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 거주하는 피지배층이 진정 이 땅에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살아가는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근 인터넷의 집단지성에 의해 그것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로 압축되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에는 영어가 쓰이지 않았으므로, 한양을 향해 질주하는 일본군을 피해 자기 집안 위패를 싸들고 도망가던 선조를 바라보던 조선의 백성들이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취지의 분노와 원망의 언어는 다양한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영어를 알았다면 ‘헬조선’을 부르짖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병자호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외적이 북쪽에서 내려온 탓에 임금에게는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만주로 도망치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다가 항복을 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침략자들에게 집단으로 납치되었다가 그 중 일부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던 남자들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역시 용어만 없다 뿐이지 ‘헬조선’이었던 것이다.
‘헬조선’의 역사는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대한민국이 시작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북한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지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실제로 침략이 개시되자 그는 누구보다 민첩하게 도망길에 올랐고, 모두가 다 알고 있다시피 한강 철교를 폭파하며 자신의 도주로를 확보했다. 폭파되는 다리 위에서 목숨을 잃은 800여명의 국민들,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발이 묶인 수많은 국민들에게 과연 이 나라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겠는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나 일관되게 ‘헬조선’이었을 따름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나는 한마디로 단정짓지 못하겠다. 하지만 ‘헬조선’은 그 성격이 매우 뚜렷하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나라, 그것이 바로 ‘헬조선’의 본질이다. ‘윗분’이 되면 아무 판단이나 함부로 내려도 된다. 반면 당신의 신분이 ‘아랫것’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심지어 자신이 내리지도 않은 결정 때문에 덤터기를 쓰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령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 사태를 되짚어보자. 애초에 문제의 씨앗을 뿌린 것은 MBC다. 소품으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와서 쯔위의 손에 쥐여주지 않았다면 그런 논란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생중계 영상이 나왔고, 그것을 중국의 누리꾼들과 대만 가수 황안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 가수를 보호해야 할 차례 아닐까 싶었는데, 그들은 초췌한 모습의 쯔위를 앞세운 사죄 동영상을 내보냈다. ‘어떻게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가수에게 저런 짓을 시킬까’ 놀랍지만, 다시 말하건대 ‘헬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 기업들이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대통령이 이렇게 팔을 걷어붙이자 총리부터 공직자들이 줄줄이 서명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들까지 충성 경쟁에 나서는 추세다.
법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헬조선’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윗분들’은 이 법이 필요하지만, 그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는 확고한 의사의 표현이다. 만약 이렇게 해서까지 법을 바꿨는데 경제가 안 살아나면 그건 서명운동에 참여한 1000만명의 국민 때문이지, 죽었다 깨어나도 박근혜 탓은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권한과 책임이 따로 노는 ‘헬조선’에 대한 거부 선언이기도 하다. 국가, 기업, 기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윗분들’이 책임을 지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입력 : 2016.01.24 20:13:11 수정 : 2016.01.24 20:27:3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242013115&code=990100#csidxb078053b773fd869c67a2dbeaf0f6e7
2016-01-24
2016-01-14
[북리뷰] 남자가 페미니즘 서적을 읽는다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현실문화연구, 8500원
'아직 우리의 수준은 근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섯불리 탈근대를 논한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할 무렵 많은 이들이 비판해왔다. 여성주의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해, 그리고 올해에 이르기까지, 일부 지식인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광경을 보는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다각도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것을, 프라이버시부터 생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층위에서 안전을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새해가 밝아온 후에도 똑같은 사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개탄을 넘어 계몽으로 나아가보자. 심사숙고 끝에 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고전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꺼내들었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적어도 말 한 마디라도 덧붙이고 싶은 남자가 있다면, 가장 첫 번째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미국에서 1985년 처음 출간되었다. 2001년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1995년에 출간된 개정판이다. 10년이 지난 후 개정판이 나왔고, 그 후로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운동가로서의 나는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데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독자들 대부분이 이 책의 내용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느낀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15쪽)
여기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말하는 바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가 초판을 발행한 1985년과 달리, 1995년에는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페미니즘 혹은 성 정치의 논의 대상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여성'이라는 단일한 젠더 범주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지는 것이 당대의 지적 경향이었다는 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은, 1985년에는 남성들이 지배하던 지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1995년에는 다각화된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도전과 반발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2016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에게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가장 먼저 권하게 된다. 이 책은 복잡한 이론적 논의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여성차별의 쟁점들로 들어간다. 넓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 페미니즘 잡지 <미즈>에 실렸던 글을 모은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의 페미니즘 이론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와 정 반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주의 내의 다양한 입장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입구로 삼는 편이 낫다. 3세대 페미니즘이 극복하려 했던 2세대 페미니즘의 논의가 무엇인지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여성주의 내부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여성주의 내에도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는 문장을 달달 외우지 말고, 차라리 '화이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트랜스젠더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트랜스젠더: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라?"를 읽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실천이면서 동시에 이론이다. 실천을 위한 이론이고,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론의 언어에 친숙한 남자들이 책 한 권 달랑 읽고 여자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남자들이여, 일단 구구단부터 떼고 나서 미적분을 논하기로 하자.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 좋은 출발점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현실문화연구, 8500원
'아직 우리의 수준은 근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섯불리 탈근대를 논한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할 무렵 많은 이들이 비판해왔다. 여성주의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해, 그리고 올해에 이르기까지, 일부 지식인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광경을 보는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다각도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것을, 프라이버시부터 생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층위에서 안전을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새해가 밝아온 후에도 똑같은 사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개탄을 넘어 계몽으로 나아가보자. 심사숙고 끝에 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고전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꺼내들었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적어도 말 한 마디라도 덧붙이고 싶은 남자가 있다면, 가장 첫 번째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미국에서 1985년 처음 출간되었다. 2001년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1995년에 출간된 개정판이다. 10년이 지난 후 개정판이 나왔고, 그 후로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운동가로서의 나는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데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독자들 대부분이 이 책의 내용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느낀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15쪽)
여기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말하는 바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가 초판을 발행한 1985년과 달리, 1995년에는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페미니즘 혹은 성 정치의 논의 대상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여성'이라는 단일한 젠더 범주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지는 것이 당대의 지적 경향이었다는 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은, 1985년에는 남성들이 지배하던 지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1995년에는 다각화된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도전과 반발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2016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에게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가장 먼저 권하게 된다. 이 책은 복잡한 이론적 논의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여성차별의 쟁점들로 들어간다. 넓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 페미니즘 잡지 <미즈>에 실렸던 글을 모은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의 페미니즘 이론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와 정 반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주의 내의 다양한 입장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입구로 삼는 편이 낫다. 3세대 페미니즘이 극복하려 했던 2세대 페미니즘의 논의가 무엇인지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여성주의 내부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여성주의 내에도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는 문장을 달달 외우지 말고, 차라리 '화이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트랜스젠더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트랜스젠더: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라?"를 읽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실천이면서 동시에 이론이다. 실천을 위한 이론이고,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론의 언어에 친숙한 남자들이 책 한 권 달랑 읽고 여자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남자들이여, 일단 구구단부터 떼고 나서 미적분을 논하기로 하자.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 좋은 출발점이다.
2016.01.26ㅣ주간경향 1161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1-01
독서 목록(2015)
독서 목록(2015)
- 20150107 - 사이먼 레이놀즈, 최성민 옮김, 함영준 부록, 『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서울: 작업실유령, 2014)
- 20150114 - 슈테판 츠바이크, 안인희 옮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서울: 바오, 2009)
- 20150121 - James Finn Garner, Politically Correct Bedtime Stories (New York: Souvenir Press, 2011), second edition.
- 20150122 - 클라우스 슐리히테, 이유경 옮김,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서울: 현암사, 2010)
- 20150129 - 김태일,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3)
- 20150205 - 로빈 터지, 추선영 옮김, 『감시 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서울: 이후, 2013)
- 20150212 - 폴 크루그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뉴트 깅리치, 아서 래퍼, 양상모 옮김, 『부자가 천국 가는 法』(서울: 오래된생각, 2015)
- 20150215 - 박창환, 『성경의 형성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 20150226 - 브누아트 그루, 백선희 옮김,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서울: 마음산책, 2014)
- 20150305 - 김영란, 김두식 지음,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경기도 파주: 쌤앤파커스, 2013)
- 20150305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김도현 옮김,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서울: 책세상, 2010)
- 20150318 - 캐스 선스타인, 이시은 옮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5)
- 20150319 - 옌스 죈트겐, 크누트 푈츠케 엮음, 강정민 옮김, 『먼지 보고서』(서울: 자연과생태, 2012)
- 20150326 - 이순미,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 - 싱가포르가 이룬 부와 교육의 비밀』(서울: 도서출판리수, 2010)
- 20150328 - 아즈마 히로키 외, 양지연 옮김,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서울: 마티, 2015)
- 20150402 - 헨리 샌더슨, 마이클 포시드, 정삼기 옮김,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서울: 매일경제신문사, 2014)
- 20150403 - 어반 코믹스 엮음, 이규원, 소민영 옮김, 『배트맨 앤솔로지』(서울: 세미콜론, 2015)
- 20150409 - 마르잔 사트라피, 김대중 옮김, 『페르세폴리스 1: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서울: 새만화책, 2005)
- 20150409 - 마르잔 사트라피, 김대중 옮김, 『페르세폴리스 2: 다시 페르세폴리스로』(서울: 새만화책, 2005)
- 20150409 - 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서울: 메디치, 2015)
- 20150410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제1부』(서울: 세미콜론, 2012)
- 20150411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제2부』(서울: 세미콜론, 2015)
- 20150411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제3부』(서울: 세미콜론, 2015)
- 20150412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제4부』(서울: 세미콜론, 2015)
- 20150412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도련님』의 시대 제5부』(서울: 세미콜론, 2015)
- 20150414 - 후루이치 노리토시,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서울: 민음사, 2014)
- 20150416 - 바바라 골드스미스, 김희원 옮김, 『열정적인 천재, 마리 퀴리』(서울: 승산, 2009)
- 20150416 - 노다 마사아키, 서혜영 옮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서울: 펜타그램, 2015)
- 20150418 - 모리 오가이, 권태민 옮김, 『아베 일족』(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1)
- 20150504 - 알랭 쉬피오, 박제성, 배영란 옮김, 『법률적 인간의 출현』(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5)
- 20150514 - 조엘 바칸, 윤태경 옮김, 『기업의 경제학』(서울: 황금사자, 2010)
- 20150514 -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5)
- 20150520 -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경기도 파주: 창비, 2015)
- 20150521 - 폴 콜리어, 김선영 옮김, 『엑소더스 - 전 지구적 상생을 위한 이주 경제학』(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4)
- 20150603 -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페스트』(서울: 책세상, 1991)
- 20150605 - 명지대학교중동문제연구소 기획, 김종도, 정상률, 박현도, 안정국 옮김, 『사우디아라비아 통치기본법』(서울: 모시는 사람들, 2013)
- 20150608 - 편집부 지음, 최보연 일러스트,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경기도 파주: 프로파간다, 2015)
- 20150618 - 주제 사라마구, 정영목 옮김, 『눈먼 자들의 도시』(서울: 해냄, 1998), 개정판 2002.
- 20150629 - 대니얼 J. 레비틴, 김성훈 옮김, 『정리하는 뇌』(서울: 와이즈베리, 2015)
- 20150702 - 루이-조르주 탱, 이규현 옮김, 『사랑의 역사: 이성애와 동성애 그 대결의 기록』(서울: 문학과지성사, 2010)
- 20150703 - 새뮤얼 헌팅턴, 형선호 옮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서울: 김영사, 2004)
- 20150707 - 데이비드 핼버스탬, 정윤미, 이은진 옮김, 『콜디스트 윈터』(경기도 파주: 살림, 2009)
- 20150708 - 전인권, 『남자의 탄생』(경기도 파주: 푸른숲: 2003)
- 20150708 - 위르겐 하버마스, 윤형식 옮김, 『아, 유럽 - 정치저작집 제11권』(경기도 파주: 나남, 2011)
- 20150712 - 이황, 『공항 르포르타주』(경기도 파주: 북퀘스트, 2012)
- 20150715 - 알렉시스 드 토크빌, 김영란, 김정겸 옮김, 『토크빌의 빈곤에 대하여』(서울: 에코리브르, 2014)
- 20150724 - 김충식, 『남산의 부장들』(서울: 메디치미디어, 2012), 개정 증보판.
- 20150724 - 오쓰카 에이지, 선정우,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서울: 북바이북, 2015)
- 20150724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서울: 민음사, 2015)
- 20150725 - 와타나베 쇼이치, 김욱 옮김, 『지적생활의 발견』(경기도 고양: 위즈덤하우스, 2011)
- 20150801 - 토마스 키스트너, 김희상 옮김, 『피파 마피아』(경기도 파주: 돌베게, 2014)
- 20150808 - 존 브래드쇼, 한유선 옮김, 『캣 센스』(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5)
- 20150809 -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지식의 단련법』(서울: 청어람미디어, 2009)
- 20150817 - 강준만, 『새뮤얼 헌팅턴 - 미국 패권주의와 백인 우월주의를 위한 음모』(서울: 인물과사상사, 2015), 시사만인보 58, ebook.
- 20150817 -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서울: 사회평론, 2004)
- 20150818 - 고종석,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경기도 고양: 로고폴리스, 2015)
- 20150820 - 우에노 치즈코, 나일등 옮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서울: 은행나무, 2012)
- 20150821 - 일본경제신문사 編, 이종구 박사 감수, 이재경 역, 『만화 세미나 일본경제 I』(서울: 소학사, 1992)
- 20150822 - 벨 훅스, 양지하 옮김, 『사랑은 사치일까?』(서울: 현실문화연구, 2015)
- 20150824 - 엘리자베스 워런, 박산호 옮김, 『싸울 기회』(경기도 파주: 에쎄, 2015)
- 20150824 -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이현철 옮김, 『맞벌이 부부의 경제학』(서울: 한언, 2006)
- 20150825 -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주익종 옮김, 『중산층의 함정』(서울: 필맥, 2004)
- 20150827 - 바바라 터크먼, 이원근 옮김, 『8월의 포성』(서울: 평민사, 2008)
- 20150829 -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서울: 청어람미디어, 2008)
- 20150831 - 로빈 스턴, 신준영 옮김, 『가스등 이펙트』(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 20150907 -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옮김, 『자기만의 방』(서울: 민음사, 2006)
- 20150909 - 욤비 토나, 박진숙, 『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서울: 이후, 2013)
- 20150916 - 마라 비슨달, 박우정 옮김, 『남성 과잉 사회』(서울: 현암사, 2013)
- 20150917 - 박점규, 『노동여지도』(서울: 알마, 2015)
- 20150918 -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여성의 종속』(서울: 책세상, 2006)
- 20150920 - 정재원, 『숨겨진 빈곤: 여성의 빈곤은 어디로부터 오는가?』(서울: 푸른사상, 2011)
- 20150920 - 장림종, 박진희,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서울: 효형출판, 2009)
- 20150921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노옥재, 엄연수, 윤자영, 이현정 옮김, 『이갈리아의 딸들』(서울: 황금가지, 1996)
- 20150925 - 글로리아 스타이넘, 양이현정 옮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서울: 현실문화연구, 2001)
- 20150926 - 토니 주트, 조행복 옮김, 『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 20150927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서울: 교양인, 2013), 개정증보판, 초판 2005.
- 20150929 - 앤디 위어, 박아람 옮김, 『마션』(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5)
- 20151004 - 스콧 애덤스, 고유라 옮김, 『열정은 쓰레기다』(서울: 더퀘스트, 2015)
- 20151004 - 최경봉, 『우리말의 탄생』(서울: 책과함께, 2005)
- 20151005 - 데이비드 몰리, 조준일 옮김, 『국경 없는 의사회』(서울: 파라북스, 2007)
- 20151019 - 프란츠 폰 리스트, 심재우, 윤재왕 옮김, 차병직 해제, 『마르부르크 강령』(서울: 강, 2012)
- 20151021 - 루돌프 폰 예링, 윤철홍 옮김, 『권리를 위한 투쟁』(서울: 책세상, 2007)
- 20151028 - E. H. 카, 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서울: 까치, 2015), 개역판.
- 20151103 - 양창수, 『민법입문』(서울: 박영사, 2015), 제6판. 초판 1991.
- 20151108 - 제임스 워드, 김병화 옮김, 『문구의 모험』(서울: 어크로스, 2015)
- 20151111 - 마거릿 헤퍼넌, 김성훈 옮김, 『경쟁의 배신』(서울: RHK, 2014)
- 20151118 - 타일러 코웬, 송경헌 옮김, 『거대한 침체』(서울: 한빛비즈, 2012)
- 20151118 - 미셸 우엘벡, 장소미 옮김, 『복종』(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15)
- 20151128 - 조지 프리드먼, 김홍래 옮김, 손민중 감수, 『넥스트 디케이드』(경기도 파주: 쌤앤파커스, 2011)
- 20151201 - 로빈 월쇼,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옮김,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서울: 일다, 2015)
- 20151205 - 토니 주트, 김상우 옮김, 『지식인의 책임』(서울: 오월의봄, 2012)
- 20151212 - 선우훈, 『데미지 오버 타임 1』(서울: 유어마인드, 2015)
- 20151212 - 선우훈, 『데미지 오버 타임 2』(서울: 유어마인드, 2015)
- 20151216 - 마크 라이너스, 이한중 옮김, 『6도의 멸종』(서울: 세종서적, 2014), 초판 2008.
- 20151216 - 미하엘 유르크스, 김수은 옮김,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서울: 예지, 2005)
- 20151217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원작, 다윈 쿡 그림, 임태현 옮김,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헌터』(서울: 시공사, 2014)
- 20151227 - 이정모, 『달력과 권력』(서울: 부키, 2015), 초판 2001.
- 20151231 - 아툴 가완디,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체크! 체크리스트』(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10)
2015-12-30
참고도서를 찾으면 도서관에 있었다
불행히도 내가 사랑하는 본이란 도시에는 너무나 많은 도서관이 있다. 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있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립도서관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달력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미진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참고도서를 찾으면 어김없이 도서관에 있었다. 수메르와 로마의 달력에 관하여 1800년대에 출판된 책들이 글자체만 현대적으로 바뀌어 재출간된 것을 비롯하여 달력에 관한 수십 종의 책을 동네의 조그만 시립도서관이 갖추고 있는 것이다. 본에 없는 책은 사서에게 부탁을 하면 다른 도시에서라도 구해서 가져다 주었다. 생태생화학을 연구하는 필자가 전공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달력'에 관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독일의 우수한 도서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책이 나오기까지 가장 큰 도움을 준 본의 도서관에 감사의 말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이정모, 『달력과 권력』(서울: 부키, 2015), 초판 2001. 6쪽.
내가 아래와 같은 트윗을 올리자 '인터넷에서 논문 찾아보는 법 모르시나 봅니다'라고 빈정거리던 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위에 인용한 문단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록 삼아 남겨둔다.
도서관에서 스스로를 방목해보면 알 수 있어요. '교과서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공부'를 하려고 해도 그만큼 충분한 문헌이 쌓여있지 않다는 것을. 학문의 대부분이 외국에서 건너왔고 다 번역도 안 된 나라에서 공부를 하려면, 교과서부터 파야 합니다.
— JeongtaeRoh (@JeongtaeRoh) December 18, 2015
학부 시절 한 교수님의 말. '독일에서는 학문을 하는 게 수영장에 뛰어들어서 수영을 배우는 건데, 한국에서는 남이 수영하는 비디오를 보면서 자세를 잡아보는 수준밖에 안 된다.' 창의성 타령만 하지 말고 도서관에 가봐요 좀... 책이 없음 책이...
— JeongtaeRoh (@JeongtaeRoh) December 18, 2015
한국에서 해당 대학 도서관밖에 이용할 수 없는 학부생이, 단기간에 노력으로 시험범위 내에서 (많은 경우 유학을 다녀온) 교수보다 더 폭넓은 문헌을 읽고 그 내용을 정리해낼 수 있나? 학생의 능력 이전에 책과 논문이 없다니까.
— JeongtaeRoh (@JeongtaeRoh) December 18, 2015
2015-12-29
[북리뷰] 북한의 새해는 우리보다 늦게 온다
달력과 권력
이정모, 부키, 1만2800원.
새 해가 시작되는 이맘때, 달력은 일상 속의 사물을 넘어 하나의 사유 대상이 된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은 인위적으로 단절되고 그것이 하나의 개념들을 이루어내며, 그 개념의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하고 구성한 사물이 바로 달력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본에 체류중이던 생화학자 이정모는 도서관에서 독일의 과학 잡지 <게오(GEO)>를 펼쳐들었다. 1999년 1월의 일이다. 새로운 천년이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전 세계가 들떠있던 시절이다. '지난 천년은 총 며칠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본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윤년 규칙을 조합해 답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그가 내놓은 정확한 계산보다 열흘이나 적었다. "율리우스 달력과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윤년 규칙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열흘이나 틀린 것이다."(5쪽) 그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독일의 공립도서관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참고 문헌의 바다를 헤엄치며, 달력의 과학적 측면 및 그에 얽힌 사회 문화 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달력과 권력>이 탄생하게 한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로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19쪽) 정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없었고, 그 누구도 물건을 사고 팔지 않았다. 아무도 농사짓고 밥짓고 집짓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칙령에 의거해, 그동안 사용하던 율리우스(카이사르) 달력의 오차를 바로잡고자 열흘을 통째로 빼버린 탓이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유럽의 열흘. 그것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 유럽을 거쳐 당시까지 사용되고 있던 율리우스 달력의 오차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력과 계절이 맞지 않았다. 그 결과 농사에 지장이 왔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춘분을 기점으로 삼아 계산하는 부활절의 날짜 또한 맞지 않게 되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삼는 온갖 기독교 행사들의 날짜가 어그러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유럽은 제 시간을 되찾았고, 기독교를 믿는 유럽이 세계를 재패하면서,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오늘날 세계의 표준 달력이 되었다.
<달력과 권력>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쉬운 책이다. 율리우스 달력을 거쳐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확정되기까지의 문화사가 책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을 차지한다. 이후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혁명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담아 만든 달력들을 소개하고 그 실패를 곱씹어본다. 그러나 이후 온갖 고대 문명의 달력들과 조선 세종때 만들어진 칠정산 등을 소개하는 대목으로 넘어가면 책의 구성에 일관성이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력을 개혁하려던 온갖 시도들이 그 뒤를 잇는데,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책의 탄력은 이미 떨어진 상태가 되어버린다.
북한의 새해는 우리보다 30분 늦게 밝는다. 최근 시차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달력을 만들고 공표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본질 중 하나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시간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니 말이다. <달력과 권력>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첫 번째 책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과학 교양 저자들이 시간과 힘의 문제를 다뤄주면 좋겠다.
2016.01.12ㅣ주간경향 115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정모, 부키, 1만2800원.
새 해가 시작되는 이맘때, 달력은 일상 속의 사물을 넘어 하나의 사유 대상이 된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은 인위적으로 단절되고 그것이 하나의 개념들을 이루어내며, 그 개념의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하고 구성한 사물이 바로 달력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본에 체류중이던 생화학자 이정모는 도서관에서 독일의 과학 잡지 <게오(GEO)>를 펼쳐들었다. 1999년 1월의 일이다. 새로운 천년이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전 세계가 들떠있던 시절이다. '지난 천년은 총 며칠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본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윤년 규칙을 조합해 답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그가 내놓은 정확한 계산보다 열흘이나 적었다. "율리우스 달력과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윤년 규칙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열흘이나 틀린 것이다."(5쪽) 그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독일의 공립도서관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참고 문헌의 바다를 헤엄치며, 달력의 과학적 측면 및 그에 얽힌 사회 문화 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달력과 권력>이 탄생하게 한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로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19쪽) 정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없었고, 그 누구도 물건을 사고 팔지 않았다. 아무도 농사짓고 밥짓고 집짓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칙령에 의거해, 그동안 사용하던 율리우스(카이사르) 달력의 오차를 바로잡고자 열흘을 통째로 빼버린 탓이다.
1582년 10월의 로마 달력에는 5일부터 14일까지가 빠져 있다. 하지만 이 달력은 잘못 인쇄된 것이 아니다. 또는 못된 폭군이 재미 삼아 백성들에게 어처구니없는 달력을 강요한 것도 아니다. 이 달력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한 달력으로, 제대로 된 달력이었다. 어쨌든 이 달력에 따라 사람들은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들어 다음 날인 금요일 10월 15일 아침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20쪽)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유럽의 열흘. 그것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 유럽을 거쳐 당시까지 사용되고 있던 율리우스 달력의 오차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력과 계절이 맞지 않았다. 그 결과 농사에 지장이 왔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춘분을 기점으로 삼아 계산하는 부활절의 날짜 또한 맞지 않게 되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삼는 온갖 기독교 행사들의 날짜가 어그러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유럽은 제 시간을 되찾았고, 기독교를 믿는 유럽이 세계를 재패하면서,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오늘날 세계의 표준 달력이 되었다.
<달력과 권력>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쉬운 책이다. 율리우스 달력을 거쳐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확정되기까지의 문화사가 책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을 차지한다. 이후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혁명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담아 만든 달력들을 소개하고 그 실패를 곱씹어본다. 그러나 이후 온갖 고대 문명의 달력들과 조선 세종때 만들어진 칠정산 등을 소개하는 대목으로 넘어가면 책의 구성에 일관성이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력을 개혁하려던 온갖 시도들이 그 뒤를 잇는데,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책의 탄력은 이미 떨어진 상태가 되어버린다.
북한의 새해는 우리보다 30분 늦게 밝는다. 최근 시차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달력을 만들고 공표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본질 중 하나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시간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니 말이다. <달력과 권력>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첫 번째 책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과학 교양 저자들이 시간과 힘의 문제를 다뤄주면 좋겠다.
2016.01.12ㅣ주간경향 115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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