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기업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크리스틴 로젠이 쓴 『경험의 멸종』 은 훌륭한 페이지 터너다. 그 장점은 단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왜 읽기 쉬울까? 주제가 너무도 단순 명료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기술에 의해 계속 변하고 재편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깔고, "비기술적 가치와 지식 흡수의 방식이 대체되고 사라지는 것", 즉 "경험의 소멸"[19쪽]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그런 삶을 그만 살자,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진짜 경험'을 돌려주자는 이야기다.
좋은 주장이다. 우리는 이미 나쁜 사례를 잔뜩 알고 있다. 가장 극적인 예를 들어보자. "2010년 한국에서 한 부부가 인기 온라인 게임 프리우스Prius에서 가상 아이를 키우느라 실제 아이는 굶어죽게 내버려둔 일이 있었다."[31쪽] 꼭 이렇게 극적인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걸어다니면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온전히 동의하기 힘들다. 저자의 '정념'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정념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이성'에 설득되지 않아서다. 자신의 논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사례를 인용하고 여러 학자를 원용하는데, 양쪽 모두에 있어서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6장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라이 시에라라는 33세 여성의 사례를 짚어보자. 시에라는 혼자, 하지만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원래 세계와 단단히 연결된 채, 튀르키예 여행을 갔다. 그러나 그는 귀국하지 못했다. 2013년 1월 21일 귀국행 비행기를 타지 않고 실종된 후 11일 후 이스탄불의 역사 지구 술탄아흐메트의 성벽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인근의 노숙자였다. 페인트 시너에 취한 채 시에라를 강간하려다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범인은 스마트폰이다.
그녀의 친구와 가족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시에라가 여행 경험을 강화하기 위해 의존했던 기술 때문에 자신이 안전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지는 않았는지,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 직면하는 위험에 무감해진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220쪽]
'주변의 위험을 살피지 않고 폰만 보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는 일반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노숙자가 시에라를 강간하려 했을 때 상황이 스마트폰과 유관한지 아닌지, 적어도 독자인 우리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여행지에서 셀카 찍다가 절벽에서 떨어진 사례처럼 소비될 일이 아니다. 비겁하고 심지어 위험한 서술 방식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론적 측면을 보강하기 위해 끌어들인 내용도 종종 눈에 거슬린다. 저자는 "벤야민은 이렇듯 열정적이지만 산만한 비판이 문화의 수준을 낮추고 대중이 예술을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저속하고 단세포적으로 변할 것이라[245쪽]고 우려"[246쪽]했다고 적는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 잘 요약했듯, "발터 벤야민은 1936년 에세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적 변화, 특히 기계적 복제가 새로운 관점인 "진보적 반응"(그가 붙인 이름이다)을 촉진한다고 주장했다."[245쪽] 기술복제로 인한 예술작품의 아우라 상실을 벤야민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반겼다. 로젠은 벤야민을 똑바로 읽고도 거꾸로 인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의 견강부회가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자의 편향성 때문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나는 X세대다) 성인기에야 이 새로운 세상을 접하[18쪽]고 이 세상의 전망과 위험성을 헤쳐 나가고 있는 나 자신의 경험에서 발전"[19쪽]한 책이다. 특정 세대의 경험과 세계관에 입각해 현재의 미디어 발전을 제단하고 있는 것이다.
X세대라면 여자친구와 워크맨 이어폰을 나눠 듣는 것을 아름다운 연애 경험의 한 장면으로 추억할 것이다. 그런데 오직 그것만이 '현실'일까? 여자친구의 온라인 게임 계정에 대신 로그인해 레벨을 높이고 아이템을 주워주는 Z세대의 연애 경험 역시 나름의 진실된 무언가를, authenticity를 갖고 있지는 않을까?
지니는 이미 램프 밖으로 풀려났다. 이 문제는 특정 국가에서 성장한 어떤 세대의 편견을 넘어, 보다 진지하게, 가치 중립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