하며, 저소득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 또한 쇠고기를 넘어 비정규직 고용 안정화 등을 외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김이태 박사의 희생을 헛되이해서는 안된다. 대운하 건설에 대한 그의 양심선언은 이 촛불시위가 비단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에 멈춰서는 안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존 정치의 틀만 놓고 본다면 현 정국의 전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이 바라는 바도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최장집이 오래 전부터 지적해오는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가 무엇인지 숙고해보자. 답은 간단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착취의 고리를 깨야 한다. 광장으로 뛰쳐나가 이명박을 몰아내고 노무현을 재옹립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노무현도 삼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개 정치인일 뿐이다.

특검의 수사 결과를 보며 가슴을 쳤던 당신이라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삼성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삼성 노동조합 뿐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권력을 시장에 넘긴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시위에서 연이어 외쳐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진정으로 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도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을 몰아내고 쥐새끼를 때려잡고 어청수를 쫓아내고 다 좋다. 하지만 그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 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군사 독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 서고 촛불을 켜고 물대포를 맞고 있다. 2008 촛불시위, 승리의 조건은 삼성 노동조합이다. 승리의 조건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승리의 조건은 민영화 저지이며, 승리의 조건은 졸속 체결된 한미 FTA 협상 전면 재검토이다.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나는 광화문으로 향한다.

200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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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비가 많이 오니까, 잉크가 다 마른 다음 제본에 들어간다는 정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물론 복당 박근혜 여사에게 급히 연락을 넣어 시급한 민생 현안, 즉 복당을 놓고 정치적 거래를 하고자 하겠지만, 뜻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고시를 철회한다고 했을 때 과연 그 결정이 대중들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석방되지 않은 연행자들이 남아있고 경찰에 의한 폭력 진압 문제가 그대로이긴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나오던 어머니들은 동력을 잃을 것 같다. 이명박이 고시를 철회한다고 주장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한국 사회 시민들의 수준을 가르는 척도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