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9

[아무튼, 주말] 韓美 정상회담을 中에 보고하라? 그들을 '사대주의자'라 부른다

 

[아무튼, 주말] 韓美 정상회담을 中에 보고하라? 그들을 '사대주의자'라 부른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입력 2021. 05. 29. 03:01

기사 도구 모음

[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남한산성'으로 본
한·미·중 국제정치학
일러스트=안병현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향했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발이 묶여 남한산성에서 농성하게 되었다. 갇힌 조선은 성 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항복하여 백성의 피해를 줄이고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자는 주화파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농성하고 역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주전파가 대립한 것이다.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은 그 광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주화파의 대표인 최명길(이병헌 분)은 말한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니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숙이자는 입장이다. 반면 김상헌(김윤석 분)은 임금이 오랑캐에게 굽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막강한 적의 군대가 남한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일전을 벌이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은 그저 허황될 뿐. 게다가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다. 병자호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명나라는 내부의 갈등과 반란을 다스리지 못해 무너졌다. 천하의 패권은 청나라로 넘어갔다. 그 격동기에 조선은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는 대신 기존의 낡은 세계관 속에 스스로를 묶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일방적으로 주전파를 비난하는 작품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각자의 논리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당시는 국운이 쇠했을지언정 아직 명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조선왕조는 명나라 황제를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내려오는 유교적 위계질서를 통치 근거로 삼았다. 갑자기 사대의 대상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의 집권 정당성을 부정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런 맥락을 놓고 보자면 김상헌의 주전론에는 나름의 이념적 근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국제정치학 용어를 빌려 설명하자면, 최명길은 현실주의를 대변하고 있던 반면, 김상헌은 자유주의를 표방한 셈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착한 국제정치학은 크게 세 가지의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작동한다. 국가와 국제 관계를 힘(power)으로 바라보고 설명하는 현실주의(realism). 국가 간의 공동 이익 창출과 상호 협력에 주목하며, 특히 ‘제도’를 통해 상호 견제가 가능하다고 보는 자유주의(liberalism). 국제 관계뿐 아니라 각국의 내부 동역학까지 고려하며 다양한 맥락을 따지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는 케네스 월츠, 존 미어샤이머 등이 있다. 이들의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전제 몇 개를 공유한다. 국가는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언제 침략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안고 있다. 국제 관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요소는 결국 힘이다. 국제사회에 정의(正義)란 없다. 억울하고 분해도 약자는 강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 병자호란의 위기 속에서 최명길이 택한 입장이기도 하다.

반면 조셉 나이, 로버트 코헤인 등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물론 국제 관계는 힘으로 작동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국가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 문화와 가치를 공유한다면 그러한 협력은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국가 간 합의를 통해 제도를 구축하여 장기적인 공존 공영을 꾀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명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일종의 국제기구로 바라본다면 이는 김상헌을 비롯한 주전파의 세계관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셈이다. 유교의 종주국인 명나라가 아닌 청나라를 향해서는 사대를 할 수 없다는 입장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명·청 교체기에 오늘날을 곧장 대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국은 마치 명나라처럼 저물어가는 제국이며, 중국은 청나라처럼 떠오르고 있으니, 처신 똑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총수출액 중 중국에 대한 수출 비율은 25.8%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에서 무역 보복을 할 수 있으니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보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21세기 주화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는 현실과 거리가 있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은 소재·부품이다. 특히 반도체의 비율이 높다. 중국에서는 한국이 싫어도 수입할 수밖에 없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상대가 무역 보복을 할까 두려워 할 말을 못 한다는 변명도 옹색하기 짝이 없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율이 32%에 달할 정도지만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쿼드에 가입한 호주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이다. 한미 동맹을 공고하게 다져나가는 것은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면에서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한다. 동북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대중문화를 모두 갖춘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뿐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 노병의 삶이 조용히 웅변하는 진실을 보라. 미국은 강자고 한국은 약자다. 하지만 한미 관계는 오직 힘의 논리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돕기 위해 피 흘리고 싸운 혈맹이다. 현실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우방이 누구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들이 정치권에는 더러 있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린 내용만 봐도 그렇다. “문 대통령 귀국 길에 주요 수행원 중 한 사람은 중국에 들러 회담과 관련해서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뱉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가?

현실의 힘에 굴복할 것인가, 기존의 신념에 충실할 것인가. <남한산성>이 던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그때와 같지 않다. 현실주의적으로 힘을 추종하건, 자유주의적으로 가치와 제도에 신뢰를 보내건, 우리가 갈 길은 정해져 있다. 그 사실을 끝내 부정하고자 하는 자들을 흔히 사대주의자라 부른다.

2021-05-27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

리디셀렉트에 있길래 심심풀이 삼아서 읽어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TTS 기능을 이용해 '들었다'고 해야 옳겠지만, 아무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대담한 작전>은 유발 하라리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세계 속에 우뚝 솟은 신흥 선진국 K-나라, 그곳이 바로 이곳이지만, 아직도 지성계는 글로벌 트렌드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 떴다 하면 유치원때 쓴 그림일기까지 출판하고 있다.

라고 욕하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담한 작전>을 보면 유발 하라리가 왜 오늘날의 '유발 하라리'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글을 잘 쓴다. 하나마나한 소리 같지만 그게 아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탁월하다. 대중에게 팔릴 책을 쓰는 저술가로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둘째, '근대 이후'의 세계를 상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 내용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가치가 있다.

<대담한 작전>은 서양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특수작전들을 다룬다. 흔히 특수작전이라고 하면 근대국가, 즉 정규군/상비군 체제가 갖추어진 이후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는 그런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다.

소수의 인력으로 전략적 요충지 혹은 인물을 점령, 파괴, 납치, 살해하는 것을 특수작전이라 말한다면, 오히려 근대(와 총력전의 등장) 이전이야말로 특수작전의 전성기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기사도 문학과 전설들은 대부분 특수작전의 일종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와 같은 관점은 두 가지의 장점을 낳는다. 첫째, 앞서 말했듯 근대 이후의 세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은 역사 서술을 가능케 한다. 둘째,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기사들의 모험담이라는 재미있는 영역에 대한 독점적 해설권을 자신이 가져가게 된다.

학자로서, 또한 저술가로서, 대단히 유리한 포지션을 단번에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큰 영역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얼마나 짜릿할까? 이런 학생을 학자로서 길러내는 교수는 또 얼마나 뿌듯할까?

'근대 이후 세계에 대한 상대적 이해'. 이것이 오늘의 키워드다. 유발 하라리의 이후 성공작인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유발 하라리를 오늘날의 스타로 만든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문명, 근대 문명을 상대화함으로써, 서양인들에게는 자기 각성의 계기를, 동양인들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 아자아자'의 기쁨을 안겨줌으로써, 글로벌 스타 지식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담한 작전>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게 없다. 나는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원래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하라리가 뭘 제대로 설명하는 건지, 자기 취지에 맞게 부풀려 왜곡하는 건지, 판단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일단 재미있게 쭉 읽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대중교양서로서는 차고 넘치는 일이다.

유발 하라리라던가, 토마 피케티라던가, 몇몇 스타 지식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등장하면 한국의 출판계는 그들의 저작을 우르르 번역해서 내놓는다. 물론 그런 모습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고상하게만 살았던가? 경박한 상업주의에 입각해 여러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출판계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국 출판계가 떳다방처럼 책을 찍어낸다면, 진정한 독자가 해야 할 일은 개탄하기보다는 '똘똘한 한 권'을 찾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지성계'란 그런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2021-05-25

문재인의 '우리 여기자' 발언, 무엇이 문제인가?

이 핀트를 못 잡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니, 제대로 뭐가 문제인지 짚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맥락을 떠올려보자. 바이든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 기자의 성별이 여성이었다. 통상적인 질문을 했고, 통상적인 답변이 나왔다. 통상적인 기자회견의 모습이었다.

문재인은 그 직후에 '우리도 여기자 없어요?'라고 했다. 

그 순간, 처음 질문한 미국 기자는 여성차별을 당한 것이다. '성별이 여성인 기자'에서, 특별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한 '여기자'로 취급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여성들에게 우대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의 컨퍼런스 룸은 이미 그런 맥락이 다 지나간 곳이다.

이걸 페미니즘의 용어로 말해보자면 이렇다. 문재인은 그 기자회견장에서 '가부장적 페미니즘'을 구현한 것이다. 여성이 기자도 못 되고, 기자가 되더라도 질문 한 마디 자기 입으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자'에게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짓을 미국 백악관에서 했다는 말이다.

한국의 언론계가 그 정도 수준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언론계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가부장적 여성 보호 배려의 페미니즘 단계를 넘어섰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백악관의 내부 업무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문재인의 '여기자 질문해보셈' 발언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백악관의 수준을 순식간에 문재인의 청와대와 같은 것으로 끌어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여기자에게 무조건 첫 질문을 줘야지, 그게 페미니즘이지'라고 생각해서 질문 기회를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그런 걸 자기 입으로 떠벌이지 않는다. 그 정도 '위선'은 지키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우리도 여기자 한 명 질문해보세요'라니. 이런 식이면 질문 기회를 받은 기자는 '내가 실력과 무관하게 여자라서 '배려'받았나?' 싶어질 것이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큰 실례다.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여자'로 취급할 때나 가능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더 나쁜 건 문재인의 그런 발언을 두둔한 권인숙이다. 그런 가부장적 페미니즘 행태가 "작지만 소중한 발언"이라고? 제정신인가?

나는 권인숙이 한국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부정하지 않는다. 세상에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앞으로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젊은 안티페미들이 득세를 하면서 반여성주의 진영은 세대교체를 하는 모양새다. 여성주의 진영 또한 세대교체가 절실하다.

2021-05-09

왕중왕, king of kings, 諸王の王

C. S. 루이스의 책에서 봤던가? 기억으로 하는 이야기다. 틀릴 수도 있고, 틀렸다는 걸 지적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무튼.

고대 히브리어에는 최상급을 한 단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야훼는 자신을 '왕들의 왕들의 왕'이라고 칭했다. 가장 높은 왕이라는 뜻이었다.

그 아들인 예수 역시 평범한 왕보다 더 높은 왕인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는 자신이 '가장 높은 왕'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왕중왕'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다.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그리스어 화자들에게 '왕들의 왕들의 왕' 같은 표현은 생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어 화자였던 신약성서의 기록자들은 그 표현을 직역했다. 자기 언어의 표현을 쓰지 않고, 어색하게 보이는 그 '왕들의 왕'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겼다.

라틴어를 지나 유럽 각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는 시대에 도달했다. 직역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영어는 최상급 표현이 있는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의 번역자들은 그 표현을 있는 그대로 옮겨서, 'king of kings'라는 어구를 만들어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루이스가 저 말을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성경의 언어가 번역하기 좋다는 것이다. 도치 병치 등이 주로 사용되어 있다. 특정 언어의 음성과 운율에 좌우되지 않는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루이스는 그렇게 보았다.

그래서 루이스는 '왕중왕'도 참 좋다고 했다(고 기억한다). 실로 간단한 언어적 장치를 통해 이전에 없던 심상을 전달하지 않았느냐고. 그 어구를 직역함으로써 영어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언어가 풍성해지지 않았느냐고.

한국어 성경은 어떨까. '왕들의 왕'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는 '왕중왕'이다.

과연 '왕중왕'이라는 표현에 한국어 성경 번역자들은 어떻게 도달했을까? 중국어로 성경을 옮긴 예수회 신부들이 먼저 만들었을까? 일본어 번역의 영향인가? 기독교의 전파와 도래에서는 한반도가 일본 열도보다 더 빠르지 않았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나는 대답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검색을 해보니 '諸王の王'이라는, 한국어와는 사뭇 다른 표현이 나온다는 것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직역'은 나쁘고 '의역'은 좋다느니, 반대로 '딱딱한 번역투'에서 벗어나 '생생한 우리 입말'을 되찾자느니, 그런 추상적인 논의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식의 강퍅한 담론이, 특히 민족주의적 정념과 뒤엉키기 시작하면, 안그래도 얕은 우리말의 물줄기는 더욱 쉽게 말라 비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예수를 '왕들의 왕'이 아닌 '왕중왕'으로 번역한 덕분에, 우리는 '프로권투 헤비급 왕중왕전'도 볼 수 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몸 좋은 남자 배우를 보고 즐기는 여성들이 '역시 맨 중의 맨은 휴 잭맨' 같은 농담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의 국적을 논하며 무언가를 솎아내자는 이야기나 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한국어의 '의'는 일본어의 'の'가 아니다.

1) 일본어에는 'の'라는 조사가 많이 쓰인다.
2) 일본어의 조사 'の'는 한국어의 '의'와 같다.
3) 한국어에서 '의'의 사용은 모두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3-1) 일본어로부터 벗어난 한국어 사용을 위해 '의'를 쓰지 말아야 한다.

1)을 빼면 모두 틀린 말이다. 일본어 조사 'の'는 한국어 '의'로 치환될 수 없다. 한국어의 소유격조사 '의'와 달리 일본어의 'の'는 훨씬 다양한 맥락에서, 심지어 일본인들에게도 설명하라고 시켜보면 잘 설명하지 못하는 복잡한 용법을 지닌다.

3)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3-1)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일본 생각을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말의 '의'는 우리의 '의'다. 일본의 'の'가 아니다. 한국어를 얕잡아보는 자, 폄하하는 자, 한국어를 일본어로만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 과연 누구일까.

2021-05-02

우리는 윤여정의 수상에 박수칠 자격이 없다

 [노정태의 뷰파인더㉜] 인습적 여성혐오의 ‘생존자’

● 오스카 거머쥔 완벽한 연기자
● 가시밭길의 이름, 가부장제
● ‘악녀 장희빈’, 광고에서 잘리다
● ‘길티 플레져’와 국뽕 스민 호들갑
● 수많은 ‘윤여정들’에게 보내는 박수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배우 윤여정이 4월 2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레드카펫에 올라 웃음 짓고 있다. [AP 뉴시스]
온 나라가 윤여정 열풍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스카상 수상이라는 경사가 벌어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지인처럼 매끄러운 발음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또박또박 전달하는 ‘윤여정식 영어’도 화제다. 덕분에 적잖은 사람이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나 힐링을 맛보고 있다.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와 맞붙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한국의 ‘할머니’ 역할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니 이런 쾌거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반응들은 어딘가 불편하다. 배우 윤여정의 수상을 축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금 쏟아지는 요란한 찬사가 애써 가리고 덮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배우로서 오래도록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그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사람의 배우이자 여성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통과했다. 가시밭길의 이름은 대한민국 가부장제와 보수적 성역할, 그리고 여성혐오였다. 윤여정은 설령 오스카를 받지 못했더라도, ‘유별난 여자’를 향한 우리 사회의 공격성을 온전히 받아내고 극복했다는 것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한 승리자다.

‘악녀 장희빈’과 이유 없는 적개심
윤여정은 대학교 1학년이던 1966년 탤런트 공채 시험에 합격해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 ‘화녀’의 주연을 맡아 농염하면서도 강렬한 연기를 펼치며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46년생 윤여정은 고작 스물다섯 나이에 한국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윤여정은 배역에 대한 이해, 표현력, 순발력 등 모든 분야에서 빠질 데 없는 완벽한 연기자이지만, 그간 맡아온 주요 역할은 무난한 ‘호감형’이 아니었다. 대체로 ‘연기파’에게 어울리는 무언가로 간주되는 역할, 많은 경우 악역이었다.

‘화녀’에서 윤여정은 작곡가 동식의 집에 하녀, 즉 식모로 들어가 겁탈을 당하고 동식의 아내에 의해 강제로 유산을 당한 후 복수극을 펼친다. TV에서의 히트작 ‘장희빈’ 또한 마찬가지다. 장희빈이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악녀 장희빈’의 전범을 만든 사람이 바로 윤여정이다.

청춘스타로 잘 나가던 윤여정은 갑자기 미움의 대상이 됐다. 당시 윤여정은 청량음료 오란씨의 광고 모델이었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가 있었는데, 눈에 구멍이 뚫리는 식의 ‘테러’가 자행됐다. 급기야 윤여정은 광고 모델에서 잘렸다. 본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사람들이 방송국으로 쳐들어왔고 문방구 주인은 물건 같은 것을 던지기도 했단다.

이 이야기를 과연 ‘뭘 몰랐던, 순박했던 시절’의 추억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물론 윤여정은 그런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 것과, 우리가 ‘정말 괜찮은 일이었구나, 아무 것도 아니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 후로도 윤여정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를 향해 이유 없는 적개심을 표출하는 대중 역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음악다방 ‘쎄씨봉’의 멤버들과 어울려 멋진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 중 한 사람인 가수 조영남과 연애를 거쳐 결혼까지 했다. 조영남은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윤여정도 그 길에 함께 했다.

13년의 결혼 생활은 이혼으로 끝났다. 귀국한 그는 두 아들을 양육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은 반발했다. ‘어떻게 이혼한 여자가 TV에 출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여정은 그 반발을 온전히 실력으로 돌파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윤여정의 귀국 후 첫 출연작은 박철수 감독의 ‘어미’(1985)였다. ‘어미’는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 때문에 더욱 유명한 작품이다. 시놉시스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극으로 끝나는 한국판 테이큰’이다. 라디오 진행자이며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윤여정 분)는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싱글맘이다. 고등학생인 딸은 엄마가 홀아비인 최 교수(신성일 분)를 만나 밀회를 즐기는 동안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당한다. 딸은 강간당한 후 성매매 업소로 팔려가고, 그런 딸을 찾기 위해 어머니는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딸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해 자살하고, 어머니는 세상을 향한 복수극을 벌인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미’는 그리 좋은 작품이 아니다. 설정과 각본, 연기 모두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선정적인 연출이 몰입을 깨뜨린다. 김수현 본인부터가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본 후 매우 격분했다. 이후 김수현은 박철수와 절대 협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말을 지켰다.

김수현이 택한 최적의 배우
19951118일 첫 방영된 KBS2 ‘목욕탕집 남자들’은 김수현 작가가 대본을 썼다. 극중에서 윤여정(왼쪽)과 고두심이 대화하고 있다. [KBS 제공]
대신 김수현의 파트너로 등극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윤여정이었다. 연기 잘 하고 탁월한 대사 전달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좋건 나쁘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얻고 있는 스타. 하지만 그에게 끼얹어진 오명 아닌 오명 때문에 다른 작가나 연출자들이 선뜻 데려가지 못하는 문제적 인물. 하지만 김수현은 KBS2 ‘목욕탕집 남자들’, MBC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등 주요 히트작에서 윤여정에게 좋은 배역을 연이어 맡겼다.

중요한 건 각각의 작품에서 윤여정이 수행한 역할이다. 시어머니에게 대드는 철모르는 로맨티스트 둘째 며느리(목욕탕집 남자들), 여주인공을 발탁해 배우로 발돋움하게 해주는 당찬 여성 디자이너(사랑과 야망),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가부장적인 집에 시집가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친정엄마(사랑이 뭐길래).

여기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좋아하는,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 ‘여성의 역할’로부터 어딘가 벗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성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드러내기 위한 최적의 배우가 바로 윤여정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김수현은 대중이 보는 드라마를 쓴다는 자의식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결론에 다다르면 사회 통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대신 화해와 통합, 혹은 봉합을 선택했다. 특히 큰 성공을 거둔 홈드라마에서 그런 경향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현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평균보다는 한 발자국, 최소한 반 발자국 정도는 앞서 나가는 인식을 보여줬다. 그런 까다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게 윤여정의 주요 임무였다.

2007SBS에서 방영된 ‘내 남자의 여자’에 대해 당시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와 유지나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교수가 나눈 대담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유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김수현은 과거에 보여줬던 도발성에서 나아가, 이번 드라마에서는 결혼제도, 즉 가부장적 일부일처제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친구의 남편과 바람이 난) 김희애가 ‘셋이 같이 살자’고 말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거죠.”

“영화로 비교하면 김수현 정도의 여성의식이면 상당한 것입니다. 박철수 감독이 영화화한 ‘어미’만 봐도 그렇죠. 페미니즘 텍스트 같아요.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페미니즘 의식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은근슬쩍 봉합하는 마무리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어미’가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어미’는 김수현의 스크린 복귀작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윤여정은 김수현과 짝을 이뤄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평면적인 역할을 극복해나갔다.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로도 그랬고, 현실 속의 한 인간으로도 그랬다.
물론 그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장희빈’ 시절처럼 여기저기서 봉변당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윤여정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너무도 재미있는 김수현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을 너무 잘 해내기에, 안 볼 수가 없었을 뿐이다. 이렇게 윤여정은 왕년의 청춘스타에서 벗어나 중견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시 한 번 확보해갔다.

사회가 즐겨오던 ‘길티 플레저’
4월 29일 서울 노원구의 한 영화관 전광판에 영화 미나리 포스터가 나오고 있다.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뉴스1]
2021년 4월, 윤여정은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그러자 한 언론에서 그의 전 남편인 조영남을 인터뷰했다. 조영남은 ‘대단한 일이다, 바람 피워서 이혼당한 남편에 대한 최고의 복수’라는 식의 코멘트를 했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시 한 번 여론의 된서리를 맞고 있다.

물론 조영남의 저 발언은 주책없는 소리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전후 맥락 자체가 너무도 이상하다. 윤여정을 ‘조영남의 전 부인’으로 바라보고, 이혼했다는 사실을 죄악시하고,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이야깃거리로 삼던 것은 조영남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런 식이었다. ‘쎄씨봉’ 회원들의 음악이 다시 유행하고, 급기야 2018년 영화 ‘쎄씨봉’이 개봉할 당시를 떠올려보자. 그 시절의 추억담이 입에 오르며 윤여정은 계속 원치 않는 맥락으로 소환됐다. 대중 역시 그런 ‘추억 팔이’를 거리낌 없이 즐겼다.

윤여정을 두고 한 배우와 연기를 이야기하는 대신 그의 실패한 결혼을 논하며 시시덕거리던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즐겨오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어떤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결국 즐기게 되는 심리) 아니었던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스카상 수상에 대한 조영남의 발언이 마뜩찮은 것과는 별개다. 조영남 한 사람만을 극렬히 비난하면서 마치 자신은 결백한 양 서둘러 알리바이를 만드는 듯한 모습에 외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것은 나뿐인가.

지금 나는 윤여정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두고 여성혐오의 ‘희생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본인도 그렇게 인식되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여성혐오의 ‘생존자’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콧대 높은 여자, 똑똑한 여자, 한 마디도지지 않는 여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지고 드는 여자. 그런 여자가 인생 안 풀리고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혈안이 된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잊어서는 안 된다.

윤여정은 늘 그랬다.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고답적이고 인습적인 여성상을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반대 되는 길을 택해왔다. 그의 인생은 그로 인해 순탄하게 흘러오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71년 3월 11일,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그대로 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순종에서 벗어난
“저는 결코 미인이 아니죠, 김기영 선생님도 저를 퍼니페이스(funnyface)라고 하셨는데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역은 근본적인 여성의 매력, 순종이나 미적인 감각을 벗어난, 웬만해선 타협이 잘 안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역할입니다.”

윤여정에게 진정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면, ‘국뽕’ 중심의 과도한 호들갑을 멈추는 게 어떨까. 대신 대중의 편견과 증오를 딛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여성 예술가들을 좀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포용할 수 있어야겠다. ‘47년생 윤여정’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윤여정들’을 향해 힘찬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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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文정권이 손 놓은 암호화폐, 나라를 투전판으로 만들었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미다스 신화와 마르크스로 본 암호화폐와 투기 심리

일러스트=안병현
미다스는 신들의 사랑을 받는 현명한 임금이었다. 특히 디오니소스가 그를 총애했다. 디오니소스의 양육자이자 스승인 사티로스 실레노스를 잘 대접했기 때문이었다. 소원을 들어주겠노라는 디오니소스의 말에 미다스는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문자 그대로 그와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차라리 저주였다. 음식을 먹으려고 잡으면 황금이 되었다. 물이나 술을 마시려고 잔을 들어도 모든 게 황금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쓰다듬었더니, 딸 역시 황금으로 변해버렸다.

미다스는 고통으로 절규하며 디오니소스에게 간청한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팍톨로스 강물에 가서 목욕을 하면 축복, 아니 저주가 풀릴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미다스는 지시를 이행했고 정상적인 몸을 되찾았다. 그 후로 팍톨로스강은 오늘날까지도 터키 최대의 사금(沙金) 산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미다스왕과 관련된 고대 그리스 신화 중 하나다.

신화는 인류의 집합적 지혜의 소산이다. ‘탐욕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좀 더 깊이 있는 독해가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 경제 철학의 핵심 개념인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구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갖 것을 만들고 또 소비하며 살아간다. 원시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물물교환으로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인류는 화폐를 발명했다. 금이나 은처럼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귀금속을 매개체로 삼아 가치의 저장과 교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상품이 지니는 가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물건 자체를 직접 사용·소비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말하자면 쌀이나 물고기를 직접 먹을 때 누리는 가치. 그것을 사용가치라고 한다. 반면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 때 매겨지는 가치가 있다. 이를 교환가치라 부른다.

모든 재화는 각기 다른 사용가치를 지닌다. 당연한 일이다. 농부에게는 쌀이 남고 어부에게는 생선이 남는다. 농부는 생선을 먹고 싶고 어부에게는 쌀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낮은 사용가치가 상대방에게는 높은 것이다. 그러니 농부와 어부는 화폐라는 중간 매개체를 이용해 서로의 사용가치의 합의점, 즉 교환가치를 찾는다.

여기서 화폐의 독특한 성격이 문제가 된다. 미다스왕의 고초가 잘 보여주다시피 우리는 황금을, 즉 돈을 입거나 먹을 수 없다. 화폐는 오직 교환가치만을 갖는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스스로 앞장서 ‘미다스의 손’이 되고자 한다. 진정 쓸모 있는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신 돈으로 돈을 벌 궁리만을 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으로 인해 무너지고 공산주의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그의 주저 <자본론>에서 이 과정을 수학 공식과 현란한 수사학을 동원해 설명한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의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경제학’이라 보기 어렵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던 모든 시도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은 경제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다스왕의 전설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용가치를 ‘내적 가치’로, 교환가치를 ‘외적 가치’로 넓혀서 이해한다면, 이는 우리의 경제생활을 돕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무언가가 가치 있는 재화라면, 그것은 그 자체에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릴 것이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시끌벅적한 ‘암호 화폐’는 어떨까. 일단 개념의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암호 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비트코인이나 그 외의 알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재산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다. 사용가치를 지니는가? 만약 암호 화폐가 화폐라면 그 개념 정의상 암호 화폐는 사용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반대로 화폐가 아니라고 해도 암호화폐는 복잡하게 짜여진 디지털 암호문에 불과하다. 컴퓨터 자원을 소모하고 저장 용량을 차지할 뿐이다. 유의미한 사용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사용가치는 없고 교환가치만 있다. 내가 구입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은 가격으로 사줄 것이라는, 그래서 ‘돈 복사기’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그 기대만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참여자가 거래 대상의 내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시장, ‘폭탄 떠넘기기’를 꿈꾸고 있는 시장을 일반적으로 ‘투기 시장’이라고 부른다. 암호 화폐 시장은 투기 시장이다.

문제는 왜 투기판에 20대와 30대가 대거 뛰어들고 있느냐일 것이다. 암호 화폐를 거래하는 젊은 층이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유심히 살펴보면 ‘졸업’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돈을 벌 만큼 벌거나 다 잃어서 판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좋은 의미에서 ‘졸업’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말을 한다. ‘집 샀습니다! 성투(성공한 투자) 하세요!’

문재인 정권을 향해 묻고 싶다.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사는 것이 왜 나쁜가. 적어도 집은 실체가 있는 물건이다. 대출을 못 갚으면 집을 팔면 된다. 가격이 떨어져도 그냥 그 집에서 살면 그만이다. 사용가치가 있는 재화라는 뜻이다. 반면 암호 화폐는 사용가치가 0으로 수렴한다. 집을 사는 것은 투자일 수도 있고 투기일 수도 있지만, 암호 화폐를 사는 것은 100% 투기다.

내 집 한 채 마련하여 빚을 갚으며 천천히 자산을 키워나가는 정상적인 경로를 끊어버리니 온 나라가 투전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책 실패다. 그러면서도 암호 화폐에 대한 과세 유예 카드를 만지고 있다. 이제는 부동산으로 세금 폭탄 맞는 사람들과 암호 화폐 투자자들을 ‘갈라치기’할 셈인가.

미다스왕은 아들과 딸이 황금으로 변한 후에야 자신이 걸린 저주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가 원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었던 것이다. 충혈된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젊은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에 뛰어드는 모순적인 광란. 그것을 진정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