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8

[북리뷰] 지금 당장 전국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창비, 9천8백원.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마치 욕설이나 비하의 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그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범위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만큼 넓어진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개그맨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엠마 왓슨이 유년기를 보낸 영국에서도, 그리고 그러한 서구 제국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도, 여전히 페미니즘은 '불편한 단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12쪽)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듣는 것, 이것은 지구 어디에서나, 인류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 겪게 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멸칭은 때로, 페미니즘을 제외한 다른 논의의 지점에서 스스로의 진보성을 주장하는 남자들에 의해 발화되는데, 이 또한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관찰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 전혀 반대하지 않을 사람들이, '우리는 이 사회에 현존하는 여성차별에 대해 맞서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나이지리아의 소설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TED 강연 대본과, 그 외 두 편의 에세이를 합쳐 묶은 작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필요에 의해 한 번 읽고, 이 서평을 준비하면서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소감이 같다. 표제작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오늘날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해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해야 하는 보편적 인식의 최소한이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능란하게 꿰어내는 본문을 지나 곧장 결론으로 향해보자.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아무리 많은 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부정적 함의를 덧씌운다 한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변할 수는 없다. 스스로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 자신이 억압의 주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기본적 공리인 '모든 사람의 평등'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스웨덴어판은 2015년 12월 출간되었다. '스웨덴 여성 로비'라는 단체는 직후 이 책을 스웨덴의 모든 16세 학생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과 달리 스웨덴은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나라가 아닌 만큼, 이 책은 스웨덴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널리 읽는 단 한 권의 책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바로 이 책이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 역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주변에 권하기를,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활발한 독서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16.03.01ㅣ주간경향 1165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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