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30

정치적 소수자의 탄생

아흐리만이 상도동에 방을 얻어 이른바 '상도누리'가 결성된 그 날, 이삿짐을 옮기느라 피곤했던 아흐리만이랑 개인적인 사정으로 피곤했던 느린걸음은 일찍 잠들었고, 나랑 생명연습, 그리고 여자친구 ksw만이 남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어. 주된 화제는 '경기도 지역 비평준화, 어떻게 볼 것인가' 정도였는데, 이 지점에서 저 커플의 논의가 몹시도 심화되었다가, 다시 돌아왔지. 그 동안 나는 그 방 혹은 엠티장의 풍경에서 어떤 한 비유를 연상해냈고, 평온을 찾은 두 사람 사이에서 주춤주춤거리다가, 말을 꺼내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kdy(생명연습)와 ksw는, 이 지점에서 가장 원초적으로 다른 바탕 하에 서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소수자의 정서라고 해야 할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심해지는가 하는 것. 뭐 그런 것들 말이야. 아니, 아니, 누가 더 많이 당했고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어떤 명료한 이해가 두 사람 모두에게 좀 결여된 것 같다는 거지. 난 계속 말했어. 명료한 이해가 뭐냐 하면, 음, 나중에 다시 반복해서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만한 이해. 그래 그 정도로 해두자.

소수자의 정서라는 거, 솔직히 난 넷상에서 그런 거 들먹이는 애들 때문에 너무 시달려와서, 왜 알잖아 그쪽 패거리들, 그래서 어떤 극복되어야 할 거라고 우선 생각하고 있어. kdy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ksw가 달려들었지. 그러니까 오빠가 여태까지 내가 한 말을 이해 못 하고 있는거야. 나는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그런 분위기에서 커 왔고,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은 대뜸 틀렸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거라고. 아니, 아니,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누가 그 사실 자체가 정당하대? 단지,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은 아니라 이거지.

하지만, 미안하지만, 어쩌면 내가 하는 말은 그 주제와 똑 떨어지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 별로 좋아하는 화법은 아니지만, 일단 떠오른게 비유라서. 그치만 이걸 굳이 말하는 게, 앞으로도 여러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잠시 숨을 고르고, 나는 계속 말했어. 자. 이 드넓은 방의 천장을 봐. 광원(光源)은 단 하나지. 거기서 빛이 나오고 있고, 그럼으로써 이 방 안에 놓여진 온갖 물체에 그림자가 생기고 있어. 저기 저 컵과 내 앞의 컵을 놓고 보자. 저 컵은 광원의 바로 밑에 있기 때문에, 이 컵과 동일한 물건이지만, 거의 최소한의 그림자만이 딸려있는 그런 컵이 되어버리지. 반면 이 컵은 단지 광원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이유만으로, 긴 그림자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거고 말야.

응. 그렇지. kdy가 말했어.

이 컵, 아니 차라리 이 물체가 존재하는 한, 이런 식으로 그림자가 생기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 그림자를 개인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지녀야 할 어떤 내면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간주해보자. 내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kdy가 끼어들었어.

아니,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바깥에 생기는 그림자에 비유하는 건 그 자체로서 별로 옳지 못한 것 같은데. 내면의 어두운 부분은 내면에 있으니까 내면의 어두운 부분 아냐?

내면에 있어야 한다는 게, 내면에만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일 거야, 아마도. 그리고 내가 지금 말하는 건, 그 희망사항이 어째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 될 거고. 내가 말했어. 그러니까, 좀 더 들어줘. 일단,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내면'은,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빌리면, 딱정벌레 같은 거야. 봐봐. 누구도 남의 내면을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내면이라는 게 굳이 있어야 할 필요는 뭐지? 아니, 그런게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나 있을까? 없지. 그럴 수는 없어.

무슨 소리인지 조금만 더 설명해봐. kdy가 요청했어.

자, 이런 말, 우리는 하지? 그는 내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발버둥쳤다. 혹은 이런 말도 해. 저 꼬마는 저 개를 만지고 싶어하는데, 무서워서 그러지 못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타인의 '내면'을 어떻게 톱으로 까 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서 그 꼬마의 마음을 우리가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맥락이 여기에 똑 떨어지는 건 아니어도, 그건 확실해. 그렇게 남들이 아예 알 수 조차 없게 원천적으로 차단된 내면이라면,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말 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알 수도 없다고 말야.

그래. 그러니까 '내면의 상처'라는 말이, 정말로 아예 남들이 알 수 없는 것을 지칭하게 될 수는 없다는 거지. 오케, 그럼 더 해봐. kdy가 말했어.

자, 우리는 지금 이 방을 놓고 비유하고 있어. 여기에 빛의 근원은 하나뿐이야. 그리고 그로 인해, 같은 물체라고 해도 그저 그것이 어디 있느냐 라는 이유, 단 하나의 이유때문에 다른 크기의 어둠을 지니게 되지. 내가 그걸 왜 굳이 '내면의 어둠'이라고 했냐 하면, 그림자는 그 대상 물체가 바닥에서 떨어져 있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본래 물체와 붙어있어야만 하잖아. 그래서야. 어쩌면 우리가 '내면'이라고 부르는 건, 안 보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 인격 혹은 객체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이 아닌가 해서. 하여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얼만큼의 어둠을 지니냐가, 개개인의 특성과는 상관 없이 결정된다는 것, 이게 핵심이야. 내가 말했지. 계속 말했어.

자, 그렇다면, 주변 상황이라는 게 말 그대로 개인의 주변으로부터 이렇게 빙빙 돌면서 그 사람의 중심부로 다가온다고 쳐 보자. 그렇다면, 빛의 각도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마치 오후에 그림자가 더 길어지듯이, 광원이 고정된 이 방의 중심에서 먼 사람일수록 긴 어둠을 가질 수 밖에 없어져. 그 면적 또한 당연히 넓어지겠지. 그런데 방금 말했잖아. 주변 상황이라는 게 그 사람에게 슬금슬금 접근한다고.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그림자라는 것은 어둠이야. 어둠은, 밟히면, 아픈 것이겠지. 아픈 거야. 맞아. 여기까지 말했을 때, 여태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ksw가 말하기 시작했어.

그래. 그러니까 중심에서 먼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워야만 하는 것이고, 또 불공평하게도 그게 남들에게 더 쉽게 드러난다는 거네?

어. 그리고 그것 뿐이 아냐. 나는, 아프니까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그걸 남들이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더 문제야, 라며 말을 이었어. 듣는 이들이 자신들의 귀를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비명지르는 자의 입을 막아버리는 상황이 오는 경우를 우리는 한국사에서 많이 봐 왔잖아. 아, 그것 뿐이 아니지. dy형, 저번에 우리가 말했던 거 있잖아. 내가 아흐에게 뒷통수 맞아서 형 방 갔었을 때 말야.

아, 광주 문제 말이구나, kdy가 말했어. 그렇지. 그것도 그 비슷한 맥락이겠다. 그 사람들은 이제 거의 지쳐버린 거라고 할 수 있을거야, 니가 말한 대로라면. 그리고 더 심한 건 이제, 특히 갓 대학에 들어온 애들이 그런데, 그냥 건성건성으로 아 나 광주 그거 뭔지 알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이제는 거의 그 사람들은, 아니 그 사건 자체는, 잊혀지는 거야.

말하자면, 아예 빛도 닿지 않는 저 구석으로 밀려가고 있는 거지, 라고 내가 덧붙였어. 그런 식이야. 소수자들은 아예 목소리도 잊혀져버려. 그리고 결국은 저 벽까지 다다라버리는 거야. 아무도 자기 그림자를 밟을 수 없는 저 벽. 하지만 그 그림자가, 자기 키까지 차오르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저 차디찬 벽 옆으로. 김현도 그렇게 말했다지. 그 부족한 것 없어보이던 사람이, 술 취하고 하는 말. '전라도라는 것은 원죄야.'라고. 난 조금 흥분해서, 더 떠들었어.

이게 제일 심하게, 지저분한 형태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여성 문제야. 씨발, 무슨 말만 하면 꼴통 페미래. 존나 웃기는 게 뭔지 알아? 그러면서도 곧죽어도, '여성 문제는 진보의 테마다'라는 식의 말을 안 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심지어는 지네가 여성이 되어버리겠다는 놈들도 있었지, 아마? 이 불공평함, 이거 정말 더럽고 짜증나. 우리는 그걸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만, 사실은 말할 권리라고. 말할 권리. 좀 더 낮게 말하면 주둥이의 자유. 근데 그걸 박탈하는거야. 어떤 방식이냐면, '허허, 너희들이 원하는 바를 짐은 이미 알고 있노라. 그러니 뚝. 어여 까까 먹고 사라지거라~'하는 거지. 여성에는 3가지 여성이 있다고 떠드는 거고, 여자들이 뭐가 되어야 한다고 자꾸 지껄이는 거지. 모두모두 말 타고 초원을 누비는 야만적인 여성 전사가 되어야 한대. 닭 같은 새끼들. 그 말 하는 놈들이나 툰드라 지역 가서 살라고 해. 어디서 남의 '존재'에 대해 감 놔라 배추 놔라야?

야, 너 너무 흥분하는 것 같다만, kdy가 끼어들면서, 그 문제 나왔으니까 말인데, 그리고 이 비유가 비유니까 하는 말인데, 그러니까 박근혜가 대통령 되어야 한다는 최보은의 발언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물었어. 이게 여성 문제를 싸잡는데 아주 치명적인 아킬레스 건이라는 건 알지만, 그러니까 또 대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 숨을 고르며 나는 대답했어. 사실 그 발상이나, 노무현 찍으면 개혁세상 온다는 황건당의 발상이나, 비슷해. 자기들 머리 위로 광원을 옮겨오겠다는 거지. 혹은, 그 불빛 아래로 다들 엑소더스를 하겠다는 거지. 솔직히 가당치도 않은 거야. 자, 아까 그 비유로 다시 돌아가봐. 다들 자기 그림자 밟히면 아프다는 걸 알잖아. 그러니까 다들 중심지로 모여드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데 모이고 모이다 보면 결국은, 밀도가 높아지겠고, 누군가 누구의 머리 위로 올라가는 일도 당연히 발생하게 될 거야. 이게 우리 교육이지. 아니, 교육에 집약된 한국의 현실이지. 다들 중심으로 모여들려는 것. 남에게 밟힐 구석이 없는 삶을 만들려는 것. 옛날의 학벌주의가 어떤 목적지향적인 행위였다면, 지금의 학벌주의에는, 일종의 과장된 생존의지가 두드러져. 명문대 나와도 취직 안 되는 세상이거든. 학벌 없으면 출세는 고사하고, 살아남지도 못할 것 같거든.

잠자코 듣고 있던 ksw가 질문했어. 야, 그렇다면, 해답은 뭐야? 중심을 지향하는 삶이 옳지 못하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들 그렇게 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럼 남는 건 결국 여기저기에 조명 많이 다는 것 정도가 되는 거 아냐? 근데 그건 여태까지 이렇게 실컷 떠든 거에 비하면, 좀 심심하잖아. 안 그래?

그치만, 왜 그런 정곡을 찌르고 그래, 그것 말고는 없어. 내가 얼버무렸지. 아냐. 그래도, 사실은 각자가 조그만 발광체가 되는 방법도 있긴 하지. 그치만, 그런 식의 논의를 좋아하는 이른바 노마디스트들이 까먹는 게 있어. 그렇게 개인이 뿜어내는 빛에도, 그림자는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개인이 뿜어낼 수 있는 빛의 양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는 것. 솔직히 노마디즘과 신자유주의는 백지장 하나 차이잖아. 난 그걸 그냥 미사여구 차이라고 쳐. 그 이상 알고 싶지도 않거든, 실은. 맨날 난삽한 이야기나 나오고 말야. 하여튼 개인이 발광체가 되는 건, 그런 문제 외에도, 미친년 지랄 발광하네 라는 말 따위로 폄하되기 십상이라는 점에서도, 사회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봐. 적어도 난 그래. 그리고, 정치적 소수자에게, 당신의 문제는 당신 스스로 밝고 희망차게 살아감으로써 해결하십시오, 따위의 말을 하는 건, 정말 아니잖아?

하긴. 아무리 나이롱이어도 우린 대충 좌파 언저리잖아, kdy가 말했어.

그래. 나는 말했어. 그러니까 결국, 뭐 그런 얘기가 되어버린 거지. 다양한 사회. 하지만 개인 개인에게 다양함을 무기로 삶의 문제를 직접 극복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 사회. 사실 내가 계속 써먹은 빛과 그림자의 비유, 이거 계몽이라는 말의 원어 그대로잖아. enlighten. 그리고 이런 은유는, 계몽시대의 철학자들이 계속 써먹은 수준도 아니라, 거의 압도당한 거거든. 헤겔 책 보면 정말 느낌으로 다가와. 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정치적 소수자는 빛이 한 군데에서만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 되어 탄생한다는 거.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이 발광체가 되는 식의 발상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는 거. 이런 거겠지. 중요한 건.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이 비유가 무색해지게 할 막대한 빛의 근원이 저 동쪽 하늘에서 떠오르고 있다는 거지. 씨바... 날 샜다.

어이, 정태야. 백프로 이해가 잘 된 건 아니지만 어쨌건 재미있었다. 우린 갈게. 안녕. ksw가, kdy와 함께 일어나며 말했어.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야. 굳이 더 떠올려보자면, 바닥에 매트릭스를 깔고 이불을 덮은 정도? 그리고, 아흐 방의 창문이 너무 커서 쏟아지는 빛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는 것 정도? 빛이 제대로 닿지 않으면 그림자가 져서, 정치적 소수자가 탄생하게 되지만, 그래도 술 먹고 누웠을 때 더욱 절실한 것은 어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불을 뒤집어 썼다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물론 이 모든 대화는 다 픽션입니다. 본의아니게 대화자로 등장하게 된 kdy와 ksw에게, 영감을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혹시라도 언짢은 부분이 있다면 미안하다고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합니다. 아, 춥습니다. 감기 조심합시다.


* 2003년 12월 30일 작성, 2008년 1월 10일 수집됨. 이 글에서 사용된 비유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다음 게시물을 참고할 것: http://basil83.blogspot.kr/2008/01/blog-post_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