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나는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계획을 비판했다. 그해 11월엔 바이오매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풍자성 칼럼을 썼다. 그러나 2017년 7월의 나는 당시의 나에게 온전히 동의할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9년쯤 됐으니 입장이 바뀔 법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다. 첫째, 신재생에너지의 기술적 발전에 대한 기대치가 수정됐다. 둘째, 한국뿐 아니라 세계의 자동차 산업이 변하고 있다. 셋째, 환경오염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하나씩 짚어보자. 내 입장이 달라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 가령 구글의 판단도 그렇다. 2007년 11월27일 구글은 google.org라는 비영리법인을 통해 ‘석탄보다 저렴한 재생가능에너지’(RE<C) 계획을 발표했다. 지열발전을 개량해 석탄보다 낮은 가격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이루어낸다는 것이었다. 유가가 하늘로 치솟고 수많은 기술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라는 난제에 덤벼들던 시절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2011년 11월22일, 구글은 RE<C 계획의 실패를 선언했다. 대신 그 외의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대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의 주요 수출 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가솔린 혹은 디젤이 아니라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지난 5일, 스웨덴의 자동차 메이커 볼보는 2019년부터 전기차 혹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만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을 스마트폰 시장으로 바꿔놓았듯, 테슬라의 국내 진출은 전기차로의 전환에 있어서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전기차는 전기를 연료로 삼는다. 따라서 전력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발전량을 줄이고 냉장고를 없애자는 식의 주장은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2008년과 달리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중이다.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 원인으로는 석탄화력발전과 디젤 자동차를 꼽을 수 있다. 정부는 대신 액화천연가스(LNG)발전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석탄에 비해 비싸고 가격 변동이 심할뿐더러, 정도가 덜하다뿐이지 역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날씨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LNG 등 화력발전소가 더 자주 가동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친환경적인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탈핵 선언 철회를 촉구한 환경단체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의 대표 마이클 쉘렌버거 역시 이러한 딜레마로 인해 입장을 바꾼 경우에 속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동시에 개인과 산업체가 모두 안정적으로 충분한 전기를 공급받으려면 ‘탈핵’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유지하고 늘려나가되 현실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석탄에 비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은 현재까지 원자력뿐이다. 원자로 해체, 사용후 핵연료 처분, 중·저준위 폐기물 관리 비용을 모두 포함해도 그렇다. 원전 사고의 우려는 최대한 안전성을 높이고 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대응할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사회적 위험 요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저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했다고 여겨지는 이 말은,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유작인 「When The Facts Change」의 제목이 되었다. 그렇다. 사실관계가 달라지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경향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비고: 탈핵 및 국제 정치에 대한 노선 차이를 이유로 경향신문은 이 칼럼을 끝으로 나를 별별시선 필자에서 제외시켰다.
입력 : 2017.07.09 20:53:00 수정 : 2017.07.11 17: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