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2

[노정태의 우물밖 개구리]이명박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난다면 - 온두라스 쿠데타를 보며

이런 상상을 해보자.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상상’임을 확실히 못박아두는 바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제로는 그럴 만한 정치력이 없지만) 한나라당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어, 자신이 연임할 수 있게끔 헌법을 개정하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가 이미 겪어서 아는 바와 같이, 거리에서의 항의 시위나 시민단체 및 야당의 반발 따위로는 그의 의지를 가로막을 수 없다. 급기야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완성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 바로 ‘그 일’이 터져버리는 것이다.

온두라스의 상황이 바로 이렇다. 지난 토요일, 호세 마누엘 셀라야(Hose Manuel Zelaya) 온두라스 대통령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관저의 침실에 들어갔다. 비록 대법원은 대통령이 위법 행위를 했다고 두 차례에 걸쳐 선고한 바 있고, 육군과 해군에서도 직접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셀라야 대통령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복면을 쓴 군인들이 그를 깨우기 전까지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그가 추진하던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예정된 날의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체포되어 파자마 차림으로 코스타리카로 이송된 그는, 쿠데타에 굴하지 않고 세계 각국에 자신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셀라야 대통령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반미주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셀라야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유엔에서도 쿠데타를, 당연한 일이지만,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온두라스 의회는 재빠르게 셀라야 대통령을 ‘전 대통령’으로 규정하고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온두라스 국내의 정확한 반응을 알 수는 없지만, 쿠데타 세력이 고립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 헤럴드경제 6월 29일자 14면.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적법’한 선거에 대한 의혹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란 사태를 살펴보았다. 그 사건을 두고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를 운운하는 것은 상스러운 행동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국민투표를 한다면 개헌에 성공할 수 있고, 헌법을 바꾼다면 대통령직을 연장할 수 있는 ‘적법’한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에 의해 축출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나라의 실제 정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쿠데타를 저지른 군부와 법원에게 어쩌면 더 정당성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일제히 셀라야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번에도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에 달려있는 것이다.

냉전시대가 끝난 이후, 자본주의/민주주의는 ‘외부’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일당 독재는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의 북쪽에 위치한 세습왕정국가도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칭하는 세상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모든 나라의 모든 정치가 다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 아닌 나라가 없다. 정치적 선악을 판단하는 일은 ‘민주주의냐 민주주의가 아니냐’라는 질문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해졌다. 지금 온두라스에서 벌어지는 사건도 바로 그렇다.

원론적으로 따지자면 쿠데타는 반민주주의이고 선거에 의해 선출된 행정부 수반 대통령의 통치는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헌법기관에서 반대하는 개헌을 강행하는 대통령의 통치도 과연 민주적인 것인가? 그따위 국민투표가 벌어지는 일이 과연 민주주의의 이념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민주주의의 ‘외부’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쉽지 않다. 민주적인 절차 혹은 투표를 통해 헌법을 바꾸고 통치하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 민주주의의 보증수표가 된다면, 우리는 나치의 독일 지배를 비난할 수 있는 근거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