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6

세계적 작가, 혹은 한낱 '민족 배반 변절자'

. . 그[장혁주]의 이름은 해방 후 임종국이 쓴 『친일문학론』의 한 귀퉁이에 '친일 작가'로 잠깐 거명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작품집 『쫓기는 사람들』과 『소년』이 에스페란토어로 번역되어 폴란드와 체코에서 출간되고, 단편집 『산령(山靈)』이 중국어로 번역·출판된 사실, 그리고 그가 86세 때인 1991년에 인도의 출판사를 통해 Forlon Journey라는 영어로 쓴 장편소설을 출간했던 사실 역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대신에 그는 1952년에 일본으로 귀화함으로써 재일 조선인들로부터 '민족을 배반한 변절자'로만 기억되었다.

김철,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서울: 문학과지성사, 2008), 164p.

바벨의 언어

바벨의 언어


나는 알고 있다
많은 끔찍한 일들은 보편적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

(090427 0455)

2019-07-01

어딘가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한 이야기의 편집본

북한 비핵화는 이제 물 건너갔습니다. 설령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향이 생겨도, 평범한 북한 인민들에게 핵무기란 민족적/국가적 자존심의 상징물이 되었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의 무계획적 충동과 그에 발맞춘 대한민국 청와대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북한 인민들에게 핵무기 보유란, 자신들이 경제 제재를 견뎌가며 얻어낸 일종의 보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하면 한국인들이 좋건 싫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떠올릴 수밖에 없듯, 북한 인민들은 이제 아무리 김정은이 미워도 핵무기에 대해 애증 섞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제 북한의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는 자체 핵무장을 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 것이며, 저처럼 원론적인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한국의 핵무장이 가져올 군비 경쟁의 심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항할 논리가 마땅치 않게 됩니다. 일본도 무장을 가속화해나갈 것이고, 동북아 군비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현 정권의 레토릭과 달리 평화는 더 멀어질 전망입니다.

미국 대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긴 하지만, 이란과 북한은 좋은 반대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란처럼 평화적으로 핵을 내놓으면 더 큰 수모를 당하지만, 북한처럼 핵을 들고 버티면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번개 하자고 하고 와서 사진 찍고 농담따먹기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Rogue States에게 아주 좋은 선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판문점을 통해서건 중국을 통해서건 북한 영토에 잠깐 들어가는 게 어려운 일이어서 지금까지 미 대통령들이 안 하고 있던 게 아닙니다. 해봐야 미국이 얻을 국익 상 이득이 없고, 북한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들어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홍보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정신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아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트럼프가 하고, 한국 대통령이 enabling 하는군요.

실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 역사 속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승자가 아닌 패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북한 인민들도 깨달았겠죠. 90년대 이후 겪은 그 모진 가난과 배고픔이 이 승리를 위한 것이었구나! 굶더라도 핵을 갖길 잘했다! 앞으로 저들이 어떤 감언이설로 꼬드겨도 절대 내놓지 말자! 이런 인식이 깔리면 설령 독재국가라 해도 민의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종결됐습니다. 경제 제재를 백날 천날 해봐야 소용 없고, 만에 하나 전쟁을 해도 애국심 넘치는 북한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핵을 감춰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역사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임을 실감합니다.

'김정은은 핵을 원하지만 인민들은 쌀을 원한다' 같은 한국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본다면, 어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닙니다. 목적 없는 고통입니다. 어제 트럼프의 깜짝 방북으로 인해, 대북 경제 제재를 감내하는 북한 인민들에게도 '경제 제재를 참아야 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트럼프가 북한에 얼마나 큰 승리를 안겨줬는지,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암담할 뿐입니다.

북한 체제의 기본 정당성 원리는 '배는 고파도 자존심을 세워준다'입니다. 한국 대통령을 꾸짖고, 한국 대통령은 찍소리도 못하고, 트럼프와 만나라고 중간에 다리 역할만 해주었으며, 미국 대통령까지 만났는데, 이 모든 것이 핵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북한 체제는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수십만을 굶기건 수만명을 수용소에 보내건 말건, 북한의 내적 붕괴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었다고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이념적/이데올로기적/종교적 장치가 국가의 기층 단위에서 한번 작동하면, 설령 상부구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려도 해당 지역을 평정하고 지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리만치 어려워집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이슬람교에 기반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그것이 기층에서 수용되고 나니, 미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밑에서부터 저항이 들끓고 진압이 안 되는 것을 연상해보시면 될 것입니다. 북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유사종교가 그렇게 된 거죠.

지금까지 한국 경제란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핵우산을 전제로 해도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초기 출범 당시 북한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 주식시장이 쭉 렐리를 했는데, 이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두루 퍼지기 시작하고, (적어도 트럼프의) 미국은 이전처럼 한국을 군사적으로 보호할 의향이 없거나 매우 적다는 것도 잘 알려지고 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어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