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현재 세계를 가르는 가장 큰 균열은 이른바 ‘게이 디바이드’(gay divide)라 불리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따라 국가들을 분류해볼 수 있고, 그 경우 넘을 수 없는 간극이 관찰된다는 말이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에서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됐거나 되어가는 중이다. 반대로 이슬람국가(IS) 점령지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는 누군가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에 의해 처벌당하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린치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세계는 ‘동성애자 인권’이라는 지표를 두고 반으로 쪼개지고 있는 중이다.
‘게이 디바이드’라고 하지만, 그 격차는 여성 인권을 소재로 삼더라도 거의 동일하게 유지된다. 다시 IS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들은 공공연히 여성을 성노예로 사고팔면서, 그 과정에서 남자들이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국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기꾼을 처벌하기까지 한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동성혼이 법제화되어 있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여성 노예 매매가 합법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간극을, 본인이 소수자에 속하지 않는 이성애자 남자 지식인들은 ‘문화적 차이’로 일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다양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낸다. 젊은 진보, 새로운 진보를 떠받쳐줄 새로운 세대의 지지자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 훨씬 관대하다. 동시에 그들은 명백한 야만과 폭력이 ‘문화적 다양성’의 탈을 쓰고 유포되는 것에 대해 단호한 반대의 뜻을 표한다.
2015년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였던 페미니즘의 부활, 혹은 ‘새로운 페미니즘’의 가시화 역시 그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한 팝칼럼니스트 김태훈 덕분에, 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포함한 여성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팟캐스트를 녹음해놓고도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문제 삼기 전까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개그맨 장동민을 디딤돌 삼아, 사람들은 SNS를 통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며 그동안 한국의 진보 진영이 소홀히 해왔던 가장 큰 사회적 쟁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에는 여성혐오적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 소라넷처럼 단지 언어 표현을 넘어 몰카와 ‘도촬’을 공유하며 강간 모의를 하고 실행에 옮기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그뿐 아니라 적잖은 남성 중심 웹사이트들은 오히려 소라넷을 문제 삼는 여성 커뮤니티들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다시 말해 2015년 이전까지, 진보 진영의 지식인들은 인터넷의 여성 혐오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혹은 눈길이 닿더라도 ‘인터넷 하위문화라서 그렇다’는, 일종의 문화상대론적 입장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너무도 명백하게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정체성 중 일부로 삼는 무장집단이 국가를 참칭하고 있다. 더군다나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눈에 띄게 신장되고 있음에도, 특히 한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를 포함한 사회적 차별이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은 여자들에게 ‘애 낳아서 출산율을 끌어올리라’며 성화를 부린다. 그래놓고는 어린이집 이용 시간을 줄이고,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불이익당하는 것을 방관하며, 취업 및 승진에서 남자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 관행을 묵인하고 있다. 여자, 특히 젊은 여자를 뭘로 보는 걸까? 지금까지 여성들의 불만이 터져나오지 않았던 것이 더욱 이상한 일 아닌가?
올해는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여성혐오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전에는 그냥 참아왔던 것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불편’을 표현한 덕분이기도 하다. 시간은 절로 흐를지 모르지만, 역사는 바로 그렇게, 맞서 싸우는 이들 덕분에 진보한다. 2015년은 페미니즘의 해였다. 이런 움직임이 진보 진영을 넘어 한국사회를 이끄는 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입력 : 2015.12.28 21:36:35 수정 : 2015.12.28 22:11:1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2282136355&code=990100#csidxda5a5459543056bb7b074ed5614c976
덧붙임: 내가 편집국에 보낸 제목은 "2015년, 페미니즘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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