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7

인공 작물과 천연 바이러스

우리는 흔히 유전자 조작 식품, 즉 GMO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연에서 수렵 채집한 식품들은 안전하다고 여긴다.

실상은 그와 정 반대다. 지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COVID-19'(한국명 '코로나-19') 바이러스만 봐도 그렇다. 인공은 안전하다. 반대로 자연은 위험하다. '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해 곰곰히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그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왜 위험한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종 중 인류가 최초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간이 경험한 적 없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만약 '코로나-19'가 일각의 낭설처럼 중국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오히려 지금처럼 위험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은 우리, 인간이, 그 세부 내역을 알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해 거의 모른다. 아예 모르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독감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바이러스 뿐 아니라,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교해도 우리의 지식은 일천하다.

여기서 '모른다'는 말은 실험실의 과학자의 눈으로 볼 때 모른다는 뜻도 되고, 인류의 면역계가 그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전자의 지식 부족으로 인해 백신을 만들 수 없고, 후자의 지식 부족으로 인해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신체가 자체적인 면역력으로 극복해내지도 못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코로나-19' 앞에, 무방비 상태다. 마치 서유럽의 뱃사람들이 천연두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때의 북아메리카 원주민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모르는 것은 그것이 방금 '자연'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래 모르던 곳에서 온 모르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자연은 원래 그런 곳이다. 미지의 위험이 가득 도사리고 있는 곳.

논의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보자. 소위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연적인 면역력'이라는 것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자연은 우리가 면역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를, 이렇듯 잔뜩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운 좋게도 아직 그런 것을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농담입니다>그러니, '백신 거부 운동' 벌이는 이들을 지금이라도 일본 앞바다에 떠있는 크루즈 선에 태워주면 어떨까. 그들이 바라는 '백신 없는 세상'은 바로 그곳이니 말이다.</농담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환경 속에서 번창해왔다. 도시를 포함해, 유형 무형의 시설과 제도, 관습과 규율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일개 생물종은 우리가 아는 '인간'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GMO라 불리는, 다들 짐짓 공포의 대상으로 삼는 작물 역시, 인간이 수만년에 걸쳐 다른 종의 DNA에 간섭해온 역사를 더 짧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바꾼 것 뿐이다.

그런 건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익숙하지 않은, 접해보지 않은 날것의 '자연'과 만나는 일은, 여전히 위험하다. '코로나-19'의 위험이 아직 다잡히지 않았고, 공포가 날뛰고 있는 와중에, 한 마디 덧붙여 보았다.

댓글 4개:

  1. 과학 만능주의와 과학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동전의 앞뒤와 같죠.

    사실 그런 미지의 자연을 어떻게든 인간의 영역으로 전환하려던 정신이 선사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를 지탱하던 근간 중 하나였는데, '과학이면 다 된다' 는 (근거없는)믿음이나 '과학이 인간(성)을 말살한다' 는 (근거없는)위기의식이나 너무 감수성이 충만한 것 같아요.

    그 감수성의 영역을 학제적인 영역으로 옮기는 게 학자의 역할인데 요즘 한국에선 찾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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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세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성경에 써있는 내용이 문자 그대로 사실일 거라는 식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아의 방주라던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라던가,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 못할 더 큰 무언가의 은유'로 받아들였다는 거죠. 헌대 빅토리아 시대 들어 인간이 과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자, 성경을 무슨 내셔널지오그래픽 과월호처럼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때 발생한 경향성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과학 만능주의와 과학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건 어쩌면, 말씀하신대로 모종의 감수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을 어떤 사고와 행동의 양식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류의 파괴자 혹은 구원자로 과도하게 공포심을 품고 또 반대로 숭배하는 거죠. 그런 상황을 사람들이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안심시키고 설명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일텐데, 그런 힘든 일을 기꺼이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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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최근에 A형 독감으로 죽다 살아나는 고생을 했던 사람으로서, 타미플루의 존재가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코로나19는 지금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죠.
    제가 회복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10월말부터 2월초 까지 미국 내 1만 4천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한국도 매년 독감 합병증으로 4천명 가까이 사망한다고 하네요. 독감 자체를 사망원인으로 보면 2천명 수준이구요. 미국의 1만 4천명 사망자는 독감 합병증까지 합친 숫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미국이 의료민영화를 시행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병에 걸려도 제때 약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죽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백신을 안맞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 사망자가 많은 것 아닐까 생각해 봐요.
    의사를 만났을 때 제가 백신을 맞아서 발병해도 (원래 백신 맞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겪은 것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데) 그 정도에 그쳤다고 하네요.
    제가 이곳에서 만난 가정은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인데 자연치료를 신봉해서 아이들 백신 맞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백신 안맞아도 독감 안걸리더라며 너무 편하게 얘기하셨어요. 갑자기 뜨악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니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위생, 백신에 대한 계몽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과학에 대한 거부와 자연으로의 회귀와 같은 주장이 공동체의 존립의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곤 하니까요. 작년 뉴욕의 유대교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형 독감으로 죽다 살아나는 고생을 했던 사람으로서, 타미플루의 존재가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에 비해 코로나19는 지금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죠.
    제가 회복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10월말부터 2월초 까지 미국 내 1만 4천명이 독감으로 사망했는데 한국도 매년 독감 합병증으로 4천명 가까이 사망한다고 하네요. 독감 자체를 사망원인으로 보면 2천명 수준이구요. 미국의 1만 4천명 사망자는 독감 합병증까지 합친 숫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미국이 의료민영화를 시행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병에 걸려도 제때 약을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죽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백신을 안맞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 사망자가 많은 것 아닐까 생각해 봐요.
    의사를 만났을 때 제가 백신을 맞아서 발병해도 (원래 백신 맞지 않은 사람들은 제가 겪은 것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데) 그 정도에 그쳤다고 하네요.
    제가 이곳에서 만난 가정은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인데 자연치료를 신봉해서 아이들 백신 맞히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백신 안맞아도 독감 안걸리더라며 너무 편하게 얘기하셨어요. 갑자기 뜨악 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니 서로의 가치관을 인정한다고 해도 기본적인 위생, 백신에 대한 계몽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과학에 대한 거부와 자연으로의 회귀와 같은 주장이 공동체의 존립의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곤 하니까요. 작년 뉴욕의 유대교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홍역 비상상태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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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형 독감이라니,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독감 중 상당수는 인류가 이제 친숙해졌고, 그래서 설령 걸려도 치료가 가능하죠. 반면 지금 새롭게 만난 바이러스는 그런 대응이 (적어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대인데, 사람들이 그 점을 너무 우습게 보고 쉽게 말하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사실 독감 백신 접종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노인들에게는 무료로 놓아주고 있는데도 엄청나게 높지는 않고, 청장년층은 제 발로 병원 가서 맞는 사람 별로 못 봤습니다. 백신 거부 운동 문제는 독감이 아니라 홍역이나 소아마비 같은, 어린 시절에 걸리고 걸리고 나면 낮지 않은 확률로 평생에 걸쳐 그 영향이 남는 질병 때문에 심각한데, 그건 또 '부모가 아동을 자신의 뜻대로 키울 권리'와 '아동이 스스로의 삶을 택할 권리' 같은 가치와 공중보건의 이상이 충돌하는 문제기도 하고요. 정말 세상 일 중 쉬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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