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30

금리인하 논쟁이 필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 중, 부동산 버블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령 양도세 완화라거나, 종부세 완화, 다주택소유자에 대한 중과세 완화, 투기지역 해제, 분양가 상한제 폐지, 기타등등. 이 모든 것들은 안그래도 포화상태인 현재의 건설경기에 기름을 끼얹는 것인데, 이미 버블이 꺼지는 조짐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상황이라 시장은 결코 반응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다. 최근 2~3일간 도드라진 그러한 견해들은, 내가 보기에는,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역할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는 결과 발생하는 오류처럼 보인다. 이성태 한국은행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은행은 현재 요동하는 환율이 국내 시장보다 외재적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고 판단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또한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8월 금리를 올렸는데도 환율이 폭등한 사례를 놓고 볼 때, 금리와 환율의 상관관계가 발생하기에는 지금 국제적인 사건이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단기간의 외환/통화정책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앙은행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행과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 OK? OK! 사인을 주고 받은 후 기준금리를 내리고 온갖 감세안과 규제완화책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물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하도록 강만수가 이성태를 설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정부가 '어떤 경기를 되살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 침체 국면에서, 최대한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명박과 강만수는 파던 삽질 마저 파는 것 말고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이것마저 한국은행이 책임져야 할 일처럼 논의가 흘러가는 것이 나는 매우 의아하다.

우석훈 박사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시중금리와 기준금리가 따로 노는 것을 지적하며 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나는,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환율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고 있으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따라서 '주권'인 환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여담이지만 '환율주권론'은 원래 강만수의 트레이드 마크 아니었나. 우석훈 박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 분의 책을 거의 다 읽은 나도 뭘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중앙은행이 장래의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정부는 그에 맞춰 낙후된 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 국내 경제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 정답이다. 문제는 한 쪽에서는 제대로 정답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과 손발이 안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하는 건설경기 부양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둘을 전혀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말하자면 금리인하는 □□경기 부양책이다. 저 안을 무엇으로 채워넣을지는 정부의 몫이지, 중앙은행의 결정사항이 아니다. 여기까지 내가 말한 바에 동의할 수 있다면, 금리인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의아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국가의 운영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리고 그 외 독립기관들은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올바른 국가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권력의 남용을 막는다.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내년에 경기침체를 덜 겪는 나라'다. 그런데 이명박과 강만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나라'다. 이 두 가지를 싸잡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뇌사상태에 빠진 한국 지성계에 '기준금리 논쟁'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환율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한국은행과 정부의 대책 전부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인데, 여기서 두 가지 경제 주체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실컷 이명박 욕만 하다가 어영부영 위기가 해소되었는데, 정작 제 역할을 한 중앙은행은 조용히 묻히고 강만수만 연임하고 이명박은 으스대는 상황'을 연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현재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경제 문제마저 '이명박 대 반 이명박'으로 단순하게 나누어지는 담론적 구성을 타개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방침에 찬성한다.

2008-10-27

일관성의 함정

내일,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금융통화위원회가 은행채 매입을 골자로 하는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금리 인하에 찬성한다. 예전에 우리모두에서 활동하던, 다음 아고라의 SDE 같은 경우 금리 인하는 M2의 통제 포기이므로, 결국 원화는 더욱 폭락하고 그에 따라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와 은행에 대한 정부의 직접 자본 투여 등,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대책의 손을 들어주는 이도 없지 않다. 은행에 유동성이 말라붙은 것을 위기의 본질로 파악하는 이들은, 이번 한국은행의 은행채 매입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논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지난번 포스트에서와는 달리, 나는 오늘밤에는 판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감세와 재정확대 동시 추진'은 누가 봐도 미친짓이다. 감세를 하면서 재정확대를 하겠다는 건 국채를 더 찍겠다는 말과 똑같다. 하지만 한국 국채를 대체 누가 산단 말인가? 안 팔리는 국채는 금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시중금리의 폭등에 기름을 끼얹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양도세를 더 낮추면, 버블이 꺼질 기미가 보이는 지역에서 이탈하기 위한 매물이 더 나온다. 가격은 더 떨어진다. 게다가 그렇게 아파트가 팔릴 때마다 정부에 들어오는 '실탄'의 양도 줄어든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이제는 더 뭐라고 말을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 말만은 확실히 할 수 있다. '감세'만을 외치는 이명박의 경제팀은 다 제정신이 아니다.

미국 은행들이 부도 위험에 직면했을 때는 밤에 잠이 안 오거나 하지 않았다. 내게 파장이 미친다면 여기서 터지나 저기서 터지나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그쪽에서는 최소한의 시스템이 작동하리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게 없다. 이명박이라는 비-정치인이 집권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정책적 유연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해볼 때, 시장 근본주의는 분명히 퇴조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만은 예외다. 나는 이게 정말이지 두렵다.

(모든 '근본주의'는 몇 가지의 테제만을 주워섬길 뿐 그것이 이념화하고 있는 대상 자체에 대한 충실한 추구를 결코 뜻하지 않는다. 시장 근본주의자는 그러므로 시장을 마비시킨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의 정신을 결국 배신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는 '유동성의 함정'에, 정치적으로는 '일관성의 함정'에 빠져있다. 이명박은 자신이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건설경기 진작시키고 주가지수 띄우고 원-달러 환율 낮추겠다고 약속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구덩이로 밀어넣고 있다. 그 말대로 안 되는 것을 보고 일부 네티즌, 혹은 노빠들이 '노무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라고 시시덕거리고 있는데, '이명박:노무현=불황:호황'같은 공식을 만들어서 유포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가 걸려버린 '일관성의 함정'을 극복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명박이 지금이라도 종부세와 양도세율, 그리고 소득세 누진률을 파격적으로 높이고, 정부 지원을 받은 은행들에게 부실건설사 구조조정을 명령하고, 근로소득자에 대한 환급 외의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저소득층에게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동안의 모든 원한을 잊고, 또 이명박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엄청난 혐오감을 억누르며, 이명박의 그 종합대책을 지지하고 그것을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전환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

이명박 대 반 이명박이라는 구도를 놓고 본다면, 어차피 이명박 입장에서는 임기 5년이 확보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국회의원 선거도 없고, 또 지지율이 더 떨어질 리도 없으므로 자신의 '일관성'을 지키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다. '일관성의 함정'은 바로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정치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면, 이명박에게 일관성의 철회를 요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일관성을 어느 정도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명박<->반 이명박(결국 노무현 ㅋㅋㅋ)' 같은 구도를 유포하고 있는 노빠들이 갖는 또 하나의 '일관성의 함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그게 그거'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이명박은 용납이 안 된다'라는 소박한 정치의식을 고수하고 있거나, 결국 이명박에게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을 포기할만한 유인동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내가 어제, 즉 토요일 청계광장에 나갔던 것은 단지 이명박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이명박을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기에 촛불집회에, 기회가 되는대로 계속 나간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쉬쉬하고 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적 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마저 행정부가 올바른 판단을 하건 그른 판단을 하건 절대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이명박에게 그 어떤 유인동기도 제공하지 못한다(비록 나는 앞서 이명박을 '비-정치인'이라 칭했지만, 그것은 발생론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지금은 조금이나마 '정치인'이 되어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이게 무슨 '본격 이명박 사랑하자는 글'도 아니고, 노빠가 싫다고 명빠가 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정치 마비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중들 또한 정치적 선택의 정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정치적 선택을 넘어 윤리적 당위로까지 보일 수 있지만, 오직 그 윤리적 당위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거니와 진보정당도 정당으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없다.

계급투표는 철저히 계산적이고, 반 정서적이다. 그러므로 '반 이명박 정서'에 기대어 계급투표를 이끌어내겠다는 발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들이 정치적 계산을 통해 투표한다는 신뢰가 없다면, 정치가 올바로 기능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을 싫어하는 거라면 나도 남들 부럽지 않지만, 이명박을 싫어하는 것만으로 내 정치성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부정성의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긍정'을 해낼 수 있는가이며, 그 어떤 정당과 정치인도 그것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관성의 함정'에 빠진 한국 정치를 묶는 키워드는 결국 '이명박'과 '노무현'으로 귀착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라고 바이트 낭비를 하고 있는 노무현은, 결국 부정성의 정치를 회귀하게 하며 이명박 정부를 더욱 '일관성의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상적인 정치적 선택의 과정을 되살려내야 한다. 지금은 모든 국가의 경제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움직이는 그런 격동기이므로, 만약 지금 이 신용경색과 실물경제 압박을 제대로 이겨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력'에 대한 인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노무현 때에는 주가가 많이 올랐고 부동산 가격도 폭등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건설사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은 이미 참여정부 당시부터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규제지역 한 두개 더 만들었다고 둘러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명박은 노무현과 말로는 대립각을 세우면서 바로 그 경제정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사인'을 보냈고, 서울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이 그 '사인'을 이해하고 몰표를 준 것이 바로 이명박 당선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명박은 주가지수, 부동산 가격, 환율 등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그 '숫자'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결함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며, 여기서 그 숫자들만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이명박이 지금의 경제 위기를 올바로 극복할 수 있다면, 그는 거듭난 것이다.

그 '거듭난 이명박'을 받아들여줄 용기가 우리에게 없다면, 다시 말해 '일관성의 함정'에서 벗어난 이명박에게, 국민들 또한 '일관성의 함정'에서 벗어나 정당한 평가를 해줄 용기가 없다면,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적 불능 상태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계급정치의 도래를 기대할 수도 없다. 부정성의 정치는 '일관성의 함정'을 자양분으로 삼고 있으며, 동시에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으로 계급투표의 목을 오래도록 졸라온 바로 그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독교 신자이며, 이 위기의 시대를 맞아 두손 꼭 잡고 기도를 한다고 쳐보자. ". .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이 구절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새벽이 아닐 수 없다.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내는 그 시스템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혹은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를 때리고 물대포도 뿌린 그 새끼마저도 용서하겠다는 각오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님께 힘을 실어 드리자는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경제를 올바로 살려낸다면, 청와대의 그 인간도 '대통령'으로 인정할 각오를 하자는 말이다. '이명박 즐, (노무현 짱)'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들의 농간에 놀아날만큼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그런 종류의 '일관성의 함정'이야말로, 이름만 꺼내도 지긋지긋한 '비판적 지지론'이 기대고 있던 '부정성의 정치'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명박 정부가 그 일을 해낼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솔직히 기대도 안한다. 하지만 나 자신의 태도만큼은, 약간의 일관성을 포기하고서라도 정치적 선을 위해 변경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안 와서, 하이데거가 쓴 「칸트의 존재 테제」를 읽다가 이 글을 썼다.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한 번 더 해야겠다.

2008-10-16

천막이었던 것들

내가 충남슈퍼 정류장에 내린 시각은 오후 8시 30분.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내가 도착하면 그 시간에 맞춰서 문화제가 끝나는 징크스가 있다. '이쯤 서 있으면 되겠지' 했는데 다들 '비정규직 투쟁가'를 부르기 시작해 적잖이 당황했다.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100여명은 되는 것 같았지만, 곧 절반 이상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게 문화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집회라서 그런가, 정말 익숙한 풍경이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쓱 하고 나타나 '다들 밥 먹으러 갔어'라고 말해줬다. 아홉시 반 넘게까지 거기 있었는데, '밥 먹으러 갔다'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50명이 좀 안 되는 숫자였다고 기억한다.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천막이었던 것'에서 '천막이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남자들 나와서 도와달라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갔다. 그 큰 천막이 그렇게 쳐지는 것이라는 걸 이번에 보고 처음 알았다.

철골과 지붕 역할을 하는 비닐을 펴 세우고, 바닥에 까는 나무, 플라스틱 구조물을 들고 왔다. 실제로 손을 더럽혀가며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건질 만한 것들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천막이었던 것들', 기륭전자 앞. 2008년 10월 15일.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책상이나 의자, 화이트보드 등을 건져내고 있었다. 대학생들로 보이는 서너 명이 그 속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작업에 속도를 붙였다.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또 침탈당하면 말짱 꽝이니까 너무 더러운 것까지 일일이 꺼내지는 마.' 맞는 말이지만 듣는 나도 서글펐다.

칼라TV의 이명선씨를 만났다. 고생하고 울고 그래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 미안해할 것도 없어야 하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25일까지 구사대와 용역들이 계속 덮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새벽 3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서 답답하다.

중요한 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는 것보다, 조직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물리적으로 맞설 수 있는, 말하자면 '노조 아저씨들'이 개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이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말로만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는, 등의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왜 민주노총 산하 그 수많은 지부 중 어디도, 조직 차원에서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걸까. 연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그 연대의 가치는 도드라진다. 이 역설이 지금 기륭전자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조직적 개입이 절실한 시점이다.



촛불자동차연합 회원들이 면허 취소를 당하는 이 팍팍한 시국에도, 어떤 용자분이 나서서 삭막한 현장에 작은 웃음을 던져주었다. 촛불인지 횃불인지 애매한 전등을 달고 나타난 한 대의 승용차가, 퇴근하는 기륭전자 관계자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맞으며 다시 건설된 천막을 향했다. 다시 건설된 천막 아래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고, 나는 손을 비벼 먼지를 떨어낸 다음 충남슈퍼 앞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기륭전자에 직접 방문하는 것이 최선이고, 또 밤을 함께 새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잠깐이라도 들러서 더 많은 분들이 현장의 분위기를 체감해주셨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많이 퍼날라주시는 것도 바람직하고, 기륭 투쟁단과 칼라TV 등에 후원금을 많이 내 주셨으면 한다. 마음으로만 함께한다고 하지 말고, 통장으로도 함께합시다.

기륭전자 투쟁 후원금 계좌: 국민 362702-04-067271 (김소연)
칼라TV 후원금 계좌: 제일 403-20-446270 (박성훈칼라TV)

고양이들과 사는 옥탑방

심상정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손낙구는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에서, 부동산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을 여섯 계급으로 나눈다. 그걸 보니 이런 제기랄, ‘부동산 6계급’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부동산 6계급’에 묶여버리고 말았다. 약수동 달동네에서 이태원의 옥탑방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고양이들과 함께 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상 하나, 변기 한 개", 경향신문, 2008년 10월 16일


누가 보면 토굴에서 사는 줄 알겠다. 부동산 6계급에서 못 벗어났긴 하지만,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더 없이 좋다. 그것을 입증할만한 사진 몇 장을 블로그 독자들께 공개하고자 한다.

일단 문제의 그 '책상' 사진. 지금도 그 책상에 앉아 있다. 출연한 고양이는 가을이.


창문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입동이. 여느 옥탑과는 달리, 한쪽 벽면이 전부 창으로 되어 있거나 하지 않다. 비교적 난방비가 적게 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음.





현관 앞 옥상에 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라본 모습. 이사온 다음 날, 즉 9월 27일 찍은 이태원 전경이다. 첫 번째 사진에서는 헤밀턴 호텔이 보이고, 첫 번째 사진과 두 번째 사진에서 이슬람 사원의 탑이 보인다. 한강이 지척이라 바람이 잘 불고, 바람이 잘 불어서인지 날씨만 좋으면 빨래가 고슬고슬 잘 마른다. 여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마지막 서비스컷으로 새 집에서 첫날 밤을 지낸 가을이.

2008-10-13

폴 크루그먼 노벨 경제학상 단독 수상

저질 폴빠인 제게 너무도 기쁜 소식.

"Princeton's Paul Krugman Wins Nobel Economics Prize"

게다가 '단독 수상'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우왕!

크루그먼 본좌님 감축드리옵니다.



추가: 한림원에서 노벨상을, 뒤늦게 혹은 너무 빨리 준 취지는 이런 게 아닐까. "크루그먼 교수님,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칼럼 많이 써 주시기 바랍니다. 상금도 몰빵해서 드릴게요."

금융위기와 안티고네, 금산분리, 그 외

1.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해 국법과 대결하는 안티고네, 와 사실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In a bleak new sign of the growing economic crisis, hard-up families are having to wait more than two months before receiving Government money for funerals.

Organisations representing undertakers accused the Government of putting them in an ‘impossible’ position by dragging their feet over burial costs for poor families.
("Bodies of the dead not being buried in echo of Winter of Discontent as effects of credit crunch spread across Britain", DailyMail, 13th Oct. 2008)

가난한 가족들은 정부에서 장례 보조금이 나올 때까지 두 달 가량 기다려야 하게 생겼다는 보도인데, 이것을 보도한 매체가 데일리 메일인 만큼 덥썩 믿거나 하긴 좀 그렇다. 블로그에 이 기사를 인용한 폴 크루그먼도 '내 아내가 영국에서 오래 살았고 아직도 타블로이드를 즐겨 본다'고 눙치고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실물경제로의 위기 확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영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국이 이토록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닐까.


2.

국제적으로 대규모 은행 국유화가 단행되면서 주식시장이 안정되고 환율이 돌아오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눈에 띤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 일이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이명박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이 "아침부터 재수있을 권리"를 박탈하고, 정부는 금산분리를 사실상 해제하는 법안을 떡하니 제출하고 앉아있다.

신자유주의의 기조를 완전히 뒤흔드는 '은행 국유화'에 대해, 그것이 수면 위로 떠오른 어제 그제 오늘 정도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이미 7월부터 논의되고 있었던 해법 중 하나다. 내가 지난번에 블로그에서 잠시 소개한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Twin Twisters"에서, 이코노미스트는 프레니와 페니에 돈을 퍼주지 말고 그것들을 아예 국유화한 다음 운영을 정상화하여 비싼 값에 되팔라고 주문한 바 있다.

서방 세계의 '은행 국유화'를 보며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익명으로 기사가 나가는지라 이렇게 노골적인 주장을 대놓고 펼칠 수가 있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은행 국유화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상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정상'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합의된 바가 없다.

문제는 이 씨발 대한민국의 경우, 국유화 -> 정상화 -> 민영화의 세 단계 중 두 번째 것이 쏙 빠져있는 그 무언가를 금융위기 해법이랍시고 정부가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은행 중 대다수는 정부 소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것을 '정상화'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중과 공유하여 그 정상 상태에 대한 사회의 논의를 수렴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의사를 모으기는 커녕, 그냥 지금 달러 짤짤이로 돈 왕창 번 대기업들에게 갖다가 넘기겠다, 이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꼴이다. 금산분리 철폐는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다.


3.

요즘 내가 그 개념을 너무 남발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국제적 위기'를 핑계삼아 금산분리를 철폐하려 드는 이것은 그야말로 '쇼크 독트린'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앞서 나는 현재 (자본주의의) '정상성'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허공에 붕 떠버렸다는 것을 지적했다. 진보진영은 이 '쇼크' 속에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퍼부어줄 수 있는가? 한국과 그 외 여러 나라들에서 동시에 이 질문은 던져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내용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Yes, we can'(워우워우예~) 이후 큰 사회적 진통을 겪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이번주 시사인 설문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개혁세력'들이 완전히 주저앉아버린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그 공백을 진보정당이 채워넣지는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이라는 테마를 가져갔다면, 이번에는 미리부터 '공공성'을 밑밥으로 뿌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웰빙 투게더' 는 어떨까.

담론적인 차원으로 들어와보자면,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또 한국 사회의 담론이 이렇게 비정상이고 저렇게 잘못되어 있고 운운하는 차원을 넘어서, 앞서 말한 것처럼 '정상성'이라는 것을 손아귀에 넣기 위한 개념적 생산과 쟁취의 과정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품고 있다. 지배계급이 쇼크 독트린을 무기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쇼크 독트린이 횡횡하는 속에서, 'shock proof'인 정보의 공유와 지식의 무장을 통해 그것과 맞서고, 공공성의 영역을 새롭게 획득하는 게 아닐까.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 말하는 것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게 아니고, 공기업 선진화가 '공공의 이익'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대체 그 '공공성'이라는 게 뭐냐고. 여기서 어떤 긍정적인 서술을 내놓아야 한다.

2008-10-10

경제 잡담

서강대학교 학보사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신문이 언제 나왔다는 건지 따로 연락이 없어서, 이미 나왔다고 가정하고 이번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이 글을 9월 24일에 썼다(이사를 앞두고 급히 쓴 것이므로 문장이 거칠고 호흡이 가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 )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서강대학교 학보, 2008년 9월 24일 작성, 노정태.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현 지식경제부 장관인 강만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휩싸여 있긴 해도,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철저하게 반박된 사례 중 가장 모범적인 것에 속한다. 강만수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그 환자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사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위기를 단지 '유동성 위기'로만 서술하고,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논하지 않는 국내 경제신문과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절반의 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라 일컬어지는 이코노미스트는, "What Next?"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 경제 위기의 여러 국면들을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버블이 거의 다 꺼졌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8월의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고, 산업 생산량은 전월 대비 1.1%나 하락하였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2001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이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다지 'OK'하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더욱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9월 21일 뉴욕 타임즈의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시장 위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모기지 대출의 상환이 어려워졌다. 2. 따라서 주택 보유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문제는 버블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보유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회사들은 빚을 갚을 수가 없다. 4.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금융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우량자산을 매각하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이 우량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므로, 우량자산은 그 가치보다 헐값에 매각되고, 그런 매각만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른바 '디리버레지(deleverage)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비판하는 바는, 현재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내놓은 구제금융 투입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가 단지 '2 단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을 호도하고,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본질적인 위기인 주택 버블 붕괴를 도외시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거품이 낀 집을 담보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럴 헤저드라고 부르건,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부르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집값은 떨어졌고,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언론들이라고 해서 미국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로부터 국내의 경제에 미칠 여파 등을 분석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 흔히 말하는 '보수신문'들은 미국 금융권의 위기를 오직 '유동성 위기'인 것처럼 몰아갔다. 반면 '진보적, 개혁적 신문'이라 불릴만한 매체들인 경제를 경제 자체로 다루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거대 담론을 추출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줬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념은 현실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팩트에 기반하여 현재의 위기를 넘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영국의 가디언은 "소비 심리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존경 받는 언론에는 확고한 견해와 함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더 확고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는 후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10월 9일 한국은행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대체 한국은행이 무슨 심산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있지만, 아무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보다 더 심한 물가 상승의 압박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도 금리 인하가 단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무서운 것은 불황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전반적인 불황에 접어들고 있고, 한국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그것은 미국 시장의 축소와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요일에 발간된 IMF의 World Economic Outlook을 인용하여, 미국에서는 9월 159000만명이 실직자가 되었고, 이것은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자동차 판매는 1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자동차를 구입해야 할 사람들이 신용불량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자동차 판매 촉진을 위해 한국에서 투자자 제소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설 땅이 없다(정확히 말하자면, 없어야 한다). 올해의 나머지 기간들은 더 나빠질 것이다.

전 세계 GDP의 25%를 충당하는 미국 경제가 이렇다보니, 세계 경제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상으로 수출하는 나라들은 전부 곤경을 겪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직접적으로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던 경제 주체들(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런 저런 기업들)은 2차적인 여파에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용된 기고문을 썼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펀더멘털이 어쩌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어떻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내 학자금 대출이 대단히 높은 금리이면서도 고정금리로 묶여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배가 아플 일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를 놓고 볼 때, 지금 한국 경제에 더 큰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압박이기 때문에 나는 그 결정에 찬성한다.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후 나름 대청소를 하고 맥주 한 잔 걸치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한중일 합치면 1조 6000억 달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던 이명박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던 블로거들이다.

일단 이명박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그건 EU처럼, 단일화폐는 바라지 않더라도, 중앙은행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국제 기구가 있어야 겨우 가능한 소리이며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국제정치는 '남자 어린이'의 정서로 움직인다. 곧죽어도 가오잡아야 하는 세계에서, '내 친구(그나마 상대방은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가 부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사이버 모독죄가 곧 신설될 예정이라서)

2채널의 리플을 퍼와 '씁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비판한 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대강 이렇다. 국가를 운영하는 기구로서의 정부를 긍정하는 것과, 그 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현재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비록 재경부장관이 강만수이고 대통령이 이명박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정부를 이명박이 수반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동시에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대학생들에게 떠안긴 김대중과 비교해보자. 김대중의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정책 같기는 하다. 반면 공적자금을 퍼부을 일이 산적해있는 이 시점에 종부세를 낮추고 재산세를 낮추겠다는 강만수와 그 강만수를 안 자르고 있는 이명박은, 그냥 미친 거다. 설령 11월 이후 물가가 폭등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술에 포함된 '교육세'와 담배에 붙는 세금은 오를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미리 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클린턴 시절의 호황을 이어받지도 못했으면서, 부시보다 더 심한 정책을 진행중이다.

그러니 이명박을 까는 것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비판은 옳지 않다. 물론 전직 노빠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명박을 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명박을 까는 행위의 옳지 않음을 곧바로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택 버블 붕괴 이후에 닥쳐올 실물경제의 불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물가상승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물가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향으로 임금을 인상하거나 고용을 안정화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되는 가운데, 환율을 잡건 뭘 하건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경향에서 그저께 1면에 보도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궁리나 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낮추겠다는 소리를 국정감사에서 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 이게 진짜 뉴스다.

최소한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명박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문제다. 김대중은 생색이라도 낼 줄 알았고 경제학원론을 이해하기나 했지, 이명박은 그저 모든 외부에서의 비판을 주님이 내려주신 시련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대단히 낮다. 그러니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에 가까운 그 무언가가 된다.

우석훈이 '정운찬을 경제부장관에 앉히면 시장이 안정된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명박이 이명박임을 거부한다는 말과 똑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어야 겨우 그정도의 변화를 얻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의석 배분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볼 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명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국정감사만큼 병맛나는 국정감사가 있긴 했나? 당내 정치 차원에서 뭐라고 하건, 노회찬이나 심상정 둘 중 하나는 의석을 가졌어야 했다.

공개된 공간에 잡담을 쓰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일단 쫙 쓰고 올려두기로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1. 나는 2009년 한국 경제가 불황을 겪을 것 같다고 본다. 2. 그 책임을 전부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현 정부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3.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옹호하기 위해 이명박을 비판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일단 여기까지.

경제 잡담

서강대학교 학보사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신문이 언제 나왔다는 건지 따로 연락이 없어서, 이미 나왔다고 가정하고 이번 글을 쓰기 전에 일단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이 글을 9월 24일에 썼다(이사를 앞두고 급히 쓴 것이므로 문장이 거칠고 호흡이 가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 )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서강대학교 학보, 2008년 9월 24일 작성, 노정태.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현 지식경제부 장관인 강만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목전에 두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휩싸여 있긴 해도,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철저하게 반박된 사례 중 가장 모범적인 것에 속한다. 강만수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믿어보자고 했지만, 그 환자는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사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고 있는 대형 금융기관들의 위기를 단지 '유동성 위기'로만 서술하고,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논하지 않는 국내 경제신문과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 태도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절반의 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라 일컬어지는 이코노미스트는, "What Next?"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 경제 위기의 여러 국면들을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가격 버블이 거의 다 꺼졌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8월의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고, 산업 생산량은 전월 대비 1.1%나 하락하였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2001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이다.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은 그다지 'OK'하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더욱 유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9월 21일 뉴욕 타임즈의 칼럼을 통해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시장 위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주택 가격의 거품이 빠지면서 모기지 대출의 상환이 어려워졌다. 2. 따라서 주택 보유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 회사에 유동성 위기가 닥쳐왔다. 문제는 버블이 발생하는 동안 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3. 보유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회사들은 빚을 갚을 수가 없다. 4. 빚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금융 회사들은 파산하거나 우량자산을 매각하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 회사들이 우량자산을 매각하고 있으므로, 우량자산은 그 가치보다 헐값에 매각되고, 그런 매각만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른바 '디리버레지(deleverage)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크루그먼이 비판하는 바는, 현재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내놓은 구제금융 투입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문제가 단지 '2 단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을 호도하고,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본질적인 위기인 주택 버블 붕괴를 도외시하게끔 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거품이 낀 집을 담보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럴 헤저드라고 부르건,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고 부르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다. 집값은 떨어졌고, 빚은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 언론들이라고 해서 미국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었다는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로부터 국내의 경제에 미칠 여파 등을 분석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대신, 흔히 말하는 '보수신문'들은 미국 금융권의 위기를 오직 '유동성 위기'인 것처럼 몰아갔다. 반면 '진보적, 개혁적 신문'이라 불릴만한 매체들인 경제를 경제 자체로 다루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거대 담론을 추출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줬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념은 현실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팩트에 기반하여 현재의 위기를 넘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언론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영국의 가디언은 "소비 심리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존경 받는 언론에는 확고한 견해와 함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더 확고한 사실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에는 후자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10월 9일 한국은행은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대체 한국은행이 무슨 심산으로 그런 결단을 내렸는가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있지만, 아무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보다 더 심한 물가 상승의 압박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도 금리 인하가 단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금 무서운 것은 불황이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전반적인 불황에 접어들고 있고, 한국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그것은 미국 시장의 축소와 더불어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요일에 발간된 IMF의 World Economic Outlook을 인용하여, 미국에서는 9월 159000만명이 실직자가 되었고, 이것은 2003년 이후 최악의 수치라고 보도했다. 자동차 판매는 16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이것은 자동차를 구입해야 할 사람들이 신용불량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자동차 판매 촉진을 위해 한국에서 투자자 제소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설 땅이 없다(정확히 말하자면, 없어야 한다). 올해의 나머지 기간들은 더 나빠질 것이다.

전 세계 GDP의 25%를 충당하는 미국 경제가 이렇다보니, 세계 경제 또한 마찬가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대상으로 수출하는 나라들은 전부 곤경을 겪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직접적으로 미국과 거래하지 않는다 해도 '미국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에 부품을 공급하던 경제 주체들(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런 저런 기업들)은 2차적인 여파에 휩쓸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용된 기고문을 썼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펀더멘털이 어쩌고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어떻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내 학자금 대출이 대단히 높은 금리이면서도 고정금리로 묶여있다는 것을 놓고 볼 때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배가 아플 일이긴 하지만, 전반적인 경제를 놓고 볼 때, 지금 한국 경제에 더 큰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것은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압박이기 때문에 나는 그 결정에 찬성한다.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한 후 나름 대청소를 하고 맥주 한 잔 걸치며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전개가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한중일 합치면 1조 6000억 달러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던 이명박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던 소수의 블로거이다.

일단 이명박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그건 EU처럼, 단일화폐는 바라지 않더라도, 중앙은행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국제 기구가 있어야 겨우 가능한 소리이며 설령 그런 게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의 수반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국제정치는 '남자 어린이'의 정서로 움직인다. 곧죽어도 가오잡아야 하는 세계에서, '내 친구(그나마 상대방은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가 부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사이버 모독죄가 곧 신설될 예정이라서)

2채널의 리플을 퍼와 '씁쓸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비판한 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대강 이렇다. 국가를 운영하는 기구로서의 정부를 긍정하는 것과, 그 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현재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비록 재경부장관이 강만수이고 대통령이 이명박이지만, 그래도 정부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정부를 이명박이 수반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동시에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대학생들에게 떠안긴 김대중과 비교해보자. 김대중의 그 정책은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정책 같기는 하다. 반면 공적자금을 퍼부을 일이 산적해있는 이 시점에 종부세를 낮추고 재산세를 낮추겠다는 강만수와 그 강만수를 안 자르고 있는 이명박은, 그냥 미친 거다. 설령 11월 이후 물가가 폭등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술에 포함된 '교육세'와 담배에 붙는 세금은 오를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미리 사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클린턴 시절의 호황을 이어받지도 못했으면서, 부시보다 더 심한 정책을 진행중이다.

그러니 이명박을 까는 것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비판은 옳지 않다. 물론 전직 노빠들의 대부분은 현재 이명박을 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명박을 까는 행위의 옳지 않음을 곧바로 입증해주지는 못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택 버블 붕괴 이후에 닥쳐올 실물경제의 불황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물가상승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고 이보다 더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므로, 가능한 한 물가에 영향을 덜 미치는 방향으로 임금을 인상하거나 고용을 안정화하거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자 하는 노력이 병행되는 가운데, 환율을 잡건 뭘 하건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경향에서 그저께 1면에 보도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궁리나 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낮추겠다는 소리를 국정감사에서 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미친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없다. 이게 진짜 뉴스다.

최소한의 성장을 위해, 최대한의 복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명박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문제다. 김대중은 생색이라도 낼 줄 알았고 경제학원론을 이해하기나 했지, 이명박은 그저 모든 외부에서의 비판을 주님이 내려주신 시련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이 이 위기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 가능성은 대단히 대단히 낮다. 그러니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의무에 가까운 그 무언가가 된다.

우석훈이 '정운찬을 경제부장관에 앉히면 시장이 안정된다'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명박이 이명박임을 거부한다는 말과 똑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어야 겨우 그정도의 변화를 얻을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 의석 배분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하는 꼴을 볼 때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이명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국정감사만큼 병맛나는 국정감사가 있긴 했나? 당내 정치 차원에서 뭐라고 하건, 노회찬이나 심상정 둘 중 하나는 의석을 가졌어야 했다.

공개된 공간에 잡담을 쓰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지만, 정리하는 차원에서 일단 쫙 쓰고 올려두기로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렇다. 1. 나는 2009년 한국 경제가 불황을 겪을 것 같다고 본다. 2. 그 책임을 전부 이명박과 강만수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현 정부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3.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옹호하기 위해 이명박을 비판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일단 여기까지.

2008-10-07

쇼크 독트린, 미국 사회의 계층, 50대와 경제 위기

1.



나오미 클라인이 콜버트 레포트에 출연했다. 단련된 말빨이 있어서인지 호락호락하게 휘둘리지 않는 모습이다. 제법 이른 시점에 출연했던 폴 크루그먼이 쩔쩔맸고, 나중에 나온 도킨스도 표정 관리하느라 애먹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정말이지 큰 발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외수와 황석영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사실이 문득 기억난다. 물론 그 각각의 방영분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으므로, 언급은 자제한다.

4분 넘어설 시점에 스티븐 콜버트가 던지는 질문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결국 어떤 주식을 사라는 거죠?' 나오미 클라인을 몰아붙이기 위해 꺼내들었지만, 어떤 면에서 진실의 일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얼마 전까지 주식 호황을 타고 '자산을 통한 재산 증식'의 맛을 본 것은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다.

20대의 보수화가 더욱 심해진 배경에도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과거에는 집이나 땅을 살 정도까지는 일단 돈을 '모아야' 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첫 월급을 타자마자 바로 펀드에 가입하고 수익률을 비교하며 CMA 통장을 발급받은 후 40대가 되기 전에 몇 억을 '먹을지' 고민했다. 적금과 펀드의 차이는 수익률에만 있는 게 아니다.


2.

뉴욕타임즈는 'Class Matters'라는 특집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사회 내의 계층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계층 분리가 희박해졌다는 최근의 발상은 헛된 꿈이며, 고소득층에서는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넓어지고 있지만 소득을 통한 계층 분화는 한층 더 공고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 내에서의 계층 분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뉴욕타임즈가 플래시로 만들어놓은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내용을 읽기에 앞서서 일단 부러움이 앞선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저서들을 보면 각주의 절반 이상이 신문, 잡지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매체에 대한 신뢰도, 정보의 질과 양이 사회적 담론의 수준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3.

로버트 라이히는 최근 블로그에서 "Early Boomers and the Economic Mess"라는 포스트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이른 베이비 붐 세대가 전후 공백의 이점을 다 누렸고, 싼 값에 집을 샀으며, 뒤이어 성장하는 세대들의 수요 확대로 인한 집값 상승의 단맛을 톡톡히 봤으며, 심지어는 주식시장에도 값이 뛰기 전에 뛰어들어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55세 이상의 그들은 바로 지금, 미국을 휩쓸고 있는 경제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부시가 방한하던 날 택시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택시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58년 개띠들이 다 죽고 나면 집값은 떨어질 겁니다.' 58년 개띠들이 말하자면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가 될 것이다. 로버트 라이히와는 달리 그 택시기사는 집값이 떨어져 50대가 위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50대가 죽고 난 다음에야 집값이 빠지고 거품이 걷힐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현재 국면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낙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라이히의 한탄은 남의 일이 아니다.

2008-10-02

강의석의 누드 퍼포먼스





두 장의 사진을 놓고 생각해보자. 나는 강의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저따위 은색 반짝이 전대물 악당 병사 스타일의 배꼽티를 입는 것보다는 홀랑 벗어버리는 편이 훨씬 도덕적이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웃통을 까고 헬보이 코스프레를 하던 9월 30일의 지리멸렬한 그것과 달리, 과자로 만든 총을 쏘다가 씹어먹어버리는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로서도 나름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군대에 대한 입장과는 별도로, 이번만큼은 강의석의 돌발적인 행동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