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4

인권의 이름으로 단체기합을 옹호하는 사람들

공부를 곧잘 했지만 학교는 끔찍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건 부조리하기 때문이었다.

시시덕거리고 떠들고 도시락을 까먹고, 때로는 바지를 내린 후 그 위로 체육복을 덮고 자위를 하는 그런 놈들의 그런 잘못 때문에, 모든 학생이 매를 맞는 시스템이 싫었다.

'한 사람의 잘못은 모두의 잘못'이라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폭언을 내뱉는 선생들이 싫었다.

개별적인 잘못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처벌하며 교정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과 게으름을, 모든 학생들에 대한 체벌로 퉁쳐버리는 그 부조리가 너무도 싫었다.

배재고 야구부 6개월 출전 정지는 바로 그런 짓이다.

소위 '인권 감수성'이 좀 있다는 사람들이 학창시절에 진저리를 쳤을 '단체기합'의 부조리 그 자체다.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를 선창했던 누군가, 그리고 따라했던 누군가, 말리지 않은 누군가가 있다.

그들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잡아내지는 못할 망정, 몇 시간 대충 조사해놓고 '팀 전체 6개월 출전 정지'를 때리는 건, 군사독재 시절 혹은 그 잔재가 남아 있던 교실에서 벌어지던 단체기합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똑같다.

나는 '스타벅스 가야지'가 표현의 자유로 옹호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가 개인을 억압할 때 꺼내야 할 이야기이며, 야구선수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쇼비즈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그 업계가 요구하는 스탠다드가 그렇다면 맞출 필요가 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배재고 야구부 전체에 대한 6개월 정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은, 몇몇 사람들, 아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단체기합'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젊고 건강하고 명랑하기까지 한 '신세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학창시절에 그렇게 증오하던, 담배피는 양아치 새끼와 교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범생이를 모두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백 바퀴씩 구보를 뛰게 하던, 불콰한 얼굴로 술냄새를 풍기던 교련 선생이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서태지 같은 문화적 반항아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당신들은 서태지의 노래에 삐 소리 나게 검열을 하던 바로 그 구시대의 기득권들이다.

나는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 인권을 존중한다는 사람들이, 어떤 모순에 빠져 있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알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소싯적에 그렇게 역겨워하던 그 배나온 기득권, '저 애새끼들 저거 확 조져서 눈깔을 못 들게 해야 해'라고 히죽거리던 그런 개저씨들, 당신들은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단체기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니, 정말 살다살다 별 꼴을 다 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배재고 야구부의 특정 학생은 징계를 받을만한 짓을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PL 선수라면 무릎 꿇는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배재고 야구부'가, 사실상 폐부당한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의 '집단 징계'를 받는 것은, 글쎄?

그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어디어디 지역 출신은 안돼'라고 하던 바로 그 꼰대들과, 똑같다. 게으른 집단 처벌 논리다.

역겨운 기득권이 되는 것이 당신들의 인생 목표였다면, 축하한다.

2026-06-12

원자력 악마화와 양이원영의 '보급투쟁'

원자력을 ‘나쁜 에너지’로 몰아가는 흐름은 태양광과 풍력에도 부당한 도덕적 관점을 부여했다. 그저 전기 생산 방식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착한 에너지’인 양 포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광을 깔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깎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환경 파괴가 된다는 현실적인 반박은 도덕적 함성 앞에 간단히 기각되었다. 풍력 발전 터빈이 친환경적으로 보여도 수많은 새와 박쥐, 곤충의 목숨을 실제로 앗아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상을 선악으로 나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너무도 뿌리 깊은 인간적 경향성 때문이다.

바로 이 경향성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진정한 ‘도덕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특정 에너지나 입장을 도덕적 선으로 취급하고, 다른 에너지원과 입장을 도덕적 악으로 치부하는 식으로는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 나름의 도덕적 관점이 있고, 나름의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저서 ‘바른 마음’에서 역설한 내용이다.

필자는 지난 5월 20일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ALC)의 “기후 논쟁의 빈자리: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 세션에 패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필자가 강조한 내용도 이와 같다.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은 도덕에 얽매여 있다. 모두를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배타적 도덕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에너지 문제, 폐기물 처리와 관리 문제, 그 외 가치중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수많은 환경 담론이 도덕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양 전 의원이 한수원 비상임이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도덕주의가 낳는 혼란 중 하나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반핵·탈원전 전도사가 어떻게 한수원 이사직을 노릴 수 있는 걸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도덕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흔한 패턴에 대입해 보도록 하자. 아마 그는 원자력은 ‘나쁜 에너지’고 신재생은 ‘착한 에너지’라는 생각을 여전히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쁜 놈들의 돈’을 받아서 ‘좋은 일’에 쓰겠다는 식으로 본인의 이중적 선택을 정당화하고 있을 수 있다. 도덕화된 환경주의는 ‘친환경 내로남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노정태. (2026-06-06). 양이원영 한수원 이사 선임?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 되는 꼴. 신동아. https://n.news.naver.com/article/262/0000019424?sid=100

지난 토요일에 업로드된 신동아 칼럼입니다.

본문에 쓰려다 말았던 표현이 있습니다. '보급투쟁'이라는 단어죠.

운동권들이 1) 체제 영합적 일자리를 얻거나 2) 그들이 적대시하는 체제와 거래하여 이득을 보거나 3) 심지어 엄한 사람들을 속이고 돈이나 재산을 빼앗거나 할 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쓰는 표현입니다.

대의를 위한 '투쟁'에 '보급'을 하고 있을 뿐이니 오케이다, 뭐 그런 논리죠.

양이원영 전 의원이 한수원 이사가 되겠다고 지원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단어가 곧장 떠올랐는데,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의식의 저편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네요.

어쩌면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 하는 꼴'이라는, 더 개쩌는 레토릭이 떠올라, 제 무의식 속에서 묻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칼럼이 나가고 며칠 후, 양 전 의원은 한수원 이사 지원을 철회했습니다. 잘한 선택입니다. 반핵 활동을 하시더라도, 보급투쟁 같은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지 마시고, 양심과 시민 사회의 상식에 맞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첨부한 사진은 제가 ALC에서 발표한 모습입니다(feat. 김재섭 의원). 뜻깊은 자리에 연사로 설 기회를 주신 환경 시민단체 '아울러가꾸는터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026-06-07

재선거? 당연히 해야지

서울시장 선거 말고
투표지 부족했던 기초선거.

서울시장 선거는
이미 정원오가 승복했으므로
재선거를 논할 이유가 없음.

마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플로리다 표가
천공밥이 안 떨어지는 등
몇몇 이슈로 논란이 되었지만

앨 고어가 대승적으로
패배를 시인하면서
그냥 결과가 확정된 것과 같음.

Beyond the hanging chads: Four things you may have forgotten about the 2000  Fla. recount - The Boston Globe

게다가 논란이 된 표를 다 더해도
오세훈 승리라는 결과가 바뀌지도 않음.

반면 기초는 이야기가 다르다.

단 한 표 차이로 의석이 오가는데
그걸 재선거 안하면 말이 안 됨.
충분히 결과에 영향이 있을 수 있음.

선거 패배를 인정해준
정원오 후보에게 감사하면서
(감사의 정원오 🙏)

첫째, 이 일에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둘째, 기초 단위 재선거를 시행하며
둘째, 선관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함.

2026-05-21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 수호가 진정한 5.18 정신

시민군은 태극기를 몸에 감고 애국가를 부르며 싸웠다. 전남도청에 설치된 본부에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조사과가 있었을 정도로 시민군의 애국심은 분명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법적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한 도시와 지역에 국한된 비극에 머물 수 없다. 일부 정당과 세력의 정치적 전유물처럼 취급되어서도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것, 그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일 것이다.

노정태. (2026-05-18). 5·18 광주민주화운동.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9075

중앙일보 독자들 중에서도 논란이 있을 것을 예상했지만, 각오하고 쓴 칼럼. 역시나 리플란이 발칵 뒤집혔다.

이래저래 굳이 인터넷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으려 했는데,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이 벌어지고,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 응징"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자, 참을 수 없어서 글을 쓴다.

이건 이재명, 우원식, 민주당의 5.18 파시즘이다.

5.18 광주의 정신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이다.

어째서인가? 전남도청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탱크데이 어쩌구 이벤트를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특정 기업을 '응징'하겠다고 선포하고, 실제로 행안부가 불매를 해버리는 식이라면, 이건 5.18 시민군이 목숨 걸고 지킨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게 얼마나 섬뜩한 파시즘적 행태인지 모르는가? 정신들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재명의 '응징' 발언은 '스타벅스의 병크 ㅋㅋ'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파시즘의 전조도 아닌 본격적인 시작을 목격하는 중이다.

이재명, 우원식, 민주당의 5.18 파시즘

이건 파시즘이다. 내가 직접 쓰기도 귀찮아서 챗GPT 굴림.

5.18을 역사적으로 되새기고 기념하며 그 정신을 새롭게 다지는 것과, 5.18을 앞세운 파시즘에 놀아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

(일러두기: 나는 5월 18일자 중앙일보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취지의 칼럼을 기재한 바 있다.)

우원식이 내놓은 개헌안 낼름 받아서, 그 장단에 놀아났던 분들, 다들 반성을 좀 해봅시다.


문: 행정부가 특정 기업을 불매하고,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겠다'는 나라가, 민주국가 중에 있나?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치가 유대인 기업에 할 법한 소리 같은데?

답: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부나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압박하는 사례는 있다. 그러나:

  • 행정부가 조직적으로 “불매”를 유도하고,

  • 최고권력이 특정 기업을 “응징하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 국가 권력을 동원해 보복을 암시하는 것

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주의(rule of law), 정치권력과 시장의 분리, 표현·경제 활동의 자유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기업을 비판하더라도 보통은:

  • 독점 규제,

  • 탈세 수사,

  • 노동법 위반,

  • 국가안보 문제,

  • 소비자 보호

같은 “명시적 법적 근거”를 앞세운다.

반대로 “정권에 비협조적이다”, “마음에 안 든다”, “우리 편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응징을 시사하면, 그 순간부터는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 정치의 냄새가 강해진다.

당신이 떠올린 1930년대의 사례도 완전히 엉뚱한 연상은 아니다. 예컨대 1933년 나치의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 은 국가권력이 특정 집단의 경제활동을 정치적·인종적 이유로 공격한 대표적 사례다. 물론 오늘날의 어떤 사건이 곧바로 나치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 비교에서는 규모·제도·폭력성·인종주의 여부 등을 신중히 구분해야 한다.

다만 정치학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은 있다:

  1. “국민”과 “반국민”을 나눈다.

  2. 독립기관·언론·기업을 “적”으로 규정한다.

  3. 국가권력을 이용해 경제적 불이익을 암시한다.

  4. 법 집행이 중립성을 잃고 충성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헝가리 의 오르반 빅토르 체제, 튀르키예 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체제, 일부 시기의 러시아 등에서 반복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형식상 선거는 존재하지만, 국가권력이 시장과 시민사회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비판이다.

핵심은 “민주국가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보기보다, 민주주의에도 정도(degree)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가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민주주의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 혹은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다.


같은 질문에 대한 제미나이의 답변은 더 단호하다: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특정 사기업을 겨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응징하겠다'고 선언하거나 행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주도하는 행위는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이례적이며 법치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민주국가의 헌법과 법률은 기본적으로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고 기업의 경제 활동 활동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지적한 대로 이러한 형태의 전방위적 민간 압박은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 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 상점을 대상으로 벌인 조직적 보이콧(Judenboykott) 등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통제 방식에 가깝다.

다만 현대 민주국가에서도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타격을 입히려 시도한 사례는 존재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의 유사 사례와 한계

현대 정치에서 정권이 특정 기업을 압박한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업 압박: 트럼프는 재임 시절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던 워싱턴 포스트(WP)의 소유주 제프 베이조스를 겨냥해 아마존의 택배 요금 문제를 지적하며 우체국(USPS)에 요금 인상을 압박했다. 또한 CNN의 모기업인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 법무부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선 과정이나 재임 중 하 Harley-Davidson, Goodyear 등의 기업을 향해 "제품을 사지 말라"며 사실상의 불매를 선동하는 트윗을 올린 바 있다.

  • 리차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보복 시도: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하던 워싱턴 포스트의 모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해당 기업이 소유한 TV 방송국의 면허 갱신을 취소하도록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압력을 가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이는 이후 '닉슨 테이프'를 통해 폭로되었다.

민주주의 시스템과의 충돌 및 제어 메커니즘

이러한 사례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응징'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의 상호 견제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 사법부의 견제와 법치주의: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부는 행정권의 자의적인 행사를 제한한다. 만약 행정부가 합법적인 근거(반독점법 위반, 세법 위반 등) 없이 특정 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면, 해당 기업은 행정소송이나 위헌법률심판을 통해 이를 무력화할 수 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법무부가 제기한 AT&T 합병 저지 소송은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 권력 남용 및 탄핵 사유: 대통령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해 특정 기업을 파멸시키려 한다면, 이는 헌법 수호 의무 위반으로 이어져 의회의 탄핵 사유나 퇴임 후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앞서 언급한 닉슨의 시도 역시 탄핵 발의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자가 거친 수사(Rhetoric)를 동원해 특정 기업을 위협하거나 지지층을 동원해 불매를 유도하는 정치적 행태는 간혹 발생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행정력을 초법적으로 동원해 특정 기업을 '응징'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해당 국가는 이미 외형만 민주주의일 뿐 실질적으로는 법치주의가 무너진 독재 내지 권위주의 국가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