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타격이 전쟁도발? ‘총 든 자’가 ‘땅 파는 자’ 이기는 건 당연 [노정태의 시사철][아무튼, 주말] |
노이만의 ‘상호확증파괴’ 전략
일러스트=유현호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미국의 서부. 세 명의 총잡이가 있다.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 엔젤 아이즈(리 벤클리프), 그리고 투코(일라이 월릭). 모두 금이 묻혀 있는 어떤 묘지를 쫓고 있던 중이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블론디와 투코는 나름대로 미운 정이 든 사이지만 덥석 믿을 수는 없다. 엔젤 아이즈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혈한 현상금 사냥꾼. 본인에게 방해가 된다면 주저없이 쏴버리는 성격이다. 주인공인 블론디는 누굴 쏘아서 쓰러뜨려야 할까?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석양의 무법자>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국내에서도 1969년 첫 개봉 이래 TV를 통해 여러 차례 방송된 작품이므로 거리낌 없이 결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블론디는 엔젤 아이즈를 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투코 몰래 투코의 총에서 총알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투코도 엔젤 아이즈를 쐈지만 불발이었고, 엔젤 아이즈는 블론디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총알이 담긴 총을 든 블론디는 투코에게 총을 겨누고, 자신이 아는 진짜 보물의 위치를 파라고 지시한다. “이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지, 친구. 하나는 장전된 총을 가진 자, 그리고 땅을 파는 자. 자네는 파는 쪽일세.”
긴장감 넘치다가도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이 장면은 다른 차원에서도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국제정치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전략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총을 쏘면 나는 죽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총을 들고 너를 겨누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내 총으로 막을 수야 없지만, 너를 죽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지킬 힘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상호확증파괴는 헝가리 출신의 천재 미국 수학자 겸 물리학자인 존 폰 노이만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게임이론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사람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의 핵 정책을 입안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략가이기도 했다. 상호확증파괴는 게임이론에 입각한 전략 분석의 일종이다.
폰 노이만이 볼 때 여러 나라가 핵으로 무장하는 것은 황야의 총잡이들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발사된 미사일의 탄두를 저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1950년대의 기술 수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대가 쏜 핵폭탄을 막을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 이쪽에서도 핵으로 무장하여, 상대가 핵을 쏠 때 마주 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핵무장을 해야 하느냐다. 잔인한 계산을 해보자. 우리 쪽의 도시 열 개가 파괴될 때 상대방은 도시 하나를 잃을 뿐이라면, 상대는 기회가 주어질 때 핵을 쏠 것이다. 도시 하나를 1점이라고 하면 10점을 얻고 1점을 잃어 9점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 핵무장을 할 거면 어중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모든 도시를 한 번에 다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핵을 가져야 한다.
물론 상대방도 우리의 모든 도시를 파괴할 만한 핵무기를 갖출 것이다. 대단히 끔찍하게 들리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퍽 안정된 상황이다. 이제는 핵전쟁을 시작하면 서로 잃을 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핵을 쐈을 때 ‘너 죽고 나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서부극과 달리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핵공격을 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할 것이 너무도 분명해져야 비로소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 역설적 결과를 묘사하고자, 헝가리에서 온 천재는 그 전략의 머리글자를 따 ‘MAD’라는 별명을 붙였다.
앞서 살펴보았듯 상호확증파괴는 그 무서운 명칭과 달리 냉전 시기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 막대한 양의 핵무기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보니 미국과 소련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차례 다가왔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는 말로만 외칠 때가 아니라 전쟁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서로에게 강요할 때 가장 잘 지켜질 수 있다는 역설을 우리는 20세기 내내 확인한 셈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에게는 핵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전에, 준비 단계의 핵미사일 발사대를 선제적으로 ‘반격’하는 것뿐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 1월 12일 “킬체인이라고 하는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 것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순명료한 진리를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송영길 대표가 그렇다. 이재명은 윤석열에 대해 “위험한 전쟁 도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송영길은 한 발 더 나아가 “아베 신조 등 일본 극우세력의 적(敵)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자는 논리와 유사하다”며 친일 딱지까지 붙이려 들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인가, 아니면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의 심기인가?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는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The Bad, The Ugly)’이다. 블론디는 좋은 놈, 엔젤 아이즈는 나쁜 놈, 투코는 추한 놈에 해당한다. 우리는 블론디가 좋은 놈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투코를 속이고 금을 캐게 한 후 골탕을 먹이다가 살려주는 결말을 즐겁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권총에 총알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투코가 할 수 있는 것은 블론디의 선의에 기대는 것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블론디는 장전한 총을 가지고 있는 반면 투코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핵무장은 고사하고 대북 킬체인이나 사드(THAAD) 추가 배치에도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나쁜 놈’이 되지 말자는 원론적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결국 우리를 ‘추한 놈’이 되도록 주저앉히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필자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찬성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세상이 ‘장전된 총을 든 자’와 ‘땅을 파는 자’로 나뉠 때, ‘땅을 파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위치를 허락해도 되는 걸까.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해볼 일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