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l, M. (2025). The Art of Spending Money. Portfolio(Penguin).
Housel, M. (2020). The Psychology of Money. Harriman House.
한국어판 <돈의 방정식>은 저자의 전작인 <돈의 심리학>의 후속편이다. 기왕 읽는 김에 두 권 다 구입했다.
두 책의 소재, 주제, 심지어 서술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무리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만족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두 권 모두 키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enough'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안분지족'이 가능한 상태가 얼마나 '비싼'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저자가 <돈의 심리학> 챕터 3에서 언급하는 조지 헬러와 해지펀드 매니저의 일화가 바로 그렇다.
조지 헬러는 '저기 저 해지펀드 매니저는 네가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하루에 번다'고 말하는 커트 보네것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저 사람이 절대 갖지 못할 것을 갖고 있는걸... (그거면) 충분해.'
여기서 어떤 논리적 모순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조지 헬러가 <캐치-22>의 저자로서 가지고 있는 불멸의 명성은, "a hedge fund manager"만 가질 수 없는 게 아니다. 심지어 커트 보네것조차도, 보네것이 가진 명성과는 별개로,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이 책을 읽을 수많은 이들에게 그런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냐는 거다. 나는 갑돌이의 아들이며 개똥이 아빠다, 라고 생각할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모든 남자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모든 여자는 누군가의 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경제적' 가치와 자부심의 근원은, 말하자면, 일신전속적이고 고유하지만 딱 나의 친족 범위 내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더 끔찍한 경우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족이 됐건 직장 내에서의 인정이 됐건, 심지어는 가족의 틀을 넘어서는 사랑(aka 불륜이나 그... 뭐 수간? 같은 것)이 됐건, 그 고유한 가치가 경제적인 이유로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확고하고 단단한가? 과연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가?
돈 때문에 작살난 가족은 돈이 없어도 파괴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건 쉽다. 하지만 돈 문제로 크게 고심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모건 하우절의 두 베스트셀러가 그렇게 막되먹은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다. 저자는 몹시 사려 깊은 문장과 어조로, 술술 읽히도록, 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지만 무시하는 평범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숙달된 미국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나다. 배울 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거기서 만족하기 어렵다. '돈의 심리학'을 어기게 되는, 불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선택을 하고야 마는, 그런 '심리학'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애석하게도 미국의 대중 교양 서적 시장은 그러한 인간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저 이러저러한 호르몬 작용이라고 매도하거나, 아무튼 깊게 따져볼 필요도 없는 무언가로 치부할 따름이다.
나는 그게 매우 애석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인문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할 일이 남아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