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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프리랜서: 사교성, 실력, 마감


새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프리랜서: 사교성, 실력, 마감>입니다. 

이 책의 맥락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워크룸 실용 총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워크룸 실용 총서'란 마치 실용서인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실용서가 아닌, 그래도 어쩌면 실용적인 쓸모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총서 시리즈입니다. 

가령 CIA의 사보타주 매뉴얼을 담은 <생활 공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인들에게 배포된 육박전 매뉴얼인 <실전 격투>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용서였지만 실용서가 아니고, 실용서라고 보기 어렵지만 실용서(였)죠. 

<프리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로 10년차도 더 된 프리랜서인 제가, 프리랜서로서의 삶의 태도와 방식, 여러 팁을 전합니다. 실용서입니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가령 <미라클 모닝>이라던가, 뭐 그런 식의 실용서와는 거리가 멉니다. 

가격은 고작 9천원. 전체 분량 182매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용서가 아닌 정도를 떠나, 책의 만듬새만 놓고 보면 시집 같기도 하군요. 편하신대로, 좋을대로, 그렇게 읽으면 좋을 책이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11-20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 일러두기: 이 글은 『무엇이 정의인가?: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마티, 2011)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아직 절판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마이클 샌델의 새 책이 나오는 시점이므로, 블로그에 공개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외에 박홍규, 장정일, 이권우, 김도균, 이양수, 최원, 박원익, 이택광, 서동진, 이현우 등 훌륭한 필자분들이 참여한 책입니다. 다른 필자들의 논의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의의 딜레마, 딜레마의 정의

1.

학자나 이론가들뿐만 아니라 상인들과 부인들이 동석해 있는 사교 모임들에서 대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주의해 보면, 거기에는 이야기와 농담뿐만 아니라 또한 환담, 곧 수다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야기는 새로운 내용과 함께 흥미 있게 이끌어가려 하면 이내 소재가 고갈되고, 농담은 쉽게 김이 빠지기 때문이다. 모든 수다 중에서도 어떤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이런 저런 행위의 윤리적 가치 에 관한 수다보다도 더 그 밖의 머리 쓰는 일에서는 이내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의 참여를 촉발하고 모임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없다. — 임마누엘 칸트, 『실천이성비판』, O273/V153

임마누엘 칸트는 사교계의 총아였다. 그는 키도 작고 얼굴도 과히 잘생긴 편이 아니었지만, 특유의 영민함과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단 한 번도 자신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 밖으로 떠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런던, 제노바, 베니스 등 세계의 주요 도시에 대한 '구라'를 풀어놓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많은 경우 그의 이야기는 실제로 해외를 다녀온 사람의 것보다 정확하고 세밀했다. 칸트는 당구를 매우 잘 쳤고, 학창시절에는 내기당구를 통해 학비를 벌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쾨니히스부르크 대학교의 교수가 된 이후로 사교계에서 발을 끊고 이른바 '비판철학'의 구상과 완성에 돌입한다. 그 작업을 끝냈을 때, 이전까지 사람들이 알던 사교적이고 유쾌한 칸트 씨는 사라지고, 대신 우리가 아는 철학자 칸트가 탄생해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지난 시절을 잊지 않았고, 도덕철학을 다루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위 인용구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윤리적 가치에 대해 수다 떠는 일을 좋아한다고. 저 말은 칸트 자신의 사교계 경험에서 우러난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윤리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좋아한다. 누군가가 진정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그를 반드시 존경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가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만큼은 그 누구라도 즐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것은 근본적인 '인간적 현상'이며, 바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왜 『정의란 무엇인가』가 40만 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를 내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하버드 명강의'라는 단어가 수많은 이들을 솔깃하게 했고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이 탁월한 것 역시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윤리적 딜레마'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섬세한 독해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이 보수주의적 입장, 즉 공동체주의를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책의 도입부에서 던져놓는 딜레마 자체가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그가 책에서 설명하는 공동체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와 맞닿아있기도 하다.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설령 그 책을 직접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의 도입부에서 제시하는 딜레마가 무엇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열차가 있고, 브레이크는 고장났다. 당신은 그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인데 이 철로를 쭉 달리다보면 공사중인 인부 다섯 명이 치여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편 선로를 바꾼다면 한 사람의 인부만 치여 죽는 것으로 사고를 마무리지을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첫 번째 딜레마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첫 번째와 유사한 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르다. 역시 폭주하는 기관차를 타고 달리고 있고, 다섯 명의 목숨이 위험하다. 그런데 철로 위의 어딘가에, 열차를 멈출 수 있을만큼 뚱뚱한 사람을 선로 위로 떨어뜨리면 그 한 사람을 희생시킴으로써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다. 당신이라면 그 뚱뚱한 사람의 등을 밀어서 그를 철로 위로 떨어뜨릴 것인가?

샌델은 말한다. 공리주의자라면 당연히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 사조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 특히 칸트적 자유주의자라면 선로를 바꾸거나 뚱뚱한 사람을 밀어버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오직 목적으로 예우하라'는 정언명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자는 그와 같은 추상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나'의 삶의 맥락과 공동체의 가치 기준 속에서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샌델은 앞서 제시한 추상적인 비유를 현실 속으로 과감하게 옮겨놓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은신처를 찾아다니는 미군 척후병. 그들은 중간에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을 만났다. 미군들은 이 민간인들이 탈레반 협력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한다. 만약 그들이 협력자라면, 척후병 뿐 아니라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수많은 미군들의 위치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들은 민간인들을 풀어주었고, 몇 시간 후 미군 전체가 탈레반에게 포위되었다. 세 사람의 목숨을 살린 댓가로 총 열아홉명의 미군이 죽어야 했다. 민간인들을 그냥 보내주겠다는 결정을 내린 미군은, 그 역시 전투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자신이 내린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도입부를 제시한 후 샌델은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에 대한 개략적인 해설을 제시한다. 각각 3장씩, 그 내용들이 이 책의 나머지 9장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서평들을 살펴보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평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 듯 하다. 쉽고 재미있게 정의와 윤리의 문제를 고민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는 평가가 있고, 샌델이 말하는 공동체주의가 결국 보수주의적 입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나는 두 가지 견해 모두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샌델이 말하는 내용, 공동체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그 말을 하기 위해 꺼내드는 사례가 이 책을 진정 문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철로에서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혹은 폭주하는 열차를 막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죽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윤리적 토론을 위한 화두로 꺼내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윤리적 판단이다. 칸트가 예리하게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이미 그 순간 '누구를 죽이는 것이 더 공정한가'를 놓고 고민하며, 그 과정을 즐기고 있다.

2.

사례들이 판단력을 예리하게 해준다는 것은 사례들이 가진 유일하고도 큰 효용이다. 지성의 통찰력의 정확성과 정밀성에 관해 말할 것 같으면, 사례들은 보통 그런 것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니 말이다. 왜냐하면 사례들이 규칙의 조건들을 (限界의 境遇로서) 충전하게 만족시키는 일은 매우 드물고, 게다가 규칙들을 보편적으로, 그리고 경험의 특수한 상황과는 독립적으로, 충분하게 통찰하려는 지성의 노력을 흔히 약화시키며, 그리하여 종국에는 규칙들을 원칙이라기보다는 공식처럼 사용하는 버릇이 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례들이란 판단력을 위한 보행기로서, 판단력의 천부적인 재능을 결여한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초월적 판단력 일반에 관하여'에서.

"사례들이란 판단력을 위한 보행기"이며 "판단력의 천부적인 재능을 결여한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칸트 자신을 포함하여 위대한 철학자들 역시 까다로운 도덕적 문제를 고찰함에 있어서 끝없이 가설적 사례를 만들고 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례들은, 칸트의 비판처럼 "규칙의 조건들을 충전하게 만족"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불필요하지만 유의미한 어떤 '맥락'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선 플라톤의 경우를 살펴보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답을 시도한 최초의, 그리고 어쩌면 가장 위대한 작품은 플라톤의 『국가』일 것이다. 플라톤의 대변자로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먼저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따르는 것',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과 같은, 당대에 통용되고 있던 규정들을 하나씩 논파한다. 그리고 '정의'에 대한 적극적인 규정을 찾아내기 위해 개인의 삶이 아닌 공동체의 구성과 그 속에서의 삶으로 논의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도입부와 그 나머지를 가르는 기준선이다.

바로 그 도입부에서, 등장인물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당대의 통념에 맞서 한 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당신에게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성정을 이기지 못해 난폭한 행위를 저지르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정신일 때 당신에게 자신의 무기를 맡겨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상태가 안 좋아진 그가 나타나 자신의 무기를 돌려라고 한다. 당신은 그에게 무기를 돌려주는 순간 그가 그것을 들고 가서 어딘가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무기를 돌려주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올바름이란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개념에 따르자면 당신은 그 무기를 돌려줘야 한다. 무기의 주인에게 무기를 돌려주는 것, 그게 바로 '올바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그 누구도 그러한 행동이 올바른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와 같은 딜레마를 몇 개 더 제시함으로써 당대의 통념적인 정의관에 도전하고 자신의 새로운 입장을 펼쳐나갈 토대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플라톤이 만들어낸 사례의 맥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의 시민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이라는 것은, 전쟁이 나면 자신이 소유한 무기를 들고 폴리스를 위해 전쟁에 나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인을 저지를 사람이 맡겨놓은 무기'라는 말은 바로 그런 맥락을 전제로 할 때에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현대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게는, 우발적인 경우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은 있을지언정, 본격적인 '무기' 따위 없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시민들이 곧 군인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의 무장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내가 책 한 권을 친구에게 맡기는 것과 완전히 다른 맥락을 형성한다. 내가 이 도시국가 속에서 한 사람의 시민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내가 가진 창과 방패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남의 무장을 맡아놓고 있다가 돌려주지 않는 행위가 지니는 맥락 역시 결코 간단한 게 아니다. 친구에게 빌린 청바지를 돌려주지 않는 그런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플라톤이 만들어낸 이 딜레마는 모두가 시민이고 전우이기도 한 고대 그리스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온전히 이해 가능하다. 서로가 서로를 시민으로서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 혹은 어떤 경우에 우리는 누군가의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을 것인가. 명시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는 않지만, 플라톤이 만들어낸 딜레마는 이와 같은 맥락을 추가적으로 머금고 있는 것이다.

칸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칸트 자신이 '사례'를 통한 접근을 '판단력의 부족을 매꾸기 위한 것'이라고 낮게 평가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도덕적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상적인 사례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살인자에게 쫓기는 누군가를 집에 숨겨주고 있다. 그런데 그 살인자가 찾아와 당신에게 묻는다. '그 사람이 여기 있는가?' 칸트 자신이 말하는 정언명법에 따르면 우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므로 '그렇다'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경우 그 사람은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저 질문 자체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딜레마가 전제하고 있는 상황의 맥락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샌델 본인이 곧장 그 예시를 현실 속의 것으로 치환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듯, 칸트가 말하는 저 '살인자'는 사실상 공권력에 해당하는 그 무언가에 가깝다. "우리는 나치 돌격대원에게 안네 프랑크의 가족이 다락방에 숨어 있다고 말해줄 도덕적 의무는 분명 없다."(185쪽) 칸트가 말하는 '살인자'는 살인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르게 될 한 사람의 개인이라기보다는,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처형'하겠다고 나선 어떤 공권력에 가까운 개념인 것이다. 적어도 문맥상으로는 그렇게 해석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사례의 맥락은 독특한 뉘앙스를 지니게 된다. 칸트가 살던 시대에는 국가에 의한 출판물의 검열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자유를 논하면서도 계몽군주의 자비와 관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칸트는 동료 지식인들에게 묻는 것이다. 만약 내가 혹은 네가 사상 검열을 당하고 국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할 때, 네가 나를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일까?

즉 칸트가 만들어낸 이 딜레마는 '국가 권력'을 상대로 하여 '시민'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윤리적일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플라톤의 경우와 달리 칸트는 국가 권력이 시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그 속에서 윤리적 행위의 문제를 검토하고자 했다. 반면 플라톤은 언제라도 다른 도시국가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고대 그리스의 분열된 정치 상황을 전제한다.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생각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철학자 모두 어디까지나 '시민'의 눈높이에서 딜레마를 고안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차하면 또 창과 방패를 들고 밀집대형을 만들어 적과 싸워야 하는 고대 그리스의 시민, 혹은 왕의 검열을 피해 계몽주의를 설파하고 만들어나가야 할 18세기 프러시아의 시민. 이 딜레마를 만든 사람들과 그것을 듣고 고민한 사람들 모두, 시민의 눈높이에서 윤리를 고민했다.

샌델이 제시한 철도 기관사의 딜레마와 그것의 현실적 적용으로 돌아가보자. 이제 그것이 왜 문제적인지 그 이유가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을 쏘아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때, 샌델의 눈높이는 결코 시민들의 그것에 맞춰져 있지 않다. 그는 미군의 시각으로, 자신과 비교했을 때 철저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민간인들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채 그들을 죽여야 할지 살려야 할지 고민한다. 샌델은 집 앞에 찾아온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해도 좋을지 여부를 실천이성의 원칙에 따라 검토하는 한 사람의 선량한 시민이 아니다. 그 시민으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고문을 하는 것이 윤리적일지 아닐지 하버드 학생들과 토론하며, 민주적 원칙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권력 그 자체의 눈높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3.

공법적 협약하에서의 비밀 조항은 객관적으로는—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는—하나의 모순이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즉 비밀 조항을 명령하는 사람들의 인격의 자질에 따라 판단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에서 확실히 비밀은 성립할 수 있다. 즉 그들이 비밀 조항의 초안자라는 것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인격적 존엄성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비밀은 성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조항은 오직 하나뿐이지만,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명제에 포함되어 있다. 공적인 평화의 실현 가능한 조건에 대한 철학자들의 준칙을 전쟁을 위해 무장한 여러 국가들은 충고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 임마누엘 칸트, 『영구 평화론』(서울: 서광사, 2008), 개정판, 58쪽.

시민의 딜레마와 점령군의 딜레마는 완전히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시민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진 딜레마를 통해 윤리적 문제를 숙고하는 것과, 점령군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딜레마를 검토하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차원을 형성한다. 전자를 고민할 때 우리는 도덕적 원칙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동료 시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진실을 말하는 누군가, 혹은 전쟁에서 동고동락한 전우의 명예를 훼손시키면서까지 그가 벌일 수 있는 위험한 사태를 막아내고자 하는 누군가가 된다. 반면 후자의 상황을 가정하며 토론할 때, 우리는 그저 '이 사람들이 탈레반 협력자일지도 모르니까 죽이자'라는 결론에 도달한 미군이 되어버릴 뿐이다. 전자에는 윤리와 가치가 이미 딜레마 속에 내재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선택이 더 '전략적'으로 타당한가 뿐이다. 윤리적 책임과 도의적 갈등은 그것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판단의 요인으로 전락한다.

샌델이 제시한 딜레마에서 행위의 주체는 곧 '초법적 주권자'이다. 재판 없이, 그 어떤 법적인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쥔 채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주체 말이다. 샌델은 독자로 하여금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그저 서류에 사인을 했을 뿐인 아우슈비츠의 아이히만이 될 것을 권유한다. 구체적인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의 목숨을 직접 빼앗는 게 아니라 그냥 '결정'을 내릴 뿐인 상황이라고 우리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구경꾼인 당신은 옆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를 직접 밀지 않고도 철로 아래로 떨어지게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맨홀처럼 아래로 통하고, 당신은 핸들을 돌려 뚜껑을 열 수 있다고"(39쪽)까지 상상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기계적인 살인을 상상하는 행위가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사고실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순간, 우리는 윤리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열차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비곗덩어리'를 죄책감 없이 철로에 처박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릴 뿐이다.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그것을 어떤 더 큰 뜻, 대의에 따라 행사하는 초월자.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찾아 헤매이는 미군, 혹은 그 미국의 패권적 지배에 맞선다는 명분 하에 온 몸에 폭탄을 칭칭 감고 뛰어드는 자살 테러범. 양자의 논리는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당신이 이라크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라고 가정해보자. 나 한 사람의 목숨과 더불어 미국인 수십 명을 죽임으로써 '우리 편'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올바른 것일까? 샌델이 제시하는 논리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포함하여 몇 사람쯤 희생시키겠다는 자살테러범을 설득할 수가 없다. 미군들이 미국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을 정의롭게 죽일 수 있듯, 자살테러범은 이슬람 공동체를 위해 미국의 민간인을 정의롭게 죽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살테러범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목숨을 바쳐 미국인들을 죽이는 것이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하버드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지 토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반대편에서 같은 주제를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게 안 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죄책감을 덜어주는 복잡한 장치를 이용해 열차를 막기 위해 뚱뚱한 사람을 철로에 떨어뜨리는 사람과 자살테러범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일 뿐이다. 전자의 경우 무슨 요절복통 기계처럼 생긴 장치 덕분에 살인의 주체가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그 책임감으로부터 도피한다면, 후자는 아예 폭탄으로 스스로를 깨끗하게 날려버림으로써 도덕적 책임의 소재를 지워버린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각자의 정의(正義)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 그들은 어떤 원칙과 논리에 따라 서로를 설득하여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각자의 이익과 도덕과 관습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영원한 평화를 획득하기 위한 이성적인 방안을 도출해내기 위하여 칸트는 『영구평화론』을 썼다. 그리고 그는 본문의 부록에 위 인용구와 같은 단서 조항을 덧붙여 놓았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서 통용될 수 있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인 철학자의 말에 정치가들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칸트는 생각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바로 그렇게, 초월적 관점을 통한 보편성에의 추구가 결여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한 한국인 독자가 대단히 자의적으로 '공정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놓고 보면 상황은 훨씬 비관적인 것 같다.

2020-08-13

외출복을 입고 엘리베이터 옆에서 자는 예술가

그래서 그는 승강기 옆에서 다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시 전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체포되는 모습만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똑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마다 그는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잠든 딸에게 키스하고, 잠 못 이루는 아내에게 키스했다. 아내의 손에서 작은 가방을 받아 들고 대문을 닫는다. 마치 야간 근무를 하러 가는 사람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그랬다. 그런 다음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며, 짧은 현재의 시간 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거기 서서 기다렸다. 종아리에 기대어놓은 가방은 그를 안심시켜주고,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려는 것이었다. 실용적인 조치였다. 가방 덕분에 그는 상황의 희생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주도자로 보였다. 전통적으[78쪽]로 손에 가방을 들고 떠난 사람들은 되돌아왔다. 잠옷 바람으로 잠자리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

이것이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들 중 하나였다. 거기 서서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용감한 행동일까 비겁한 행동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닌--그저 합리적인 행동인가? 그는 답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79쪽]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경기도 파주: 다산북스, 2017)
 

쇼스타코비치. 혁명. 소련. 숙청. 예술.

2020-08-11

앨버트 O. 허시먼, 노정태 옮김, 『정념과 이해관계』(서울: 후마니타스, 2020)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앨버트 O. 허시먼의 <정념과 이해관계>. 자본주의가 역사의 승자로 자리매김하기 전, 어떤 정치철학적 논쟁을 통해 지금의 위치를 확보했으며, 어째서 그런 논쟁들이 잊혀지게 되었는지 따져 묻는, 짧지만 강렬한 대작입니다.

저는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 제게 이런 책을 번역할 기회를 주시고, 무한한 인내로 기다려주신 후마니타스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번역은 여러모로 미흡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허시먼은 '쉽고 명료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렵고 좋은' 문장을 쓰죠. 그가 전개하는 심도 깊은 논의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루 질정 부탁드립니다.

2019-09-25

번역 신간 소개: 『밀레니얼 선언』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뉴 인콰이어리> 편집자 맬컴 해리스가 쓴 『밀레니얼 선언』입니다. 1988년생 저자가, 사방팔방 욕먹고 비난당하는 본인 세대의 정치경제학적 형성과 구조에 대해, 마르크시즘적 관점을 가미해 해부한 책입니다. 1983년생 번역자가 한국어로 옮기고 해제를 붙였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미국 또한 '자유로운 교육'은 개뿔이죠. 대학을 향해 끝없는 돈놓고 간판먹기 게임을 벌이는데, 설령 입시 경쟁에서 이긴다 해도 수만 달러씩 빚을 지고 인생의 출발선에 서는 것이 미국 밀레니얼의 삶입니다. 한국의 청년층의 그것과 너무도 닮은꼴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 사회는 자기 재능을 떨치고픈 이에게 작업, 샘플 제작, 홍보, 기회 비용 등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오직 젊은 재능의 성공만을 '공유'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래퍼 치프 키프는 음반을 25만장 못 팔면 이후 앨범 출시 계약이 취소되는 조건을 걸고서야 메이저 레이블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다양한(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사례와, 그것을 관통하는 이론적 시각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 당사자가 쓴 밀레니얼 세대론은 미국에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책이 나왔고 서점에 배본은 빠르면 내일, 늦어도 이번주 내로 완료될 예정입니다. 그때 링크를 첨부하고, 날짜를 바꿔 다시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07-16

세계적 작가, 혹은 한낱 '민족 배반 변절자'

. . 그[장혁주]의 이름은 해방 후 임종국이 쓴 『친일문학론』의 한 귀퉁이에 '친일 작가'로 잠깐 거명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작품집 『쫓기는 사람들』과 『소년』이 에스페란토어로 번역되어 폴란드와 체코에서 출간되고, 단편집 『산령(山靈)』이 중국어로 번역·출판된 사실, 그리고 그가 86세 때인 1991년에 인도의 출판사를 통해 Forlon Journey라는 영어로 쓴 장편소설을 출간했던 사실 역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에 그는 1952년에 일본으로 귀화함으로써 재일 조선인들로부터 '민족을 배반한 변절자'로만 기억되었다.

김철,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서울: 문학과지성사, 2008), 164p.

2019-04-15

저신뢰사회의 문학: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작가가 트위터를 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는 책을 소개하면서 5점 만점의 '일독 권유지수'를 매기고 있었다. 매사 불만이 많은 나는 그 '일독 권유지수'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꼈다. 차라리 그냥 '별점'이라고 하던가, '일독 권유지수'라니 그 명칭은 무엇인가. 그는 이미 그 시점에 여러 문학상을 두루 휩쓴 폭풍같은 신예 작가였는데, 그런 분께서 책에 별점을, 아니 '일독 권유지수'를 매기고 있다니. 나는 불평했었다.

제법 오래 전 일을 떠올린 이유는 그의 책 『당선, 합격, 계급』을 읽었기 때문이다. 별 생각 없이 집어들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다. 재미있을 뿐 아니라 문학을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지점을 정확하게 짚었으며,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당선, 합격, 계급』은 문학'만'에 대한 책이 아니다. 물론 문학상과 공채, 그리고 '등단'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규칙 중 하나인 '입시'(入試)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책을 펼치면 곧 나오는 핵심 문단 두 개를 인용해보자.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入試)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제도, 각종 고시나 전문직 자격증 시험도 모두 본질적으로 같다.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고, 지극히 한국적이다. 지원자는 모두 한 시험장에 들어가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친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불합격자가 생긴다. 불합격자들이 좌절로 괴로워하는 동안 합격자들은 불합격자들과 멀어진다. 그들은 합격자들의 세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패거리주의, 엘리트주의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17쪽]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장강명은 이러한 '입시'의 성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나름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법고시를 폐지하고 로스쿨로 대체하는 것 같은, 말하자면 '동쪽 문을 닫고 서쪽 문을 여는' 것은 진정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현재 변호사시험의 난이도와 합격률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떠올려보자. 변호사시험을 통과한 '로변'들은, 마치 사법시험 출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문을 최대한 조금만 열어두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받았던 차별은 지난 일이고, 이제는 성에 들어왔으니 성문을 걸어닫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폐쇄적인 성벽이 생겨나는 이유는 정보의 격차 때문이다. 성 안 사람들은 성 밖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지 않는다. 가령 '문단'은 정부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지원금과 해외 연수 등의 정보를 독점하며, 문인들의 추천권을 행사한다. 그러니 젊은 작가들은 문단의 눈치를 본다. 또한 한국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 그런 독자들에게 소설을 소개해야 하는 기자들은, 책값보다 귀한 시간을 허공에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창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등으로 대변되는 주요 출판사의 책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입시의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 르포 작가 장강명의 분석이다.

간판의 본질적인 힘을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간판의 중요성이 모든 방향으로 동시에 낮아진다.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글 잘 쓰는 미등단 작가, 연봉도 높고 복지 혜택도 다양한 중소기업, 일 잘하는 비명문대 졸업생이 분명히 있지만, 찾기가 너무 어렵다. 잘못된 선택을 내렸을 때 져야 할 부담도 너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억지로 모험을 강요할 수는 없다.

모험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그려 제공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지금 한국의 독서 생태계나 노동시장은 너무 깜깜하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합격했다'는 간판들만 빛나는 어두운 거리 같다. 안내소에 있는 지도는 부정확하거나 누락된 정보가 많다. 얼마간은 그런 지도를 그리는 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정확한 지도 제작과 보급을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429쪽]

나는 이 분석에 동의한다. 그냥 동의하는 차원을 넘어, 장강명의 '일독 권유지수'도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사는 돈보다 책을 읽느라 들어간 시간을 더 아까워하는 수많은 독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책 많이 읽고 작가로서의 권위도 가지고 있는 장강명이 책을 소개하고 읽을지 말지 미리 판단해주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꼭 그렇게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는지, 몇 년 전의 나를 꾸짖었다. 『당선, 합격, 계급』은 이렇게 문단이라는 느슨한 '취향의 공동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내놓는, 최근 보기 드문 훌륭한 논픽션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열렬하지 않았다. 아니, 독자들의 외면을 받거나 했다는 말은 아니다. 많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좋은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한국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거나, 장강명이 한국 문학의 '젊은 신예'를 넘어 어떤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때문이다.

누구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선, 합격, 계급』은 기자가 쓴 책이다.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을 취재했다면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의 말도 들어보는 훈련이 확실히 되어 있는 저자가, 바로 그런 식으로 사안에 접근해가는 책이라는 말이다. 바로 위에 인용한 '간판과 정보 격차'에 대한 문단만 봐도 그렇다. 간판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지도 제작을 가로막고 있는 현황을 실컷 지적했지만, 장강명은 비분강개하지 않는다. '물론 지도 제작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다른쪽의 입장에서도 한 마디 덧붙여준다.

바로 이런 균형감각이 『당선, 합격, 계급』을 좋은 책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 균형감각으로 인해, '이 썩어빠진 문단'에 침을 뱉고 싶거나, 반대로 '문단이라는 게 그렇게 나쁜 게 아니다 우리의 한국 문학 화이팅'을 외치고 싶은 사람들 중 그 누구로부터도 열화와 같은 성원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어떤 이들은 문학상을 휩쓴 장강명이 불현듯 개심하여 '문단권력과 맞서는 레지스탕스'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테고, 다른 이들은 문학상을 휩쓴 장강명이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꿀팁 대방출'을 해주리라 기대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장강명은 아주 공들여서 양쪽 모두를 적당히 실망시켰다. 반대로 나처럼 한국 문학에 큰 관심이 없는, 비소설 분야를 주로 읽는 독자를 만족시켰고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하지는 않다. 특히 '객관식 시험'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이 왜 생겨났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저자가 알면서도 다소 박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이 시험 성적을 믿는 것은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력직 중심의 채용 구조가 돌아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채용 담당자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뽑는 대신, '본인이 꽂아넣고 싶은 사람'을 뽑을 거라 생각한다. 대학의 입시 과정을 각 대학에 자율로 맡기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한국은 '모든 정보를 최대한 공개하여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사회에 속한 각 개인의 복리를 최대한 증진하는 방법이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나라다. 그래서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라인'을 만들고, 학연 지연 혈연 흡연으로 패를 갈라 똘똘 뭉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쳐지고 만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경제 수준은 세계 10위권이지만 대단히 낮은 수준의 저신뢰사회이기에, 사람들은 '좋은 전문가'를 찾기 이전에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직에 앉아있는 전문가'를 피해야 한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렇게 말이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 아무리 학생들과 소통을 잘 하고 훌륭한 교수법과 교육 철학을 갖췄다 하더라도 토익 점수가 400점대라면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걸러내지 못하는 게 지금 한국의 교육 현실이다. 대한민국 교육행정은 교단에 그런 교사가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318쪽, 강조는 인용자]

입시를 통해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 말고, 성 밖에 있는 사람들도 왜 입시에 찬성하는가? 숫자로 환원되는 객관식 시험의 결과는 누군가가 '최고, 최선'의 인재라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장강명 스스로가 위 인용문에서 말하고 있다시피, 객관식 시험은 어떤 이가 완전히 부적격한 존재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유용할 수도 있다. 한국이 저신뢰사회라는 점을 인식하고, 얼마나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은지 파악하여 대응하지 않는 한, 입시라는 체제에 대한 한국인 전반의 선호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장강명의 프로젝트성 전자책 출판물인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접했다. 그가 『댓글부대』를 통해 얻은 두 번째 상금을 출원하여, 책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원고를 청탁하고 취합하여 내놓은 서평 모음집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 소설에 큰 관심이 없는 독자인 나도 퍽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건 찾아봐야지 싶은 책도 몇 권 건졌다. 저신뢰사회는 바로 이런 식으로 극복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장강명이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하는 것만큼이나,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계속, 가급적이면 한 해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내주면 좋겠다. 종이책을 내면 제작비와 재고 부담이 크니, 뜻이 맞는 출판사를 통해 전자책 전용으로라도, 이번에는 단돈 삼천원이라도 받고 팔면서 똔똔이라도 맞추면 좋겠다. 나는 사서 볼 생각이 있다. 그러다보면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읽을 것이고, 문단이라는 입시의 성 바깥에서 자생력 있는 취향의 공동체가 싹틀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19-04-02

도올 김용옥과 안아키즘

94. 의학이 발달할수록 인류의 건강은 퇴보하고 인간이라는 종자(human species)는 퇴행한다.


홍역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홍역이라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든지 앓았던 것이요 어릴 때 앓을수록 좋았고 또 이삼일내로 꽃이 활짝 피면 좋았던 것이다.


우리는 밭에 씨(종자)를 뿌릴 때 수확을 거둘 정확한 량의 종자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씨는 많이 뿌리되 싹이 돋아나면 어릴때 그것을 솎는다. 그래야 불량한 싹은 도퇴[sic.]되고 건강한 종자가 살아남으며 자양에 필요한 공간이 확보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자라면 누구든지 홍역을 앓는다는 사실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최소한의 통과의례였다. 자연은 매우 잔혹한 것 같지만 그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다. 그래서 라오쯔는 "天地不仁"(대자연은 잔인하다)이라 한 것이다.

옛날에 홍역이 돌면 많을 때는 반이상의 어린아이가 죽었다. 옛날에 유아사망이 많았던 가장 큰 가장 지속적인 이유가 홍역이었다. 인간은 홍역을 앓고 또 살아남음으로서만 인간이 인간이라는 개체로서 존립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래서 열악한 종자는 일찍이 도퇴[sic.]되고 그 통과의례를 거친 강건한 개체만이 문명의 주역으로서, 그 면역능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의학의 발달은 이러한 자연의 통과의례를 없애버렸다. 온갖 백신이 쏟아져나와 이러한 통과의례를 없애버리고 출생률과 생존률을 거의 일치시켜버렸다. 우리는 옛 왕가에서 제한된 계보내에서 혼인(생식)을 계속하면 할수록 그 왕가의 종자가 생물학적으로 열성화되어간 예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인브리딩(inbreeding)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마찬가지로 의학의 발달은 인종을 같은 방식으로 위협한다. 의학이 발달되면 될 수록 인간종자는 퇴화할 수밖에 없으며 필요한 자연능력의 상실로 고통을 받게될 것이다.

김용옥, 『기옹은 이렇게 말했다』(서울: 통나무, 1994), 100-101쪽



일러두기: 인용자는 이와 같은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2019-02-04

"그때까지 여행을 건강하게 잘 버텨낸 할아버지의 잉꼬 두 마리가 압수되는 것을 온 가족이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1933년 11월 형제들과 어머니, 외조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왔을 때, 마이클은 아홉살 반이었다. 이미 몇달 전에 베를린을 떠났던 아버지는 사실상 난방이 되지 않는 에든버러의 석조 주택 안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밤늦게까지 사전과 교[206쪽]과서와 씨름하는 중이었는데,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에서 소아과 교수로 재직했던 그였지만 영국에서 계속 의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익숙치 않은 영어로 의사 면허시험을 다시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이클이 쓴 자전적 기록에 따르면, 아버지 없이 미지의 땅으로 이주해가는 가족의 걱정과 두려움이 극에 달했던 것은 도버에서 통관절차를 밟을 때였다. 그때까지 여행을 건강하게 잘 버텨낸 할아버지의 잉꼬 두 마리가 압수되는 것을 온 가족이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온순한 새들을 빼앗긴 것, 그 새들이 일종의 막 뒤로 영원히 모습을 감추는 것을 무기력하게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새로운 나라로 이주하는 것이 일정한 상황 아래서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경험까지 강요하는지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마이클은 썼다. 도버의 세관에서 잉꼬가 사라진 사건은 그 이후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새로 획득하게 되는 정체성 뒤로 베를린의 유년시절이 사라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이 연대기 기록자는 실종된 아이를 위한 추도사를 쓰기에도 부족할 만큼 별로 남은 것이 없는 기억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내 안에는 내 고국이 얼마나 적게 남아 있는가(How little there has remained in me of my native country).[207쪽]

W. G. 제발트, 이재영 옮김, 『토성의 고리』(경기도 파주: 창비, 2011), 206-207쪽

2019-01-21

새 번역서, <야바위 게임>이 나왔습니다.

번역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야바위 게임>. 원제는 Rigging the Game입니다. 영어 단어 Rig의 어감을 어떻게 살릴까 하다가 일단 가제를 달았는데, 출판사측에서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책의 저자인 마이클 슈월비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가령 앤서니 기든스처럼 학술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슈퍼스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교수, 훌륭한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야바위 게임>은 미국의 10여개 대학에서 불평등과 관련한 사회학 수업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번역을 위해 책을 꼼꼼히 읽어보니 잘 알겠더군요.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갈고 닦아온 방법론과 화법이 촘촘히 배어들어가 있습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학생들에게 단번에 느끼게끔 하기 위해, 10명을 교실 앞으로 불러내어 종이접시를 나눠주는 것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상위 10%가 종이접시 열 개 가운데 일곱 개 이상을 차지해버리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학생들로서는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이렇게 학생들의 이목을 잡아챈 후, 수업이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마이클 슈월비는 간단한 사례나 우화를 만들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곤 했나봅니다. <야바위 게임>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덕분에 학생 뿐 아니라 번역자 역시 틈틈이 쉬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순전히 '재미'로만 읽을 책은 아닙니다. 또한 저는 이 책의 내용에 백퍼센트 동의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불평등은 제도와 차별, 약탈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술의 발전이나 새로운 지식과 가치의 창출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히 갓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상대로, 주로 경제 영역에서의 불평등에 대해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야바위 게임>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블로그에 소개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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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황교익의 레퍼런스, 『맛의 달인』

『맛의 달인』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최고의 맛을 찾아 나선 신문사 기자 지로와 미식가인 아버지 우미하라가 요리 대결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지로와 우미하라가 닭고기 요리를 놓고 대결을 펼치게 되면, 먼저 서로 가장 맛있는 닭고기부터 찾는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닭고기는 좁은 닭장에서 인공 사료를 먹이며 대량 사육되는 닭임을 확인시켜주고, 진짜 맛있는 닭고기는 자연 상태에서 천연 사료를 먹고 자라는 닭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후 닭고기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요리법을 연구하고 시식회를 열어 우열을 가린다.

몇 해 전 『맛의 달인』을 탐독하면서 지로 방식으로 맛의 세계를 깨쳐나가기로 작심하고 음식 재료 공부에 몰두한 적이 있다. 가령 '최고의 김치'를 상정하고는 그 작품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 황교익, 『소문난 옛날 맛집』(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225쪽. 강조는 인용자.

황교익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시피, 그의 '미식'은 일본 만화 보고 배운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것은 그가 자신의 책에 직접 써 놓은 내용이다.

2017-12-31

독서 목록(2017)

1. 20170103 - 파벨 차졸린, 정건 옮김, 『Enter The Kettelbell!』(경기도 고양: 대성의학사, 2011)
2. 20170109 - 마이크 데이비스, 정병선 옮김,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경기도 파주: 돌베게, 2008)
3. 20170114 - 김태경, 『월급쟁이 경매 전략』(서울: 황금부엉이, 2017)
4. 20170122 - 홍성욱 서문, 윤경희 해설, 정은주 옮김, 『백과전서 도판집: 인덱스』(서울: 프로파간다, 2017)
5. 20170129 - 가와바타 야스나리, 장경룡 옮김, 『설국』(서울: 문예출판사, 1999)
6. 20170202 - 새뮤얼 헌팅턴, 형선호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서울: 김영사, 2004)
7. 20170209 - 랜들 먼로, 이지연 옮김, 이명현 감수, 『위험한 과학책』(서울: 시공사, 2015)
8. 20170211 - 다치바나 다카시, 와이다 준이치 사진, 박성관 옮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9. 20170211 - 버튼 홈스, 이진석 옮김, 『1901년 서울을 걷다』(서울: 푸른길, 2012)
10. 20170212 -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지식의 단련법』(서울: 청어람미디어, 2009)
11. 20170215 - 새뮤얼 헌팅턴, 소순창·김찬동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서울: 김영사, 2001)
12. 20170216 - 대니얼 W. 드레즈너, 유지연 옮김, 『국제정치 이론과 좀비』(경기도 파주: 어젠다, 2013)
13. 20170217 - 다치바나 다카시, 박연정 옮김, 『청춘표류』(서울: 예문, 2005)
14. 20170219 - 다가와 히데오 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양선하 옮김, 『생물이 사라진 섬』(서울: 비룡소, 2002)
15. 20170219 - 이로, 『일본 돈가스 만필집』(서울: 문자그대로 프레스(유어마인드), 2017)
16. 20170302 - 김윤식, 『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서울: 소명출판, 2012)
17. 20170316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8. 20170318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로재나』(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19. 20170324 - 로버트 맥키, 고영범·이승민 옮김, 『STORY』(서울: 민음인, 2011), 구판제목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0. 20170331 - 도리스 컨스 굿윈, 이수연 옮김, 『권력의 조건』(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3), 개정1판.
21. 20170403 - 전봉관, 『황금광시대』(서울: 살림출판사, 2005)
22. 20170405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김명남 옮김,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23. 20170407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6일』(서울: 오픈하우스, 2016)
24. 20170408 - 제임스 그레이디, 윤철희 옮김, 『콘돌의 마지막 날들』(서울: 오픈하우스, 2017)
25. 20170409 - 미치가미 히사시, 윤현희 옮김,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서울: 중앙books, 2016)
26. 20170414 - 기울리아 엔더스, 질 엔더스 그림, 『매력적인 장腸 여행』(서울: 와이즈베리, 2014)
27.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8. 20170427 - 움베르토 에코, 이세욱 옮김, 『프라하의 묘지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3)
29. 20170505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30. 20170507 - 마거릿 애트우드, 김선형 옮김, 『시녀 이야기』(서울: 황금가지, 2010), 개정판
31. 20170512 - 얀 베르너 뮐러, 노시내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서울: 마티, 2017)
32. 20170512 - 폴 웨이드, 정미화 옮김, 『죄수 운동법』(서울: 비타북스, 2017)
33. 20170520 - 데릭 커크 킴, 김낙호 옮김, 『다르면서 같은』(서울: 길찾기, 2005)
34. 20170521 - 전정식, 박정연 옮김, 『피부색깔=꿀색』(경기도 과천: 길찾기, 2013), 개정 증보판
35. 20170526 -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서울: 민음사, 2009)
36. 20170530 - W. G. 제발트, 이경진 옮김, 『공중전과 문학』(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37. 20170607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38. 20170614 - 정신대연구회·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서울: 한울, 1995)
39. 20170614 - 한국정신대연구소 엮음,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서울: 한울, 2003)
40. 20170618 - 차무진, 『해인』(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7)
41. 20170619 - 윤소영, 『「한국의 불행」: 한국현대지식인의 역사』(서울: 공감, 2016)
42. 20170619 - 헬무트 콜, 김주일 옮김, 『나는 조국의 통일을 원했다』(서울: 해냄, 1998)
43. 20170620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44. 20170623 - 이승원, 『저잣거리의 목소리들』(서울: 천년의상상, 2014)
45. 20170625 - 홍명희, 『임꺽정 1 봉단편』(경기도 파주: 사계절, 2008)
46. 20170702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47. 20170705 - 안병직 번역·해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서울: 이숲, 2013)
48. 20170705 - 모리카와 마치코, 김정성 옮김,『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서울: 아름다운사람들, 2005), 전자책(교보문고)
49. 20170709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경기도 파주: 살림, 2011)
50. 20170710 - 권오상, 『엔지니어 히어로즈』(서울: 청어람미디어, 2016)
51. 20170720 - 류샤오보, 김지은 옮김,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서울: 지식갤러리, 2011)
52. 20170722 - 김정인,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서울: 책과함께, 2015)
53. 20170726 - 박훈,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서울: 민음사, 2014)
54. 20170802 - 조재곤,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서울: 푸른역사, 2005)
55. 20170802 - 고바야시 다키지, 양희진 옮김, 『게공선』(서울: 문파랑, 2014), 개정판.
56. 20170807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1』(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7. 20170809 - 조엔 그린블라트, 안진환 옮김,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책』(서울: 시공사, 2006)
58. 20170811 - 대니얼 예긴, 김태유·허은녕 옮김, 『황금의 샘 2』(서울: 라의눈, 2017), 최신 증보판
59. 20170812 -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경기도 파주: 살림, 2014)
60. 20170813 - 시쿠 다쓰키, 이수미 옮김, 『조작된 시간』(서울: 몽실북스, 2017)
61.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1』(서울: 소명출판, 2004)
62.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2』(서울: 소명출판, 2004)
63. 20170814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3』(서울: 소명출판, 2004)
64. 20170814 - 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서울: 뿌리와이파리, 2017)
65. 20170815 - 이해조, 박진영 편, 『쌍옥적』(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6), 미스테리아 7호 부록
66. 20170817 - 정교, 조광 편, 이상식 역주, 『대한계년사 4』(서울: 소명출판, 2004)
67. 20170818 - 폴 크루그먼, 이윤 역해, 『폴 크루그먼의 지리경제학』(서울: 창해, 2017)
68. 20170820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상)』(서울: 황금가지, 2004)
69. 20170821 - 김민규,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서울: 위즈덤하우스, 2017)
70. 20170827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중)』(서울: 황금가지, 2004)
71. 20170828 - 스티븐 킹, 정진영 옮김, 『그것(하)』(서울: 황금가지, 2004)
72. 20170830 - 존 메이너드 케인스, 정명진 옮김, 『평화의 경제적 결과』(서울: 부글, 2016)
73. 20170830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정현규 옮김, 『젊은 베르터의 고통』(서울: 을유문화사, 2010)
74. 20170902 - 랜들 먼로, 조은영 옮김, 『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서울: 시공사, 2017)
75. 20170903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7)
76. 20170903 - 남세희, 『통증홈트 목·어깨』(서울: 중앙북스, 2017)
77. 20170905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1』(서울: 민음사, 2012)
78. 20170907 - 윤재수,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서울: 길벗, 2017), 4차개정판
79. 20170909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 다윈 쿡 그림,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아웃핏』(서울: 시공사, 2014)
80. 20170910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죄와 벌 2』(서울: 민음사, 2012)
81. 20170914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서울: 민음사, 2010)
82. 20170918 - 알렉산더 클루게, 이호성 옮김, 『이력서들』(서울: 을유문화사, 2012)
83. 20170919 - 프랑크 베데킨트, 김미란 옮김, 『눈뜨는 봄』(서울: 지만지, 2008)
84. 20170919 -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Y의 비극』(서울: 시공사, 2013)
85. 20170922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86.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1』(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7. 20170924 - 마쓰모토 세이초, 이병진 옮김, 『모래그릇 2』(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3)
88. 20170926 -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7), 전자책(리디북스)
89. 20171005 - 마츠오 바쇼오, 유옥희 옮김, 『마츠오 바쇼오의 하이쿠』(서울: 민음사, 1998)
90. 20171008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1』(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1. 20171014 - 데이비드 매콜리 글·그림, 조동섭 옮김, 『미스터리 모텔』(서울: 마루벌, 2009)
92. 20171015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2』(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93. 20171015 - J. D. 밴스, 김보람 옮김, 『힐빌리의 노래』(서울: 흐름출판, 2017), 전자책(리디북스)
94. 20171015 - 귄터 그라스, 이수은 옮김, 『라스트 댄스』(서울: 민음사, 2004)
95. 20171017 - 쥘리 다셰 글, 마드무아젤 카롤린 그림, 앙혜진 옮김,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 아스퍼거 증후군 이야기』(서울: 이숲, 2017)
96. 20171018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7. 20171020 - 러디어드 키플링, 남문희 옮김, 『정글북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전자책(리디북스)
98. 20171022 - 이언 뱅크스, 김상훈 옮김, 『말벌공장』(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05)
99. 20171023 - 윌리엄 마치, 정탄 옮김, 『배드 시드』(서울: 책세상, 2009)
100. 20171023 -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장인선 옮김, 『보이 A』(경기도 파주: 이레, 2009)
101. 20171024 - 허버트 조지 웰스, 한동훈 옮김, 『타임머신』(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전자책(리디북스)
102. 20171026 - 라이오넬 슈라이버, 송정은 옮김, 『케빈에 대하여』(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2)
103. 20171026 - 애거서 크리스티, 권도희 옮김, 『비뚤어진 집』(서울: 황금가지, 2013)
104. 20171028 - 남세희, 『통증홈트 허리』(서울: 중앙북스, 2017)
105. 20171103 - 박성식, 『공간의 가치』(경기도 용인시: 유룩출판, 2016), 제2판
106. 20171110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1』(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7. 20171111 - D. H. 로렌스, 최희섭 옮김, 『채털리 부인의 연인 2』(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08. 20171112 - 에바 가브리엘손, 마리프랑수아즈 콜롱바니, 황가한 옮김,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서울: 뿔, 2011)
109. 20171113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오리엔트 특급 살인』(서울: 황금가지, 2013)
110. 20171115 - 마강래, 『지방도시 살생부』(경기도 고양: 개마고원, 2017)
111. 20171116 - 라종일,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경기도 파주: 창비, 2013)
112. 20171118 - 김건우,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충남 홍성군: 느티나무책방, 2017)
113. 20171129 - 이시필, 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서울: 휴머니스트, 2011)
114. 20171201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서울: 민음사, 2016)
115. 20171201 -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1~2 합본)』, (서울: 민음사, 2013), 전자책(리디북스)
116. 20171206 - 신기욱, 『슈퍼피셜 코리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7)
117. 20171209 - 폴 비티, 이나경 옮김, 『배반』(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118. 20171209 -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경기도 파주: 한울, 1991)
119. 20171215 - 테어도르 카진스키, 조병준 옮김, 『산업사회와 그 미래』(서울: 박영률출판사, 2006), 개정판.
120. 20171217 - 제인 오스틴, 김정아 옮김, 『오만과 편견』(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전자책(리디북스)
121. 20171230 - 토머스 모어, 류경희 옮김, 『유토피아』(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전자책(리디북스)

2017-12-30

올해의 책 다섯 권

2017년에 발행되어 2017년에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다섯 권을 꼽아보았다.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김용언의 『문학소녀』는 전혜린이라는 문제적 작가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문학계의 남근주의, 여성 작가에 대한 멸시, 여성 작가들이 주로 종사한다고 여겨지는 산문(에세이)에 대한 저평가 등을 다룬다. 특히 전혜린은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일본의 프레임을 거치지 않고 독일어 문학을 접하고 향유하며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눈으로 골라낸 책을 공들여 한국어로 옮김으로써,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어떤 감수성, 한 남성 평론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전혜린을 (재)소개하는 대목이 책의 절정을 이룬다. 모질게 저평가당하고 매도당해온 작가/번역가, 그를 대상으로 한 국문학계의 연구 성과, 그리고 페미니즘에 목마른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인 김시덕은 일본 유학 시절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異征伐記の世界)』라는 책을 썼다. 그 작업을 통해 40세 이하 고문헌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학술상인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수상하였는데, 해당 학술상을 외국인이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귀국한 후 『그들이 본 임진왜란』(201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등으로 넓은 독자층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책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는 2016년 말 『일본의 대외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전쟁의 문헌학』은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동국통감』과 『신간동국통감』, 『징비록』과 『(조선) 징비록』 등 고문헌의 이름과 내용과 전래 과정이 오가는 가운데 독자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에스콰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시덕이 "김시덕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타자에 모르면서 모르는 상태로 이기고 싶어한다는 것.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주대환은 선거보다 정책을, 정치보다 세계관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직을 역임하던 시절, 기존 진보 진영의 관성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해왔다(고 한다). 그 민주노동당이 10여년의 세월동안 풍비박산나고 있던 과정에서, 주대환은 한국의 정치의 이면에 깔린 세계관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그 최초의 고민이 담긴 책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2008)였고,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그 문제의식에 구체적인 살을 붙이고 간명한 레토릭까지 추가한 작업이다. 그는 진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는 소위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계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해방된 조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판타지를 유지하려다보니 북한 정권의 폭압적 인권 탄압에 눈을 감고, 현실성 없는 대외 정책만을 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방에'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나이만 먹은 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주대환은 거침없이 폭로하며, 새로운 진보를 위한 대안 서사를 제시한다. 문제는 그 서사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무협지적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 '사이다'에 중독되어 '적폐' 사냥에 맛을 들인 오늘날의 대중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자타공인 '지한파'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마크 리퍼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얼굴에 칼을 맞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정말 알아야 할 지한파 미국인을 딱 한 사람 꼽으라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이름을 답으로 내놓아야 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이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일독을 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고, 또, 예상 가능하다시피 국내 독서계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당하고 매장당한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비단 '주사파'나 'NL 운동권'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의 피해자' 서사와 그에 기반한 반미주의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반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로 잘 알려진 '미군 장의사 한강 포름알데히드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미국 내에서도 포름알데히드를 버릴 때에는 그냥 강물에 희석시킨다, 다시 말해 수돗물 틀어놓고 쏟아붓는다고 말이다. 해당 미국인 군무원은 일부러 한국민의 젖줄을 더럽힌 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포름알데히드를 처리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했고, 시위했고, 영화도 찍고, 이후에는 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뉴스를 주로 접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래야 '자기객관화'라는 것을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개인적으로 2017년은 뜻깊은 해였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기습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는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가 된 심정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고, 그 결과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해당 매체에서 전화 통화를 통해 고지한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연달아 썼으며, 블로그에 글을 쓸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의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와 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적 맥락 속에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었다. 1960년부터 소련을 방문해가며 소련 기술사를 연구해왔던 미국인 학자 로렌 R. 그레이엄이 천착하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표트르 팔친스키였다. 소련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숙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산업당(Industrial Party)' 사건. 그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한 팔친스키는, 숙청 대상자가 대부분 그렇듯, 말소당한 기록 속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그는 끈질긴 자료 추적과 해석을 통해, 제정 러시아가 교육시켰고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뛰어난 엔지니어가, 중후장대한 성과를 요구하는 볼셰비키와의 갈등 속에서 짓밟혀버리고 마는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짧지만 강렬하고 큰 여운을 남기는 저작으로, 북한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를 다룬 책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2017-05-31

E. H. 카의 글쓰기 방법론

비전문가들--말하자면 학계에 있지 않은 분들 혹은 다른 학문분야에 있는 분들--은 이따금 나에게 역사가는 역사를 쓸 때 어떻게 작업하느냐고 묻는다. 역사가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가지 단계나 기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생각인 것 같다. 우선 역사가는 자신의 사료들을 읽고 그의 노트를 사실들로 채우는 데에 오랜 준비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나서 이 일이 끝난 다음에는 사료들을 치워놓고 노트를 꺼내 든 채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나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으며 그럴듯해 보이지도 않는다. 내 경우에는, 주요한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 중에서 몇 가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너무나 좀이 쑤셔--반드시 처음부터가 아니더라도, 어디부터이든 상관없이--쓰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는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기를 계속하는 동안 쓰기는 추가되고 삭제되며 재구성되고 취소된다. 읽기는 쓰기에 의해서 인도되고 지시되며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나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알게 되고, 내가 찾고 있는 것의 의미와 연관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어떤 역사가들은 아마도, 마치 어떤 사람이 장기판과 말이 없어도 머릿속에서 장기를 두듯이, 펜이나 종이나 타이프 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 준비단계의 글쓰기를 모두 머릿속에서 할 것이다: 이는 내가 부러워하는, 하지만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다. 그러나 나는 역사가라는 이름에 값하는 모든 역사가에게는 경제학자가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라고 부르는 그 두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며, 실제로 그 두 과정은 단일한 과정의 부분들이라고 확신한다. 만일 그것들을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가지 이단론들 중의 어느 하나에 빠지게 된다. 여러분은 의미나 중요성을 무시하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거나 아니면 선전문이나 역사소설을 쓰게 될 것이며,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부류의 글쓰기를 치장하려고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E. H. 카,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서울: 까치, 2015), 개역판, 44-45쪽.

이 글에서 E. H. 카의 목적은 '사실'의 수집에 집착하는 랑케 식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맥락에 이미 식상해버린 오늘날의 독자, 즉 나는, 순수하게 '작업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 대목을 재미있게 읽었다.

자료를 한도 끝도 없이 모으고, 참고문헌 목록을 영원히 갱신하고, 스스로의 논리를 (완성을 위한 텍스트가 아닌 간단한 메모나 그조차도 없는 망상의 형태로) 반박하고 또 반박하는 등의 행동은, 심지어 석사 논문같은 간단한 관문을 통과할 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고 있다,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기려는 게 아니라면, 일단 쓰기 시작해야 한다. E. H. 카의 말처럼 '좀이 쑤시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말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내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상식적이다.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최초의 구상안에서 빗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자료들을 다 모은 후, 읽고, 일일히 손으로 베낀 후, 그것들을 편집하고 원고로 쓰면서 다시 베껴썼다는 토니 주트의 글쓰기 방법론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 이미 완성된 글을 그저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 E. H. 카는 짐짓 겸손한 태도로 본인이 그러한 경우에 속하지 않음을 밝히며, 그 과정에서 '가위와 풀'(오늘날의 표현대로 하자면 '복붙')로 대변되는 랑케의 역사관에 반대했던 것이다.

2017-02-03

'백인 현지인주의white nativism'

1993년에 <뉴스위크>에서 데이비드 게이츠는 「무너짐Falling Down」이란 영화를 묘사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열연한 백인 전직 군수회사 직원은 자신이 볼 때 다민족, 다인종, 그리고 다문화 사회가 자신에게 가하는 손실, 패배, 분노, 그리고 모욕에 반응한다. 게이츠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와 같은 분노와 모욕은 백인들의 고난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더글러스를--흰 셔츠와 타이, 안경, 그리고 단정한 머리의 구시대 모범생 모습인 그를--다양하고 화려한 L.A. 사람들의 혼합에 대비시킨다. 이것은 다문화적 미국에서 궁지에 몰린 백인 남성의 만화적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은 만화에 불과한 것일까?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가 7년 후에,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과 관련해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있었던 투표에 대해 한 얘기를 생각해보라.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쪽의 사람들은 전적으로 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이었고, 거의 모두가 남부 출신이었고, 한 사람만 빼고 남성이었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쪽의 사람들은 천주교도, 유대교도, 흑인, 여성, 게이, 그리고 한명의 남부 WASP 남성이었다. 이와 같은 열정 속에서 남성 WASP들이 미국 사회에서 줄어들고 있는[380쪽] 자신들의 역할에 대항해 일으키는 반란을 보기는 그렇게 어려운가?"

그와 같은 '반란'과 그 이유들을 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사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오한 인구적 변화들이 다양한 형태의 반응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특이하고 인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 가장 있음직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백인 남성이고, 근로계층이고, 중산층인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은 그와 같은 운동 속에서 그와 같은 변화들을, 그리고 자신들이 볼 때 점점 더 줄어드는 자신들의 사회적 및 경제적 지위, 이민자들과 외국들에 빼앗기는 일자리,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약해지는 것, 그리고 자신들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 침식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인종적 및 문화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반反히스패닉, 반흑인, 그리고 반이민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과거에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다수의 인종적 배타주의 및 반외국인 운동과 비슷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는 사회적 운동, 정치적 집단, 지적 조류, 그밖의 다양한 저항들은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백인 현지인주의white nativism'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일 수 있다.

새뮤얼 헌팅턴, 형선호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경기도 파주: 김영사, 2004), 380-381쪽.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헌팅턴이 말하는 바 '백인 현지인주의'를 오늘날의 우리는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ism'라고, 혹은 더 줄여서 그냥 '인종주의'라고 부른다. 헌팅턴 스스로는 뒤이어지는 서술에서 "이와 같은 종류의 백인 현지인주의를 극단주의 과격파 집단들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382쪽)고 주장하나, 2017년의 우리는 그런 안일한 소리에 설득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대목은 길게 인용해놓은 후 종종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2004년에 출간된 이 책 Who Are We?가, 헌팅턴의 다른 저작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해당 시점으로부터의 미래 전개를 예측하는데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용된 내용은 트럼프의 당선을 '노동 계급'과 연결짓고 싶어하는 '진보'의 발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노동을 하는 백인-미국인'일 뿐 진보에서 가정하는 '노동계급'이 아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는 백인 우월주의자 혹은 '백인 현지인주의자'의 그것일 뿐 진보적 의제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식자층은 트럼프 당선을 어떻게든 '노동'과 연결짓고 싶어하며, 반대로 헌팅턴은 '백인 우월주의'와 '백인 현지인주의'가 다르다고 끝내 우겨댄다.

반면에, 그["이를테면 1990년대에 잠시 미시건과 서부의 몇몇 주들에서 번창했던 민병대 운동이나 오직 반유대인 내지 반흑인 성격만을 띠면서 KKK에서 비롯한 선입견을 반영하는 온갖 종류의 '증오 집단들'"(382쪽)]보다 폭이 넓은 현지인주의 운동은 미국 사회의 새로운 현실에 대한 반응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의 지도자들은 과격파 집단의 지도자들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에서 많은 이들은 캐롤 스웨인이 말한 '새로운 백인 국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이고, 지적이고, 종종 미국의 일부 명문 대학들과 대학교들에서 인상적인 학위를 받은 사람들로서, 이 새로운 종의 백인 인종적 국가주의자들은 대중주의 정치인들이나 '옛날 남부'의 KKK 단원들과 전혀 다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이 아니다. 이들이 믿는 것은 "인종적 자립과 자존이며" 미국이 "빠르게 비백인들의 지배를 받는 국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따르는 전통은 호레이스 캘런, 다문화주의자, 그리고 국가적 정체성의 이분법 개념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인종, 민족성, 그리고 문화를 하나의 꾸러미로 묶으려 한다. 이들에게 인종은 문화의 원천이며, 개인들의 인종성은 고정된 것이고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개인들의 문화 역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인종적 균형이 변하는 것은 문화적 균형이 변하는 것이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백인 문화 대신에 그와 다르고 (그들이 볼 때) 지적 및 도덕적으로 열등한 흑인이나 갈색인 문화가 득세하는 것이다. 인종과 따라서 문화의 이와 같은 섞임은 국가적 타락의 길이라고 그들은 본다. 이들에게 있어서, 미국을 미국으로 보존하려면 미국을 백색white으로 유지해야 한다.(383쪽,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말이 결국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 만들자'는 말과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트럼프 본인이 진심으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그의 선거 슬로건이 그에게 표를 던진 이들, 가령 '러스트 벨트의 노동 계급'의 인종주의적 감수성을 직격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헌팅턴의 책에 따르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백인 현지인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헌팅턴의 주장과 달리 그가 소개하는 내용에 따르면 '백인 현지인주의'는 인종분리정책 등을 추구하거나 그에 동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게다가 차별주의자들이 늘 그렇듯 주장하는 바 그 자체에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한 문단 안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백인들의 인종적 우월성이 아니"라고 전달한 후, '백인 현지인주의'자들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백인 문화 대신에 그와 다르고 (그들이 볼 때) 지적 및 도덕적으로 열등한 흑인이나 갈색인 문화가 득세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서술할 수 있단 말인가? '백인 현지인주의'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는 인종차별주의임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말이다.

아무튼 미국은 그런 나라가 되었다. 혹은, 그런 나라가 아닌 척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리버럴 엘리트'를 꼬까워하는 '노동 계급'의 이탈로 인해 거대한 퇴행을 감당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이 책은 '백인 현지인주의'에 존재의 당위와 면죄부를 제공해주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2017-01-20

오바마는 미국의 노무현인가

일러두기: 군 입대 전, 아직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있던 시절,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작성했던 원고입니다. 2012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 다방면에서 공격당하며 재선 가능성조차 불투명해보였던 그 무렵의 오바마 정권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취임을 앞둔 1분 1초가 아쉽게만 느껴지는 지금, 2010년대 초반의 오바마 정권 평가를 되짚어본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하겠습니다.

출판사의 생각과 제 원고의 방향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이 원고가 담겼어야 할 책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제목을 공개하자면, 『변방에서 세계읽기』라는 가제를 달고 있었죠. 몇 시간 후면 버락 오바마의 임기가 완전히 끝나는 이 시점에, 최소한의 편집만을 가한 후 그대로 웹에 공개합니다. 이 포스트 내용의 상업적 활용을 금지합니다. 재배포 등은 링크를 걸어주신다면 언제나 환영합니다.





오바마는 미국의 노무현인가

버락 오바마는 혜성처럼 등장했다. 조지 W. 부시의 실정, 이라크 전쟁에서의 실패,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대표되는 경제적 파탄 등, 2008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도록 예정된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 빌 클린턴의 아내이며, 영부인이 아닌 '공동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던 바로 그 사람. 힐러리는 진작부터 대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많은 선거자금과 인적자원을 확보해 둔 상태였다.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기사 및 예측으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시사지 <The Economist>는 일찍이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

중앙 정치 경력이라고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당선밖에 없는 '신인' 오바마가 클린턴을 제끼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 전 세계인들은 경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대체 저 사람은 누구인가? 클린턴은 어째서 패배하였는가?

온갖 외신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미 이런 예외적인 정치 현상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당시 '대세'였던 이인제 후보를 꺾고 극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세를 몰아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나를 포함한 적잖은 한국인들은 비교적 평온하게 미국 대선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오, 저기서도 저런 일이 벌어지는군. '미국의 노무현'이라니, 거 참.

버락 오바마, 혹은 '미국의 노무현'?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것은 미국 현지 시각으로 2008년 11월 4일. 그 소식을 전해들은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시각으로 다음날인 11월 5일, 외교안보자문단과의 오찬에서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혼자 그런 말을 하면 쑥쓰러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같은 날 "이 대통령은 대선 이후 일관되게 변화와 개혁을 국정 운영의 중요한 가치로 삼아 왔으며,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은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오바마와 나는 닮은꼴'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네티즌들에 의해 즉각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인터넷은 "이름의 초성이 ㅇㅂㅁ라는 점이 닮았다"는 식의 실소 어린 유머로 순식간에 뒤덮이고 말았다. 분명 그 발언은 희극적인 사건이다. 오바마의 유명세에 기대보려는 시도가 다른 나라에서 없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가령 케냐의 정치인 니콜라스 라줄라(Nicholas Rajula)는 자신이 오바마의 사촌이라고 주장했고, 오바마의 대선 캠프는 그 주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단지 오바마의 아버지가 라줄라의 아버지와 같은 동네에 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거운동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라줄라는 2007년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다. 브라질의 정치인 클라우디오 핸리크 도스 안호스(Claudio Henrique dos Anjos)는 선거 후보자가 원하는 이름으로 출마할 수 있게 해주는 브라질의 선거법을 이용해, 아예 클라우디오 핸리크-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을 달고 선거에 임했다. 만약 그가 당선되었다면 브라질에서도 오바마가 정치를 할 뻔했다.

갑자기 떠오른 벼락 스타 버락 오바마의 유명세에 동참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나,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오바마가 떠오르는 모습에서 이명박이 아닌 노무현의 그림자를 보았다. 비주류 출신이라는 것 뿐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끝없이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다는 것도 그렇다. 오바마는 연설을 통해 자신을 '워싱턴'과 다른 누군가로 포지셔닝했다. 미국의 남부는 철통같이 공화당을 지지하고 동북부와 서부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역적 갈등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고, 오직 하나의 미국이 있을 뿐이라고 웅변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역감정의 골을 넘어서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과업으로 삼은 노무현을 떠올리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의 유사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노무현에게 노사모가 있었다면, 오바마에게는 인터넷 정치 운동 단체 무브온(moveon.org)이 있었다. 무브온의 활동은 전방위적이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방송사 <폭스>에서 오바마를 비방하는 내용의 보도를 연이어 내놓자 50만 명의 서명을 모아 그 방송사에 전달하기도 했고,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과 대결하던 경선장에서도 그를 응원하며 지지를 호소하여 분위기를 몰아갔다.

무브온 뿐 아니라 인터넷 여론 자체가 이미 오바마의 편에 서 있었다. 유명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리더 윌 아이앰(will i.am)은 오바마의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의 승리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아, 다른 이들과 그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 그 유명한 "예스 위 캔"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새로운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 운동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젊고 매력적인 여성이 스스로를 '오바마 걸'이라고 부르며 비키니 차림으로 응원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비슷한 동영상들이 연이어 출현했다. 인터넷을 통한 지지자들의 자발적 집결, 이전의 선거운동과는 다른 감성적 호소, 이 모든 것들은 한국인들이 2002년 대선 과정에서 경험한 그것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소속 정당에서도 소수파인 젊은 정치인이, 젊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앞세워 자발적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폭풍처럼 몰아쳐 대권을 잡는 것, 이 광경에서 노무현과 오바마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심리학자, 노무현과 오바마를 분석하다』(김태형 저, 예담)라는 책이 2009년 출간되기도 했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비주류 출신 대통령 노무현과 오바마는 행복한 유년기, 청소년기의 방황, 청년기의 새로운 도전, 진보운동에의 헌신,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입문, 대권 후보로 급부상, 대권 도전, 대통령 당선 등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두 사람이 극적으로 도약하는 과정에는 분명한 유사성이 있다. 물론 오바마는 명문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배웠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로스쿨을 다니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법학 전문지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을 역임한다. 반면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가지 못했고 10년 동안의 고시공부 끝에 법복을 입었다. 하지만 학력의 차이가 이후 두 사람의 정치적 성장 과정의 유사성을 가려줄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하버드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 중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 <하버드 로 리뷰>에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편집장을 역임했다는 것은, 그 젊은 법조인의 장래가 매우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식으로 말하자면 사법연수원을 1등으로 졸업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이 로스쿨에 온 이유를 잊지 않고, 시카고로 돌아가 민권운동에 헌신했다. 그러한 행동은 '정치적 야심'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카고로 가지 않고 워싱턴이나 뉴욕 등 중심지에서 변호사로 명성을 쌓으면, 워싱턴 정가에서 더욱 쉽사리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고난의 길을 향해 귀환했다.

노무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상고 출신이었고 대학교 인맥도 없었지만, 시험 쳐서 들어가고 시험 점수 따라 판사-검사-변호사의 등급이 갈라지는 법조계는 그에게 비교적 공평한 경쟁의 기회를 제공했다. 영민했던 노무현은 판사 발령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은 후 세무변호사로 변신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계속 그 길을 걸었더라면 그는 대형 로펌의 대표, 혹은 부산 경남 지역의 중견급 정치인으로 성장했겠지만, 우리가 아는 대통령 노무현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그는 잘나가는 세무변호사에서 돈 못 벌고 경찰에게 감시당하는 인권변호사로 변신한다.

여기까지는 드물지만, 사실 희귀하지는 않은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엘리트들이 스스로의 보장된 앞날을 포기하고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왔다. 하지만 그 모든 엘리트들이 오바마나 노무현처럼 극적인 정치적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왜일까? 여타의 경우와 달리 오바마와 노무현에게는 '결정적 순간'이 있었고, 그것을 잡아채는 놀라운 정치적 감각과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와 노무현의 진정한 공통점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소수파 출신이고 개인적인 역경을 진보 운동을 통해 이겨냈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결정적 순간'에 남들과는 다른 용기를 내어 이후의 초석으로 삼았다는 바로 그것 말이다.

오바마와 노무현의 결정적 순간

"어리석은 전쟁을 반대합니다"

하버드에서 로스쿨까지 마치고 돌아온 오바마였지만, 시카고 흑인 공동체에 뿌리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를 거쳐 아이비리그에서 대학을 나온 뜨내기였고, 지역에 뿌리 내린 흑인 공동체는 서로 촘촘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아내 미쉘이 시카고 토박이였고 오바마는 그 덕을 많이 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가 제2의 고향에서 완전히 사랑받는 존재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바마는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바비 러시에게 더블 스코어로 졌다. 절치부심하며 정신을 차린 오바마는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를 목표로 자신과 지지자들을 다잡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결정적 순간'이 다가왔다.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인들이 다 아는 그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의 심장인 뉴욕, 그 뉴욕의 상징인 국제무역센터가 항공기 두 대의 충돌로 인해 허물어졌다. 미국인들은 상처 입은 들짐승처럼 분노했고,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 특히 럼즈팰트 국방장관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않은 모르는 위험'을 제거한다는 명분 하에 이라크 전쟁을 개시할 참이었다. 피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라크전은 베트남전과 많은 면에서 달랐다. 베트남 전쟁과 달리 이라크 전쟁은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병력을 충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뭘 해야 할지 모르던 가난한 청년들이 군대에 가면 대학 보내준다는 말에 혹해서, 혹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리쿠르트 요원들의 꾀임에 넘어가 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지게 된다. 당시 그 젊은이들은 그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분위기는 1960년대의 그것과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반전 집회가 있었지만 대규모로 불타오르지 않았고, 정치권에서도 주류적 견해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후세인의 독재 정권을 몰아내어야 한다는 합의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2004년에는 당신의 인생을 갈라놓을 중요한 선거가 있다. 중앙 정치 무대로 발돋움하느냐, 아니면 한 지역 정치가로 인생을 마무리짓느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다. 국민 여론의 대다수는 전쟁을 지지하며 전쟁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매우 미약하다. 당신의 동료, 경쟁자, 친구들 중 상당수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 분위기에 거스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다. 시카고에서 열린 작은 반전 집회에서 온 초청장을 받아든 오바마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껄끄러운 일은 적당히 넘기면 그만이다. 어떻게 입장을 표현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비 애국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참모들의 '합리적'인 만류를 뿌리치고 오바마는 연단에 섰다. 2002년 10월 2일 수요일,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을 역임하고, 흑인 최초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직을 맡고 있으며, 앞으로 흑인 최초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그 사람이 연단에 올라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닙니다." 반전 집회에 참석한 지역 정치인의 발언이었다. 청중들은 당황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반전 집회에 와서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오바마는 남북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예를 들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뤄야 하는 전쟁이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전쟁입니다."

중산층의 가계가 무너지고 실업률이 오르며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어리석은 전쟁, 준비되지도 않았고 사담 후세인이 미국을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전쟁, 그런 어리석고 성급한 전쟁에 반대한다고 오바마는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 싸움을 원합니까? 효율적인 정보 기관을 동원해 알 카에다, 빈 라덴과 싸우십시오." 사람들은 수긍했다. 오바마는 테러 문제의 본질을 짚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 싸움을 원합니까? 중동의 소위 동맹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가 자국민들을 억누르고 부패를 용인하는 행동을 멈추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환호했다. 오바마는 평화의 토대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 싸움을 원합니까? 엑손 모빌 사의 이익에 따른 에너지 정책을 버리고 중동에서 나오는 석유의 젖을 떼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십시오." 사람들은 열광했다. 오바마는 미국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바마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아직 이라크 전쟁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많은 미국인들은 지난 걸프 전쟁처럼 순식간에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 손을 털고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빈 라덴이건 누구건 붙잡고 분풀이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복수심이 팽배한 시점이었다. 모두가 전쟁에 대해 '예'라고 말하고 있을 때, 오바마는 홀로 '아니오'라고 외쳤다. 훗날 언론인 데이비드 멘델과의 인터뷰를 모은 책 『오바마: 약속에서 권력으로』에 따르면,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 인생 중 바로 그 연설을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은 깊고 깊은 수렁으로 변해갔다. 민주당 경선은 그런 상황 속에서 치뤄졌다. 그런데 7인의 경선 후보 중 오바마처럼 떳떳하게 이라크 전쟁 반대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은 이라크 전쟁에 찬성했다. 다른 후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수년 째 지속되는 전쟁과 그 전쟁으로 인한 참상, 국제 사회의 비난으로 상처받은 미국인들의 정신을 온전히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다.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사람.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어리석은 전쟁에는 반대하는 사람. 젊은이들은 오바마를 찍기 위해 기꺼이 투표장으로 나섰다. 그렇게 기적이 탄생한 것이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군사 독재. 그 지난했던 민주화의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야당은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바퀴에 의존해 달려나갔다. 유신 독재와의 싸움, 뒤이어지는 신군부와의 갈등 속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선의의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협력 관계였다. 대선 후보로서 파괴력을 보여준 김대중은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오랜 가택 연금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비교적 운신의 폭이 넓었던 김영삼은 최대한 정권의 탄압을 피하는 범위 내에서 야당의 세를 늘리고 규합하는 일에 힘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날이 밝았다.

1987년 6월 10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 씨의 죽음, 경찰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전두환의 호헌 조치 등에 반발한 시민들은 동시다발적인 대규모 시위를 전개해 나갔다. 결국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후계자 노태우가 6월 29일 항복 선언을 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부터 김영삼과 김대중의 해묵은 경쟁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향해 나아갔고, 결국 87년 6월의 승리는 12월의 패배로 끝난다. 김영삼이 630만 표, 김대중이 610만 표, 노태우가 820만 표를 얻어 신군부의 일원인 노태우가 민주화 이후에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잘나가는 세무 변호사 노무현은 정계에 입문한다. 김영삼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초선의원 노무현은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1988년, 제13대 총선의 결과였다. 그렇게 국회의원이 된 그는 사상 최초로 TV 생중계된 국회 청문회, 이른바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을 상대로 호통을 치고 명패를 던지며 일약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한다. 노무현에게는 오바마와 같은 유창한 연설 실력은 없었으나, 진정 사람들이 원하던 바로 그 '한방'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결정적 순간'은 그 청문회가 아니었다.

1990년 1월 30일 서울 마포가든호텔 접견실. 김영삼 총재는 요식 행사를 서둘러 끝내고 싶었다. 그는 이미 일주일 전, 노태우 김종필과 청와대에서 만나 이른바 '3당 합당'에 합의했다. 박정희의 공화당, 신군부의 민주정의당, 그리고 정통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을 합쳐버리는 것이다. 노태우는 그 결과 여소야대 국면에서 벗어나고, 김영삼은 야당이 아닌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순전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물이었다. 이미 3당 합당은 결정된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통일민주당의 해산 뿐이다. 김영삼은 서둘렀다. "구국의 차원에서 통일민주당을 해체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됐음을…."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해야 합니다!" 초선 의원 노무현이었다. 보스의 심기를 거스르면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을 수 없고, 다음 공천을 받지 못하면 정치 인생은 끝이다.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고만 있던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노무현은 바로 그 순간에 오른팔을 치켜들고 벌떡 일어났다. 물론 이미 3당합당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남은 것은 군부 및 신군부 세력과 한솥밥을 먹는 사이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결정 뿐이다. 노무현의 저항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3당합당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87년 대선에서 허물어지기 시작한 '군사독재 대 민주주의'의 정치 구도가 완전히 무너졌을 뿐 아니라, 그 경계선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도래하고야 만 것이다. 이전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이던 정치적 선악의 판별 기준이 무의미해졌다. 이제 국민들은 '이 세력이 군부독재 세력이냐 아니냐'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게 되었다. 김영삼과 노태우가 같은 당에 속해있으니 말이다. 그저 남은 것은 '저 집단의 대표자가 김영삼이냐 김대중이냐' 뿐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경남 거제 출신인 김영삼은 영남 지역에서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호남 전남 목포 출신인 김대중은 특히 5·18 민주화운동 이후 호남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확보하게 된다. 노태우와 전두환이 모두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것도 그렇다.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군사독재 대 민주주의'라는 상징계의 기표가 허물어지고, 대신 그 자리를 '영남과 호남의 대립'이 채워넣게 된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젊은 정치인 노무현의 고난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른 영남 출신 정치인들은 그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노무현은 갈 곳이 없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꽉 쥔 채 오른팔을 번쩍 치켜올리는 그의 모습은 당시 현장 취재를 나와 있던 <경상일보> 기자 김종구씨에 의해 생생하게 필름에 담겼다. 3당 합당에 의해 고착된 지역 구도에 의해, 김대중의 공천을 받아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은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맛보게 된다. 이후 한국 정치가 지역갈등에 의해 고착화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노무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당 합당에 반대한 정치인,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은 지역 갈등 문제에 대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큰 발언권을 얻게 된 것이다.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 낙선을 통해 얻게 된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2001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다.

노무현이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그 모습이 다시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지역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에서 환멸과 무기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겠다. 이것이 노무현의 전략이었다. 그 전략은 곧 그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의미한 정책적 대결이나 사상적 갈등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고, 그저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기존 정치권의 구도 속에서, 처음부터 3당합당에 반대하고 그 반대급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던 노무현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실패를 회복해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그는 수 차례의 곡절을 더 겪은 후, 경선 과정보다 더욱 드라마틱하게 대선을 치렀고,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되었다.

왜 우리는 이런 '결정적 순간'에 주목해야 할까? 누군가가 소수파 출신이라는 것,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류 세력이 아니라는 것, 대중적인 열광을 등에 업어야만 중앙 정치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지금 우리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가 흑인 혼혈이라는 것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파악한다. 막상 경선이 진행되던 시점, 그리고 대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바마는 자신이 흑인 유권자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흑인과 백인 모두로부터 지지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흑인들에게는 자신의 혈통을 이용한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백인에게는 인종차별의 역사가 가져다주는 죄책감을 들쑤셔 표로 가져가려는 정략적 행위자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영남 출신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양날의 칼은 언제나 자신을 벨 수도 있는 법이다. 노무현의 출신 성분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꾸준히 자신을 지역 갈등의 한가운데에 던져왔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승자들이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쉽사리 잊곤 한다. 오바마와 노무현 모두, 소수파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소수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원동력이 '결정적 순간'이다. 그들은 모두, 이성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의 양심이 큰 상처를 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대체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찬성표를 던질 때, 양심적인 시민들은 고뇌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부독재세력이 엄연히 두 눈 뜨고 살아있는 상황에서, 오직 정치공학적인 계산을 통해 3당 합당이 단행되어버릴 때, 87년 항쟁 속에서 경찰에게 맞고 최루탄에 눈물 흘렸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친 노무현은 그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최후의 정신적 보루였던 것이다.

오바마와 노무현에게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아니오'라고 외쳤다는 것, 그 빼앗길 수 없고 다른 이가 훔칠 수도 없는 단단한 종잣돈이 있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과정만을 놓고 보면, 대체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노무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 오바마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국내외의 많은 논평자들은 인터넷, 젊은이에게 호소하는 감수성, 기타등등 '새로운 것'들을 주로 이야기해왔다. 정치 바깥에 있는 무언가가 오바마 혹은 노무현의 등을 타고 정치의 내부로 급격히 빨려들어간 결과 그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바마와 노무현의 종잣돈은 결국 정치적 사건에 대한 그들의, 정치인으로서의 결정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할 때, 혹은 3당 합당에 이의를 제기할 때 정치인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다. 그와는 정 반대로, 갓 등장한 주목받던 젊은 정치인이 자신의 전도유망한 앞날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발언을 용기 있게 내뱉은 것, 바로 그것이 그들의 결정적 순간을 구성하는 내용물이다. 오바마와 노무현 모두 그들의 결정적 순간에 정치인이었고,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결정을 한 그들을 대중은 선택했다. 소수파 출신의 아웃사이더들은 바로 그렇게 날개를 달고 역사의 흐름을 타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미면 또 어떠냐"에서 "한미 FTA 임기내 처리"까지

오바마의 임기는 현재 진행중이다. 반면 노무현은 임기를 마치고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간 후,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다가 수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2009년 5월 23일,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본인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기간, 즉 참여정부 5년에 대한 평가 역시 그리 높지만은 않다.

노무현은 자주국방을 강조했고 전시작전권 회수 문제에 집착했다. 그는 후보 시절 "반미면 또 어떠냐"고 말함으로써, 지난 대통령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미 관계 문제를 다룰 것임을 밝혔다. 전시작전권 환수, 동북아 균형자론의 추진 등에서 그러한 정책적 방향성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임기의 말미에서 그는 여론의 비판과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를 급속도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미면 또 어떠냐'고 당당히 묻던 노무현을 기억하던 이들은 큰 실망을 맛보았고, 등을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이 보여준 이라크 전쟁에 대한 태도 변화 역시 그렇다. "반미면 또 어떠냐"던 노무현은, 국제 정치의 현실 등을 이유로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결정을 내린다. 한국의 그러한 결정에 반감을 품은 무장단체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가 이라크 팔루자 인근에서 김선일 씨를 납치했고 대한민국 정부에 파병 중단 및 한국군 철수를 요구했다. 정부는 그 요구를 거부했고,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유시민은 "사람 하나 죽었다고 철군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발언으로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결국 무장단체는 2004년 6월 22일 김선일을 참수한다.

노무현 및 그의 주변 세력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지지층 사이의 괴리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반미면 또 어떠냐'던 기개는 사라지고, 실체를 알 수 없는 '국익' 앞에서 한 사람의 생명은 '그까짓 것'으로 전락했다. 지지층을 실망시키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었고 의회에서 통과되기까지 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의회의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얻어냈다.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들은 숙원과도 같았던 국가보안법 폐지의 감격을 맛보지 못한다. 대신 노무현은 더 오른쪽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장할 때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향하는' 행보는 절정에 달했다. 결국 노무현은 그 어느 편의 확고한 지지도 얻지 못한 채, 대통령으로서의 뚜렷한 성과 없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야 했다.

노무현의 적극적인 옹호자들은 그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이유를 온전히 그의 반대 세력의 강고함에서 찾는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나마 의석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했던 여당의 지도자였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그러한 변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대통령 권력 집중을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심지어 대통령에게는 마치 봉건시대의 군주처럼, 원하는 죄인을 조건 없이 사면할 수 있는 특권마저 있다. '노무현에게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만한 힘이 없었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의 '힘'은 대통령으로서의 권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의 정치력에 더욱 가까운 무언가일 것이다.

오바마를 '미국의 노무현'으로 이해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일꾼 힐러리와 달리 오바마는 시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젊은이들이 힐러리가 아닌 오바마를 택했다. 하지만 그 시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어찌할 것인가? 지켜지지 않은 약속, 이루지 못한 희망, 이것들은 민주당 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권 전체를 큰 무기력 속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인들은 이미 그와 같은 '영웅'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회의주의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미국인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 역시 같은 근심에 빠져들었다. 오바마가 당선된 시점은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출로 인해 경제 위기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바로 그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약속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강인한 리더십이 절실했다. 과연 오바마는 그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의 힘, 혹은 오바마의 만신창이 승리

오바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속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한편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그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위기, 즉 세계 대공황의 한복판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당시 미국인들은 자신의 예금을 넣어놓은 은행이 망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은행 문앞에 줄을 서고 예금을 찾아가고 있었다. 영세한 은행부터 하나씩 부도가 나고 있었고 그 여파가 전체 경제 시스템을 붕괴시키기 직전이었다.

루즈벨트는 취임하자마자 '모든 은행'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리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온갖 법안들을 의회에 무더기로 제출했다. 이 충격요법이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부활시킨 원동력 중 하나였다. 다시 은행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예금을 찾고자 달려들지도 않았다. 루즈벨트의 이와 같은 전설적 리더십은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들에게 하나의 평가 기준이 되어버린다. '취임 후 100일',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오바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사인했고,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명령했으며,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철수도 결정했다. 하지만 루즈벨트의 은행 폐쇄와 달리 관타나모 수용소는 그 결정 이후에도 그 자리에 계속 열려 있었다. 수용소를 이전할 대체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 철군 역시 순식간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경제는 기대했던 것처럼 호전되지 않았고, 도리어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악재들이 미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결국 취임 1주년을 맞이했을 때 오바마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결정은 했지만 성과는 없는 상황이 줄곧 이어졌다.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실망했고, 취임 초기 70%에 달하던 지지율은 57%까지 떨어졌다. 오바마를 정치적으로 이끌어준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치뤄진 보궐선거에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었던 메사추세츠 주는 공화당을 택했다. '슈퍼 60석', 즉 야당의 방해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상원 의석수가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오바마에게는 할 일이 남았다. 가장 중요한 일, 모든 미국 진보파의 숙원, 건강보험 개혁이 바로 그것이었다.

2008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취임 후 100일'에 처리했어야 할 건강보험 문제를 질질 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오바마가 클린턴 정부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도파를 만족시키기 위해 양보하다가 본인의 지지 기반도 상실하는, 즉 산토끼 잡으러 갔다가 집토끼도 놓치는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오바마를 '미국의 노무현'으로 바라보던 사람들, 즉 필자와 같은 이들 역시 같은 비관론에 빠져들었다. 오바마가 말하는 '초당적 협력'이 노무현의 실패한 '대연정'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결국 미국인들도, 지금의 한국인들과 같은 정치적 실망과 회의의 늪에 빠져들게 될까?

오바마는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두 문화를 오가며 성장했고,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전에 타인의 말을 듣고 관찰하는 습관이 베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2만 5천에서 3만 명 규모의 병력을 증파하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바마와 클린턴 국무부 장관 및 기타 관계자들의 회의 내용을 보도한 뉴욕 타임즈의 기사 "How Obama Came to Plan for 'Surge' in Afghanistan"에 따르면, 오바마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대학 교수처럼 회의하고 토론하며 자료를 검토한다. 오바마는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따로 불러 의견을 듣고 확인했다. 그의 최측근인 데이비드 엑셀로드 같은 이도, 추수감사절 전까지는 오바마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오바마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가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으로 선출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두 파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고, 그것을 중제할 수 있는 인물은 오바마 뿐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그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오바마의 그런 성격이 매우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서 절충되는 지점을 찾고자 노력한다. 오바마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큰 꿈을 불어넣었지만, 정작 본인은 작은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들을 절충시키는 작업을 하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보험 개혁안의 처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화당에서 가장 크게 반대하는 요소, 즉 '퍼블릭 옵션'(public option)을 일찌감치 포기함으로써 반대자들의 단결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퍼블릭 옵션을 포기한다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의료보험들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목표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을 실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하여 기나긴 토론과 회의 끝에, 2010년 3월 23일 건강보험 개혁안이 통과되었다.

오바마의 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바마 시대'는 현재진행형이다.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바마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실망시킬 것이지만,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어떤 식으로건 이루어내긴 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2010년 8월 19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던 마지막 미군 전투 여단이 떠나면서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병력을 빼겠다던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물론 이것도 상처 투성이의 영광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를 돌이켜볼 때, 그 너덜너덜한 승리에 대한 부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바마와 노무현, 그 결정적 차이

오바마의 성공이나 실패를 논하는 것은 모두 너무 이르다. 하지만 그가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정치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해결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오바마를 '미국의 노무현'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진다. 기존의 세력과 새로운 세력, 본인의 개혁적 목표와 기존 정부의 보수적 경향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해가는 오바마와 달리, 노무현은 좌충우돌했고 정보로부터 차단된 채 맴돌았으며 결국 지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국방 외교 전문지 <D&D 포커스>의 편집장 김종대의 책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의 한 장면. 2004년 5월 20일 안보관계장관회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나는 여기에 있는 사람 아무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것 전부가 나에게는 진실로 들리지 않아요. 이게 대책회의 맞습니까?" 노무현은 관료들과의 의사소통 및, 제반 부처들 사이의 힘겨루기를 통제하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있었다.

물론 그 차이는 전적으로 오바마와 노무현이라는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토론 문화, 각 정부 부처의 효율성, 엘리트 집단의 결속력 및 정보력 등에서 수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본인의 성격과 스타일이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유엔 사령부가 통제하고 있는 한반도 전시작전권의 환수 문제에 있어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는 그 회의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국방 안보 문제를 전하고 토론하는 참모들은 크게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뉘어 있었다. 자주파는 전시작전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동맹파는 한미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양자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여러분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오늘 토론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대통령 선거 전부터 내가 가져왔던 생각이고요. 다만 그 시점이 언제냐, 어떤 조건에서 하는 것이 적절하냐가 문제가 됩니다."

이미 노무현은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다만 그 세부사항을 놓고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론'에 반발하는 참모를 향해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들어보세요. 청와대 참모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 드리지요. 참모는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좌표와 역사관을 이해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가진 의견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 여러분의 견해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국방보좌관이 마치 이러한 논의 자체를 반대하는 듯이 나서게 되면 토론이 안 됩니다."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 '토론'하되, 그 자체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판단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진 의사결정권자. 바로 이 지점에서 오바마와 노무현의 스타일 차이가 도드라진다.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즈의 기사 "How Obama Came to Plan for 'Surge' in Afghanistan"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발언을 인용해보자.

"대통령은 모든 범위의 의견 개진을 환영했고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이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긍정적인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부 대통령과 상의하게 되니까요. 우리는 일이 다 결정된 다음 누군가가 '아니, 하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바마와 함께 토론하면] 지금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확실한 동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4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맥크리스털 장군의 입장에 대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들을수록 오바마는 자신이 설득되어가는 것을 느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를 "필요한 전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노무현과 오바마, 오바마와 노무현. 두 대통령 모두 열정적인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을 차근차근 실망시켰다. 문제는 그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방법이었다. 오바마는 원대한 꿈과 이상을 보여준 후 그것을 대단히 현실적·정치적으로 이루어나가며, 빠른 해답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오바마는 겉과 속이 달랐다. 시인의 탈을 쓴 정치가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노무현은 훨씬 솔직하고 단순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청와대에서 회의하고 토론하고 역정을 내었으며, 결국 좌절했다. 그와 같은 좌충우돌로 인해 노무현과 그의 참모들은 중요한 순간에 필요한 추진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결국 노무현은 정권 말기로 향할수록 더더욱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외부 집단의 판단에 휩쓸려가게 된다. 설령 그에게 동의하지 않더라도 직언을 해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셰익스피어적인 성격 비극에 더욱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한국의 오바마를 위하여

이제 최초의 질문에 대답을 해보도록 하자. 오바마는 미국의 노무현인가? 오바마와 노무현은 모두,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양심이 시험당하던 바로 그 순간에 꼭 필요한 용기를 냈다. 그것은 그들이 급격한 정치적 성장을 거둘 수 있게 해준 근원적인 동력이기도 했다. 본인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사람, 비주류 출신으로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에 단 한 명, 노무현도 대한민국에 오직 그뿐이었다. '결정적 순간'에 양심의 목소리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은 그토록 드물다.

하지만 오바마와 노무현은, 그들이 대중 앞에서 사용한 전략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달랐다. 오바마는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기 위해 정치인답지 않은 모습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바로 그래서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들이 바라던 그 시인이 사실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게 된다. 반면 노무현은, 선거 과정에서의 정치적 판단과는 별개로, 협상을 하거나 여러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에는 전혀 능숙하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투사로 남았고, 자신이 거느린 조직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탈진해버렸다.

오바마를 '미국의 노무현'으로만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두 사람의 많은 차이 뿐 아니라,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중요한 미덕마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에게 가장 중요한 외국인 미국, 그 미국의 대표자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앎의 간극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미국의 노무현'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순간, 한국의 보수 뿐 아니라 진보 진영 역시 중요한 배움과 깨달음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바마와 노무현의 성장을 통해 우리는 '정치적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오바마와 노무현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정치적 행위' 그 자체가 갖는 의미와 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비주류 출신이며, 막강한 거대 언론사의 흔들기에 시달렸고 시달리고 있다. '미국인의 5분의 1이 오바마가 이슬람 교도라고 믿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대서특필하는 폭스 뉴스를 보며, 노무현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던 보수 언론들의 행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듯 말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들을 하나씩 수행해 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정치인이다. 노무현이 그러하였듯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함으로써 상처받은 양심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 오바마가 그러하였듯이, 반대자의 의견까지 진정으로 경청하고 그 속에서 최선의 좁은 길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바마는 미국의 노무현인가?'라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고쳐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오바마는 누구인가?' 그 답은 결코 정치의 바깥에 있지 않다.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동력, 그 동력의 구심점이 되는 누군가는 결코 정치권 외부로부터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비정치인이 정치의 판에 뛰어들면 정치판이 너무 더러워서 망가지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깨끗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치판에 적응하지 못해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다.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수십 수백 명의 잠재적 경쟁자를 상대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도 그렇고 오바마도 그렇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부 인사가 아니라, 나름대로 오랜 숙련 기간을 거친 이른바 '중고신인'이었다.

그러한 중고신인 중 누군가는 꼭 필요한 순간에 할 말을 하고 있다. 3당 합당의 순간에 노무현이 '이의 있습니다'를 외쳤듯, 이라크 전쟁이 결정되는 순간에 시카고의 정치 신인 버락 오바마가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했듯 말이다. 바로 그런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규정짓는 정치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모두가 '예'라고 외칠 때, 심지어 '우리 편'끼리도 이건 대세야, 어쩔 수 없어, 같은 비관적인 목소리가 횡횡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요'라고 외치고 살아남을 수 있는 누군가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난 정권 시절 가장 큰 패착이 무엇이었을까?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이른바 '현실'을 핑계삼아서 저질러버린 그런 일, 그로 인해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게 된 사건이 무엇인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처럼, 바로 그와 같이 '여야의 초당적 협력'에 의해 저질러진 어리석은 사건들의 목록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아니오'라고 외친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가 '한국의 오바마'가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읽을거리

한 사람으로서 오바마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다면, 그 무엇보다 먼저 버락 오바마, 이경식 옮김,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을 읽어야 한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전기이자 성장소설이다. 한편 그 오바마가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탁월한 안목과 승부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단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알고 싶다면 데이비드 멘델, 윤태일 옮김, 『오바마 약속에서 권력으로』(서울: 한국과미국, 2008)을 참고할 것. 수년간에 걸쳐 오바마를 밀착취재한 베테랑 언론인의 작품으로, 이상주의적 레토릭을 구사하지만 현실주의적 안목을 지니고 있는 오바마의 양면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노무현에 대한 책은 한국 서점가에 넘쳐난다. 하지만 그 중 특별히 주목해야 할 책은 세 권이다.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에 쓴 책들은 그의 솔직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들인데, 그 중 노무현, 『여보 나좀 도와줘』(서울: 새터, 2002), 개정판을 우선 읽어보는 것이 좋다. 젊은 정치인 노무현이 바라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와는 다른 의미에서 노무현 역시 준수한 글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그는 대통령직을 수행한 후 고향에서 유기농 재배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며 참여정부의 실책을 검토하고 곱씹는다. 그 성찰이 노무현, 『진보의 미래』(서울: 동녘, 2009)에 담겨있다. 일부 지지자들의 생각과 달리 노무현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헤매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또 한 번의 기회가 올 경우 좀 더 진보적인 입장을 펼칠 것이라고 다짐한다. 한편 그 노무현을 외부로부터 관찰한 책으로는, 본문에서 인용한 김종대,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서울: 나무와숲, 2010)을 꼽을 수 있다. '청와대 비화' 같은 식의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가 아닌, 국내에서 드문 진지한 관찰 및 분석기이며, 참여정부의 내적 갈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미국은 역사가 길지 않은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가장 오래 축적된만큼, 미국에서의 정치적 발전과 갈등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만큼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 정치사 개괄로는 폴 크루그먼, 예상한 외 옮김,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서울: 현대경제연구원BOOKS, 2008)을 추천할 수 있다. 경제학자가 쓴 책이며 경제학적 논의가 들어가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의 변화가 경제정책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논의하는 책이므로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기에 더 좋다.

한국 현대 정치에 대해서는 다음 두 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우선 1987년 이후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서는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서울: 후마니타스, 2010) 개정 2판을 참조할 것. 최장집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내재하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 대표되지 않는 갈등이 사회적 불안 및 정치적 무관심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한국 현대 정치를 이해함에 있어서 '현대의 고전'중 하나이므로, 읽지 않더라도 책꽂이에 꽂아두어야 할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최장집의 제자인 박상훈은 박상훈, 『만들어진 현실』(서울: 후마니타스, 2009)에서 노무현이 맞서 싸운 지역주의의 실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역주의라는 것이 실재하는 갈등이라기보다는, 책 제목처럼 '만들어진 현실'에 더욱 가깝다고 주장한다. 박정희가 1971년 선거에서 김대중을 이기기 위해 도입한 담론이며, 궁극적으로는 1987년 이후 한국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장집의 책과 더불어 읽어보면 '하나의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그 이후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눈을 얻고 싶다면, 두 권의 책에서 저자들이 반박하고 있는 참고문헌을 따라 읽을 것.

2016-12-12

페미니즘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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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공부, 이럴 거면 하지 마라


요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자들이 늘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아주 원론적으로 보자면 누가 됐건 자신이 모르던 것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남자'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보다 좀 더 복잡한 맥락 위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남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집어든 사람, 특히 남자 독자라면, 아마도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책에 "페미니즘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제목을 단 글이 한 꼭지 실려있다는 것은 일종의 독자 기만, 사기, 배신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본인이 남자가 아니지만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던, 혹은 내용을 검토해본 후 자신이 아는 다른 남자에게 권해주고자 하는 여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황당한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몇 가지 조건이 먼저 갖춰지지 않는 한, 남자는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이 글은 그 몇 가지 조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늘과 쑥, 그리고 페미니즘


단군 신화를 떠올려보자. 환웅은 일단 호랑이와 곰에게 마늘과 쑥을 100일간 먹인 후, 그 중 그 고통의 시간을 참고 견뎌낸 곰이 웅녀로 변신하자 결혼을 했다. '있는 그대로의 호랑이', '꾸밈과 가식 없는 곰'은 포용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자가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해도 되는 사람인가? 남자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만큼 최소한의 성숙함과 자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된다면, 이제 마늘과 쑥을 먹어보자. 일상적으로 만나고 대화하는 여성들이 무언가에 대해 설명할 때,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은 후 자연스러운 태도로 다음 문장을 발화하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꼭 "아, 그렇구나"가 아니어도 된다. 상대가 손윗사람이면 적당한 존댓말 표현으로 바꾸고, 손아랫사람이면 정중한 느낌을 잃지 않는 평어체로 바꿔서 말해보자. 핵심은 상대방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동의하는 것이다(단, 학교 선생님이나 어머니, 할머니처럼 사회적 질서를 존중하기만 해도 상대방의 말을 고분고분 듣게 되는 상대는 논외로 한다). 아니, 네 말이 맞긴 하지만, 근본적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말야,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같은 소리를 절대 하지 않고 '여자의 말'에 동의하는 것. 이것이 마늘이다. 100일간 먹어보도록 하자.

장난하는 게 아니다. 많은 남자들이 이 관문을 넘지 못한다. 상대가 여성임을 본인이 알고 있을 경우, 그 상대방의 지적 수준이나 해당 주제에 대한 지식 등과 무관하게, 남자는 자기가 설명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문 용어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고 부른다. 맨스플레인을 끊고 여자인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을 공부할 자격을 얻기 위한 첫 단계인 것이다.


100일간 맨스플레인 끊어보기


여자들의 말을 끊지 말라고? 그게 그렇게 대단한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 그것은 페미니즘 공부의 첫 단추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한국 남자'가 보편적 차원에서의 '사람'으로 진화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여자들의 말을 끊는 남자,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얕잡아보면서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남자는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맨스플레인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빨간색 초록색 신호등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맨스플레인이란 남자를 뜻하는 man과 설명한다는 뜻의 explain을 합성한 것으로, 『옥스포드 사전』의 온라인판에 정식으로 수록되어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리베카 솔닛의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표제작인 "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난 그 단어는, 일상화된 여성혐오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솔닛의 책을 펼쳐보자.

그는 자신이 파티에서 겪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라는 19세기의 사진가가 있다. 달려가는 말의 모습을 연속 촬영한 작업으로 유명한 그는, 사진의 발전 뿐 아니라 영화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리베카 솔닛은 바로 그 마이브리지에 대한 책을 한 권 썼고, 《뉴욕 타임스》의 서평란에 자신의 책이 소개되어 흐뭇해하던 참에, 친구의 손에 이끌려 그다지 내키지 않는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솔닛은 한 부유하고 나이 많은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쓴 예닐곱권의 책들이 다룬 주제는 상당히 다채로웠지만, 나는 2003년 그해 여름에 나온 최신작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림자의 강: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 기술의 서부시대』(River of Shadows: Eadweard Muybridge and the Technological Wild West)라는 책으로, 시공간의 소멸과 일상의 산업화를 다룬 내용이었다.
내가 마이브리지를 언급하자마자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올해 마이브리지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다는 거 압니까?"[1]

그 남자는 솔닛에게 무슨 책을 썼는지 "친구의 일곱살 난 아이에게 플루트를 얼마나 배웠는지 이야기해보라고 구슬리는 사람처럼"[2] 물어보았다. 그런데 자기가 아는 이름인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나오자 곧장 솔닛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당연히 자기가 상대보다 더 잘 안다는 투로, 올해 나온 아주 중요한 책의 존재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문제는 그 책이 바로 솔닛의 책이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솔닛에게 '당신이 쓴 책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으니 말이다. 솔닛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자신이 책을 쓴 것들이다. 게다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 대한 책이 그렇게 자주 출간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올해 나온 아주 중요한 책은 바로 내 앞의 이 여자가 쓴 책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러나 그 남자는 이렇게 상식적인 사고를 전혀 하지 못하고, 속담을 빌어 표현하자면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고 돼지 앞에서 코를 뒤집고 있었다. 보다 못한 솔닛의 친구가 끼어들어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이 친구입니다'라고 몇 차례 가르쳐 주었지만 그 남자의 뇌는 그 정보의 수용을 단호하게 거부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쌜리가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이라구요"를 세번인가 네번쯤 말한 뒤에야 그는 말귀를 알아들었고, 그 즉시 꼭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사람처럼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알고 보니 그가 직접 읽은 것은 아니고 몇달 전에 《뉴욕 타임스 북리뷰》에서 서평만 읽었을 뿐인 그 아주 중요한 책의 저자가 나란 사실은 깔끔한 범주들로 분류되는 그의 세상을 몹시 교란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아주 잠깐. 그러고는 이내 다시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여자인 우리는 조신하게도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곳까지 벗어난 뒤에야 웃음을 터뜨렸고,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3]

자신의 눈 앞에 바로 그 중요한 책, 본인은 《뉴욕 타임스 북리뷰》에서 서평만 읽었을 뿐인 그 책의 저자가 서 있었고, 그 사실을 알려주기까지 했음에도 그 남자는 끝내 리베카 솔닛을 가르치려 들다가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더 끔찍한 것은 본인이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후 솔닛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이따금 불쑥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나 음모론을 늘어놓는 사람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지만, 내 경험상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감이 넘쳐서 정면 대결을 일삼는 사람은 유독 한쪽 성에 많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4]

남자는 무슨 말도 못 하나?


남성 독자의 불만이 들려오는 것 같다. 이 사소한 에피소드와 그로부터 영감을 얻은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이건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전문가가 전문가 앞에서 지식 자랑을 하다가 된통 당하는 그런 이야기일 뿐 성별과는 무관한 일 아닌가?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소개된 후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했다. 이것은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대 무식, 혹은 잘 모르면서 용감한 사람과 잘 알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맨스플레인이란 불필요한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잘못된 개념일 뿐일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남자들은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전래된 후, '우먼스플레인'도 있다는 둥,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남성과 여성 사이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둥, 온갖 볼멘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남자들. 여기에 바로 문제의 핵심이 있다. 왜냐하면 맨스플레인이란 '남자들은 여자들이 하는 말을 동등한 인간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향해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을 제시할 때, 남자들이 그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 든다면, 그들은 그러한 반응을 통해 맨스플레인이라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셈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맨스플레인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아니 차라리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그런 실수를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남자는 페미니즘을 공부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오지 않았다'는 여자들의 항변을 부정하고 드는데, 더 이상 여자들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내가 방금 설명한 내용을 리베카 솔닛의 표현으로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어떤 남자들은 남자들이 자꾸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사실 젠더화된 현상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개 여자들은 지적했다. 여자들이 제 입으로 직접 겪는다고 말한 경험을 기각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우긴다는 점에서, 그 남자들이야말로 내가 그들이 종종 그런다고 말한 바로 그 방식으로 여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셈이라고. (확실히 밝혀두는데, 여자들도 이따금 남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든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젠더 간 엄청난 힘의 격차가 악랄한 형태로 표출된 현상이라고는 볼 수 없거니와, 젠더의 사회적 작동방식에 드러나는 거시적 패턴을 반영한 현상도 아니다.)[5]

그러므로 '남자들은 그저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치려 든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이 책뿐 아니라 그 어떤 페미니즘 서적도 읽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배움은 불가능하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 등 모든 인류의 성현들이 한번씩은 비슷하게라도 이야기한 진리 아닌가. 그런데 적잖은, 어쩌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이 여자들의 말을 단지 상대방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낮잡아 본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들이 과연 '여자들의,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의 사상'인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 있을까?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


페미니즘을 공부하겠다고 기특한 결심을 한 남자는 반드시 '경청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리고 그 훈련은, 남자로 태어나고 자란 모든 사람이, 평생토록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100일간 먹어야 하는 마늘의 주 성분이다. 여자들의 말을 자르지 않고, 내가 상대보다 잘 알 것이라는 식으로 지레 넘겨짚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 말이다.

여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남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말은 본인의 성별 때문에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여자들은 참고, 포기하고, 스스로 분노를 삭히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여성 억압의 역사이며, 그것은 여성의 발언권에 대한 억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해보자. 말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실로 '인간적인 삶'의 거의 모든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우리는 그 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지식을 주고받으며 감정적 교류를 한다.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을 부비고 따스한 눈빛을 주고받는 것 정도의 교감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충분히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고도로 훈련된 침팬지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인간 외의 그 어떤 동물과도 '할 말이 있으니까 방과 후에 학교 옥상에서 만나자'며 러브레터를 주고받을 수 없다. 언어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짓고, 특별하게 하며, 그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거의 모든 것이다.

신체 장기 중 하나인 성대를 울려 음성 언어를 전달하는 협소한 행위를 넘어서 '말하다'의 의미를 확장해보면 그 중요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단적인 예로, 투표권이란 무엇인가? 유권자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사를 말할 수 있는 권리다. 단, 그 말하기의 방식이 객관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그 투표권을 얻기 위해 19세기 말 영국의 서프라제트들은 우체통을 폭파하고 골프장의 잔디를 황산으로 태워 죽였으며 유리창을 깨고 심지어 건물을 폭파하기도 했다. '나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라는,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그 의사 표현의 권리를 위해 말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해보자. 상식적인 경우라면 경찰은 당신의 말을 경청할 것이고, 그 증언에 기반하여 용의자를 특정하고 수사에 착수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남자들'에게는, 이런 '공적인 차원에서의 말하기'가 무시당하고 묵살당하지 않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전혀 다른 곳이다.

예컨대 일명 '오원춘 사건'을 떠올려보자. 피해자는 성폭행을 당하는 와중에도 112에 신고하고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정확히 밝혔지만, 전화를 받던 경찰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만 알려주세요." "여보세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같은 질문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던 경찰들은, 심지어 "아는 사람인데, 남자 목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부부싸움 같은데"라고 자기들끼리 중얼거리고 있었다. 피해자가 살해당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나는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경찰들은 듣지 않았다. 소쉬르의 구분법을 빌자면, 시니피앙은 전달되었지만 시니피에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똑똑히 알아들었으면서도 그것을 '말'로서 존중하며 인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고, 살해 위협에 처한 여성의 말은, 사람 말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잘못된 대응이 이루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 여자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을 뿐인데 경찰에 신고해 '괜한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지, 경찰이 의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했을까?

더 끔찍한 것은 그 경찰들이 전화를 통해 전해오는 폭력적인 상황을 잘 인지하면서도 '부부싸움'을 떠올리고 입 밖에 꺼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고통을 당하는 소리, 가해자가 분노에 차서 내뱉는 소리,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테이프를 찢는 소리 등이 모두 112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극단적 폭력을, 경찰은 '부부싸움'이라고 뭉뚱그리고, 자기들끼리 안심하기 위해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게 '부부싸움'이었다면 어떤 남편이 부인을 살해하거나 심각하게 구타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에도 말이다.

세상이 여자들의 말을 쉽사리 묵살하고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건 이런 뜻이다. 강간을 당해서 신고를 해도 '네가 먼저 꼬리친 게 아니냐'고 경찰이 되묻는다. 고장난 보일러를 수리하기 위해 기사를 부르면 '집 주인분 안 계세요?'라고 물어본다. 전화해서 부른 사람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진짜 집 주인'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이다. 택시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상황들은 또 어떠한가. 여자들의 말이 무시당하는 세상은, 여자들의 존재 그 자체가 지워지고 있는 곳, 다시 말해 생명과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당하는 곳이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구체적인 여성의 경험들을 엮어 만들어낸 다양한 사고 체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가 경험하는 세상과 여자가 살아야 하는 세상은, 때로는 흡사하겠지만 많은 경우 심각하게 다르다. 그러니,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무시해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는 남자는, 페미니즘을 공부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모든 여자들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어떤 여자들은 112에 허위 신고를 할 것이고, 어떤 여자는 남자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흉계를 꾸밀 수도 있다. 어떤 여자는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어떤 여자는 본의 아니게 횡설수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와 달리,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발언이 공적으로, 또 사적으로 평가절하당하고 무시당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자 하는 남자들은, 일상의 영역에서 여성의 발언을 '일단' 긍정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물론 계약서를 쓴다거나 범죄 피의자를 심문하거나 변호사로서 이혼 소송 당사자와 상담하거나 하는 중이라면, 다시 말해 상대방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것이 요구되는 직업적 상황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겠다. 지금 나는 일상적으로 만나고 대화하는 여성들과의 대화 속에서 실천해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숨쉬듯 자연스럽게 누려왔던 '남자인 내가 옳고 여자인 네가 틀렸다'의 기득권을 내려놓아보자.

가령 '아까 택시 타고 오는데 기사 아저씨가 현금으로 계산 안 했다고 욕했어'라고 말하는 주변의 여성에게, '뭐야, 나는 그런 일 겪은 적 없는데, 그건 택시 기사에 대한 너의 편견 아니야?'라는 식으로 되묻거나 쏘아붙이지 말라는 뜻이다. 대신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까지만, 동의하는 표정으로, 대답해보자. 그런 반응을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남자인 당신은 '평범한 남자'와는 사뭇 다른 존재로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 그렇구나'라는 담담한 동의의 표현. 상대가 여성일 때, 일단 그렇게 동의하고 공감하는 표현을 하는 남자가 되는 연습. 그렇게 마늘을 먹고 있는 남자라면, 이제 쑥을 먹어볼 차례다.


세상에 뿌려진 폭력만큼


남자인 당신과 어떤 여성이 있다고 해보자. 당신에 대한 그 여성의 인간적 신뢰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표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만약 그가 당신에게, 본인이 겪었던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지나가는 남자1보다는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종종 SNS를 통해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성폭력을 이야기하는 경우라거나, 가해자를 고발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를 공개하는 것을 당신이 엿듣는다거나, 그런 경우는 모두 제외한다. 오직 사적인 대화로만 범위를 좁힌다. 남자인 당신은 주변의 여자가 겪었던 성폭력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또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주변에는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겪은 사람이 없다'라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자인 당신에게 본인의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해준 사람이 있는가'라는 것은 굉장히 좋은 지표가 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단 한 번의 성추행도 당하지 않고, 성차별을 경험해본 적도 없는, 그런 여자는 말하자면 유니콘과도 같다. 어딘가에 있다고도 하지만 그 실체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아는 여자들이 아는 여자들 중에는, 전혀 없었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넓은 의미의 성폭력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여성이 한 명 쯤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임의의 한 남자를 골랐을 때 그 남자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들었던 사례들만 해도 이렇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떤 남자가 '뭐 묻었는데요'라고 해서 자신의 치맛자락을 보니 알 수 없는 흰 액체가 발라져 있었다. 그걸 닦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자 그 남자가 따라들어와서 가슴을 만지며 협박을 했는데 너무 심하게 울었더니 도망갔다. 늦은 밤 주택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큰 길가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자 어떤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쫓아오더니 성폭행을 시도했다. 기타등등…

여자들이, 혹은 여성의 편에 서는 남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스스로를 선량하다고 여기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한다. 그건 일부 또라이 범죄자들이 하는 짓 아니냐고, 대체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강간범 취급해서 얻는 게 뭐냐고 화를 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자신들의 겪는 일상적인 젠더 폭력과 사회적 압력에 대해 '어지간한 남자들'에게는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다만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그리고 상대가 '명예 남성'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을 때, 이야기가 나오면 그제서야 서로의 고통을 위로할 뿐이다.

남자들은 절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이것이 '보편적 경험'이다. 여성의 일상에는 폭력과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가족부의 연구 용역을 받아 "2013 성폭력 실태조사"를 출간했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중 19.5%는 평생 신체적 성폭력, 즉 가벼운 성추행, 심각한 성추행, 강간미수, 강간 중 하나의 범죄를 경험한다. 그렇다면 비신체적 성폭력의 경우는 어떨까? 여성들은 평생 10.1%가 성희롱을, 52.3%가 음란 전화 등에 의한 성폭력을, 36.8%가 성기 노출 목격을, 2.9%가 스토킹을 경험한다.[6]

위에 언급된 수치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미 19.5%, 다시 말해 거의 5명 중 1명이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온다. 음란 전화 등 통신 수단을 이용한 성폭력을 겪었다고 응답한 여성은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넘고, 성기를 노출하는 이른바 '바바리맨'을 목격했다는 사람 역시 3분의 1을 넘는다. 이상하게도 이 연구보고서에는 '신체적 혹은 비신체적 성폭력의 평생 경험 빈도'가 나와있지 않다. 이런 저런 수치를 다 합치면 100%를 넘기기 때문에, 즉 신체적이건 비신체적이건 어떤 방식으로건 성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굳이 그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게 아닐까.

물론 이 조사는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3500명의 표본 집단을 선정하여 진행한 것으로, 흔히 말하는 '통계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치가 너무 높아서가 아니라 너무 낮아서 말이다. 가령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이른바 '신안 섬마을 교사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후 자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0.7%가 교직 생활 중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다고"[7] 응답했던 것이다.

가장 많은 피해 경험은 술 따르기·마시기 강요(53.6%)였다. 이어 노래방 등 유흥업소에서 춤 강요(40.0%), 언어 성희롱(34.2%), 허벅지나 어깨에 손 올리기 등 신체 접촉(31.9%) 순이었다. 상대적으로 교장·교감 등 관리자들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에서 피해 경험이 많았다. 또한 응답자 2.1%는 키스 등 심각한 성추행 피해를 경험했으며, 강간과 강간 미수 등 성폭행 피해 비율도 0.6%(응답자 중 10명)로 나타났다.[8]

2016년 5월 20일, 강남역 공용화장실 살인사건과 10번 출구에서의 추모 열기가 불타오르던 그때, 신촌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가 개최되었다. 필리버스터는 본래 의회에서 의사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혹자는 '대체 그게 왜 필리버스터인가? 여자들이 떼로 모여서 하소연 할 뿐이지 않은가?'라고 빈정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그와 달랐다.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졌던 그 살인사건을 여성혐오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고, '우발적'인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하고자 하는 사회적 의제 날치기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해의 목표물이 될 여자를 일부러 기다렸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했고, 피의자의 입에서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심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경찰은 꿋꿋하게 '묻지마 살인'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상당수의 언론은 반성도 고민도 없이 그것을 받아적고 있었다. 여성혐오인가, '묻지마 살인'인가? 후자를 주장하는 남성 기득권 세력들의 사회적 의제 날치기가 진행중이었다. 그에 맞서는 여성들의 발언은 명실상부한 필리버스터였던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들만 다시 인용해보자. "지하철 여자화장실 옆칸에 한 남성이 화장실 바닥으로 몸을 눕혀 보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친 뒤 한동안 지하철 화장실을 못 갔다."[9] "새벽 1시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술에 취해 이상한 소리를 연거푸 내뱉는 낯선 남자가 두려웠다."[10] "12세 때 학원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상가 공용화장실에 갔다가 술 냄새가 나는 남성 두 명이 흉기로 위협해 그 일(성폭행)을 당했다."[11]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렇게 범죄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 확실한 이야기만 나왔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보고 듣고 겪는 수많은 성차별, 성'희롱', 위계에 의한 성적 행위 강요, 감정노동, 일상적 차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수의 남자들이 연단에 올라 '나는 남자인데 여자들의 세상이 이런 줄 몰랐다'고 고백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여성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할 차별과 폭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을 이야기였을지 모르지만,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가 복받쳐올라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여자들의 세상과 남자들의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그리고 여자들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범인의 성별은 대부분 남성이며, 그 남자들은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에 강간하고 성추행하며 '농담'을 지껄이고 있다.


악어 가죽 속의 남자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남자인 당신이 다짜고짜 어떤 여자에게 '네가 겪은 성폭력의 경험을 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까지 당신이 여자들로부터 직접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그만큼 당신이 여자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남자'로 인정받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니 말이다.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하는 것도 짜증나고 때로는 두려운데, 성폭력 경험을 들려달라고 어떤 남자가 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폭력의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여성이 먼저 말할 때까지, 남자는 상대에게 성폭력의 경험담을 들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남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할 자격도 없고 알 권리도 없으니 그냥 여자들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옳다고 하고 입 다물고 살라는 뜻인가? 이런 식으로 발끈하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책을 덮길 바란다. 친구에게 선물로 주거나 중고 서점에 팔아도 좋다. 페미니즘을, 아니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기본적 태도가 갖춰지지 않은 남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만을 쌓는다면 그것은 여성들에게 더욱 해로운 결과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편에 서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래서 페미니즘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남자, 맨스플레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맨스플레인하는 다른 남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싶어하는 남자라면, 다 떠나서 일단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토마 마티외, 맹슬기 옮김, 『악어 프로젝트』(서울: 푸른지식, 2016)

프랑스의 그래픽 아티스트 토마 마티외는 자신의 친구들 중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 성폭력의 사례를 수집했다. 인터뷰를 통해 모은 사례들을 만화로 그려내면서, 그는 남자들을 초록색의 악어로 형상화하고, 여성들에게는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남겨주었다. 요컨대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인 악어로 그려져 있고, 그 남자들이 뱉는 침, 싸고 도망가는 정액, 불쾌한 손길 등등도 모두 마치 방사능 폐기물이라도 되는 양 초록색으로 그려진다.

2015년 이후 국내 출판계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고, 다양한 서적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현학적이고 복잡한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고, 또 어떤 책은 남자들의 긍정적 변화와 발전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악어 프로젝트』처럼 철두철미하게 여자들이 겪는 세상,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상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다룬 책은 없다.

만약 남자인 당신이 『악어 프로젝트』를 읽어봤는데 너무 불쾌하고 화가 나서 그 책장을 끝까지 넘길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이 책도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여자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평생 한 차례 이상의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을 당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렇기에 여자들은 남자들을 '잠재적 강간범' 취급해도 우리 남자들은 그저 부끄러워하는 것 외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페미니즘 '공부'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당신은 계몽과 설득의 대상이 되기에는 기본적인 공감력이 모자라다. 곰과 호랑이가 변신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결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치 단군 신화가 그랬던 것처럼, 『악어 프로젝트』 역시 일종의 변신으로 마무리된다. 한 악어가 깨달음을 얻고, 스스로 악어 가죽을 벗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책의 지향점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는 페미니즘을 '공부'함으로써 변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을 받아들임으로써 변화의 첫 단추를 간신히 꿸 수 있을 따름이다.


마늘과 쑥, 그리고 사람


남자인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여성들의 발언을 무시하고 얕잡아보며 저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해 나 자신이 맨스플레인의 주체였음을 알아차리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한국 남자'라는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먹어야 할 마늘이다.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남자들의 그것과 달리 강간과 성폭력과 성희롱과 불쾌한 '농담'으로 가득차 있음을 이해하고, 여성들이 그런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얻는 남자가 되는 것, 그 쑥을 먹지 않는 한 '한국 남자'라는 곰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여자인 그들의 세상과 남자인 '우리들'의 세상은 그토록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을 우리는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여자들의 세상과 남자들의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둘째, 여자들의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은 나와 같은 종족인 남자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억압 때문이다. 셋째, 나는 한 사람의 남자로서, 나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기득권에 속하며 따라서 여성들이 겪는 억압과 고통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자들이여, 페미니즘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일단 페미니즘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여자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많은 경우 남자인 나보다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동시에, 그 여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을 싫어할 수도 있고 당신의 데이트 거절이나 메시지를 무시할 수도 있으며,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성폭행범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며, 진심으로 남자를 혐오할 수도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남자인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모든 장점만큼이나 단점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여자도 사람이다. 이 당위적 명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남자도 사람이다. 우리를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인 것이다.



[1]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12쪽.
[2] 같은 곳.
[3] 같은 책, 14쪽.
[4] 같은 책, 15쪽.
[5] 같은 책, 27쪽.
[6] 황정임, 윤덕경, 이미정, 김영란, 주재선, 김동식, 이인선, 정수연, 김현정. “2013 성폭력 실태조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3년 12월 15일. 연구보고 2013-49. 125쪽 참고.
[7] 배문규, "여교사 70% 성폭력 경험했다···“가해자는 주변사람”", 경향신문, 2016년 6월 15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151130001&code=940100 
[8] 같은 곳.
[9] 이승준, 박수지, “너무나 오싹했지” 꾹꾹 눌렀던 경험 털어놓다…옆집 여성들의 ‘필리버스터’, 한겨레, 2016년 5월 20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4765.html 
[10] 같은 곳.
[11] 신혜정, "“폭행 당하고도 내 잘못인 줄 알았다” 눈물의 증언 봇물", 한국일보, 2016년 5월 21일. http://www.hankookilbo.com/v/9c41cf18938145f9bc648906ab418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