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은 자신이 진중권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르는 행동이 말 그대로 '사실적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김규항 본인 혹은
김규항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발언 속에서 이와 같은 입장은 수없이 반복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자유주의자'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도덕적 평가를 담고 있는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중권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를 때, 그것이 비난이나 평가 절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는
맥락에 따라, 그 어떤 단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욕설 비슷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이런
세종대왕 같은 새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발화의 상대방이 고기와 여색을 밝히는 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야 이 이순신
같은 놈아'라는 표현은 그 발화의 상대방이 대단히 꽁하는 성격이며 자신과 불화하는 자를 매일 일기장에서 씹고 심지어 섹스
파트너와의 성관계 횟수를 일기에 적기도 하는 편집증적 성향을 지닌 것임을 지적하는 문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너는
자유주의자'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발화자와 그 상대방 모두 진보정당의 가치에 동의하고 그것의 성장을 바라고 있다는 전제
하에,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부르는 사람들이 결국 진보정당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강요했다는 역사를
함께 고려해볼 때, 그와 같은 딱지붙이기는 당연히 욕설 혹은 심한 비판 내지는 비하의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김규항이나 김규항의 옹호자들은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이 그저 사실의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화술을 지닌 사람 혹은 집단이 '진정한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이다. 대중들은
어떠한 정치 집단 속에서 그와 같은 '배제'의 화법이 자연스럽게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면 조용히 발걸음을 돌릴 뿐이니 말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것과 '자유주의'라는 단어를 욕설로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후자를 피하면서도 전자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자신이 전자를 수행한다고 착각하면서 후자에 지나지 않는 행태를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진보정당의 구성원,
혹은 그러한 정치적 결사체를 위해 발언하는 사람들이 위와 같은 오류에 빠져들지 않기를 희망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