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20대 담론’이 지난 몇 년간 유행했지만 수많은 논의들이 냉소와 한탄으로 끝난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 및 동아시아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급진적 무장투쟁을 통해 체제의 붕괴를 꾀하는 방법론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고 헌법 개정을 이루어내면서 이후 안정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거나 적어도 유의미한 영향을 주려면 결국은 정치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군 입대 전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자유기고가 겸 번역가로 살아가고 있는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해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있다. 혼자 살고 있으므로 부양가족은 없으며,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 집의 세대주이기도 하다. 물론 어찌어찌 생활은 하고 있으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본다면, 백수에 가까운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유사 백수의 모습은, 이른바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않거나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부모와 떨어져 살며, 거주지에 제대로 주민등록을 해서 해당 지역의 투표권을 가진 젊은이의 한 표본이기도 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바로 나와 같은 이런 인원들을 지역가입자로 분류하는데, 그러면 통상적으로 같은 월수입을 얻는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젊은이가 스스로 세대주가 되고 해당 지역의 투표권을 가지고 나면, 어깨 위에 얹히는 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방금 볼멘소리를 하긴 했지만 나는 그 책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첫 주민세를 낼 때 매우 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자체 및 관공서에서 날아오는 몇 종의 고지서를 읽어보고 나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1인 가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호주제는 폐지됐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역가입자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검색 사이트에서 ‘대학가 원룸 시세’를 입력하면 대체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 표준가로 나온다.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산출 방식에 따르면, 가령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원룸에 사는 사람이나, 구하기도 힘든 3000만원짜리 전세에 사는 사람이나, 같은 금액의 임대차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해당 항목에서 동급 판정을 받는다.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젊은이의 입장에서 보지 않더라도, 전자와 후자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리고 필자처럼 미혼인 데다 아직 만 35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정부에서 보증하는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 ‘사람’이 아니라 ‘가구’가 표준 단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생활하는 지역의 유권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단지 소비자에 머물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들이 바로 ‘부재자’, 즉 있지만 없는 자들이다.
서울, 그 중에서도 특정 지역은 젊은이들의 비율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왜 그런 곳마저도 ‘88만원 세대’에서 말하는 ‘바리케이드’ 노릇을 하지 못할까. 그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앞서 나열한 것과 대동소이한 이유로 인해 자신의 실제 거주지 및 활동 반경이 아닌 어딘가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역에 기반한 젊은 세대의 정치가 스스로 싹틀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대학가에는 젊은 주민이 아니라 ‘부재자’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작은 단위의 지자체 선거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 큰 선거에서는 그저 대의명분에 휘둘려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특정 지역을 자신의 표밭으로 삼아 가장 낮은 단위부터 한 단계씩 성장하는 정치인이 나올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부재’하는 상황이다. 이 근본적이고도 제도적인 한계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의 정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3.07.30 21:30: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302130025&code=990100&s_code=ao051#csidx6e5435435c6fe39881b56d6cf1bd1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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