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5월 22일 일요일) 막을 내린 권진규 100주년전.
일단 대단히 훌륭한 전시였고, 여러가지 할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 하나.
사람이 하는 말을 믿어줘야 하지만, 누군가 어떤 말을 굳이 반복해서 한다면 그 말과 반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권진규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장인일 뿐'이라고 젊은 시절 일본 가서 조각 배우고 왔을 때부터 그랬다고 전시 초반에 써 있는데, 실제로 걸어온 행보는 그와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 그리고 나무로 만든 불상 모두 그렇다.
그의 예수상은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다. 멀쩡히 교회에서 돈 받고 의뢰 받아서 만든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따로 있는 작품이라는 소리다.그런데 권진규는 그 예수의 머리의 후광을 굳이, 굳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었다.
수레바퀴란 종교에서 어떤 상징인가? 불교의 상징이다. 불교의 法이요, 윤회의 輪이다. 예수 머리의 halo를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도에게 일종의 신성모독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작업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령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정도까지 전국의 여러 성당들은 앞다투어 '상투 틀고 있는 예수'라던가, '색동저고리 입은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같은 성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Roman Catholic'과도 미묘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천주교의 맥락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천주교에서 그런 유형의 성상을 주문 제작할 때에도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권진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돈을 받아서 작업을 할 때도 아주 대놓고 자신의 의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곤조를 밀어붙였다.
나무로 만든 불상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커미션 받은 작품이 아니지만, 종교의 내적 논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작가주의적 의지가 강하게 개입해 있다. 미륵의 관을 썼지만 옷깃과 수인, 결가부좌는 부처의 그것이다. 종교의 문법을 알면서 무시하는 것이다.
권진규의 예술가적 목표가 뭔지, 얼마나 잘 추구하였는지, 뭐 그런 것에 대해 내가 함부로 말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제목에 써두었던 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저 기술자/장인/등등일 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야말로 예술가적 자의식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진정 간도 쓸개도 빼놓고 시키는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런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훌륭한 전시에 쓸데없는 말을 한 마디 덧붙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