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이 쓴 <완벽에 대한 반론>을 읽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책. 명확한 지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괜찮은 논증을, 하버마스로부터 빌려와 잘 썼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더 나은 아이를 '선택'해서 출산하는 행위를 미국의 주류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옹호하는데, 그에 대한 반발이다.
같은 주제를 논하면서 하버마스는 '우리가 아는 자유의 개념은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전제되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주 멀리 보면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의 연장이고, 가깝게는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의 '던져짐' 개념을 빌려왔던 것의 연속성 위에 있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진보'라 여겨지는 미국의 고학력 리버럴 계층은, 자신을 닮았는데 여러모로 능력이 탁월한 아이를 통해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매우 큰 듯 하다. 반면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아이는 신이 주신 선물이며 꽝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는 보수적 가치를 옹호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구 사회를 지배하던 기독교적 가치(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한 죄인이며 죽을 때는 다 똑같다)로부터 벗어난 중국계 이민자에 의해 '글로벌 대리모 서비스 앱'이 출시되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쌓아나가야 한다.
다시 샌델의 책으로 돌아와보면 이 아이러니가 더욱 도드라진다. 20세기 자유주의 철학자의 대명사인 하버마스의 입을 빌어, 21세기에 가장 잘 팔리는 공동체주의 철학자가, 21세기 미국의 '리버럴'들을 공격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201n년이니까요!' 같은 말은 정말 아무 쓸모가 없다.
-2019년 5월 5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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