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6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정신이 물질을 이기지 못할 때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슬픈 전시다. 푸틴이 전쟁을 시작한 후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4월 중순으로 예정된 전시를 앞당겨 종료하네 마네 하는 맥락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차원이 아닌 내부 맥락만 놓고 보더라도,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서글퍼지는 전시다. 물질적 영역, 다시 말해 현실에서의 공허와 빈곤을 정신으로 승화시켜 극복하고자 하던 이들의 발버둥은, 결국 초라한 물질적 형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가령 그 유명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보자. 도판이나 화면상의 이미지로 접할 때와 달리, 실물을 보면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보존 상태가 너무 나쁘기도 하고, 이전에 '물질'적 측면에서 너무 작품이 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미술 작품은 실물을 볼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좋은 의미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유화가 그렇다.

그러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그 역사적 의의나 화면상의 이미지에 익숙한 채로 들어가 실물을 보면 실망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물감, 캔버스, 기타 여러 측면에서, 작품을 통해 '초라함'을 느끼고야 말았던 것이다.

물질적 에너지와 풍요의 과잉이 낳은 정신주의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가 빈곤하고 빈약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살 수밖에 없는 변방인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택하지만 본인은 내가 정말 이걸 원해서 택하고 있다고 자기 기만을 거듭하는, 그런 정신주의랄까.

우리 현대 한국인, 특히 20세기 출생자들은 그 변방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변방인이 어떤 성취를 이루거나 개인적인 행복을 달성하고자 할 때, 변방적 특질과 줄타기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그래서 최근 1960-1970년대생들이 '눈떠보니 선진국 이얏호' 꼴값을 떠는 게 우려스러웠으나, 그들 대부분은 민주당 지지자이며, 정권을 뺏겼으니 이제 그들은 다시 헬조선 타령을 할 것이다. 이런 정치 과몰입 또한 변방성의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변방의 인간들이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제대로 설명을 못 하겠는데,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라는 것은 러시아 문학과 마찬가지인, 그런 맥락을 놓고 보면 잘 이해된다는 뜻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은 좋은 전시라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가 아니라 '러시아'에 방점을 찍고 보면 분명히 그렇다.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법칙 중 가장 슬픈 법칙인 '원판 불변의 법칙'을 뼈저리게 가르쳐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왜 사회주의라는 서구 사상의 뉘앙스 대신 뭔가 토속적이고 구린 느낌 일색인가? <러시아 아방가르드>전 1부에 등장하는 여러 그림들을 보던 나는 왠지 그 뿌리가 결국은 러시아적 향토성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걸 떨쳐내고 좀 어케어케 해보려던 머리 좋고 예민한 자들은 소련이 된 러시아에서 살지 못해 망명하거나(칸딘스키), 소련에서 두 번이나 간첩죄로 체포되는 등 고초를 겪다가 일찍 죽었다(말레비치).


이 전시에서 가장 큰 감명을 준 작품은 따로 있다. 알렉산드르 티실레르가 그린 <장애인들의 시위>다. 야만적인 나라에 사는 이가 그 야만성을 직시할 때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있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각별하게 느껴진 건, 물론 어제 오늘 내가 경험한 어떤 맥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4월 17일까지 예정되어 있으나 언제 휙 돌아가버릴지 모르는 전시.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입장료 2만원, 전시기간중 휴무.

댓글 3개:

  1. 잘 읽었습니다. 보통 전시를 보면 좋았던 점에 대해 구구절절 쓰인 글이 많은데, 물질적 빈곤이 어떻게 예술 작품의 실질적인 표현력과 보존 상태에 한계를 주었는지 설명하며 시작해서 새롭네요.
    보통은 전시장에 들어서면 별로인 것도 좋아보이기 마련이던데. 저는 그랬습니다.

    제가 20대였을 땐 인사동에 무료로 개방한 작은 미술관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도 그림을 사가지 않는 그 작은 전시장에서 작가들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싶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작가에게 이 그림이 혹시 이런 것을 표현하냐고 해맑게 물었던 저는 돈이란 한 푼도 벌어본 적 없는 학생이었죠.
    적당히 그림이 팔려야 하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단 돈 천원이라도 내야 그들의 예술 활동이, 그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는 줄 몰랐지요.


    러시아에 대해서는 특히 올림픽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조직적으로 행해질 때마다 옛 소련 시절, 그 전에도, 인간의 신체를 체제 유지를 수단으로 활용한 지 너무 오래 된 사회다 보니 제 시각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요.
    정부 주도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약물 주입은 물론 큰 문제이나, 동시에 그 사회의 시민들은 그런 시도가 얼마나 심각한 지 자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리 큰 문제를 삼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건 제가 진짜 관심을 가지고 그 사회의 여론을 살펴본 적이 없어서일 지도요.

    본문을 읽으면서 '야만적인 나라에 사는 이가 야만성을 직시할 때' 라는 부분을 읽고 떠올린 것은 장애인들의 시위가 아닌,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처럼 대단히 우수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기계처럼 다루는 그들의 전통(?) 혹은 시각입니다.
    결국 야만적인 사회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에게도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야만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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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을 지금 봤습니다.

      '작은 전시회'를 열고 누가 오긴 할까 기다리는 작가의 마음. 사실 그건 저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뭔가 창작을 하는 이들이라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림은 특히 소비되는 영역이 크지 않고, 재료비가 들고, 아무튼 글쓰기보다 '현실의 무게'가 무겁죠.

      러시아는 유럽을 동경했지만, 유럽의 인권이나 기타등등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일은 언제나 주저했습니다. 심지어 유럽을 지향하던 나름 깨어있다는 엘리트층도 그랬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동병상련과 타산지석을 오가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듯합니다.

      '야만'이라는 단어에서 러시아의 도핑 문제 등을 거론해주셔서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생각을 더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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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제가 한국의 사회 분위기를 글로만 읽다 보니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 있음을 이 댓글 남긴 날 잠깐 생각하고 알았습니다. (저는 외국에 거주 중인 사람입니다.)

      분명히 야만성은 신체적으로 아주 뛰어난 사람을 체제 홍보 수단으로 삼는 경우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이동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더 야만성이 극대화 되지요.

      러시아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표트르 대제는 네델란드에서 유학하며 러시아가 부강해지는 데 대해 관심을 갖었다 하고, 예카테리나 황제는 독일 출신인데 러시아 역사에 족적을 크게 남긴 것으로 압니다. 특히 교육쪽에 힘쓴 것으로 다큐에서 보았습니다. 그러한 개별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확실히 러시아는 유럽 대륙과 일부러 선을 그었던 것인지 가치관, 문화, 사람들이 별로 섞이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네요.

      그럼 언젠가 칼럼을 통해 이 전시회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노정태 님의 견해를 읽기를 바랍니다. 재미있게(?) 푸실 것 같아요.
      그럼 건필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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