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 동문선, 1만원.
1958년부터 1960년까지 피에르 부르디외는 알제리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그의 전공은 사회학이었지만, 알제리대학교에서는 알제리의 카빌 지역 내 전통 사회에 대한 민속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강의했던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책이 바로 <남성 지배>라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남성 지배'라는 현상에 대해 민속학적으로, 혹은 인류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남성 지배',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와 지배를 당연시하는 그 현상은 이른바 "공론(公論)의 모순"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잘못된 일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로 인한 억압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남성 지배 속에서, 그리고 그것이 강요되고 강요받는 방법 속에서 그러한 모순된 순종의 예를 줄곧 보아 왔다."(7쪽)
우리는 이 책의 논의 대상인 알제리의 카빌 지방, 그곳에 살던 베르베르족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남성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강요하고 또 받아들이기 위해 동원했던 논리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카빌 사회에서처럼 성의 질서와 성의 차별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우주를 주관하는 대립의 총체 속에 잠겨 있는 세계에서, 속성들과 성행위들은 인류학적이고 우주론적인 결정들로 짓눌려 있다."(16쪽) 길고 현학적인 문장을 쉽게 옮겨보자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과 같은 비유로 꽉 차 있다는 뜻이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대립에 따른 사물들과 행위들(성적이건 아니건간에)의 분리는 고립된 상태에서는 자의적이지만 높고 낮음, 위와 아래, 앞과 뒤, 오른편과 왼편, 곧음과 구부러짐(그리고 삐뚤어짐), 건조함과 축축함, 단단함과 물렁거림, 간간한 것과 무미건조함, 밝음과 어둠, 바깥(공적인 것)과 안(사적인 것) 등의 동질적 대립 체계 안에 끼워넣어짐으로써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필요성을 부여받는데, 그 중 몇몇 대립은 위와 아래, 올라감과 내려옴, 밖과 안, 나감과 들어옴이라는 신체의 움직임에 상응한다.(17쪽)
남자는 바깥이고 높음이며 밝음, 즉 양(陽)이다. 반대로 여자는 안쪽이며 낮음이고 어두움, 즉 음(陰)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명예로운 일, 여자는 그 남자를 수발하는 일. 이렇듯, 자연계의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에 대입함으로써 인간 사회에서의 남성 지배, 혹은 여성 착취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해왔던 것이다.
이 작지만 단단한 책에서 부르디외는 그러한 통찰 하에 남성 지배의 '인류학적' 특성을 조목조목 고찰한다. 전통사회의 문화와 철학 속에 베어들어 있는 온갖 이분법적 사고를 검토한 후, 그는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남성 지배의 변화 혹은 유지 과정을 대가의 솜씨로 개괄한다. 그 결과 도달하는 중간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보듯 남성성은 두드러지게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다른 남성들 앞에서, 다른 남성들을 위해서, 여성성에 대항하여 여성적인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구축된 개념이다."(78쪽)
이것은 결코 개별 문화권만의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인류 사회가 공유하고 있다. 남성 지배와 여성 억압은 그만큼 보편적인 전근대적 사고 체계에 기반한 현상이었던 셈이다. 1950년대의 젊은 부르디외와 마찬가지로, 2016년의 우리는, 그것의 극복을 사회적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6.09.13ㅣ주간경향 11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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