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김찬호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500원
“박정희가 왜 죽었는지 아냐? 김재규한테는 술 안 따라주고 차지철한테만 따라줘서 총 맞아 죽은 거다.” 이런 이야기를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듣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 자기한테 술을 안 따라준다고 사람을 죽일 수가 있을까? 일국의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이 그렇게 하잘것없는 개인적 감정 때문에 역사의 방향을 바꾸게 될 거사를 저질렀단 말인가?
<모멸감>을 쓴 사회학자 김찬호에 따르면 저러한 ‘민담’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작동하며, 때로는 개인의 감정이 사회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인간의 감정을 중요한 변수로 다루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렬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의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29쪽) 그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저자는 ‘감정사회학’이라는, 기존의 연구 문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영역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아주 무서운 감정인 ‘모멸감’에 초점을 맞추었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은 바로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모욕은 누군가의 자기존재감을 해치는 행위라고 정의한 그는 그 모욕 중에서도 ‘경멸’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모멸감’에 주목한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67쪽)
이렇게 구분짓긴 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는 모욕과 모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가족처럼’ 생각해서 여직원의 엉덩이를 더듬었다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 관리자와 ‘친하니까’ 함부로 말하고 다소 괄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결코 적지 않은 풍토 속에서, 내가 남에게 모욕을 가했다, 혹은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심을 울리고 있는 이른바 ‘압구정동 ㅅ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사모님’으로 흔히 지칭되는 70대의 ㄱ씨는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모멸감을 선사했다.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를 놓고 트집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5층 높이에서 그에게 음식을 던지며 “슛, 골인”이라고 외쳤다는 증언도 있다. 자기 나름대로는 모욕을 주기는커녕 ‘친하니까’, ‘가족같으니까’, 혹은 ‘우리 아파트에서 일하는 머슴 같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작은 모욕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내면이 폭발한다. 때로는 그 사람과 함께 사회 전체가 터져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모멸감을 선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두고 있는 한, 이 구조 속의 우리는 그 누구도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 젠더 감수성, 인권 감수성과 같은 맥락에서 ‘모욕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이대로 모멸의 왕국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 사회에는 지속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노정태 ‘논객시대’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118110207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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