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1

입대합니다

2010년 10월 11일부터 2012년 7월 18일(예정)까지, 카추사로 군복무할 예정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기간동안 이 블로그에 정치·사회·시사적인 내용의 글은 올라오지 않습니다. 훈련소 주소 등 신상과 관련된, 외부에 공개해야 할 정보는 꾸준히 업데이트됩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무운까지는 바라지 않고, 군복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2010-10-01

죽은 시민의 사회

죽은 시민의 사회

이론적으로 따져보자면 우리는 슈퍼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우리는 비교를 불허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그것을 곧장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트위터나 페이스북 따위로 자신의 생각을 떠벌릴 수 있으며, 서 있는 위치에서 반경 5백 미터 안에 숨은 맛집을 찾아내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이 편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똑똑해지고 강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현실은 정 반대다.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자신,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볼록해지면서 점점 스파이더맨이 되어가는 모습. 온갖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에서 떠들어대며 “당신 자신이 되세요, 화이팅”이라고 떠벌리지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산다. 한 시간짜리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 은행 또는 증권사 매장에 앉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을까 한숨을 내쉴 즈음, ‘딩동’하고 벨이 울리며 한 여성이 당신을 부른다. “275번고객님!”

이 세상의 정체, 그 속에서 당신이 처한 위치를 알고 싶다면, 남들이 당신을 부르는 호칭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아침에 눈을 떠 휴대전화에 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면 적어도 한 통 이상의 스팸 문자가 와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판매자는 당신을 ‘고객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뜨기 전부터 고객님이고, 잠들 때까지 고객님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고객님, 스마트폰을 2년 약정으로 노예 계약한 고객님, 특급배송 서비스로 이것저것 결제하신 고객님, 실시간 스파이웨어 감시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신 고객님. 이 무기력한 세상은, 당신을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세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기력해진 이유는 MB 때문이 아니다. 7월에출시되었어야 할 아이폰 4가 9월에 출시되어서도 아니고, 아이폰 대항마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모 국내 전자업체가 집요한 언론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이 통째로 ‘고객님’의 삶이 되어버렸다는 것, 주체적인 삶의 양식 없이 그저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선택을 하든, 당신은 그저 고객님이다. 손님이 그냥 왕이라면 고객님은 ‘킹왕짱’이어야 하겠으나, 실상을 놓고 보면 우리는 결국 다른 고객님을 상대하면서 번 돈 몇 푼을 주머니에 넣고,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선택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그런 하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약정하는 사람과 개통해주는 사람만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점점 질서정연하게 무기력해지고 있다. 날마다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고, 앱스토어에는 수십만 개의 어플이 다운로드를 기다리며, 맞춤형 서비스가 속속 생겨나는 이 세상에서 왜 정작 ‘고객님’은 무기력해질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선택은 객관식이다. 시장을 통해 모든 것을 공급받는 우리로서는, 그 시장에서 공급해주는 것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뿐이다. 예컨대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까지 선택의 자유라는 말은, 적어도 스마트폰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자유는 시장에서 공급하는 물건의 종류만큼, 딱 그 수준에서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시장에서 무언가를 공급해주지 않을 경우, 고객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역시 아이폰을 예로 들어보자.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올해 7월, 아이폰 4가 출시되는 국가 목록에 대한민국이 빠지자 수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졌다. 인터넷 공간은 순식간에 이런 저런 음모론으로 뒤덮였고 비명과 절망과 탄식이 와이파이망을 타고 날아다녔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한국 애플 본사 앞에서 시위라도 할 것인가? 단식투쟁을 벌이면 스티브 잡스의 마음이 바뀔까?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론상 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할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우리에게 뭔가를 마땅히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을뿐더러, 그것을 요구 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횡포에 대해서는 촛불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고 칼럼을 쓰고 투표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전횡에 대해 일개 고객님인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껏 다른 기업의 고객님이 되는 게 저항의 전부다. 그런데 이용하는 주유소를 A사에서 B사로 바꾼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긴 한가? 민주주의의 원리가 자본주의의 원리에 잠식되어 갈수록, 즉 우리가 시민에서 고객님으로 변해갈수록, 우리는 무력해진다. 번호표를 뽑고 얌전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국내에 아이폰 4가 출시될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하고, 예약 판매를 받는 서버가 다운된 것이 풀릴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한다. 할 일이 없다. 약정기간이 덜 끝난 휴대 전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아보고, 쉴 새 없이 클릭하며 최저가 탐색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불현듯 허탈해진다. 이것이 삶에 무슨 의미일까. 결국 수많은 불량품 중에 개중 나은 것을 찾으려 방황하고 있을 뿐 아닐까.

촛불시위 이후 정치적으로 맥이 빠져버린 한국 사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촛불시위는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비자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컷 MB를 욕하고 나서, 결국 투표 잘하자며 집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정치인들 앞에서 고객님이 될 수 있는 기회, 즉 선거는 너무 멀리 있었고, 경찰은 컨테이너를 쌓고 버텼다. 촛불시위의 실패 이면에는 이미 고객님으로 길들여진 시민들의 무기력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의 정치 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죽은 자식 고환 애무하듯, 선거 때 간신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솟고, 이후 곧 죽어버린다. 우리는 정치적 의제를 생산하고 실천하는 시민이 아니라, 정치인을 쇼핑하는 고객님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하면 ‘죽은 시민의 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정도의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돈을 벌되, 벌어서 ‘시간’을 사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다. 똑똑한 소비자가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바보가 된다. 소비자는 어차피 기업이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 시간을 이용해서 고객님이 아닌 누군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당신을 아들이라고 부르는 부모님, 학생이라고 부르는 선생님, 동지라 부르는 당원, 아저씨라고 부르는 옆집 소녀 등, 눈을 돌려보면 생각 외로 우리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많다. 바로 그 세계, 진짜 우리의 삶이 촘촘히 얽혀 들어간 세계에 충실하는 것, 그것만이 죽은 시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GQ 2010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