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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왕중왕, king of kings, 諸王の王

C. S. 루이스의 책에서 봤던가? 기억으로 하는 이야기다. 틀릴 수도 있고, 틀렸다는 걸 지적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무튼.

고대 히브리어에는 최상급을 한 단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야훼는 자신을 '왕들의 왕들의 왕'이라고 칭했다. 가장 높은 왕이라는 뜻이었다.

그 아들인 예수 역시 평범한 왕보다 더 높은 왕인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는 자신이 '가장 높은 왕'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왕중왕'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다.

신약성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그리스어 화자들에게 '왕들의 왕들의 왕' 같은 표현은 생경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어 화자였던 신약성서의 기록자들은 그 표현을 직역했다. 자기 언어의 표현을 쓰지 않고, 어색하게 보이는 그 '왕들의 왕'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겼다.

라틴어를 지나 유럽 각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는 시대에 도달했다. 직역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영어는 최상급 표현이 있는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정역의 번역자들은 그 표현을 있는 그대로 옮겨서, 'king of kings'라는 어구를 만들어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루이스가 저 말을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성경의 언어가 번역하기 좋다는 것이다. 도치 병치 등이 주로 사용되어 있다. 특정 언어의 음성과 운율에 좌우되지 않는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루이스는 그렇게 보았다.

그래서 루이스는 '왕중왕'도 참 좋다고 했다(고 기억한다). 실로 간단한 언어적 장치를 통해 이전에 없던 심상을 전달하지 않았느냐고. 그 어구를 직역함으로써 영어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언어가 풍성해지지 않았느냐고.

한국어 성경은 어떨까. '왕들의 왕'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는 '왕중왕'이다.

과연 '왕중왕'이라는 표현에 한국어 성경 번역자들은 어떻게 도달했을까? 중국어로 성경을 옮긴 예수회 신부들이 먼저 만들었을까? 일본어 번역의 영향인가? 기독교의 전파와 도래에서는 한반도가 일본 열도보다 더 빠르지 않았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나는 대답할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검색을 해보니 '諸王の王'이라는, 한국어와는 사뭇 다른 표현이 나온다는 것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직역'은 나쁘고 '의역'은 좋다느니, 반대로 '딱딱한 번역투'에서 벗어나 '생생한 우리 입말'을 되찾자느니, 그런 추상적인 논의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식의 강퍅한 담론이, 특히 민족주의적 정념과 뒤엉키기 시작하면, 안그래도 얕은 우리말의 물줄기는 더욱 쉽게 말라 비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예수를 '왕들의 왕'이 아닌 '왕중왕'으로 번역한 덕분에, 우리는 '프로권투 헤비급 왕중왕전'도 볼 수 있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몸 좋은 남자 배우를 보고 즐기는 여성들이 '역시 맨 중의 맨은 휴 잭맨' 같은 농담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의 국적을 논하며 무언가를 솎아내자는 이야기나 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2020-08-11

앨버트 O. 허시먼, 노정태 옮김, 『정념과 이해관계』(서울: 후마니타스, 2020)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앨버트 O. 허시먼의 <정념과 이해관계>. 자본주의가 역사의 승자로 자리매김하기 전, 어떤 정치철학적 논쟁을 통해 지금의 위치를 확보했으며, 어째서 그런 논쟁들이 잊혀지게 되었는지 따져 묻는, 짧지만 강렬한 대작입니다.

저는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 제게 이런 책을 번역할 기회를 주시고, 무한한 인내로 기다려주신 후마니타스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번역은 여러모로 미흡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허시먼은 '쉽고 명료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렵고 좋은' 문장을 쓰죠. 그가 전개하는 심도 깊은 논의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루 질정 부탁드립니다.

2020-01-12

독일 에너지 실험의 비극 (The Tragedy of Germany’s Energy Experiment)

제목: 독일 에너지 실험의 비극(The Tragedy of Germany’s Energy Experiment)

2020년 1월 8일, 요헨 비트너(Jochen Bittner) 작성

독일, 함부르크 - 독일인들은 비이성적인가? 스티븐 핑커라면 그렇게 생각할 듯하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핑커는 최근 독일 시사 잡지인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인류가 경제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 기후 변화를 멈추고 싶다면, 원자력을 덜 쓰는 게 아니라 더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을 몰아낸다는 독일의 결정은 "편집증적(paranoid)"이라고 말이다.

내 조국은 실로 독특한 실험을 감행하는 중이다. 메르켈 정부는 원자력과 석탄 발전소를 모두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다. 독일 최후의 원자력 발전소는 2022년 말에 폐쇄될 예정이며, 최후의 석탄화력발전소는 2038년 문을 닫을 예정이다. 동시에 정부는 친환경적인 전기차 구입을 촉진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전력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에너지 소비는 1990년 이후 10퍼센트 상승했다.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독일이 위험한 경로를 걷고 있다고 우려한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이 빠진 손실을 채워넣을 수 있을만한 신재생에너지가 적절한 시점에 마련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독일의 전력 공급 중 40퍼센트 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이상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기술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이다.

독일의 몇몇 지방에서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는 "풍력 농장"에 진력을 내고 있다. 새로운, 많은 경우 더 큰 풍력 발전기가 주변에 세워지는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안가에서 산업 중심지를 이어줄 송전선이 새롭게 깔리게 될 지역에서도 주민들의 저항이 늘어가고 있다. 공식적인 집계에 따르면, 독일의 "에네르기벤데(Energiewende)", 혹은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송전선의 길이만도 5954킬로미터(3700마일)에 육박한다. 2018년 말 현재 실제로 건설된 송전선은 약 150킬로미터(93마일)에 불과하다.

이 계획은 전력 부족을 야기하는 것보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를 석탄 화력 발전소보다 빨리 폐쇄하고 있는 탓에, 독일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도록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독일은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기후에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대는 굳건하다. 60퍼센트의 독일인들은 가능한 한 빨리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현상의 이면에 놓인 태도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편집증은 정확한 용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딜레마와 맞닥뜨렸을 때 얼어붙은 듯 멈춰버리는 대단히 독일적인 특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선한 일이라면 열성적으로 달려드는 독일 같은 국가에게 있어서, 원자력 발전과 기후 변화라는 두 개의 악을 놓고 선택하는 것은 거의 수행 불가능한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논의의 시작을 위해 언급하자면, 원자력 발전이 궁극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며, 독일인들은 특히 그 점에 대해 늘 불편함을 느껴왔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아토마우스티에그(Atomausstieg)", 즉 원자력 발전을 단번에 완전히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다. 왜? 당시 메르켈 총리가 설명한 바는 이렇다. "원자력 발전의 잠재적 위험은,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위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에만 용인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훈련받은 물리학자인 메르켈 총리는 원자력 재앙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더는 믿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같이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나라에서도 그러한 재앙이 발생했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바꾸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악인 기후 변화는 어떠한가? 그 재앙은 석탄화력발전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으며 거의 확실하게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에서야 "기후 변화는 우리가 몇 년 전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고 인식했다. 동시에 메르켈 총리는 독일이 파리 기후 협약에서 약속한 바를 이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나온 희망찬 숫자를 놓고 보더라도, 2020년 말까지 탄소 배출양의 40퍼센트를 줄인다는 목표치는 달성 불가능하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가 2011년 이후 훨씬 깊어졌으니, 각 국가들은 화석 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원자력을 폐기하겠노라는 생각을 바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원자력으로 회귀하는 것은 녹색당의 입장에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녹색당은 향후 메르켈의 기민당이 연정을 맺어야 할 상대이기도 하다. 녹색당은 1980년대 초 반핵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반핵운동은 녹색당의 DNA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중 구속 상태에 대해 녹색당은 그럴듯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아날레나 베르보크(Annalena Baerbock) 녹색당 공동대표는 독일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석탄 발전소를 더 빨리 폐쇄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더 오래 유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러한 발상 자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나라의 그 누구도 우리 이웃의 정원에 원자력 폐기물을 묻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그는 대답했다.

그건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원자력 에너지가 방사성 폐기물과 기술적 사고의 위험을 사회에 전가시키면서 기업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 또한 맞다. 하지만 석탄 발전소가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는 계산 또한 참이다.

독일 에너지 실험의 비극은 독일의 거의 종교적 반핵 정서가 기술 발전에 따른 논의의 여지를 전혀 남겨놓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과학자들은 방사성 폐기물을 이용해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사용후 핵연료 보관 문제, 즉 원자력에 반대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인 그것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른바 고속증식로에도 나름의 위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재생 가능 에너지 시대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원자력은 석탄이나 가스 발전소보다는 나은 선택지가 아닐까?

일체의 원자력 발전소를 급속도로 폐쇄하면서, 독일은 [원자력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독일은 어쩌면 인류가 본 것 중 가장 안전하고 가장 친환경적인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기술과의 접점을 차단해버렸다. 독일이 현존하는 원자력 발전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화석 연료의 사용을 급격하게 줄이는 방안이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비이성적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내는 것은 메르켈 시대가 낳은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요헨 비트너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의 토론 지면의 공동 담당자이며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한다.

원문: Jochen Bittner. “Opinion | The Tragedy of Germany’s Energy Experiment”. The New York Times, 2020년 1월 8일, sec Opinion. https://www.nytimes.com/2020/01/08/opinion/nuclear-power-germany.html.

2020-01-06

필립 풀먼에게서 배우는 글쓰기 수업

작가 필립 풀먼은 새로운 3부작 <먼지의 책>(The Book of Dust) 가운데 첫 번째 편을 깜짝 발표하면서 리라 벨라쿠아(Lyra Belacqua)의 세계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야수: 먼지의 책 1권>(La Belle Sauvage: The Book Of Dust Volume One)은 풀먼의 71번째 생일에 맞춰 목요일에 출간되었다. 그가 앞서 내놓은 3부작의 후속작으로는 17년만이다.

<황금나침반> 시리즈의 리라는 중요 인물 중 하나로, 이야기는 리라가 생후 6개월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수녀들 틈에 숨어 있는 리라의 삶에 11살 소년 말콤 폴스테드가 끼어들어, 그의 카누인 아름다운 야수에 리라를 태우고 보호해주게 된다.

풀먼을 이토록 성공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 갓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그가 건낼 조언은 무엇일까?

BBC와 마주 앉아, 풀먼은 그의 행운의 펜에 대해, 그리고 전동드릴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일할 수 있지만 왜 절대 음악은 안 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1. 캐릭터가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라.

그것은 신비로운 과정이다. 물론 나의 일부는 그들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만들어내든 것과는 다른, 발견하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더 나은 단어를 찾아 종이 위에서 펜이 움직일 때까지 책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이 과정을 신비롭게 포장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느낌은 발명보다는 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마치 이야기가 이미 그곳에 있고, 내가 그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말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달까.

이 희한한 일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확실히 안다고 할 수는 없고, 실은 어떤 식으로 장담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의혹에 빠져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2. 언제나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황금나침반> 시리즈를 끝내고 난 후,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황금나침반> 시리즈에서 말한 리라의 이야기는 결말로 향하고 있었고, 끝났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이 늘 존재한다. <황금나침반> 시리즈가 끝날 때 리라는 고작 12살이었을 뿐이다. 성장하고 어른이 될 것이다.

리라에게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무언가를 해낼 것이다.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말하자면 내 시각의 바깥에서, 내 눈이 닿는 구석 너머에서, 나는 내 흥미를 끄는 다른 캐릭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내 펜이 그 이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퍽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었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의 설득력과 재미가 너무도 강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캐릭터들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3. 자신에 차 있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음악을 듣지는 마라.

나는 (내 글이)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 이 정도면 되겠네" 정도다.

글을 쓸 때 나는 사실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욱 의식한다. 어떤 단어가 문장에 들어갈지에 앞서 문장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갈지를 먼저 알게 되는 편이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음악이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작가들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고요한 상태는? 좋다. 전동 드릴 소리는? 괜찮다. 교통 소음? 문제 없다. 하지만 음악은 절대 불가다. 그러므로 나는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리듬을 들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4. 어조(tone)가 구조보다 더 중요하다.

글이 흘러가는 방향이라면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 그렇다, 나는 그런 식이다. 하지만 나중에 구조가 잡힌다. 종종 구조를 어떤 근본적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구조는 피상적인 것이다. 책에서 근본적인 요소는 어조, 말하는 어조이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모든 문장을 바꾸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구조는 최후의 순간에 바꿀 수 있다. "중간부터 시작하겠다"라던가, 그런 비슷한 말은 가능하다. 구조는 존재하는 것이지만 뒤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


5. 가장 좋아하는 펜을 골라라.

일단, 나는 볼펜과 종이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행운의 펜을 가지고 있다. 몽블랑 볼펜이다. 무게와 크기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리고 잘 작동한다. 그 볼펜으로 여러 책을 썼다. 이제는 그 볼펜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만약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단 글을 쓴다. 그리고 한 챕터나 두 챕터를 쓸 때마다 컴퓨터로 옮긴다. 지금껏 발명된 편집 도구 중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6. 자신을 위해 써라.

글을 쓸 때는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다른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란 누군가에게 읽힐 때까지는 온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그 상호작용에서 독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것을 읽어야 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지금껏 있어온 모든 '나 자신들'을 위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나부터, 처음으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던 나, 50년 전에 옥스포드에 있었던 나, 학교 선생으로 일했던 나, 교실에서 이야기를 해주던 나.

이 모든 나 자신.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넓은 독자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그 독자들 속에 어른과 아이가 모두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원문: "Philip Pullman: Rules of writing from man behind His Dark Materials", BBC, 2017년 10월 19일.

개인적으로 4번이 가장 인상적이다. 소설 뿐 아니라 기타 분야의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 구절을 갈무리해두려는데, 혼자 보는 자료 모음집에 담아둘까 하다가, 전문을 번역하여 블로그에 올려둔다.

2019-09-25

번역 신간 소개: 『밀레니얼 선언』

번역한 책이 나왔습니다. <뉴 인콰이어리> 편집자 맬컴 해리스가 쓴 『밀레니얼 선언』입니다. 1988년생 저자가, 사방팔방 욕먹고 비난당하는 본인 세대의 정치경제학적 형성과 구조에 대해, 마르크시즘적 관점을 가미해 해부한 책입니다. 1983년생 번역자가 한국어로 옮기고 해제를 붙였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미국 또한 '자유로운 교육'은 개뿔이죠. 대학을 향해 끝없는 돈놓고 간판먹기 게임을 벌이는데, 설령 입시 경쟁에서 이긴다 해도 수만 달러씩 빚을 지고 인생의 출발선에 서는 것이 미국 밀레니얼의 삶입니다. 한국의 청년층의 그것과 너무도 닮은꼴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 사회는 자기 재능을 떨치고픈 이에게 작업, 샘플 제작, 홍보, 기회 비용 등 모든 부담을 떠넘기고, 오직 젊은 재능의 성공만을 '공유'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래퍼 치프 키프는 음반을 25만장 못 팔면 이후 앨범 출시 계약이 취소되는 조건을 걸고서야 메이저 레이블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의 처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다양한(하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사례와, 그것을 관통하는 이론적 시각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 당사자가 쓴 밀레니얼 세대론은 미국에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책이 나왔고 서점에 배본은 빠르면 내일, 늦어도 이번주 내로 완료될 예정입니다. 그때 링크를 첨부하고, 날짜를 바꿔 다시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01-21

새 번역서, <야바위 게임>이 나왔습니다.

번역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야바위 게임>. 원제는 Rigging the Game입니다. 영어 단어 Rig의 어감을 어떻게 살릴까 하다가 일단 가제를 달았는데, 출판사측에서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책의 저자인 마이클 슈월비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가령 앤서니 기든스처럼 학술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슈퍼스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교수, 훌륭한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야바위 게임>은 미국의 10여개 대학에서 불평등과 관련한 사회학 수업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번역을 위해 책을 꼼꼼히 읽어보니 잘 알겠더군요.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갈고 닦아온 방법론과 화법이 촘촘히 배어들어가 있습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학생들에게 단번에 느끼게끔 하기 위해, 10명을 교실 앞으로 불러내어 종이접시를 나눠주는 것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상위 10%가 종이접시 열 개 가운데 일곱 개 이상을 차지해버리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학생들로서는 집중하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이렇게 학생들의 이목을 잡아챈 후, 수업이 좀 지루해진다 싶으면 마이클 슈월비는 간단한 사례나 우화를 만들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곤 했나봅니다. <야바위 게임>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덕분에 학생 뿐 아니라 번역자 역시 틈틈이 쉬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순전히 '재미'로만 읽을 책은 아닙니다. 또한 저는 이 책의 내용에 백퍼센트 동의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불평등은 제도와 차별, 약탈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술의 발전이나 새로운 지식과 가치의 창출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히 갓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상대로, 주로 경제 영역에서의 불평등에 대해 읽을만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야바위 게임>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블로그에 소개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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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미 에너지국: 이제 세계는 원자력을 청정 에너지로 인식해야 할 때

옮긴이의 말: 미 에너지국(Department of Energy)의 차장인 댄 브리예트가 발표한 게시물을 번역합니다.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energy.gov/ne/articles/it-s-time-world-recognize-nuclear-clean-energy-source 세계는 탈원전과 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불볕더위 속에서 모두 보편적 에너지 복지를 누리며 건강을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세계는 원자력을 청정 에너지로 인식해야 할 때


2018년 5월 21일

금주, 저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9차 클린에너지장관회의(Clean Energy Ministerial)에 참석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전지구적 청정 에너지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과 프로개램을 광범위하게 논의하고 촉진하기 위해 전 세계의 에너지 관련 고위직들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릭 페리(Rick Perry) 미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해 지적했던 바와 같이, "청정 에너지"의 개념 정의에 원자력 에너지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원자력은 탄소 배출량이 적은 순서대로 놓고 볼 때 2위로, 오직 수력발전소만이 원자력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습니다.

만약 세계가 진지하게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싶다면, 각국의 장관들은 모든 선택지를 검토해야만 합니다. 깨끗하고 신뢰도 높은,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인 원자력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NICE 미래 계획

미국, 캐나다, 일본은 원자력 혁신: 청정 에너지 미래 계획(Nuclear Innovation: Clean Energy (NICE) Future initiative)을 출범합니다.

미래의 발전된 청정 에너지 시스템과 혁신을 위한 논의의 장에 원자력이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라 하겠습니다.

혁신적인 원자력 시스템은 전지구적인 탈탄소화(decarbonization)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이 높은 밀도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장비를 포함합니다.

  • 담수화
  • 산업 내에서 사용되는 열 에너지의 처리
  •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의 복합 시스템
  • 유연한 전력망
  • 수소 생산
  • (열, 전자, 화학적) 에너지 저장

NICE 미래 에너지 계획은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12개국 이상이 참가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이 중요한 계획에 다른 국가들도 참여해야 할 때입니다.

원자력의 깨끗한 힘

이미 전 세계 30개국에 449개의 상업용 원자로가 운용중입니다. 종합해보면 이 원자로들은 전 세계 에너지의 11퍼센트 가량을 제공합니다. 그 모든 에너지가 깨끗하고도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99개의 원자로가 전체 전력량 중 20퍼센트를 생산하며, 이는 전체 청정 에너지 가운데 56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원자력 에너지를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미국은 1995년부터 2016년까지 1400억톤 분량의 탄소 배출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30억 대의 차량을 없앤 것과 동일한 효과라 하겠습니다.

다름아닌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청정 에너지를 논의하는 장에 원자력의 설 자리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협력의 힘

트럼프 행정부는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습니다. "찬물 더운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페리 장관이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경제를 발전시키느냐 환경을 보호하느냐 사이에서 양자택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 다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에너지 자원을 동원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접근법은 기술 혁신을 불러오고, 우리의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환경을 보호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자력은 깨끗하며, 신뢰도 있고, 탄력성을 갖춘 에너지원으로서 스스로의 가치를 연이어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클린에너지장관회의에서 원자력을 포함하는 것은 이 기술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일이 될 것이며, 전 세계의 우리 동맹국들에게 효용을 안겨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해 없는 미래를 그리는데 있어서 모든 청정 혁신 기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좋은 미래(NICE Future)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함께 힘써야 합니다.

나이스 미래 계획에 대해 더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댄 브리예트(Dan Brouillette)

댄 브리예트는 미 에너지국의 차장입니다.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에너지와 관련하여 30여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