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전이 지니는 힘과 영향력은 간디뿐 아니라 틸라크 (B.G. Tilak), 오로빈도(Aurobindo),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라다크리슈난(S. Radhakrisnhan) 등 수많은 현대 인도 사상가와 정치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강하게 미쳤다. 사실 『바가바드기타』가 힌두교를 대표하다시피 하는 대중적 경전이 된 것은 19세기의 이른바 힌두 르네상스(Hindu Renaissance)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국의 오랜 식민 통치는 인도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저항과 독립 의식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문화적 각성도 가져왔다. 특히 영국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진 기독교와의 접촉은 인도 지식인들의 힌두교 이해와 개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힌두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선교사들의 공격적 선교에 대해 방어적 자세를 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가 서구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서 비판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따라서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무조건 동일시하던 견해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고유한 종교인 힌두교 사상의 강점을 새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힌두교를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던 부정적 시각을 버리고 그들은 오히려 서구 세계를 향해 힌두교 철학과 종교 사상이 지닌 장점과 매력을 적극적으로 천명하고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에 누구보다도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유명한 비베카난다(Vivekananda, 1863-1902)였으며, 그의 사상 역시 『바가바드기타』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말해서, 현대 힌두교를 만든 것은 바로 『바가바드기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393쪽, 해설]
- 길희성 역주,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10)
가장 평이 좋은 길희성 역주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부산대학교 박효엽 교수가 (당시는 교수가 아니었지만) 쓴 『불온한 신화 읽기』를 읽으니, 현대 힌두교가 지니는 여러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힌두교는 본래부터 다신교에 어떤 종파가 지배하고 있지도 못했다. 일종의 토착 민간 신앙 차원에서 발전이 멈춰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19세기에 '재발명'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약성경마냥 바가바드기타의 지위가 급상승하였고, 크리슈나는 '크라이스트'의 지위에 올랐다.
문제는 카스트 제도. 그 전까지도 인도를 관습적으로 묶어놓던 카스트 제도는 바가바드기타 역시 열렬하게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약성경과 달리 바가바드기타는 '보편 해방의 경전'이 되지 못했다(그렇게 해석하고자 하는 힌두교 신학자 혹은 신도들도 상당히 많은 듯하지만). 결국 카스트 제도는 인도가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고한 종교적, 이론적 기반을 갖게 되었다는 소리.
박효엽의 <불온한 신화 읽기>는 특히 이 지점을 충분한 분량을 동원하여 잘 언급하고 있다(제3장 "『기타』가 폭력을 옹호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바가바드기타』는 인간의 보편적 인식과 윤리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무사 계급'의 특수한 의무를 앞세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 경우 힌두 신화 체계에 강하게 의존하지 않는 한 다수에게 설득력을 지니는 도덕 철학 체계를 이루기가 어렵다.
한국은 '의무'라는 개념이 아예 실종된 사회다. 특히 군복무와 관련된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국방의 의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그러나 『바가바드기타』와 같이 의무 개념을 해석하며, 특수 의무를 보편 의무보다 절대적으로 앞세우면, 그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끔찍한 차별과 배제의 구렁텅이가 되고 만다. 『바가바드기타』를 비롯한 인도 철학을 애호하는 서구의 리버럴 엘리트, 서구 리버럴 엘리트를 흉내내는 한국의 식자층들은, 은연중 자신을 브라만 계급에 대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