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1

'문제는 경제야'가 문제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문제야, 바보야!


[당비의생각] 2009/11/11 12:26

노정태 | 칼럼니스트

정의되지 않은 정의(正義)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강자와 약자 모두 동의하고 승복할 수 있는 공통의 규칙이 제공되지 않는 한, 정의란 한낱 강자의 횡포를 치장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말하는 ‘정의사회구현’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표방하는 ‘정의’는 지옥과 천국의 차이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비단 정의뿐만이 아니다. 모든 ‘좋은 개념’들은 그것이 갖는 영향력만큼이나 위험성을 지닌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이념들을 밀쳐내고 이데올로기의 왕좌에 군림하게 된 ‘경제’가 문제가 된다.

47세의 젊은 대통령 후보, 아칸소 출신 촌놈이지만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엘리트였고 폭발적인 대중 친화력을 지녔던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터뜨렸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어 90%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던 아버지 부시(H. W. Bush)를 꺾는 기염을 토한다.

문제는 이 ‘경제’가 대체 어떤 경제냐 하는 것이다. 당시 클린턴 후보 측 선거 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James Carville)은 미국 경제가 불경기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측이 경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아군은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카빌은 리틀록에 위치한 클린턴 선거운동본부에 세 가지 사항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1. 변화 vs. 같은 것을 다시 한 번
2.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3. 의료보험을 잊지 말자

이것은 엄연히 ‘내부용’ 구호였지만, 어느새 선거운동본부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결국 빌 클린턴을 미합중국의 42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3번 구호에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또한 의료보험 문제를 놓고 정치적 자산을 건 큰 싸움을 진행 중이다. 단지 불황에서 벗어나는 것, 경기 부양책을 써서 실업률을 낮추고 GDP를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그들의 사명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와 함께 리틀록의 선거운동 본부에 내걸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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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당대비평에 기고한 글입니다. 당대비평의 지면이기 때문에 이렇게 담론적인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군요. 이 게시물에 리플을 달아주셔도 되고, 링크된 온라인 당대비평에 소감을 남겨주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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