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독서 목록(2025)

  1. 250218화 - 박한슬. 『숫자 한국: 오늘의 데이터에서 내일의 대한민국 읽기』(서울: 사이언스북스, 2025)
  2. 250224월 - 빌 에디. 박미용 옮김. 『그는 왜 하필 나를 괴롭히기로 했을까?』(경기도 고양: 갈매나무, 2018)
  3. 250227목 - 빌헬름 딜타이. 이한우 옮김. 『체험·표현·이해』(서울: 책세상, 2002).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024. 리디북스.
  4. 250322토 - 용수. 신상환 옮김. 『근본 중송』(서울: 도서출판 b, 2022). B판고전 21.
  5. 250324월 - 지그문트 프로이트. 강영계 옮김. 『쾌락 원리의 저편』(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0374.
  6. 250331월 - 범천. 가연숙 사진. 『불교논리학의 향연』(서울: 불교시대사, 2016)
  7. 250524토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문형준 옮김. 『아포칼립스』(서울: 도서출판 b, 2022)
  8. 250611수 - 임마누엘 칸트. 이한구 옮김. 『영구 평화론 - 하나의 철학적 기획』(경기도 파주: 서광사, 2008). 개정판.
  9. 250622일 - 손민석.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서울: 마인드빌딩, 2025)
  10. 250710목 - 리처드 오스본. 보린 반 룬 그림. 윤길순 옮김. 『사회학』(서울: 김영사, 2001). 하룻밤의 지식여행 6.
  11. 250712토 - 프란스 드 발. 장대익, 황상익 옮김.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서울: 바다출판사, 2018). 개정판.
  12. 250723수 - 스티븐 위트. 백우진 옮김. 『엔비디아 젠슨 황, 생각하는 기계』(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25)
  13. 250726토 - 아투로 E. 허낸데즈. 방진이 옮김. 『제대로 연습하는 법』(서울: 북트리거, 2024)
  14. 250727일 - 살만 루슈디. 강동혁 옮김. 『나이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24)
  15. 250809토 - 전용덕. 『식민지 근대화의 실상』(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5)
  16. 250817일 - 에드워드 콘즈. 배광식 옮김. 『불교의 길』(경기도 파주: 뜨란, 2021)
  17. 250817일 - 에드워드 콘즈. 최필영 옮김. 『위없는 지혜: 금강경·반야심경 해설』(서울: 사유수, 2025)
  18. 250817일 - 헨리 제임스. 김진욱 옮김. 『에스펀의 러브 레터』(서울: 생각하는 백성, 2000)
  19. 250828목 - 로라 베이즈. 성원 옮김. 『인셀 테러』(서울: 위즈덤하우스, 2023)
  20. 250912금 - 크세노폰. 오유석 옮김. 『경영론·향연』(서울: 부북스, 2015)
  21. 250925목 - 이선 크로스. 왕수민 옮김. 김경일 감수. 『감정의 과학』(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25)
  22. 250927토 - 우에사카 요시후미. 정현욱 옮김. 『일본제철의 환생: 가라앉던 제조 기업은 어떻게 되살아났는가?』(서울: 워터베어프레스, 2025)
  23. 251121금 - 존 윌리엄스. 김승욱 옮김. 『스토너』(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5). 전자책.
  24. 251125화 - 이병한.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 D. 밴스 이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경기도 파주: 서해문집, 2025)
  25. 251205금 - 조은정·허철. 『한자와 고대중국어』(서울: 역락, 2024). 경성대학교 한국한자연구소 한자학 교양총서 04.
  26. 251218목 - 폴 실비아. 정지현 옮김. 『교수처럼 쓰는 법』(서울: 빌리버튼, 2025)
  27. 251219금 - 미셸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 1·지식의 의지』(경기도 파주: 나남, 2010), 제3판.
  28. 251219금 - 조앤 W. 스콧. 정지영·마정윤·박차민정·정지수·최금영 옮김. 『젠더와 역사의 정치』(서울: 후마니타스, 2023)
  29. 251224수 - 요한 하리. 김하현 옮김. 『도둑맞은 집중력』(서울: 어크로스, 2023). 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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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록을 나는 왜 매년 작성하고 있는 걸까. 2025년의 끝자락에서 새삼스러운 고민에 잠깐 빠져 있던 나는 이런 글을 읽었다.

없음이 아니라 과잉이 사랑을 죽였다고 말하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뭘까. 무엇이든 오래가려면 희소성을 유지하라는 것일까. 오웰은 그런 답을 주지 않는다. 생업이란 무엇을 많이 만들거나 많이 파는 일이며, 적게 해도 된다면 그건 생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신의 사랑이 생업에 완전히 파괴되기 전에 업계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웰처럼 업계를 떠날 수도 없다면 말이다. 일과 개인 사이를, 5천권과 가방 속의 한권 사이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 분리가 부디 유지되길 바라면서.

김영준. "5천권과 한권 [크리틱]". 한겨레. 2025-12-3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37459.html

내가 이 목록을 만드는 이유를, 위 글을 통해, 보다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재미로 읽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 목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직업상 많은 책을 동시에 꺼내고 조금씩 보고 훑어 읽는다. 그 모든 것은 결국 '아웃풋'을 내기 위해 '인풋' 하는 과정이다.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쳐내야 할 마감도 있다. 매년 해야 할 일은 늘어만 간다. 나는 지식, 까지는 아니어도 담론의 생산과 유통에 기여함으로써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사람이기에, 조각조각 읽고 조각조각 쓰는 일 역시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독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읽기 위해 읽는 일이었다. 책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판권까지.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읽고 쓰는 게 직업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나는 매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만 기록하는 목록을 따로 만들고 있다. 읽고 쓰는 게 직업이니 매년 100권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물론 매년 지키지 못하고, 매년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결국 해를 넘긴 후에야 공개한다.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그런데 다음 순간에, 그런 속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들, 내게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스스로를 반박했다. 그리고 목록을 다시 만들었다.

나는 말하자면 '덕업일치'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업' 뿐 아니라 '덕'에 대해서도 공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것이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세상에 대한 작은 보답의 시작일 것이라고 믿는다.

2025-08-20

신뢰의 사슬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신뢰하는 이 사람이 신뢰하는 저 사람이 신뢰하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그러니까 경제 정책이나 탁현민이나 뭐나 뭐나 마음에 안 들어도, 통상적인 20대 여성이 윤서인이랑 같은 후보를 찍을 수는 없다. 신뢰의 사슬이 뚝 끊긴다.
노정태. "왜 20대 여성은 현 정권을 지지하는가." 노정태의 블로그. 2018-12-23. https://basil83.blogspot.com/2018/12/20.html

오랜만에 블로그를 펼쳐서 뒤적거리다 발견한 옛 게시물의 한 대목이 눈에 띄어서 코멘트.

'신뢰의 사슬', 내가 만들었지만 매우 그럴싸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며 판단하는 건 더더욱 귀찮아함.

사람들은 그냥 '내가 아는 저 사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내 친구의 친구가 그렇다는데 뭐 맞겠지', 정도로, 본인과 직접 상관 없는 거의 모든 문제를 퉁 치고 지나감.

그래서 정치인은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해야 함. 어떤 소명의식? '신뢰의 사슬'로 온 몸을 칭칭 감고 살아야 하는, 솔직히 말도 안 되게 피곤한 그 노역을, 기꺼이 감당하겠노라는 소명의식.

비단 정치인 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였고, 발화하는, 그런 사람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

이쪽에서 한번 신뢰의 사슬을 거하게 깨뜨리면, '저 ㅅㄲ가 하는 말은 내용이 옳아도 재수없어서 동의 못하겠다' 이런 아이콘이 되어버리면, 공적인 활동의 영역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음.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유시민이겠죠.)

조국 사태가 낳은 최악의 결과도 결국 그것 아닌가? 조국을 쉴드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그 수많은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회적 발화자'들이, 단지 진영 논리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마리오네뜨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의 신뢰의 사슬이 반토막 아니 1/4토막 이하로 줄어들어버리고 말았던 것.

우리 사회가 좀 더 섬세하고 촘촘한 신뢰의 사슬을 맺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정치니 사회적 이슈니 딱히 신경 안 쓰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할 일을 합니다.

2023-07-30

존 로크의 의도된 비효율적 인덱싱

Commonplacing, commonplace book, 뭐 그런 게 있다.
한국말로는 어떻게 번역해도 어색하다.
사전에서는 '비망록'이라고 하던데,
현대 한국어에서 비망록이라고 하면
'지워지지 않는 스무살의 비망록'
뭐 이런 뉘앙스를 많이 갖게 되었는지라...

아무튼 그런 게 있다.
대충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인덱스 카드를 이용한 정보 관리 방법이 발전하기 전까지
두루 널리 쓰였던 지식 수집과 연구 방법론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노트를 마련해놓고
본인이 관심있게 읽은 내용들을 옮겨 적는 것이다.
'블로그 펌질'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블로그에 펌질을 많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정리하느냐, 그리고 그 정리한 내용을
언제 어떻게 적절하게 찾아 보느냐다.

나도 이것저것 많이 메모해놓고 까먹는 사람이기에
(다들 그렇지 않나요? 네?)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만큼이나
내가 모아놓은 것을 '재발견'하는 방법을 많이 탐색중이다.

(지난번에 올렸던 '구글 드라이브 랜덤 파일 읽기' 같은 게 대표적이다.
랜덤하게 뭐가 보이면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찾다 찾다 흥미로운 게시물을 하나 접했다.
"John Locke’s Method of Organizing Common Place Books".
https://fs.blog/john-locke-common-place-book/
말 그대로 존 로크가 어떻게 비망록을 작성하고 분류했느냐 하는 것.

그 방법이 매우 희한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1)수집한 텍스트에서 표제어(head)를 골라낸다.
2)표제어의 첫 글자와 뒤따라오는 첫 모음을 적는다.
가령 Head라면 h e, place라면 p a 가 된다.
3)그런 기준으로 항목 인덱스를 만든다.

이런 식으로 인덱싱을 하면 어떻게 될까?
전혀 상관 없는 단어들이 인덱스에서 맞붙게 된다.

가령 chair 와 castle을 떠올려 보자.
별 상관 없는 개념이지만 로크 스타일로 정리하면
둘 다 c a 이므로 인덱스에서 사이좋게 같은 칸이다.

이 혼란은 의도된 것이다.
어떤 단어를 찾아보려다가 엉뚱한 단어를 만나기 위해.
창조적 사고를 위한 도구를 만들어낸 아주 인상적인 기법이어서
미칠듯이 덥다가 비가 쏟아진 지금 한번 공유해 보았음.

2023-07-25

인구감소가 해방이라는 주장의 오류

'지배집단은 노예를 원한다, 인구감소가 해방이다'라는 주장의 오류. 그렇게 말하는 사람 본인은 지배계급인가, 노예인가? 지배계급이라면 그것은 마치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부르주아 집안 자식 같은 고결함 내지는 위선의 표현일 뿐이지만, 노예라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 신분이 낮고, 재산이 없고, 특별한 재능이 없을수록,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인 평범한 사람들의 노고에 힘입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예를 낳지 말자'는 주장에서 더 큰 손해를 보는 건 주인이 아니라 노예다. 자신이 다른 노예들과 서로 돕고 살아가기에 지금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하며 오만한 노예.

2023-05-13

넷플릭스식 Binge Watch 단상

넷플릭스가 조져놓은 드라마를 둘러싼 문화적 관습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최악은 Binge Watch라고 생각한다.

TV 시리즈는 그런 게 아니다.  

힌국 기준으로 16부작은 1주 2화씩 8주에 보도록 맞춰져 있다.

딱히 기한 없이 흘러가는 연속극도 1주에 한 편 내지는 두 편, 요즘은 잘 만들지도 않는 일일연속극은 1주 5화 1일 1화가 최대치다.

이게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연속'극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과 시청자의 인생의 흐름이 함께하는 그 감각. 그것이 영화와 드라마를 가르는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 것이다.

영화는 극장이라는 단절된 시공간에 들어가서, 대충 2시간 아무리 길어도 4시간이 안 되는 영상물을 보고 나온다. 영화 감상은 '이벤트'다.

반면 드라마는 TV가 됐건 모니터가 됐건, 익숙한 시공간과 시청 환경에서, 최소 8시간(이면 너무 짧고), 대충 16시간을 함께한다. 이건 '이벤트'가 아니라 '라이프'다.

빈지 와치는 바로 이 '라이프'로서의 드라마를 조져버린다. 하루 날잡고 쫙 정주행하는 그것은 드라마를 보는 자세가 아니다.

갑자기 왜 혼자 급발진하는가?

오랜만에 더 와이어 여전히 시즌 1... 의 8화를 보고 하는 소리임. 걍 무시하세요. 한 화 정도만 더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