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관상술에 대하여.
관상술이 행위라는 현실적 존재를 갖가지 의도나 그밖에 자질구레한 면으로까지 분해하고는 인간의 현실을 나타내는 그의 행위의 결과를 다시금 상정된 존재로 환원하여 당사자로 하여금 현실의 행위를 둘러싼 특별한 의도 따위를 꾸며내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사념을 일삼는 부질없는 노릇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좋겠다. 행위는 저버린 채 머리로 짜낸 지혜에만 의지하여 행동에 수반되는 이성적인 성격을 거부하며 행위보다도 오히려 용모나 표정이 행위자의 실상을 표현한다는 투의 억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응당 그런 부질없는 인간에게도 앞에서와 같이 뺨을 후려치는 편이 나을 듯싶다. 봉변을 당하고 나면 그 부질없는 인간은 얼굴이라는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런 매서운 맛을 봐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될 테니까 말이다. (346쪽, 강조는 인용자)
허영만 화백의 뺨을 후려친 헤겔은 골상학자들을 향해 달려간다.
따라서 만약 어떤 사람에게 "너의 두개골은 이렇게 생겼으므로 너라는 인간(너의 내면)은 이런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곧 두개골이 너라는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관상학에서 그런 판단을 하게 되면 뺨을 후려치는 것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것은 관상학이 떨치는 위세나 지위를 허물기 위하여 단지 부드러운 안면에 가격을 했을 뿐이고, 그렇게 내려친 안면이 정신의 본체도 그리고 정신의 실상도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방식으로 응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뇌를 박살낼 정도의 타격을 가함으로써 뼈라는 것이 인간에게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하물며 그것이 인간의 실상을 진실로 나타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그 당사자의 지능에 어울릴 정도로나마 받아들이게 하는 길밖에 없다. (360쪽, 강조는 인용자)
내가 굳이 이 부분을 따로 정리해둔 이유는 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안심하세요. 저는 칸트를 전공할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두개골은 안전합니다. 저는 님들을 해치지 않아요.
참고문헌
정신현상학 1 - 게오르크 W.F.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한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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