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의 방문
노영수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깃배에 탔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버티면 용하다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이겨냈다. 휴학을 하고 한 학기에 걸쳐 배를 탔다. 계약된 기간을 다 버티지 못하고 내리면 최저시급에 턱없이 부족한 기본급만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과를 휴학한 복학생 노영수는 그 시간들을 징하게 버텨냈다. 그렇게 번 돈은 316만9000원. 지난 학기 등록금과 똑같은 액수였고, 등록금이라는 것은 매년 치솟는 탓에 2008학년도 등록금인 337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배를 타고 번 돈을 들고 그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학교는 고깃배와 달리, 낙오자의 몫을 남은 사람들이 갈라먹는 그런 잔인한 곳이 아니었다. 노영수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학생 자치 및 교육에 있어서 ‘선’을 넘지 않았다. 2003년에 그가 입학할 무렵 중앙대학교 재단은 가난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해 많은 재정적 지원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영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그 시절을 ‘좋았던 때’로 기억한다.
고깃배를 타고 파도를 건너 돌아온 복학생과 함께 한 기업가가 중앙대학교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는 이사장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형식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CEO가 경영하는 기업처럼 운영되었다고 노영수는 증언한다. 두산에 소속된 회사원들이 학교의 세부사항을 관리했다. 기업화된 대학은 인기 교수 진중권의 해임에 맞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꼼꼼하게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노영수는 마지막 학기에 본인이 속한 독어독문과 학생회장에 당선되지만, 이미 ‘찍힌’ 그의 이름으로는 과대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재단은 통보해왔다. 노영수의 말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마치 두산중공업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수행했던 것과 같은 그런 다양한 기법들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기업가의 방문>은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을 차용한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 귈렌에 차하나시안 부인이 방문한다. 그 노부인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데, 과거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여 배신한 첫사랑 알프레드 일을 누군가 죽인다면 귈렌의 시민들에게 1000억 프랑을 나누어 주겠노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을 못 들은 척하던 사람들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한다. 있지도 않은 돈이 생겼다고 들떠서 씀씀이가 커진 시민들은 결국 알프레드 일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기어이 죽여버린다. 노부인은 약속했던 1000억 프랑을 남겨두고 귈렌을 떠난다. 뒤렌마트의 희곡은 거기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의 방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통제받지 않는 금융과 자본은 결국 파국을 불러올 뿐이라는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해묵은 시장주의의 논리는 오늘도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뒤덮으며 또 다른 ‘기업가의 방문’을 예고한다.
법인화된 서울대학교는 최근 두산그룹의 전 회장 박용현을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동생이며, 중앙대학교의 이사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우리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기업가의 방문>을 꺼내어 한 페이지씩 다시 읽어나갈 뿐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8.12ㅣ주간경향 1088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804161126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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