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5

[2030콘서트] ‘박근혜 탄핵’은 없지만

문재인의 대선 패배는 선거 부정 때문이 아니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라 할지라도, 국정원과 기타 조직의 선거 개입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이겼을 것이라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17대 대선에 비해 무려 12%나 솟구친 75%의 투표율을 보며 야권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개표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것이 ‘잠자던 대학생들의 야권 표’가 아닌 ‘정치에 소외되어 있던 50대 이상의 여당 표’임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기업이라는 단 하나의 조직만을 남겨둔 채 그 나머지를 급속히 파괴했다. 우리는 기업 속에서 사장님과 직원이 되고, 기업 밖에서 소비자와 유권자가 될 뿐이다. 이렇게 불안에 빠진 파편화된 개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사회가 우경화된다는 말과 같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실용정부까지 한국의 집권 세력은 새로운 경제적 질서에 부합할 만한 새로운 사회적 구성 원리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유지하는 일에만 골몰해왔던 것이다. 18대 대선의 결과는 바로 그 일관된 정책 방향이 낳은 당연한 업보에 가깝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권력기관들의 선거개입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국정원 직원들은 수백여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아이디와 게시물을 삭제하는 식으로 증거를 은폐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최대한 꼬리를 자르고 말을 바꾸고 증거를 없애가며,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하다. 게다가 이 모든 난국이 진행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끝없는 해외 순방길에서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야권은, 2004년의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그랬듯이,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를 탄핵소추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박근혜를 탄핵해 그 권한을 정지시키고, 현재의 대선개입 문제를 검찰과 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도록 사태를 이끌어갈 수 없다. 이것은 비단 그들이 무능해서뿐만이 아니라,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04년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그해 있을 총선을 앞두고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거나,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등, 선거법 위반의 혐의가 있는 발언들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내놓았다. 바로 그 발언들을 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노무현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내놓았고, 그로 인해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해졌다.

반면 지금은 그와 많이 다르다. 마치 전두환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가 국정원 및 기타 조직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자리에서 혜택을 받을 사람이 직접 그 과정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묘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 박근혜 캠프를 불법적으로 도청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박근혜 본인이 그런 식으로 선거법을 어겼다고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할 수 없다. 그가 직접적으로 선거에 불법 개입했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직도 진행 중인 국정원 여론 개입 사건에 대한 확실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바로 그 ‘시민사회’ 자체가 거의 형해화되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마땅한 정치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권력을 행사하는 조직과 ‘실세’들이 알아서 충성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순방이나 다니는 대통령을 어떻게 다시 정치의 현장으로 불러낼 것인가. 당장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형해화되어 가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해, 정치가 단지 이권 다툼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당위의 문제로 돌아오게 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도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입력 : 2013.11.05 22:27:5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52227535&code=990100&s_code=ao051#csidxf973a1289ce972d83b38ef4785727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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