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즈니악 본인이 말을 꼬아서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남이 한 번역에 이러저러하게 토를 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 부분은 중요한데 오해의 여지가 있어 첨언한다.
어플리케이션들은 마치 가구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틀을 만들지 않는 이상 무한한 종류의 가구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미래에 커다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의 맥락이 이상해서 원문을 찾아보았다. 위에 링크된 기사의 마지막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저것은,
Apps are like furniture. There are infinite variations until we have a few standards that change little. So this is a huge opportunity in the future.
의 번역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우리가 그다지 바꿀 게 없는 몇몇 표준형을 갖게 될 때까지, 무한히 많은 변종들이 있(었ㅅ)읍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지막 문장도 말이 된다.
우리의 삶이 '앱', 혹은 컴퓨터과 맺는 관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반면 우리는 가구로 뭘 할지 이제 대충 다 안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의자에 앉고 싱크대에서 설거지하고 등등. 우리는 '책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세부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상'이라는 단일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저기서 말하는 "standard"일 것이다.
반면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고 워즈니악은 말한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소프트웨어, 혹은 서비스의 범주가 창출되고, 또 사라진다. 사람이 컴퓨터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표준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 혼란과 부정형성이 아직 '열린 기회'의 역할을 한다고, 그러니 앞질러 좌절하지 말라고 워즈니악은 말한다. 그가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컴퓨터 혁명이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으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음을 뜻한다. '당신이 잡스랑 같이 애플을 만든 워즈죠? 그럼 저는 당신같은 슈퍼스타가 될 수 없겠네요?'라는 가상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는 소리.
그러니까 이렇게 착하게, 시제도 묘하게 어긋난 문장을 써가며 제주도의 한 고등학생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편지를 읽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의 선량한 사고와 친절한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바라보는 '현실'의 모습을 어느정도 역산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There are infinite variations until we have a few standards that change little.
답글삭제이 문장은 "우리가 그다지 바꿀 게 없는 몇몇 표준형을 갖게 될 때까지, 무한히 많은 변종들이 있(었ㅅ)읍니다." 이런 의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시제까지 바꿔가시면서 번역을 하시구, 그걸 괜히 잘 쓴 워즈니악의 탓을 해놓으시면서, 남의 번역을 논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다 관두고 설사 저렇게 번역했을 때는 님의 말과는 전혀 달리 마지막 문장이 말이 안되요. 님 주장처럼 맘대로 시제를 바꿔서 이해한다면, 왜 이미 표준형을 갖게 되었는데 미래에 무한한 기회가 있단 말입니까?
제 생각에 본 문장은 "거의 변화하지 않는 소수의 표준지침들에 마주치기 전까지 우리는 무수한 변형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즉 앱 생산에 관한 몇몇개의 하드한 규칙들과 제한들을 제외하고는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즉 이 문장은 앱 생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얘기하는 문장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앱 생산이 소수의 규칙들에 기반해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가구라는 비유를 쓴거죠. 예컨대 어떤 것이 의자로 불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조건들만 갖추면 되지만, 세상에는 쇼파부터 벤치까지 무한한 의자들이 있으니까요.
님의 오역을 수정하고 나면, 가구들을 사용하는 법은 잘 아는데 앱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출발하는 비판은 우수꽝스럽습니다. 워즈니악이 얘기하는 게 그 말이 아닌데 말이죠. 워즈니악의 비유는 구조적/형태적 동형성을 얘기하려고 한 말이죠. 현재 앱과 인간의 관계가 정착됐든 안됐든 그것과는 상관없는 말입니다. 님 말처럼 가구와 인간의 관계가 정착됐다고 합시다. 그래도 여전히 가구는 소수의 스탠다드에 기반한 무한한 변형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앱과 인간의 관계가 정착됐든, 되지 않았든 상관없이 소수 스탠다드-무한 변형가능성 얘기는 할 수 있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그 점을 비판하셔야 하고요.
오역과 오해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비판이 뭐 그렇게 적실한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앱으로 뭘할지 앱과 인간의 관계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게 정말 사실적 참인지도 모르겠고요. 남이 써놓은 것도 제대로 번역을 못하면서, 어떻게 그 사람이 바라보는 현실의 모습을 역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있지도 않은 오해의 여지를 만들어서 어거지로 의미를 끌어내려는 모습은 좀 애처롭습니다.
제 번역보다 방문자께서 옮기신 내용이 더 부드럽게 읽힙니다만, 그 경우, "거의 변화하지 않는 소수의 표준지침들에 마주치기 전까지 우리는 무수한 변형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구나 소프트웨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현 시점에서 앱 생산이 소수의 규칙들에 기반해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그래서 "예컨대 어떤 것이 의자로 불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조건들만 갖추면 되지만, 세상에는 쇼파부터 벤치까지 무한한 의자들이 있으니까" 기회의 문이 늘 열려있다고 말한다면, 세상 어떤 분야인들 안 그렇습니까? 책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모든 게 다 소수의 조건을 갖추면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 무언가로 인식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출판시장이나 주택건설시장에 무한한 기회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삭제"그래도 여전히 가구는 소수의 스탠다드에 기반한 무한한 변형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단언 등은, 그냥 아무렇게나 하신 말씀이라고 믿겠습니다. 가구의 무한한 변형가능성? 그런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저 말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번역을 하면서 동시에 해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묻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구는 소수의 스탠다드에 기반한 무한한 변형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실 수 있나요? 무슨 근거로?
한편 텍스트를 전체적으로 읽어보시죠. 편지의 거의 대부분이,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워즈니악 본인의 성공담입니다. 컴퓨터 업계의 a few standards를 만든 사람 중 한 사람이 워즈니악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나요? 그리고 그 워즈니악이, '나는 워즈니악인데 이런 조언을 해줄게'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실 수 있나요? 그 앞의 문장들인 " It‘s easy to see a world of job opportunities writing apps but don’t forget the importance of implementing the data center side of those apps. There‘s a lot of work to be done at that level too."를 보면, 의미가 더욱 명확해질 뿐입니다.
그 레벨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아직 '표준'이 완전히 굳어진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을 굳이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바꿔 말하자면, 컴퓨터 혁명이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으리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음을 뜻한다"는 해석은 타당해 보입니다. 반면 제게 "남이 써놓은 것도 제대로 번역을 못하면서, 어떻게 그 사람이 바라보는 현실의 모습을 역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만, 있지도 않은 오해의 여지를 만들어서 어거지로 의미를 끌어내려는 모습은 좀 애처롭"다고 하시는 걸 보면, 그냥 웃지요. 워즈니악의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세요. 그냥 그 얘기하는 게 맞습니다.