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 문명의 전환
전인권·정선태·이승원 지음·이학사·1만8000원
정치학자 전인권에게는 꿈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정치사상사의 관점에서 밝혀내고, 이 나라가 직면한 제반 상황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그를 병마가 덮쳐왔고, 전인권의 미완성 원고를 그의 동료인 정선태와 이승원이 이어받았다.
<1898, 문명의 전환>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왕조의 신민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거듭났던 그 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ㅔ>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주체는 3·1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대한국민이다. 그렇게 새로운 나라를 만든 주권자들은 부정과 독재로 얼룩진 이승만 정권을 쫓아냈고, 빈 틈을 노리고 들어온 군부에 잠시 권력을 내줬지만, 기어이 승리를 거두어 대통령 직선제 민주 헌법을 이룩해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대한국민은 3·1운동을 통해 이 나라가 독립국가임을 천명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오개혁이 시작된 것은 1894년이고, 3·1운동은 1919년이다. 불과 25년 만에 조선의 신민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우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전인권은 역사학계의 통념에서 벗어나 한 매체와 그 매체로 인한 정치 운동에 주목한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고문 자격으로 돌아온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의 주도로 시작된 후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만민공동회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의 순한글신문으로 띄어쓰기를 도입하여 혁신적으로 가독성을 끌어올린 <독립신문> 덕분에 새로운 공론장이 탄생했다. 말하고 읽고 쓰게 된 조선왕조의 백성들은 광장에 모여 밤을 새가며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한 끝에, 상호 간에 평등하며 근대적인 정치 체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으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협회의 주체가 비교적 소수의 엘리트였다면, 만민공동회는 대중들이 이끌어간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정치운동”(169쪽)이었다. 하지만 기존 역사학계는 민중주의 사관에 집중한 나머지 동학농민운동을 주요 사건으로 되새기면서 만민공동회를 다소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새로운 매체와 광장에서의 모임을 통한 새로운 정치의식의 출현. 전근대사회의 신민에서 근대사회의 시민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그 중대한 의미를 병상에 누워 정선태와 이승원에게 남길 유언을 녹음하던 전인권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역시 문명의 전환이 왜 1898년이냐, 1876년 개항일 수도 있고, 김옥균이 쿠데타 한 때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근대의 출현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의 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대중들이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고, 과거 백성들과 신민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새롭게 호명되면서, 균질화된 혹은 동질화된 그 자격을 가지고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는 이 형태.”(304쪽)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광장’의 체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성공하고, 가끔은 실패했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정치적 주체화의 도저한 흐름 말이다. 우리의 문명은 바로 지금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한다.
2016.11.29ㅣ주간경향 12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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