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9

프리랜서: 사교성, 실력, 마감


새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프리랜서: 사교성, 실력, 마감>입니다. 

이 책의 맥락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워크룸 실용 총서'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워크룸 실용 총서'란 마치 실용서인 것처럼 보이는, 하지만 실용서가 아닌, 그래도 어쩌면 실용적인 쓸모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는 총서 시리즈입니다. 

가령 CIA의 사보타주 매뉴얼을 담은 <생활 공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인들에게 배포된 육박전 매뉴얼인 <실전 격투>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용서였지만 실용서가 아니고, 실용서라고 보기 어렵지만 실용서(였)죠. 

<프리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로 10년차도 더 된 프리랜서인 제가, 프리랜서로서의 삶의 태도와 방식, 여러 팁을 전합니다. 실용서입니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가령 <미라클 모닝>이라던가, 뭐 그런 식의 실용서와는 거리가 멉니다. 

가격은 고작 9천원. 전체 분량 182매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용서가 아닌 정도를 떠나, 책의 만듬새만 놓고 보면 시집 같기도 하군요. 편하신대로, 좋을대로, 그렇게 읽으면 좋을 책이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2-05-22

'나는 그저 장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

오늘(5월 22일 일요일) 막을 내린 권진규 100주년전.

일단 대단히 훌륭한 전시였고, 여러가지 할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 하나.

사람이 하는 말을 믿어줘야 하지만, 누군가 어떤 말을 굳이 반복해서 한다면 그 말과 반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권진규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장인일 뿐'이라고 젊은 시절 일본 가서 조각 배우고 왔을 때부터 그랬다고 전시 초반에 써 있는데, 실제로 걸어온 행보는 그와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 그리고 나무로 만든 불상 모두 그렇다.

그의 예수상은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다. 멀쩡히 교회에서 돈 받고 의뢰 받아서 만든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따로 있는 작품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권진규는 그 예수의 머리의 후광을 굳이, 굳이!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었다.

수레바퀴란 종교에서 어떤 상징인가? 불교의 상징이다. 불교의 法이요, 윤회의 輪이다. 예수 머리의 halo를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도에게 일종의 신성모독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작업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령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정도까지 전국의 여러 성당들은 앞다투어 '상투 틀고 있는 예수'라던가, '색동저고리 입은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같은 성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Roman Catholic'과도 미묘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천주교의 맥락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천주교에서 그런 유형의 성상을 주문 제작할 때에도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권진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돈을 받아서 작업을 할 때도 아주 대놓고 자신의 의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곤조를 밀어붙였다.


나무로 만든 불상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커미션 받은 작품이 아니지만, 종교의 내적 논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작가주의적 의지가 강하게 개입해 있다. 미륵의 관을 썼지만 옷깃과 수인, 결가부좌는 부처의 그것이다. 종교의 문법을 알면서 무시하는 것이다.

권진규의 예술가적 목표가 뭔지, 얼마나 잘 추구하였는지, 뭐 그런 것에 대해 내가 함부로 말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제목에 써두었던 것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그저 기술자/장인/등등일 뿐'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야말로 예술가적 자의식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진정 간도 쓸개도 빼놓고 시키는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저런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훌륭한 전시에 쓸데없는 말을 한 마디 덧붙여 보았다.

2022-05-15

19세기 힌두교 르네상스, 바가바드기타, 계급과 차별과 의무

이 고전이 지니는 힘과 영향력은 간디뿐 아니라 틸라크 (B.G. Tilak), 오로빈도(Aurobindo),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라다크리슈난(S. Radhakrisnhan) 등 수많은 현대 인도 사상가와 정치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강하게 미쳤다. 사실 『바가바드기타』가 힌두교를 대표하다시피 하는 대중적 경전이 된 것은 19세기의 이른바 힌두 르네상스(Hindu Renaissance)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국의 오랜 식민 통치는 인도 지식인들에게 정치적 저항과 독립 의식을 고취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문화적 각성도 가져왔다. 특히 영국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진 기독교와의 접촉은 인도 지식인들의 힌두교 이해와 개혁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힌두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선교사들의 공격적 선교에 대해 방어적 자세를 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가 서구에서도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서 비판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따라서 기독교와 서구 문명을 무조건 동일시하던 견해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고유한 종교인 힌두교 사상의 강점을 새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힌두교를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던 부정적 시각을 버리고 그들은 오히려 서구 세계를 향해 힌두교 철학과 종교 사상이 지닌 장점과 매력을 적극적으로 천명하고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에 누구보다도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유명한 비베카난다(Vivekananda, 1863-1902)였으며, 그의 사상 역시 『바가바드기타』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말해서, 현대 힌두교를 만든 것은 바로 『바가바드기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393쪽, 해설]

- 길희성 역주, 『범한대역 바가바드기타』(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10)

가장 평이 좋은 길희성 역주 바가바드기타를 읽고, 부산대학교 박효엽 교수가 (당시는 교수가 아니었지만) 쓴 『불온한 신화 읽기』를 읽으니, 현대 힌두교가 지니는 여러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힌두교는 본래부터 다신교에 어떤 종파가 지배하고 있지도 못했다. 일종의 토착 민간 신앙 차원에서 발전이 멈춰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도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19세기에 '재발명'되었다. 그 과정에서 신약성경마냥 바가바드기타의 지위가 급상승하였고, 크리슈나는 '크라이스트'의 지위에 올랐다.

문제는 카스트 제도. 그 전까지도 인도를 관습적으로 묶어놓던 카스트 제도는 바가바드기타 역시 열렬하게 옹호하고 있었다. 그러니 신약성경과 달리 바가바드기타는 '보편 해방의 경전'이 되지 못했다(그렇게 해석하고자 하는 힌두교 신학자 혹은 신도들도 상당히 많은 듯하지만). 결국 카스트 제도는 인도가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고한 종교적, 이론적 기반을 갖게 되었다는 소리.

박효엽의 <불온한 신화 읽기>는 특히 이 지점을 충분한 분량을 동원하여 잘 언급하고 있다(제3장 "『기타』가 폭력을 옹호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바가바드기타』는 인간의 보편적 인식과 윤리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무사 계급'의 특수한 의무를 앞세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 경우 힌두 신화 체계에 강하게 의존하지 않는 한 다수에게 설득력을 지니는 도덕 철학 체계를 이루기가 어렵다.

한국은 '의무'라는 개념이 아예 실종된 사회다. 특히 군복무와 관련된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국방의 의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그러나 『바가바드기타』와 같이 의무 개념을 해석하며, 특수 의무를 보편 의무보다 절대적으로 앞세우면, 그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끔찍한 차별과 배제의 구렁텅이가 되고 만다. 『바가바드기타』를 비롯한 인도 철학을 애호하는 서구의 리버럴 엘리트, 서구 리버럴 엘리트를 흉내내는 한국의 식자층들은, 은연중 자신을 브라만 계급에 대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2022-05-14

금배지 방패 삼아 숨지 못하게... 나라의 주인들이 회초리 들어야

금배지 방패 삼아 숨지 못하게... 나라의 주인들이 회초리 들어야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성경 속 ‘불의한 청지기’ 비유와
대한민국 최악의 대리인들

옛날에 어떤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집사를 두고 살림을 맡겼다. 그런데 집사가 부자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부자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집사를 불러 해고하겠노라고 통보했다. 당장 쫓겨나게 생긴 집사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곳에서 집사 노릇을 할 수도 없게 된 처지에, 험한 육체노동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사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주인댁 바깥에서 자신을 반겨줄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기름 백 항아리는 쉰 항아리로, 밀 백 섬은 여든 섬으로 깎아주었다. 낭비를 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생긴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도리어 더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그러자 주인은 집사를 불렀다.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이야기다. 옛날 말로 집사를 청지기라고 한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비유가 그렇지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특히 혼란스럽다. 논란의 여지도 많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에게 다른 사람들이 진 빚을 제 맘대로 깎아주고는 도리어 칭찬을 듣는다는 말인가? 성경에는 저 집사 혹은 청지기가 의롭지 못하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런데 왜 예수는 나무라지 않는 걸까?

세속의 학문을 통해 성경의 비유를 이해해 보자. 197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과 로체스터 대학교의 윌리엄 메클링은 본인-대리인 문제, 혹은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를 제시했다. 일을 맡기는 사람과 맡아서 하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경영학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할 수 없다. 계약을 맺어 다른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시켜야 한다. 일을 맡긴 사람이 일의 주인이다. 하지만 일을 더 잘 아는 것은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즉 대리인이다. 주인보다 대리인이 정보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주인에게 불리하고 대리인에게 유리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남에게 일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4시간 감시하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주인은 대리인이 자신을 위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100% 확신할 수 없다. 대리인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이로운지 아닌지, 심지어 대리인이 유능한지 여부마저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업무 파악, 지시, 평가 등에 있어서 대리인은 주인보다 늘 우위를 차지한다.

주인-대리인 문제는 고용 관계, 업무상 계약 관계를 넘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엄마가 심부름을 보내면 아이는 그 돈으로 과자를 사 먹고 싶어진다. 선거철만 되면 굽실거리는 정치인들은 투표 다음 날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다수의 선량한 사람은 양심에 따라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지만,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사회는 대리인 문제로 홍역을 앓는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온갖 사건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000억원, 우리은행에서 600억원,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액수의 횡령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지만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영진이 제대로 감시할 수 없거나 감시하지 않는 틈을 타, 대리인이 주인의 재산을 털고 있는 것이다.

온 나라에 대리인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분명하다. 윗물이 썩었기 때문에 아랫물이 혼탁해진 것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이 벌인 일을 되짚어 보자.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 원전 산업을 누구 한 사람의 고집으로 발목 잡고 주저앉히더니, 멀쩡한 숲을 밀고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도배했다. 우량 기업이던 한국전력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지방대가 문을 닫는 이 시점에 한전공대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마음껏 낭비하고 그 청구서를 주인에게 넘긴 채 떠나버리는 최악의 대리인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재개발 사업에서 건설 회사는 최대한 많은 이익을 남기려 한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사적 이익의 추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재명의 성남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공공 개발을 막고 영리 개발을 허용하며 그 이익을 소수가 독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성남 시민과 대장동 입주민들의 대리인이어야 할 이재명은, 화천대유 일당 중 한 사람인 변호사 남욱의 말을 빌리자면, ‘4천억원짜리 도둑질’의 현장에서 시장 직인을 찍어주고 있었다.

대리인 문제를 원천 봉쇄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행동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주인이 고삐를 다잡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서 대리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 주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 벌어졌을 때, 확실히 적발하고 따끔하게 혼을 내야 대리인 문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은 집사가 자기 재산으로 폭리를 취하는 대신 다른 이들에게 베풀기를 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집사가 돈놀이를 하고 낭비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사람들이 진 큰 빚을 깎아준 것은 어여삐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온 세상의 주인인 예수는 방황하는 어린 양들을 향해, 물질적 손해를 보더라도 영혼의 풍요를 얻으라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이재명은 대장동을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무능이다. 어떤 면에서건 심각한 주인-대리인 문제다. 실패한 정치인, 행정가로서 자숙하며 수사에 협조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대선에서 패배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연고도 없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기상천외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든 것은 물론이다. 현실의 대리인 문제는 성경 말씀처럼 선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방패 삼아 숨지 못하도록,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단호하게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이모 타령’ 코미디 청문회보다 심각한 민주당 반지성주의

‘이모 타령’ 코미디 청문회보다 심각한 민주당 반지성주의


[노정태의 뷰파인더] 상상과 선동에 휩쓸린 문재인 5年

●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 억압”
● 민중 동원하려는 ‘엉터리 지식인’
● 박지현은 무엇이 못 마땅했을까
● 前 당 대표 이해찬의 ‘노론 음모론’


윤석열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 10일 윤석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탄핵 이후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곧장 취임하며 야외 취임식도 생략한 터라, 9년 만에 치러지는 대규모 행사였다. 약 4만여 명의 청중이 모인 앞에서 신임 대통령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취임사를 낭독했다.

행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일각에서 예상한 BTS의 공연도 없었다. 그러나 평범하지도 않았다. 외려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통상적 미사여구로 둘러대지 않았다. 반(反)지성주의라는 과제 앞에 맞서기 위해 자유의 기치를 드높여야 한다는 대통령 본인의 세계관을 분명히 드러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흔치 않은 대통령 취임사였다.

‘그거 내 욕하는 거 아니야?’
윤석열은 대한민국이, 또한 세계가 처한 위기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금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윤석열에 따르면 반지성주의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망가지고 정상 작동하지 않게 됨으로써,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새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면, 일반적으로는 여야를 막론하고 박수를 쳐주고 덕담이나 해주며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단독으로 168석(취임식 날 기준)을 지닌 초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퍽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5월 11일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한 반지성주의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5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박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를 겨냥해 “비판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했다. [뉴스1]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우리는 민주당이 못 마땅해 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박지현은 5월 11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민주주의 위기 원인은 반지성주의라 규정하고 비판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민주당은 ‘반지성주의? 그거 내 욕 하는 거 아니야?’하고 화를 낸 셈이다.

‘발끈하는 걸 보니 찔리나보다’는 식으로 유치하게 굴 생각은 없다. 또한 박지현의 지적에는 일부 타당한 면이 없지 않다. 게다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드러났다시피, 민주당의 구성원 중 일부가 심각한 지성의 결여를 보여준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반지성주의를 논하는 데 있어 결정적이거나 중요하지 않다. 반지성주의란 흔히 말하는 ‘무식함’이나 ‘교양 없음’과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반지성주의의 본래 의미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국의 정치 역사상 가장 반지성주의를 심각하게 드러낸 정당은 민주당이며, 그 기간은 지난 문재인 정권 5년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저작권자, 美 역사학자 호스스태터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란 민주주의나 자유주의, 공산주의처럼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용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용어다. 그 저작권자는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로, 1970년 세상을 뜰 때까지 컬럼비아대에서 교편을 잡은 인물이다.

호프스태터가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를 펴낸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이듬해 퓰리쳐상을 수상하게 된 이 책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바는 분명하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을 되짚어보며, 다시는 그런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호프스태터에게 미국의 반지성주의란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당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국인의 삶 전반(American Life)에 반지성주의의 싹이 심어져 있고, 특정한 조건과 계기가 맞아떨어지면 그것이 매카시즘 광풍과 같은 형태로 터져 나온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왜일까? 미국은 구대륙 즉 유럽에서 박해 당하던 신교도가 이주해 만든 나라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평범한 일상 언어로 번역하고, 사제가 해석해줘야만 했던 신의 말씀을 보통 사람들이 직접 읽고 해석하는 것이 종교 개혁이었다. 천 년 넘게 이어져온 지적 권위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신대륙 이주민들은 구대륙에 비해 반(反)제도적이고, 영성적이며,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신대륙의 광막한 자연 속에서 원시주의와 신비주의적인 분위기 역시 문화적 풍토의 한구석에 자리매김하게 됐다.

방금 말한 내용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다. 구체제의 모순이 심화하고 대중과 지식인의 괴리가 커질 때, 적절한 반지성주의는 대중과 지식인 양쪽에 건전한 자극을 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대중적 에너지를 악용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다.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반지성주의자는 사실 ‘민중’이 아니라 민중을 동원하려는 ‘엉터리 지식인’일 때가 많다.

일본의 양심적, 실천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우치다 다쓰루는 호프스태터의 작업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2010년대 중반 일본에서 급속도로 퍼진 극우 운동을 파헤치는 작업에 돌입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뜻을 함께하는 필자들의 원고를 모아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를 펴냈는데, 그 중 직접 쓴 첫 번째 원고인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에서 호프스태터의 책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자의 가장 유력한 적은 어정쩡한 교육을 받은 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반지성주의자는 통상 사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종종 진부한 사상이나 알려지지 않은 사상에 홀려 있다. 반지성주의에 빠질 위험이 없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 한편, 한결같은 지적 정열을 결여한 반지식인도 거의 없다.”

이 대목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반지성주의가 지니는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40대와 50대 남성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학력자이며 사회적으로 명성을 지닌 지식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 해서 반지성주의에 면역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정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과 그 구성원 및 지지층은 반지성주의에 취약하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친일 독재 부역 세력’이라는 프레이밍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다!” 이 또한 민주당이 집권하던 5년을 특징짓는 정치 구호 중 하나다. 국민의힘, 그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등을 ‘친일 독재 부역 세력’ 등으로 프레이밍한 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듯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대중 동원 논리였다.

호프스태터의 논의를 21세기에 이어받은 우치다 다쓰루가 볼 때, 이렇듯 맥락도 시대감각도 없이 과거의 적을 상정하고는 그것을 현재에 이어붙이는 행태야말로 반지성주의와 파시즘의 중요한 징표다. 반대로 지성적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나는 시간 속에서 차츰 진리성이 익어 가는 언명을 가리켜 ‘지성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음모론자들처럼 이것저것 자기 입맛에 맞는 ‘팩트’는 열심히 수집하고 끼워 맞추지만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반지성주의자들은 때로 다수의 지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동시대에 적지 않은 찬동자를 얻는다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것을 사회적, 공공적인 가설이라고 못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구조적으로 결여된 것이 있으니, 바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반유대주의자였던 에두아르 드뤼몽의 사례를 제시한다. 에두아르 드뤼몽은 고대 로마 이후 19세기 말까지도 유대인들이 흑막 너머에서 유럽을 지배해왔다는 음모론에 심취했다. 음모론을 퍼뜨리며 대중적 인기를 만끽했다. 유대인들이 유럽을 지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뿐 아니라, 고대와 중세, 근대, 현대는 모두 다른 시대라는 것을 단번에 무시해버리는 ‘무시간성’의 사고방식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1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미래시민광장위원회 출범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그는 2019년 인터뷰에서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신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과 그 지지층에 광범위하게 퍼진 이른바 ‘역사의식’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를 들먹이지만 시간성이 없다. 과거에 어떤 나쁜 일을 저지른 악당 집단이 있는데 그들이 계속 오늘날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원초적이고 상투적인, 대중소설 같은 상상력에 끌려 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우리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2019년 인터뷰에서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 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에두아르 드뤼몽이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빠져 선동했듯, 이해찬은 이른바 ‘노론 음모론’을 진심으로 믿고 있거나, 본인은 믿지 않아도 남들이 그렇게 믿기를 바라고 있다. 민주당의 지도부 또는 지지층 중 목소리 큰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에게 ‘역사 공부를 더 하라’고 손가락질하고 함성을 치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의 행태다.

국민의힘도 잘 난건 없지만…
국민의힘과 그 전신인 보수정당 역시 반지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힘이 강했을 때, 공산주의를 추종하지 않지만 사회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이들을 대거 ‘빨갱이’로 몰았다. 호프스태터가 비판한 매카시즘의 광풍과 다를 바 없던 행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8대 대선 당시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등의 움직임은 있었으나 앞으로도 지속적 반성과 자기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오늘날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다. 그들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하고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을 통해 완성된 대한민국을 긍정하지 않는다. 대신 상상 속의 통일된 민족국가를 추구하며 반일 선동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적 담론을 갱신해야 하는 이유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5-13

동맹과 보험

우크라이나가 지금 나토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는 전쟁중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가입국이 전쟁하면 자동 참전하게 되어 있는데, 당장 나토가 러시아와 전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토는 군사 동맹이며, 함께 전쟁을 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우크라이나는 나토가 나토이기 때문에 나토에 가입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암보험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보험은 병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지만, 정작 병에 걸려 있거나 질병 이력이 있거나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은 보험 가입을 제한당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결론: 한미동맹, 있을 때 잘 하자.

참고기사: "나토 가입, 핀란드·스웨덴은 되고 우크라는 안되는 이유", 뉴시스, 2022-05-13

2022-05-07

‘검수완박’이 개혁? 근현대사 공부부터 하라

[노정태의 뷰파인더] 검찰은 왜 경찰을 감시·견제·통솔했을까

● 사건 당 처리 기간·미처리 사건↑
●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
● ‘원수’ 이토 히로부미의 사법 개혁
● ‘박종철 사건’과 ‘형제복지원 사건’
● 도저한 역사적 흐름에서의 퇴행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월 3일 오후 2시. 원래 10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한 차례 연기된 국무회의가 열렸다. 공식적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 퇴임 기념 오찬 때문이었으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일각에서는 이 기습적 검수완박이 결국 문재인·이재명 지키기 말고는 목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등 문재인 정권 및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관련한 사건의 경우 경찰 선에서 덮어버릴 가능성을 만드는 쪽으로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결과
4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회의 개의 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장혜영 정의당 정책위의장(오른쪽 두 번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물론 의혹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그리고 그에 찬동한 정의당의 진짜 의도를 단언할 수야 없다. 평범한 국민이 받는 피해는 예정돼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9월 통과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과 그에 따른 시행령이 2021년 1월 1일부로 시행되면서 국민들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이다.

일단 사건 당 처리 기간이 길어졌다. 2017년에는 경찰이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데 평균 44일이 걸렸다. 2021년에는 62일로 늘어났다. 기간이 늘어난 만큼 확실하게 마무리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해 경찰은 2011256건의 사건을 접수했는데, 그 중 246900건(12.27%)을 처리하지 못했다. 열 건 중 한 건 이상이 미처리 상태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경찰의 미처리 사건 총량과 그 비중은 2017년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였다. 2021년 1월 1일 이후로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뛰었다. 2020년에는 2058268건 가운데 184966건으로 8.98%가 미처리 사건이었던 반면, 2021년에는 2011256건 가운데 246900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단순 계산으로도 6만 건이나 미처리 사건이 늘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단 경찰의 업무 부담이 매우 커졌다. 게다가 검찰은 이전처럼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지 못한다. 대신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만 있다. 지휘와 요구 사이에는 강제성 면에서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경찰은 실제로 업무 부담에 짓눌리거나, 업무 부담을 핑계로 곤란한 사건을 속된 말로 ‘뭉개고’ 앉아있을 수 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적 미래, 한 두 사건의 처리와 달리, 이런 장기적 흐름을 예상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시선을 반대로, 과거로 돌려보자. 검찰이라는 제도, 검사라는 공직자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서 시작해, 근대 사법 제도가 도입되던 무렵,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거쳐 공권력과 시민사회의 관계가 재정립되어 나가던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수령·이서배 탐학”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속담이 있다. 현대 한국인은 저 속담을 실제 권한을 가진 사람보다 그 권한을 대리해 행사하는 자가 더 위세를 떠는 경우가 있다는, 일종의 은유로 받아들이곤 한다. 애석하게도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말은 그저 담백한 사실의 표현이었다.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100년을 조금 넘긴 시점만 해도,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정말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서운 세상에 살았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났다. 그 전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었다. 일본이 1906년 설치한 통감부는 조선을 사실상 지배·통치했다. 초대 통감은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 훗날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다.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대대적 사법 개혁을 단행했다.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추진한 사법 개혁이니 좋은 일이었을 리 없다는 단견은 잠시 접어두자. 놀랍게도 통감부가 추진한 사법 개혁은 조선의 기층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것이야말로 이토 히로부미의 ‘큰 그림’이기도 했다. 조선의 사법 제도가 워낙 가혹하면서도 엉망진창이던 탓에, 사법 제도의 근대화를 이루는 것만으로도 식민 통치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 이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한국 근대 형사재판제도사’(푸른역사)에서 이 역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06년 이후 일본의 통감부 설치와 그에 뒤이은 한국 병합은 군사적 강점에 기초한 침략 행위지만, 어찌 보면 이러한 한국 민중의 고통과 개혁 열망에 편승한 침략이었다. 갑오개혁기에 이루어진 근대적 개혁 조치들이 아관파천 이후 폐기 또는 수정되었으나 일본의 통감부 설치 이후 다시 복원되고 더욱 강력한 힘으로 시행되면서 한국민들로 하여금 일말의 기대를 걸게 했기 때문이다.”(머리말, 9쪽)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민족 의식’이 형성되기 전이다. 다른 나라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보다 나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조선의 사법 제도가 엉망이고, 갑오개혁을 통해 자기 쇄신을 이루지도 못해서다. 앞서의 책을 좀 더 읽어보자.

“조선 후기 이래 형사재판제도는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왔지만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 첫째, 인민의 범죄를 최일선에서 수사하고 재판하는 수령·이서배들의 탐학이 억울한 재판을 야기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수령들은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부족하여 재판 과정을 이서배들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형방 아전 등 이서배들이 자의적으로 재판 과정과 판결을 좌우하고 있었다.”(102쪽)

조선 민중이 일제 개혁을 환영하다?
4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개혁 합의파기 윤석열 국민의힘 규탄’ 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원님보다 아전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은유나 속담이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 그랬다. 뇌물을 바치고 그 자리에 오른 고을 원님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의 내막이나 진상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누가 원님이 되건 형방, 아전, 기타 등등 수령 주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이서배, 즉 양반은 아니지만 관의 일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들이 실세였고, 백성을 괴롭히는 주범이었다. 그들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으며 필요와 욕구에 따라 억울한 사람을 잡아 가두고 사건을 뒤틀었다.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일부 암행어사들은 수령의 비리를 고의적으로 눈감아 주거나 아예 그들에게서 뇌물을 받고 함께 민에 대한 수탈에 나서기까지 하였다.”(103쪽)

조선의 민심을 얻기 위해 사법 개혁에 나선 통감부는 한국 정부로 하여금 19071223일, ‘재판소구성법’ ‘재판소구성법시행령’ ‘재판소설치법’을 제정하게 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한데, 비로소 행정과 사법의 분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지방의 행정관인 수령, 즉 원님이 재판까지 했다. 갑오개혁 이후에도 바뀌지 않던 체제다.

일본은 고등고시를 합격한 일본 현직 판검사를 한국에 발령 보냈다. 한국인 중에서도 기존 경력자, 일본에서 유학하여 법학을 공부한 자, 변호사 시험 합격자, 법관양성소 졸업생 중 재판 사무 경력이 있는 자들을 선별하여 판검사로 임명했다. 판사뿐 아니라 검사라는, 행정부에 소속돼 있지만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근대적 제도가 도입됐다.

조선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앞서 말했다시피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일단 대한제국 스스로가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화 첫 삽을 떴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 못 한 일’을 일본의 손을 빌어 완수한다는 논리 구성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기존 시스템이 지닌 문제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다. 가혹할 뿐 아니라 합리성과 예측가능성을 결여한 조선의 사법 시스템은 기층 민중이 일제 지배를 받아들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인 판검사가 한국의 재판기관을 장악해 감에도 불구하고, 군수·관찰사의 불공정한 재판에 피해를 받아왔던 지방민들과 중앙의 상급재판소의 폐해를 목도해 왔던 지식인들은 신재판소 개청, 민형사 재판 관련 신규 법령 실시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표명하고 통감부의 ‘시정 개선’ 사업 중 괄목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444쪽)

오늘날 기준에서 보자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의 관점을 상상해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활개 치는 폭력과 불의를 국가 권력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 심지어 공권력이 불법적 폭력 단체를 감싸고 비호하며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할 때, 국가는 지배 정당성을 급격히 상실하고 만다.

“당시는 우리가 깡패였다”
자유당 정권 말기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으며 민족 의식이 싹텄고, 6·25전쟁을 통해 국가적 정체성까지 수립된 상황이었으나, 사법 체계는 국민의 생활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자의적이고 엉성했다. 폭력 조직과 경찰의 유착은 심각했다. 흔히 ‘서청’으로 통하는 서북청년단이 북한 실향민을 중심으로 한 반공 폭력을 담당했다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거나 실제로 기여했던 민족주의자들 역시 해방 후 제도권에 흡수되지 못한 채 외곽 폭력 단체를 결성하고 ‘합법적 권력의 불법적 지배’에 기여했다.

일본 호세이대 방문강사인 존슨 너새니얼 펄트는 현대 한국의 역사를 조직폭력 역사와 아울러 고찰한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현실문화)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 책에서 펄트가 인용하는 바, ‘스네이크 김’이라 불리던 방첩대장 김창룡은 다른 조직의 우두머리 고희두를 고문하다가 죽였는데, 그 고희두의 역할에 대해 미군 방첩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고희두는 원남동 동회장이며 민보단 동대문구 단장이고 동대문 경찰서 후원회장이며 사법 보호위원회 회장이었다. 이런 직함은 그의 명함에 적힌 것이다. 고희두는 동대문 경찰서 관할의 청계천변에서 장사하는 노점상 대표였다. 그는 수천 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다. 어떤 면에서 동대문과 청계천의 통제권을 장악한 자는 서울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여겨질 수 있다.”(54쪽)

여러 가지 달라진 점이 있지만, 억압과 수탈의 대상이 되는 평범한 국민 처지에서 보면 구한말과 자유당 정권 시절은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눈에 띄었을 것이다. 1961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역점을 둔 것도 바로 그런 ‘비국가 범죄 집단’을 드러내고 소탕하는 것이었다. 펄트에 따르면 “1961년과 1963년 사이 박정희의 지배 아래 경찰은 조직적 활동으로 범죄 집단의 일원 약 1만3000명을 체포했다.”(54쪽) 대중은 열렬히 환영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이야기해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박정희와 군사정권이 발휘한 국가 폭력 체계가 그 자체만으로 정당성을 지닌다는 뜻이 아니다. 민간의 폭력과 어지럽게 뒤섞인 최악의 경우보다는 나은 차악을 대중에게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 초의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군사정변을 일으켰다는 결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견제 받지 않는다면 당연히 한계가 뒤따른다. 펄트는 자신이 ‘백인 남성’인 이유로 다양한 이들을 만나 솔직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인정하는데, 한 전직 경찰 인터뷰 내용이 이채롭다.

“나는 경찰관 응답자에게 왜 박정희의 권위주의 시기와 전두환 정권의 초기에 깡패들이 이용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꽤 단호하게 ‘당시는 우리가 깡패였다’고 대답했다. 달리 말해 그들은 그런 폭력을 행사하는 비국가 집단들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즉 외양적 민주주의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질서를 세울 철권이 있었다.”(162쪽)

군인이 권력을 잡고 경찰을 ‘국가의 깡패’로 동원하는 체제는 중산층의 성장 및 민주화운동을 통해 허물어졌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조직이 다름 아닌 검찰이다. 영화 ‘1987’에서 잘 묘사했다시피 군부 정권의 수족과 다름없던 경찰은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했으나, 검찰은 동의하지 않았다. 행정부 소속으로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경찰과 달리, 검찰은 조직상으로는 행정부 소속이나 사법부이기도 하며, 검사 개개인이 1인 기관으로서 권한을 지니고 있다. 박종철 사건이 폭로되면서 철통같던 군사독재도 무너졌다.

2022년 검찰이 빼앗긴 ‘수사개시 권한’ 역시 군사독재 시절의 해악을 중화하는데 적잖은 기여를 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1986년,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의 김용원 주임검사가 사냥을 하러 나왔다가 형제복지원이라는 기이하고도 거대한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노동 착취를 목격하고, 스스로 사진을 찍어 증거를 수집한 후, 법원의 영장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밝힌 경우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지역 유지로서 경찰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수사 단계부터 특혜를 받으며 온당한 처벌을 피해왔다는 비판이 지금껏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입법 폭주
검찰이 모든 수사를 직접 관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해방 후 70여 년간 한국의 법치주의가 꾸준히, 경찰의 힘을 검찰을 통해 감시·견제·통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온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이유가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한국인들은 공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하거나 토호 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에 설령 일제에 의해 근대적 사법 제도가 도입되는 상황일지라도 바람직한 개혁이라면 손을 들어주는 편을 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도저한 역사적 흐름으로부터의 퇴행으로 기록될 것이다.

모든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권력의 몽둥이’라는 식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구한말처럼 권력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자유당 정권 시절처럼 사적 폭력과 공적 폭력의 구분이 애매해지거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중앙 권력이 경찰 조직을 틀어쥐고 국민을 쥐락펴락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그럴 때 법치주의는 뿌리부터 썩고 만다. 검수완박의 폐해를 최소화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