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9

신비주의의 해로움, '무'를 바라보되 '유'에서 살아가기

1. 신비주의의 해로움

조선일보에 실린 최승자 인터뷰(2010)를 읽었다. 

―우리 시대와 사회가 시인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요? 오늘 찾아온 것은 사실 이 때문입니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자기 삶을 사회나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어요. 괜히 '우리 시대가 저 친구를 버려놓은 것이 아닌가' 말하는데, 이는 내가 선택한 삶이었어요. 나 혼자 겉돌았고 그런 공부를 했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렇게나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

―가장 궁금한 대목은 시를 쓰던 당신이 폐인(廢人)처럼 됐다는 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언제부터인가 노장(老莊)·명리학·사상의학·점성술 등과 같은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던 겁니다.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좇아갔어요. 답이 있을 듯하면서 손에는 답을 쥐기 어려운 공부였어요. 그 공부에 빠지면서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망가지고 말았던 것이다.

신비주의(로 통칭될 수 있는 것 모두)가 이렇게 해롭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상스러워서 자기 몸에 득 될 만큼만 먹어도 유해한데, 최승자처럼 모 아니면 도, 이런 강단 있는 사람이 탐닉하면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음.

있는 그대로 보이는 세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너머의 초월을 사유하는 방법. 로마 몰락과 기독교의 홀로서기 당시 교부들이 목숨 걸고 연구한 주제.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철학은 미사여구 음풍농월이 아님. 잘못된 철학은 사람, 사회, 국가, 문명을 망가뜨린다.


2. '무'를 바라보되 '유'에서 살아가기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글이 있다. 제목은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

반야심경_현대어_번역.jpg

반야심경의 내용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독백체로 옮긴 것이다. 아마 일본 웹에서 일본어로 작성된 텍스트를 한국어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는 주지하다시피 '무' 혹은 '공'을 직시하는 종교다. 없으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에서 유로 왔고,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 피안과 내세와 안녕을 비는 그 모든 행위는 거짓이다. 우리의 삶과 존재에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거기서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시인 최승자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향한 끝없는 공부에만 빨려든다면?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으로 돌아가보자. 반야심경을 원래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갸웃할만한 대목이 있다. 원문의 내용을 굉장히 길게 풀어서 번역한 나머지, 원문의 어느 대목의 번역인지 짚어내기도 어려운 그런 부분이 있다.

착각은 하지 마. 무정한 사람이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지 마. 그걸 할 수 있다면 열반은 어디에나 있어. 사는 방법은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아. 단지 받아들이는 방법이 변하는 것 뿐이지.

딱 봐도 불경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혹은, 이런 내용이 정말 이렇게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 이건 '번역'이 아니라, 주관이 많이 개입한 해석이다. 일종의 재창작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의 번역이니 말이다.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여기에 저 내용이 있다고? 음... 없지 않다. '무고집멸도'. 그것이 저 내용이다. 고집멸도 중 '멸'에 속하는 것에 집착하고 탐닉하면, 수행자는 '무정한 사람'이 되거나,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은 수행 광인이 된다.

그것을 반야심경은 단 5자로 적어놓았고,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은 구구절절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저 내용의 압축을 저렇게 풀어서 전달하는 게 과연 '옳은' 번역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을 오역이라 매도할 수는 없다. 그 '오역'은 어디까지나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아예 필요하지 않다. 우리 가족 돈 잘 벌게 해달라고 교회 가고 절 가고 점집도 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다. 그들에게는 과도한 수행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끔, '무'를 바라보다가 정말 그 '무'에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심연을 바라보다가 진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반야심경의 원문에는 '무고집멸도 무지'가 적혀 있고,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이라는 걸 쓴 (아마도) 일본인은 그 내용을 참 길고 자세하게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무'를 굳이 바라보고야 마는 모든 이들의 평온을 빈다.

1960년 12월생 윤석열은 설에 63살? 62살? 61살?

 

1960년 12월생 윤석열은 설에 63살? 62살? 61살?

[노정태의 뷰파인더] 세계 유일 한국식 나이 셈법

● 자궁에서 10개월 보내면 한 살?
● 고대, 중세 중국 전통
● 일본 연호가 기년법
● 행정편의주의 ‘年 나이’


한국인은 매년 새해를 두 번 맞이한다. 양력으로 1월 1일에 한 번, 음력으로 1월 1일에 한 번. 새해 결심을 했다가 못 지켜도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며 농담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매년 나이도 두 번 먹는다. 1월 1일에 한 번, 자신의 생일에 한 번. 태어날 때부터 일괄적으로 부여받은 한 살에 매년 한 살씩 덧붙는 ‘세는 나이’, 그리고 대부분의 공문서에 사용되는 ‘만 나이’가 그것이다.

한국인의 나이 셈법. 이 문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K-팝과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유행과 더불어 이제는 전 세계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나이를 세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한국과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한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에서도 출생 이후의 나이만을 세고 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한 사안이다. 그만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9년, 2020년, 2021년, 매해 빠지지 않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한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올해 1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의제를 던졌다. 이준석 당 대표, 원희룡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1월 17일 유튜브에 공개된 ‘59초 쇼츠’ 영상을 통해 서로 몇 살인지 물어보며 오락가락하는 한국의 나이 셈법을 문제 삼았다. 그러고는 윤석열을 향해 바꿔보자고 제안하자 윤석열은 “좋아, 빠르게 가”라고 답하며 영상이 끝난다.

생각해보면 이건 퍽 이상한 상황이다. 드러나는 의견만 놓고 보면 그 누구도 복잡하고 난삽한 한국식 나이 셈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만 나이를 쓴다. 그런데 왜 우리의 나이 체계는 쉽게 통일되지 않는 걸까?

허세, 주세, 실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11112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일단 가장 흔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하겠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부여하는 한국식 ‘세는 나이’는 태아가 잉태해 있던 시절을 포함하는 인간적인 나이 셈법이라는 주장 말이다. 그렇지 않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출생하기까지 사람은 대체로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낸다. 그보다 일찍 태어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12개월을 채우는 아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논리에 따라 1월에 잉태해 11월에 태어난 아기의 나이를 한 살이라고 센다면, 10월에 잉태해 이듬해 8월에 태어나는 아기의 나이는 두 살로 세는 것이 합당하다. 이미 자궁에서 보낸 시간에 세는 나이의 기본인 한 살을 또 더해야 할 테니 말이다.

세는 나이에 대한 두 번째 오해가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세는 나이는 ‘우리’ 전통이 아니다. 동아시아권, 특히 중국에서 풍부한 문헌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중국 전통이다. 청나라가 무너진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 대륙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차지한 역사적 격변 이전으로 돌아가 보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형태의 나이 세는 방식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이기천 서강대 사학과 강사의 논문 ‘당송대(唐宋代) 묘지(墓誌)의 연구와 생년(生年) 표기: 나이 세는 방식의 혼란과 제안’(중국학보 96권, 2021년 5월)을 펼쳐보자.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사람들이 죽은 이를 매장할 때 묻는 묘지(墓誌)라는 문헌이 있다. 운 좋게 고스란히 발굴되면 상당히 큰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해당 시대의 사람들이 직접 작성하고 매장한 살아있는 텍스트다. 그리하여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묘지를 중요한 사료로 삼는다.

단, 문제가 있다. 당송대 사람들의 나이 세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마치 오늘날 우리처럼, 나이를 세는 방법이 세 가지나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은 허세(虛歲)다. 지금 우리 ‘세는 나이’와 같은 방식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치고, 매년 해가 바뀔 때 한 살을 더한다. 다만 그 시절에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썼다는 차이가 있다. 둘째로는 주세(周歲)가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연 나이’와 같은 개념이다. 태어난 해를 한 살이 아니라 0살로 치고, 매년 정월 초하루에 한 살을 더한다. 마지막은 실세(實歲)다. 태어난 날부터 하루씩 더해 생일에 한 살이 된다. 다음해 생일에는 두 살. 지금 우리가 아는 ‘만 나이’다.

이기천은 당시 문헌을 다방면으로 검토해 당송대 사람들은 대체로 허세에 따라 나이를 따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당연한 나이 셈법’, ‘표준적 나이 셈법’은 주세도 실세도 아닌 허세였다. 그러므로 후대 연구자들은 일단 허세, 즉 세는 나이에 따라 해당 시대 문헌을 읽자고 주장한다. 개별 연구자가 임의로 주세나 실세를 통해 당나라와 송나라 사람의 나이를 세고 논문을 쓰면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독창적이고 고유하고 아름답다고?
그러니 ‘세는 나이’에 대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를 셌을까?’라고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보다는 ‘왜 고대와 중세의 중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를 셌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 방식은 베트남과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고루 수출됐지만, 오직 대한민국만이 여전히 이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는 나이’의 수수께끼는 간단하다. 기년법(紀年法)을 개인에게 적용한 것이다. 기년법이란 무엇인가? 왕의 제위 기간에 따라 달력을 구분 짓는 방식이다. 태종 이방원은 서기 140011월에 즉위했다. 그에 따라 1400년은 ‘태종 1년’으로 불린다. 그는 서기 1418년 9월 9일에 왕좌를 세종에게 물려줬다. 따라서 1418년은 태종 18년이자 세종 1년이 된다. 0이라는 개념 없이,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시대의 흐름을 구분 짓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독자는 이런 식의 나이 세는 방식, 혹은 시대 구분하는 법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전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동아시아의 전통적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일본의 연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2019년 5월 1일, 아키히토 텐노가 물러나고 나루히토 텐노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令和’라고 쓰인 붓글씨를 대중에 공개했다. ‘令和’, 일본식으로 ‘레이와’라 읽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린 것이다. 2019년은 일본인에게 헤이세이 31년이자 레이와 원년, 즉 레이와 1년이 됐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전통에 대해 ‘기원’보다는 ‘사용’, ‘과거’보다는 ‘현재’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대찌개가 어엿한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일본의 ‘노리마키’(海苔巻)와 한국의 ‘김밥’은 모두 적당히 간을 한 밥을 김에 싸서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같고, 엄밀하게 기원을 따지자면 노리마키가 김밥의 원조다. 그러나 노리마키의 ‘전통’을 김밥은 넘어선지 오래다. 우리는 그 속에 치즈를 넣고 참치를 넣고 뒤집어서 싸고 청량고추로 매콤한 맛을 내며 심지어 밥이 아니라 계란지단을 꽉꽉 채워 넣으면서도 ‘김밥’이라고 부른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그러니 ‘세는 나이’를 ‘우리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덧붙여 우리 문화의 ‘고유한’ 전통이라거나, 오직 우리에게만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미풍양속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는 나이의 기본이 되는 기년법, 그 연장선상에 있는 허세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반도에 유입됐다. 앞서 언급했듯 전 세계에 기년법을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습군주제를 유지하는 일본은 온 국민이 우리만큼이나 능숙하게 기년법을 쓴다. 세는 나이를 옹호하고자 우리 문화의 독창성, 고유성, 아름다움을 근거로 들이대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일 수밖에 없다.

71%가 세는 나이 폐지에 찬성
중국과 대만은 세는 나이를 일소한 지 오래다. 일본 역시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년법이나 그로부터 파생된 나이 세는 법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허세, 혹은 세는 나이가 보편적으로 살아남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나 나름대로 열심히 논문과 책 등을 뒤져보았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아주 거친 추론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필자는 한국에서 쓰이는 또 다른 나이 셈법인 ‘연 나이’에 주목한다. 연 나이는 문화와 관습이 아니라 법에서 쓰이는 나이 셈법이다. 청소년보호법이나 병역법 등 일부 법률은 연 나이를 사용한다. 이런 법을 개정해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것이 국민의힘 공약이다.

연 나이를 사용하는 저 두 법에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젊은이들을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목적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만 나이에 따라 청소년보호법을 적용한다고 해보자. 같은 학교와 학급 내에서도 청소년보호법의 대상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뉠 수 있다. ‘관리’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병역법의 목적은 더욱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 늘 전쟁 위험을 안고 있다. 여차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단번에 군사 단위로 편성해야 했다. 병역의무를 부과할 때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연 나이와 세는 나이는 시작점이 0세냐 1세냐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같은 나이 셈법이다. 연 나이는 청소년이냐 성인이냐, 군 입대 대상자냐 아니냐와 같이, 한국인 특히 남자들의 인생에서 큰 분기점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용돼 왔다. 그러니 그 자매품이라 할 세는 나이 역시 수십 년간 한국인의 문화에 깊게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닐까.

이유가 무엇이건, 이제 세는 나이는 사라질 때가 됐다. 1월 5일 한국리서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가 세는 나이 폐지에 찬성한다. 청소년 보호와 병역 의무 수행이라는 중요한 과제 역시 행정편의주의가 아닌 당사자의 실제 연령에 맞춰야 마땅하다. 국제적인 표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저항적 지식인이 체제에 복무하(게 하)는 방법

옌롄커의 대표작은 '레닌의 키스' 이후 나왔다. 하지만 이 책들은 중국에서 금서가 됐다. 작가 옌롄커는 '가장 문제적 작가'가 됐다. 작가도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작품에 대한 자기검열은 한창 강화됐고, 정부에다가는 해외 출판이라고 허락해줘 고맙다고 해야 한다. 나랏돈 받아 글 쓰는 중국작가협회 소속 전업작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케 한다. (링크)

1) 국가가 월급을 줘서 먹고 살게 해준다.
2) 책을 내는 족족 금서로 만든다.
3) 단, 해외 출판을 허용한다. 해외에서 인터뷰도 하게 해준다.

옌롄커는 책을 쓰고, 내고, 생계를 보장받는다. 중국은 '우리에게도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게 있다'는 알리바이를 얻는다.

나는 그의 입장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온전히 상상하지 못한다. 옌롄커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 충분히 강력한 독재 체제는 '비판적 지식인'마저도 이렇게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이건 '대중적 지식인'이건 마찬가지다. 작가 역시 다른 직군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평가받아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옌롄커의 '저항'이 따옴표 치지 않아도 되는 저항이 될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2022-01-22

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참사에서 세월호가 어른거린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일벌백계’에서 ‘백벌백계’로

●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교훈
● 찰스 페로의 통찰, ‘정상 사고’
● 분풀이 패러다임은 해결책인가
● 중대재해처벌법 우려하는 이유
● 작업중지권 없는 韓 근로감독관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건설 중인 아파트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져 내렸다. 공사 작업자 중 6명이 실종됐다가 1월 14일 1명이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1월 18일 현재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광주=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대형 참사는 ‘정상적’ 사건이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소개된 책 ‘Normal Accident’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형 사고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뒤흔든 바 있다.

대형 건축물, 원자력 발전소, 화학 공장, 비행기, 배 등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가 결합해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떠올려보자. 각각 목적도 제작 방식도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중층적 하위 체계를 결합해 만들어지며, 하위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적당히 뺐고, 적당히 실었으며, 적당히 묶고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그 나름의 철저한 관리 감독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부분은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마치 고도로 복잡한 생명체인 인간이나 동물이 작은 병이나 상처를 입은 채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큰 차질이 없는 상태. 그런 상태는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작은 문제가 여러 개 중첩되면 어떨까. 평소 다한증이 있어 손바닥에 땀이 많이 나는 사람이, 발바닥에 작은 티눈이 생겼고, 오늘따라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충혈 되고 침침한 상태라고 해보자. 떼어놓고 보면 별 문제가 아니다. ‘정상’이다. 다만 발바닥의 티눈 때문에 걸음걸이가 어색해진 상태에서, 눈이 잘 안 보여 균형을 잃었는데, 손바닥에 땀이 나 있어서 계단의 난간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넘어진다면 ‘정상적’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크게 다칠 수 있다.

페로의 주된 목적은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였고, 터빈의 작동이 멈췄다. 흔히 발생하는 ‘정상적’ 상황이었다. 하필 그 상황에 대비한 비상 급수 펌프가 막혀 있었다. 이틀 전 보수 작업을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지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밸브에 이상이 있을 때 표시하는 램프 위에는, 하필이면 바로 그 때, 서류가 붙어 있었다. 밸브 이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곧장 대처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노심이 과열됐고 미국에서 가장 큰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사고도 마찬가지다. 늘 해왔던 것처럼 짐을 더 싣기 위해 평형수를 적당히 뺐고, 배에 많은 짐을 실었으며, 그 짐을 제대로 묶지 않았다. 하필이면 조류가 거세게 휘몰아치는 수역에서 선박 운항에 서툰 3등 항해사가 키를 잡았고, 짐이 무너지면서 배가 균형을 잃었는데, 하필 그때 배의 조타장치를 움직이는 부품이 관리 소홀로 인해 한쪽으로 쏠린 채 고정되고 말았다. 무게균형이 깨지지 않았다면 적당히 제 자리에서 맴돌았을 세월호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게다가 최고 안전 책임자 선장과 그 아래 고급 선원 다수가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도망쳤다. 그 결과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벌어졌다.

이렇듯 거대한 공장, 발전소, 건설 현장, 기차나 배, 우주선 같은 대형 시스템에는 ‘정상적’으로 처리되면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사고가 겹친다. 그러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 찰스 페로는 그와 같은 현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상호작용성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이라는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한다.”

너무도 친숙한 패턴 반복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월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1월 11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건설 중인 아파트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23층부터 38층까지 무너져 내렸다. 공사 작업자 중 6명이 실종됐다가 1월 14일 한 명이 사망한 상태로 수습됐다. 1월 18일 현재 아직 5명이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사고 후 전개는 우리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사임했다.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공사부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와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감리 3명 역시 관리 감독 소홀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문제가 터진 후 ‘책임자’를 찾아서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드높이는, 너무도 친숙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 실종자 수습과 원인 분석이 이뤄지는 중이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고층 아파트 건설 사고 역시 일종의 시스템 사고라는 것이다. 개별적 작업만 놓고 보면 ‘이쯤은 해도 되겠지’ 싶어서 어기는 안전 규칙, 혹은 챙기지 못한 작은 실수와 문제가 중첩돼 거대한 사고로 이어졌으리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단 하나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사고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형 사고에 대해 이전과 같은 방식의 대응만을 반복한다. 책임자 나와라, 누구 잘못이냐, 누구 하나 붙잡아 ‘일벌백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심지어 현장 작업자들이 이른바 조선족이라는 식으로 혐오 발언 성격을 지닌 음모론마저 횡횡한 상태다. 누군가는 잘못을 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은 애꿎은 희생자가 됐겠지만 ‘일벌백계’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된다.

‘일벌백계’는 기본적으로 백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을 처벌해 본보기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99건의 위반 사항을 잡지 않거나 못한다는 소리다. 그런 식으로는 시스템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사항을 100% 철저하게 지킨다 해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수와 오류가 중첩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일벌백계’는 사고의 예방이 아닌 사고 발생 후의 분풀이를 위한 패러다임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는 1월 27일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우려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하청이나 재하청이 아닌 원청의 대표자나 책임자 등이 형사책임을 지게 된다. ‘일벌백계’의 세계관에 따르면 대단히 정의로운 일이다. 하지만 건설 및 산업 현장의 인센티브 구조는 그대로다. 원청과 하청의 먹이사슬은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앞으로는 사고가 날 경우 대신 감옥에 갈 누군가를 앞세우는 식으로 기업들이 대응하지 않을까. 심지어 ‘일벌백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백벌백계’와 체크리스트
해법은 없을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작은’ 사고들이 모여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현상, 그것을 어떻게 가능한 한 원천봉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답을 모두 설명했다. ‘일벌백계’를 버리고 ‘백벌백계’로 나가야 한다. ‘큰’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고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때리는 식으로는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작은’ 사고를 막지 못하면 결국에는 ‘큰’ 사고가 터진다. 그러므로 핵심은 ‘작은’ 사고들을 꾸준히 체크하고 예방하며 곧장 수정하고 확인할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는 의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다. 현직 의사면서 ‘뉴요커’의 필자로도 유명한 아툴 가완디는 ‘체크! 체크리스트’에서 그러한 과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대 의료계의 근본적인 수수께끼가 있다. 지독하게 아픈 환자가 있다. 그 환자를 살리려면 먼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에 따른 직무 178가지를 매일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리고, 바로 옆 침대에 있는 환자의 심장이 멎고, 여성 환자의 가슴 개복을 도와달라고 간호사가 찾아오더라도 일의 종류나 성격에 상관없이 178가지 일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인 상황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의료계가 충분히 전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툴 가완디의 해법은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고 확인하며 일하는 것이다.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확인할 사항을 체크리스트로 만들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앞서 서로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며 그 체크리스트를 검토한다. 그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업무 현장은 훨씬 민주적인 분위기로 변하고, 서로가 상대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사소한 실수가 거대한 실패를 낳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단,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수술실에서 가장 직급이 낮은 간호사에게 체크리스트를 맡기면 권위적인 의사나 간호사는 무시하고 ‘대충 빨리 하자’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체크리스트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체크리스트에 입각해 좋은 조언을 해도 권위적인 기장이 듣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수술실 막내 간호사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산업안전에 대한 우리의 법과 규정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주요 외국의 하도급 산업안전 체계와 함의’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좋은 제도를 많이 수입해 놓은 상태다. 문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박찬임은 특히 현장에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근로감독관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근로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이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작업중지권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있다. 근로감독관은 다만 관계인에게 질문하고 서류를 요청할 권한을 가질 뿐이다(산업안전보건법 제 155조 1항). 수술실의 막내 간호사가 체크리스트를 쥐고 있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어도 의사를 막을 권리는 없는 셈이다. 물론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확충하는 것 말고도 더 좋은 방안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초유의 아파트 붕괴 사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실종자를 찾는 것만이 아니다. 민주적으로 소통하며 지킬 건 지키는 안전한 산업 현장을 이뤄 나가야 한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내려고 대충 넘어가는 악습을 도려내지 않는 한, ‘정상 사고’는 언젠가 재발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아무튼, 주말] 코로나 패닉에 던져진 확률 퀴즈… “백신 접종, 살아남는 데 정말 유리할까?”

[노정태의 시사哲]
몬티 홀의 ‘세 개의 문’과
백신 효과의 상관관계

퀴즈. 세 개의 문이 있다. 그중 하나를 열면 최신형 자동차가 있지만,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3분의 1의 확률로 당첨, 나머지 3분의 2는 꽝인 셈이다. 여러분은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러스트=유현호

가상의 수학 문제가 아니다. 1963년부터 40여 년간 방송된 미국의 TV 쇼 ‘거래를 합시다’(Let’s Make A Deal)에서 수없이 반복된 상황이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몬티 홀은 퀴즈를 맞힌 참가자에게 상품을 뽑으라며 질문을 던졌다. “1번 문을 원하십니까, 2번 문 아니면 3번 문?” 참가자가 문 하나를 고르면 정답을 아는 몬티 홀은 능청스럽게 참가자가 고르지 않은 문을 하나 택해서 보여준다. ‘꽝’이다. 몬티 홀은 다시 묻는다. “지금 선택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꾸시겠습니까?”

얼핏 생각해보면 굳이 선택을 바꿀 이유가 없는 듯하다. 꽝 하나가 제거되었지만, 아무튼 내가 원래 택한 문은 정답이거나 오답일 것이고, 그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처음 선택을 바꿨다가 꽝을 뽑게 되면 얼마나 후회막심이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출연자들은 처음 고른 선택지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 최고의 IQ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던 칼럼니스트 메릴린 사반트가 볼 때, 선택지를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몬티 홀이 세 개의 문 중 하나가 오답이라는 걸 보여줬다면 참가자는 선택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다. 어째서일까? 몬티 홀의 개입으로 인해 단순한 확률 문제가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건부 확률은 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다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뜻한다. 몬티 홀은 오답을 하나 제거하면서 참가자에게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준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건은 확률의 조건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차분하게 따져보자. 참가자가 처음에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2,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었다. 그런데 몬티 홀이 등장하여 오답을 ‘골라서’ 제거해줬다. 그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3분의 1의 오답 가능성을 몬티 홀이 대신 가져가준 것과도 같다. 따라서 참가자가 새로운 선택을 하면 오답을 택할 가능성은 3분의 1이다. 세 개의 문 중에서 하나가 오답이라는 것을 미리 아는 상태에서 나머지 오답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답을 택할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3분의 2로 늘어난다.

곧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거래를 합시다’ 시청자 중 메릴린 사반트에게 항의 편지를 보낸 사람은 1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000명가량이 수학이나 공학 등을 전공한 ‘이과인’들이었다는 점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확률, 특히 조건부 확률은 많은 경우 우리의 직관과 상식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티 홀 문제는 수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전제 조건이 달라졌다면 확률도 달라진다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백신 맞아도 코로나 걸리잖아, 그럼 대체 백신을 뭐 하러 맞는 거야?” 요즘 많은 곳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완전히 틀리는 말은 아니다.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위험성은 전혀 달라진다. 편의상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확률을 50%라고 해보자. 반면 백신을 맞을 경우 10%만이 죽는다. 이 경우, 50명이 백신을 맞았지만 10명은 백신을 맞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코로나 사망자는 총 10명이 나오는데, 그중 5명은 백신 미접종자, 5명은 백신 접종자가 된다.

그렇다고 백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백신 미접종자의 사망률은 여전히 접종자보다 다섯 배나 높으니 말이다. 다만 백신 접종자의 전체 숫자, 즉 모수(母數)가 다섯 배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망자 수가 같게 보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백신을 맞아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 사망에 대한 전제 조건이 달라지고, 조건부 확률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은 오답의 가능성을 미리 줄여주는 몬티 홀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백신을 맞는다 해도 운이 나쁘면 돌파 감염되어 ‘꽝’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확률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뀐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돌아다니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대신, 종이와 펜을 놓고 찬찬히 숫자를 따져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는, 수학적이면서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이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 백신 회의론과 백신 거부 움직임이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고 있으니 다들 상당히 지쳤을 법도 하다. 방역패스의 필요성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더라도 합리적인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자영업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 또한 지우기 어렵다. 방역패스에 대한 법원 판결로 인해 혼란은 더욱 가중될 듯하다.

코로나 백신은 급하게 만들어낸 최신작이다. 다른 백신에 비해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백신의 효과는 조건부 확률 같은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을 통해 바라봐야 온전히 이해 가능하다. 국민 정서와 눈높이를 감안한 과학적 설득을 꾸준히 해나가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영업자들의 피눈물을 못 본 체하며, 우리나라가 ‘방역 모범국’이라 자화자찬하더니, 해외 순방을 빙자한 외유를 즐기고 있다.

일부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다 못 해 백신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지난 18일 발표된 조선일보·TV조선 여론조사에서 ‘코로나와 관련한 정부의 방역 관리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사 대상자 중 절반이 넘는 54.1%가 ‘아니요’라고 대답한 것 또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3월 9일 수요일, 우리는 새로운 몬티 홀 문제를 풀게 될 예정이다. 선택지를 둘로 줄이면 조건부 확률에 따라 정답을 맞힐 가능성이 높아질까? 몬티 홀 문제처럼 선택지를 바꿔야 하나? 정치는 수학이 아니라 생물이니,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금물. 다시 한번 ‘꽝’을 뽑지 않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다.

2022-01-17

미군 부대에서 눈 치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미군은 눈 안 치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미군도 눈 치운다. 내가 해봐서 안다. 여차하면 소대장 중대장도 삽 들고 나와서, 커다란 제설차가 다니지 못하는 구석구석 다 치운다.

나는 '미군은 사람 고용해서 치우는데~' 같은 소리에 담겨 있는 발상이 싫다.

'내가 군대에 가서 눈이나 치울 사람이 아닌데 개고생했다'는 식의 억울한 자의식이 싫다.

미군이건 한국군이건 중공군이건, 아니 군인이 아니어도, 눈이 오면 치워야 한다. 눈을 치워야 길이 뚫리고, 길이 뚫려야 전쟁을 하건 일을 하러 가건 할 거 아닌가.

'나는 군대에서 눈을 치워서 억울했다'는 소리,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그런 못난 소리를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남자들에게 조용히 속으로 -1점을 부여한다.

나는 뒷짐지고 에헴 할테니 너희가 다 해라, 이런 식의 종놈 부리고픈 양반 근성이 드러나는 못난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군가' 해야 할 일은 없다. 내가 하거나, 명확한 보상을 제공하며 남에게 정확하게 지시해야 한다. 떼떼거리는 못난 소리 그만들 하자.

2022-01-15

이재명 ‘탈모 밈’ 윤석열 ‘멸콩 밈’은 흥겨운 헛발질

 [노정태의 뷰파인더] 그들은 아이젠하워가 아니거늘

● 李 ‘심는다’, 尹 ‘멸치와 콩’
●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 지지층만 즉각 반응한 ‘챌린지’
●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8일 서울 동작구 이마트 이수점에서 멸치와 콩을 사고 있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 제공]
선거는 일종의 흥행 사업과 유사하다. 유행어를 만들고 히트시키는 쪽이 재미를 보게 마련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고사하고 TV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전부터 그랬다. 미국의 전직 장군 아이젠하워는 ‘아이 러브 아이크(I Love Ike)’라는 입에 착 붙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밈’에 힘입어 그는 정치 경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이겨내고 1952년 대선에서 이겼다.

입에 착 붙는 구호가 선거를 좌우하는 모습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반복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는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돌파하더니 미국 대통령직을 꿰찼다. 바야흐로 ‘밈 정치’의 시대가 열렸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재명을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월 4일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이다. 탈모인들의 수요를 노린 ‘소확행’ 공약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인터넷에서 탈모는 신체 현상이기에 앞서 하나의 밈이다. 즉 ‘이재명은 심는다’는 말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것을 의도하고 내놓은 공약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1월 8일 인스타그램에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과 함께 “장보기에 진심인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문제는 그 밑에 달린 해시태그다. “#이마트 #달걀 #파 #멸치 #콩 #윤석열”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듯하지만, 네티즌 반응은 달랐다. ‘멸치’와 ‘콩’의 앞 글자를 따면 ‘멸콩’, 즉 ‘멸공’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운영하는 ‘AI 윤석열’은 그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다. ‘달파멸콩’, 가족과 함께 하는 좋은 주말 보내세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내 ‘멸공 밈’에 정국이 휩쓸려 들어갔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밈의 흥행이 과연 정치적 성공에 도움이 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직접 출연해 화제가 된 15초 분량의 ‘탈모 공약 동영상’. [유튜브 캡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밈’의 개념부터 파악해보자. 독자 여러분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그 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제시된 신조어다.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생명체란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증식을 위해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 기계’라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볼 때 자기 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것은 유전자(gene)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문화 속에도 유전자와 유사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누군가가 창발적으로 떠올린 후 다른 이들이 따라함으로써 살아남고 전파되는 새로운 유형의 자기 복제자. 그것이 바로 ‘밈(meme)’이다. 그리스어에서 모방을 뜻하는 어근인 미멤(mimeme)을 적당히 편집해 gene과 운율을 맞춰 만들어낸 신조어다. 즉, ‘밈’ 자체가 일종의 밈인 셈이다. 도킨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어떤 밈은 그리 널리 퍼지지 못하고 금세 잊힌다. 설령 널리 퍼졌다 해도 그리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가요 차트를 점령한 수많은 유행가가 그렇다. 어떤 노래는 사람, 때로는 국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애국가라던가, 혹은 대한민국 건국 전부터 사람들에게 불렸던 아리랑 같은 노래를 떠올려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밈은 ‘생각의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생명 활동을 하지 못한다. 허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숙주가 될 생명체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퍼뜨린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두뇌와 그로 인한 문화가 없다면 밈은 존속할 수 없다. 어떤 밈은 다른 밈보다 전파력이 크고 때로는 수백 수천 년을 살아남는다. 신이나 종교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만들고 퍼뜨리는 밈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유전자가 서로 경쟁하듯 밈 또한 경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두뇌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밈의 성공은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가정하자. 그 밈을 전달하려는 것 이외에 사용된 모든 시간은 그 밈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하여 같은 날 공개되는 수많은 노래, 개봉하는 영화, 방영하는 드라마 등이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집중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멸공 챌린지’의 이면
오늘날 밈의 작동 방식은 한층 더 바이러스와 가까워졌다. 제도권 언론이 중심이던 시대에는 소수의 밈이 대량으로 복제됐다. 지금은 다량의 밈이 상대적으로 적게 복제된다. 대신 그 과정에서 복제자들, 즉 밈을 퍼다 나르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밈을 복사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달하면서, 한 두 마디 코멘트를 붙이거나 때로는 밈 자체를 변형시킨다. 네티즌들이 각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멸치와 콩을 보여주며 ‘멸공 챌린지’에 참여했던 것 또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후보와 극적인 재결합을 이룬 후, 국민의힘은 ‘밈 정치’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이준석 스스로가 ‘멸공 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긴 했지만, 그 외의 메시지를 볼 때 그러한 방향성은 뚜렷해 보인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메시지를 내놓았던 것도 그렇고, 그 후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단문을 제시한 것도 그러하다. 구체적인 내용과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전파할 수 있도록, 아주 짧은 밈으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온라인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열렬하게 ‘멸공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딱 한 줄에는 40분 만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한 줄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등장할 만큼 윤석열의 밈이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수세에 몰려 있던 윤석열의 선거 운동이 공세로 돌아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1월 10일까지의 조사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지지율 역시 반등했거나 하락세를 멈춘 듯하다. 윤석열과 손잡은 이준석의 ‘밈 정치’, 과연 대성공일까.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앞서 말했듯 밈은 바이러스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할수록 치명도가 약해진다. 독성이 강해 숙주를 빨리 죽이는 바이러스는 널리 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독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여러 차례 변이를 거치며 전파되다보면 치명률은 줄어들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떠올려보자. 초기에는 사망률이 매우 높았지만 오미크론은 그렇지 않다. 전파력은 매우 빠르지만 초기 변이에 비해 치명률과 사망률이 많이 약화됐다. 숙주를 타고 옮기는 자기 복제자의 숙명이다.

밈 또한 마찬가지다. 밈은 정신에 퍼져나가는 바이러스다. 원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질적 집단 내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는 밈은, 그 외의 집단에 잘 전파되지 않는다. 때로는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육체에 전파되는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다.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그 치명률 혹은 독성을 줄여야 한다.

이준석이 멸공 밈의 확산에 제동을 건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같은 지지자들 내에서 보면 흥겨운 놀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국민의힘 기존 지지층을 넘어서는 유권자들에게는 그 설득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멸공 챌린지 참여자들을 두고 “성향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인 코멘트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를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야지 특정 계층만 갖고 선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된 2022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아이 러브 아이크’가 전부는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 ‘아이 러브 아이크’는 아이젠하워의 승리에 도움이 됐지만 공화당이 밈 하나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하워에게는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라는 아우라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20년간 이어진 민주당의 통치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우월한 구도와 인물의 힘이었다. 트럼프의 경우도 다른 방향에서 짚어봐야 한다. 트럼프가 다양한 밈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건 맞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유권자로부터 230만여 표를 더 얻었다. 승자독식제에 기반한 선거인단제라는 미국 특유의 대통령 선거 제도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탈모 밈’으로 반전을 꾀했던 이재명의 선거운동 역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일각에서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이 지닌 재정 문제를 지적하자 밈의 정치가 급속히 약화됐다. 윤석열의 밈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멸공 논란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도 표심을 멀어지게 한다. “원래 그런 사람들”끼리 열광하는 분위기가 연출되면 ‘굴러온 돌’들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이치다. 밈의 정치학이 가지는 한계다. 일종의 ‘인사이더 조크’로 작동하기에 ‘우리 편’과 ‘남의 편’의 경계선을 그어버린다.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 특히 남자 유저들이 많은 커뮤니티의 분위기만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인터넷 밈은 선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편’끼리 서로 기를 살리는 데 적격이다. 그러나 인터넷 밈에만 의존해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민 전체에 소구력을 지니는 대안과 구호를 끌어내고, 유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설득해 나가는, 그런 선거를 보고 싶다.

2022-01-14

왜 한국인들은 군인을 싫어할까

한국 사회 전반의 군인 멸시는 굉장히 뿌리 깊은 것이고 여자들 탓만 하는 게 이상하거든요. 제가 카투사 있을 때 미군 중에도 저한테 물어본 놈이 있었습니다. 왜 너희 나라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 군인을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고.
 
일단 군사 쿠데타를 경험했던 나라라서 실은 군대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라 겁내는 거다. 그리고 온 남자들이 다 군대에 갔다 오면서 각자의 나쁜 기억을 갖고 오고 그걸 다 떠들다보니 전반적 인식이 더욱 안 좋다, 뭐 이정도 설명을 했는데 그래도 잘 납득하지는 못하더군요.

사실 우리가 미국식 군인 땡큐 문화를 당연한 표준처럼 여기는 게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뭐가 됐건 겉으로는 예쁜말 고운말로 포장하는 문화적 풍토가 있죠.
 
반면 우리는 뭐든 일단 까고 냉소하는 게 디폴트. 군필자들이 군대에 대해 좋은 이야기 안 하는데 군대 안 갔고 갈 일도 없는 사람들이 군인을 존중하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미국인들처럼 땡큐 해피 원더풀 알러뷰 같은 소리 입에 달고 살지도 않는 한국인들이 군인에게만 땡큐 할 리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다가...
 
저도 한 사람의 군필자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천은 '나의 군 생활을 욕하지 않기', '내가 군대에서 배웠던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같습니다.
 
---------
 
모처에서 어떤 분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2022-01-08

YTN '나이트포커스' 1월 7일 출연했습니다.


제가 한 말 중 몇몇 중요 대목을 적어둡니다.

 

1. 윤석열의 음주운전 공약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딱 붙어 있잖아요. 그리고 말도 똑같은 말을, 거의 비슷한 말을 쓰고 그런데.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사망자 발생률이 벨기에가 네덜란드의 2배예요, 교통사고 사망률이. 

그런데 공교롭게도 국제투명성기구의 반부패지수 CPI를 보면 네덜란드는 2006년 현재 세계 9위 청렴한 나라인데 벨기에는 세계 20위란 말이죠. 이게 뭐냐. 교통사고에 너그러운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교통질서를 안 지키고 교통사고에 너그럽고. 음주운전 해도 되지, 이런 나라일수록 부패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과관계라고 얘기하기에는 좀 어려워요. 하지만 명백한 통계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음주운전,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거죠.  


2. 이재명의 모(毛)퓰리즘

저는 약간 동의하기 어려운 게 모퓰리즘. 포퓰리즘과 머리 모 자를 합쳐서 모퓰리즘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이 있습니다. 난치병이 있는데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바로 확인을 해서 스크리닝을 해서 우리가 모더나, 화이자 백신같이 mRNA, 치료제를 맞으면 낫습니다. 한 번 맞으면 되는데 그 한 번의 약값이 25억 원이에요. 

그런데 척수성근위축증은 통계적으로 1만 명에 1명씩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생아가 현재 20만 명 정도 태어나니까 우리나라에서 매년 20명 정도의 환자가 생기는 거고 그 환자들한테 그 약을 투여한다고 하면 500억 정도를 잡을 수 있겠죠. 

이재명 후보가 1000억이면 되는데 뭘 그러냐, 우리 재정, 돈 많다 이러는데 일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있다고 펑펑 쓰는 건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 그러니까 소확행. 아이들,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의 가장 작지만 가장 큰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이의 건강이라는 건. 그걸 해결해 주는 게 국가의 소확행이지. 

물론 탈모인들의 고통과 이런 건 다 이해를 합니다마는 우리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소확행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대선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얘기를 하겠으며 사회적 의제를 언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까? 

 

3.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하여

헌법 32조에 보면 32조 4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써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그러니까 87년에 제정됐을 때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해야겠다, 보호한다라는 취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런 헌법입니다. 

그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성정책 관련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지금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마치 윤석열 후보가 여성부를 다 폐지하고 모든 여성정책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려고 지금 일곱 글자만 올린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이번 대선이 전반적으로 다 일단은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이재명 후보 같은 경우는 평등가족부 내지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타 부서에 통합하겠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성평등부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어쨌건 중요한 건 여성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사회가 좋아져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빠져서 그러는 건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우리의 헌법정신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이렇게 강조를 드리겠고요.

 

전체 스크립트는 여기(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대선 정국. 누구 편을 드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제대로 전달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아무튼, 주말] “돈 룩 핵?” 날아오는 핵을 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몰살당한다

 [노정태의 시사哲] 트럼프 풍자영화 ‘돈 룩 업’과 확증 편향 부추기는 대선판
일러스트=유현호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는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했다. 태양계를 감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에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도교수 랜들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계산해본 결과, 혜성은 지구로 향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돌덩이가 정확히 6개월 14일 후에 지구에 충돌한다. 모든 생명체를 멸종시킬 것이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백악관으로 찾아갔다. 방문 당일에는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고, 이튿날 드디어 대통령과의 면담을 갖게 됐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영 이상하다. 리얼리티 쇼 스타 출신의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리프)과 그 아들인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사태를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3주 후로 다가온 중간선거에 불리할 수 있으니 ‘기다리면서 상황을 보자’는 소리나 한다.

분노한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방송에 출연한다. 문제는 그 방송이 진지함과 거리가 먼 잡담 위주의 토크쇼라는 것.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농담 따먹기로 일관하는 진행자에게 디비아스키는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저희가 하려는 말은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라는 얘기예요.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한 장면이다. 미국 정치, 특히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혜성’은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고 감독 스스로가 밝힌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그렇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패턴은 국가와 문화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이니 말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원래 신념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경향성을 일컫는 용어다. 본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어떻게든 논리를 끼워 맞추고 때로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아예 왜곡·날조하는 행태가 바로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입증됐다. 그중 하나. 스탠퍼드대 학생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랬더니 사형제에 찬성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도 모두 그 자료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두 그룹의 학생들이 모두 같은 자료를 제공받았다는 것. 선입견에 따라 데이터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읽은 셈이다.

철학은 오늘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상당 부분을 심리학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확증 편향은 철학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골칫거리였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대표적이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경험주의의 포문을 열었던 그는, 대표작인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확증 편향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지성은 어떤 입장을 택하고 나면 그것을 지지하고 확신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설령 기존의 입장을 반박하는 훌륭한 사례가 넘쳐난다 해도, 최초의 결론을 희생하는 대신 반대되는 증거를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하며, 때로는 폭력과 부당한 편견을 동원해가며 거부하고야 마는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 유명한 ‘4대 우상’ 때문에 확증 편향 같은 오류에 빠진다고 보았다. 심리학자들은 어떨까? ‘확증 편향’이 아니라 ‘우리 편 편향’이라고 보는 게 맞는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인류는 협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진화했다.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이라면 객관적 증거를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논쟁하느니 가족과 동료의 견해를 따라 움직이는 게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확증 편향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때가 많다. <돈 룩 업>으로 돌아가 보자. 올린 대통령은 날아오는 혜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들을 무시하며, ‘위를 보지 말라(Don’t look up)’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전에 몰두했다. 부족주의적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다. 문제는 그게 나쁜 판단이라는 데 있다. 결국 인류는 혜성이 날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SNS로 잡담이나 하다가 파멸을 맞이한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희비극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혜성이 날아오고 있지는 않다.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지만 두 달 안에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은 아니다. 철책을 뛰어넘어 귀순했던 탈북자가 같은 경로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의 힘겨루기를 이어나간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대북 안보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린, 아니 문재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신년사를 통해 “정부는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 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겠다고 선포했다. 주한미군을 내쫓기 위한 포석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여론은 잠잠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시작전권을 신속히 환수하자고 기름을 끼얹는다. 좌충우돌 자중지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야당은 제대로 반발조차 하지 않는다.

북핵의 위험이 현실화하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은 끝장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북한이 핵을 왜 쏴, 그럼 다 죽는 건데’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당 지지자뿐 아니라 야당 지지자 중에서도 드물지 않다. 북핵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의 현실 감각은 대체 얼마나 망가진 걸까. 문득 민디 박사처럼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제발 즐거운 척 XX 좀 그만해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돈 룩 핵(核)>. 2022년 1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절찬 상영 중인 블랙 코미디의 제목이다. 물론 실화다. 확증 편향의 대가는 혹독하다. 날아오는 혜성을,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 하지만 미리 좌절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

윤석열과 보수여, ‘이대남 다 걸기’ 초강수 아닌 惡手

 [노정태의 뷰파인더] 페미니즘에 투자하라!

● 20·30 세대에 백기 투항 尹
● 페미니즘은 진보 전유물 아냐
● 전통과 법치, 보수주의 두 축
● 간통죄가 여성 인권 지킨 까닭

2021년 12월 20일, 서울 여의도에 마련됐던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운데)를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환영식이 열렸다. 오른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신 전 대표는 1월 3일 수석부위원장에서 사퇴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지금까지 20·30 세대에 실망을 주었던 행보를 깊이 반성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1월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해산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발표한 내용의 일부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지속해 떨어졌다. 이중에서도 20대의 지지율 하락세가 도드라졌다.

윤석열이 말하는 "20·30 세대에 실망을 주었던 행보"란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신지예 전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영입이 그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지예는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이다. 그런 신지예를 보수야당 대선후보인 윤석열이 영입했다. '이래도 될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파격적 행보였다. 신지예 때문이건 다른 요인 때문이건 그 후 윤석열의 지지율은 쭉 떨어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추월당했다. 결국 윤석열은 선대위 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냈고, 20·30 세대를 향해서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공개적으로 백기를 들어 올렸다.

정치인의 말은 일단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한다. 윤석열은 '이대남'(20대 남성) 여론을 추종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그 이대남 여론의 중심에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 즉 '안티 페미'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면 윤석열의 '20·30 세대에 사과' 발언은 앞으로 안티 페미 여론을 염두에 두겠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여러 요인에 의해 벌어진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신지예라는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희생양 찾기에 다름 아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면 엉뚱한 곳에서 해법을 찾으려 들고, 결국 대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수, 페미니즘 관계가 뒤틀리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보수 정치와 페미니즘의 관계가 뒤틀렸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외려 역사적으로 보면 그 반대가 사실에 더 가깝다. 법치주의에 터를 잡은 근대 정치가 출발한 후로 한정지어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페미니즘은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여성의 권리를 증진해왔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이다. 그의 논리는 간명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세상을 단번에 뒤엎으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한 곳이다. 혁명을 꿈꾸는 진보주의자들이 마음먹은 대로 고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책상에서 고민해 내놓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은 현실에서 늘 한계에 부딪힌다. 많은 경우 역효과를 불러오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버크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개혁가였다. 세상의 악을 못 본 척 하자는 태도는 버크의 보수주의와 무관했다. 버크는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고 뒤집는 이상주의적인 개혁 대신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경험주의적이고 사례 중심적인 해법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됐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지는 행동 양식 혹은 문제 해결 방법론의 집합이다. 전통은 고리타분해 보인다. 당장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장애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전통을 그렇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전통이 전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효과 내지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법에 대해서도 적용해볼 수 있다. 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설령 다소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하루아침에 졸속으로 뜯어고쳐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이 법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면서,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법을 악법이라 손가락질하며 함부로 뜯어고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주인들을 혼쭐내주겠다며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을 밀어붙였다. 그 뒤 전세가가 폭등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법은 보수적으로 만들고 보수적으로 시행하며 보수적으로 개정해야 하는, 보수의 보루와도 같다.

법의 보수성은 대한민국 같은 법치주의 후발국에서 묘한 맥락을 지니게 된다. 선진국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법과 제도를 이식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앞세우는 법률가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거나 외국의 법을 이식해오는 것 자체에 불만을 품곤 한다. 허나 법은 온 국민에게 동시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며, 한번 만들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 다른 나라의 법을 참고해 우리의 법을 만드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전통과 법치.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은 보수주의 중에서도 문화적 보수의 영역에 가깝다. 반면 법치는 경제적 보수가 선호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처럼 자국의 문화와 법치주의의 역사가 단절 없이 지속된 경우라면 양자의 차이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 시대를 겪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근대화가 시작된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만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한 템포 쉬어가는 차원에서 소설의 한 대목을 읽어보도록 하자. 소설가 박완서가 쓴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의 6권, '그 여자네 집'의 136쪽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아버지도 어머니에 대한 조강지처 대접 하나만은 깍듯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제시대부터 다니던 경전(京電)을 해방 후 한전이 된 후에도 눌러서 다녔는데, 당시로서는 안정되고 대우도 괜찮고 가욋돈도 생기는 꽤 좋은 직장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직장 근처에 딴살림을 차리고도 월급봉투 하나만은 한 푼도 안 건드리고 큰집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소실하고 아버지가 무슨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월급봉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그나마 오래 누리진 못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사회를 정화한답시고 관청이나 국영기업체에서 축첩한 자는 자진해서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었다. 상습적인 바람둥이들도 서로 눈치를 봐가며 그럭저럭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는데 아버지는 그러지를 못했다. 아버지가 소실을 두고 있다는 건 사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엄포가 내린 이상 실적을 올려야 하는 건 피할 수 없었고, 아버지는 당연히 최초의 희생양이 되었다."

전후 맥락이 없어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집 살림을 하던 아버지, 자신이 본처라는 사실을 자부심의 근원으로 삼던 어머니. 남편은 월급통장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고 아내는 남편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건 군말 없이 살림을 하는 유교적 가부장제 모델을 구현하며 살던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균형이 일순간 뒤흔들리고 만다. 왜? 근대적·서구적 법치주의에 기반 한 일부일처제를 강요하는 권력자, 박정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처첩제는 1948년 해방과 함께 폐지된 상태였다. 법이라는 것은 그저 만들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 법을 집행하겠다는 행정부의 의지, 법에 따라 판결하겠다는 사법부의 단호한 태도가 뒷받침돼야 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남자가 여자보다 부족한 여초현상이 벌어지면서 경제력을 지닌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첩을 거느리는 풍조가 일반화됐다.

위에서 인용한 박완서 소설의 한 장면은 바로 그런 세태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 해방된 조국, 현대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국민의 의식 수준은 전근대적 조선시대를 벗어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보수주의의 두 축 중 하나인 전통의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반면 또 다른 축인 법치는 달랐다. 많은 경우 우리의 법은 선진국의 법을 베껴온 형태였다. 그 덕분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했고 여성 인권이라는 대의에도 잘 맞았다. 그리하여 박정희가 '있는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자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첩을 거느리고 살던 남자들의 머리 위로 별안간 불호령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왜 그런 짓 감행했을까

앞서 말했듯 당시에는 남자가 여유가 되면 첩을 두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50·60대는 노인으로 간주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축첩을 단속하는 것은 그런 남자들에게 환영받을 일이 전혀 아니었다. '20·30대 민심'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도 반발했다. 소설을 다시 읽어보자.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다냐?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로 인해 돌아가시는 날까지 박정희를 미워하였다."

대체 박정희는 왜 그런 짓을 감행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축첩을 금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됐기 때문이다. 첩을 거느리는 소수의 남자들, 그리고 졸지에 실업자의 아내가 된 소설 속 '어머니' 같은 일부 여성은 반발했을 것이지만 대다수의 남녀에게 축첩제는 옳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혼의 커트라인이 더 높아지는 일이요,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첩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묶인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전통과 법치는 때로 갈등한다. 전통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고 법치는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처럼 선진국의 법과 제도를 도입한 후발주자 국가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시대에 뒤떨어진 법 때문에 여성이 고통 받는 일도 흔하지만, 시대가 법을 따라오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 역시 흔히 발견된다. 그럴 때, 보수의 핵심인 법치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보루가 된다. 여성들은 사회를 통째로 들어 엎고 바꾸자고 요구하는 대신, '있는 법이나 잘 지켜라'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여성 인권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처벌 조항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이날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오른쪽)과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관(왼쪽) 등이 선고를 위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 [동아DB]
여성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법을 만들어내는 일 또한 벌어지기도 한다. 2015년 폐지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간통죄가 대표적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간통죄가 고리타분한 부부간의 정절 의무를 지켜주는 '꼴통 보수'의 가치만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1953년 제정될 당시 간통죄는 가족의 가치와 여성의 인권을 동시에 지켜내는 것을 목적으로 뒀다. '보수주의 페미니즘'이라는 형용모순의 목적을 추구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1905년 대한제국 시절 제정된 정조법(貞操法)을 대체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조법은 간통을 저지른 유부녀와 상간남을 처벌할 뿐이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가 미혼 여성과 불륜을 저지를 경우 처벌할 수 없었다는 소리다. 여성의 성은 가정의 울타리에 묶어놓고 남성의 성은 처벌하지 않는, 사실상 '축첩보장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전통만 앞세웠지 법치의 합리성과 균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격론 끝에 국회는 단 한 표 차이로 쌍방처벌을 전제로 한 간통죄를 통과시켰다.

1953년 간통죄 제정은 그런 면에서 여성주의의 승리이자 보수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전통이 여성을 억압하는 퇴행적 기능에 머물고 있을 때, 법치가 앞장서 '가족'이라는 가치를 보호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후로도 간통죄는 꾸준히 논란이 됐고, 결국 20세기 중반부터 페미니스트들이 앞장서 비판하고 폐지했다.

가장 보수적인 법학자들이 앞장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선 사례를 우리는 이것 말고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것, 그 자명한 법치주의의 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보수주의가 제 기능을 해야 여성주의 역시 공허한 담론이 아닌 현실을 바꾸는 법과 정책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이수정 당시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경기대 교수)이 2021년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용호 무소속 의원 입당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둘이 우결 찍느냐"

윤석열의 메머드급 선대위가 해산되면서 신지예뿐 아니라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역시 자동적으로 공동선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두 영입 인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안 좋은 모습으로 쫓겨나게 된 점은 실로 애석한 일이다. 보수주의와 보수 정당이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재구축할 드문 기회를 소진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수정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여성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경찰과 공권력의 치안 유지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범죄 전문가다. 여성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 진영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수정의 영입을 통해 보수는 여성주의의 일부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신지예의 경우는 더욱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여러 차례 방송에 함께 출연한 사이다. 이준석이 먼저 나섰다면 어땠을까. 끝없이 치닫고 있는 남녀 간의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문화적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신지예의 새시대위원회 합류가 결정된 후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은 "둘이 우결(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찍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농담이 어떤 식으로건 현실화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여러모로 상황이 나았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로 향했다.

‘이대남의 마음을 잡아라!' 이런 지상 과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당장의 선거 전략으로 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보수 정치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끌어안는 건강한 보수 정치의 출현을 기대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2-01-04

설강화 관련 코멘트 모음

신동아에 보낸 칼럼(링크). 1, 2화 보고 씀.

 

3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 3화 틀었는데, 2021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아씨-식모' 구도의 갈등이 전면화.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잘 안 다루는 지점.

하긴 유현미 작가는 <스카이 캐슬>때도 굉장히 노골적으로 계급 이야기를 했음. 문제는 그랬다가 혜나를 구렁텅이 빠뜨리고 죽였다는 것인데... 진보적 성향은 없지만 계급 문제를 인지하는 작가들이 곧잘 택하는 코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작게나마.

아무튼, 무슨 말도 안 되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이 드라마 조지는 사람들이 더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겠다. 작품 내에 결백한 사람이 없으니까. 여러모로 90년대 순정만화 같음. 좋은 의미에서.

 

5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 5화까지 본 소감. 작가는 '남북관계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음. 신동아 원고 쓸 때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단정지어 말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분명하네... 

 

7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는 영화로 갔어야 할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게 가장 큰 패착 같다.

감정선이 아주 높고 깊게 오가며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그걸 연출과 몇몇 장면에서 드러나는 연기로 커버 가능함.

반면 드라마라는 장르는 워낙 러닝타임이 길다. 남주 여주 사이의 멜로가 붙느냐 마느냐, 이거를 시청자들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보고 촉각적으로 판단함.

<로미오와 줄리엣>, 거기서 파생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극단적 러브스토리들, 모두 청춘들의 짧게 불타오르는 사랑 이야기인데 거의 대부분 이야기 자체를 길게 끌지 않는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음.

관객이 단번에 보고 단번에 흥분한 후 단번에 절망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야기가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전개되고 끝나지 않으면 안 됨. 생사를 오가는 총성 속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번주에 보고 쉬었다가 다음주에 또 보고... 그게 필이 잘 안 받겠죠.

영화로 찍었다면 좋은 뭔가가 뽑히고 충분히 유익한 사회적 논의도 뽑아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러모로 아쉽다. 이제는 실검에서 총공도 안 당함...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여러모로 아까운 기획이 왜곡되고 묻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움.

2022-01-02

공수처 저인망式 민간인 사찰, 도청과 다르지 않아

 [노정태의 뷰파인더] '검찰개혁'한다던 '아마추어'와 신종 감시사회

● 개별 통화 모아놓으면 패턴이 나온다
● 구체성 빠진 공수처의 ‘나쁜 사과문’
● 이성윤 공소장 단독보도와 연관성
● 법원은 어떤 근거로 영장 내줬나
● 공수처에 ‘격려 우선’이라는 박범계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민간인 사찰’ 의혹에 휩싸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이 2021년 12월 29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민간인 사찰’ 의혹에 휩싸인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이 2021년 12월 29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수백여 명을 대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감행했다. 여기에는 채널A, 중앙일보, TV조선, 조선일보 등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가 여럿 포함됐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CBS 노컷뉴스 등 친여 성향 언론사도 조회 대상에 있다. 하다못해 공수처는 일본 신문사와 방송국이 한국에 파견한 기자 두 명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했다. 2021년 12월 28일까지 확인된 대상만 해도 173명·287건이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12월 29일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당 소속 국회의원 105명 중 60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보좌진 6명도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됐다. 공수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캠프에서 활동한 김병민 대변인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했다.

언론사 소속도, 정치권 인사도 아닌데 조회 대상이 된 경우도 여럿 있다. TV조선 기자의 모친, 동생, 다른 기자의 지인, 전직 종합편성채널 기자와 그의 지인,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필자인 김경율 회계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우 변호사 등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이다.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국가정보원 3급 이상 공무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및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기자, 기자의 가족, 변호사, 회계사 등은 당연히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튜브는 도청할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읽은 어떤 독자가 잠시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독자는 오늘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대학 동창을 만나 새로 출시된 어떤 자동차의 디자인을 칭찬하고, 해외 주식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눈 후 친구가 최근 방문했던 강원도의 어떤 휴양지에 대해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

그런데 유튜브를 켜보니, 세상에. 아까 이야기했던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에 대한 내용이 추천 영상으로 뜨고 있다. 참고로 저 세 가지 화제는 모두 친구가 먼저 꺼냈다. '뷰파인더' 독자는 해당 내용을 단 한 번도 검색해본 적이 없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구글이 무시무시한 기술력을 통해 핸드폰으로 '뷰파인더' 독자와 친구의 대화를 도청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필자 역시 그런 의심을 품었다. 물론 실상은 다르다. 구글이건 애플이건 IT(정보기술) 기업은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 몰래 대화를 실시간 도청하지 않는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음성 정보를 수집해 텍스트로 바꾸고 맥락상 중요한 키워드를 추출하는 고난이도 작업을 하면 사용자의 핸드폰과 서버에 부담이 생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도청하지 않아도 빅테크 기업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나눈 대화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독자 여러분이 웹서핑을 하면서 수도 없이 접했을 문구다. 대부분 큰 고민 없이 'OK'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웹사이트는 광고 중 무엇을 클릭했는지, 쇼핑몰 사이트에서 어떤 검색어를 입력했는지, 대략 그런 내용을 수집한다. 한 두 개의 사이트라면 사실 그리 심각하게 고민할 이유도 없다.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별거 아닌 정보다.

문제는 그 정보를 '종합'할 때 발생한다. IT 기업은 인터넷 검색, 클릭, 페이지 종료 등의 행동을 한데 묶어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욕망하며, 또 궁금해 하는지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스마트폰을 거의 24시간 내내 지니고 다닌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내 핸드폰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테크는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하루 종일 어디에 있는지,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튜브는 우리를 도청할 필요가 없다. 최근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 휴양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용자 A와 사용자 B가 어떤 카페에서 만났고, 사용자 B가 커피 두 잔 값을 지불했으며, 두 사람이 40여 분간 같은 장소에 있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유튜브는 두 사람이 서로의 관심사를 교환했으리라고 추측한다. A는 B에게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 휴양지를 이야기했다. B는 A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A와 B의 개인적 관심사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측은 대체로 맞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용건을 주고받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무튼 본인의 평소 관심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하게 된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빅테크뿐 아니라 한국 IT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웹사이트가 수집한 개인 정보를 유통하는 시장이 있다. 그런 경로로 우리의 정보들이 사고 팔린다. 그걸 잘 종합할수록 맞춤형 광고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유튜브 도청'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 대상으로 저인망식 조회

유튜브 알고리즘의 소름 돋는 추천 시스템을 거론한 이유가 있다. 공수처가 감행한 전 방위적 통신자료 조회 행위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실감나게 느껴보시라는 차원에서다. 이번에 발각된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는 특정인을 지목한 통신자료 조회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저인망식 통신자료를 조회함으로써, 그들 중 누군가의 통화를 사실상 도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유튜브 도청'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구와 어떤 장소에서 얼마나 길게 통화했는지, 누가 먼저 걸었는지 따위의 정보는 개별적인 한 두 건으로는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료를 대량으로 모아놓고 분석하다보면 어떤 패턴이 발견될 수 있다.

가령 직장과 집만 오가는 어떤 기혼 남성이 퇴근 후 직장도 집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어떤 여성에게 전화를 하는 패턴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불륜을 의심해볼만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한 후, 직후에 한적한 교외의 식당에 전화를 했다면? 그 다음에는 인근 숙박업소에 전화를 걸었다면? 99% 이상의 확률로 그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이런 사실을 알아두면 훗날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공수처가 이런 목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통신자료 조회라는 수단을 통해 긁어낼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 수 있을지, '탐정의 눈'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보라는 뜻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사례일 뿐이다. 공수처가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그 목적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2021년 12월 28일 현재까지 공수처는 자신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많은 이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 중인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한 것뿐이며 적법 절차에 따랐다"며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논란이 커지자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정보 조회 논란을 빚게 돼 매우 유감"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도 않고, 잘못을 어찌 시정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나쁜 사과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세 가지 의문

김진욱 공수처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21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법무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제처, 공수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통신자료 조회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개별 웹사이트에서 쿠키를 수집하는 것이 쌓이고 쌓여, 사실상 유튜브가 우리를 도청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현상과 마찬가지다. 특정인 혹은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두고 그 주변인의 통신자료를 샅샅이 훑는 행위는, 문제의 특정인이나 집단의 전화 통화를 직접 도청하는 행위에 버금간다. 요컨대, 군사독재 시절에나 했을 법한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이 자행됐다.

세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공수처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비판적 보도를 한 기자들을 뒷조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일보 21명, 조선일보 12명, TV조선 12명 등 수십여 명의 기자를 상대로 한 통신자료 조회를 놓고 보자면 그렇다. 중앙일보는 이성윤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에는 조국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 법무부를 통해 "불법 출금 혐의 수사를 하지 말아 달라"라고 수사팀에 전달했다는 내용도 있다. TV조선은 이성윤이 관용차를 타고 공수처 조사를 받으러 오는 이른바 '황제조사' 영상을 보도했다. 그 외에도 100건이 넘는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과연 무엇을 위한 조회였는지, 공수처가 해명을 내놓지 않는 한 명확한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대체 무슨 혐의로 일부 기자들에 대해 영장까지 청구했는가. 공수처는 TV조선 기자 2명과 중앙일보 기자 1명, 전직 종합편성채널 기자 등 최소 4명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통화 내역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 신분이다. 영장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사를 하고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해당 정보가 필요한지 법원에 소명해야 한다. 영장을 청구한다고 반드시 내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법원은 영장을 발급해줬다. 어떤 판사가 무슨 근거로 민간인 사찰을 허용한 것인지, 국민은 해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셋째, 이 끔찍한 '아마추어 공수처'를 옹호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2021년 12월 26일 KBS에 출연한 박범계는 "공수처는 축구팀으로 따지면 창단된 신생팀"이라며 "부족하다면 보충해주고 격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국의 수사 기관을 축구팀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지만, 현재 논란이 되는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격려해 달라'고 국민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황당한 소리다. 이쯤 되면 공수처 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무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사법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놋수저와 바꿔먹은 엿 같은 조직

2017년 11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수처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 회의에 조국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이 참석한 모습.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긴 말이 필요 없다. 공수처는 해체돼야 한다. 애초에 그 탄생 과정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나면 대다수 헌법학자와 형법학자들이 반대하던 사안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을 따돌리고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군소야당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가위 소리를 듣고 따라가 귀중한 놋수저를 내주고 바꿔먹은 엿 같은 조직이 바로 공수처다. 우리는 감시사회의 문턱 앞에 서 있다. 2022년 새해다. 공수처를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

#공수처 #통신조회 #민간인사찰 #감시사회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2-01-01

2022 임인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손동현 - 송하맹호도
한지에 수묵채색 / 130 X 59cm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